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니, 만화, 영화 이야기



*심각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원래는 트위터에 쓰려다가 스포일러 때문에 일부러 블로그로 뺀 짧은 글입니다.


경성학교는 그야말로 괴이한 영화다:겉으로 보이는 영화의 문법은 호러로 보이지만, 정작 그 끝에는 특이하게도 SF의 문법이 지배하고 있다. 경성학교의 당혹스러운 부분은 바로 이 장르적인 괴리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영화는 과연 폐쇄된 공간과 집단에서 생기는 일을 다룬 호러를 지향하는가, 영하의 황당한 결론처럼 SF를 지향한 것일까? 이 글에서 주장하는 것은 경성학교는 전적으로 처음부터 끝까지 SF를 지향하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영화의 전개나 마무리에 있어서 다소 아쉬운 부분을 보여주기도 하지만, 경성학교가 보여주는 SF의 세계는 단순하게 장난스러운 시도가 아닌 나름대로의 진지한 고찰과 고민이 있었다고 생각한다. 좀 더 마무리만 훌륭했었다면 경성학교는 한국 영화사에 길이 남을 독특한 작품이 되었을 것이다.


학교란 공간은 전적으로 근대적인 공간이다:기본교육을 통해서 개개인의 신체와 정신에 국민이라는 표준을 삽입한다. 그렇기에 학교는 통제의 공간이자 훈육의 공간(이며, 동시에 '과학적'인 공간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극중 고립된 여자들만이 입학하는 요양 기숙사 학교라는 고립된 환경과 함께 훌륭한 황국 신민을 만들어내는 교육과 인체실험을 통해서 강인한 병사를 만들어내는 방법론이 서로 공존할 수 있는 것이다. 목적에 맞는 인간을 만들어내는 것, 그것이 정신과 육체에 동시에 작용한다는 점에서 경성학교가 취하고 있는 교육론은 충분히 SF 적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여기에 이름, 호명 방식의 차이에 따라서 영화는 두 세계를 분류한다:일본식 이름을 통해서 교육받는 신체와 자아를 드러내며, 동시에 진짜 이름, 한국어 이름을 통성명함으로써 인간적인 관계를 드러낸다. 


경성학교에서 재밌는 점은 폐병의 알레고리를 뒤집는 부분이라 할 수 있다:처음 학교에 왔을 때는 거동에도 무리가 있을 정도로 힘들었던 주인공은 전형적인 결핵, 폐병 환자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신체 강화제를 투여받으면서 점점 적극적이고 자신감 있는 인간으로 변화하게 되는데, 영화의 마지막에는 적극적인 반격의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그러나 아쉽게도 전반적으로 영화가 갖고 있는 이런 저런 재밌는 부분들은 어디까지나 '재밌는' 부분에서 멈추었다고 생각한다:영화는 각각의 중요한 요소들을 영화 내에 끌어들이는데는 성공하였지만, 정작 하나로 합쳐놓고 보았을 때의 그 화합은 부분의 합에 못미친다는 느낌이다. 좀 더 다듬고 이야기를 전개시켰다면 경성학교는 분명 더 좋은 작품이 될 수도 있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