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니, 만화, 영화 이야기




*스포일러 있습니다.



열네 살 소년, 살인자 ‘머드’를 만나다! 14살 소년 ‘엘리스’는 절친 ‘넥본’과 함께 미시시피강 하류 무인도에서 나무 위, 놀라운 모습으로 걸려있는 보트를 발견한다. 아지트가 생겼다고 좋아하는 것도 잠시, 십자가가 박힌 구두를 신고 낡은 셔츠를 입은 채 팔에 뱀 문신을 한, 검게 그을린 ‘머드’가 소년들 앞에 나타난다. 사랑하는 여자 ‘주니퍼’를 위해 살인을 저지르고 도망 중인 ‘머드’는 ‘엘리스’와 ‘넥본’에게 도와줄 것을 요청하고, ‘엘리스’는 서로 사랑하는 그들을 위해 모든 것을 하는데…


테이크 쉘터 감독인 제프 니콜스의 신작 머드는, 참으로 클리셰스럽기는 하지만, 전적으로 '사랑'에 대한 이야기이다. 그리고 영화는 이를 은유나 비유가 아닌, 사랑이라는 키워드를 전면에 내세움으로서 한 소년이 성장하는 과정과 사랑의 이야기를 다루고자 한다. 그러나 주제와 이야기를 뻔히 드러냄에도 불구하고, 머드는 정말로 찬란하게 빛나는 영화라고 볼 수 있다:머드는 사랑의 다양한 형태(순애보에서부터 비뚤어진 자식/형제 사랑까지)를 공평하게 다루고, 이 다양한 모습을 지닌 사랑의 소우주들을 한 아이의 성장 과정속으로 압축하여서 서술하기 때문이다.


머드의 이야기는 전적으로 사랑에 대한 이야기이다. 영화는 끊임없이 사랑이라는 키워드를 제시하고, 그리고 모든 케릭터들의 동인을 사랑으로 설정하는 등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끊임없이 제시한다. 하지만, 영화는 대중매체가 흔히 보여주는 사랑만능주의적인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다. 오히려, 머드의 시작은 서로 사랑하는 것이 당연하리라고 생각했던 커뮤니티인 가족을 붕괴시키면서 시작한다. 부모가 이혼하면서, 주인공인 앨리스는 자신의 세계를 구성하는 대부분을 잃어버리고 가치관에 혼란을 느낀다. 그리고 붕괴하는 그의 작은 세계속에서 앨리스는 진정한 사랑에 목말라하며 그것을 갈구한다. 자신이 믿고 의지했던 세계가 무너지면 그것을 대체할 새로운 이야기, 새로운 중심축을 찾아야하기 때문이다. 머드가 자신의 진정한 사랑 주니퍼를 만나기 위해 숨어있다는 것을 안 앨리스가 그를 적극적으로 돕는 것도 바로 이 이유 때문이다.  


그렇기에 아칸소 촌뜨기이자 인디언과 미신을 자신의 행동근거로 인용하는 머드란 케릭터는 미시시피 강의 끝에서, 앨리스의 세계가 끝나는 지점에서 만난 기이한 인연이다. 나무에 걸린 보트처럼, 그리고 영화는 영화속 대사처럼 '어떻게 나무위에 보트가 걸리게 되었을까'라는 신비한 인연과 미시시피 강 하구 아칸소 주가 보여주는 독특한 자연경관이 맞물려 들어가면서 앨리스의 개인적인 성장통을 신비한 체험으로 다룬다. 이는 마이애미 주 끝자락에서 문명에 저항하며 쓰래기들을 모으고 자연적인 힘의 위력을 보여주었던 비스트 오브 서던 와일드와 유사한 부분이기도 하다. 하지만, 비스트가 허시퍼피라는 인물이 홍수와 파괴라는 세계의 양측면을 보고 세계를 극복할 힘을 얻어내는 과정이었다면, 머드는 앨리스와 머드의 만남, 그리고 머드에게 매료되었다가 그에게 실망하고, 다시 화해하는 과정을 통해서 소년이 성장하고 세계를 재발견하며 이해하는 이야기를 다룬다는 점에서 차이가 난다. 


앨리스가 머드를 통해 보는 것, 그것은 주술과 미신, 그리고 진정한 사랑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신비로운 인간을 통해서 기존의 가치질서들, 붕괴하는 자신의 세계를 회복할 수 있는 원동력을 발견한다:그것은 바로 지고지순한 사랑이다. 자신이 뱀이라는 악운에게 당한 것을 주니퍼가 구해주고, 그로 인해서 주니퍼에게 평생 빠졌으며 진정한 사랑을 위해서 헌신한다고 이야기한 머드는 주니퍼를 자신의 행운의 새라고 지칭한다. 여기까지만 본다면 한명의 남자가 한명의 여자에게 영원불멸한 사랑에 빠지는 평범한 러브스토리를 주술적인 세계관으로 재구성한 것일지도 모른다(그리고 이 지점이 앨리스가 처음 믿은 지점이기도 하다) 하지만, 주니퍼와 머드의 사랑은 앨리스가 생각한것처럼 지고지순하지 않았다:자신에게 문제가 생길 때만 머드에게로 돌아가고 다시 떠나는 일을 반복하는 주니퍼와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보같이 그녀를 위해서 헌신하고 끝내 살인까지 저지르는 머드. 뒤집어서 본다면, 뱀에게 물림으로서 주니퍼를 만나게 된 머드는 역설적이게도 주니퍼라는 뱀을 만난 셈이기도 한 것이었다. 그런 그가 앨리스와 넥본의 도움을 받아 나무에 걸린 보트를 내려서 물위에 띄우고자 하는 것, 다시 한번 주니퍼와 잘되기를 기원하지만 동시에 스스로 나서지 못하고 섬안에 틀어박힌체로 어린 아이들 뒤에 비겁하게 숨는(주니퍼를 직접만나지 않고 쪽지를 보내는 것) 것은 오히려 지고지순한 사랑이라기 보다는 일종의 현실도피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어찌보면 이는 처음부터 은유된 것이라고도 볼 수 있다. 이 신비한 이야기꾼은 자신이 있는 섬에서 떠나지 않고 세계와 마주하기를 거부하는 것처럼 보여지기 때문이다. 머드는 그런 자기 자신의 비겁함을 아이들이나 믿을법한 다양한 주술과 미신의 형태 뒤에 숨기고 있었던것일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부모가 없었던 머드에게 아버지 같은 존재였던 톰은 머드를 믿지 말라고 경고한다:그는 타고난 '거짓말쟁이'라고. 그러면 이 모든 사랑에 대한 이야기가 거짓일까? 앨리스와 넥본이 허클배리 핀 마냥 미시시피 강을 뒤지면서 벌였던 지고지순의 사랑이라는 가치를 지키기 위한 모험은 모두 의미가 없던 것이었을까? 여기서 먼저 짚고 넘어가야하는 점은, 톰의 머드에 대한 지적은 반절만 맞았다는 점이다:머드는 거짓말쟁이나 사기꾼이 아니다, 오히려 그는 '이야기꾼'에 가깝다. 톰에 대해서 암살자이자 CIA 출신이라고 이야기하는 지점들(사실 톰은 해병대 저격수 출신이었다)이나 그가 자신이 믿는 미신과 주니퍼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내는 지점들에서 머드의 모습은 전형적이며 탁월한 이야기꾼의 그것이라고 볼 수 있다:그리고 이야기꾼의 이야기에는 극적 재미를 위한 '허풍'이 수반되기 마련이다. 그렇기에 아이인 앨리스는 그러한 허풍이 드러나는 지점, 머드가 현실도피하고 어린아이들 뒤에 숨는 비겁자적인 모습을 발견하고 그에게 큰 실망을 하게 된다. 하지만 유념해야하는 점은, 이야기에 허풍과 과장이 섞여들어가게 되더라도 그 속에는 '진실'이 내포되어있기 마련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영화 머드는 여느 다른 성장물과 차별적인 지점을 드러낸다. 앨리스와 넥본이 머드를 도우면서 보고 듣고 경험했던 그 모든 것들, 영원한 사랑을 위한 일종의 주술은 실패했지만 동시에 사랑이라는 가치를 재발견하게 된다. 그리고 영화는 이 사랑을 차별없이, 그리고 평등하게 다루어낸다. 현실을 직시한 머드가 주니퍼에게 작별을 고하자 홀로 방에서 울음을 터뜨리는 주니퍼, 아버지 같이 머드를 꾸짖지만 머드에게 도움을 주는 톰, 부모 없는 넥본을 자식처럼 키우는 갈렌, 앨리스가 착각했던 첫사랑 메이, 심지어는 이혼하는 부모와 머드를 죽이려드는 킹과 그 부하들까지. 이렇게 가족의 사랑에서부터 사랑인것처럼 보였던 사랑, 그리고 뒤틀린 사랑까지 영화 속에서 다양한 사랑은 앨리스가 머드를 도우면서 만나게 되며 직간접적으로 경험하게 되는 그 무언가이다. 즉, 무너지는 세계 속에서 사랑의 가치관을 재확인하려는 앨리스는 머드의 허풍과 이야기 속에서 다양한 사랑의 형태와 조우하면서 성장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앨리스의 지고지순한 사랑을 원하는 주술행위와 머드의 허풍 섞인 이야기를 완성시키는 지점은 앨리스가 웅덩이에 빠져 뱀에 물린 것을 머드가 구해주는 것이다. 이 때, 앨리스는 사랑이 오로지 한사람을 향한, 지고지순의 사랑이 아닌 서로 다른 형태의 사랑들이 존재함을 깨닫게 된다:자신을 걱정하는 눈으로 바라보는 부모에게 사랑한다고 이야기하는 지점 등에서 말이다. 역설적이게도, 뱀이라는 악운을 통해서 사랑이라는 행운을 재확인하는 지점에서 영화에서의 사랑은 양가적인 속성으로 드러난다. 만나고(앨리스-머드) 해어지며(머드-주니퍼), 사랑을 떠나보내고(앨리스의 부모) 동시에 새로운 사랑을 맞이하는 지점들(톰-머드)을 통해서 영화는 사랑의 이야기를 완성시킨다.


영화 머드는 아칸소 주의 이국적인 풍경과 함께(비스트 오브 서던 와일드에서 보여주는 기묘한 미국의 이미지와는 또 다른), 신비로운 이야기꾼과 사랑의 이야기를 매력적으로 다룬다. 어찌보면 마크 트웨인의 허클배리 핀의 모험과 같은 성장물의 연보에서 같이 놓고 볼 수 있는 새로운 고전이지 않을까, 라는 생각도 스쳐지나갈 정도로 영화는 인상적이며 훌륭하다. 꼭 기회가 된다면 보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