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이야기



*블러드본 리뷰(http://leviathan.tistory.com/2065)와 다크소울 2 리뷰(http://leviathan.tistory.com/1856)에 베이스를 두고 있습니다.


*엔딩에 대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괴물과 싸우는 사람은 그 싸움 중 스스로도 괴물이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우리가 괴물의 심연을 오랫동안 들여다봤다면, 그 심연 또한 우리를 들여다볼 것이기 때문이다."


-프리드리히 니체, 선악을 넘어서



하나의 게임를 구성하는 '테마'는 매우 중요하다:게이머가 게임을 통해서 얻는 경험을 하나로 묶어주는 중요한 키워드이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지난 다크소울 1과 2는 게임 역사에 길이 남을 중요한 테마를 구축했다고 할 수 있다. 소울 시리즈는 단순히 어려운 것을 넘어서 실패를 통해 학습하고 더 나은 실패를 하며, 더 나아가 실패를 뛰어넘어 성공을 거두고 성취감이라는 쾌감을 달성하는 게임의 가장 기본적인 재미와 구조를 극대화시켰다. 그리고 프롬 소프트는 죽음이라는 테마를 통해서 이러한 경험을 하나로 엮어낸다:불사의 저주를 받은 망자와 반복되는 죽음, 빛바래고 뒤틀려버린 게임 속의 세계, 인간성에 이끌리는 백령과 인간성을 찬탈하기 위해 침입하는 암령이라는 설정과 멀티플레이 시스템 등등. 게임 내의 모든 요소들은 세계관과 게이머의 경험과 함께 맞물려 들어가며 하나의 잊지 못할 기억을 게이머들에게 선사한다. 소울 시리즈가 단순히 '어려운' 게임이라는 것과 불친절하고 죽기만 더럽게 죽는다는 악명을 뛰어넘어 게이머를 끌어들이는 위대함을 드러내는 부분이 바로 이런 부분들일 것이다.


다크소울 3는 그런 의미에서 거대한 전환점이다. 하지만 유념해야 하는 점은 다크소울 3의 게임 플레이가 기존의 소울 시리즈에 비교한다면 무기의 개성이 뚜렷해지고 무기의 필살기라 할 수 있는 전기가 추가된 것을 제외한다면(이러한 무기의 개성이 뚜렷해진 것은 블러드본에서 이루어진 실험도 한몫하였다고 할 수 있다) 변한 것이 거의 없다는 점이다:다크소울 2가 다크소울 1편의 훌륭한 '후속작'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던 것처럼, 게임 플레이는 여전히 '소울 시리즈' 스러운 악의와 어려움으로 변함없이 가득차 있다. 또한 여전히 다른 게이머들이 남긴 흔적들을 잘 관찰하고 천천히 게임을 풀어나간다면 게임이 오히려 '부드럽게' 풀린다는 점도 기존 소울 시리즈와 유사하다. 그러나 다크소울 3가 소울 시리즈의 전환점이라 평가받을 수 있는 것은 게임 시스템의 변화한 것 때문이 아닌 게임의 '테마' 자체가 변화하였기 때문이다. 


테마를 다루기에 앞서서 3편에서 대대적으로 변화한 무기 시스템에 대해서 다루도록 하겠다:전기는 각 무기마다 존재하는 일종의 '필살기'와 같은 개념으로 집중력(FP, Focus Point)을 소모하여 발동할 수 있으며(집중력 포인트가 없어도 발동할 수 있지만, 그 위력이 심히 떨어진다.), 전기의 추가에 따라 다크소울3는 무기에 따라 전기, 모션과 리치 등이 다양하게 분화시켰다. 일견 블러드본의 변이 무기 시스템과 각각 무기의 개성이 뚜렷한 점 등으로부터 영향을 받은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블러드본의 극단적인 변화와 구분되게 다크소울 3는 여전히 소울 시리즈의 연장선상에 있다:스태미너 회복속도는 블러드본에 비해서 느리며, 회피를 난타하기 보다는 정확한 순간에 회피를 하는 것이 중요하고, 굳건한 가드는 여전히 유효하다. 다크소울 3가 블러드본을 받아들이면서 취하고자 했던 것은 완벽한 새로움이 아닌, 기존 소울 시리즈의 게임 플레이 스타일을 좀 더 다양하고 세련된 형태로 만들어나가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그렇기에 전기나 모션의 변화는 게임 내의 PVE 콘텐츠에 대해서 혁신적인 변화를 이끌어내었다고 평할 수 없다.


이러한 전기와 차별화되고 개성적인 무기군이 진면목을 드러내는 분야는 바로 PVP다:오른손 무기의 전기, 패리되는 방패와의 조합, 양손 잡기, 쌍수 무기 등의 다양한 조합이 가능해지고, 건실한 가드와 틈 노리기가 중심이 되는 PVE와 다르게 상대에 따라서 변칙적인 무기 운용 전술을 사용해야 하는 PVP의 경우 전작들에 비해서 플레이 스타일을 다변화하였다 할 수 있다. 특히 PVE 중엔 NPC들과 싸우는 곳에서 무기의 다양한 개성이 드러난다고 평할 수 있는데, 방패를 들고 가드를 하면 전기를 이용해서 가드를 부수고 치명공격을 한다던가 등의 다양하면서도 개발자들이 생각하는 '표준적'인 움직임을 NPC들이 보여주고 있으며, 게이머 역시도 이들과 싸우면서 이들의 움직임이나 자세, 플레이 스타일을 따라하거나 다른 방법을 쓰거나 하는 등의 과정을 거치게 된다. 좀 더 시간이 지난다면 전기도 적극적으로 사용하여 싸우는 모습을 PVP에서 찾아볼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 다만 현재 자검+대방패 나 직검류(특히 다크소드)의 강세 등 벨런스 이슈가 있긴 하지만, 과거 시리즈에서도 시간이 지남에 따라서 벨런스가 맞춰졌음을 고려한다면 지금 현재의 상황을 고정적이라 평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게임 시스템이 바뀐것 보다 다크소울 3에 있어서 더 중요해진 것은 바로 '게임 테마의 변화'이다:다크소울 1편과 2편에서는 '죽음'이라는 테마는 서사나 게임 시스템, 심지어는 마케팅 부분에 있어서도 영향을 줄 정도로 중요한 키워드였다. 게임 내의 케릭터는 죽을 수 없는 망자이고, 반복되는 죽음의 순환과 멸망하는 세계를 넘어서야 한다. 그렇기에 게임 내에서 죽음은 실패가 아닌 학습이며 반복의 기제로 작용한다:몇몇 구간은 아예 죽어야만 도달할 수 있으며, 죽지 않으면 도저히 간파 불가능한(물론 다른 사람들이 남긴 메세지를 잘 관찰하면 되기도 하지만) 함정과 적들의 움직임 등이 도처에 넘쳐난다. 그렇기에 게임은 마케팅을 통해서 죽을 준비를 하라(Prepare to Die, 다크소울 1)와 죽음을 넘어서라(Go beyond Death, 다크소울 2)라는 키워드를 제시한다. 계속되는 죽음에 피폐해지는 케릭터의 모습과 게이머의 정신 상태, 인간성에 이끌리는 암령과 백령, 그리고 그 죽음을 넘어서는 성취까지 소울 시리즈는 죽음이라는 테마를 통해서 모든 것을 구축하고 게이머를 매료시킨 작품이라 할 수 있었다.


엄밀하게 이야기하자면, 다크소울 3가 다크소울 1이나 2의 테마를 완전히 폐기한 것은 아니다:오히려 다크소울 3는 이러한 테마를 정면으로 계승하여 새로운 형태로 만들어낸다. 다크소울 3의 주된 테마는 재와 잔불이다. 게이머는 재의 전사로써 이제 완전히 망해가는 세계 속에서 세계를 다시 살릴 수 있는 불을 구하기 위해서 장작의 왕들을 사냥해야 한다. 소울 시리즈는 대대로 '불의 계승'이라는 테마 자체가 중요하게 등장하였지만, 다크소울 3가 특이한 부분이 있다면 불의 계승과 함께 '재'라는 테마는 매우 중요하게 등장시키며 이를 구현하기 위해서 서사적인 부분에서 스테이지 배치에 극도로 신경을 썼다는 것이다. 게이머는 게임을 진행하면서 한때는 웅중하고 화려한 모습을 보여주었겠지만 천천히 쇠락하며 빛바래가는 세계를 목도하게 된다. 마치 다 타버린 장작 더미 속의 재처럼, 세계의 모든 것은 시간의 끝에 도달한 것처럼 말라붙고(그을린 호수) 얼어붙었으며(아노르 론도와 이루실), 부패하여 가라앉거나(팔란의 성체) 하는 등의 다양하지만 통일된 테마를 게임을 통해 보여준다. 또한 다크소울 3가 이전 소울 시리즈와 비교해서 압도적으로 뛰어나다고 평할 수 있는 부분이 바로 이러한 테마의 통일성과 함께, 이를 구현하는 기술적인 쾌거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블러드본을 통해서 보여준 기존 소울 시리즈와 차별화된 거대한 스테이지와 배경 구조물 등등이 다크소울 3에 접목되었기에 매력적인 세계를 구축하는데 성공하였다 평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게이머는 망자를 넘어서 불꺼진 재로써 불을 원하는 존재로 변모하게 되었다. 물론 기존 시리즈의 '망자' 설정과 개념, 시스템은 여전히 존재하긴 한다:그것은 숨겨진 엔딩과 관련이 있는 서사로써, 불의 시대 이후에 올 어둠의 시대에 대한 서사와 시스템이다(검은 구멍에 의한 공짜 레벨업, 이벤트 등등) 하지만 기본적인 서사는 불 꺼진 자들이 불의 온기와 힘을 원하여 자신보다 더 거대하고 위대한 존재들에게 도전하는지, 그리고 이를 통해서 세상의 종말을 어떻게 받아들이는지에 대한 것이다. 그리고 이런 특징에 비추어 보았을 때, 이전 소울 시리즈와 차별화되는 다크소울 3만의 특징은 '능동성'이다:3편의 캐치프레이즈는 재는 잔불을 원한다(Ash Seekth Ember)이며, 이전 시리즈들이 죽음이라는 피동적이며 가학적인 상황에 맞서서 살아남는데 초점을 맞추었다면 다크소울 3는 마치 재의 귀인들이 장작의 왕이라는 거대한 도전과 시련에 이끌리고 매료되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즉, 게임은 이전의 시리즈에 비해서 '성숙해진' 게이머들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또한 눈여겨볼만한 부분은 게임이 게임 내의 서사와 게이머의 능동적인 경험(이전의 시리즈에서 경험하였던 경험까지 포함하여) 사이의 간극을 침묵으로 받아들이게 하는 시적인 감성들이다:엘드리치에 의해서 황폐해진 아노르 론도의 모습, 로스란의 높은 벽에서 바라보았던 로스란 왕궁을 게이머가 직접 올라갔을 때의 성취감, 이루실에 걸려있는 회화들(1편부터 3편까지 모든 이야기를 관통하는) 등등 게임은 게이머가 절경과 슬픔, 소울 시리즈의 역사를 침묵하여 받아들이고 형용하기 어려운 감정을 느끼게 만드는 서사를 곳곳에 마련하였다. 다크소울 3의 서사는 이전 작들에 비해서 더욱 게이머의 능동적인 감상을 유도하게 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종합하자면 다크소울 3의 성취는 단순한 소울 시리즈의 종착점, 그 이상이라 할 수 있다. 일찍이 블러드본의 극단적인 변이를 통해서 소울 시리즈 기반의 게임이 어떻게 새로운 모습을 띌 수 있는가를 보여주었다면, 다크소울 3는 소울 시리즈가 더이상 고전적인 게임 경험(가학적일 정도로 어려운 난이도와 불친절함, 반복되는 죽음, 그 사이에서 게이머가 게임을 자발적으로 학습하고 극복하여 성취감을 얻어내는 것)에 근거하지 않고도 게임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였기 때문이다. 즉, 다크소울 3는 소울 시리즈의 테마를 뛰어넘어서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준 작품이며, 프롬 소프트가 소울 시리즈를 통해서 거둔 성취와 완숙함을 드러내는 작품이다. 그리고 이는 동시에 게임 개발자들의 성숙을 의미하는 것이 아닌 게임을 즐기는 사람들의 성숙을 의미하기도 한다:다크소울 3은 소울 시리즈를 즐긴 사람들에 대한 헌정인 동시에, 소울 시리즈를 처음 사람들에게 있어서도 피동적으로 죽음을 당하는 것이 아닌 도전적으로 게임에 뛰어드는 즐거움과 성취감을 보장하는 게임이다. 이는 게이머들이 죽음이라는 실패를 짜증나는 요소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닌, 자신에게 걸맞는 호적수를 받아들이는 문화가 정착되었기 때문에 다크소울 3 같은 완숙한 게임이 등장하게 된 기틀을 마련하였다고 할 수 있다. 그렇기에 다크소울 3는 더이상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게임'이란 타이틀을 갖는 것이 아닌 '도전적이고도 어렵지만 동시에 게이머가 능동적으로 풀어나갈 수 있는 게임'이란 타이틀이 소울 시리즈에 적합하다는 것을 제작자들과 게이머들 모두의 노력으로 멋지게 입증하였다. 


다크소울 3의 엔딩은 그렇기에 한 프랜차이즈를 종결 짓는데 있어서 완벽한 형태를 띄고 있다. 다크소울 3에는 다양한 엔딩이 있지만, 그 중에 우리가 눈여겨 보아야 하는 엔딩은 화방녀를 불러 불의 시대를 종결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아무리 불을 다시 불러오려 한들, 불은 이미 사그라들었다. 그렇기에 화방녀가 눈을 갖고 바라본 세계는 불이 완전히 사그라든 어둠의 세계이며, 그것을 인정할 수 없었던 불의 계승자들은 계속해서 계승의 순환고리(장작의 왕을 사냥하는 재의 귀인, 불의 계승, 그리고 다시 반복)에 집착한다. 하지만 불을 거두면서 도래하는 어둠의 시대로부터 위대했던 왕들이 계승하였던 잔불들이 다시끔 도래할 것이라는 것을, 종말이 단순하게 모든 것의 끝을 의미하는 것이 아닌 새로운 시대를 예고한다는 것을 게임은 은연중에 암시한다. 소울 시리즈는 다크소울 3를 통해서 끝날지언정, 그것이 진정으로 모든 것이 끝나는 것을 의미하지 않음을, 프롬 소프트가 소울 시리즈가 아닌 다른 게임을 만들든 혹은 소울 시리즈로부터 영감을 받은 다른 게임이 그들의 유지를 계승하게 될 것임을 암시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다크소울 3는 진정으로 소울 시리즈 최후의 작품에 걸맞는 아름답고 장엄한 작품이라 평할 수 있을 것이다.






"태초의 불이 사그라들고 있습니다. 이제 곧 암흑이 찾아오겠지요... 


그리고, 언젠가 반드시 암흑 속에 작은 불꽃들이 나타날 겁니다. 왕들이 계승해온 잔불이.


재의 귀인이여, 아직 제 목소리가 들리시나요?"


-화방녀, 불의 계승의 끝 엔딩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