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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담배에 불을 붙였다(진구지 사부로)


아도르노의 문학 이론은 상당히 순진하지만, 어느정도는 진실에 기초하고 있습니다. 인간은 선사시대 이후로\ 현실과 이상 사이의 괴리를 경험하는데, 문학이란 그 이상으로의 회귀에 대한 이야기라고. 물론 모든 문학 장르가 여기에 포함되는 것은 아니지만, 하드 보일드란 무엇인가에 대해서 생각할 때는 상당히 쓸만한 이론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사실, 어느 사조보다도 하드보일드는 이상적인 순수한 세계에 대한 갈망을 역설적으로 드러내고 있습니다. 헤밍웨이의 소설들이나 지금 여기서 이야기하고자 하는 레이먼드 첸들러의 '안녕 내사랑'처럼 말이죠.


필립 말로, 너무 유능해서 잘린 전직 조사관이자 사설 탐정, 바바리 코트에 담배, 시니컬한 성격, 더러운것과 어울리지만 동시에 그 더러운 것에 물들지 않는 묘한 케릭터성, 사실상 우리가 생각하는 사설 탐정의 모든 것을 갖춘 케릭터죠. 오죽하면 어떤 평론가는 '필립 말로 덕분에 많은 탐정 소설의 주인공들이 전직 조사관에 시니컬한 인간이 되고 말았다'라고 할 정도니까요. 필립 말로가 지금까지 사랑받을 수 있는 이유는 바로 그 경계선에서 세상의 추함을 시니컬한 시선으로 바라보지만 어느정도 선을 지키는 미묘한 케릭터성 덕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레이먼드 첸들러는 이렇게 표현했죠:현대를 사는 정의의 기사 같은 느낌이라고.


'안녕, 내 사랑'은 전적으로 사랑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자신을 밀고한 애인 때문에 감옥에 갔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를 사랑한 한 남자, 애인을 배신하고 자신의 출신을 속여서 부를 거머쥔 여자, 비굴한 헐리우드 연애 매니저와 수상한 점쟁이, 그리고 마지막 인물인 사설 탐정. 소설은 살인과 음모, 범죄에 대한 이야기들로 가득차 있습니다만, 재밌게도 소설의 핵심에는 '사랑'이 있습니다. 남자는 애인이 배신한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그녀를 만나고자 했죠. 살인, 추적, 음모, 그리고 그 끝에서 필립 말로가 남자와 여자를 만나게 했을 때, 여자는 남자를 총으로 쏴죽이죠.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그녀의 총에 맞기 직전까지, 남자는 자신을 배신한 여자를 사랑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을 목격하고 이해한 단 한 사람, 사립탐정 필립 말로만이 조용히 지켜볼 뿐입니다.


주인공 필립 말로는 인간의 욕망과 추악한 모습이 들끓는 LA와 헐리우드를 배회하면서 남자, 그리고 진실을 추적합니다. 아무도 진실에 대해서 신경쓰지 않을 때, 유일하게 진실을 추적하죠. 이러한 과정을 레이먼드 챈들러는 거의 '시'의 경지로 끌어올립니다. 그리고 필립 말로의 날카로운 통찰력은 독자들에게 일종의 카타르시스를 제공합니다. 사실, 그 속에서 살아가는 것은 우리입니다. 우리 역시 완벽하게 선할 수 없기에, 악과 타협하면서 적당히 살아가죠. 하지만, 필립 말로는 타협하지 않습니다. 시니컬해지고 적당히 맞장구를 쳐주겠지만, 그는 진실만을 추구하죠. 어찌보면, 선과 악이 모호한 삶을 사는 현대인들에게 있어서 가려운 곳을 긁어주는 영웅이라 할 수 있죠.


흠, 개인적으로는 시간 죽이려고 본 작품인데, 마음에 드는 시리즈입니다. 모두 찾아볼 거 같군요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