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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 만화, 영화 이야기/리뷰



원래는 감상예정에 들어있지 않은 작품입니다만, 어쩌다 보니 가족 극장으로 부모님과 함께 보게 되었습니다. 이게 제가 감상한 데이비드 크로넨버그 감독의 두 번째 작품(첫번째는 이스턴 프라미스)인데, 여러 가지 의미에서 대단히 충격적인 작품입니다. 당시 1980년대에 이런 작품을 만들었다는 것에서부터 주제나 이를 표현하는 방식까지 지금 봐도 놀랍다고 할 수 있더군요.

영화는 포르노 TV 체널을 운영하고 있는 맥스가 비디오드롬이라는 스너프(실제 사람을 고문하고 죽이는 영상물)를 보게 되면서 환상을 보게 되고, 그의 인생이 어떻게 파괴되는가를 보여줍니다. 처음 주인공인 맥스가 이 스너프 프로그램인 비디오드롬에 관심을 가지는 이유는 비디오드롬이 대단히 자극적이기 때문입니다. 그는 그 모든 것이 짜여진 각본대로의 이루어지는 허구라고 봅니다. 하지만 그 후, 그가 비디오드롬이 극본이나 각본대로 연기한 것이 아니라 실제로 사람을 죽이는 스너프라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그는 이렇게 이야기하죠. "왜 그런 모험을 하는거지? 가짜로 하는 것이 실제보다 덜 위험하고 비용이 덜 들잖아?"

영화 내에서 비디오드롬이 위험한 이유는 그것이 단순한 스너프가 아니라 철학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 철학은 바로 '더 강한 자극'입니다. 즉, 스너프라는 그 살인의 기록 자체보다 더 무서운 것은 그 목적인 더 강한 자극입니다. 브라이언 오블리비언(Oblivion, 망각이라는 의미입니다.) 교수는 이를 텔레비전과 결부시켜 '텔레비전은 인간의 망막이며, 그것은 단순히 보는 것 이상이다.'라고 암시를 하죠. 그리고 TV에서 일어나는 자극을 받아들이는 것, 그것은 오감과 다른 인간이 새로운 감각이 될 것이며 비디오드롬은 그러한 새로운 감각을 위한 자극의 시초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또한 그러한 인간의 새로운 자극은 인간을 실제와 환상, 이 둘을 구분할 수 없게 만들고 주어진 프로그램(테이프, 비디오드롬)에 순응하는 광신도적인 인간을 만들어 냅니다.

이러한 '더 강한 자극'은 주인공인 맥스의 신체와 기계의 결합으로 이어집니다(총과 손의 결합, 그리고 비디오와 인간의 결합) 애시당초부터 인간은 그러한 자극을 받아들이기에 적절하지 않으니, 그러한 자극을 받아들이기 위해서 새로운 감각을 수용하는 과정입니다. 거기에 이러한 비디오를 위시한 새로운 매체들, 이것이 기술의 발전에서 왔다는 것과 인간과 기계의 이질적인 결합은 결과적 인간을 파괴할 수 밖에 없다는 크로넨버그 감독의 지론도 드러나는 것입니다. 이렇게 기계와 결합한 주인공은 처음에는 베리의 명령을 따르다가, 오블리비언 교수의 딸에 의해서 프로그램이 바뀌니까 역으로 베리를 공격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결국은 기계와의 결합을 통해서 인간성이 사라지고 자극에 따라 움직이는 수동적인 인간을 보여줍니다.

이 영화는 인간의 감각 기관과 정보 능력을 확장시키는 미디어라는 새로운 기계 감각에 대한 경고를 하고 있습니다. 요즘은 이러한 담론이 대단히 발달하였기 때문에, 그렇게까지 놀라운 주제는 아니지만, 20년전 비디오라는 매체가 점점 보급되기 시작하였을 때 크로넨버그는 이러한 혜안을 가지고 기술 문명을 경계한 점은 대단히 충격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인간이 무너지는 과정과 그 폭력을 자극적이지 않지만 대단히 인상깊게 사람들의 머릿속에 박아버립니다. 총에서 기계가 자라나서 주인공의 팔과 결합하는 부분, 주인공의 배에 비디오 데크가 생기는 것 등은 그런 부분을 잘 보여주는 대단히 인상깊은 장면입니다.

영화의 마지막, 맥스가 스스로의 머리에 총을 겨누면서 "Long Live With New Flesh"이라 말하고 자살합니다. 결과적으로 인간성이 없어진 인간은 스스로 자멸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결말입니다. 근데 그것이 지금 이 시대에도 먹힌다는 것이 더 무섭네요.


덧.글이 너무 길어지는거 같아서 그냥 갈아엎은 글입니다. 뭔가 많이 부족한듯;


 

게임 이야기/게임 리뷰



이번 IGF(Indie Game Festival) 2008년도 학생 개발 부분 당선작 중 하나인 시티 레인은 환경 친화적인 도시를 세우는 것이 목표인 게임입니다. 게임은 간단합니다. 게임 내용 자체는 심시티와 똑같은데, 여러분은 기본적으로 주거, 상업, 공업 지구를 설치하고 각각의 시민들의 욕구들(교육, 치안, 위생 등등)을 만족시키는 특수건물을 짓는 것입니다. 하지만, 시티 레인과 심시티 사이의 결정적인 차이가 있다면 그것은 바로 건물을 여러분들이 설치하는 것이 아니라, '하늘에서 떨어지는' 건물을 땅에 내려놓는 것입니다. 즉, 옛 고전 게임 중 하나인 3D 테트리스의 개념을 도시 건설 게임에 적용시킨 것입니다.

시티 레인은 이렇게 시뮬레이션과 퍼즐이라는 이종적인 장르를 아주 멋지게 조합합니다. 먼저 기본적으로 여러분들은 친환경적인 도시를 만들기 위해서 필요한 모든 것은 하늘에서 내려옵니다. 타일은 크게 6가지로 분류될 수 있는데, 기본적인 주거 상업 공업 지구 타일, 그리고 학교 등의 복지시설 타일, 쓰레기 타일, 특수 건물 타일, 발전소 타일, 마지막으로 복지시설과 기본 시설 타일이 섞인 복합 타일입니다. 각각 종류의 타일들은 도시의 각각의 욕구들을 충족시키는데 있어서 필수적인 요소이며, 이것들은 랜덤으로 떨어지기 때문에 되는데로 무조건 내려놓는다면 게임오버 당하기 십상입니다.

이러한 타일들은 같은 종류끼리 겹쳐놓아서 그 타일의 효율성과 능력을 극대화 시킬 수 있습니다. 즉, Lv 1의 경찰서 보다 Lv 2의 경찰서가 더 많은 구역의 치안을 담당할 수 있다는 것이죠. 이러한 같은 종류의 타일을 겹쳐놓으면 여러 가지로 관리하기 편한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위에서 언급했던 복합 타일은 기존의 테트리스 블록과 같은 정사각형 등의 여러 타일이 합쳐진 모양을 하기 때문에, 타일을 특정 구역에 모아주기가 힘들어지게 됩니다. 이로 인해서 도시는 불필요한 확장을 하게 되고, 게이머가 관리하는 영역은 점점 늘어나게 됩니다. 하지만 이러한 확장을 피할 수 있는 한가지 방법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기존의 도시의 타일과 떨어지는 타일 사이에 겹치는 부분이 있으면 그 부분을 겹치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타일도 업그레이드 되고, 공간도 절약하니 일석이조입니다. 하지만, 서로 다른 타일을 겹치게 한다면 먼저 있던 건물이 파괴되면서 게이머에 대한 도시의 지지도가 떨어지기 때문에 주의하여야 합니다.

이 게임, 시티 레인은 친환경 도시를 만드는 것이 목표인 게임입니다. 게이머가 도시를 만들고 확장하고 넓히게 되면, 환경 오염과 쓰레기가 많이 생기게 됩니다. 게이머는 어떻게 되든 간에 이를 필사적으로 줄이지 않는다면 시민들의 지지도가 낮아지게 되면서 게임오버 당하게 되죠. 예를 들어서, 공장을 크게 확대하거나 화력이나 원자력 발전소를 짓게 되면 그만큼 도시의 오염도가 올라가게 됩니다. 또한 도시의 규모가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많이 발생하는 쓰레기 타일은 쓰레기 매립지가 아닌 다른 공간에 잘못 쌓아두면 도시 타일에 피해를 주면서 환경 오염을 높이고 지지도를 엄청 낮추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친환경 도시를 만들기 위해서는 과도한 공장 설립이나 도시 확장 등은 자제하게 됩니다. 또한 그러한 환경 오염을 막기 위해서 게이머는 다양한 특수 타일들을 설치하게 됩니다. 예를 들어서 쓰레기가 많이 생긴다면 재활용 센터, 물이 오염되면 정수장 등을 설치해서 그러한 환경문제를 해결할 수 있습니다. 이 게임의 시나리오 진행을 통해서 게이머는 이러한 다양한 특수 타일의 잠금을 해제해서 사용할 수 있도록 합니다.

이와 같이 시티 레인은 친환경 도시를 만든다는 교육적인 목표와 심시티+테트리스 라는 독특한 결합을 통해서 게임성과 게임의 목적 두가지를 성공적으로 얻어낸 사례입니다. 다만 한가지 흠이 있다면 애시당초부터 Xbox 라이브 아케이드를 노리고 만든 게임이기 때문인지, 게임의 조작 자체가 엑박 패드에 맞추어져 있습니다. 그리고 키 설정을 위한 컨피그도 없구요. 하지만 그러한 사소한 단점은 이 게임의 위대함을 가리기에는 너무나 턱없이 부족하고, 테트리스와 심시티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라도 추천할 수 있는 게임입니다.


게임 구하는 곳:프리웨어입니다. 공식 홈페이지는 여기(http://www.cityrainbs.com/)
하지만 지금은 공사중입니다.

게임 이야기/게임 리뷰



이번 2008년 Ubi에서 출시한 페르시아의 왕자는 2002년 Ubi에서 나온 시간의 모래 트릴로지ㅡ시간의 모래, 전사의 길, 두 개의 왕좌ㅡ를 끝내고 나온 새로운 페르시아의 왕자 트릴로지의 첫 작품입니다. 전 시간의 모래 트릴로지가 아니라 새로운 트릴로지를 만드는 것이니 이번 페르시아의 왕자는 새로운 분위기와 시스템 등의 변혁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때문에 이번 페르시아의 왕자는 기존의 팬들과 평단들의 평이 대단히 갈리고 있습니다.

원래 Ubi 페르시아의 왕자 프랜차이즈의 시작인 2002년도 시간의 모래가 1990년과 1993년에 나온 브로드번드의 도스 게임 페르시아의 왕자 1편과 2편을 재해석해서 3D 게임으로 훌륭하게 옮겨놓았고, 액션 게임에 있어서 한 획을 그었다고 할 수 있는 작품입니다. 도스 시절 게임의 명작인 페르시아의 왕자 1&2는 동화적인 분위기와 트랩과 몬스터로 스테이지를 구성하고, 깔끔한 그래픽 등 당시 도스 게임 치고 대단한 완성도를 보여주었습니다. 1과 2편이 워낙이 성공하였기 때문에, 이러한 도스 시절의 2D 아케이드 게임을 Ubi가 시리즈화 하기 전에 한번 3D의 세계로 옮겨 놓았는데, 그것이 바로 페르시아의 왕자 3D입니다. 하지만 3D는 완성도나 인기 등에 있어서 1&2에 미치지 못하는 완성도를 보여주고 흑역사로 묻히게 됩니다.

이렇게 고전 명작 게임이 역사속으로 묻히려 할 때, Ubi에서 페르시아의 왕자 판권을 사서 2002년에 만든 것이 페르시아의 왕자:시간의 모래입니다. 시간의 모래는 도스 시절의 명작 게임을 어떻게 하면 훌륭하게 재해석하는지를 보여주는 작품인데, 기존의 동화적인 분위기를 차용하면서 여기에 곡예라는 요소(요즘 유행하고 있는 스포츠인 파쿠르, 혹은 야마카시)를 집어넣게 됩니다. 즉, 트랩과 적으로 구성된 스테이지를 왕자가 벽을 타거나 공중재비를 돌거나 기둥을 타는 등의 다양한 곡예로 해쳐나가는 구성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하지만 아슬아슬한 순간에서 곡예를 하는 것들이 많기 때문에, 실수를 하면 한번에 죽게 되고 이것이 게임의 전체적인 난이도를 올리게 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에 대해 시간의 모래는 '시간을 되돌린다'라는 개념을 게임에 적용합니다. 왕자는 언제든지 시간의 모래를 사용해서 트랩을 피하다 죽기 전의 상황으로 돌아가거나 전투에서 유리한 고지로 되돌아 갈 수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페르시아의 왕자:시간의 모래는 대단히 훌륭한 작품입니다. 그 후에 나온 전사의 길이나 두 개의 왕좌도 나름 훌륭한 작품이지만, 시간의 모래라는 작품이 먼저 시리즈의 기반을 탄탄하게 다져놓았기 때문에 전사의 길이나 두 개의 왕좌에서 다양한 실험(무규칙 콤보 시스템, 다크 프린스 시스템 등)을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번에 나온 페르시아의 왕자는 전 시간의 모래 트릴로지와는 전혀 연관이 없는 새로운 작품입니다. 즉, 전작들과 다른 시스템을 차용해야 한다는 것이죠. 기본적으로 곡예라는 기조를 유지하면서, 어떻게 난이도를 어렵게 하지 않고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정도로 하는가? 이번 페르시아의 왕자는 그러한 질문에 대해서 '엘리카의 구원'(저희 아버지는 수호천사 엘리카라고 하지만;)이라는 시스템을 도입합니다.

'엘리카의 구원'은 왕자가 곡예를 하다 떨어지거나 오염되거나 심지어 전투중에 적에게 몰려서 죽을 위기에 처하게 되면 엘리카가 구해주는 시스템입니다. 사실, 엘리카가 전작의 시간의 모래의 역할을 대신한다고 보면 되지만, 특이한 점은 엘리카가 왕자를 구원하는 회수가 무한이라는 점입니다. 보스전에서부터 일반 적, 그리고 심지어 마지막 아리만과의 싸움에서까지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왕자를 구합니다. 이것 때문에 페르시아의 왕자는 전반적으로 난이도가 내려가게 됩니다. 원래 페르시아의 왕자 시리즈가 그렇게 까지 쉬운 작품은 아니었습니다만(사실 쉽다는 시간의 모래도 일반적으로 보면 어렵다고 해야 하니), 이번 페르시아의 왕자는 요즘 게임치고도 대단히 쉽다고 할 수 있으니 말 다한 셈. 이거 때문에 많은 팬들이 이번 작에 대해서 평이 갈리는 것입니다. 물론 후반으로 가면 갈수록 트랩의 길이가 길어지거나 트랩이 추가되면서(보스 클리어 시, 각 보스의 트랩이 추가됩니다.) 실수하면 다시 처음부터 시작해야 하는 등의 어려움이 있지만, 결과적으로 게임오버가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난이도는 낮다고 볼 수 있습니다.

또한 전작에 비해서 전투의 비중이 줄었다는 점도 큰 변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시간의 모래 트릴로지도 물론 그렇게 까지 많은 전투를 가지고 있지는 않지만, 비율 상으로 따진다면 4:6으로 전투의 비중이 은근히 많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번 작에서는 전투의 비중이 2:8로 엄청나게 줄었고, 전투 자체도 게임 오버 자체가 없어졌기 때문에 전반적인 긴장감은 덜한 편입니다.

오히려 이번 페르시아의 왕자는 게임 시스템적인 측면에서 변화를 주기 보다는 게임 속 케릭터와 분위기 맞추기에 집중합니다. 전반적인 스테이지 구성은 전작인 시간의 모래 트릴로지와 달리 처음으로 GTA와 같은 자유로운 맵 탐색이라는 시스템을 도입합니다. 물론 GTA만큼의 자유도를 주는 것은 아니지만, 게이머는 시리즈 처음으로 독특한 분위기의 신전과 도시를 자기 내키는 대로 탐색할 수 있습니다. 여기에 게임오버가 없다는 점, 그리고 전작과 다르게 카툰 렌더링을 이용한 넓고 시원스러운 배경과 오염되었을 때 차가운 느낌이었던 공간이 정화되고 나서는 따스하고 아름다운 스테이지로 바뀌는 점 등은 시각적인 재미를 줍니다. 저는 게임을 하는 내내 '세계를 구한다'라기 보다는 '소풍을 나왔다'는 느낌이 더 강하게 느껴지더군요.

그리고 스테이지 마다 상황이나 장면의 연출이 대단히 좋다고 할 수 있는데, 총 16개가 되는 스테이지가 각기 다른 상황이나 장면을 연출하면서ㅡ예를 들어서 왕자가 오염되어서 시간이 촉박한 부분이나, 워리어가 건물을 부숴서 건물이 무너지는 상황에서 정화를 한다던가ㅡ 게임 내에서 나름대로 긴장감을 줍니다(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게임오버는 없지만;) 적어도 소풍 나온 거 같은 분위기를 내지만, 게임의 긴장감 자체를 없애지는 않겠다는 취지겠죠. 그러한 면에서 게임 내에서 전투 또한 게임의 전반적인 분위기를 유지하는데 도움을 줍니다. 사실, 스테이지에서 스테이지로 넘어가는 동안 트랩만 잔뜩 있다면 게임이 지루해질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막간에 전투를 집어넣어서 게임플레이에 있어 나름대로의 변화를 줍니다.

사실, 이번 페르시아의 왕자에서 전투는 일반적인 게임에서 '저 놈을 쓰러뜨리지 않으면 내가 죽는다'가 아닙니다. 애시당초부터 이 게임은 게임 오버가 없으니까요. 이번 페르시아의 왕자에서는 전투가 마치 일종의 미니 게임이며 동시에 연출을 즐기기 위한 막간극입니다. 전투는 단순한 버튼 조합으로 대단히 화려한 연출을 보여주며, 그리고 적들에게 몰렸을 때 생기는 버튼 액션으로 전투를 역동적으로 진행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는 이번 작에서의 전투를 나름대로 괜찮다고 느꼈고, 그 빈도가 적은 것이 아쉽더군요.

이번 페르시아의 왕자는 엄밀히 이야기해서 왕자와 엘리카, 이 둘에 초점을 맞춘 케릭터 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현실적이면서 수다쟁이지만 싫지는 않은, 너스레를 잘 떠는 왕자와 충실하며 굳은 의지에 신념에 충실한 공주 엘리카라는 서로 반대되는 케릭터 구성을 보여줍니다. 이 둘은 스테이지를 정화하고 난 다음이나 혹은 대화 버튼을 눌러서 나누는 잡담은 둘 사이의 관계와 케릭터 형성을 도와줍니다. 그렇기 때문에 처음 티격태격하다가 서로에 대해서 알아가고, 마지막 엔딩에서의 왕자의 선택을 보는 사람이 받아들일 수 있게 하고 또한 감동적으로 다가옵니다. 게다가 성우의 연기가 좋기 때문에, 왕자와 공주 두 케릭터가 억지스럽게 느껴지지 않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만듭니다.

그러한 몇몇 실험을 제외하면 페르시아의 왕자는 미묘한 흠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바로 게임의 플래이 타임이 미묘하게 짧다는 점입니다. 주요 빛의 씨앗 540개만 모으고 난 뒤에는 게임 엔딩까지는 거의 일직선으로 달려 나간다고 할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빛의 씨앗이 1001개라는 점과 은근히 올라가기 힘든 자리나 카메라를 이리저리 잘 돌려야지 보이는 씨앗이 있다는 점 등은 1001개를 모으겠다고 마음만 먹으면 플래이 타임을 많이 늘려주는 요소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일단 엔딩 자체만 놓고 본다면, 이번 페르시아의 왕자는 새로운 트릴로지의 시작을 알리는ㅡ이미 트릴로지로 만들겠다고 발표는 했지만ㅡ 작품입니다. 어떻게 본다면 이번 작에서 쌓아놓은 엘리카와 왕자, 그 둘의 관계는 다음 작품에서 어떤 식으로 다룰 것인지가 대단히 기대가 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번 작에서 보여주었던 여러 실험들을 다음 작에서 다듬어서 완성시켰으면 합니다. 뭐, 이 작품 자체로도 대단히 훌륭한 작품이고 '게임은 어려워야한다' 혹은 '게임은 아등바등 매달리면서 해야 한다'는 느낌이 아니라 느긋하게 소풍나가는 듯한 기분으로 즐기면 되는 게임입니다. 어떤 의미에서는 정신 정화용이나 치유용으로 하기에는 적절한 게임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저도 아마 가끔가다가 심심하면 게임을 꺼내서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게임 이야기/게임 Life


-원래는 다음주 월요일부터 정식 오픈 베타 테스트를 하지만, 소울스톰을 구매한 사람에게 있어서는 일주일 먼저 베타를 할 권한을 주게 되었습니다. 개인적으로 DOW:소울스톰은 게임 인생에 있어서 최악의 확장팩으로 찍혔기 때문에 마음에 안들었지만, 이번 베타 테스트 기회를 생각해서 샘샘으로 쳤습니다. 물론 현재 스팀에서 소울스톰을 약 7$에 팔고 있기 때문에, 많은 부분 손해를 본거 같지만 별 상관 없다는 느낌도 드는군요(......)

-바뀐 점은....거의 전반적인 부분입니다. 일단 가장 눈에 띄는 점은 조촐하게(?) 종족이 4개로 줄었다는 점입니다. DOW:SS에서 종족이 9개까지 늘어나서 벨런스 조정이 힘들었던 점을 감안하면 반가운 소식입니다. 혹은 이제부터 확장팩 러쉬로 진영을 다시 9개까지 추가할지도 모르지요(.....)

-일단 렐릭식 RTS의 완성작이라고 할 수 있는 COH(컴퍼니 오브 히어로즈)의 시스템을 잔뜩 차용했습니다. 엄폐 시스템에서부터, 중대 지원 트리에서 이어지는 영웅 선택 트리,  승리 거점 시스템까지. 물론 승리거점이나 엄폐 시스템은 DOW때부터 있었던 것이지만, DOW2에서는 약간의 이동력 페널티와 소소한 방어력 보너스를 주었던 1편보다는 오히려 엄폐의 개념이 보병의 생사를 좌우하는 COH쪽에 가까운 느낌. 일단 원거리 공격 유닛들이 건물이나 담장 등의 뒤에 숨어서 강한 엄호(Heavy Cover)를 받고, 반대로 트인 공간에 놓인 유닛들은 강한 엄호를 받는 적들에 비해서 대단히 불리하다고 느끼는 것이 COH에 가깝다고 할 수 있습니다.

다만 마냥 같다고는 할 수 없는데, 그것은 DOW 특유의 근접전 시스템 때문입니다. COH에서는 백병전 개념이 없었지만 DOW2에서는 거의 대부분의 유닛이 백병전을 지원(혹은 백병전이 더 뛰어난)하기 때문에, COH보다는 엄호 시스템의 비중이 좀 줄어들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헤비 볼터를 들고 엄폐한 텍티컬 마린 분대에게 미쳤다고 누가 뛰어들겠습니까? 그래도 아예 없는 듯 했던 DOW보다는 강화된 시스템입니다.

-자원은 기존의 전기+징발 자원에 전투를 통해서 얻어지는 각 종족마다의 특수 자원 구성. 특이한 점은 전기 자원도 이제 거점을 점령한 후에 업그레이드를 통해서 얻어내는 양을 늘리는 방법을 채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징발 자원은 기본적으로 생산되는 자원이 3자리 단위이기 때문에, 징발 자원보다는 전력 자원 중심으로 자원 점거가 이루어 질 듯 싶습니다.

- 하지만 렐릭의 전작들에 비해서 달라진 점은 바로 본진의 의미가 바뀌었다는 점입니다. 일단 COH 까지는 건물 테크 트리를 타면서 기갑, 보병 등을 선택적으로 생산하는데 반해서 DOW2에서는 아예 본진 하나에서 모든 유닛을 생산합니다. 일꾼이나 건설 유닛같은게 전혀 없지요. 게다가 기본적으로 충원이 이제는 아예 본진에서 밖에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하지만, 충원속도가 전작에 비해서 엄청나게 빨라졌기 때문에 퇴각한 병사들을  충원해서 다시 전장으로 복귀시키는데 시간이 얼마 걸리지 않습니다. 즉, 본진까지 적을 밀었을 경우, 본진 채로 적을 없애기는 이제 많이 힘들어졌다는 것. 그리고 본진의 징발 자원 생산량이 엄청나기 때문에 언제든지 반격에 들어갈 수 있다는 점도 변화된 부분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어설프게 본진까지 밀었다가는 오히려 자신이 털릴 수 있다는 것이죠.

-전반적으로 유닛의 '성장' 개념도 중요해졌습니다. 물론 COH에서도 유닛의 업그레이드나 성장이 유닛의 성능을 결정하는데 매우 중요했지만, DOW2에서는 막말로 '초반에 잘 키운 샷건 스카웃 분대가 근접전에서 극 후반의 터미네이터 분대보다 더 아쉬울 때'가 많다는 것. 그렇기 때문에, 초반에 많은 적을 죽이고 우리 분대는 한명도 죽이지 않는 그런 플레이를 해야 후반에 좀 편하게 놀 수 있을듯 싶습니다.




-전작에 비해서 중화기나 특수화기 업그레이드가 늘은 듯. 게다가 중화기를 추가한 분대가 분대원 하나빼고 다 죽더라도 다시 증원을 요청하면 중화기가 그대로 달린 상태로 증원이 되니 중화기의 사용빈도가 많이 올라갈 듯 합니다.

-DOW2에는 중대 지원 시스템과 같이 각각 특성을 지닌 영웅을 선택을 하면서 시작을 합니다. 하지만 COH와는 다르게 전반적인 전력의 향상을 불러일으키지는 않고, 영웅의 능력이나 불러올수 있는 지원 등에 초점을 맞추어서 선택을 해야 할 듯 싶습니다. 그리고 영웅은 각각 자신의 장비를 커스터마이징 할 수 있는데, 전작에 비해서 업그레이드 할 수 있는 기어가 거의 3배 가까이 늘었습니다. 게다가 영웅 레벨업도 중요해지게 되었으므로 어떤 의미에서는 RPG 스럽다고도 할 수 있군요.

-각 종족의 특징을 살려서 수에서 큰 차이가 납니다. 예를 들어서 타이라니드는 개때로 밀어붙이는 종족이니까 기본적인 유닛이 10~12마리 이런 식으로 구성이 되지만, 오로지 소수 정예를 추구하는 스페이스 마린은 기본 유닛인 텍티컬 마린이 3마리(!)로 나옵니다. 그 대신에 원작 보드 게임에서 보여주었던 압도적인 강함을 그대로 보여주겠다고 하는군요.

-최적화는 그럭저럭 된 듯. CPU 듀얼코어 E6300, 1기가 램, Geforce 7600GS 256MB에서 사양 올로우, 해상도 가장 낮은 1024*968에서 부드럽지는 않지만 끊기지는 않게 돌아갑니다. 그리고 타이라니드로 실험한 결과 유닛의 수가 70마리 까지 늘어났음에도 불구하고 프래임 자체는 똑같게 느껴지더군요. 극심한 프레임 드롭은 느끼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특이한 점은 전작에 비해서 로딩은 엄청나게 빨라졌습니다.

결론:뭐 두서없이 나열은 해놓았지만, 전반적으로 극단적인 전투 위주 시스템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본진은 털기 어려워졌으며, 상대방은 언제든지 제기의 기회를 노릴 수 있고, 초반에 살아남은 유닛이 후반의 고 테크 유닛보다 강해지기 때문에 초반의 전투에서 어떤식으로 게임을 진행하느냐에 따라 후반의 전투에 큰 영향을 미칠 듯. 그렇다고 고 테크 유닛이 마냥 쓰레기는 아니니까 결과적으로 게이머가 어떻게 플래이 하기 나름에 달려있군요.

하여간 개인적으로 RTS는 사서 한번도 성공한 적이 없는데, 이번에도 부질 없이 하나 살 거 같은 느낌이군요. 느낌 자체는 COH나 DOW하고 다른, 새로운 렐릭 스타일의 전략 게임이 될 거 같습니다. 일단 한국에도 상륙할 예정이기 때문에, 그 때까지는 동향을 살펴봐야 겠습니다. 
애니, 만화, 영화 이야기/리뷰

-여기 한 남자가 있습니다. 그는 자전거 선수지만 형보다는 뛰어나지 못했고, 군대를 갔다왔더니 형이 자신의 애인을 차지하였습니다. 게다가 고향은 답답하고 따분하며 지루하며 메마른 토지밖에 없는 절망적인 공간입니다. 그래서 그는 고향을 뛰쳐나옵니다. 그리고 그는 타지에서 자전거 선수가 되었지만, 아이러니 하게도 자전거 경주 중에 자신의 고향을 지나게 됩니다. 하필이면 그 날이 자기 예전 애인과 형의 결혼날이었고, 설상가상으로 그는 '저 놈 잘라버려'라는 스폰서의 말을 듣습니다. 게다가 우리편을 이기게 하기 위해 도발하러 앞으로 나섰다가, 우리편은 중도탈락하고 자신이 가장 선두에 서서 후발 그룹에게 쫒기는 상황에 처하게 됩니다. 이렇게 나스 안달루시아의 여름은 그런 사면초가의 기묘한 상황에서 자신의 의지와 관계 없이 귀향을 하게 된 자전거 선수 페페의 이야기입니다.  

-이 애니의 가장 멋진점은 자전거 경주와 페페의 상황과 과거가 한데 어우러진다는 것입니다. 제가 위에서 설명드린 페페의 상황은 철저하게 페페의 외부의 관점에서 설명됩니다. 예전 고향에서 페페에게 있었던 일들을 다른 제 3자의 입장에서 이야기하면서 페페의 자전거 경주 장면을 보여줍니다. 페페 자신이 과거의 있었던 일을 직접적으로 회상하지는 않지만, 예전에 있었던 일이나 고향에 대한 이야기를 주변 인물들이 함으로써 간접적으로 페페의 심경 또한 이러하지 않을까? 라는 추측을 가능하게 하는거죠. 게다가 자전거 경주가 점점 치열해지면서 우리는 페페가 과거에 자기보다 더 뛰어난 형에 대한 일종의 컴플랙스와 애인을 빼앗긴 것에 대한 어떤 한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고, 그러면서 자전거 레이스는 절정에 치닫게 됩니다. 

-안달루시아로 돌아오는 레이스에서 페페는 어떤 기분이 들었을까요? 그것은 아마도 진짜 돌아가기 싫은 그런 심정이었을 겁니다. 사실 날짜 타이밍도 안좋게 자기 전 애인과 형이 결혼하는 날에 고향으로 들어오는 레이스를 한다면 더더욱 싫겠죠. 자기가 고향을 싫어하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가 그것이니까요. 거기에 자신을 자르라는 스폰서와 우리편을 이기기 위해서 도발하러 앞으로 나갔다가 맨 앞에 혼자 서서 온갖 레이서들에게 추격을 받게 된다면 아마 그건 인생에 있어서 최악의 날 중 하나일 것입니다. 

저는 이러한 상황이 마치 인생에 대한 비유같이 느껴졌습니다. 누구나 자기 인생에서 피하고 싶은 기억이나 추억이 있습니다. 페페 에게는 그것이 자기 고향, 안달루시아라는 공간이죠. 그리고 그러한 기억과 정면으로 마주할 때, 여기에 자기 인생의 최악의 순간들이 겹칠 때 사람은 어떻게 행동할까요? 그냥 다 때려치고 포기할까요? 망연자실하고 대충 행동할까요? 아닙니다. 인생은 그렇게 쉽게 포기할 수 있는 것이 못됩니다. 마치 레이스 처럼, 아무리 최악의 상황이 닥쳐와도 사람은 앞으로 나아갈 수 밖에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페페는 포기하지 않고 계속 앞으로 나아갑니다. 그리고 그러한 모든 페페의 배경을 시청자들이 이해하게되는 그 순간, 페페는 마지막 구간에 들어가고 애니는 클라이맥스에 들어갑니다. 마치 그의 갈등 또한 클라이맥스에 도달하는듯이 말이죠. 그리고 자전거 레이스는 끝이 나고 페페는 가까스로 1등을 차지하게 됩니다.

-사실, 누구나 자신의 인생에서 힘든 순간이 있고 그걸 극복하고 난 다음에는 그 순간은 하나의 추억이 됩니다. 페페에게 있어서는 그것이 고향이라는 공간과 자전거 레이스라는 경험이었겠죠. 하지만 페페 자신은 고향을 버리고 자전거 선수가 되었지만, 고향은 그를 따스하게 맞아줍니다. 마치 고향 사람들이 부르는 노래의 한 구절인 '그대를 기다리는 고향, 아무것도 없는 고향 안달루시아'처럼 말이죠. 그리고 페페는 자신의 고향과 과거를 받아들입니다. 뭐, 엄밀히 이야기해서 그가 받아들이지 못한 것은 그 자신이 고향을 완전히 버릴 수 없다는ㅡ애인과의 이별 후의 페페가 언덕에 오르고 나서 행동을 보았을 때ㅡ 사실 자체인 것이죠. 결국 그의 인생에 있어서 최악의 순간(자전거 레이스 중의 해프닝)과 부정하고 싶은 공간(형과 전 애인이 결혼한 공간인 고향)은 그에게 발목을 잡는 장애물이 아닌, 흑백 사진과 같은 추억이 됩니다.

후에 그는 계속되는 레이스 중의 승리를 축하하기 위한 자리에서 자기 고향 안달루시아의 명물인 가지 절임과 와인을 맛있게 먹습니다. 뭐, 페페 나름대로의 과거와 현재를 받아들이는 하나의 방법이 아니었나 싶군요^^


덧.이 작품은 2003년 칸느 영화제 비경쟁 부분에 나갔다는군요.
덧2. 지브리 제작의 작화 스타일이 느껴지더군요.
덧3.어떤 의미로는 대단히 향토색이 강하게 드러나는 작품이었습니다.
덧4.술마시고 리뷰쓰기는 처음이네요 ㅎㅎ;;
게임 이야기/기획 기사
주의!

이 글은 에르고 프록시를 극도로 비판하는 글입니다. 만약 에르고 프록시를 재밌게 보셨다던가, 인생 최고의 걸작이었다 라고 하시는 분들은 살포시 백스페이스를 눌러주시기 부탁드립니다. 나름대로 동생한테 퇴고까지 맡기고 좀 글을 순화시키려고 했는데 그래도 글이 험악하게 나오는군요;;





罪惡業 4부-에르고 프록시:세상이 망하더라도 난 에르고 프록시를 까야겠어!

누구나 자신이 여태까지 본 소설, 시, 영화, 애니 등을 통틀어서 최악이었다고 꼽을 수 있는 작품이 있을 겁니다. 친구들하고 농담삼아 술자리에서 이런 이야기를 하니까, 의외로 가지가지 작품들이 나오더군요. 4000만 대국민 낚시를 벌인 디워, 임달영이 시나리오를 쓴 한국형 미디어 믹스 프로젝트 제로의 게임 버전(한국 게임 스팟 평점이 2.0이었지 아마...), 양판소(양산형 판타지 소설)의 일반적인 질에도 미치지 못하는 쓰레기 같은 판타지 소설 등등...다양한 게임과 애니, 소설들이 나왔습니다. 하지만 저에게 있어서 진정한 최악은 단 하나, 에르고 프록시 하나뿐입니다.

술자리에서 그 이야기를 꺼내니까, 한 친구가 그러더군요. "어? 그거 각종 커뮤니티에서 좋은 평가를 받고 있는 작품 아니야?" 그렇기 때문에 저는 그 작품을 제 인생 최악의 작품으로 뽑습니다. 그 작품은 그런 평가를 받아서는 안 되고, 받을 수도 없는 작품입니다. 그냥 망작이 될 뻔한 작품이, '나는 내일 세상이 망하더라도 그걸 까야겠습니다' 수준으로 격상(?)된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에르고 프록시는 위치헌터 로빈의 무라세 슈코 감독이 만든 작품으로, 그 자체만 본다면 평범한 SF 액션 스릴러 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돔이라는 제한된 공간에서 생활하는 사람들, 돔 밖의 황폐한 환경, 자아를 가진 로봇을 만들어내는 코기토 바이러스, 그리고 인간에게 지혜를 주고 돔이라는 거주 환경을 만들게 한 존재 프록시(대리인)들...이러한 세계에서 과연 프록시는 무엇이고 인류는 어쩌다 이러한 환경에 처하게 되었는가? 이 질문의 해답을 찾기 위해서 기나긴 여행을 떠나는 주인공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또한 또다른 주인공인 빈센트의 자아찾기도 이 과정에 들어가겠군요) 그리고 이 모든 일의 원인이라고 할 수 있는 프록시 원을 만나게 되죠. 사실, 애니에 쓰인 상징, 구조 등은 나름대로 괜찮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아니, 좀 더 엄밀하게 이야기 하면 잘 만든 애니가 될 '뻔'했지요. 사실 에르고 프록시는 잘 만든 애니와 사람을 짜증나게 만드는 애니는 종이 한 장 차이라는 것을 절실히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여러분은 애니, 소설, 영화 등을 볼 때 가장 무엇이 가장 중요하다고 봅니까? 케릭터? 주제의식? 영상미? 아니면 서비스 씬이 많은가 여부? 사실, 고전 소설이든 대중 문학이든 아니면 아주 먼 옛날의 전설이나 신화든 간에 그들이 가지고 있는 가장 중요한 요소가 있습니다. 그것은 '재미'와 '감동'입니다. 이 세상에 문학의 범주에 넣을 수 있는 모든 형태의 작품, 그것이 고상한 목적에서 쓰여 진 순수 문학이든 그냥 좀 팔아먹고 갔다버릴 목적으로 쓰인 싸구려 대중 문학이라도 읽는 동안 '재미와 감동'이 없다면 그 작품은 근본적으로 잘못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즉 여러분의 귀중한 시간을 투자해서 읽은 작품이 어떤 감동이나, 재미를 주지 못했다면 그 작품은 어떤 의미로든 간에 실패한 것입니다.

근데 이게 에르고 프록시와 무슨 관련이 있냐 원래 작품이라는 것은 보는 사람마다 다 다르게 이해하고, 재미나 감동 역시 대단히 주관적인 요소가 아니냐고요? 뭐, 일반론적인 입장에서 보면 그렇습니다. 이 세상에 어떤 작품이든 모든 사람이 똑같은 감동과 재미를 느낀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에르고 프록시가 변호받을 수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에르고 프록시는 절대로 좋게 평가 받지 못할 요소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은 이야기를 진행시키는 작품의 태도입니다.

일단 어떤 문학 작품이든 간에, 그것은 여러분들에게 이야기를 전달하는 구조를 띕니다. 추상적으로 이야기 하면 재미가 없으니, 한번 상황을 가정해보죠. 여러분은 지금 오후의 따스한 햇볕이 드는 조용한 카페에 앉아있다고 상상해보세요(아니면 술자리도 괜찮습니다) 그리고 여러분 앞에는 여러분에게 재밌는 이야기를 해주겠다는 사람이 앉아 있습니다. 자기에게 커피 한잔(또는 술 한잔)을 사주면 정말 기가 막힌 이야기를 해주겠다고 하죠. 그러면 여러분은 이야기에 혹해서(혹은 시간이 남아돌았다던가), 그 사람에게 커피를 사주고 이야기를 듣고자 합니다. 그 사람은 이제 자기가 알고 있는 이야기ㅡ아름다운 사랑 이야기에서부터 무서운 이야기까지 아무거나 생각하시면 됩니다ㅡ를 들려줍니다. 뭐 이야기가 끝나고 나서 여러분은 여러 생각이 들 겁니다. '좋은 이야기인데?'에서부터 '에이 별론데 이거?'까지요.

이것은 문학이라는 장르 자체에 통용되는 이야기입니다. 어떤 문학 장르든 간에 작가나 화자가 작품 밖의 여러분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는 형식을 취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작가는 작품을 만들 때, 자신의 독자, 청자, 시청자 등을 생각하면서 이야기를 전개해 나가야 합니다. 당연히 자신의 이야기를 듣는 사람은 독자 등이니까요. 그리고 이건 어찌보면 가장 중요한 부분인데, 아무리 자기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더라도 청자를 생각해서 그걸 돌려 이야기하거나 청자가 받아들일 수 있는 다른 방식으로 이야기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그래요. 그러한 기본적인 룰 안에서 이야기가 진행된다면 그 작품은 그래도 기본 이상은 하는 작품입니다. 하지만 에르고 프록시는? 제가 본 작품들 중에서 가장 짜증나는 태도를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마치 깐죽거리는 인간이 와서, 자기 이야기를 두서도 없이 막 늘어놓고 거기에다가 자기는 그 이야기가 정말 재밌다고, 그리고 다른 사람들도 재밌을 거라고 착각을 합니다. 이해를 못했다고 하니까 "그것도 이해 못하냐?"라고 한 다음에 그냥 이야기를 진행합니다. 거기에다가 다 이야기가 끝난뒤 "이거 후속작도 생각하고 있어"라고 이야기합니다.

혹자는 이렇게 이야기 할 수도 있겠죠. "워낙이 복잡한 상징을 이용하니까 그럴 수도 있는거 아니냐?" 저는 그것에 대해서 단연코 아니라고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도대체 에르고 프록시가 무슨 칸느 영화제나 베니스 영화제에 나갈 정도로 대단한 작품인가요? 혹은 알레한드로 조드르프스키가 만드는 초현실주의 영화의 연장선상에 있는 애니인가요? 게다가 그런 소위 작품성 있거나 상징을 쓰는 복잡한 작품들도 보고 난 다음에는 어떤 충격이나 감동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근데 에르고 프록시는 전혀 그런게 없습니다. 게다가 솔직히 일본 애니 중에서도 나름대로 주제의식이나 분위기를 잡고 이야기를 전개하는 작품 중에 잘 만든 작품들은 절대로 자기가 이야기 하고 싶은 이야기를 무시하는 작품은 거의 없습니다. 그렇다고 에르고 프록시가 이미지만으로 먹고 살 수 있는 작품도 아닙니다. 남은 건 오직 발상과 분위기인데, 이 발상도 이야기나 주제하고 따로 놀고 있습니다.

따라서 에르고 프록시의 문제점은 애니메이션의 이야기나 발상이 안 좋은게 아니라 애니를 진행하는 작가와 제작사입니다. 사실 주인공들이 나와서 똥폼 잡으면서 심각하게 고민하는 척 해도, 아무리 진지한 분위기와 멋진 아이디어들이 나와도 이 작품에서 캐릭터들이나 이야기 구조는 그러한 고민을 뒷받침하지 않습니다. 애시당초부터 이 애니의 목적은 자기 머릿속의 망상을 풀어내는데 있는거지, 시청자들에게 이야기를 하기 위한 것이 아니니까요. 게다가 애니 내에 쓸데없이 많은 실험은 이야기를 더 산만하게 만들고, 사람을 짜증나게 만듭니다.

사실 제가 위에서 짚은 정도에서만 에르고 프록시의 문제점이 끝났으면 제 인생에서 더 이상 에르고 프록시를 깔 일도 없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에르고 프록시는 두가지 죄를 더 저지릅니다. 그것은 에르고 프록시만의 잘못이 아니라 무라세 슈코와 감상자들의 죄이기도 한데, 하나는 무라세 슈코가 위치헌터 로빈이라는 걸출한 작품을 만들었다는 것이고, 두 번째는 인간들이 에르고 프록시가 마치 대단한 작품성을 가진 애니처럼 평가한다는 것이죠.

무라세 슈코의 위치헌터 로빈은 에르고 프록시의 대칭에 있는 작품입니다. 이야기는 대단히 잘난 척 하지 않고 로빈의 감성에 초점을 맞추고, 게다가 사근사근 조용하게 이야기를 전개합니다. 반면 에르고 프록시는 먼저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다한 다음에 이야기를 전개합니다. 보면서 이런 생각이 들죠. '도대체 내가 이 애니를 보는거지? 완전히 자기 마음대로만 이야기하고 있잖아!' 그렇습니다. 위치헌터 로빈을 보고 난 다음에 이 애니를 본다는 것은....거의 재앙입니다. 사실 같은 감독의 작품을 본다는 것이 원래 전작의 감성을 느끼고 싶어서 아니겠습니까? 근데 그걸 정 반대로 달려나간다는 것은 시청자에게 큰 반칙과 죄를 범하는 것이죠.

그리고 에르고 프록시는 이상하게 시청자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습니다. 그렇습니다. 저는 이런 경향이 에르고 프록시를 본 사람들의 전반적인 경향이라고 생각합니다. 일단 제가 처음 에르고 프록시를 본 다음, 국내 최대의 애니 커뮤니티에서 에르고 프록시의 평을 확인했습니다. 반응이 둘로 나뉘는데, 하나는 '이게 뭔소리인지 난 알아먹을 수 없다'와 또 하나는 '에르고 프록시 대단히 철학적인 작품임. 까지 마삼.'이었습니다. 후자쪽이 더 비중이 높았습니다. 사실 사람들 반응이 이정도 였으면 그냥 웃고 그런가 보다 하면서 넘어갈려고 했습니다. 뭐, 원래 사람이 생각한다고 모든 것이 제 뜻대로 되는 게 아니지만 제가 정말로 열받아버린 부분은 작년 어느 회지에 실린 에르고 프록시 분석 글이었습니다. 마치 그 글은 에르고 프록시의 모든 요소를 다 조목조목 분석한 글이었는데, 그 애니를 분노하면서 끝까지 모든 내용을 머리에 새겨넣은 저도 '도대체 어떻게 하면 이런 글을 쓰는거야? 애니를 보면서 받아쓰기라도 하나?'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제가 봤을 때는 에르고 프록시를 좋아하는 사람은 크게 두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하나는 심각하게 이상하고 지루한 이야기를 끝까지 봄으로써 자신을 고문하는 것을 즐기는 메저키스트, 또 하나는 그냥 머리는 쓰기 싫은데 잘난 척은 하고 싶고, 근데 에르고 프록시라는 작품을 보고 '이거야! 이걸로 나는 잘난 척을 할 수 있게 되었어!'라고 날뛰는 사람들 중 하나일 겁니다. 아니면 저 자아도취에 빠져있는 이상한 작품을 좋아할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여간 전 이 작품이 싫습니다. 그냥 싫은 게 아니라, 이 세상에서 그 존재를 지워버리고 싶을 정도로요. 그건 아마 저의 과민반응이기도 하겠지만, 정말 이 작품은 여러 가지 악몽같은 요소들이 섞여서 만들어진 재앙같은 존재입니다.



덧.동생이 그러더군요. "형, 형 리뷰쓰는 투가 마치 듀나 같아!"
아, 그건 좀 미묘한데;;;


 

애니, 만화, 영화 이야기/리뷰


(주의! 쌍둥이 백합물이 아닙니다)

1999년 건담의 창시자인 토미노 옹이 다시 감독을 맡은 건담 시리즈입니다. 칸노 요코 음악, 스타워즈 메카닉 디자인의 시드 미드, 그리고 건담의 창시자이자 디렉터인 토미노 옹 등의 드림팀이 모여서 만든 작품입니다. 하지만 사람들의 기대(?)와 다르게 턴에이 건담은 건담 중에서도 이질적인(G건담을 포함해서), 그리고 일본 애니 중에서도 이질적인 특이한 작품이 되었습니다. 친구의 표현을 빌리자면 세계 명작 동화-건담편 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건담이 다른 건담에 비해서 얼마나 이질적인 작품인지는 토미노 옹이 칸노 요코에게 음악을 주문 할 때의 한마디로 요약할 수 있는데,

토미노 : 남자와 여자 뒤에 숨겨져있는 그 호모라던가 레즈비언 같은 느낌을
품고있는 유전자가 암약하는 듯한 느낌의 곡을 만들어줘.

.....그거 이외에도 턴에이 건담은 대단히 특이한 분위기를 만들어 내고 있습니다. 일본 애니 특유의 미형 작화에서 벗어난 듯한 작화, 팔아먹으려고 만들어낸 것 같지는 메카닉 디자인, 이 세상에 모든 사람은 천성적으로 착하다는 성선설적 입장, 그리고 복잡하지 않고 단순한 인물 설정 등은 건담 시리즈 뿐만 아니라 일반적인 애니에서도 벗어난 듯한 느낌입니다. 결과적으로 만들어지는 이야기는 동화적이면서 전설적인 독특한 애니입니다.

이 애니는 보통 건담 시리즈가 그러하듯이 반전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반전이라는 주제를 겉으로 드러내는데 있어서 크게 두가지 장치를 이용하는데, 하나는 서로 닮은 외모를 지닌 지구측의 키엘 하임과 문레이스 측의 디아나 소렐 간의 관계이고 두번째는 과거의 거대한 전쟁으로 세상이 멸망하였다는 전설을 통해서 전쟁에 대한 경각심을 주는 장치를 이용합니다. 특히 디아나 소렐과 키엘 하임의 관계는 '두 사람이 하나, 한 사람이 두사람'이라는 독특한 컨셉으로 서로의 입장-지구와 문레이스-을 이해하게 됩니다. 처음에는 '이사람이 디아나 소렐, 이 사람이 키엘 하임'이라고 구분 지을 수 있었지만, 점점 애니가 진행되면서 둘의 구분이 모호해집니다. 어쩌면 디아나 소렐과 키엘 하임으로 대표되는 지구와 문레이스가 융합해가는 과정을 그려내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 애니에 있어서 진정한 의미의 주인공은 로랑 셰아크와 턴에이 건담이 아니라 키엘 하임과 디아나 소렐, 이 둘이라고 할 수 있죠.

결과적으로 만족스런 작품입니다. 문제점이 있다면 너무 이야기의 완급이 없기 때문에 빠져들어가면서 보기는 무리가 있다는 점 정도? 솔직히 오랫동안 보기는 보았지만, 아직까지 3/4밖에 못보았다는 점이 이런 문제점을 시사하는 것 같습니다.





마지막으로 메카닉 탈춤. 에헤라디야~

애니, 만화, 영화 이야기/리뷰

(아...적절하다....)




-국내 비디오 버전(삭제 버전) 뒤에는 이렇게 써져 있습니다.

"이걸 끝까지 다 본다면 당신은 악마다!"

죄송하지만 저는 이걸 끝까지 깔깔 거리면서 다 봤습니다. 악마 인증(.......)

-피터 잭슨이 유명해지기 전, 뉴질랜드에서 B급 고어 영화들을 찍었다는 것은 영화계에 일종의 전설과 같은 이야기입니다. 고무인간의 최후, 데드 얼라이브, 피블스를 만나요 등 그의 뉴질랜드 시절 영화들은 프라이트너로 헐리웃에 엉망으로 상륙(.....)하기 전에 이미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었고 나름대로의 팬층을 형성하고 있었습니다. 피터 잭슨표의 B급 고어 영화로 알려진 작품들 중에서 가장 완성도가 뛰어난 작품이라면 당연히 '데드 얼라이브' 끼게 되는데(개인적으로 피블스를 만나요 도 대단한 작품이라 보지만), 당시 나온 좀비 영화 중에서는 강한 묘사로 나름 악명이 높은 작품이었죠.

-근데 사실 이거 코미디 영화입니다(......) 기본적인 스토리는 이렇습니다. 50년대, 마마보이와 여자가 사랑에 빠집니다. 하지만 심술궂은 엄마는 아들의 연애를 방해하게 되고, 그리고 돈을 밝히는 엄마의 사촌이 마마보이를 치근덕거리고...하지만 마마보이와 여자는 그러한 사랑의 장애물들을 다 넘어서 진정한 사랑을 이루어냅니다. 마치 50년대의 흑백 코미디 영화같은 스토리 라인이죠.

......여기에 좀비가 들어가 되면서 영화는 골때리는 국면으로 접어듭니다. 엄마가 좀비 원숭이에게 물리고 좀비가 되고, 마마보이인 주인공은 어찌어찌 좀비인 엄마와 엄마가 죽인(?) 좀비들을 지하실에 놓고 열심히 엄마와 좀비들을 부양(?)합니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이 엎치락 뒤치락 하는 슬랩스틱 코미디의 극단적 버전으로 진행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목이 달랑달랑하게 붙은 간호사 좀비가 음식을 제대로 못넘기자 주인공이 목을 뒤로 재껴서 식도에 직접 음식물을 넣는 장면, 간호사 좀비와 신부 좀비가 성관계를 해서 나온 아기 좀비(......), 곱창 좀비(허파가 팔이고, 다리는 창자, 식도가 머리;;), 그리고 이 영화의 하이라이트인 무도회장에서 춤을 추는 것 같은 잔디깎이 좀비 학살 장면 등 좀 '관대한' 유머감각을 가진 사람이 봤을때는 대단히 웃긴 장면들이 많습니다.(만약 관대하지 못하다면 이 영화는 거의 생지옥에 다름 없지만)

게다가 보통 이런 좀비 영화들이 무거운 색조와 공포스러운 음향, 심각한 배우들의 연기들로 나름 분위기를 잡으려 하는데, 데드 얼라이브는 이와 반대로 밝은 분위기와 의도적으로 어설픈 배우들의 연기로 영화의 높은 수위에도 불구하고 코미디 영화같은 분위기를 물씬 냅니다. 어찌 보면 피터 잭슨의 연출력이나 감독으로서의 재능은 반지의 재왕 이전 데드 얼라이브에서부터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뭐 결론적으로 호러 코미디 영화로 일가를 이룬 대단한 영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뭐 보는 사람의 관점에 따라서 달라지겠지만요.

-데드 얼라이브는 두가지 전설이 있습니다.

기록에 따르면, 텍사스 전기톱 살인마는 전 영화를 통틀어서 피를 30CC 썼고, 스튜어트 고든의 좀비오는 피를 2000L, 그리고 마지막 데드 얼라이브는 피를 4만 리터를 썼다고 합니다. 아직도 이 기록은 깨지지 않는 중입니다.

뉴질랜드에서 이 영화는 무삭제로 12세 이용가입니다. 알려지지 않은 정보에 따르면, 데드 얼라이브를 본 뉴질랜드 영등위 위원들이 영화를 보는 내내 숨이 넘어가도록 웃은 뒤에 '이 영화를 진짜라고 믿을 사람은 없기 때문에'라는 이유로 12세 이용가를 때렸습니다. 우리 나라에서는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이야기죠.

게임 이야기/게임 리뷰



2000년 전후는 여러 가지 의미로 RPG의 전성기였습니다. RPG 명가라 할 수 있는 바이오웨어와 블랙아일의 작품들이 쏟아져 나왔으니까요. 발더스 게이트, 플레인스케이프먼트 토먼트, 아이스윈드 데일, 폴아웃 등 아직까지도 명작으로 추앙받는 여러 RPG들이 이 두회사들로부터 나왔습니다. 폴아웃 1편과 2편은 블랙 아일의 성격이 가장 두드러지게 드러나는 작품으로, 핵전쟁으로 멸망한 미국을 배경으로 플래이어의 행동에 따라 황무지의 구원자에서 미국의 재앙까지 다양한 플레이를 할 수 있는, 그야말로 무한한 자유도를 게이머에게 주었습니다. 또한 플레이어의 진행과 퀘스트 간의 유기적인 연관성으로 게이머가 게임을 진행하면서 퀘스트에 몰입할 수 있도록 만들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폴아웃 3는 많은 사람들이 기대하던 작품이었습니다. 하지만 중간에 여러 가지 문제와 우여곡절이 발생하면서, 폴아웃 3는 블랙아일과 인터플레이의 손을 떠나서 베데즈다로 넘어가게 되었습니다.

폴아웃 3가 베데즈다에서 개발되기까지는 복잡한 뒷 이야기가 있습니다. 일단 블랙 아일은 자체적으로 그들만의 폴아웃 3, 통칭 Van Burren을 만들고 있었습니다. 실제 어느 정도까지는 게임이 개발되었기 때문에, 지금도 폴아웃 Wiki나 혹은 게임 웹진 프리뷰를 뒤져보면 Van Burren의 프리뷰나 정보, 설정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블랙 아일이 Van Burren을 개발하고 있을 당시, 블랙 아일 스튜디오의 유통사이자 소유주였던 인터플레이는 자금적으로 심각한 위기에 처해있었습니다. 그로 인해서 인터플레이는 자체적으로 구조조정을 하는 과정을 거쳐서 블랙 아일을 폐쇄하게 된 것입니다. 물론 블랙 아일의 개발자들의 대부분은 후에 재결합해서 옵시디언 스튜디오를 만들게 되지만 그건 블랙 아일을 폐쇄하고 몇 년 지난 다음의 이야기고, 그 당시 개발하고 있던 Van Burren은 프로젝트 자체가 완전히 물거품이 되어버리고 말았습니다.

게다가 인터플레이는 블랙 아일까지 폐쇄했음에도 불구하고 자금 사정이 대단히 안 좋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블랙 아일 폐쇄 이후 자신이 가지고 있는 각종 판권 등을 팔기 시작했고, 그 중에는 폴아웃의 판권도 껴있었습니다. 당시 폴아웃의 판권을 두고 EA, Eidos, 베데즈다 이렇게 3개의 회사가 경합을 하게 되었고 경합 끝에 베데즈다가 폴아웃의 판권을 소유하게 되었습니다.

베데즈다는 1인칭 RPG인 엘더 스크롤 시리즈로 유명한 개발사로 엘더 스크롤 시리즈로 나름의 RPG 관을 구축한 개발사입니다. 그 당시, 팬들의 지지도 탄탄했고 나름대로 훌륭한 게임 개발사로 입지를 확립했습니다. 하지만 기존의 폴아웃 팬들은 썩 달가와 하지 않는 눈치를 보였는데, 그것은 베데즈다라는 회사의 특징과 블랙 아일이라는 회사의 특징이 과연 서로 맞아 들어가는가 라는 문제 때문이었습니다. 블랙 아일이 자유도와 퀘스트 간의 유기적 연관성으로 대단히 좋은 평가를 받고 있는데 반해, 베데즈다는 게임 내에 거대한 세계를 설정하고 세계를 탐험하는 것에 큰 중점을 두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베데즈다가 폴아웃 3를 만든다고 한다면 폴아웃 3를 베데즈다 식으로 어떻게 해석할 것이며, 폴아웃에 있는 블랙 아일의 특성을 어떻게 유지할 것인가라는 두가지 큰 과제가 있는 것입니다.

일단,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베데즈다는 어설프게 블랙 아일을 따라하기 보다는 자신들이 잘하는 영역에 초점을 맞추었습니다. 기본적으로 폴아웃 3는 2007년 G.O.T.Y(Game Of The Year)였던 엘더 스크롤 4:오블리비언에 기반을 두고 있으며(게임 엔진도 오블리비언의 개량 버전), 오블리비언의 변형 발전이라 할 수 있습니다(물론 제가 오블리비언을 한 것은 아니지만, 오블리비언을 플레이한 사람들이 많은 유사점과 개선점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폴아웃 3는 거기에 핵전쟁 이후의 황폐해진 Catpital Wasteland(워싱턴 DC의 폐허)를 매우 훌륭하게 재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만, 전작들인 폴아웃 1과 2의 관점에서는 뭐랄까, 대단히 아쉬운 폴아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일단 전작들과 비교하였을 때, 폴아웃 3의 메인 스토리와 퀘스트는 대단히 단선적입니다. 폴아웃 1과 2에서는 메인 줄거리(메인 줄거리는 정말 병맛입니다. 객관적으로든 주관적으로든 간에요;)가 있으면 그것에 대한 여러 서브 퀘스트 등을 통해서 다양한 접근 방식을 가질 수 있었다면, 폴아웃 3는 메인 퀘스트를 해결하는데 있어서 서브퀘스트가 영향을 주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있다면 Suvival Guide 연속 퀘스트를 하면 메인 퀘스트를 뛰어넘어서 Rivet City로 갈 수 있는 정도?) 물론 이것이 폴아웃 3에 자유도가 없다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퀘스트 내부에서 여러 가지 선지가 존재할 뿐이지, 게임 전체 퀘스트를 아우르는 무언가가 부족하다는 느낌입니다. 게다가 원래 폴아웃 특유의 막장적인 선지들(뭐 매춘이나 터키탕, 동성성애, 마약 등)이 많은 부분 줄어들고, 선한 선택과 유치하게 악한 선택지(마치 어린애가 징징짜는 거 같은 선지들입니다;)들로 양분되어 있으며, 퀘스트의 수도 폴아웃 2에 비해서 채감상 줄어들었다는 느낌입니다. 또한 전투가 실시간으로 진행되게 되면서 미묘하게 적응이 되지 않는다는 점도 문제로 들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제가 위에서 말씀드렸다시피 폴아웃 3는 2007년의 G.O.T.Y 엘더 스크롤 4:오블리비언에 기반을 두고 있으며, 오히려 오블리비언보다 더 뛰어나다는 평을 받고 있습니다. 전작의 오블리비언이 RPG에서 모험과 탐험이라는 요소를 잘 살려내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으며, 폴아웃 3 역시 그렇습니다. 기존의 RPG 게임에서 맵이나 배경, 세계는 엄밀하게 이야기해서 점과 점의 형태로 이어집니다. 폴아웃 1&2를 보죠. 폴아웃 1&2 에서는 플레이어는 맵 상의 원으로 표시된 영역(점)과 영역 사이를 왔다 갔다 할 수 있을 뿐입니다. 영역과 영역 사이의 공간은 아무것도 없는 공간이죠. 한마디로 점과 점을 제외한 나머지 공간은 완벽하게 죽은 공간이라는 것입니다. 이는 발더스 게이트, 아이스윈드 데일 등에서 잘 드러납니다. 물론 폴아웃 1&2 이후, 많은 RPG들이 넓고 연속적인 맵을 차용하고 있습니다만, 그것은 플레이어가 출발하는 출발지와 도착지라는 점 사이의 경로(선)이라는 개념을 추가한 것에 불과합니다.

하지만 폴아웃 3는 그러한 점과 점, 선과 선의 개념이 아닌 거대한 공간(면)의 개념을 게임에 도입합니다. 한마디로 게이머가 모험과 탐험을 하는데 있어서 경로에 구애받지 않고 자유롭게 해매고 다닐 수 있게 한 것입니다. 즉, 여태까지 퀘스트나 목적을 위해서 이동하기 위한 통과의례로서의 배경이 아니라, 그 자체로 훌륭한 즐길 거리가 된 것입니다. 물론 그 거대한 공간이 빈 공간이면, 공간 자체가 의미가 없어지겠죠. 하지만, 폴아웃 3는 기존의 1&2에서 차용하고 있던 인카운터 시스템을 차용합니다. 인카운터 시스템은 출발지와 도착지를 이동하는 사이, 무작위로 장소나 상인, 적, 혹은 장소나 던젼을 만나는 시스템입니다. 원래 1&2에서는 소소한 재미를 주기 위한 부가적인 시스템이었지만(뭐 가끔 가다가 외계인들이나, 하늘을 날다 떨어진 고래 시체라던가, 2편에서는 1편에 나왔던 주인공들이 있는 주점 등), 3편에서는 Capital Wasteland를 해매는 과정에서 만나는 다양한 사람이나 장소, 던젼, 적, 이벤트들을 통해서 인카운터 시스템이 게이머에게 진짜 황무지를 해매는 것 같은 느낌을 줍니다. 게다가 폴아웃 3의 장소들은 각각 자기 자신만의 특징을 가지고 있는데, 폐허가 된 지하철, 한 때 중공군이 미국 침략을 위해 잠입한 회사 건물, 핵전쟁 이후 유일하게 남은 고급 호텔, 각종 사회학적 실험을 위해서 지어진 볼트, 심지어 러브크래프트의 영향을 받은 유령 건물 등등 이로 인해서 황무지와 폐허를 탐험하는 재미가 대단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폴아웃 3의 게임 플레이는 스토리를 따라가는 형식이 아니라, 황무지를 해매고 숨겨져 있는 다양한 장소들을 찾아내는 것이 주가 됩니다. 아버지를 찾는 일이요? 그런 일 따위는 뒤로 미루어두세요. 황무지 구석구석 탐험하는 것이 폴아웃 3를 제대로 즐기는 방법입니다. 그리고 제가 폴아웃 3를 자유도나 퀘스트 구성에 있어서 폴아웃 1&2보다 못하다고 이야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폴아웃 3가 자유도나 퀘스트 구성이 완전히 병신같다는 의미로 이야기 한 것은 아닙니다. 폴아웃 3 자체도 평작 이상의 자유도와 퀘스트 구성을 보여주고 있고(폴아웃 1&2가 지금까지도 독보적이라고 평가할 정도로 대단한 명작이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모험과 탐험이라는 특징을 더하면 폴아웃 시리즈에 대해서 나름대로의 신선한 해석을 가한 폴아웃 3가 완성됩니다. 나머지는 게이머인 여러분들이 Capital Wasteland를 어떤 식으로 해맬 것인가라는 즐거운 고민이 남아있을 뿐입니다.

폴아웃 3는 현재까지 진행되고 있는 각종 인터넷 게임 웹진에서 2008년 G.O.T.Y를 석권하고 있습니다. 2008년이 수많은 기대작들과 명작들이 출시 되었지만ㅡGTA 4, MGS 4, 데드 스페이스, 기어즈 오브 워 2, 레지스탕스 2, 리틀 빅 플레닛 등등ㅡ, 그 중에서 폴아웃 3를 많은 웹진들이 2008년 G.O.T.Y로 뽑은 것은 그만한 이유가 있기 때문입니다. 혹자는 GTA 4도 2008년 판매량이 정말 많았지만, 마케팅이나 기대도를 다 따져서 실질적으로 2008년 가장 성공한 작품은 폴아웃 3가 아니었나라고 보는 사람도 있습니다.

하여간 저는 게임을 모두 클리어하는데 50시간 가량 걸렸지만, 모든 장소를 확인하고 해매는데는 적어도 100시간 전후로 걸린다는 것이 많은 사람들의 견해입니다. 그러니 여러분, 긴 여정에 대비 하십시요!(Prepare For The Long Journey!)

덧.폴아웃 3 OST를 들으면서 작성한 리뷰입니다. OST가 좋군요.
덧2.Yantzee의 Zero Punctuation 버전 리뷰도 나름 괜찮습니다. 한번 보시길.

애니, 만화, 영화 이야기/애니에 대한 잡생각


"중좌인 너를 여기서 죽인다. 이제부터 너는 그저 카키스 토우지로일 뿐이다."

-망념의 잠드에서 가장 매력적인 케릭터 중 하나인 카키스 중좌가 22화에서 타케하라 류조 선생의 총에 맞고 세상을 하직하였습니다. 개인적으로 끝까지 살아남아서 어떻게든 갱생의 여지를 주었으면 좋았을텐데, 결국은 자신이 행한 일에 죄책감을 느끼고 이런 식의 씁쓸한 결말을 맞이하게 되는군요. 사실 중간에 밥맛 떨어지는 짓도 많이 했지만, 그러면서 여러가지 의미로 씁쓸한 느낌을 준 케릭터입니다.

사실 카키스의 매력(?)은 바로 완벽하게 악이 되지 못하는 그 어중간함에 있겠죠. 처음 센탄도에 왔을 때는 순수하게 어머니(스마코)의 고향인 섬을 지키고 대 인형병기 연구(이때는 그 정체를 몰랐음)를 진행합니다. 하지만 대 인형 병기라는 것이 결국 인간을 쓴다는 것을 알게되고, 그러한 연구를 진행하는 칸바 박사의 꼬드김에 분개하지만, 결국 칸바 박사와 함께 사람을 실험체로 이용한 대 인형 병기 연구에 착수합니다. 즉, 죄인이 되어서 전쟁을 종결하자는 것입니다. 그 이후, 칸바 박사와 함께 미도리를 이용해서 대 인형 병기를 완성합니다(그 와중에 칸바 박사가 딴 생각을 먹으니까, 칸바 박사의 말을 그대로 돌려주면서 인종 차별 발언까지 해주는 강한 모습까지 보여주죠) 혹자는 위대한 개츠비에 나오는 개츠비형 케릭터(처음에는 순수한 의도로 시작했지만, 결국은 타락하게 되는 케릭터 유형)이라고 했는데, 정말이지 딱 들어맞는 설명이더군요.

 하지만 원래 인간이 그렇게 나쁜 인간이 되지 못했고 워낙이 어설픈 악당이었기 때문에, 결국 자신을 전장에서 살려내었던 타케하라 류조에게 자신을 죽이게 하려는 의도적인 자살을 꾀합니다. 이 부분에서 이 케릭터에 대한 묘한 동정심이 일었는데, 결국 자신이 이루던 바를 이루었지만 그것이 잘못된 것을 알고 있었고, 그에 대해서 어린 아이처럼 해매는 모습을 보여주었기 때문입니다. 이와 대칭점에 있는 에우레카 7에서의 악역 듀이는 애니 끝까지 완벽하게 자신이 모든 계획을 리드하는 주도면밀함을 보여주었지만(그래도 마지막에는 정말 씁쓸한 최후였지만), 그에 비해 카키스는 대단히 인간적인 고뇌를 보여준 케릭터입니다. 앞으로 잊지 못할 악역 케릭터 중 하나가 되겠군요.

벌써부터 그의 헛소리들이 그리워지는군요(망념의 잠드에서 카키스가 가장 많이 현학적인 대사를 내뱉었습니다)

-22화에서는 결국 '남쪽이나 북쪽이나 미쳤다->세상의 근본 구조 자체가 미쳤다'로 나가는 망념의 잠드입니다. 과거 에우레카 7이 대단히 희망적인 이야기ㅡ'러브&피스!'를 외치는 히피 테러리스트들과 한 소년의 성장담과 첫사랑ㅡ를 그려내었다고 할 수 있다면, 망념의 잠드는 철저히 '미친 세상에서 어디에도 없어 보이는 희망 찾기'라는 이야기로 귀결됩니다. 하지만 인상깊은 점이, 그러한 완벽한 절망 속에서 묘하게 현실적인 희망이 숨어 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는 것이죠. 이제 곧 26화이고 이제 거의 대부분의 이야기가 진행이 되었습니다만(마지막 일전은 태동굴에서 이루어 질 것 같군요), 다 보고 나서 여운은 에우레카 7이나 흑의 계약자, 카우보이 비밥 급이 될 거 같군요.

-나키아미가 했던 대사가 불현듯 떠오릅니다. "자신을 잊지마." 암, 잊을 수 없지. 잊을 수 없을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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