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이야기



2006년 출시된 프레이는 당시로써는 혁신적인 시스템들이 기용된 작품이었다:중력 변동이나 서로 다른 공간을 이어주는 포탈의 존재 등등 프레이는 그 당시로써도 신선한 기믹들을 갖고 있는 작품이었다. 하지만 그러한 신선한 기믹들은 어디까지나 게임의 곁다리로만 존재하고 있었기 때문에, 프레이의 신선한 시도들은 밀려들어오는 작품들에 의해 묻혀서 금방 기억 너머로 사라지게 되었다. 그리고 11년이 지난 뒤, 아케인 스튜디오가 제작한 프레이 후속작이 등장하였다. 게임 출시에 대한 밑밥은 이전부터 있어왔지만, 이렇게 뜬금없는 후속작은 찾아보기 힘들 것이다:게임 자체가 엄청난 성공을 거둔 것도 아니고, 원작에서 스토리가 이어지는 것도 아니며, 심지어 2편 제작 과정 중 불화로 원래 게임을 만들었던 휴먼 헤드 스튜디오가 아닌 아케인 스튜디오가 게임을 완성하였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기대보다는 불안감이 더 높은 작품이기도 하였다.


결론만 놓고 본다면 프레이 2017은 독특한 분위기와 매력, 그리고 안정적인 게임 플레이를 보여주는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아르 누보 양식의 스테이지 디자인과 티폰과 미믹이라는 독특한 적 메카니즘 등은 높은 평가를 받을만 하지만, 게임 플레이 스타일이 시스템 쇼크와 바이오 쇼크의 계열에 놓여있다는 점에서 전형적인 작품이다. 물론 싱글플레이만으로 플레이타임 20시간에 달하는 분량을 뽑아낸 점, 다양한 사이드 퀘스트 등과 읽을 거리를 제공한 점에서 프레이는 대충 만들어진 물건이 아니지만, 그럼에도 어디선가 본거 같은 인상을 지울 수 없다.


프레이의 기본적인 게임 스타일은 시스템 쇼크와 바이오 쇼크를 연상케 한다. 플레이어는 티폰 방역이 실패하여 아비규환이 된 탈로스 1 우주 정거장을 탐험하면서 자신의 과거를 되찾고, 인류의 위기를 막고자 노력한다. 스테이지들은 많은 양의 읽을 거리와 오디오 로그들, 비밀들을 가지고 있으며 플레이어의 능력이 해금될수록 탐험하고 확인할 수 있는 비밀이 늘어나게 된다. 또한 바이오쇼크에서 확립되었던 오른손은 무기, 왼손은 특수능력을 쓰는 시스템도 프레이에서 건재하며 더 나아가 능력을 이용하여 주변의 사물 및 환경과 상호작용하는 부분, 심지어는 바이오쇼크에서 사진을 찍어 적을 연구하는 방식을 스코프를 이용해서 적을 연구하는 방식으로 벤치마킹하기 까지 하였다. 좋게 이야기하자면 프레이는 바이오 쇼크의 좋은 점들을 이어받고자 하였지만, 나쁘게 이야기하자면 프레이는 바이오쇼크와 별다를 것이 없는 물건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물론 프레이는 게으르게 바이오쇼크를 모방하는 작품은 아니다. 프레이는 바이오 쇼크의 골격에 자신만의 양념들을 곁들인다. 우선 프레이의 가장 특징적인 부분은 티폰과 미믹이라는 적의 메카니즘이다:미믹은 주변 사물로 변화해서 플레이어를 기습하는데, 작은 컵에서부터 섭취할 수 있는 음식, 심지어는 사용가능한 아이템까지 다양한 스팩트럼으로 변신할 수 있기 때문에 게임 플레이 초반에는 플레이어들은 신경질적으로 거의 모든 오브젝트들을 떄리면서 돌아다닐 수 밖에 없다. 과거의 게임들에서 작은 오브젝트들의 존재(컵이나 의자 같은)가 그저 물리 엔진을 홍보하기 위한 쓸모없는 기믹에 불과하였다면, 프레이는 이를 영리하게 뒤집어 두었다. 플레이어들은 게임을 진행할 때, 컵이나 의자, 작은 바나나 같은 물건들이 미믹으로 변해서 자신을 공격하지 않을까 조심해야 하며 이는 게임에 독특한 긴장감을 불어넣는다.


하지만 이러한 긴장감은 오래되지 않아 무뎌지게 된다:게임 내에 적들 중 미믹이 차지하는 위치가 매우 낮기 때문이다. 플레이어가 점점 강해질수록 미믹은 샷건 한방, 사이킥 한방으로 인수분해되는 외계 물질 셔틀이 될 뿐이다. 게임이 후반으로 갈수록 더 많은 수가 나오는건 인간형 적이라 할 수 있는 팬텀이며, 위버나 테크노패스 같은 강력한 적들이 간간이 섞여서 등장한다. 하지만 이들은 미믹과 같은 강렬한 인상을 남겨주진 못한다. 그들은 분명 짜증나게 강한 존재들이지만, 이미 오랫동안 여타 게임을 플레이했을 게이머들에겐 그닥 새로울 것이 없는 몬스터들이기 때문이다. 물론 완전히 모습이 보이지 않는 폴터가이스트나 최종보스 위치를 점하는 나이트메어의 존재는 상당히 신선하다:폴터가이스트는 완전히 보이지 않기 때문에 몇몇 시퀸스에서 인상적인 연출을 보여주며, 나이트메어는 초능력을 얻을때마다 더 강하고 더 빠르게 접근하는 기믹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둘 역시도 미믹의 '오브젝트로 변한다'라는 충격에 비하면 그 인상이 극히 미미하다. 즉, 게임은 미믹이라는 인상적인 적을 구성해놓고 상위 그레이드의 적에선 그 컨셉을 통일적으로 계승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물론 미믹 이상의 적들은 각기 다른 약점과 특징으로 플레이어에게 적당한 고난을 던져주지만, 미믹이 처음 주었던 충격을 주지는 못한다.


프레이가 바이오 쇼크와 다르게 새롭게 양념을 친 부분은 바로 글루 캐논이다. 프레이의 글루 캐논은 하프라이프 2의 중력건이나 포탈의 포탈건 등 같이 게임의 매커니즘을 관통하는 무기로, 끈적한 발포성 수지를 발사하여 적을 굳히거나 주변 환경과 상호작용하거나(불을 끄는 등) 심지어는 벽에 발판을 만들어서 벽을 타고 다닐 수 있게 하는 등 다양하고 유기적인 방식으로 게임과 상호작용하는 무기라 할 수 있다. 특히 탄약이 부족해서 후술할 재활용 매커니즘을 십분 활용할 수 밖에 없는 프레이에서 글루 캐논의 탄약은 특하면 기어나오며 다양한 상황에서 사용하라고 장려한다. 


하지만 글루 캐논의 독특한 매커니즘(플랫폼으로 사용할 수 있는 발포성 수지를 발사하는)은 겉보기에는 훌륭하지만, 실제로는 그 사용폭이 썩 넓지는 못하다. 적을 굳히는 용도로 쓸 수는 있지만 적이 거대해질수록 효율이 뛰어나지 않다. 또한 발판을 만드는 기능으로 활용하기에는 글루 캐논이 만드는 발판은 매우 제한적이다:거의 벽에 딱 붙어 서서 글루캐논으로 발판으로 만들고, 이걸 딛고 올라갔다가 애매한 판정 때문에 떨어지고 하는 과정을 게임 내내 반복한다. 물론 완벽하게 글루 캐논을 업그레이드 한 상태에선 충분한 발판을 만들기도 하지만, 발판을 짚고 올라가는 판정과 미끄러지는 판정이 애매하기 때문에 썩 매끄럽게 사용하기는 힘든 부분들이 있다. 하지만 이러한 문제보다도 더 심각한 문제는 게임 전체 스테이지 디자인에 있다:탈로스 1은 수직적으로 거대한 공간이 아니다. 기본적으로 폐쇄되어 있는 우주 정거장을 전제하고 있으며, 게임에서 수직적으로 높이 올라가야할 이유가 거의 없다는 것도 큰 문제다. 아케인 스튜디오의 전작이 수직적이고 유기적인 스테이지 디자인으로 인상적이었던 디스아너드 시리즈였다는 걸 생각하면 이 부분은 조금 실망스럽다 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프레이가 바이오 쇼크의 계보와 차별되는 점은 바로 재활용 시스템이다:게임 내의 모든 아이템은 매우 부족하며, 대부분은 쓸모없는 쓰레기들이다. 하지만 분해기를 통해서 아이템들을 분해하면 기본적인 4대 요소(유기물/금속/인조물/외계 물질)로 환원 시킬 수 있으며 플레이어는 이 물질들을 사용해서 다른 아이템을 만들 수 있다. 그렇기에 플레이어는 항상 자신이 어떤 아이템을 사용하는지, 그리고 어떤 아이템이 필요없는지를 숙지하고 아이템을 분해하고 새로운 아이템을 만들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만성적인 탄약 부족과 물자 부족에 시달릴 수 밖에 없다. 이러한 재활용과 크래프팅 시스템 덕에 게임은 생존 게임 분위기를 띄며, 플레이어를 끊임없이 생각하게 만든다. 또한 주변 오브젝트들을 물질로 환원시키는 재활용 수류탄의 존재는 들고다닐 수 없는 물건을 분해시킬 뿐만 아니라 새로운 경로를 뚫어주기도 해서 플레이 방식을 다채롭게 만들어주기도 한다. 하지만 문제는 금속류 자원이 너무 적다는 부분이며, 이 부분은 매우 불합리하게 느껴진다:금속류가 물론 모든 탄약을 만들기 위한 기본 베이스이기에 쉽게 제공할 수 없다는 문제가 있기는 하지만, 다른 유기물/인조물/외계 물질은 30~40개 모일동안 금속류만 열심히 쓰는 모습을 보여주는건 부조리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프레이는 바이오 쇼크 계보에 놓여있는 게임 치고는 자신만의 개성보다는 바이오 쇼크의 모습이 더 눈에 띄는 물건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프레이는 이런 다소 아쉬운 개성에도 불구하고 분위기 측면에서 자기만의 매력을 갖고 있는 물건이라 할 수 있다. 단순히 바이오쇼크의 분위기를 재현하였다 보기 힘든 프레이의 아트 스타일에는 인공적인 아름다움과 함께 어딘가 공허함을 간직하고 있다. 이런 부분은 우주 유영 부분에서 분명하게 느낄 수 있는데, 아르 누보 형태의 아름다운 우주정거장 너머로 가늠할 수 없는 거대한 공허가 펼쳐져 있기 때문이다. 프레이의 스토리는 정석적이긴 하지만 이러한 부분을 집요하게 파고든다:기억을 잃은 주인공, 무엇이 진짜 나인지 모르는 상태에서 맞이하는 괴물들, 도덕적인 갈등, 의문스러운 분위기 등등 게임은 전형적이긴 하지만 SF 호러 장르의 분위기를 훌륭하게 구현하고 있다. 또한 게임에 훌륭한 개성은 없지만, 치명적인 게임 플레이 매커니즘의 결함 역시 없기에 2007년부터 안정적으로 작동해온 바이오쇼크 시리즈의 매커니즘으로 게임을 즐길 수 있다는 부분은 높은 평가를 줄만 하다.


결론적으로 프레이는 자신만의 매력과 개성을 반쯤 밖에 발휘하지 못한 작품이다. 하지만 그러한 개성들 외에 기본에 충실한 부분들, 그리고 무엇보다도 분위기가 매우 뛰어난 작품이며 분량 부분에서는 합격점을 줄만한 부분이 있다. 다이렉트 게임즈에서 PC 한국어화가 이루어진다면, 한국어로 분위기를 즐기며 플레이할 값어치는 충분히 있다고 보여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