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이야기


"어떻게 존 포드를 좋아하지 않을 수가 있나? 광활한 대지, 웅장한 산맥의 풍경처럼 누구나 좋아할 법한 것들이 거기에 있다. 

단순하고 전통적인 방식의 삶이 주는 아름다움. 

반동적으로 들릴 수도 있겠지만 존 포드의 영화에는 그런 단순한 것들의 가치가 담겨 있다. 

몬테이로의 말을 빌리자면 '중요한 것은 어떻게 단순해질 것인가'다." 


-페드로 코스타.


무언가가 역사에 이름을 남긴다는 것은 단순히 '잘 만들었다'라는 완성의 척도를 뛰어넘어야 한다:역사에 족적을 남기는 것들은 완성도를 너머서 자신이 속한 것을 넘어 그것을 새롭게 정의내린다. 시간의 오카리나가 추억 속의 잘 만든 작품을 넘어서 게임의 역사에 거대한 족적을 남긴 것도 잘 만든 게임이라는 평가를 넘어서 3인칭 3D 게임의 세계를 구현하는 방식을 정의하였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역사에 이름을 남기는 것은 단순히 박물관에 남겨지는 것 이상이며, 무언가를 새롭게 정의 내리고 더이상 그것이 존재하지 않는 이전의 세계를 상상할 수 없게 만드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게임 역사 속에서 이런 급격한 변화가 일어나는 '특이점'이 하나의 제작사, 하나의 프랜차이즈 내에서 두 번 생겼다는 사실은 오랫동안 게임이란 문화를 소비하고 경험한 사람의 입장에서는 정말로 오래 기억에 남을 경험이라 할 수 있다.


젤다의 전설:야생의 숨결은 스위치/위유로 나온 젤다의 전설 최신작이다. 야생의 숨결이 처음 오픈월드로 나온다고 하였을 때, 사람들은 기대 반 우려 반의 눈길로 이 작품을 지켜볼 수 밖에 없었다:젤다의 전설은 전통적으로 정교한 퍼즐과 스테이지 구조에 기초하여 플레이어가 능동적으로 사고하는 것이 매우 중요한 게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게임이 나온 뒤, 야생의 숨결이 젤다의 전설 시리즈를 훌륭하게 계승한 작품일 뿐만 아니라 오픈월드의 역사를 새로 쓴 게임이라는 것이 증명되었다. 야생의 숨결에서 보여준 변화가 사람들에 따라서는 부정적으로 보일 수 있지만(그런 점에서 버니홉의 야생의 숨결에 대한 평가는 타당하다 할 수 있다.), 야생의 숨결은 시간의 오카리나와 함께 게임 역사에 한 획을 긋는 성과를 거두었다.


젤다의 전설:야생의 숨결의 핵심은 단순함이다. 이는 게임 속 세계를 묘사하는 그래픽에서부터 확인할 수 있다:일반적인 오픈월드 게임들이 세계를 디테일 넘치게 구현하는데 초점을 맞추었다면 야생의 숨결은 세계를 단순한 형태로 구현하는데 초점을 맞춘다. 모든 것들은 파스텔톤의 원색과 돌, 나무, 강과 같은 단순한 오브젝트들로 구성되어 있다. 하지만 야생의 숨결은 개별 오브젝트의 디테일을 포기하고 여타 게임에서 찾아보기 힘든 거대한 풍경을 만들어낸다:개별 오브젝트들의 텍스처는 디테일보다는 색감의 형태로 구현하되, 게이머의 스크린에 보이는 풍경은 최대한 광활함을 느낄 수 있도록 수평의 파노라마의 형태로 구현한 것이다. 이런 점에서 야생의 숨결은 초기 서부극에서 볼 수 있었던 거대한 자연을 게임 내에 넣은 것이다. 폴아웃 3에서 플레이어가 처음 광활한 황무지를 바라보았을 때의 북받쳐 오르는 감정을 야생의 숨결은 게이머에게 30분에 한번 씩 느낄 수 있게 만들었으며, 단순한 구성이지만 거대한 자연과 풍경을 훌륭하게 표현하였다.


하지만 야생의 숨결은 그저 단순하게 반복적이고 거대한 자연을 만들고 게이머가 해매게 만드는 그런 게임이 아니다:게임은 단순하고 반복적인 자연 속에 독특한 장소들을 집어넣는다. 너무 눈에 띄지도 않지만 관찰을 통해서 찾아낼 수 있는 작지만 분명한 강조점들을 말이다. 대체로 야생의 숨결에서 주목할만한 장소들(사원이나 탑 같은)은 밝게 빛나고 있기 때문에 쉽게 찾아낼 수 있지만, 몇몇 사원들은 묘한 곳에 숨어있기도 하며, 사원에 도달하는 과정 자체가 주변 풍경과 상호작용해야하는 하나의 퍼즐로 구성되어 있기도 하다. 게임은 거대한 풍경을 만들어내는데 성공하였을 뿐만 아니라, 플레이어의 눈높이에서 모든 것을 발견할 수 있게끔 세밀하고 오밀조밀하게 세계를 구성하였고, 그렇기에 게이머는 거대한 세계의 풍경을 즐기는 동시에 그 속에 숨은 비밀을 찾아가는 재미를 즐기게 된다. 이러한 과정들이 게이머가 능동적으로 생각하고 계획을 세우도록 게임은 불친절함과 친절함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외줄타기를 시도하였고, 그 결과는 매우 성공적이었다.


야생의 숨결은 젤다 시리즈 최초로 모든 도구를 처음부터 사용할 수 있게끔 만들었다. 전통적으로 젤다의 전설 시리즈는 게임이 진행될수록 도구가 해금되어가며, 던전과 전투를 풀어가는 방법이 다채로워지는데 야생의 숨결을 게임 초반에 플레이어가 쓸 수 있는 모든 도구를 처음부터 모두 해금함으로써 플레이어가 운신할 수 있는 폭을 넓혀준다. 이는 야생의 숨결에서 각 도구들이 갖고 있는 역할이 단순히 퍼즐을 해결하기 위한 도구 이상의 의미를 지니기 때문이다:야생의 숨결에서 도구는 세계와 상호작용하기 위한 도구다. 게임은 이전 시리즈보다 어려워졌으며(제한된 체력 회복, 망가지는 장비, 불친절한 세계 등등) 익숙해지기 전까지 플레이어는 많은 실패를 경험한다. 하지만 세계를 구성하는 규칙을 이해하면서부터 게임은 어려움을 뛰어넘어 다른 게임에서 찾아볼 수 없는 재미를 선사한다:게임 내의 물리법칙, 기온, 온도, 바람의 방향, 전기, 번개 등 단순하고 자잘한 모든 요소들이 게임에 개입하고 플레이어가 이를 적극적으로 사용해서 퍼즐을 풀거나 적들과 전투를 벌일 수 있기 때문이다. 플레이어에게 게임의 처음부터 모든 도구를 준 것은 이러한 요소들을 적극적으로 통제할 수 있는 기제를 제공하는 것이라 볼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상호작용이 게임을 시뮬레이션 같은 복잡성으로 이끌지는 않는다. 시뮬레이션의 핵심은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로 묘사하고자 하는 것이고, 그 복잡한 것을 플레이어가 모두 통제할 때 쾌감을 선사하는 장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젤다의 전설에는 '복잡함'은 없다. 세계를 구성하는 법칙은 게임을 풀어나가는 기본 원칙이자 도구이기 때문이다. 이 둘의 차이는 간단하게도 플레이어가 즉석에서 임기응변으로 고안한 것이 게임에 바로 적용가능한지 여부에서 분명하게 드러난다. ARMA와 같은 시뮬레이션 게임에서는 게이머가 모든 규칙과 법칙을 이해하고 있다는 전제 하에서 플레이어의 운신의 폭은 넓어진다. 하지만 야생의 숨결에서는 복잡하게 생각할 필요도 없고 외울 필요도 없다. 모든 것은 법칙들은 상식을 준용하고 있으며, 게이머는 자신의 상식에 따라 행동하면 될 뿐이다. 가령, 야외 전투 중 풀밭에 불이 났다면 그 불이 난 것을 따라 상승기류가 발생하는 것을 캐치하여 글라이더를 이용해 날아올라 적을 공중에서 농락하는 이 일련의 과정이 특별히 무언가를 외운다던가 등의 준비 과정이 필요한 것이 아니다. 야생의 숨결의 핵심은 단순함과 직관성이자 그것들이 다른 법칙들과 맞물려서 유기적으로 돌아가는데 있다.





즉, 야생의 숨결은 게이머의 눈높이에서 다양한 도구를 통해 세계와 모든 것들이 규칙으로 연결되고, 통제가능해진다. 그리고 그 규칙은 물리법칙(기온, 바람, 물, 불, 전기 등등)이라는 직관적이고 단순함에 근거한다. 하지만 이 직관적인 단순함이야말로 야생의 숨결을 관통하는 핵심이며 혁명이라 이야기할 수 있는 부분이다. 세계는 단순하게 구성되어 있으며, 게임을 구성하는 법칙 역시 단순하다. 하지만 그 단순함들이 결합하고 복합적으로 쌓여가면서 야생의 숨결은 여타 게임에서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인상을 남겨주게 된다. 게임은 게이머가 그 법칙을 얼마나 이해했는지, 더 나아가 얼마나 그 법칙을 잘 활용하였는지에 따라서 천차만별로 달라진다. 게이머는 항상 능동적으로 생각하고, 세계를 활용하여야 한다. 젤다의 전설:야생의 숨결이 여타 오픈월드 게임처럼 화려한 능력이나 편의성이 없고 불친절함을 제공하더라도 재밌게 느껴지는 이유는 플레이어가 게임 플레이의 주도권을 잡고 있고, 스스로 생각하게끔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점들을 종합하여 본다면 야생의 숨결은 기존의 시리즈와 비교하였을 때, 대단히 이질적인 작품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더 놀라운 점은 야생의 숨결은 젤다의 전설 시리즈의 정체성에 베이스를 깔고 있는 작품이라는 것이다. 젤다의 전설은 전통적으로 플레이어가 정해져 있는 답을 풀기 위해서 생각하고 머리를 굴리는 게임이었다. 대단히 작위적이지만 어떻게 해결해야할지 감조차 안 오는 스테이지를 보며 플레이어는 계속해서 생각하고 고민하고 다양한 시도를 해야한다. 하지만 그 해답을 찾아낼 때의 성취감이 바로 젤다의 전설의 묘미라 할 수 있다. 야생의 숨결은 비슷하지만 그것을 하나의 스테이지, 던전이 아닌 세계 그 자체로 옮겼다는 것이 핵심이다. 그리고 던전과 스테이지라는 작위적인 구성이 아니라, 거대한 세계 속에 유기적으로 구성되어 있는 공간을 직조함으로써 게이머가 생각하는 규모를 크게 만들고, 게임을 다각도로 즐기게끔 만든다. 심지어 야생의 숨결 특유의 유기성은 퍼즐의 정해진 풀이과정마저도 해체시켜버리는데, 가장 유명한 것이 아래의 사례일 것이다.





그렇기에 젤다의 전설:야생의 숨결은 오픈월드의 정의를 바꾸는데 성공하였다. GTA 3에서 5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오픈월드들은 거대한 도시문명의 풍경을 배경으로 다양한 작은 할거리들을 집어넣은 게임들을 만드는데 초점을 만들었다. 하지만 젤다의 전설:야생의 숨결은 단순하지만 상호작용할 수 있는 세계, 단순한 법칙을 응용하여 자신만의 해법을 찾아가는 과정이었다. 스크립트로 짜여있는 세계가 아닌 법칙과 도구로써의 세계가 플레이어로 하여금 계속해서 생각하고 자신의 방법을 찾아내게끔 만든 것이다. 이런 점에서 보자면 젤다의 전설:야생의 숨결은 팬텀패인과 많은 유사점이 있는것처럼 보이지만, 팬텀패인이 선의 세계(도로와 체크포인트)였다면 야생의 숨결은 거대한 면의 세계라는 점에서 큰 차이가 할 수 있다. 


여기서 평단과 사람들이 열광하는 이유가 있다. 여지껏의 게임들의 대부분은 디테일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으며, 얼마나 많은 디테일과 컨텐츠를 게임에 넣을까가 게임의 완성도를 판다름 짓는 부분이었다. 하지만 규칙이 복잡해지면 복잡해질수록 게임에서 유연성은 점점 사라지며, 플레이어가 직접 생각하고 성취하는 폭은 줄어들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젤다의 전설은 세계와 게임을 하나의 도구로 만들고, 생각하는 과정과 성취 과정을 즐기게끔 만들었기 때문에 혁명이라 할 수 있다. 또한 그것이 시뮬레이션 같이 복잡계 위에 올려져있는 정교하고 섬세한 게임이 아닌, 플레이어가 생각한 만큼 움직이는 단순하지만 직관적이고, 무식하지만 동시에 섬세한 게임이란 점에서 더더욱 그러하다. 


결론적으로 젤다의 전설:야생의 숨결은 게임 역사를 뒤흔든 게임이다. 그것은 근본적으로 콘텐츠의 디테일과 분량이 아닌 얼마나 세계와 유기적으로 상호작용하는가라는 행위에 초점을 맞춘 게임이라는 점에서 더더욱 그러하다. 물론, 야생의 숨결은 갑자기 튀어나온 불연속적인 작품은 아니다:언제나 그렇듯 변화는 그 징후들을 역사 속에 내포하고 있으며, 그것이 모이고 쌓였을 때 비로소 발현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흥미로운 점은 그 변화의 핵심에는 정말로 낡아서 더이상 변하기 힘들거라 생각했던 젤다의 전설이라는 시리즈가 있었다. 그렇기에 야생의 숨결은 닌텐도가 구태의연한 집단이 아님을 증명한 동시에 무엇이 기본이고 무엇이 핵심인지에 대해서 다시끔 생각하게 만드는 작품이라 할 수 있다.



※ 스토리에 대한 글은 별도로 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