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이야기



일본 애니메이션을 보면서 자라난 세대들에게는 향수를 자극하는 공통적인 이야기가 있다:평범한 삶을 살던 소년이 특이한 소녀를 만나고, 사건에 휘말린다. 사건에 휘말리면서 소년은 소녀와 가까워지고 새로운 동료들과 만나고 웃고 울고 떠들며, 종국에는 세계를 구하고 소녀와 함께 행복하게 살게 된다. 이제는 이런식의 이야기를 찾아보기 힘들다. 세상이 바뀐 것도 있지만, 한때 이것들을 즐겼던 사람들이 어느새 훌쩍 커버린 이유도 클 것이다. 그래도 이런 이야기들은 지금이라도 보면 어딘가 향수를 자극하고 가슴을 설래게 만드는 묘한 매력들이 있다. 그렇기에 그러한 설레임 때문에 세월이 흘러 과거의 작품들을 리메이크 하려는 움직임들이 있는 걸지도 모른다.


제노블레이드 2는 모노리스 소프트가 만든 닌텐도 RPG 프랜차이즈의 최신작이다. 스퀘어 에닉스의 제노기어, 반다이 남코의 제노사가를 만들던 제작진들이 독립하여 만든 모노리스 소프트는 제노블레이드 프랜차이즈를 통해서 거대한 스케일의 세계와 무지막지한 분량을 지닌 JRPG 프랜차이즈를 선보였다. 제노블레이드 1편은 스카이림과 비교되며 JRPG가 죽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하기도 하였고, 제노블레이드 크로스는 돌을 이용해서 필드를 자유자재로 날아다니는 기믹을 선보이며 사람들을 매료시켰다. 제노블레이드 2는 닌텐도 스위치 런칭과 함께 공개된 강력한 독점 RPG였고, 전작을 경험한 팬들에게는 기대할 수 밖에 없는 초 기대작이었다. 물론, 실제 나온 제노블레이드 2는 충분히 재밌고 오래 즐길만한 작품이었다. 하지만 제노블레이드 2의 문제는 게임의 재미가 아닌, 게임이 구시대적이고 미완성되었다는 점이었다. 그리고 이것이 제노블레이드 2를 뭔가 재밌긴 하지만 나사가 잔뜩 빠졌다는 느낌을 주는 게임으로 만들어버렸다.


제노블레이드 2는 구세대적인 JRPG의 전개를 따른다. 게임은 분기나 다양한 상호작용을 강조하기 보다는 이야기의 진행에 따라서 필드와 컨텐츠들이 순차적으로 개방된다. 기본적인 얼개는 구세대적이지만, 제노블레이드 2는 프랜차이즈 특유의 변형된 MMORPG 필드 구조을 계승한다:제노블레이드 2의 필드는 광활하게 펼쳐져 있는 평야 위에 다양한 레벨을 가진 몹들이 로밍하는 단순한 형태다. 이는 와우나 여타 MMORPG에서 보이는 '사냥터'의 개념을 싱글플레이 RPG로 옮긴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제노블레이드 프랜차이즈는 단순히 MMORPG 사냥터 필드를 구현하는 것을 넘어서 규모를 통해 컨텐츠를 완성시킨다. 게임은 분명 일직선으로만 진행되지만, 필드를 거대하게 늘려놓고 곳곳에 옆길로 셀 수 수 있는 서브 컨텐츠들을 배치해놓은 것이다.


그리고 제노블레이드 시리즈의 매력은 단지 필드를 서브 컨텐츠가 산재해있는 공간으로만 묘사하지 않았다는 점이다:이미 젤다의 전설 야생의 숨결에도 도입되었던 것처럼, 제노블레이드 시리즈에는 단순하지만 시원스럽고 거대하게 펼쳐져있는 풍광으로 플레이어의 감성을 자극한다. 제노블레이드 2의 음악 사용은 크로스와 1편을 연상케 하는데, 몰아칠 때는 몰아치면서 때로는 사람의 감상을 자극하는 음악을 쓰는 등 전반적으로 음악의 완급 조절은 매우 훌륭한 편이다. 





제노블레이드 2의 핵심 컨텐츠는 전투다:기존 제노블레이드 프랜차이즈와 유사하게, 게임은 자동 평타에 아츠를 섞고, 동료와 아츠를 조합하여 파생되는 상태이상들을 쌓아나가면서 적을 착실하게 공략해나가는 구조다. 또한 게임은 탱킹과 딜링, 힐링의 역할을 구분함으로써 간단하게나마 체력과 어그로 관리 개념을 넣어두었다. 겉보기엔 지루해보이지만 전작들의 전투들은 실제 플레이할 시에는 상당히 손이 많이 가고 머리를 굴려야했었다.(디버프 리필이나 자세 무너뜨리기 등) 제노블레이드 2도 기본적인 골격은 전작에서 갖고 왔기 때문에 전투중 손이 많이 가는 게임이다.


하지만, 제노블레이드 2는 기존 프랜차이즈와 크게 다른 점이 있다:전작들이 동료와 동료를 통해 구현하는 아츠가 중심이라면, 본작은 동료의 아츠와 더불어서 장비하는 케릭터 겸 무기인 '블레이드'의 속성을 추가하였다. 그렇기 때문에 게임 내에서의 전투의 흐름은 동료인 드라이버와 무기인 블레이드로 서로 다른 흐름으로 구성되었다. 우선은 동료가 발동하는 드라이버 아츠다:드라이버 아츠는 전작에도 있었던 개념으로 일종의 콤보 메즈 시스템이다. 드라이버 아츠는 평타를 통해서 충전되며 평타를 타이밍 좋게 캔슬할 때는 더 빨리 드라이버 아츠 게이지를 얻는다. 드라이버 아츠들은 하나의 상태이상 속성만 부여할 수 있으며, 플레이어 케릭터 혼자서 드라이버 아츠로 상태이상을 발동시키는 것은 어렵기 때문에 드라이버 아츠 조합을 고려하여 동료 및 블레이드의 조합을 고려해야 한다. 


물론 플레이어가 전작들처럼 동료를 직접 조작하는 것은 아니지만, AI 설정이 드라이버 아츠를 우선적으로 추격하게끔 구성되어 있어서 플레이어가 1차적으로 드라이버 콤보를 시동하고 동료가 팔로우 업 하게끔 구성하면 게임 자체는 무리없이 운영이 가능하다. 드라이브 아츠 자체로도 스메시까지 이어줄 수 있다면 강력한 데미지를 뽑아내고, 무엇보다 쓰러짐 단계부터는 적 하나를 본격적으로 메즈하기 때문에 상당히 유용하다. 그러나 드라이버 콤보는 본작부터 새로 추가된 블레이드 콤보의 존재로 인해서 더 흥미로운 시스템으로 변화하였다.


블레이드 콤보는 드라이버 아츠를 통해서 쌓인 게이지를 각 레벨별 블레이드 아츠로 이어줄 때 발동되게 된다. 블레이드 아츠가 발동되면 그 순간부터 상대에게 1단계 속성상태 이상 게이지가 뜨면서 도트 데미지가 들어가기 시작한다. 이 때, 이 게이지가 종료되기 전 콤보 루트에 따른 다음 레벨의 블레이드 아츠를 이어주면 2단계 상태 이상 상태로 넘어간다. 이런식으로 3단계까지 블레이드 아츠를 이어주면 강력한 데미지와 함께 적이 플레이어를 상대로 디버프나 강력한 일격을 걸지 못하게끔 하는 봉인을 건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블레이드 콤보의 데미지는 막강하며, 콤보 피니쉬에 따라서 주변 잡몹들까지도 한꺼번에 처리할 수 있는 강력한 성능으로 플레이 내내 자주 사용하게 될 것이다. 또한 블레이드 콤보를 피니쉬까지 이어줄 경우, 후술할 체인어택을 연장시키기 위한 속성 오브를 부여하기 때문에 더 막대한 데미지를 입히기 위한 초석을 다지는 용도도 갖고 있다.


그러나 블레이드 콤보는 강력하며 쓸모가 많지만, 다음 단계의 상태이상으로 넘어가기 위해서 들어가는 블레이드 아츠의 요구 레벨이 점진적으로 늘어나는 구조이기 때문에 짧은 시간동안 다음 콤보로 이어주는 것은 힘든 편이다. 대신에 게임은 속성 상태 이상의 지속시간을 증가시키는 퓨전 콤보를 도입한다. 퓨전 콤보는 블레이드 콤보를 시동한 후, 드라이버 콤보로 메즈를 발동시키게 되면 자동적으로 부여받는 버프(파티 게이지 업, 지속시간 증가, 공격력/방어력 증가 등)를 의미한다. 이 퓨전 콤보의 존재로 인해서 블레이드 콤보 피니쉬까지 쉽게 이어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장기 전투에 유용한 버프 등을 받을 수 있어서 플레이어는 블레이드 콤보 중 드라이브 콤보를 적극적으로 이용해야 한다.


그리고 블레이드 콤보는 마지막으로 체인어택으로 이어지게 된다:전작부터 존재하였던 체인어택은 전투 중 동료와의 협동을 통해서 쌓이는 파티 게이지를 끝까지 올렸을 때 발동되는 최종 콤비네이션이다. 체인어택이 지속되는 중에는 중에는 시간이 멈춘 상태가 되며, 플레이어는 블레이드 아츠를 계속해서 이어주기 때문에 대상에게 막대한 데미지를 가하는 것이 가능하다. 체인어택은 그 자체로도 정지된 시간 동안 적에게 막대한 데미지를 퍼붓기 때문에 매력적인 시스템이긴 하지만, 블레이드 콤보 피니쉬로 쌓은 속성 오브를 깨뜨릴 때마다 체인어택 회수가 늘어나기 때문에 데미지는 더더욱 뻥튀기 된다. 또한 8개 속성의 오브를 모두 다 모았을 때 발동하는 체인어택 풀 버스트는 그야말로 그 어떠한 100+ 레벨인 히든 보스에게조차 무지막지한 데미지를 박아넣기 때문에 그야말로 일격 필살의 느낌을 살리고 있다.


종합적으로 본다면 제노블레이드 2의 전투 시스템은 그야말로 전작들의 시스템을 진일보 시킨 물건이라 할 수 있다. 모든 콤보 시스템들(드라이버 콤보 - 블레이드 콤보 - 퓨전 콤보 - 체인 어택)은 유기적으로 결합되어 있으며, 서로 시스템적으로 보조하는 양태를 띄고 있다. 이 게임을 잘하기 위해서는 모든 시스템을 꿰뚫고 있어야 한다. 하지만 하나 하나 시스템만 뜯어놓고 본다면 어렵지 않고(대부분 버튼을 누르면 발동하는 형태이기 때문에), 하나의 시스템에서 다른 시스템으로 주고 받는 개념만 익힌다면 누구나 쉽게 다룰 수 있다. 하지만 한번 익혀놓으면 제노블레이드 2의 전투 시스템은 플레이어가 전략적/전술적으로 선택할 수 있는 선택지가 방대한 편이다:블레이드 콤보는 블레이드 속성에 따라 좌우되기 때문에 어떤 블레이드를 장비하고 어떤 속성으로 콤보를 이어줄 것인지, 그리고 어떤 아츠를 쓸 것인지에 대한 큰 얼개를 플레이어가 결정해야 한다. 또한 블레이드 아츠들도 단순한 필살기가 아닌 고유 특성들이 있고, 장비품이나 세팅에 따라서 성능이 천차만별로 달라지기 때문에 전투 뿐만 아니라 전투를 준비하고 계획하는 단계도 매우 재밌다.




제노블레이드 2의 컨텐츠 근간을 이루는 또다른 것은 바로 블레이드다:블레이드는 랜덤으로 스킬셋과 모습이 결정되어 있는 커먼 등급과 고유한 음성/스킬셋을 갖고 있는 레어 등급로 구성되어 있다. 커먼 등급의 블레이드는 몰개성하지만, 레어 등급의 블레이드는 개성과 스토리, 성능을 두루 갖추고 있기 때문에 모든 플레이어들이 원하는 블레이드라 할 수 있다. 몇몇 블레이드의 경우에는 서브 퀘스트나 스토리의 진행에 따라서 얻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의 블레이드들(커먼이든 레어든)은 코어 크리스탈 동조라는 가챠를 통해서 구하게 될 것이다.


레어 블레이드는 당연하게도 더 높은 등급의 코어 크리스탈(레어나 레전더리 같은)를 동조시킬 때 확률적으로 더 높게 나오기 때문에, 플레이어는 이 높은 등급의 크리스탈을 얻기 위해서 눈에 불을 켜고 돌아다닐 것이다. 대부분은 필드 상에 돌아다니는 유니크 몬스터들을 토벌할 때 나올 가능성이 높으며, 이들은 크리스탈과 함께 쓸만한 장비를 함께 드롭하기 때문에 제 1 사냥 대상이라 할 수 있다. 이렇게 크리스탈 파밍과 동조를 통해 레어 블레이드를 얻으면, 더 좋은 장비(코어 칩과 보조 칩)를 블레이드에게 맞춰주어야 한다. 특히 보조 칩의 경우, 필드 상에 흩뿌려져 있는 소재들을 모아서 마을 상점에서 정련하는 것으로 보조 칩을 활성화 시킬 수 있기 때문에 소재를 모으는 것도 게을리 해서는 안된다. 물론, 채집 같은 경우 단순히 포인트에서 버튼을 눌러서 활성화시키는 것만으로 구할 수 있게 때문에 필드를 돌아다니는 것만으로도 빠르고 쉽게 채집할 수 있다. 


또한 블레이드는 장비만으로 강해지는 것이 아니다:게임은 블레이드와 드라이버 사이의 인연도를 높여야만 블레이드가 갖고 있는 잠재능력을 십분 끌어낼 수 있다. 보통은 전투를 통해서 이 인연 레벨을 올릴 수 있지만, 플레이어는 파우치에 상점에서 구매할 수 있는 기호품을 장착함으로써 버프와 함께 인연도가 상승하는 버프를 부여할 수 도 있다. 그리고 이런식으로 게임을 진행을 하다보면 자연스럽게 쓰지 않는 블레이드들(특히 커먼 블레이드)이 생기기 마련이다. 게임은 이러한 블레이드들을 활용하기 위해 용병단이란 시스템을 마련하였다. 플레이어는 게임 내 세계에 자신이 가진 블레이드를 파견하여 여러가지 임무를 수행하고, 일정량의 돈과 경험치를 받게끔 받을 수 있다. 무엇보다도 전투중 쓰지 않는 블레이드의 인연도도 자연스럽게 올릴 수 있기 때문에 게임 내내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것이 좋다.


전반적으로 제노블레이드 2는 전작들과 같이 복잡한 인물의 관계도나 자원/컨텐츠 소비구조가 있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기본적이고도 간단한 것들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반복적이긴 하지만 게임을 계속해서 하게 만드는 매력이 있다. 무엇보다 전투가 매력적이고, 게임의 전반적인 흐름이 일자형이라기 보다는 일종의 도돌이 표 형태로 반복해서 돌아다니는 형태를 띄고 있다.





하지만 제노블레이드 2는 근본적인 결함이 있는 작품이다. 먼저 모바일 소셜 게임에서 영향을 강하게 받은 구조들이 게임 전체의 흐름을 갉아먹고 있다는 점이다. 분명 제노블레이드 2의 기초는 탄탄한 게임이다. 그러나 그러한 기초를 돌리기 위한 전제로 레어블레이드를 뽑기 위한 가챠 시스템을 도입한 것은 치명적인 실수 였다. 플레이어가 게임을 진행하는 강력한 동력 중 하나를 순전한 확률에 의존하여 진행하게끔 만든 것은 치명적인 판단미스였다. 플레이어도 처음 몇번 코어 크리스탈을 동조시킬 때는 나름 기대를 할 수 있다. 그러나 몇몇 레어블레이드들은 정말로, 진짜 정말이지 혀가 내둘릴만큼 나오지 않는다. 본 리뷰를 쓰는 필자는 140시간 동안 플레이를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동조 씬에서 코스모스의 그림자를 단 한번도 본적이 없다. 이쯤이면 이게 실제 나오는건지 싶을 정도로 의구심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가챠보다도 더 문제가 되는 것은 가챠로 인해 영향을 받는 게임의 구조다:기본적으로 게임 컨텐츠의 근간을 이루는 블레이드가 확률에 기반하고 있다보니, 전투를 진행할 때 파티의 구성이 확률에 따라서 달라진다는 문제가 있다. 물론, 랜덤으로 생성되는 커먼 블레이드도 쓰기에 따라서는 쓸만한 것들이 있고, 일정 수준까지는 레어블레이드가 잘 뽑히는 편이긴 하다. 문제는 '그 블레이드가 어느 드라이버와 동조되느냐'다:코어 크리스탈은 설정상 하나의 드라이버하고만 동조될 수 있기 때문에, 만약 뽑기운이 꼬여서 힐러 블레이드가 탱커 드라이버에게 가거나 탱커 블레이드가 딜러 드라이버에게 가는 불상사가 발생하면 이를 물릴 수가 없다. 제작진들도 이것이 문제라고 판단했는지 오버드라이브라는 소유권 이전 아이템을 만들어주긴 하였지만, 웃기게도 이 아이템은 한 회차당 모을 수 있는 한계치가 있어서 자유로운 소유권 이전도 불가능하다. 결국, 플레이어는 레어블레이드의 분포를 보고 코어 크리스탈을 어느 드라이버에게 몰아줄 것인가를 결정해야 하는데 이것은 매우 짜증나고 불편한 작업이라 할 수 있다.


더 심각한 것은 필드스킬의 배분이다:제노블레이드 2에는 블레이드마다 필드상의 장애물을 제거하거나 특정 이벤트를 발동시키기 위한 필드 스킬이 존재한다. 문제는 이러한 필드 스킬로 뚫어야 하는 장애물들이 예측 불가능하게 놓여있다는 점과 해당 필드스킬을 발동하기 위한 조건을 플레이어가 이미 충족하고 있는지 여부를 파악하기 힘든 점, 필드스킬 발동을 위해서 블레이드를 장착해야하니 불필요한 블레이드 교체가 자주 일어나는 점, 마지막으로 레어블레이드만 갖고 있는 필드스킬들이 있어 레어블레이드가 없을 때는 아예 해당 장애물을 돌파못하는 일이 발생한다는 점이다. 특히 몇몇 구간에서는 필드 스킬 충족 조건을 약간 달성 못한 덕분에 플레이어가 장애물 앞에서 코어 크리스탈 가챠 돌리며 제발 원하는 블레이드 하나만 나오게 해주세요 라고 기도하는 웃기지도 않는 상황이 연출되기도 한다.


위의 경우는 제노블레이드 2에서 볼 수 있는 큼직한 문제의 덩어리다. 전반적으로 제노블레이드 2는 마지막 마감 작업에서 크게 실패한 작품이라 할 수 있다:용병단은 레벨 업하는데 쓸데없이 어마무지한 분량의 용병단 포인트를 요구하며(본 리뷰어의 경우, 140시간이 지났는데도 아직까지도 레벨 4 끄트머리다), 하나 업그레이드를 위한 타이거 타이거는 쓸데없이 어렵고, 그라 령이나 스펠비아에서 볼 수 있었던 간조/만조 기믹은 어째 다른 아르스에는 구현되지 않았으며, 심지어 미학적 완성도와 별개로 전반적인 퍼포먼스는 지나칠 정도로 들쭉날쭉하다. 물론 2회차 요소 등을 추가하는 패치를 통해서 현재는 많은 부분 보완되었기는 하지만, 제노블레이드 2는 전반적으로 일본식 RPG의 좋았던 부분과 함께 엉망이었던 부분을 한꺼번에 갖고 있는 게임이 되었다. 


또다른 문제는 제노블레이드 2가 갖고 있는 지나친 복고 코드다. 제노블레이드 1편이 인기를 끌었던 것은 JRPG의 이야기를 그대로 따르는 척하면서 그 속에 강력한 뒤틈을 넣어두었다는 점이었다:제노블레이드 1편은 처음에는 나와 너, 적과 아군의 대결과 복수의 구도로 이야기를 구성하였지만, 정작 이야기의 마지막에는 그 대결을 뛰어넘어 공존으로 이어지는, 과거 JRPG식 용사물의 이야기에 독특한 변주를 주어 매력적인 이야기를 만들었다. 그러나 제노블레이드 2는 20~30년 전의 좋았던 과거에 얽메여서 이야기를 더이상 발전시키지 못한다. 특히 이는 호무라와 히카리의 관계에서 뚜렷하게 드러난다:세계를 구한 영웅은 스스로의 힘에 두려움을 느껴서 자신의 인격을 두개로 쪼게고 봉인하였다. 설정상으로는 호무라와 히카리의 관계는 PTSD와 힘에 대한 책임감으로 이루어진 무거운 주제의식을 만들어낼 수 있었다. 그러나 게임은 일본 대중 문화 코드에 얽메여서 이 둘의 관계를 데레 모드 / 츤 모드 정도의 수준으로 떨어뜨린다.


분명 제노블레이드 2의 이야기는 소년(=렉스)이 소녀(=호무라/히카리)를 만나서 함께하는 전형적인 과거 일본 대중문화 서사에 기반하고 있다. 하지만 소녀의 성장이 소년으로부터만 비롯된다는 것과 개성적인 주변 인물들은 이들 관계의 성장에 큰 영향을 못 미치는 점은 스토리를 아쉽게 만들어버리고 말았다. 게임은 소년이 소녀를 만나고 웃고 우는 모든 이야기의 과정을 주로 소년의 눈높이에서 다루기 때문에, 더 깊어질 수도 있는 소재들(전쟁과 고통, 세상을 구하는 것 등등)이 희석되어버리는 느낌이다. 과거 일본 대중 문화에서 이런 코드들을 능숙하게 다뤘던 물건들이 있었다는 점(최근이라면 반지의 기사라던가)을 생각하면 더더욱 아쉽다. 제노블레이드 2의 대부분 순간들은 추억에 잠기게끔 만들지만, 그 추억을 더 깊이있게 승화시키지 못한다. 그렇기 때문에 게임은 재밌는 순간에도 때때로 과거의 망령에 사로잡혔다는 인상을 지우기 힘들다.


스토리가 왕도를 따르면서도 아쉬운 수준이 된 계기에는 제작진들이 '자기가 하고 싶은 것'에 대해서 폭주한 부분이 크리라 판단된다. 몇몇 개그 씬들은 정말이지 지금 관점에서 웃을 사람이 몇 있겠나 싶을정도로 과거의 개그 코드를 들고 오며, 스토리 상 몇몇 이벤트들(스포일러라서 자세하게 이야기하진 않겠지만, 마징가 Z 같은 슈퍼 로봇을 인용하는 부분이 있기도 하다)은 이마 짚고 한숨 쉴 수 밖에 없을 정도로 한심하다. 이러한 코드들이 한때 자신이 즐겼던 것을 그대로 옮기면 그대로 재밌을거라는 착각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을 그대로 보여지기 때문에 더더욱이나 짜증날 뿐이다. 


결론적으로 제노블레이드 2는 크로스나 1편에 비해서 대약진한 부분도 있지만, 몇몇 부분은 오히려 눈에 띄게 후퇴하기도 하였다. 그렇다고 이 게임이 재미가 없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추억에 잠기게끔 만들고, 때로는 감동이 느껴지는 부분들도 있다. 그러나 슬프게도 제노블레이드 2가 우리에게 더 깊이 던져주는 교훈은 우리가 20~30년 전의 컨텐츠를 보고 자라던 그 나이에서 더 성장했다는 점, 더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점을 상기시킨다는 점이다. 분명 재밌는 게임임에도 불구하고 아쉬움이 더 밀려오는 이유는 이 때문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