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니, 만화, 영화 이야기




야쿠자 보스 무토는 인맥을 동원해 아내의 소원인 배우 지망생 딸을 영화에 데뷔 시키려 하지만 딸의 말썽으로 촬영이 무산된다. 어떻게든 영화를 완성시키기 위해 무토는 직접 제작자로 나서 야쿠자 조직원들을 스탭으로 동원한다. 얼떨결에 무토의 딸과 엮여 영화 감독으로 소개 된 코지는 강제로 이 영화의 연출 의뢰를 받게 된다. 목숨의 위협을 느낀 코지는 일생의 영화를 찍는 게 소원인 영화광 히라타와 3인방 '퍽 바머스'에게 구원의 손길을 내민다. 영화는 리얼리티가 생명이라고 생각하는 그들에게 마침 앙숙인 두 야쿠자 '무토파'와 '이케가미파'의 결전을 실시간으로 찍을 수 있는 일생일대의 기회가 찾아오게 되는데…(네이버 영화 시놉시스)


소노 시온의 지옥이 뭐가 나빠는 그야말로 바보 같은 영화다:액션 영화에 미친 아마추어들은 전통복에 환장한 야쿠자와 출소하는 아내를 위해서 항쟁 당일 영화팀을 꾸리는 야쿠자 두목의 도움을 받아서 서로가 죽고 죽이는 살육의 현장을 영화에 담는다. 영화는 2시간 동안의 러닝타임 내내 산지사방에 피를 흩뿌리며, 온갖 골때리는 연출과 황당한 상황들로 가득하다. 하지만 2시간이라는 적지 않은 분량에도 불구하고 소노 시온의 지옥이 뭐가 나빠는 관객을 흡입하는 힘이 강한 작품이며, 재미로 영화를 보기를 원하는 사람에게도 무난하게 추천해줄 수 있는 작품이다. 그러나 여기서는 조금 색다른 접근을 해보고자 한다. 영화의 메인 플롯은 야쿠자나 갱스터 물에 가까운 작품이라 볼 수 있다. 그런데 왜 그러한 메인 플롯에 영화광인 히라타와 퍽 보머스Fuck Bombers의 존재를 이중나선처럼 연결지은 것일까? 그리고 왜 제목은 '지옥이 뭐가 나빠'인 것일까?


왜 제목이 '지옥이 뭐가 나빠'인가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먼저 '지옥'이라는 키워드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제목에서 지옥이라는 자극적인 키워드를 선정하긴 했지만, 정작 극 내부에서 지옥이라는 키워드에 대응되는 뚜렷한 무언가는 찾아보기 힘들다. 이 지옥이라는 키워드가 갖는 의미를 명확하게 하기 위해서는 전설적인 영화 시네마 '천국'Cinema Paradiso과 지옥이 뭐가 나빠를 대칭시켜야 한다. 시네마 천국은 어렸을 적에 영사기사 알프레도에게 영사기술과 영화를 배운 토토가 영화와 함께 성장하면서 사랑과 슬픔, 인생을 알아가는 과정을 다룬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시네마 천국에서 중요한 것은 토토와 영화의 관계일 것이다:영화는 그의 삶에 있어 중요한 순간을 차지하였으며, 다양한 고전 영화들이 그의 삶을 관통하듯이 지나간다. 마치 다시 손에 잡을 수 없는 빛바랜 추억처럼 말이다.


하지만 지옥이 뭐가 나빠는 다르다. 지옥이 뭐가 나빠가 직간접적으로 인용하는 영화들은 우리가 '고전영화'라고 부르는 그런 고상한 것들이 아니다:이소룡의 용쟁호투의 직접적 인용과 파일럿 무비에서 드러나는 챤바라 물(베고, 베고, 베고, 또 벤다!), 야쿠자물의 인의와 시대착오적인 시대극의 모습들, 코카인을 한껏 들이키고 보이는 싸이키델릭한 환상이나 신체절단이 난무하는 고어 영화의 영향 등등 그야말로 '입에 차마 담기에는 너무나 천박하고 유치한' 물건들 뿐이다. 그렇기에 지옥이 뭐가 나빠의 히라타와 그 친구들은 토토와 정반대의 상황에 놓이게 된다:토토는 영화를 통해서 생계를 유지하였고(어렸을적 부터 그는 영사기사를 했었다), 성공을 하여 유명한 영화감독이라는 지위를 성취하였다. 하지만, 히라타와 그 친구들은 아르바이트로 삶을 연명하며, 한때 자신들의 아지트였지만 지금은 망해버린 극장에서 스크린도 아닌 브라운관으로 만든 파일럿 무비를 보고, 또 볼 수 밖에 없다.


그렇기에 어떤 의미에서 영화는 히라타와 그 친구들에게 '지옥'이다. 처음 사카키와 만난 이후, 10년이 흐르는 동안 그들은 아무것도 성취하지 못한채 시간을 낭비할 뿐이다. 결국 사카키가 무위도식하는 자신들의 상황에 분노하여 히라타 일행과의 절교를 선언하기까지 한다. 그들은 영화를 정말로 사랑하지만, 그들이 메인스트림에 오를 수 없다는 점에서(10년이 지나 폐허가 된 극장과 오락기기들처럼) 영화는 그들에게 영광스러운 굴레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주목할 점은 이러한 굴레에 대해서 늘어놓는 히라타의 장황하면서 바보같은 신념이다:이런 시궁창 같은 상황에서도 영화의 신은 우리에게 어떤식으로 기회를 줄지 모른다. 히라타가 말하는 영화에 대한 사랑은 바보같고 장황하며 앞뒤가 안맞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 속에는 분명하며 확고한 열의와 철학이 있다. 그리고 이는 영화를 관통하는 핵심이라 할 수 있다.


영화는 10년 전과 현재를 오가면서 리드미컬하게 진행된다:무토를 습격하려다 오히려 무토의 아내에게 당해서 실패한 이케가미는 무토의 딸인 미츠코를 만나면서 살아남을 수 있는 동력을 얻게 된다. 동시에 무토는 자신의 아내 덕에 습격에서 살아남았다는 빚을 졌으며, 동시에 일련의 항쟁으로 CF로 잘나가던 딸의 성공가도를 망친다. 재밌는 점은 이 둘의 주된 행동 원인이 미츠코라는 케릭터를 중심에 두고 있다는 것이다. 이케가미는 자신에게 살아나갈 수 있는 동력을 준 미츠코를 숭배(?)하고는 남자의 결단은 기모노다! 라 외치며 시대착오적인 야쿠자를 꾸리며, 무토는 야쿠자의 인의에 대한 일장설교를 늘어놓으며 일생일대의 결전을 앞두고 아내에 대한 인의를 지키겠답시고 영화팀을 만들어버린다. 미츠코로부터 시작된(엄밀하게 본다면 그 바보 같은 CM 덕분일 것이다) 이 비상식적인 황당한 행동들에는 히라타 같이 바보같지만 확고한 열의가 있다. 그리고 동시에 이들의 바보 같은 행동들은 야쿠자 영화의 클리셰에 대한 비틀기이다:조직원 사이의 의리라는 클리셰는 바보같은 영화 만들기로 바꾸며, 남자의 결단은 시대착오적인 기모노를 향한 결단이 된다.


그리고 히라타, 이케가미, 무토 외에도 영화에는 바보와 또라이들이 가득하다, 아니 바보와 또라이들 밖에 없다:얼떨결에 영화감독이 된 코지는 코카인을 한껏 흡입하고는 이마에 칼을 박고 몸개그를 하지 않나, 미츠코는 10년전 어린 시절부터 피웅덩이 가득한 바닥을 바라보며 시체 청소부를 부르고 성장한 뒤에는 맥주병 키스를 하는 등의 광기 넘치는 모습을 보여준다. 현실을 바라보라며 히라타와 싸우던 사카키는 기회가 생기자 다시 그 바보같은 노란 추리닝과 쌍절곤을 들었으며, 사카키가 아르바이트를 하던 점장은 자신의 음식점에서 깽판을 치던 사카키를 바라보며 따봉을 외쳐준다.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확고하며 바보같은 자기 미학과 철학을 가진 인물들에 의해서 진행된다. 


왜 영화는 이렇게 확고하면서 바보 같은 미학과 철학을 가진 인물들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전개하는 것일까? 여기서 다시 히라타의 시점으로 돌아와야 한다. 영화의 마지막 모든 친구들과 야쿠자들이 경찰에 의해 죽어버린 후 겨우 필름과 녹음 테이프를 회수하고 탈출하는데 성공한 히라타는 달려나가면서 해냈다! 라고 외친다. 그리고 그의 환상속에서 히라타 일행의 아지트였던 극장이 부활하고 여지껏 등장한 배우들과 함께 환호하는 모습이 스쳐 지나간다. 그가 만들고 싶었던 것은 부와 명예에 국한된 영화가 아니었다(그는 그런 쓰레기 같은 영화는 자신은 안 만들겠다고 극 중 내내 반복한다) 그가 만들고 싶었던 것은 그의 유년시절의 쿨했던 영화들의 존경이자 그에 대한 자신의 철학과 미학의 결정체였다. 그렇기에 그가 찍은 영화, 지옥이 뭐가 나빠에는 확고한 철학과 신념을 가진 바보들이 가득한 것이었다.


또한 지옥이 뭐가 나빠는 영화 바깥의 현실과 교차시키는 메타적인 관점에서 접근해서 바라볼 수도 있다:지옥이 뭐가 나빠는 자신이 만든 결과물에 의해 성공하고 거기까지의 과정을 반추할 수 있는 여유를 가진 장년층의 시네마 천국이 아닌, 소위 싸구려 영화에 심취하여 세상으로부터 존중받지도 못하지만 동시에 그것을 위해 오늘과 미래를 내던져버리는 요즘 시대의 청년층의 시네마 지옥에 대한 영화인 것이다. 하지만 히라타와 그 일행들은 오히려 되묻는다:그런 시네마 지옥이 뭐가 나빠? 그렇기에 그들은 자신의 영화에 대한 사랑을 거침없이 드러낸다. 그리고 이 사랑은 B급 영화의 매력처럼 바보같지만 멋있으며 폼에 죽고 폼에 사는 모습을 보여준다. 


하지만 동시에 지옥이 뭐가 나빠의 B급 정서에는 '음험함'이 대단히 옅다:영화의 유쾌함도 유쾌함이지만, 동시에 영화가 피가 엄청나게 난무하는 성인용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섹스에 대한 묘사가 적은 점에서 이를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이케가미의 미츠코를 향한 사랑은 전적으로 동경 또는 숭배에 가까우며, 무토는 자신의 연인을 아내에 대한 의리 때문에 내친다. 야쿠자들은 두목의 황당한 요구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이며, 칼 싸움을 넘어서 총을 꺼내서 서로 죽고 죽이는 장면마저도 유쾌하고 즐거운 놀이처럼 묘사한다. 즉, 영화는 피와 절단이 난무하는 B급 영화에 대한 순수한 사랑과 열정으로 만들어졌기에, 그런 어떤 '음험함'이 들어갈 요소를 의도적이든 의도적이지 않든 배제하였다고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본인은 어떤 의미에서 지옥이 뭐가 나빠는 소노 시온의 자전적인 영화라고도 생각하기도 한다. 히라타가 마지막에 달리면서 외친 해냈다! 라는 기쁨의 함성은 소노 시온 스스로의 외침일지도 모른다:나는 이런 바보 같은 영화를 드디어 만들었다! 하지만 여기서 '바보'라는 수식어는 욕설이나 비하의 의미가 아니라 애정어린 칭찬으로 보아야할 것이다. 그렇기에 지옥이 뭐가 나빠는 정말로 좋은 의미에서 바보 같은 영화이며, 그런 바보 같은 것에 애정을 가진 젊은 세대를 위한 시네마 천국이라 불릴만한 가치가 있다.






끝으로 지옥이 뭐가 나빠 엔딩곡을 첨부하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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