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이야기


*블랙 아웃 리뷰 및 블옵 4가 갖는 의미에 대한 글은 별도로 뺍니다.


콜 오브 듀티 모던 워페어의 등장 이후로, 콜옵에 있어서 멀티플레이는 핵심적인 요소로 자리잡았다:빠른 페이스의 전투와 자동회복, 킬스트릭 등등은 시리즈 멀티플레이 뿐만 아니라 여타 게임에도 많은 영향을 끼쳤다. 하지만 시리즈가 오래되면서, 콜 오브 듀티 시리즈는 팬들의 상충된 요구에 부딪힐 수 밖에 없었다:하나는 새로운 것을 보여달라는 요구, 또다른 하나는 그러면서도 여전히 콜 오브 듀티였으면 한다는 요구였다. 특히나 매년 발매되는 게임인 만큼 프랜차이즈가 짊어지는 부담은 매우 컸었고, 때로는 기대에 부응하지 못해서 실패히가도 했었다(고스트, 인피닛 워페어) 하지만, 지난 10년 동안 망한 프랜차이즈들의 리스트를 복기하여본다면, 콜 오브 듀티는 매우 잘 버티는 편이라 할 수 있다.


블랙옵스 4는 여지껏 프랜차이즈가 시도해본적이 없었던 담대한 시도를 행한다. 월드 앳 워 이후로 싱글플레이와 경쟁 멀티플레이, 코옵 모드(스펙 옵스나 여러가지가 있었지만, 대체로는 좀비모드였다)라는 콜옵 시리즈 전통의 구성 요소를 탈피하여 싱글플레이를 버리고 여기에 PUBG 등으로 인기를 끌고 있는 배틀로얄 모드를 삽입한 것이었다. 물론 싱글플레이의 부재에 대해서 팬들은 부정적으로 반응할 수 밖에 없었다:싱글플레이를 클리어하는 사람들의 숫자가 아무리 적다 하더라도, 모던 워페어 이후로 콜옵 프랜차이즈가 오랫동안 새워놓은 정체성을 무너뜨리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블옵 4의 런칭 실적과 흥행은 이러한 트레이아크의 무모한 도전이 근거없는 것만은 아니었음을 증명하였다. 그리고 동시에 이제 더이상 모던워페어 식의 멀티플레이의 틀에서 탈피하는 새로운 콜옵의 세대로 이행하는 게임이기도 하다.


콜옵 시리즈의 멀티플레이는 기본 개념을 유지하면서 약간의 게임 플레이 요소들을 손을 보는 형태 였었다. 이러한 공식이 유지되지 않았던 것은 어드벤스드 워페어가 거의 처음이었을 것이다:엑소 수츠의 과격한 움직임과 점프/부스터의 개념은 콜 오브 듀티식 데스매치가 아닌 공중전과 아머드 코어를 연상케하는 부분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외의 콜옵 게임들은 다양한 변화점에도 불구하고 '콜옵'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은 게임이었다:벽타고 달리기 개념을 넣은 블옵 3의 경우, 첫인상은 파쿠르 요소를 적극적으로 도입하여 입체적인 사격과 전투를 강조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벽타고 달리기 속도가 느린 점 등의 제약조건으로 입체적인 기동보다 '기존 맵에 새로운 루트를 추가하는 방식'으로 게임을 확장시켰다. 콜옵 신작들은 매번 무언가 새로운 것들을 추가하였지만, 프랜차이즈의 경계(빠르게 치고 받는 데스매치, 퍽/부착물 시스템, 킬스트릭)에 게임을 안착시키는데 집중하였다.




하지만 이번 블옵 4는 다르다. 오히려, 어떤 의미에서는 어드벤스드 워페어의 과격한 비틀기를 넘어서 '근본적으로 게임 플레이의 공식을 뒤바꿨다'라는 평가를 내려도 될 정도로 본질적인 부분에서 변화가 발생하였다. 이러한 요소들은 크게 체력 및 회복 시스템의 변화, 점수 시스템의 변경, 스코어스트릭 및 능력/장비 시스템의 재편이라는 3가지 측면에서의 변화가 발생하였다.


첫번째는 체력 회복 시스템의 변화다:기존 콜옵 시리즈에서 체력은 시간이 지나면 자연 회복되는 구조를 지니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플레이어는 멀티플레이 중에 피해를 입으면 엄폐를 하고 숨을 고르면서 체력이 회복되기까지를 기다려야 했었다. 하지만 이번 블랙옵스 4에서는 체력을 수동으로 회복하게끔 만들었다:플레이어는 L1 버튼(PS4 기준)을 눌러서 수동으로 주사를 놓아서 체력을 회복해야 한다. 또한 한번 주사를 놓은 뒤에는 회복 주사가 재충전되기까지 시간이 걸리게 됨으로 신중하게 회복을 결정할 필요가 있다. 또한 기본 체력이 100이었던 콜옵과 달리 체력을 150으로 늘려줌으로써 TTK(Time to Kill, 사살까지 걸리는 시간)도 함께 늘어났다.


체력을 수동으로 회복하는 부분과 체력이 늘어난 부분은 콜옵 게임 플레이에 많은 변화를 준 부분이다. 우선 플레이어는 교전 후에 체력을 수동으로 회복해야하는 '리스크'를 져야만 한다. 플레이어가 주사를 놓는 순간에는 총을 쏘거나 하는 등의 행동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또한 플레이어가 체력 회복 탬포를 조절해야하기 때문에 언제 어디서 어떻게 회복할 것인지에 대한 판단을 플레이어가 내려줘야만 한다. 전작들에 비해서 플레이어가 능동적으로 위험을 감수하고 판단해야 하는 요소를 추가한 것이다. 그리고 동시에 전투를 진행할 때, 팀단위로 뭉쳐서 다니는 것이 중요해졌다:상대의 체력이 늘어났기 때문에 화력을 집중시킬 필요도 있고, 더 나아가서 자신이 피해를 입었을 경우, 체력을 회복하기 위해서 엄호해줄 팀원의 존재는 더욱 중요해졌다.


두번째는 점수 시스템의 변경이다. 다양한 변경점이 있겠지만, 가장 중요한 변화는 어시스트를 킬과 동일한 점수를 주는 것으로 변경한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변경 점은 프랜차이즈의 큰 흐름을 거스르는 부분이다. 상대를 죽여서 전장을 제압하는 강력한 장비를 부르는 킬스트릭 시스템은 모던 워페어 이후 콜 오브 듀티 프랜차이즈의 멀티플레이를 대표하는 시스템이었다. 하지만 킬스트릭 덕분에 팀 데스매치 이외의 다양한 모드들(깃발 뺏기나 지역 점령 등)에서 조차도 게임 모드의 본래 목적보다 킬스트릭을 부르는게 더 중요해지는 모순된 상황이 자주 발생하기도 하였다. 이를 위해 도입된 스코어 스트릭 개념은 다양한 게임 모드의 목적에 맞는 행동들(지역 점령, 군번줄 회수 등등)을 했을 때 부여되는 점수로 장비를 부르는 방식이 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상대를 죽였을 때 얻는 스코어가 가장 안정적이라는 측면에서 스코어 스트릭은 킬스트릭의 큰 흐름을 거스르지는 못했다.


이 때문에 콜옵 멀티플레이는 스코어 스트릭 시스템을 따르든 킬스트릭 시스템을 따르든 결국은 모든 멀티플레이 모드에서 목적을 수행하는 것보다 상대를 데미지를 입혀서 마무리를 가하는게 더 중요해지는 흐름을 보여주었다. 즉, 기존 콜옵 시리즈는 협업해서 상대를 제압하는 것이 아닌 나 개인이 얼마나 상대를 압도하고 킬스트릭을 챙기는 것이 중요한 게임이었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콜옵 멀티플레이가 오랫동안 다양한 게임 플레이 모드를 지원했음에도 불구하고 팀 데스매치 모드의 인구수가 가장 많았던 건 이 때문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블옵 4는 킬스트릭과 게임플레이의 근간을 뒤집어버린다:이제 플레이어는 상대에게 데미지를 입히고 마무리를 짓지 않아도, 팀원과 함께 동일한 스코어를 획득한다. 과거에는 어시스트 판정으로 1/2 차감되어서 스코어가 들어오던 것이 이제는 킬로 인정된다. 물론 플레이어가 복귀 메달(3번 연속 죽은 뒤, 적을 죽여서 마무리지었을 때 주어지는 메달) 등을 통해서 보았을 때, 완전히 상대를 마무리 지은 경우와 이렇게 어시스트로 킬이 인정되는 경우를 게임은 구분하기는 한다. 하지만 모던 워페어 1편 이후 근 10년 이상 '킬=상대를 마무리 지었을 때 인정되는 것'이라는 시리즈의 핵심 공식을 블옵 4는 뒤집은 것이다. 또한 게임 모드와 상황에 따라서 점수를 매기는 방식을 더 세부적으로 잘게 쪼개고, 모드의 목표에 맞는 게임 플레이를 유도하는 등 블옵 4는 이전작에 비해서 더 잘게 게임 플레이 점수 시스템을 쪼개고 죽이는 것 이외에(물론 죽이는 것 역시 매우 중요하지만) 플레이어가 목적에 맞는 행위를 하게끔 유도한다.


마지막으로 스코어스트릭 및 능력/장비 시스템의 개편이다. 블옵 4는 블옵 3의 스페셜리스트 개념을 계승 발전시킨다:스페셜리스트들은 시간에 따라 사용할 수 있는 자신만의 장비들이 있으며, 킬스트릭과 달리 일정한 시간이 흘렀을 때 무조건 사용을 보장해주는 기믹을 지니고 있었다. 즉, 블옵 3에서 스페셜리스트의 존재는 '킬스트릭 외에도 전장을 지배할 수 있는 강력한 무기'를 플레이어에게 보장해줌으로써 킬스트릭에 매몰되어 게임이 일방향적으로 흐르지 않게하는 안전장치이자 플레이어에게 게임을 지배할 수 있는 또다른 수단을 준 것이다.  하지만 블옵 3는 스페셜리스트의 능력의 선을 분명하게 그어두었다:스페셜리스트 능력은  프로펫의 템페스트나 리퍼의 사이드 같이 플레이어가 직접 조작하는 무기의 형태로 구현됨으로써 킬스트릭의 하위호환이자 플레이어가 능숙하게 조작하였을 때 최고의 효과를 발휘할 수 있게끔 설계되었다.


하지만 블옵 4의 스페셜리스트 능력은 블옵 3와 유사하긴 하지만, 완전히 다른 양태를 보여준다:우선, 장비와 능력 중 하나만 선택할 수 있었던 블옵 3와 달리 블옵 4는 기본적으로 고유 무기와 고유 장비 양쪽을 모두 사용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블옵 4의 스페셜리스트 에이젝스의 경우 9연발 섬광탄을 고유 장비로, 방탄 방패와 연발 권총을 고유 무기로 사용한다. 고유 장비의 경우, 고유 무기에 비해서 더 빠르게 재충전되고 자주 사용할 수 있으며 무엇보다도 이전작들의 수류탄이나 전술 장비를 넘어서는 무지막지한 화력을 보여준다. 하지만 고유 장비보다 한술 더 뜨는 것은 고유 무기일 것이다:에이젝스의 방탄 방패와 연발 권총은 모던 워페어 3에서 나온 저거너트 리콘과 비교될 정도로 강력한 탱킹 능력을 보여준다. 하지만 10여 킬 이상의 킬스트릭을 쌓아야 얻을 수 있는 저거너트 리콘과 달리 에이젝스의 방탄 방패는 시간만 지나면 자연스럽게 얻을 수 있다. 블옵 4의 고유 무기는 킬스트릭에 필적할 정도로 강력하며, 심지어 몇몇 고유 무기(에이젝스의 방탄 방패나 노마드의 군견 소환 등등)는 이전작들의 킬스트릭에서 편입되기도 하였다. 


또한 장비 시스템도 일신되었다. 블옵 4에서는 1회 한정으로 탄환에 의한 피해를 경감시키는 방탄 갑옷이나, 고유 장비를 더 빠르게 사용할 수 있는 장비나 체력회복 주사를 더 빠른 텀으로 사용할 수 있는 스팀팩 장비 등등 이전작에서 볼 수 없는 독특한 장비들도 등장하였다. 또한 공용 부착물을 무기 레벨에 따라 해금해서 싸우던 전작들과 달리, 이제 무기는 각자 고유의 부착물 테크트리를 지니며 더 나아가서 무기의 운영 방식을 다르게 설정할 수 있는 오퍼레이터 모드를 설정할 수 있게 되었다. 이러한 블옵 4의 장비 시스템의 변화는 기존 시리즈의 퍽과 장비 시스템의 원칙을 깨부수는 것이다:기존 콜옵 멀티플레이의 퍽과 장비 시스템의 대원칙은 플레이어가 가하는 데미지의 총량이나 받아내는 데미지의 총량 등에 영향을 크게 주지 않았다. 하지만 플레이어는 제한적이지만 추가 체력을 가질 수도 있고, 무기에 따라서는 가슴 위로 데미지를 더 줄 수 있는 추가 대구경 부착물을 부착할 수 있는 등 기존 장비 시스템에서는 미쳐 상상하지 못한 요소들이 추가가 된 것이다.


종합하여 본다면, 블옵 4의 변화점은 전반적으로 이전작들의 개인 플레이보다도 뭉쳐서 함께 협력하는 팀플레이와 게임 모드에 맞게 행동하는 플레이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물론 게임의 핵심적인 기조(빠른 페이스의 전투, 킬스트릭, 퍽과 장비의 커스터마이즈 등)는 여전하나, 플레이어가 팀을 의식하고 뭉쳐서 다니면서 서로 시너지를 내게끔 하며, 맵 리딩을 더 철저하게 하는 등의 협업이 중요한 요소로 부각된 것이다. 이전의 콜옵들의 변화가 어떻게든 콜옵의 게임 플레이 내에서 최대한 뒤틀어보는 방향이었다면, 블옵 4는 콜옵 프랜차이즈를 벗어나서 여타 다른 무언가를 받아들인 게임이다:실제 블옵4가 개발될 당시, 오버워치 등의 협동 게임을 너무 의식하고 만들어진 나머지 콜옵 스럽지 않아서 내부적으로 논란이 있었다는 루머가 있었다. 이 루머가 사실이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실제 만들어진 블옵4는 콜옵을 받아들이기 보다는 콜옵의 유전자에 다른 무언가를 뒤섞은 혼종에 가깝다고 해야할 것이다.


하지만 블옵 4의 이러한 변화는 콜옵을 계승하는 동시에, 오히려 상대를 죽이는 자가 모든 것을 독식하는 콜옵 멀티플레이의 한계를 최대한 비껴나가보고자 하는 시도였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기존 콜옵에서는 다양한 모드가 추가되었어도 결국은 팀 데스매치나 확인 사살 모드로 귀결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블옵 4에서는 강탈 모드(리스폰 없이 현금을 확보하게 상대를 제압하는 모드)나 지역 장악(티켓을 소비하며 빠르게 공수 교대를 하면서 지역을 장악하는 모드) 등의 팀 협동을 강조하는 모드들을 대거 추가하였다. 오히려 블옵 4는 콜옵이 의례 그랬듯이 '팀 데스매치'로 회귀하는 것을 피하고, 최대한 다양한 모드들이 플레이되게끔 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물론 이러한 시도의 결과가 과연 성공적일지 여부는 시간만이 알려주겠지만 말이다.


결론적으로 블랙옵스 4는 콜 오브 듀티 프랜차이즈가 새로운 시대로 들어가는 시작이라 할 수 있는 게임이다. 물론, 이 게임에 들어간 요소들은 전혀 새롭지 않다:이미 오버워치나 협동이 중요한 경쟁 멀티 게임들, 심지어는 카운터 스트라이크(강탈 모드)나 PUBG 같은 게임의 요소들을 적극적으로 차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게임은 뭔가 새로운 비전을 제공하는 게임은 아니다. 하지만 콜 오브 듀티라는 정체성을 버리지 않으면서도, 어떻게든 새로운 것들을 받아들여서 자신의 것으로 승화시키고 있는 게임이기도 하다. 블랙옵스 4의 모험은 콜 오브 듀티 프랜차이즈가 아직도 유지될 수 있는지에 대한 나름대로의 해답이라 할 수 있다. 물론 모던 워페어 1편의 혁신이나 충격을 없었지만, 여기에는 트레이아크의 노련함과 콜 오브 듀티가 무엇인지에 대한 진중한 고민, 그리고 앞으로 어디로 나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방향성이 함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