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이야기


자본은 미래보다 현재가 가치가 있으며, 이자와 이자율, 그리고 시간의 관계를 통해서 표현된다. 마르크스는 일찍이 자본이 어째서 자본을 만들어내는가 라는 전제에 착안하여 자본론을 썼었고, 현대 자본주의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상식을 넘어선 기본 관념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마르크스가 노동이라는 개념에 초점을 맞추어 모든 사람이 생산수단을 공유하는 공산사회를 주창하였다면, 본인은 여기서 '시간'이라는 개념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보아야 한다. 어째서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부는 축적되는가? 노동이라는 개념 역시도 시간을 들어감으로써 구현된다. 모든 돈과 가치는 노동력과 시간으로 환원될 수 있다. 그렇기에 시간은 자본주의가 존재할 수 있는 가장 근원적인 전제이며, 우리 삶을 옭아메는 주요한 전제이다. 


게임 리뷰에 앞서서 이런 헛소리를 늘어놓은 것은 모바일 게임이라는 게임 분야의 핵심은 바로 '시간'이기 때문이다:사람들은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모바일 게임을 한다. 이전까지 우리가 직접 즐겼던 게임의 장르적 전통에 비교해 보았을 때, 사람들은 적은 시간을 들여서 모바일 게임을 플레이할 수 있으며, 별도의 조작과 기술을 요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모바일 게임의 직선적이고도 단순한 컨텐츠 소비 구조는 짧은 시간 틈틈이 할 수 있다는 강점을 갖게 하면서도, 플레이 자체가 단조로워지고 보상을 쉽게 얻을 수 있다는 문제가 있다. 이러한 문제는 모바일 게임들은 시간이라는 요소를 통해 극복한다:플레이 할 때의 자원들은 시간에 따라 회복한다. 시간을 줄이고 빠르게 자원과 시설, 강력한 케릭터 등의 재원을 확보하기 위해서 게임은 돈을 쓰게하는 과금 구조를 갖고 있는데 이러한 시간을 통제하는 과금구조야말로 모바일 게임들에게 있어서 핵심이자 꽃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소녀전선은 중국에서 만들어진 콜렉션 류의 모바일 게임이다. 함대 콜렉션으로 알려진 콜렉팅 게임이 매니아층 사이에서 엄청난 인기를 끈 이후로, 비슷한 게임들이 일본 한국 중국을 가리지 않고 나왔고 소녀전선도 그 중 하나다. 하지만 소녀전선이 흥미로운 점은 한국 유저들 사이에서 높은 지지를 받고 있다는 점이다. 유저를 착취하는 과금 구조에 식상한 게이머들은 소녀전선의 신선함에 만족하고 있으며, 소위 '착한' 게임으로 불려지며 한국 내에서 나름의 인기몰이를 하고 있는 중이다. 모바일 게임을 많이 즐기지 않는 필자가 보았을 때도, 소녀전선은 충분히 즐길만한 작품이다. 소녀전선에는 학습과 보상, 그리고 플레이어가 관리할 수 있는 여지들이 충분히 있기 때문이다.


소녀전선의 핵심은 가챠나 콜렉션, 전투가 아닌 자원의 관리다. 게임 내에서 과금을 하는 일부 부분을 제외하고 전투, 인형제조, 장비제조 등의 주요한 활동들은 모두 인게임 내의 활동(대부분 군수지원)들을 통해 모은 자원으로 할 수 있다. 플레이어는 군수지원을 통해서 어떤 자원을 모으고, 어떤 티켓을 모을지를 스스로 결정할 수 있다. 군수지원 자체가 시간이 들어가고 자신이 부족하고 필요한 자원이 각기 다른 만큼 플레이어는 효율적인 군수지원(활동하는 시간에는 텀이 짧은 군수지원을, 자는 시간에는 텀이 긴 군수지원을)을 돌려야 하는데, 이것이 자신이 제조하고 싶은 전술인형 군과 장비 군, 그리고 전투에 들어가는 자원 등을 총체적으로 고려하고 생각하여야 한다. 흥미로운 점은 소녀전선에서 전술인형 제조는 플레이어가 제조식을 조정함으로써 확률을 조정할 수 있다는 점이다:자원 투입을 임의로 조절함으로써 자신이 필요없는 전술인형들을 배제할 수 있다. 더 나아가서 게임은 전술인형 등장 확률을 전적으로 공개함으로써, 플레이어에게 '어떤 제조식이 자신에게 알맞은지' 라는 부분을 어필한다.


이런 점에서 소녀전선은 게임이 '예측 가능'하다. 기존의 모바일 게임의 가챠는 무엇이 나올지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희귀한 케릭터가 나오면 좋은 것, 그 외에는 모두 쓰레기'라는 공식에 천착하였기에 플레이어로 하여금 진짜 밑빠진 독에 물붓기를 강요하는 부분이 있었다. 물론 최근 모바일 게임들이 그러한 한계를 넘어서기 위해서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소녀전선의 가장 큰 강점과 차별성은 바로 투명성이라 할 수 있다. 플레이어가 자원을 모으고 소비하는 것에 결정권을 쥐고 있고, 자원의 투자와 회수(인형제조)가 공개되어 있기 때문에 플레이어는 게임에서 장기적인 전략을 세우고 활동할 수 있다. 자원을 투자하여 생산수단(전술인형 등)을 확보하고 더 많은 자원과 좋은 생산수단을 소유하는 구조로 되어있다는 점에서, 소녀전선은 정석적인 자본주의를 연상시키는 부분이 많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게임이 투명하다고 해서, 소녀전선이 본질적으로 모바일 게임이 아니라는 것은 아니다:게임은 효율적으로 운영하고자 하면 적은 돈을 쓸 수 있지만, 돈을 쓰려고 마음먹는다면 돈을 무저갱에 쏟아붓는 체험을 할 수 도 있다. 기본적인 과금(제대 숫자와 숙소 숫자와 같은 기본 인프라)을 제외하면 과금의 효율(자원이나 티켓 쪽)이 영 좋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소녀전선은 영악하게도 게임에 후술할 각종 이벤트들을 배치함으로써 '예측 불가능하게 자원이 많이 들어가는' 상황을 만들어 놓는다. 큐브나 저체온증, 딥다이브 같은 이벤트들이 패키지와 함께 출시되는 것도 플레이어들의 루틴한 운영을 넘어 출혈을 강제하는 게임 내 수익 모델이자 경영 외적인 외부 효과라 할 수 있다.


소녀전선의 전투는 컨트롤보다도 인형의 조합이 더 중요하다. 기본적으로 전투의 80~90%는 철혈 몹들을 얼마나 빠르게 지우느냐/우리편이 얼마나 더 피해를 견뎌낼 수 있느냐/탄약과 식량은 얼마나 있느냐 라는 데미지와 자원 컨트롤의 싸움이다. 아무 조합으로나 클리어 가능한 초반과 달리 중후반으로 갈수록 균형잡힌 조합에서 오는 안정성과 효율을 모두 고려해야 한다. 


결론적으로 소녀전선은 모바일 게임 중에서도 할만하고 재밌는 게임이라는 점이다. 모바일 게임 중에 할만한 게임이 없다면 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