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이야기


소비자에게 물건과 서비스를 제공하는 회사들은 직간접적으로 고객만족(Customer Satisfaction)과 밀접한 연관관계를 갖고 있다. 고객 감동 경영은 크게 두가지 전제로 구성된다:1)매출의 대다수는 단골 고객의 재구매에서 비롯된다. 2)고객은 자신의 경험을 다른 사람에게 전파한다. 그렇기 때문에 제품과 브랜드 마케팅 외에도 고객의 경험과 입소문은 장기, 단기적인 매출에 직간접적인 영향을 미칠 수 밖에 없다. 이를 관리하기 위해 회사는 자체적인 만족도 조사나 고객 관계 관리 체계(Customer Relationship Management, CRM)나 VOC(Voice of Customer) 같은 제도를 운영하여 고객이 이야기해주는 경험을 파악하고자 한다. 그리고 고객감동 경영이란 이러한 세부적인 지표와 관리 체계를 하나로 묶어 고객 만족이라는 목표를 실현하는 체계를 일컫는다.


기업 관점에서 고객감동 경영의 목표란 1)고객의 재구매 유도와 2)불만 발생의 차단, 마지막으로 3)긍정적인 입소문 마케팅의 유도다. 업계 내에서는 고객감동 경영의 우수 사례로 노드스트롬 백화점의 사례나 아마존에 매각된 신발회사 자포스의 경우를 많이 꼽는다:노드스트롬의 백화점의 경우. 고객 감동을 최우선으로 하여 직원의 재량을 부여하는 방향으로 기업을 운영하였다. 마케팅 교과서에서도 인용되는 유명한 사례는 "고객이 구매하고자 하는 할인 대상 물건이 매장 내에 없어서 '반대편 경쟁 매장'에 가서 물건을 '정가'에 구매하여 고객에게 '할인가격'으로 판매한 경우"일 것이다:얼핏 보기에는 수지타산이 맞지 않는 일지만, 이 사례로 인해서 노드스트롬은 '고객 감동을 위해 힘쓰는 회사'라는 인식이 고객 사이에 퍼졌다. 이 덕분에 제품 품질이나 기술에서 차이를 갖기 어려운 시장에서 노드스트롬은 지속적인 단골고객을 창출하면서 승승장구 할 수 있게 되었다.(관련 기사 : 노드스트롬의 고객관리)


자포스의 경우는 좀 더 극적일 것이다: 인터넷으로 신발을 판매하는 자포스의 경우, 2009년 아마존에 12억 달러에 인수되었는데 여지껏 아마존에서 인수한 기업중 최고가였기 때문이다. 자포스의 경우, 고객 감동을 최우선으로 하는 기업이며 순추천 지수(Net Promoter Score, NPS)가 세계적인 기업으로도 유명하다. 흥미로운 점은 자포스는 '콜센터' 조직이 강한 기업이란 것이다. 자포스가 처음 설립되었을 때, 신발은 인터넷으로 사기 어렵다(실제 신어보기 전까지는 치수를 알 수 없기 때문이다)라는 인식이 강했는데, 자포스는 콜센터를 통해서 구매 후 고객의 구매 만족 여부를 확인하여 신발을 인터넷으로 사도 안심할 수 있게끔 하는 비즈니스 모델을 만든 것이다. 자포스의 고객감동 사례로 가장 유명한 것은 돌아가신 어머니가 구매한 신발을 회사 내규를 어기면서 내부 비용으로 환불 처리하고, 고객에게 위로의 카드와 꽃까지 보낸 경우일 것이다. 이러한 자포스의 고객감동 사례는 노드스트롬의 사례와 마찬가지로 마케팅 교과서에서 자주 다른 사례 중 하나이며 자포스가 세계적인 기업으로 거듭날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다.(관련기사 : 고객과 직원이 행복해지는 기업 자포스)


그렇다면 자포스와 노드스트롬의 사례에서 찾아볼 수 있는 고객감동 경영의 핵심이란 무엇일까. 크게 2가지 정도로 구분해볼 수 있다:1)전 임직원이 CS에 대한 목표와 의식을 공유할 것, 2)현장 직원에게 목표를 실현하기 위해 현장 중심의 권한을 부여할 것이다. 여기에 본인의 경험을 살려서 한 가지를 덧붙인다면 3)고객이 제공받는 제품/서비스에 대한 기대와 실제를 일치시킬 것이다:대부분의 고객 클레임은 고객의 서비스와 제품에 대한 기대와 실제에서 괴리가 있기 때문에 발생한다. 이러한 괴리가 발생하는 원인은 고객에게 프로세스 자체에 대해서 제대로 안내되지 않았을 수도 있고, 제품과 서비스 자체에 부족함이 있을 수도 있다. 이러한 부분을 채우기 위해서 기업은 항상 1)고객이 누구인지, 무엇을 기대하는지, 2)기업이 제공하는 현 수준이 어느정도인지, 3)그러한 괴리를 어떻게 채우고 문제를 개선할 것인지, 4)고객의 인지를 어떻게 개선할 것인지라는 세부적인 목표들과 과제들을 설정하고 과제를 수행한다.


기본적으로 시장이 성숙기에 들어가면, '자신이 갖고 있는 고객풀은 지키면서, 경쟁 기업의 고객을 빼오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에 많은 소비재/서비스 업계에서 고객 감동 경영은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게임업계만큼 서비스로서의 성격이 강조되면서 고객감동 경영이라는 개념이 모호하고 희미한 분야도 없을 것이다. 많은 업계가 이미 기관에 의해서 '이 기업을 얼마나 추천해줄 것인가'라는 조사를 받고, 그 조사결과를 정기적으로 발표하는데 게임 업계는 여기에 포함되지 않는 것을 봐도 이를 정의 내리기 힘듬을 알 수 있다(관련 링크:KNPS 2018) 물론 게임 산업 자체가 규모가 커진지 얼마 되지 않았다는 점, 전통적인 소비재 산업이나 서비스 산업과는 달리 서비스나 제품에 따라서 차별화가 확실하게 이루어진다는 점, 제품과 서비스와 콘텐츠 산업의 개념이 서로 혼재되어 있다는 점 등은 전통적인 고객 감동 경영에서 유리되어있는 영역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게임 역시 점점 라이브 서비스의 영역으로 옮겨가면서 경험을 관리하고 만족을 도출해서 이탈 고객을 방지하는 것은 점점 더 중요해지고 있다. 게임을 내기만 하면 어느정도 유저풀을 확보하는 시대는 지났으며, 이제는 새로운 소비자 층을 발굴하거나 경쟁상대의 고객들을 빼오고 자신의 고객을 지키는 전략이 필요한 시기가 온 것이다. 그러나 전통적인 서비스 산업과 달리 게임 산업에 있어서 고객 감동 경영의 요건을 정의내리는 것은 쉽지 않다. 예를 들어 서비스 산업의 경우, 다년간의 시행착오를 거친 끝에 기업들은 고객과 서비스가 접촉을 하는 MOT(Moment of Truth, 관련 링크)를 설정하고, 이 MOT 단계에서 서비스 제공자가 어떤 행동을 취해야 하는지를 정의내려왔다. 인사, 예절, 복장 등등의 우리가 일상 생활에서 접하는 다양한 서비스 업종 관계자들은 이런식으로 표준화되고 훈련되었기 때문에 기업이 운영하는 어느 지점을 방문해도 통일성 있는 경험을 제공받을 수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통일성 있는 경험의 제공은 고객 감동 경영에 있어서 핵심이라 할 수 있는 부분이다.


그렇다면 게임 산업의 경우는 어떠한가. 분명 게임도 서비스의 관점에서 본다면 MOT로 구분할 수 있는 단계들이 있다:예를 들어, 게임 접속이나 매칭이 잡히기 까지 기다리는 순간, 게임을 시작하고, 플레이하며, 결과를 결산하는 순간까지 이 모든 순간들이 세부적으로 정의내려질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경험 접점들은 각각 접점에 따라서 개선해야하는 문제와 이슈들이 존재하며, 게임 산업은 이를 개선하기 위한 다양한 활동들을 하고 있다. 하지만 문제는 게임 산업 자체가 콘텐츠의 내용에 따라서 UI를 구성하는 것이 천차만별이기 때문에 표준화된 양식에 근거하여 고객 경험을 관리하기 보다는 콘텐츠의 내용에 따라서 UI가 달라지기도 한다는 점이다. 물론 UI를 구성하고 플레이어의 경험 접점을 구성하는데 있어서 대원칙이 있고, 오랜 기간동안 장르 문법으로 업계에 통용되는 양식이 존재하지만 타산업에 비해서 이 양식과 절차라는 것은 교과서라기 보다는 참조해야하는 레퍼런스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문제는 게임이 만들어지고 소비되는 사이클일 것이다:일반적으로 게임은 개발에 몇년이 투자되며, 이러한 개발 과정에서 만들어진 결과가 플레이어 경험의 80~90% 정도를 결정한다. 하지만 문제는 일반적인 서비스 산업과 달리, 게임은 한 명의 플레이어가 수십 ~ 수백 시간을 투자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는 것이며, 한번 문제가 터지면 그것을 실시간으로 수습하는 것은 힘들고, 근본적으로 뜯어 고치는 것은 더더욱 힘들다는 것이다. 즉, 여타 서비스 산업에 비해서 몇백배나 되는 고객 접점을 갖고 있으면서, 양식으로 표준화해서 관리하기 힘들고, 초기 개발의 요건들이 플레이어 경험의 대다수를 차지한다는 점에서 게임 산업은 그야말로 서비스 산업의 끔찍한 변종이라 할 수 있다. 물론 지난 20년 동안 온갖 쓰레기 같은 게임들이 만들어졌고, 이러한 실패를 거치면서 게임 산업은 장인(스타 개발자) 중심의 가내 수공업에서 탈피해 산업으로서 노하우를 쌓아올리는데 성공하였다. 문제는 이제 공산품을 만들어내는 산업이 아닌 플레이어라는 고객을 감동시키고 서비스에 머무르게 할 수 있는 방법론을 찾아나가야 서비스 산업으로서 진일보 할 수 있다는 것이다. 


흥미로운 점은 게임 산업이 고객을 자사 브랜드(=게임 프랜차이즈들)에 묶어두는 방법은 전통적인 소비재/서비스 산업에서 고객 감동을 이끌어내는 방법과 좀 다른 방법론이라는 것이다:위에서 언급한 고객감동 경영의 핵심에서 1)과 2)는 분명 어느 회사나 가져야 하는 기본사항이긴 하지만, 게임 업계에서는 이러한 기본 사항이 두드러지지는 않는다. 오히려 게임 업계에서 보여지는 고객 관리 전략의 핵심은 3)고객이 제공받는 제품과 서비스에 대한 기대와 실제를 일치시키는 것이라 할 수 있다. 특히 마케팅을 통하여 '우리는 당신이 원하는 것을 제공합니다!'라는 이미지를 끊임없이 제공하는 것이 일반적인 트리플 A 게임 프랜차이즈들의 고객관리 전략이라 할 수 있다. 즉, 자사 제품을 구입했을 때 '감동할 수 있는 사람'만 고객으로 끌어들이게끔 고객 감동 전략을 짰다는 것이다. 


심지어는 마케팅을 통해서 '플레이어의 취향을 게임에 맞추는 극단적인 케이스'까지 찾아볼 수 있기도 하다. 소비자가 원하는 것을 게임 개발사가 통제한 대표적인 경우가 바로 레드 데드 리뎀션 2의 사례일 것이다. 레드 데드 리뎀션 2의 경우, 논란이 있을법한 구시대적인 게임 플레이와 대중 문화에서는 마이너한 장르라 할 수 있는 서부극을 갖고 엄청난 판매고를 올린 게임을 만들었다. 최근의 게임 산업 트렌드가 플레이어에게 최대한 편의를 제공해주면서 플레이어가 강하다는 느낌이 들게끔 만드는 쪽이었다는 것을 감안한다면, 레드 데드 리뎀션 2는 이를 역으로 거슬러 오른것이다. 물론 락스타 게임즈가 레데리 2에서 보여준 편집광적인 디테일과 배짱은 충분히 높게 살 부분이긴 하지만, 만약 마케팅을 통해서 이를 포장하지 않았다면 게임 자체의 성공은 오히려 일반적인 트리플 A 게임 프랜차이즈보다 불투명하지 않았을까라는 의심도 든다.


하지만 서비스 산업으로서 게임(라이브 서비스, F2P 등등)이 점점 강해질수록, 자신이 갖고 있는 고객관리라는 측면에서의 고객감동 경영은 게임에도 도입되는 것은 필수적이 될 것이다. 그것이 지금 현재로써는 어떠한 모양새가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분명한 것은 수익을 창출하기 위한 BM 뿐만 아니라 자사 게임 서비스를 사용하고 있는 고객을 이탈하지 않게끔 어떻게 관리할 것인가도 게임 업계에 중요하게 자리매김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