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이야기/게임 리뷰




게임 플래이를 적절하게 표현한 짤방


 지난 90년대 이후, 게임은 다양한 방식으로 진화하여 왔습니다. RTS, FPS, TPS, MMORPG, RPG, 핵 앤 슬레쉬 등등 다양한 장르와 게임들이 만들어졌고,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다양한 게임들의 분명한 공통점은 하나 존재합니다. 그것은 바로 시간이 지나면 모두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다는 점이죠. 그러나 이번 글에서 언급하는 게임은 근 20년이 넘는 시리즈의 역사 동안 크고 작은 변화점은 있었지만, 기본은 이미 20년 전에 완성된 작품이죠. 그리고 20년 동안 수많은 게이머를 매료시킨 작품, 그것은 바로 시드 마이어의 문명 시리즈 입니다.

 91년 보드 게임을 기반으로 만든 문명 1이 나온 이후로, 문명 시리즈는 4개의 시리즈와 6개의 확장팩, 2개의 외전(문명 4-콜로나이제이션, 문명-알파 센타우리)을 내었고, 팬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아왔습니다. 심지어 2000년 이후로 가속화된 턴전략 시뮬레이션의 몰락에도 불구하고 문명 시리즈는 아직까지도 턴전략 베이스의 시뮬레이션을 고수하고 있고, 크고 작은 변화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기본적인 시스템은 동일하죠. 그 덕분에, 시리즈는 모든 시리즈가 고른 완성도와 재미를 보장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사실, '문명'이란 작품은 생각외로 상당히 '단순한' 작품입니다. 일반적인 게임들이 전투면 전투, 생산이면 생산, 경제면 경제 등의 한 가지 분야에 집중하는데 반해서 문명은 간단하지만 다양한 요소들을 한데 뭉치게 만드는데 집중하죠. 문명의 건설, 문화, 과학의 연구, 전쟁, 외교 등등...문명이란 게임은 인간이 여태까지 걸어왔던 모든 것을 다루고 있죠. 문자 그대로 '문명'의 흥망성쇠를 다루고 있고, 이것은 '문명' 이란 다른 게임들과 차별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개척자 한 명과 전사 한 명으로 시작해서, 세계를 재패할 수 있다는 것은 상당히 매력적인 일이니까요.

 또한 '문명'은 단순한 부분의 합이 시너지를 일으킨다는 점에서 훌륭한 작품입니다. 실제 하나 하나의 요소는 그렇게 혁신적이지 않지만, 모든 요소가 유기적인 관계를 맺으면서 복잡한 현상을 일으킨다는 점, 특히 문명 4편의 전쟁-문화-종교-외교 간의 복합적인 관계는 대단히 놀라운 경험입니다. 이로 인해서 '문명'을 파고 들면 파고들 수록, 다른 게임들과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깊이를 보여줍니다.

 그리고 문명은 이렇게 복잡한 게임임에도 불구하고, 인터페이스나 게임 내에서 사용하는 단어나 언어의 수준이 상당히 쉽습니다. 한국 고등학교 수준의 영어 교육과 약간의 생활 상식 영어만으로도 대부분의 게임 진행을 할 수 있으며, 게임은 정보의 접근, 원하는 요소의 탐색, 정보 분석의 용이성 등에서 엄청난 완성도를 보여주죠. 물론 이러한 문명의 인터페이스가 왜 대단한가에 대해 의문을 가지실 분들도 많을 겁니다. 이럴 때는 게임의 완성도가 인터페이스와 정보 전달의 어려움으로 인해서 망해버린 작품 마스터 오브 오리온즈 3편과 비교하면 금방 알 수 있습니다.

 마스터 오브 오리온즈 3편은 제가 누차 말씀드리는 것이지만, 게임 자체에 엄청난 깊이가 있을지 몰라도 정보 정리에 있어서 이미 거대한 재앙 수준에 가깝습니다. 은하 제국의 재정이 어떻게 되는가 보려고 재무 탭을 눌렀더니, 모 대학교 재무 관리 수업에나 나올법한 엄청난 양의 숫자와 이해 불가능한 표들이 잔뜩 있고, 연구 관리 탭은 이미 블랙홀 너머의 카오스를 보여주고 있죠. 즉, 문제는 게임이 게이머가 처리할 수 없을 정도로 과도하고 정리되지 않은 정보를 전달하기 때문에 게임 자체의 완성도까지 깎아 버리게 되었다는 점입니다.
 
 이와 반대로 '문명'은 게이머가 처리 할 수 있는 양의 정보를 게이머에게 제공합니다. 전반적인 게임의 상황, 재정, 전쟁, 외교 상황, 연구 상태 등 게임 상의 모든 정보는 게이머에게 직관적으로 다가갈 수 있게끔 정리하고 있죠. 거기에 게임은 지속적으로 게이머에게 힌트 및 그 선택이 갖는 의미(가령 '생산' 중심이라든지, '국방' 중심이라든지) 어떤 방향으로 나가면 좋은지, 어떤 방식으로 게임을 진행하면 어떤 효과를 불러일으키는지를 보여줍니다. 즉, 문명은 게이머가 처리 할 수 있는 정보의 양과 내용을 정리 및 통제하고 그리고 게이머에게 지속적으로 선택이 갖는 결과 및 성향에 대해 환기함으로서 게이머가 큰 불편 없이 게임을 즐기게 하는 여건을 조성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여건은 게이머를 게임 내에 점점 몰입하게 만들죠.(물론, 본격적으로 파고들면 자신만의 빌드와 전략으로 게임을 진행하게 되겠지만)

 결론적으로, 문명은 게임 역사에 길이 남을 명작입니다. 현재 시드 마이어는 최신작인 문명 5를 제작하고 있으며, 올해 가을에 발매할 예정입니다. 지난 20년 동안 문명 이란 작품이 게이머에게 엄청난 이미지를 심어주었고, 앞으로도 그럴 것입니다만, 문명 시리즈도 언젠가는 끝이 나겠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명'이란 게임 시리즈와 시드 마이어란 이름은 게임 역사에 길이 남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