게임 이야기

 

킥스타트로 펀딩을 받아 제작된 이가라시 코지(통칭 IGA)의 신작 블러드스테인드는 옛 악마성의 추억을 잘 살린 작품으로 평단과 판매량 양쪽 모두에서 승승장구하고 있는 모습을 보여줬다. 이나후네 케이지가 마이티 넘버 나인으로 게임 역사에 길이 남을 오점을 남긴것과 비교해서 본다면 IGA의 성공을 놀랍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나 IGA가 마지막 작품인 빼앗긴 각인 이후로 11년만에 내놓은 완벽한 신작이라면 감안한다면 더더욱 그렇다.

 

물론 블러드스테인드가 고전적인 악마성을 기억하는 사람들에게는 강하게 어필할 수 있는 작품이었다는 것도 한몫할 것이다:게임은 전설적인 월하의 야상곡부터 휴대용 기기로 등장한 빼앗긴 각인이나 창월의 십자가, 효월의 윤무곡, 폐허의 초상화 같은 현대적인 작품들을 모두 섞어서 한데 어우르는데 성공하였기 때문이다. 물론 블러드스테인드라는 게임이 IGA 게임의 집대성이라는 점에서 블러드스테인드는 구태의연하다. 느린 게임 템포와 월하의 야상곡에서의 커멘드 입력 필살기 등등 인디 게임들이 '매트로배니아'라는 태그를 붙이면서 게임을 쌓아올린 것에 비하면 여전히 자가 복제적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러한 자가 복제적인 콘텐츠를, 97년 발매된 월하의 야상곡에서 빼앗긴 각인까지 이어지는 11년을 하나의 게임에 응축하였기 때문에 블러드스테인드는 그 가치가 있다.

 

이 글에서 간략하게 다루고자 하는 것은 '어째서 블러드스테인드는 킥스타트 프로젝트에서 성공하였는가?'다:우리는 이미 마이티 넘버 나인과 같은 작품들을 본 적이 있다. 유명한 개발자가 메인이 되었고, 시대에 떠밀려 사멸한 장르가 대상이고, 팬들이 관심을 모았으며, 마지막으로 펀딩이 기대금액을 초과해서 성공적으로 마무리되었다는 점 등에서 마이티 넘버 나인과 블러드스테인드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그렇다면 무엇이 이들의 성패를 좌우하였을까? 이는 소비자의 기대와 개발자의 역량 사이의 괴리, 그리고 더 나아가서 그것을 얼마나 투명하게 소비자에게 공개하였는가가 관건이었다.

 

기업이 소비자에게 상품과 서비스를 판매하는데 있어서 중요한 점은 "소비자가 무엇을 원하는가?"와 "소비자에게 우리가 무엇을 해줄 수 있는가?"이다. 소비자의 기대 수준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어야만 소비자가 서비스나 제품에 만족할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 기업은 소비자에게 상품과 서비스에 대한 정보를 정확하게 제공하고, 소비자가 이를 인식하고 기업의 의도대로 제품과 서비스를 소비할 수 있게 만든다. 그리고 게임 업계의 경향성도 타 업계와 유사해서 광고나 인터뷰 등의 미디어 노출을 통해 "우리 게임은 이렇다"라는 것을 적극적으로 어필하고 타겟 소비자가 제품을 구매하게끔 유도한다. 일례로 데몬 엑스 마키나의 사례를 보자:데몬 엑스 마키나를 개발한 마벨러스는 발매 전 데모 공개를 통해서 플레이어들로부터 게임 피드백을 받고, 그것이 실제 어떻게 게임에 반영되었는지를 보여주었다. 이러한 마벨러스의 노력은 자사 제품을 구매할만한 잠재적 소비자들의 피드백을 반영하여, 그들이 얼마나 '소비자의 욕구를 이해했는지'와 '소비자가 원하는 게임을 만들었는지'를 어필하였다.

 

이러한 부분에서 마이티 넘버 나인과 블러드스테인드는 분명하게 다른 경향성을 보여주었다. 마이티 넘버 나인의 경우, 추가 DLC를 위한 푸가 펀딩에 기대에 못미치는 트레일러, 트레일러에서 변하지 않은 게임 완성도, 심지어 펀딩 때 약속된 패키지를 후원자들에게 전달하지 않아서 소송 이슈까지 등장한 전력도 있다. 소비자들이 원하는 것들을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하고 프로젝트를 방계로 확장하였으며(애니메이션이나 만화 같은), 스스로 능력이 없었음에도 소비자에게 지키지 못할 공수표를 남발했다는 것이 문제였다. 그에 비해서 블러드스테인드는 주기적으로 후원자들에게 개발 진척 상황과 퀄리티 향상, 피드백 반영, 중간 결과물 공개(블러드스테인드 커스 오브 더 문) 등을 통해서 후원자들과 긴밀한 신뢰관계를 쌓는데 성공하였다. 그렇기 때문에 펀딩 후 출시까지 약 5년, 1년 반 이상의 개발 연기, 플랫폼 변경으로 인한 환불 등의 크고 작은 이슈들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큰 문제 없이 게임을 발매하고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이다. 

 

좀 더 심층적으로 파고들어 본다면, 마이티 넘버 나인의 실패는 '예산 관리와 효율적 사용'에 있다고 보여진다:킥스타트의 성공적인 펀딩 이후, 마이티 넘버 나인이나 블러드스테인드는 양쪽 다 모두 후원자 외 정식 판매를 위해서 배급사를 끼었다. 엄밀하게 이야기하자면, 양쪽 모두 추가적인 펀딩 없이도 배급사를 통해서 외부 자금을 끌어들일 여유가 있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마이티 넘버 나인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추가 DLC를 위해서 추가 펀딩을 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는 추가 DLC에 대한 홍보로도 읽힐 수 있지만, 동시에 프로젝트 운영에서 예산 계획이나 운용에 잡음이 많았다는 증거로도 볼 수 있다. 안 그렇다면 '발매되지도 않은 게임'에 대한 '추가 DLC'에 대해서 추가후원을 받을 수 있었을까? 그냥 듣기만 해도 문제가 있어보이는 행동을 공공연하게 했다는 것 자체가, 프로젝트가 내부적으로 단단히 꼬여있었다는 것의 증거다. 그리고 마이티 넘버 나인의 많은 문제점들, 떨어지는 퀄리티나 발매연기, 지켜지지 않은 약속 등등은 예산 관리 운용의 문제로 보았을 때 설명되는 부분이 많다.

 

그렇다면 무엇이 블러드스테인드와 마이티 넘버 나인의 자금 운용의 차이를 만들었을까? 이는 개발자들의 커리어를 통해서 보았을 때, 분명하게 나뉘어질 수 있는 부분이다. 이나후네 케이지는 캡콤의 중흥기를 함께 해온 거물 개발자였던 반면, 이가라시 코지는 월하의 야상곡 이후 매트로배니아라 불렸던 장르들을 모두 휴대용 기기로 만드는 등 거물 개발자와는 거리가 먼 커리어를 쌓아왔다. 즉, 이나후네는 자금 운용에 있어서 "작은 프로젝트"(물론 그가 록맨 잭스 시리즈를 만들긴 했지만, 상대적으로 그의 커리어는 규모가 큰 게임들이 대부분이었다)에 익숙하지 못한 반면, 이가라시 코지는 항상 코나미의 눈치를 먹으면서 매니아층만 두터운 안 팔리는 작은 게임들을 만들었다는 점에서 작은 프로젝트를 어떻게 운용하는지에 대한 감각이 충분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2년 반 이상 연기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블러드스테인드에는 치명적인 결함이나 콘텐츠 결함이 없이 게임이 발매되고 성공을 거둘 수 있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