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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이야기



선브레이크는 몬스터 헌터 시리즈에서 통상적으로 나온 G급(이제는 마스터 급이지만) 확장팩이다. 라이즈의 등장이 월드와 기존 더블 크로스의 결합을 통해서 새로운 몬스터 헌터의 지평을 열긴 했었다. 그러나 라이즈는 동시에 전작인 기존 월드가 오랫동안 업데이트를 통해서 쌓아왔던 게임 콘탠츠를 따라가지 못했던 부분들 때문에 초반의 호평에 비해서 상당한 악평을 받았던 부분들이 있다. 결국 라이즈의 없데이트라는 악명으로 사람들은 후속 콘텐츠를 해금해주는 대형 확장팩 선브레이크를 기대할 수 밖에 없었고, 확장팩 선브레이크는 이러한 수요를 충족시켜주었다.

선브레이크의 라이즈 개선 방향은 크게 두가지다. 첫번째는 질적인 개선이다. 선브레이크는 다양한 수렵 기술들을 추가한 다음에 신속 교체라는 시스템을 추가하였다. 플레이어는 특정한 버튼 조작으로 수렵 기술을 미리 세팅해둔 수렵교체 기술로 바꿀 수 있다. 이러한 게임 플레이 방법은 상당히 단순한 방법이긴 하지만, 라이즈 시절의 시스템과 큰 차별성을 만들어준다. 기존에는 하나의 수렵 기술과 버프 조합만을 다룰 수 있었다면, 이제는 서로 다른 두 사냥 기술들을 조합해서 독특한 흐름을 만들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쌍검의 사례를 예로 들어보자:기존 쌍검은 지상 무빙을 중요시 여기는 흐름(돌진 베기, 슬라이딩 베기 등)이나 공중 공격으로 이어주는 흐름(귀인 공무, 망루 뛰기 등)이 존재했었고, 이 두 흐름 중 하나만을 선택할 수 있었다. 그러나 신속 교체의 추가로 인해서 두 스킬셋을 오갈 수 있게 되면서 조합이 가능해졌다. 예를 들어 귀인화 게이지를 채우는 건 느리지만 데미지가 늘어나는 귀인화 짐승과 빠르게 귀인 게이지를 채울 수 있는 일반 귀인화를 오가면서, '귀인게이지는 일반 귀인화로 채우고, 주력 딜링은 신속 교체로 바꿔서 귀인화 짐승으로 한다' 라는 게임 플레이 스타일을 구현한다. 기존 라이즈에도 몇몇 수렵 기술들이나 스타일이 게임 플레이를 구성하였지만, 구성을 다앙하게 바꾸는 것이 어려워 결국은 하나의 스타일만 살아남게 되었는데, 신속 교체를 통해서 자유로운 게임 플레이를 진행할 수 있게 만들었다.

또한 전반적인 무기 벨런스 조정도 가해졌다. 원본이 태도 편애로 논란이 될 정도로 무기 벨런스가 엉망진창이었다. 썬브레이크는 랜스와 건랜스 등의 무기들을 강화했을 뿐만 아니라, 강한 태도의 딜을 너프했다. 흥미로운 점은 기존 몬스터 헌터 시리즈에서는 강한 무기들에 대해서 특별한 너프를 가한 적이 없다는 것이다. 물론 태도가 그만큼 얼척없을 정도로 강하긴 했지만, 무기간의 격차를 줄이기 위해서 강한 무기의 딜을 줄이는 확장판은 없었다. 그러나 동시에, 다양한 기믹들을 재활용하면 이전 수준의 딜을 재현할 수 있다는 점에서 '플레이어가 얼마나 능숙하게 무기를 다루는가'라는 분명한 디자인 철학이 생겼다고 할 수 있는데, 여타 무기들(수렵피리나 건랜스 같은)에도 동일하게 적용되서 무기의 딜 자체가 상향 평준화된 모습을 볼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선브레이크는 이전 몬스터 헌터 시리즈보다 무기 디자인 철학을 갈고 다듬어서 완성한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선브레이크의 두번째 개선점은 양적인 부분이다. 우선 G급(이제는 마스터 랭크)을 추가한 부분들이나 아종이 추가된 부분들은 의례 G급 확장판이 나올 때마다 나오는 부분이긴 하다. 아쉽게도 전작의 백룡야행이나 주인 개체들은 업데이트에서 그 기조를 유지하지 못했지만, 새로운 콘탠츠인 괴이화를 추가 되었다. 괴이화는 이전 영맹화나 극한 개체, 광룡 개체 같은 시스템이라 할 수 있다. 크로스나 더블 크로스의 영맹화처럼 괴이화 시스템은 괴이 개체의 체력을 늘렸으며, 특정 부분에 번쩍거리는 이펙트 부분에 공격을 집중해야한다. 이 부분에 공격을 집중시키면 데미지 축적량에 따라 큰 데미지를 주며 터진다. 하지만 몬스터에게 이러한 식의 경직을 주지 못하면 대폭발을 일으키면서  즉, 플레이어가 얼마나 게임에 숙련되어 빠르게 클리어하는가가 관건인 시스템이라 할 수 있다.

선브레이크 발매 후, 업데이트로 추가된 괴이연성과 괴이 강화 역시 게임의 콘탠츠를 늘리는 요소라 할 수 있다. 4의 길드 퀘스트처럼 퀘스트를 레벨업 시킨다는 괴이 탐색은 괴이화 개체 몬스터들을 사냥하면서 얻는 재화를 이용해 장비를 강화하는 시스템이다. 특히 괴이 연성의 경우 장비에 무작위의 스킬과 내성을 붙이는 시스템인데, 기존의 길드 퀘스트에서 장비를 발굴하는 것처럼 장비 계속해서 원하는 옵션이 나올때까지 강화해나가는 방식이다. 일종의 가챠 시스템이라 할 수 있지만, 원하는 장비가 나올 때까지 너무나 많은 시간과 노력을 요구해서 스트레스를 유발했던 길드 퀘스트에 비하면 괴이 강화는 플레이어가 장비를 갖고 있다는 전제하에서 원하는 옵션이 나올 때까지 돌릴 수 있다는 점에서 더 유저친화적이라 할 수 있다.

결론을 내리자면 선브레이크는 라이즈 이후 캡콤이 몬스터 헌터라는 프랜차이즈에 대해서 어떻게 접근하고 발전시켜야 하는지를 양적, 질적인 측면에서 훌륭하게 답을 내놓은 작품이라 할 수 있다. 라이즈 자체도 훌륭했지만, 코로나로 인해서 부득이하게 그것을 발전시키지 못했다면 선브레이크는 라이즈가 그동안 미쳐하지 못했던 것을 훌륭하게 이루었다 할 수 있다. 라이즈를 구매했거나 몬헌을 처음 해보거나, 혹은 몬헌을 사랑한다면 선브레이크는 강력하게 추천하는 바이다.

게임 이야기

 

최근 포트나이트 시즌 3에서는 건설 요소를 제외한 '빌드 제로' 모드가 출시되었다. 흥미롭고 포인트가 있지만 뭔가 이상한 모드라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포트나이트는 지난 5년 동안 배틀로얄에 건설이라는 요소를 집어넣어서 나름의 영역을 구축하고 있었고, 빠르게 요새를 짓거나 자원을 수집하거나 하는 등의 다양한 테크닉들이 그에 따라서 개발되었다. 다양한 요소들이 늘어났음에도 '건설이 완전히 제외된 포트나이트'라는 것은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건설은 포트나이트에 있어서 게임의 근간을 이루는 정체성이었다. 하지만, 동시에 그 정체성이 사람들에게 역으로 장벽으로 적용되기도 했다. 원래부터 배틀로얄을 위해서 만들어진 조작 체제도 아니었고, 포트나이트 자체가 원래부터 코옵 게임을 전제로 해서 만들어진 게임이기 때문에 이 '건설'이라는 요소가 개성을 형성하는 동시에 전체 게임과 겉돌게 되는 이슈는 항상 있었다. 포트나이트의 역사는 이 건설이라는 것을 자연스럽게 결합하고 테크닉으로 승화시키는 것이었다. 지난 5년간 포트나이트의 개발자와 플레이어 양쪽 모두 이 건설라는 요소에서 많은 노력과 헌신을 기울였다.

하지만 2년만에 복귀해서 플레이해본 포트나이트 빌드 제로는 생각보다 할 것이 많고 재밌는 게임이었다. 건설이라는 요소가 빠졌지만, 포트나이트에는 무수히 많은 요소들이 생겼고, 더 나아가서 게임 플레이 스타일을 다양하게 구성하고 있다. 그래플러 글러브를 이용해서 빠르게 이동한다던가, 다스베이다를 잡아서 좋은 무기를 파밍한다던가, 다양한 차량 타고 이동한다든가의 다양한 선택지가 생겼다. 또한 현실의 꽃이나 금괴를 이용해 게임과 게임을 넘어서 쓸 수 있는 자원 요소를 추가했다. 빌드 제로는 어떻게 보면 일종의 '자신감'이라 할 수 있는데, 이제 더이상 포트나이트는 건설에 기반한 배틀로얄이 아닌 다른 '무언가'가 되었다는 것이다.

시즌 3로 넘어오면서 포트나이트는 일종의 '거대한 테마파크'이 되었다. 포트나이트 시즌 3에서 찾아볼 수 있는 다양한 요소들, 탈 것이나 그래플링 훅, 순간 이동이나 비행, 사냥 가능한 NPC, 이용할 수 있는 식생의 존재 등등은 이미 다른 게임들에서 찾아볼 수 있는 것들이고, 그렇게까지 놀랍거나 새로운 것들이 없다. 하지만 핵심은 포트나이트에 이 모든 것들이 다 들어있다는 것이다. 놀라울 정도로 포트나이트에 삽입된 다양한 요소들은 큰 문제없이 잘 작동한다고 할 수 있는데(물론 높은 수준의 게임 플레이로 올라가면 달라질 수 있는 인상이다), 포트나이트의 개발자들이 포트나이트라는 게임을 다양한 게임 요소들을 올릴 수 있는 일종의 '플랫폼'화 시킨 셈이다.

포트나이트가 전방위적이고 다양한 콜라보레이션을 통해서 게임의 플랫폼화를 성공적으로 이루긴 했지만, 이들이 첫번째라고 할 수는 없다. 트리플 A에서 가장 오래된 시도는 콜 오브 듀티 시리즈다:콜옵은 근 10년간 경쟁, 코옵, 싱글 게임을 오랫동안 서비스해왔고, 여기에 배틀로얄을 섞었다. 심지어 콜옵은 매년 게임이 발매되는 사이클로 인해서 이전에 진행했던 게임 요소들이 금방 사라지는 단점조차도 워존의 등장 이후 통합 계정화를 통해서 유지시켜주는 부분까지 보여줬다. 어떤 의미에서 콜옵은 느리지만 지난 15년 동안 수많은 게임 트렌드를 꾸준하게 자기 시스템 내로 통합시키고, 단순히 개별 작품 시리즈를 넘어서서 콜옵이란 거대한 프랜차이즈에 계정을 저장하는 방식까지 취했다. 

좀 다른 방법론이긴 하지만 유저가 게임을 일종의 플랫폼으로 승화시킨 케이스들도 있다. 마인크래프트나 로블록스 같이 태생부터 그런 것들도 존재하지만, 우리가 기억하는 가장 오래되고 가장 강력했던 플랫폼화된 게임들은 바로 스타크래프트와 워크래프트 같은 게임들이었다. 이 게임들에서 성공한 장르인 AOS 장르(롤이나 도타 같은)가 분화되어 나왔고, 굳이 AOS가 아니더라도 다양한 콘탠츠들이 분화되어 나왔다. 더 거슬러 올라가면 게임의 요소들을 재활용하되 코드 단위에서 새로운 게임 구성하는 모딩도 있었다. 위대한 성공작인 카운터 스트라이크도 하프라이프로부터 분리되어 나온 게임이었다.

그리고 포트나이트와 같은 경우에는 모든 것이 포트나이트가 된다, 라는 명제에 부합하지만, 흥미롭게도 모딩의 경우에는 어떤 것은 AOS가 된다 라는 개념에 가깝다. 모딩의 경우, 성공적일 경우 기존 플랫폼이 된 게임으로부터 분화되는 것이 흔하기 때문이다. 기본적으로 수익 구조에 대한 수요 때문일 수 있다. 하지만 수익구조 보다도 중요한 것은 플랫폼으로부터 분리될 때 좀 더 독특한 자신만의 개성을 찾아나서는 부분들일 것이다. LOL은 워크3 모드 시절의 AOS와 분명히 다른 게임이 되었고, 워크 시절의 DOTA의 정식 계승자를 이야기하는 DOTA2 역시도 과거의 워크 3 시절과 다른 게임이 되었다. 플랫폼의 보편적인 시스템은 역으로 '어디에 특화되지 못하다'라는 이슈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위와 같은 사례를 본다면 회사든 플레이어든, 플랫폼화된 게임에 많은 관심이 있다. 이는 기존 게임의 골격이 훌륭한 경우, '이러한 경험을 연장시킨다면 얼마나 좋을까?'(수익적 측면, 재미적 측면에서)라는 관점에서 접근한 것이다. 물론 이러한 시도가 항상 성공적인 것은 아니었지만, 중요한 것은 플랫폼이 되는 게임이 가장 기초적인 재미를 제공해주는 베이스를 구성해야 하고, 그것이 서로 납득 되는 방법으로 확장이 가능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플랫폼화 된 게임은 회사와 플레이어 양측에 독특한 화두를 던지는 요소라 할 수 있다.

게임 이야기

 

메타버스만큼 모호한 용어는 없을 것이다. 범람하는 마케팅들과 트렌드 세터들의 과대 포장으로 인해서 메타버스란 것에 대한 구체적인 정의를 내리는 것은 많이 어렵지만, 메타버스라는 조어 자체에 집중해서 본다면 상위의("Meta") 세계(Uni + "Verse")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무엇에 대한 '상위의' 개념일까? 메타버스라는 단어가 처음 나온 닐 스티븐슨의 스노 크래시에서 가상 현실을 지칭하는 단어로 등장했다(아바타라는 개념도 이 때 등장했다) 소설을 직접적으로 읽어보지는 못했지만, 닐 스티븐슨이 가상 세계를 여러 개념들의 상위의 개념을 지칭하는 '메타'라는 단어로 표현하고자 한 것은 메타버스가 현실과 가상을 조합하는 개념에 가깝다는 것을 지칭하고자 했기 때문으로 추측된다. 즉, 우리가 게임이나 VR 등등을 통해서 접하고 있는 메타버스의 개념들은 가상 자체를 강조한다기 보다는 '현실과 가상, 이 둘이 합쳐지는 상위의 공간 개념'에 가깝다.

그러나 다시 돌이켜 생각해보자:전자 네트워크로 구성된 공간은 애시당초에 물리적인 현실에 기반하고 있고, 거기에 접속하는 사람들도 결국 현실에 베이스를 두고 있다. 기존 가상 세계 담론들이 새로운 가능성에 집중한 것은 맞지만, 동시에 그것이 '여전히 물리적 공간의 확장이라는 것'을 부정하지 않았다. 즉, 가상 세계 담론에 있어서 현실과 가상은 분리된 것이 아닌 통합된 개념으로 접근한 이야기들이 가상 세계라는 담론과 대중문화의 기조였던 것이다. 하지만 현재의 메타버스 담론들은 이런 과거의 역사들을 모두 없었던 것으로 취급한다. 그들이 메타버스를 통해서 논하고자 하는 것은 '새로운 가능성'(주로 돈에 관한)인데, 이러한 새로운 가능성(혹은 위험성이든)이 이미 오래된 미래의 형태로 담론으로 구현되었다는 점에서 이미 구현된 낡은 담론이자 현상인 셈이다. 이러한 메타버스 담론의 핵심은 결국은 새로운 산업이 등장한 것처럼 꾸며서 시장에서의 상품성을 확보하려는 '마케터'들의 값 싼 전략에 불과한데, 비대면 접촉이 점점 더 흔해지고 있는 코로나 시대에 관련 산업을 묶기 위해서 일부러 단어를 마케팅하는 것이라 접근하는 것이다. 엄밀히 메타버스의 성공과 담론은 메타버스 자체가 발견되거나 논의된 것이 아닌 코로나 시대라는 특수성과 밀접한 관련이 있을 뿐이다.

하지만 메타버스 시대로 들어오면서 눈여겨 볼 만한 점들이 있다. VR, 메타버스형 비지니스나 운동 프로그램 등등의 존재를 통해서 이전보다 더 옅고 얇은 형태로 게임의 영역이 넓어지게 되었다. 필자가 최근 자취하면서 운동의 일부로 활용하고 있는 원랩 프로맥스 자전거의 사례를 예로 들어보겠다. 소위 메타버스형 자전거 홈 트래이닝 앱인 원랩은 쉽게 이야기해서 여러 센서가 달려있는 자전거와 핸드폰 어플을 연결하여서 자전거 회전속도, 부하 등의 다양한 수치들을 모니터링하고 얼마나 자전거를 타는 사람이 프로그램에 맞게 운동을 하는지를 보여준다. 원랩의 트레이닝 어플은 게임적인 요소들(같은 코스를 달리는 다른 사람들, 점수화된 운동, 그리고 사람들끼리의 경쟁)로 치환해서 구성한다는 점에서 소위 메타버스의 특징들도 존재한다. 몇년전에 유행하였던 게임화Gamification가 좀 더 구체적으로 이루어진 케이스라 할 수 있는데, 보통 체육관에서 트레이너를 통해서 이루어지던 운동들이 수치화 되고 측정되면서 앱의 기능으로 구성 가능해진 부분이라 할 수 있다.

메타버스의 세대의 여러 비즈니스들이 보여주는 흥미로운 변화들은 '입력 장치의 다양화'와 '수치의 측정과 데이터화'의 영역이라 할 수 있다. 일반적인 게임 영역에서 입력은 게이밍 패드의 형태로 이루어졌다면, 메타버스 비즈니스에 있어서 입력 방식은 더이상 패드라는 제한적인 수단으로 한정되지 않는다. 전자식 자전거의 센서, VR의 HMD와 센서들, 핸드폰의 자이로스코프 등등의 다양한 센서들이 게이밍 패드라는 인터페이스를 뛰어넘는 요소가 되었다. 이 새로운 입력 요소들은 기존의 게임과 다른 형태의 장르적 생태를 구성하는 부분이다.

하지만 이러한 메타버스의 새로운 입력 방식은 지속적인 장르를 구성하는 것이 아닌, 어디까지나 일시적인 무언가라 할 수 있다. 메타버스 흐름에 있어서 독특한 점은 어디까지나 다양한 센서들을 통해서 수집된 데이터들을 재구성해서 서비스의 형태로 엮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데이터를 수집하는 방법들은 '전체적'이지 않다. 어디까지나 자전거의 센서처럼, HMD나 폰의 자이로 센서처럼 어디까지나 일부의 데이터를 시각 디스플레이에 띄워주는 방식에 불과하다. 그렇기에 메타버스 시대의 비즈니스들은 그런 점에서 상당히 게임 산업의 어설픈 연장선이라 할 수 있는데, 기존 게임 산업이 쌓아올린 노하우보다 더 깊지 않고 입력과 데이터를 처리하는 방식은 아직까지는 '통합적'이라 할 수 있지 않기 때문이다:자전거는 어디까지나 자전거에서, 트레드밀은 트레드밀에서, VR은 VR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결국은 가상의 세계를 구현하는 것이 메타버스의 최종 목표라고 한다면, 현재의 입출력 인터페이스를 근본적으로 뛰어넘는 인터페이스가 등장해야 한다. 쉽게 이야기한다면 여러 SF 소설이나 담론에서 다뤄지듯이 신경계에 직결로 연결해서 인풋/아웃풋을 통합적으로 처리하는 방법론이 되어야 한다. 가상의 세계를 현실의 수준으로 끌어올리기 위해서는 그정도의 새로운 방법을 통해 기존 게임 산업의 노하우를 결합함으로 가상의 세계를 소비자가 경험을 시각적인 경험에서 벗어나 '전체'로 즐길 수 있게끔 만드는 것이다. 즉, 메타버스 산업의 상당수들은 기나긴 산업의 발전 이정표 상에서 결국 사라지게 될 흐름이다. 그것이 얼마나 짧을지, 길지는 모르겠지만 결국 게임이나 엔터테인먼트 산업이 추구하는 '가상의 구현'이라는 최종적인 결과에 비추어본다면 점차 조금씩 자신의 노하우를 후배들에게 넘겨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메타버스의 흥망에 너무 과열된 관심을 갖지 않는 것이 좋을 것이다.

게임 이야기

 

최근 흥행하고 있는 뱀파이어 서바이버라는 게임이 있다. 코나미의 고전 명작인 악마성 드라큘라의 도트나 디자인, 컨셉 등을 트레이싱한 걸로 논쟁을 일으킨 이 게임은 당연하게도 최근 몇년간 불고 있는 복고풍 인디게임의 트렌드를 따른다. 하지만 재밌는 점은 뱀파이어 서바이버의 복고는 '과거의 완벽한 재현'이 아니라는 것이다:분명 도트풍 그래픽이나 단순한 게임 플레이 등등은 언뜻 보기에는 과거의 게임 트랜드를 재현하는데 집중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게임에서 보여주는 적들의 규모는 이전 게임에서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많다. 도트 그래픽임에도 불구하고 데미지 계산 등으로 인해서 때때로 고사양 컴퓨터에서조차 60프레임을 방어하지 못할 때도 있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뱀파이어 서바이버의 게임 플레이는 분명 '복고인척 하지만 현재의 기기 스펙에 기반을 둔 현대적인 게임'이라 할 수 있다.

뱀파이어 서바이버는 게임 플레이 측면에서도 복고적이지 않고 현대적인 부분들이 있다. 뱀파이어 서바이버에서 플레이어의 공격은 별도의 버튼 입력없이 자동으로 진행이 되는데, 이 게임이 베이스로 삼고 있던 시절(패미콤 ~ 슈퍼 패미콤 시절, 80년대 말 ~ 90년대 초)의 게임들이 '플레이어가 직접 조작해서 게임을 플레이하는 방식'을 지향했던 것을 생각하면 다소 이질적인 부분이다. 오히려 장르적으로는 공격 조작을 제외하고 거기에 공격마다 특징들(예를 들어 채찍은 좌우 공격만 가능하다든가)을 부여함으로 플레이어가 위치와 공격 타이밍을 고려하면서 움직이는 '선택과 집중' 구조를 취하고 있다. 뱀파이어 서바이버는 단순한 조작으로 플레이어가 강해지는 클리커 류를 생각나게 하고, 무작위로 얻는 아이템들의 테크 트리를 통해서 플레이어가 플레이 스타일을 임기응변식의 게임 플레이는 로그라이크 장르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다. 보이는 것과 반대로 게임은 최근의 게임 장르 전통을 따르고 있는 셈이다.

뱀파이어 서바이버가 과거의 모습을 취하는 것은 단순하게 모티브를 취하는 것 이상이다. 과거 게임과 다른 방식으로 단순화된 게임 방식이나 도트에 대한 접근 등은 과거를 재현하되 과거를 '그대로' 재현하는 것이 아닌 과거를 재해석해서 재현하는 방식을 취한다. 이러한 방법론을 취하는 이유는 게임을 제작하고 소비하는 계층이 추억하는 시기와 밀접하게 맞닿아 있다. 좋았던 과거를 좋은 방식으로 재현하기 위해서 여지껏 산업이 걸어왔던 역사를 거기에 대입하는 것이다.

최근의 레트로/복고 서브컬처 콘탠츠들이 이러한 방법론의 결과물들이다. 분명 과거의 모습을 취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안에 들어있는 것들을 하나씩 때어내놓고 보면 여지껏 걸어왔던 산업의 역사가 응축되어 본질적으로 과거의 것과 동일선상에 놓일 수 없는 물건들이 대다수다. 이러한 레트로/복고/리바이벌이라 불리는 작품들의 핵심은 상대적으로 젊은 세대보다 나이든 세대의 소비력이 높은 점, 제작자들이 자신의 추억을 재해석하여 창작을 하고 있는 점이 밀접하게 결합되어 있다. 그렇기 때문에 만들어진 과거는 단순하게 퇴행으로 단정짓기에 어려운 부분들이 있다.

흥미로운 점은 순수하게 과거로 돌아가서 본다면 미래의 게임들의 근간이라 할 수 있는 것들이 항상 존재했다는 점이다. 예를 세가 새턴의 게임 중에는 유명 성우를 기용하여 다양한 일러스트레이터를 고용해서 일종의 성우 케릭터 게임을 만든 적이 있었다. 지금 보자면 케릭터 가챠 게임의 근간이라 할 수 있는 구조이긴 하지만, 그 당시의 트렌드는 사쿠라 대전 처럼 한 명의 유명 일러스트레이터가 모든 케릭터 디자인을 전담하는 구조였기 때문에 이러한 흐름은 당시의 대중으로부터 외면을 받았었다. 이런 식으로 항상 과거는 미래의 맹아를 품고 있었지만, 이런 미래들은 항상 사람들이 기억하는 좋았던 과거의 형태와는 동떨어져있었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과거로 회귀하는 것은 일종의 회귀인 동시에 현재 도래한 미래에 대한 부정을 내포한다. 과거의 게임들이나 작품들이 과거에서 미래로 향하는 실험과 가능성들을 품고 만들었던 것들은 성공하든 실패하든 새로운 것을 갈망하는 몸부림을 내포하고 있다. 물론 여기에서 잠시 언급한 뱀파이어 서바이버 역시 어떻게 보면 새로운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한 가능성들(별도의 공격 조작 없이, 자동공격의 구조만으로 게임을 구성할 수 있는)을 내포하고 있지만, 뱀파이어 서바이버가 기반하는 바라보는 지향점은 저 너머의 미래(자동공격의 구조로 어디까지 밀어붙일 수 있는가?)라기 보다는 악마성 드라큘라와 좋았던 옛날이라는 과거이기 때문에 그 가능성을 밀어붙이는 저력이나 통찰력이 날카롭다고 할 수는 없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게임들이 재미가 있는 것과 별개로, 어딘가 아쉽게 느껴지는 부분은 바라보는 지향성의 문제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게임 이야기


※ 엑박 메거진 4월호에 실린 글입니다(링크)

근 10년 간 부분 유료화 Free 2 Play의 게임의 숫자는 모바일 게임 장르의 발전과 함께 콘솔, 모바일 플랫폼을 가리지 않고 꾸준하게 늘어왔다. 하지만 엄밀하게 이야기한다면 무료 게임은 ‘무료’가 아니다. 기본적으로 플레이어가 플레이를 무료로 할 수 있지만, 게임을 열심히 할수록 유료 재화가 절실하게 필요해지는 순간들이 오기 때문이다. 이렇게 무료 게임들이 게임에서 수익을 내기 위해 돈을 소비하는 구조, 통칭 비즈니스 모델로 불려지는 소비 구조는 무료 게임이 대부분인 모바일 게임에서는 흔하게 보여지는 구조다. 하지만 모바일 게임과 콘솔 게임의 크로스 플랫포밍이 활성화 되고 모바일 게임의 높은 수익률에 눈독을 들인 기존 콘솔 게임 회사들이 부분 유료 게임을 개발하거나 기존 게임을 부분 유료로 돌리는 등 더 이상 기존 콘솔 게임에서도 부분 유료 게임의 비즈니스 모델이 낯설지 않게 되었다.

본 칼럼에서는 유희왕 마스터 듀얼의 비즈니스 모델을 간략하게 이해해 보고, ‘부분유료화 게임에서 어디서 어떻게 플레이어의 돈이 지출되는가?’ 라는 관점에서 게임을 분석해보도록 하겠다. 유희왕 마스터 듀얼 재화 소비 구조를 단순화시켜 보자면, 아래와 같은 그림이 될 것이다.

 

 

마스터 듀얼의 재화 소비구조의 핵심은 “어떻게 돈이 카드라는 재화가 되는가?”이다. 하지만 이 소비구조에는 중요한 전제가 깔려 있다. 돈이라는 실물 재화를 가상의 카드라는 가상 재화로 바꾸기 위해서는 일련의 ‘환전’ 과정이 필요하다. 이러한 환전 구조를 분석함으로써 게임이 어디서 어떻게 비용이 발생하는지를 자세하게 알아볼 수 있을 것이다. 

우선 유희왕 마스터 듀얼 게임 내에서 카드를 보충하는 전반적인 구조는 아래와 같다.

 

 

유희왕 마스터 듀얼은 블리자드에서 만든 비디오 CCG(Collectible Card Game) 인 하스스톤의 시스템을 적극적으로 차용하고 있다. 하스스톤은 무작위의 카드 뽑기인 카드 팩 구매를 통해 카드를 구한다. 구매한 카드 팩은 무작위로 카드들이 들어 있어서 자기가 원하는 카드와 원하지 않는 카드들이 같이 들어있을 가능성이 있다. 그렇기에 하스스톤은 쓸모없는 카드들을 분해해서 재화를 얻고, 그 재화로 다시 카드를 만드는 제작 과정을 통해서 원하는 카드를 모아 덱을 만들게 하였다. 마스터 듀얼도 기본적인 구조는 동일하지만, 블록제 시스템을 취하고 있는 하스스톤과 다르게 1만장의 카드 풀을 갖고 있는 마스터 듀얼에서는 단 하나의 카드팩에서 원하는 모든 카드를 뽑는다는 것은 아무리 돈을 들인다 하더라도 확률적으로 불가능하다.

그렇기 때문에 특이한 점은 유희왕 마스터 듀얼은 아래와 같은 2중 뽑기 구조를 취하고 있다는 점이다.

 

 

유희왕에서 카드 팩 구매는 모든 카드가 나오는 범용 카드 팩과 특정 테마가 나올 가능성이 높아지는 픽업 카드 팩(게임 내에서는 한정 카드 팩으로 불리는)으로 구성되어 있다. 픽업 카드 팩은 일본 모바일 게임에서 자주 보여지는 픽업 가챠의 개념과 유사한데, 픽업 가챠가 ‘특정 케릭터/재화를 뽑을 가능성이 올라가는 뽑기’ 시스템이란 것을 생각한다면 유희왕의 픽업 카드 팩도 그러한 개념과 직접적으로 맞닿아 있다. 픽업 카드 팩에는 특정 카드 테마와 그 테마에 어울리는 범용 카드들이 들어있기 때문에, 특정 테마를 구성하려는 사람들에게는 상당히 유용하다.

유희왕 마스터 듀얼에서 흥미로운 점은 픽업 카드 팩이 ‘해금’되는 구조다. 우선 해당 테마의 ‘키 카드’라 할 수 있는 카드들을 얻으면 픽업 카드 팩이 24시간 동안 해금되는데, 이 카드를 얻는 것이 카드 제작(SR 등급 이상)을 해서 얻는 것과 카드 팩에서 해당 테마의 카드를 얻는 것으로 픽업 카드 팩을 구매할 수 있게끔 풀린다. 

위의 내용을 포함해서 전체 재화 소비를 다시 정리하면 아래와 같다.

 

 

여기서 한 가지 더 눈 여겨 보아야할 부분이 있다. 그것은 바로 실재 돈이 카드 팩을 구매하기 위한 재화로 어떻게 변화하느냐? 의 부분이다. 대다수의 모바일 게임들이 그렇듯이, 유희왕 마스터 듀얼에서도 뽑기를 진행하기 위해서 돈으로 뽑기를 위한 재화를 구매해야 한다. 유희왕 마스터 듀얼에서는 그것이 ‘젬’이라는 재화가 된다. 여기서 그러면 한 가지 의문이 생긴다. 어째서 플레이어는 돈을 이용해서 곧바로 카드 팩을 구매하지 않는 것일까? 

젬이라는 개념의 핵심은 바로 돈 이외에도 다양한 재화들을 카드 팩으로 이어주는 교환 가치라는 점이다. 플레이어는 돈 이외에도 다양한 활동들(게임 내 승리, 이벤트 달성 등등)을 통해서 젬을 획득할 수 있다. 즉, 돈 이외에도 플레이어에게 주어지는 보상이 카드 팩이라는 재화 구매로 이어지기 위해서 젬이라는 중간 매개체이자 교환 가치를 두었다는 것이다. 

구매 이외의 플레이를 통해서 젬을 구할 수 있는 프로세스는 아래와 같다.

 


 
이러한 구조는 유저의 접속 리텐션을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다. 유저 리텐션이란 경영학 및마케팅에서 사용되는 용어로 ‘시간이 지날수록 얼마나 제품으로 돌아오는가’라는 개념을 통칭하는 개념이다. 부분 유료화의 게임 특성 상, 많은 사람들이 들어오고 동시에 빠져나간다. 가볍게 즐기는 만큼 쉽게 빠져 나가는 것인데, 플레이어가 게임을 플레이하는 동안 돈을 이용해 쉽게 게임에서 강해지는 것 이외에도 행동에 보상을 주어 게임에 좀 더 붙어 있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보상을 주고 플레이어들이 이탈하지 않고 계속해서 게임을 플레이한다면 전체 게임 플레이 생태계를 건강하게 만들기 때문에 리텐션을 유지하기 위해 플레이어의 행위에 보상을 주는 것(인 게임 재화 같은)은 매우 중요하다.

위 내용까지 종합해서 본 그림은 아래와 같다.

 


 
유희왕 마스터 듀얼의 재화 소비구조는 모바일 게임들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는 정석적인 구조다. 그렇기에 재화의 소비가 급격하게 일어나는, 소위 병목Bottle Neck도 존재한다. 병목이란 특정 수준 이상으로 올라가기 위해서 들이는 돈과 노력이 급격하게 늘어나는 구간을 뜻한다. 게임에서 병목은 단순하게 노력만으로는 돌파할 수 없기 때문에 노력과 함께 돈을 투자하는 것이 필수적으로 되는 시점이다. 이러한 병목은 단순히 돈을 쓰게끔 만드는 것을 넘어서 게임에 대한 플레이어의 애착도를 늘릴 수 있는 기회이기 때문에 단순히 ‘돈을 갈취하는’ 구조와는 좀 다르다고 할 수 있다. 
유희왕 마스터 듀얼에서는 플레이어가 보유하는 덱의 숫자가 늘어나는 시점이 병목이 발생하는 시점이다. 덱의 핵심 카드들 등급들은 대부분 SR과 UR인데, 이 SR/UR 등급의 카드들을 만들거나 구하는 것이 일정 시점 이후로는 대단히 힘들어지기 때문이다.

아래 그림의 예시를 보자.

 


 
위 그림과 같이 SR/UR 카드를 덱의 핵심 엔진으로 채용하기 위해서 3장이 필요한데 3장을 구하기 위해서는 똑같은 등급의 카드 9장이 필요하다. 하지만 SR/UR 등급의 경우 카드를 잉여 카드 9장을 구하는 것이 힘들기 때문에, 픽업 카드 팩을 돌리면서 쓸모없는 카드들을 분해하고 더 나가서 듀얼패스에서 얻는 제작 재화까지 다 긁어서 맞춰야 한다. 결국 SR/UR급의 카드를 맞추기 위해서는 대량으로 카드를 구매할 수 있고 SR/UR급 카드를 높은 확률로 구할 수 있는 방법인 “돈 - 젬 - 픽업 카드 팩”에 의존하게 되므로 필연적으로 지출이 늘어날 수 밖에 없다.


이러한 병목 구조는 플레이어가 덱을 3~4개 이상 맞추지 않으면 쉽게 접할 수 없다. 기본적으로 마스터 듀얼은 튜토리얼, 솔로 모드 등을 통한 초반 재화 펌핑이 있어서 병목 없이 부드럽게 덱을 한 두개 정도맞출 수 있다. 그러나 카드가 1만장이 된다는 점, 제작 재화가 환전이 안되는 점, 가챠가 그렇게까지 효율이 좋지 않다는 점에서 결국은 덱을 맞출수록 병목을 마주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이를 요약한 전체 구조는 아래와 같다.

 


이러한 구조 상에서 플레이어가 취할 수 있는 현명한 구매 전략을 다음과 같이 제안할 수 있다.

1. 원하는 덱 테마와 목표 카드들을 확실하게 정한다.

초반에는 UR급 카드와 SR급 카드들이 자연스럽게 많이 쌓이고, 그걸 분해해서 원하는 카드들을 금방 맞출 수 있기 때문에 최대한 재화가 여유로운 초반 시점에는 재화를 낭비하지 않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2. 픽업에서 나오는 카드들은 픽업 카드 팩으로 뽑고, 그외의 카드들은 제작으로 만든다.

범용 카드들(ex. 하루 우라라, 증식의 G 같은)은 픽업 카드 팩에서 나오지 않기 때문에 범용 팩에서 뽑으려면 필연적으로 엄청나게 많은 재화가 들어갈 수 밖에 없다. 제작 재화는 듀얼 패스나 여타 다른 요소들을 통해서 구할 수 있고, 원하는 카드로 곧바로 제작할 수 있기 때문에 자원의 효율이 높다. 

픽업 카드들은 픽업 카드 팩에서 나올 꽤 가능성이 있고, 픽업 카드 팩에서 사용하는 카드가 나오면 최선이고 원하지 않는 SR/UR 카드들은 분해해서 다른 카드로 재투자하는 게 효율적이다.

 

위 글을 통해서 간략하게나마 유희왕 마스터 듀얼의 재화 소비 구조를 전반적으로 살펴봤다. 이러한 재화 소비 구조의 분석과 플레이어의 소비 전략 수립은 부분 유료화의 게임이 콘솔에서도 점점 늘어나는 추세인 것을 고려한다면 게임을 소비하는 소비자이자 플레이어로 꼭 갖춰야 하는 소양이 될 수 있다. 

게임 이야기


[리뷰]유희왕 마스터 듀얼
출시: 2022년 2월 3일
개발: 코나미
유통: 코나미
※ 엑박 메거진 4월호에 실린 글입니다(링크)

들어가며 – 유희왕 실물 카드 게임의 간략한 역사

유희왕은 1996년부터 2004년까지 소년 점프에 연재된 만화를 토대로 한 TCG(Trading Card Game)이며, 1999년부터 지금까지 꾸준히 운영중인 TCG 프랜차이즈이다. 96년 첫 연재된 만화 유희왕 속에서 1993년 최초의 TCG인 매직 더 개더링의 오마주인 듀얼 몬스터즈라는 TCG로 묘사된 것이 현재 유희왕 실물 카드 게임의 모티브라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원작 만화에서의 실물 카드 게임은 만화의 테마와 서사를 보조하기 위한 수단이었지 독립적으로 완성된 게임이 아니었다. 대표적인 예가 크리보의 숨겨진 효과(기뢰화)라던가, 크리보가 증식한다던가 등의 원작 만화 자체의 카드 효과들이다. 이때까지만 하더라도 TCG와 원작 간에 상당한 괴리가 있었고, 만화의 재미와 별개로 이랬다 저랬다 하는 룰들은 '그래서 유희왕 내의 카드 게임이라는게 뭔데?' 라는 의문을 자아냈다. 그렇기에 초기 유희왕 실물 카드 게임은 만화 원작을 게임으로 옮겨놓는 재현에 가까웠고, 아직 유희왕 실물 카드 게임이라는 정체성을 잡기에는 부족한 부분들이 있었다.

그러나 프랜차이즈의 역사가 뒤로 갈수록 처음 매직 더 게더링을 오마주했던 원작과 달리 독자적인 노선을 걷기 시작했다. 이후 전개된 작품들은 원작과 다르게 '유희왕이라는 프랜차이즈의 새로운 룰과 콘셉트를 홍보하기 위한 홍보 작품'으로 기능하기 시작했고, 매 새로운 작품마다 실물 카드 게임에 대격변을 일으키며 작품과 상품들을 동시에 운영하였다. 만화를 원작으로 한 DM에서부터 GX → 5Ds → ZEXAL → ARC-V → VRains 로 이어지는 과정에서 다양한 카드들과 소환 방법들(싱크로 소환, 엑시즈 소환, 펜듈럼 소환, 링크 소환) 등이 추가되었고, 룰이나 금지/제한 카드에 대한 규칙 역시 많은 변화가 일어났다. 이러한 변화의 과정 속에서 유희왕 실물 카드 게임은 단순히 만화의 사이드 프로젝트 수준을 넘어섰는데, 발매된 카드의 수나 판매된 카드의 매수 등이 매직 더 게더링에 버금갈 정도가 되었다.

하지만 유희왕 프랜차이즈가 한계를 맞이한 것도 프랜차이즈의 역사 동안 다양한 소환 방법의 추가와 룰의 복잡화에 기반했다. 서로 다른 룰을 적용받는 특수 소환만 총 6개(융합/의식/싱크로/엑시즈/펜듈럼/링크)였고, 프랜차이즈 전개 동안 극심한 카드 파워 인플레이션, 이전의 카드가 현 환경을 파괴하는 문제, 한 카드 내에 복잡하고 끔찍하게 긴 텍스트가 들어가 가독성과 난해함의 문제 등 많은 문제가 일어났다. 결국 애니메이션과 실물 카드 게임을 함께 운영하던 유희왕 프랜차이즈의 전략은 수렁에 빠지게 되는데, 애니메이션으로 신규 유입은 끌어들이지 못하고 새로운 테마와 룰을 소개하기에 실물 카드 게임이 지나치게 복잡해지는 문제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유희왕 프랜차이즈는 신규 유저들은 기존 스피드 듀얼의 포맷을 명료하게 다듬은 러시 듀얼이라는 새로운 룰과 유희왕 세븐즈라는 애니메이션으로 관리를, 기존 카드 군과 유저들은 마스터 듀얼이라는 포맷으로 재정립하여 관리하는 투 트랙 전략을 취하였다.

엑스박스를 포함한 전 기종으로 발매된 유희왕 마스터 듀얼은 게임 제목 그대로 현재 유희왕 실물 카드 게임의 규칙 포맷인 마스터 듀얼 포맷을 토대로 만들어진 F2P 카드 게임이다. 재밌는 점은 23년 간 쌓아올린 현 마스터 듀얼의 포맷에 거의(약 1년 정도의 간극은 있다) 유사하게 나온 케이스는 유희왕 비디오 게임 프랜차이즈 역사상 처음이라는 것이다. 이전에 나온 유희왕 비디오 게임들은 기본적으로 애니메이션의 재현이라는 측면에서 접근했었기 때문에, 특정 애니메이션에 나온 제한적인 카드들로만 구성되었지만 본 게임의 경우에는 판권 문제 때문에 나오지 못한 일부 카드들(대표적으로는 삼환신의 수장인 호르아크티 같은)을 제외하면 현재 실물 카드 게임에 가장 유사한 모습이다. 

카드 게임의 특징과 매직 더 게더링을 통해 본 기본 흐름에 대한 간략한 분석

 

 

 마스터 듀얼을 본격적으로 리뷰하기에 앞서서 TCG 장르에 대해서 간략하게 분석해야 한다. 기본적으로 TCG라는 게임 장르의 특징은 기본적으로 '문장구조에 단어를 집어넣는다'라는 구조를 가진 게임이다. 게임의 전체 룰은 문장구조와 문법에 대응하고, 각각의 카드들은 단어에 대응하며, 게임이 지향하는 목표에 따라서 문장의 완성도를 평가한다. TCG는 여타 보드게임 룰들에 비교하여 보았을 때, 상당히 성긴 형태의 규칙을 갖고 있는데, 규칙에 어긋나지만 않는다면 플레이어가 자유롭게 카드들을 규칙에 맞게 배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점 때문에 카드 게임은 여타 보드게임과 달리 플레이어의 상상력과 개성이 보장되는 게임인데, 구조적으로 '문법에서 어긋나지 않는다면 무엇을 집어넣어도 상관없는' 게임이기 때문에 플레이어가 자유롭게 단어들의 뭉치인 덱을 구성할 수 있다.

그리고 동시에 각 카드와 카드가 룰 사이에서 어떻게 연결되는가를 정확하게 파악하는 플레이어의 숙련도와 역량도 중요한 게임이다. 문장을 구성할 때, 문법에 맞는다고 모든 문장이 문장으로 기능하는 것은 아니다. 문장이 발화되는 순간의 맥락에 따라서 그 문장의 적절성(발화자의 목적에 부합하는지)도 언어에 있어서 중요한 요소이기 때문이다. TCG에서 단어와 단어의 선택은 게임 룰에 맞춰 카드의 발동과 배치하는 것으로 이루어진다. 플레이어는 자신의 손패에 들고 있는 카드들의 풀 내에서 짜임새 있게 카드를 이용해서 이득을 봐야 한다. 

마지막으로 TCG라는 장르에서는 단어, 즉 카드를 재화로 취급한다는 점이 중요하다. 장르의 이름인 트레이딩 카드 게임이라는 용어에서 알 수 있듯이, 플레이어는 부스터/드래프트 팩을 통해서 무작위로 담긴 카드들로 카드들의 뭉치인 덱을 구성해야 한다. 중요한 점은 각 카드들은 모두 동일한 가치를 지니지 않는다는 점이다. 각각의 카드들은 각각 희귀 등급이 정해져있고, 희귀도가 올라갈 수록 덱에서 키가 되는 역할을 맡는다. 트레이딩 카드 게임에서 트레이딩이란 이러한 희귀도 차이를 유저들 간의 거래 또는 샵에서의 거래를 통해 극복하게끔 하는 것이다.

 

 

위와 같은 전제를 바탕으로 유희왕이 오마주했었던 매직 더 개더링(매더개)의 기본 구조를 살펴보자. 위 그림과 같이 매더개는 기본적으로 플레이어가 사용할 수 있는 자원 카드의 뭉치인 덱과 플레이어가 자신의 턴에 사용할 수 있는 패, 그리고 실제 게임이 플레이되는 필드의 영역으로 나뉘어진다. 매더개의 특징은 패에서 발동하는 모든 카드들이 '마나 자원'을 소비한다는 점, 그리고 그 마나 자원을 턴마다 생성하는 대지 카드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매더개나 매더개의 가장 성공한 아류인 하스스톤에서도 볼 수 있는 부분인데, 이 자원의 존재는 플레이어가 아무리 강한 카드들을 들고 있다고 하더라도 이 카드를 꺼내기 위해서 내 대지 카드들을 보호하고(대지 파괴 요소가 매더개에는 존재한다), 초반 턴에 나를 보호해줄 수 있는 위니(주로 1~2 코스트로 빠르게 나올 수 있는 카드들) 카드들을 통해서 적절하게 나를 방어하기도 해야한다. 결국은 매더개는 자원을 적절하게 쌓아올리면서 상대의 공격을 방어하고 자신의 덱이 갖고 있는 포텐셜을 십분 발휘할 수 있게 덱을 전개해나가는 운영이 중심이 되는 게임이다. 카드 간의 연계도 중요하지만, 한번에 휘몰아치기 보다는 '적절한 순간에 적절한 카드로 막아가면서 게임을 고조 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여기서 어드벤티지, 한국에서는 '아드'라 불리는 개념이 등장한다. 아드는 플레이어의 가용 자원 수와 상대 플레이어의 가용 자원 수의 차이를 일컫는 개념이다. 예를 들어 플레이어가 카드 한장을 사용하여 상대 필드 위에 카드 한장을 파괴하고 그 카드가 묘지로 갔다면, 플레이어는 한 장의 카드로 상대의 한 장 카드를 막았기 때문에 별다른 이점을 벌지 못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플레이어가 한 장의 카드로 상대의 두 장 이상의 카드를 제거했을 때, 나는 한장을 쓰면서 상대의 카드를 두장 이상 제거하여 최소 한 장 이상의 이점을 얻었다고 할 수 있다. 

위와 같은 내용을 종합해서 보면 TCG는 유려한 말싸움의 게임이라 할 수 있다. 플레이어는 각자 자신의 스타일에 맞는 단어들(카드들)을 모은 단어 뭉치(덱)를 만들고, 그 단어 뭉치에서 제한된 단어들만 뽑아낸다(손 패의 구성). 그리고 각 플레이어들은 언어의 문법(게임의 규칙) 내에서 각 단어를 조합해서 상대의 문장을 효율적으로 분쇄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이 와중에 자신을 대표하는 멋진 단어들(희귀한 카드 같은)을 중심에 두고 단어 뭉치를 구성하거나 독특한 단어 뭉치들을 이용해 게임을 플레이하는 부수적인 재미를 주는 것이 TCG 장르의 재미라 할 수 있다.

유희왕 분석 - 랩 배틀, 또는 드래그 레이싱

 게임으로써 유희왕은 만화와 다르게 만화를 소비하는 저연령층의 소비자들을 대상으로 게임이 구성되었다. 그렇기에 원작 만화의 매직 더 개더링스러운 부분들(카드에 명기되지 않은  '키워드', 위에서 언급한 기뢰화의 케이스처럼)은 배제되고 매직에서 저연령층 소비자들이 어렵게 느껴질만한 요소들을 제거되었다. 가장 큰 변화점은 '마나 자원의 삭제'와 '카드 내에 모든 텍스트가 들어감'일 것이다. 기존 매직 더 개더링이 신규 유입 유저에게 장벽으로 느껴질 수 있는 부분은 바로 '마나 자원의 관리'와 '카드가 모든 것을 설명하지 아니한다(키워드 시스템)', 그리고 '마법과 효과 처리를 하는 스택' 개념일 것이다. 스택은 유희왕에서 체인 개념으로 변화하였음으로 유지되었다 하더라도, 마나 자원 관리와 키워드 시스템은 유희왕에서는 없는 개념이다. 특히 플레이어가 자원을 관리하게 만들고, 강한 카드들이 곧바로 나오지 못하고 차근차근 게임을 쌓아올려가는 기제였던 마나 자원의 삭제는 눈여겨 볼 만하다. 이런 부분이 삭제되면서, 유희왕은 매직 더 게더링보다 더 쉽고 빠른 게임 페이스를 지향하게 되었고, 만화의 주 소비층인 저연령층에 어필할 수 있었다.

그러나 마나 자원의 삭제 등의 변화점이 유희왕을 '무자원으로 빠르게 강한 몬스터를 꺼낼 수 있는' 게임으로 만든 것은 아니다. 유희왕의 독특한 점은 카드 자체가 이점으로 적용되는 위치가 정해져 있다는 것이다. 위 그림에서 정리한 것처럼, 몬스터 존/마법, 함정 존/묘지 존 등등으로 나뉘어져 있고 제 위치에 있지 않으면 그 카드가 자신의 역할을 할 수 없게끔 만들어 두었다. 자원을 삭제한 대신에 사용할 수 있는 공간을 한정하였고, 마법/함정의 경우에는 앞면으로 빠르게 사용하거나(마법) 뒷면으로 세트 후 다음 턴에 발동한다(함정) 발동 상황에 대해서 제약을 걸었다. 그렇기 때문에 초기 유희왕은 덱을 구성할 때 플레이어는 빠르게 깔 수 있는 몬스터/마법과 상대턴에 상대를 견제할 수 있는 함정 카드, 최종적으로는 몬스터를 제물로 써서 더 강한 몬스터를 불러와서 상대 라이프를 줄여야 했었다. 흥미롭게도 규칙 자체는 매직 더 개더링보다 간소화되었어도 '게임에서 플레이어 서로가 주고 받는 상황'이나 최종 국면 자체는 기존 매직 더 개더링이 지향했던 부분과 유사하였다.

 

 

하지만 근 5년 간의 유희왕, 쉽게 이야기해서 최근 유희왕 실물 카드 게임의 흐름은 초기와는 완전히 달라졌는데, 대표적으로 극단적일 정도로 빠르고 유연해진 게임 진행 속도가 그렇다. 한 턴에 2~3마리의 상급 몬스터가 튀어나오는 것인 덱이 갖춰야 하는 기본 소양이고, 덱 서치, 샐비지, 대량 파괴, 퍼미션 등의 강렬한 난타전들이 일어난다. 이러한 흐름은 당연히 현재 유희왕 실물 카드 게임의 시스템에 가장 유사하게 제작된 비디오 게임인 ‘유희왕 마스터 듀얼’ 에서도 그대로 이어진다. 20년이 강산이 두번 바뀔 정도로 긴 시간이긴 하지만, 대체 그 사이에 무슨 일이 일어났길래 이렇게까지 변화했는가라는 궁금증이 들 정도로 큰 변화다.

이러한 변화는 마스터 듀얼에서 쉽고 강한 덱이라 할 수 있는 엘드리치 덱을 보면 쉽게 감이 올 것이다. 엘드리치 덱은 구성에 따라서는 덱에 황금경 엘드리치 3장만 넣고 돌리는, 초기 유희왕 유저로써는 상상조차 안 되는 과격한 모습을 보여준다. 하지만 실제 게임에서 돌려보면 충격적일 정도로 덱이 부드럽게 굴러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이 덱의 메카니즘을 이해하려면 아래 도표를 보도록 하자.

 

 

복잡하게 그려져 있지만, 핵심은 엘드리치 마법/함정들은 마법/함정 존에서 엘드리치를 소환하거나 상대 마법 함정을 카운터 치고, 사용되고 난 다음에는 무덤에서 엘드리치 마법/함정을 덱에서 서치/리필해 주는 역할을 맡는다. 그리고 엘드리치의 경우에는 패에서는 상대 필드의 몬스터/함정/마법 등을 파괴하는 견제 카드로, 묘지에서는 패 한장을 코스트로 스스로 되살아 올라와서 필드에 다시 소환된다는 것이다. 즉, 엘드리치 덱에서의 각 카드들은 한번 사용하고 버려지는 것이 아니라 묘지에 따라서 재활용되고, 카드 테마 내의 카드들은 긴밀하게 상호작용하면서 한 카드가 다른 카드들을 덱/패/묘지 등등에서 계속해서 줄줄이 불러낸다. 

즉, 모던 유희왕은 초기 유희왕에서 두 가지 큰 변화를 겪었다. 첫번째는 각 카드가 더이상 자신의 위치(몬스터, 마법/함정, 묘지 등)에서 기능하는 것이 아니라 적어도 두 군데 이상에서 자신의 역할을 수행한다는 점이다. 그리고 두번째는 범용 카드, 한 장으로 완성된 강력한 카드보다는 독특한 플레이 방식을 보여주는 수많은 테마군들 내의 카드들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유기적으로 게임을 이끌어가는 방향으로 변화했다는 것이다.

때문에 게임 플레이 양상은 크게 바뀌었다. 우선 공격측 전략 관점에서 보자. 모던 유희왕으로 넘어오면서 덱 서치/묘지 샐비지/덤핑 등의 요소 때문에 게임의 속도가 빨라진 만큼, 게임은 이제 패 자원에 있는 카드 뿐만 아니라 덱과 묘지, 필드 등의 다양한 곳들의 자원들을 최대한 적재 적소에 배치하여 덱 전체 자원을 기반으로 하는 논리 엔진을 구축해야 한다. 이렇게 만들어진 논리 엔진은 전개/운영덱 특성에 따라 플레이어가 판단하는 목표 카드들(높은 공격력의 효과 몬스터, 퍼미션 카드, 에이스 등)을 향하는 콤보의 흐름을 구축한다. 

 

 

본인이 마스터 듀얼에서 운영하고 있는 LL 트라이브리게이드의 사례를 들어보겠다.

 

 

위 그림과 같이 LL 트라이브리게이드(통칭 LL 트라게) 덱은 두개의 축으로 구성된다. 하나는 트라이브리게이드 테마의 몬스터들과 그 몬스터들로 링크 소환이 되는 트라게 축, 다른 하나는 LL 몬스터들과 그 몬스터들로 엑시즈 소환이 되는 LL축이다. 그림으로 보면 복잡해보여도 실제 운영 자체는 간단하다. 플레이어는 상황에 따라서 트라게 축과 LL축을 오가면서 몬스터를 전개하고, 상황에 따라서 서로의 축을 오갈 수 있는 카드들(너벨이나 마법 버드 콜 같은)을 활용해 축을 갈아탄다. 그리고 그 전개된 몬스터들을 이용해 상대 운영/전개를 방해한 뒤에 체력을 깎아 끝을 내면 된다. 요약하자면 게임의 전반적인 운영은 목표로 삼은 카드를 뽑기 위해 각 카드별로 이점으로 활용될 수 있는 위치(트라게는 묘지, LL은 주로 패)에 카드를 배치하고, 최대한 그 이점을 덜 소비하면서 효율적으로 전개하는 것이다. 이러한 과정에서 유희왕은 빠른 진행과 능동적인 플레이어의 선택을 강조한다.

한편 방어 관점에서의 유희왕은 크게 패트랩과 퍼미션 전략 두가지로 구성되어 있다. 우선 퍼미션부터 보자. 기본적으로 퍼미션은 '특정 카테고리의 행위를 막는 것'이라 할 수 있는데, 가령 '효과 몬스터는 효과를 발동할 수 없다', '마법/함정을 무효로 하고 파괴한다' 등의 텍스트가 여기에 속한다. 단순한 기능이긴 하지만, 상대의 특정 행위를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틀어막는다는 점에서는 무시무시한 기믹이며 여타 카드 게임에서는 쉽게 발견할 수 없는 룰이지만 유희왕에서는 퍼미션이 중요한 방어 전략으로 대부분 덱은 한 두개 이상의 퍼미션 요원이나 퍼미션 기믹을 탑재하고 있다.

두번째는 패트랩이다. 패트랩은 함정 카드와 비슷하지만, 손패에서 별다른 세트나 준비 없이 발동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몬스터/마법/함정 가리지 않고 손패에서 발동할 수 있는 카드군을 유저들 용어로 패트랩이라 부르는데, 사실상 노 코스트로 나와서 상대의 진행을 방해한다는 점에서 강력한 방어이자 억제 전략이라 할 수 있다.

이를 위에서 예로 든 LL 트라게 덱의 사례에 적용해보면 아래와 같은 흐름이 등장한다.

 

결국 엔진을 구성하는 각 요소들을 공략하는 것이 유희왕에서의 방어 전략인데, 문제는 여타 카드 게임에 비교하면 이러한 방어전략은 '극단적'이라 할 수 있다. 퍼미션 같이 한 카테고리의 행동 자체를 봉쇄하거나, 패트랩 처럼 대비조차 할 수 없는 요격 수단이라는 것 자체가 당하는 상대방 입장에서는 기분이 좋을리가 없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이러한 수단들이 없었다면 공격측의 전개에 방어측 플레이어가 방어할 수 있는 수단은 거의 전무하다. 게임 플레이가 극단적으로 빨라진 만큼, 패트랩이나 퍼미션 한 두개 정도 있는 수준으로는 우회 루트로 빌드를 올리거나 카운터 운영을 하는 등의 선택지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본다면 유희왕의 방어는 성을 잘 짓고 상대의 소모를 유발하는 것이 아닌, 날아오는 미사일을 다른 미사일로 격추시키는 일종의 요격 개념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그렇기에 플레이어는 패트랩과 퍼미션을 하나하나 신중하게 구사하여야 한다.

공격과 방어, 양 측면에서 유희왕을 세 요소로 요약하여 본다면 다음과 같다. 

 

 

1. 목표까지 도달하기 위한 콤보/루트의 산정
2.상대의 방어 전략들(패트랩 등)을 전제하고 공략에 나서는 것
3.1과 2를 반복하면서 상대 라이프를 깎아 승리에 도달.

 


위의 LL 트라게 덱의 경우, 트라게 축과 LL축의 전개를 섞어가면서 상대의 패트랩을 교란하고 퍼미션 요원들(특수소환 퍼미션 - 앙상블루 로빈, 대상 지정 효과 퍼미션 - 왕신조 시무르그, 마법 함정 퍼미션 - 안개 골짜기의 거신조)을 전개하여 상대의 패 소모를 유발하면서 이점 차이를 벌리다가, 마지막에 피니셔들(트라이브리게이드 흉조 슈라이그, 엑세스 코드 토커)을 투입해서 게임을 마무리 짓는다.

이러한 요소들 때문에 유희왕 실물 카드 게임은 여타 카드 게임에서 찾아볼 수 없는 극단적인 빠른 전개와 과격함을 보여준다. 게임이 격렬한 만큼, 게임 시작 3턴 안에 대부분의 승패가 결정되거나 승패의 흐름이 나며, 좀 더 극단적인 조합에 따라서는 불안정하긴 하지만 첫 턴에 덱 40장을 모두 써서 엑조디아를 모아 필승을 노리는 덱을 짤 수도 있다. 그렇기에 게임은 드래그 레이싱(넓은 직선 대로에서 누가 가장 빠른지를 대결하는 레이싱)라고도 볼 수 있는데, 누가 더 빠르게 자신 덱의 목표 카드들을 뽑아내는가, 그리고 얼마나 상대의 플레이에 재를 잘 뿌리는가로 승패를 판가름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특징들 때문에 유희왕에는 간과할 수 없는 문제들이 있다. 첫번째는 절대적으로 선공이 유리하다는 점이다. 대부분의 덱이 패 5장 이내에서 필요로 하는 첫 전개/운영 요원들이 나오도록 덱을 구성해서 그 턴 내에 절반 정도의 목표 카드들이 나오게 되고, 목표 카드들로 먼저 집을 지어놓으면 그걸 뚫고 들어가지 못하게 퍼미션 요원 몇을 배치하는 것이 기본이기 때문이다. 극단적으로는 선공을 잡는 순간 패 상황에 따라서는 퍼미션과 함께 공격력 3000이상의 몬스터 2~3체 이상이 꺼내서 다음턴에 상대를 완벽하게 압살하는 것도 가능하다. 물론 실제 게임에서는 이러한 선공의 절대적 유리함을 완화하기 위해서 여러가지 안전장치들을 도입하였다. 선공 드로우의 폐지, 3판 2선승제 매치 플레이와 사이드 덱 전의 도입, 그리고 앞서 이야기한 패트랩 등의 요소들이 그러하다. 이러한 요소들 덕분에 선공을 잡아도 단판에서는 유리하지만 전체 매치에서는 적절한 밸런스가 맞게 된다. 허나 후술할 마스터 듀얼의 경우에는 이 문제가 크게 작용한다 

두번째는 텍스트의 문제다. 유희왕은 매직 더 게더링과 달리 카드 한 장이 하나의 완성된 카드라는 개념으로 게임이 설계되었다. 예를 매직 더 게더링은 생물 카드에 비행이라는 키워드가 붙어있다면, 그 비행이 어떠한 능력을 갖고 있는지에 대해서 그 카드 내의 텍스트는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유희왕은 카드 내에 그 카드가 어떤 식으로 동작하는지에 대해 상세하게 기술해놓아서 그대로 그 규칙대로 사용하면 된다. 다만 문제는 유희왕의 룰 적용이 중구난방이라는 점, 그리고 20년이 세월이 흐르면서 초창기 카드들과 후기 카드들의 규칙 충돌이 일어나는 점, 거시적인 부분이 아닌 세부적인 룰 작동에서는 이랬다 저랬다 하는 문제가 심각하다.

마스터 듀얼 - 비디오 게임으로서의 카드 게임

 

 

마스터 듀얼은 현대적인 유희왕의 체계를 탑재하고 있는 게임이며, 게임 성격은 이전 비디오 게임 유희왕 프랜차이즈들과 많이 다르다. 과거 유희왕 비디오 게임들은 게임의 홍보와 애니메이션의 부가 상품으로 병존하는 경향성을 보여왔다. 멀리 갈 필요도 없이, 스마트폰 게임으로 현재 운영되고 있는 듀얼 링크스 같은 게임도 있을 것이다. 애니메이션이 카드 게임을 홍보하고 주 소비 고객이 저연령층이었던 과거의 유희왕에게 있어서 비디오 게임이란 케릭터 상품의 일부였다. 듀얼 링크스를 예로 들어보면 명확한데, 듀얼 링크스에서는 나오는 카드가 제한적일뿐만 아니라 애니메이션 케릭터마다 스킬이 주어져 있어서 유희왕 카드 게임을 그대로 즐기기 보다는 애니메이션의 케릭터를 조작하는 느낌을 주는데 집중했다. 하지만 마스터 듀얼은 이러한 요소를 일체 배제하고, 유희왕 카드 게임에서의 카드 풀과 룰, 게임으로의 개성만으로 정직하게 승부한다. 이는 유희왕 마스터 듀얼 포멧(비디오 게임이든 카드 게임이든)이 순수하게 자신이 쌓아올린 그 역사로만 우직하게 승부하겠다는 최근 유희왕의 전략이 드러나는 부분이다. 그리고 이 덕분에 위에서 이야기한 유희왕의 매력적인 부분들을 십분 살리고 있다.

마스터 듀얼은 비디오 게임으로 만들어지면서 수혜를 톡톡이 입은 게임이다. 일단 위에서 언급하였던 룰의 적용과 복잡한 재정들, 중구난방인 카드 텍스트들이 프로그램에 의해서 자동으로 처리가 되며 플레이어가 쉽게 놓칠 수 있는 카드의 체인 발동 타이밍 같은 것들을 게임이 잡아줌으로 처음 유희왕 게임을 접하는 플레이어라도 게임을 즐겁게 플레이할 수 있다. 또한 덱 레시피를 검색해서 쉽게 복제할 수 있는 점이나 덱 레시피 구성 시 연관카드 검색 같은 비디오 게임이기에 가능한 편의 기능들도 충분히 갖췄다. 카드 게임 자체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추천할 수 있는 수준의 게임이다.

다만 마스터 듀얼이 모던 유희왕의 매력을 살리고 있는 점과 기본적인 완성도와 편의 기능을 갖추고 있는 것과 별개로 두가지 문제는 묵과하기 힘들다. 첫번째는 마스터 듀얼의 매치 시스템이다. 원판이 3판 2선승제의 매치 시스템을 통해서 선공이 유리한 구조를 어느정도 벨런스를 맞추었다면, 비디오 게임 마스터 듀얼에서는 오로지 단판 매치 규격만 지원하기 때문에 상대 덱을 파악해서 사이드 덱으로 전략을 조정하는 것은 불가능하고, 사이드 덱 전이 없을 때 강세를 보이는 몇몇 덱들(특히 유저들의 원성을 듣는 디클레어 기반의 드라이트론 같은)이 엄청난 강세를 보여준다.

그리고 두번째는 현 환경과 1년 정도 텀을 두고 있다는 점도 걸리는 부분이다. 6천여장의 카드 풀이 부족하다고 이야기한다면 이는 핑계겠지만, 최신 테마들의 기믹을 못 쓴다든가 하는 부분들이 감질난다. 매직 더 게더링 아레나가 현재 블록을 그대로 이용할 수 있다는걸 생각한다면 더더욱 그러하다. 다만 국내에서 매직 더 게더링 아레나의 등장 이후 스탠다드 포맷(근 2년간의 블록들 카드로만 덱을 구성해서 게임을 하는 것) 게임 플레이가 오프라인 환경에서는 상당수 사라졌다는 증언들을 고려해보면 결국 코나미와 마스터 듀얼이 염려하는 점은 프랜차이즈 간 카니발리제이션을 염두에 두고 이러한 텀을 둔걸로도 보여진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별건이지만, 마스터 듀얼을 통해서 보여지는 코나미의 정책 역시 아쉬운 부분이다. 마스터 듀얼은 기본적으로 갖출 것들은 갖추고 있지만, 기술적인 짜임새가 아쉬운 부분들을 꽤 발견할 수 있다. 그래픽에 비해서 프레임 드랍 이슈가 발견되는 등 고작 이걸로 버벅거린다고? 싶은 부분이 있거나,  UI가 어딘가 허전한 점, 비공개 방에서는 발생하는 네트워크 이슈들 등등은 치명적이진 않지만 무시하기 힘든 부분들이다. 또한 게임 포멧들이 단판 게임 포멧에만 초점이 맞춰졌고, 다양한 게임 플레이 스타일(금제를 다양하게 걸거나, 특정 테마 위주의 이벤트라던가) 등이 없다는 것도 아쉬운 부분이다. 전반적으로 마스터 듀얼은 게임 플레이 자체에 하자는 없고 유희왕의 매력적인 부분들을 잘 살리고 있지만 그렇다고 뭔가 완벽하다 라고 이야기하기에도 묘하게 빠져있는 듯한 게임이다.

결론

결론을 내리자면 유희왕 마스터 듀얼은 분명 재밌는 게임이다. 원작 실물 카드 게임의 재미도 잘 살렸고, 비디오 게임이 되면서 한결 편해진 부분들도 존재한다. 이후 다룰 재화 소비 구조에 대한 글에서도 언급하겠지만, 게임 자체도 초반에 시원시원하게 원하는 덱들을 맞출 수 있다는 점도 좋은 부분이다. 그러나 완벽하다라고 하기에는 여전히 어딘가 부족하다. 원작인 실물 카드 게임의 매력은 잘 살리고 있지만, 비디오 게임이기에 가능한 다양한 콘텐츠들, 편의 요소들 등이 결여되어 있고, 그 부분들이 플레이어로 하여금 뭔가 소금물을 마신거 마냥 마시고 나서 더 목이 마르게 만드는 문제를 불러일으킨다. 그래도 카드 게임이라는 장르에 관심이 있고, 한번 유희왕이 어떤 게임인지 알아보고 싶은 사람들은 적극 추천하는 바이다. 적어도 어느정도 수준까지는 별도로 돈을 쓰지 않더라도 재밌게 즐길 게임이기 때문이다.



게임 이야기

 

※ 본 글은 월간 엑스박스 매거진 2월호에 수록된 칼럼입니다.(전체 잡지 링크)

 

누군가 요제프 K를 중상한 것이 틀림없다. 아무 잘못한 일도 없는데 어느 날 아침 그는 체포되었기 때문이다. 하숙집 주인 그루바흐 부인의 하녀는 매일 아침 여덟시에 식사를 가져오는데 이날 아침에는 얼굴도 보이지 않았다. 이제까지 이런 일은 한 번도 없었다. 

- 프란츠 카프카의 심판

 

도시 전설Urban Legend 대해서 아는가? 전통적인 전설이 아닌 현대적인 도시를 배경으로 전설들을 다루는 작품들, 장르로 정리하자면 도회지 판타지Urban Fantasy 이야기는 도회지라는 공간을 배경으로 전설이나 환상을 이어나가는 서브 컬처 장르다. 도회지 판타지는 사이비 과학과 오컬트, 미신, 범죄, 신화 등과 같은 다양한 요소들로 구성된다. 각각 하나씩만 놓고 보더라도 거대한 장르를 구성할 있는 요소들이 도회지 판타지에 묶일 있는 이유는 독특한 하나의 핵심 명제가 있기 때문이다 도시 전설은 이치에 맞지만, 이치에 맞지 않다. 이렇게 생각해보자. 어떠한 원인이 있다면, 거기까지 도달하는 과정이 있고, 과정을 통해 결과가 생길 것이다. 하지만 역으로 도회지 판타지에는 결과가 존재하고, 결과에 대한 실존하지 않는 다원론적인 설명(외계인이 그랬다, 사이비 컬트가 그랬다, 연쇄살인마가 그랬다, 돌연변이가 그랬다) 붙이는 것이다. 그러한 설명을 다시 뒤집어서 합리적인 추론의 탈을 뒤집어 써서 다시 포장을 하는 것이 도회지 판타지의 장르적 특징이라 있다.

대표적인 예로는 SCP 재단의 문건들이 있을 것이다. SCP 재단은 위키 사이트로 다양한 허구의 도시전설들을 이야기가 아닌 위키 문서의 형태로 만들어진 창작물이다. SCP 재단에서 다루는 것들은 하나 같이 세상의 이치에서 동떨어진 것들(쉽게 이야기하면 완벽한 허구)인데, 이를 위키 문서로 묘사하면서 묘사 대상에 대한 상상력 함께 일종의 법칙성 제공한다. 하지만 이러한 상상력과 법칙성은 특이하게도 '검열된 문서'라는 양식을 통해서  모순되지 않고 조화를 이룬다. 우리는 SCP 문서들의 검열된 부분을 , 그것에 대한 규모나 입에 담기 어려운 끔찍한 진실을 상상할 있다. 반면에, SCP 등장하는 문서 위험도의 등급이나 다양한 부록 문서들, 논리적으로 배치된 다양한 매체들을 때면, 이것이 통제 가능하며 설명 가능하다는 느낌을 받을 있다.

흥미롭게도 도회지 판타지의 이러한 부분들은 부조리극이라는 근현대 문학과 어느정도 맥락이 닿아있는 처럼 보인다. 부조리극의 대표자인프란츠 카프카 소설들처럼 조리에 맞지 않는 , 이치에 맞지 않는 것들을 통해서 도시 문명에서 느껴지는 소외와 불안감을 다루는 것이다. 이전 근대문학에서 찾아볼 없는 부조리극의 독특한 감수성은 전적으로 도시라는 공간 기반하고 있다. 이름도 직업도 모르는 수많은 이들이 곳에서 모여서 살고, 과정 속에서 불가해한 일들이 일어난다. 도시와 산업 문명을 지탱하는 관료제도 그러하다. 전통적인 관료 제도 내에서는 일은 잘게 쪼개진 업무들과 그것의 집합체인 관료 조직으로 구성되며, 조직들은 서로 하는 업무를 없고 이해하고자 하지도 않는다. 이러한 도시 문명과 관료주의에 대한 현대의 소외를 이야기하는 것이 카프카 부조리극의 일반적인 모티브라 있다.

 

 

 

흥미롭게도 부조리극 역시 도회지 판타지와 미학적으로 맞닿아있는 부분이 있다.  변신을 예로 들어보자. 그레고리는 잠자는 벌레가 되었다, 라는 전설적인 문장으로 시작하는 소설은  주인공이 영문도 모른 벌레가 된다는 이해가 되는 문장으로부터 이야기가 시작된다. 하지만, 흥미로운 점은그레고리는 잠을 자다가 벌레가 되었다라는 사실이 아닌 그것이 전제가 되어서 전개되는 이야기일 것이다.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던 자가 어떻게 가족의 짐이 되고 혐오스러운 존재가 되는지, 그리고 그것이 쓸쓸하게 죽음을 맞아 쓰레기처럼 버려지는 메마른 과정 자체가 어떤 의미에서는 대단히 '현실적'이라 있다. 모순된 두가지, 묘한 현실성과 순수한 거짓의 결합, 결합을 통해서 카프카의 변신은 수많은 평론가와 후대 예술가들에게 영감을 주게 되었다.

카프카의 심판에서는 좀 더 이것이 극명하게 드러난다. 주인공 요세프 K는 알 수 없는 이유로 고발당하고 재판을 받으며 죽는다. 법제도 바깥에 서있으며 자신을 처벌하는 제도로부터 처벌당하는 내용인 심판에서 중요한 것은 요세프 K가 취하는 태도와 그에 대한 법 제도의 배척과 공격일 것이다. 연극적으로 과장된 영화를 만들었던 오손 웰즈가 영화화한 버전의 심판에서는 이것이 기괴하고 과정되며 극적으로 드러나는데, 변호사(오손 웰즈 역)가 법으로부터 고발당한 자신의 의뢰인에게 일종의 협박을 가하는 과정에서 '구체적이지 않지만(어떤 법조항으로, 어떤  이유 때문에 위험하다는 것인가?), 구체적인 불안과 협박(법조인들과 그 세력들이 의뢰인을 안좋게 본다는 사실, 그 사실만으로 판결에 영향이 있다는 것)'이 공존하는 장면을 도출한다. 어떻게 보면 이치에 맞지 않지만, 우리 역시도 현실에서 그런 일들이 어렴풋하게 일어난다는 것을 감지하고 있기 때문에 공감할 수 있는 여지가 생기는 장면인 것이다.

이러한 카프카의 부조리극은 도시문명의 특수성과 맞닿아 있다. 가해함의 불가해함, 불가해함의 가해함, 이치에 맞지만, 이치에 맞지 않는 모순의 진리가 도시 문명에 존재하는 것이다. 우리는 출퇴근하면서 자연스럽게 거대한 군중들이 대중교통에 타고, 밀려 들어오고 빠져나가는 것을 볼 수 있다. 그것은 자연스럽지만, 동시에 그것이 어떻게 자연스럽게 가능한가? 혹은 그것을 가능케 하는 장막 뒤의 동력에 대해서는 모두 알 수 없고 이해할 수 없다. 마치 스마트폰이나 클라우드 서비스 같은 첨단 서비스들처럼, 그것이 동작하는 것은 알지만 어째서 그것이 가능한가에 대해서는 알 수 없는 것처럼 말이다. 도시와 기계문명은 관료제와 분절화된 과학 기술 영역 등으로 구성되어 있고, 우리는 평생토록 그 일부만을 보고 살아간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 앞에서 합리적으로 돌아가는 것이, 실제는 우리의 이성에 맞지 않게 불합리하게 돌아가는 상황을 종종 목격한다. 이 모순된 개념이 조화를 이루고, 그것이 사회 속 개개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그대로 굴러간다는 것, 그것이 부조리극이 꿰뚫어보고자 한 현대문명의 본질이며, 더 나아가서 그것을 어떻게든 '이해하고 해결하기 위해 재해석하는 것'이 도회지 판타지가 성립할 수 있는 근거가 되는 것이다

 

 

 

도회지 판타지는 부조리극으로부터 모순된 두 명제의 공존(가해함의 불가해함, 불가해함의 가해함)의 미학을 물려받았지만그 미학에 갇히는 것이 아닌 그것을 관통하고 이해하고자 하는 시도를 한다. 그것이 어떻게 보면 사람이 살아가는 동안 자연스럽게 갖는 욕망이고, 도회지 판타지는 그러한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한 장르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도회지 판타지의 전설적인 작품이 바로 90년대 드라마였던 엑스파일일 것이다:21세기 도래 이전의 세기말의 암울한 분위기, 음모론, 종말론 등을 B급 호러 영화식의 특수 분장과 CG, 모호한 분위기, 그러면서도 진실은 저 너머에Truth is out there 나는 믿고 싶다I want to believe모든 것을 부정하라Deny everything 같은 유명한 캐치프레이즈를 만들어내며 90년대 수억의 음모론자에게 큰 영향을 미친(동시에 의도친 않았겠지만 수많은 백신 음모론으로 2020년대 백신 반대론자들에게도 영향을 끼쳤을 것이다) 작품이었다. 엑스파일은 단순히 세기말의 열풍을 타서 흥행한 작품이 아닌 도회지 판타지의 장르의 한 축을 완성시켰는데, 도시 전설에 대해서 수사극이라는 도시 문명에서 성립하는 전통적인 장르 문법과 과학적인 접근이라는 방법론을 통해서 그것을 어떻게든 논리적으로 이해하고자 하는 노력과 좌절, 실패 등을 통해 사람들이 도시문명에 대해 느끼는 이해에의 욕망을 충족시키게 된다.

엑스파일의 핵심은 도시전설이 권위에 의해 은폐된 진실과 맞닿아 있고, 그 진실을 찾아내기 위해 권위적인 방법론(과학, 정부 등)이 아닌 대안적 방법을 통해서 접근하는 데 있다. 과학에 의해서 비과학적인 요소로 규정되어 있는 요소들(외계인, 오컬트, 신비주의, 혹은 대안과학 등등)을 드라마의 플롯에 적극적으로 도입하는데, 그 과정에서 과학의 방법론(스컬리)와 대안 과학의 방법론(멀더) 변증법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멀더의 가설 제시 - 스컬리의 과학적 반론 - 감춰진 진실에 도달)이 짜임새가 있기 때문에 엄청난 인기를 끌었을 뿐만 아니라, 이후 미국 드라마나 대중 문화에 큰 영향을 주기도 하였다. 흥미로운 점은 엑스파일이라는 드라마의 방향성이 그 어느 쪽의 진실도 분명하게 맞다 틀리다를 결론짓지 않기 때문에, 그 모호성과 불안함이 20세기 말이라는 시대적 분위기와 밀접한 관련성이 있었다.

엑스파일의 주요한 이야기 전개는 진실을 은폐하려는 권위라는 힘과 맞닿아 있다. 엑스파일 내의 권위(정부나 과학 등등)에 있어서 감춰진 진실과 왜곡된 정보는 일반 대중이 사회를 바꿀 수 있는 힘을 빼앗는 훌륭한 수단이기 때문이다. 엑스파일이 사람들에게 매력적이었던 부분들은 위에서 언급한 명제(모순의 진리)의 원인을 귄위라는 명확한 대상으로 특정지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모순의 진리를 꿰뚫기 위해 드라마의 구조를 진실을 찾기 위한 과정으로 구성하여 사람들이 집중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었다. , 엑스파일은 모순의 진리를 해결하기 위한 수단으로 원인(부조리를 만들어내는 손)을 만들고, 더 나아가서 그것을 해결하기 위한 '진실'을 상정하는 것이야 말로 도시문명의 부조리함과 이해 불가능한 상황을 단번에 해결하고자 한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이러한 '부조리함, 불가해함을 설명하고자 하는 노력'이 역으로 '대안적 진실'에 사로잡혀 버리는 문제로 이어지게 된다. 세상은 부조리하고 그것을 설명할 수 있는 단 하나의 진실만이 존재한다면, 그것은 뒤집어 이야기하면 '유일한' 진실로만 존재하기 때문에 반론의 여지를 제공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소위 이야기하는 '음모론'인데, 모든 사건에는 뒤를 조작하는 배후세력이 있고 그 배후세력의 음모에 따라 세상 만사가 돌아간다는 이야기다.

전반적으로 엑스파일은 그러한 음모론자(멀더)와 정상 과학(스컬리) 사이에서 서로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비율을 맞추었고, 모호하고 불안한 분위기를 통해서 '그럴 수도 있지만, 아닐 수도 있습니다'라는 결론으로 이어나가지만 문제는 엑스파일을 즐기는 대중들이 음모론에 쉽게 빠지게 만드는 문제가 있었다는 점이다. 엑스파일에 등장하는 상당수의 이야기들은 현재 유행하는 음모론들의 프로토타입이라 할 수 있는데(아마도 엑스파일에 많이 나오는 음모론은 백신과 관련된 음모론일 것이다), 엑스파일이 '대안적 진실'에 대한 설파는 많든 적든 현대 음모론자들과 사회에 끼친 좋지 않은 영향은 부정할 수 없다.

결국 엑스파일이 부조리를 꿰뚫기 위해, 불가해 - 가해 사이의 모호한 관계를 청산하기 위해 진실이라는 방법론을 제시하긴 했지만, 그로 인해 대안적 진실에 갇히게 되어 이야기의 결론은 미학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훌륭하지 못했다엑스파일의 메인 스토리 전개와 결론을 보면 그것이 명확해지는 부분이 있는데, 드라마 내내 보여주었던 모호함과 불길함이 점점 구체적이고 자질구레한 음모와 설명들에 갇히게 되면서 유치해지는 전개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그 결과, 엑스파일의 결말은 이도저도 아닌 모호한 엔딩으로 끝났다. 마치 현실의 음모론자들이 모든 사건을 하나의 진실과 하나의 음모로 설명하려 하다가 결국 추하게 무너진 것처럼 말이다. 결국 그렇기에 엑스파일은 명확한 한계를 갖고 있는 작품이었다.

 

 

그리고 레메디 엔터테인먼트의 컨트롤이 있다전반적으로 2010년대 이후 유행하고 있는 SCP 재단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컨트롤은 부조리와 모순, 불가해함과 가해함이 공존하는 측면에서 기존의 도회지 판타지와 맥이 닿아 있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를 명확하게 보여주는 것은 처음 게임을 시작할 때 주인공인 제시가 총을 잡고 FBC의 국장이 되는 것인데이 과정에서 국장이 되는 자가 총을 소유한다가 아닌 총이 국장이 될 자를 선택한다, 라는 역전된 인과관계를 통해서 도회지 판타지에서 자주 찾아볼 수 있는 특유의 부조리함의 정서가 묻어나온다 할 수 있다. 하지만 컨트롤은 특이하게도 도회지 판타지를 다루면서도 엑스파일 이후로 나왔던 '진실'을 찾기 위한 노력이나 불가해한 현상에 대한 합리적인 추론과는 다소 다른 독특한 이야기를 보여주는 게임이다. 이야기의 시작이 오랜 떠돌이 삶을 살던 주인공이 동생을 찾기 위해 FBC의 건물로 찾아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 과정에서 주인공 제시가 찾고자 하는 것은 유일한 혈육인 딜런 뿐이다. 그 과정에서 마주하는 다양한 사건들과 현상들, 미스터리는 오히려 부차적이라 할 수 있다

컨트롤의 핵심은 진실을 찾는 것이 아닌, 자신의 삶의 통제권을 되찾는Take Back Control 이라 할 수 있다. FBC의 건물로 찾아오기 전까지 그녀의 삶은 부조리함의 그 자체였다. 마을 쓰레기 장에서 찾아낸 슬라이드를 통해서 다른 차원의 문을 열고 동생을 잃고 가족을 잃어버린 제시의 인생은 자신의 의지와 관계없이 고향을 떠나 추적을 피해다니는 삶의 연속이었다. 그런 그녀가 상황을 타파하기 위해서 취했던 행동은 자신이 이런 지경에 도달하게 만든 요인(슬라이드 프로젝터)에 대한 진실을 찾는 것이 아닌 살아남은 유일한 가족인 동생을 찾는 것인데 이는 자신의 삶의 중요한 요소를 찾아 이 상황의 통제권을 되찾는 행위로 볼 수 있다

주인공 제시가 통제권을 되찾기 위한 일련의 상황 속에서 컨트롤은 부조리 -불가해함의 가해함, 가해함의 불가해함 등의 요소들- 3가지의 이미지 층위 형태로 묶어낸다. 첫번째는 부조리의 불가해하고 알 수 없는 강박적인 이미지의 아스트랄 플레인Astral Plain 차원의 이사회Board. 이들은 FBC를 설립한 권위있는 존재로써 하얀색 공간 속의 뒤집어진 검은 피라미드의 형태로 드러나는데, 이들은 도움을 주지만 숨겨진 자신들만의 아젠다를 갖고 있어서 어딘가 의뭉스럽다는 인상을 준다. 또한 이사회에 반대하는 존재의 등장이나, 이사회가 플레이어를 직간접적으로 통제하려 하는 DLC의 모습 등은 강박적인 질서와 통제를 통해 이들이 실제 사람들이 사는 층위(주인공이나 FBC의 사람들)과 유리되었다는 인상을 준다. 좀 흥미로운 부분이 있다면이사회Board의 존재가 관료제도에서 보여지는 최상위 의사 결정 집단의 존재와 동일한 명칭을 쓴다는 점인데, 보통 도회지의 감수성에서 부조리를 만들어내는 것이 관료제도인 것을 생각한다면 컨트롤에서 이들의 존재는 마냥 좋은 존재가 아님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두 번째 이미지는 주적인 히스Hiss. 이들은 특이하게 정형화된 이미지가 아닌 마치 맑은 물 속에 뿌려진 오염물질 같이 둔탁하고 통제되지 않고 퍼져나가는 혼탁한 이미지를 보여주는데, 이는 게임 내에 히스가 만들어내는 혼돈이나 파괴의 이미지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히스가 드러내는 부조리의 측면은 바로 부조리가 만들어내는 혼란과 그 속에 갇혀있는 사람들의 심리, 혼돈, 악의 그 자체이다. 그들이 인간을 통제하고 인간의 심리에 영향을 끼치는 과정 등은 후술할 스테이지에서 분명하게 드러난다.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이미지가 바로 폴라리스Polaris이다. 폴라리스는 북극성, 혹은 다른 이름으로는 이끄는 별Guiding Star로 알려진 이 존재는 게임 내에서 제시의 머릿속에서 말을 걸며 그녀를 인도한다. 세이브 포인트인 통제 지점에서 탁한 이미지의 히스를 몰아낼 때 반짝거리는 수정의 이미지로 묘사되는 폴라리스는 위에서 언급한 부조리의 두가지 측면(강박적 이미지의 이사회와 혼란스럽고 오염의 이미지인 히스)과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데, 그것의 존재가 전혀 극중에서 설명되지 않은 점에서 불가해한 존재이긴 하지만 부조리의 두 불가해한 측면(강박적 원칙과 혼란/오염) 속에서 정확하게 주인공 제시가 가야할 길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일종의 설명 불가능하지만 부조리를 가로지르는 직관이라고 할 수 있다

게임의 클라이맥스에서 폴라리스를 잃어버리고 제시가 히스에 잠식되는 순간, 게임은 이 3가지의 이미지를 한데 섞어서 게임 스토리의 테마를 분명하게 전달한다. 그녀의 머릿속에 히스가 들어가는 순간, 그녀는 FBC의 잡무를 처리하는 말단 직원이 되어서 편지를 전달하고, 책상을 치우는 과정을 반복적으로 경험하게 된다. 마치 관료제와 현대 데스크잡의 악몽을 형상화한 듯한 이 스테이지는 현대 사회의 일상 그 자체이자 어느 곳에도 도달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주는데, 이러한 상황을 깨부시기 위해서 플레이어이자 주인공 제시가 하는 것이 주어진 명령을 거스르는 것, 더 나아가서 폴라리스가 항상 자신과 함께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으며 히스를 몰아낸다.

위와 같은 점에서 컨트롤은 엑스파일이나 여타 도회지 판타지가 쉽게 빠지는 '대안적 진실에 매몰되어 점차 구차해지는 이야기'라는 함정에 빠지지 않는다. 물론 컨트롤도 도회지 판타지 특유의 모호한 분위기, 불가해함과 가해함이 공존하는 모습 등은 먼저 온 작품들을 인용하고 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그 부조리함을 어찌할 것인가'라는 관점에서 본다면, 컨트롤은 중요한 두가지 명제(상황을 꿰뚫어보는 통찰력/그리고 그것은 항상 나와 함께 한다)를 통해서 부조리함을 통제하는 힘을 되찾는 이야기를 완성시킨다. 레메디는 본 게임에서 세련된 이미지와 잘 짜여진 이야기 구조를 통해 이러한 이야기를 더욱 전달력 있게 풀어 나간다. 때문에 컨트롤은 이전 도회지 판타지에서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위치를 점하는 작품이라 할 수 있다.

게임 이야기

 

필자는 요즘 갤럭시 폴드로 모바일 게임을 많이 하고 있는 중이다. 직장인 특성상 출퇴근 시간이라는 이동시간에서 발생하는 로스를 최소하는 것이 게임 생활에 있어서 중요하기 때문이다. 현재 돌리고 있는 게임은 포켓몬 유나이트, 명일방주, 유희왕 마스터 듀얼, 매직 아레나 등 정도인데 하루 24시간 중 운동이나 공부, 식사 시간 등의 필수적인 시간들을 제외하고 3시간 정도를 게임에 투자하고 있으니 이들 전체를 플레이하는 것은 상당히 힘든 일이다. 결국은 재미가 있어도 이 게임들 중에서 냉정하게 우선순위가 내려가 구조 정리를 당할 수 밖에 없는 샘이다.

현대 게임 시장이 과거와 달라진 점은 더이상 게임 시장이 무주공산이 아니라는 점, 그리고 게임은 지금 한정된 플레이어 자원, 특히 플레이어의 '시간'이라는 자원을 두고 서로 경쟁하고 있다는 점이다. 과거와 달리 게임은 신규 유저풀이 꾸준하게 늘고 있어도 그것의 성장 속도는 콘솔 게임이나 모바일 게임 시장 초기와 비교될 수 없다. 물론 어느 시점에서 폭발적으로 증가할 수 있는 게임체인저가 등장할 수 있겠지만, 게임시장은 현재 성숙한 단계고 유저 풀은 한정되어있다. 유저 풀이 한정적이라고 본다면, 여기서 중요한 점은 어떻게 상대 유저풀을 내쪽으로 끌어오느냐이다. 즉, 성숙기의 게임 시장에서 상대 유저풀을 빼앗는 것은 주요한 전략이고, 더 나아가서 게임의 재미를 넘어서 '마케팅'적인 요소가 더 강해지는 부분이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유저 리텐션이라는 개념은 중요하다. 일단, 게임의 재미라는 장르 자체의 본질과 보편성은 잠시 재쳐두고, 부분 유료화 모바일 게임이라는 범위 내에서 한정지어서 게임을 보도록 하자. 부분 유료화 모바일 게임의 특이함은 기본적으로 '문턱'이라는 개념이 존재한다는 것이다:플레이어가 노력을 통해서 얻을 수 있는 자원과 성취는 점점 로그함수의 곡선을 따라 올라가게 되는데, 노력에 효능감 곡선을 비례시켜 끌어올리기 위해서는 재화가 투입되는 시점이 존재한다. 이러한 것을 '문턱'이라 할 수 있는데, 결국 이 문턱을 넘어서서 플레이어의 재화(=돈)를 소비하게 만드는 가능성을 높여주는 변수가 얼마나 오랫동안 게임에 접속하는가, 라는 리텐션의 개념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리텐션을 유지하고 플레이어와 소통하는 수단이 일반적인 마케팅에서의 CRM(Customer Relationship Management)라 할 수 있는데, 모바일 게임에서 CRM 수단은 게임 내의 메세지 발송, 혹은 앱푸시, 이메일 등의 다양한 수단으로 나뉘어져있다. 이러한 CRM을 통해서 게임 회사는 플레이어에게 두가지 정보를 제공한다.

첫번째는 현재 이러한 게임이 있다는 '리마인드'의 제공이다:많은 모바일 게임들은 플레이어의 관심 범위 바깥으로 밀려나면서 자연소멸한다. 어떻게 보면 모바일 게임에도 수명이 있다 할 수 있는데(마치 여타 소비재 산업 마케팅에서 고객의 수명이 있다고 정의내린 것 처럼), 이러한 리마인드 차원의 정보를 제공함으로써 모바일 게임의 기대수명을 조금이나마 늘릴 수 있게 된다.

두번째는 문턱을 넘기 위한 혜택의 제공을 알려주고, 거기 맞춰서 문턱을 넘어갈 수 있게끔 하는 것이다:기본적인 게임의 재미가 보장되는 선에서, 플레이어에게 '다시 접속했을 때의 이점을 제공해준다는 정보를 주면 플레이어들은 자연스럽게 복귀할 수 있게 된다. 즉, 플레이어에게 '문턱'을 넘기 위한 일종의 역치를 낮추는 요소(무료 가챠나 재화 등)를 제공하는 것인데, 기존에 문턱을 넘을 때 심리적으로 부담감을 느낀 부분을 낮추는 부분이라 이러한 넛지Nudge(팔꿈치로 쿡쿡 찔러 눈치를 주는)는 리텐션을 극적으로 늘려줄 수 있는 수단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점은 이러한 두가지 방법들보다도 이러한 두가지 방법들을 실행하기 위한 전략, 플레이어에 대한 프로파일링이다:범죄 프로파일링 개념처럼, 마케팅에 있어서도 프로파일링의 개념은 매우 중요하다. 기본적으로 프로파일링 기법들은 '통계학적으로 각각 보편적인 속성들을 겹쳐서, 구체적인 포인트를 짚은 모델을 만드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성별, 연령대, 나이, 사는 곳, 취미 등등의 요소들은 큰 틀로 놓고 봤을 때 거대한 숫자지만(에를 들어, 서울 인구 1000만에 남성 인구가 500만이라는 식으로), 그것에 필터링을 거는 조건이 더 늘어날수록 프로파일링을 하고자 하는 사람의 이미지는 더욱 뚜렷해지고 데이터 관점에서 걸러낼 수 있는 가능성도 늘어나게 된다.

그러나 범죄 프로파일링이 용의자나 그들의 행동양식을 좁혀 나가는 방식Narrow Down이라면 마케팅에서 프로파일링은 그런 특징을 가진 사람들의 행동 양식을 전체로 구성하고 그 사람들의 다른 소비 포인트, 위에서 언급한 이야기로 따지면 '문턱'을 찾아내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30대 남성, 직장인, 가챠는 보통 새로운 픽업 케릭터가 나올 때 10연차 정도 소소하게 돌려보는 사람이 있다고 치자. 그렇다면 이 사람의 주요 구매 패턴과 동인은 무엇인가? 이 사람이 게임 재화의 소비 패턴을 발현시키는 방아쇠는 무엇인가? 이러한 고객 세그멘테이션이 있다고 한다면, 자연스럽게 높은 확률로 가질 수 있는 다른 속성들(가령 여케를 좋아한다, 특정 타임의 여케를 좋아한다 등)을 속성을 추가할 수 있다. 이러한 기법을 페르소나Persona 기법이라 하는데, 데이터로 뽑혀진 특성을 가진 계층을 더 구체화 시키고 그 사람의 관점에서 경험을 시뮬레이션 하여 플레이어가 경험할 수 있는 페인 포인트나 매력 포인트들을 역으로 짚어낸다.

이러한 요소들은 기본적으로 플레이어의 리텐션을 유지하는 주요 전략(플레이어가 이탈하기 전에 잡는다)으로도 이용되지만 자연스럽게 타 게임으로 이탈하는 고객을 잡는 요소로도 이용될 수 있다. 위에서 언급한 플레이어의 페르소나가 있다고 친다면, 이 사람은 어느 게임에 더 매력을 느끼는가? 제작사가 먼저 그 매력 포인트를 가진 요소들을 만들거나, 제공한다면 유출을 막을 수 있지 않을까? 필자가 직접적으로 게임 업계에서 일하는 것은 아니지만, 일반적인 웹커머스 사업체에서는 마케팅이나 고객 경험 개선을 위해 쓰이는 방법이고, 또 상대 서비스를 분석하기 위한 방법으로도 쓰이기 때문에 페르소나 분석의 쓰임새는 상당히 폭넓다.

종합하자면 모바일 게임이 부분유료화라는 수익 구조와 게임 플레이 구조는 모바일 게임 유저라는 한정된 풀의 고객들을 더 잘게 쪼게서 봐야하는 전략으로 이어지게 되었다. 단순히 혜택과 상품 홍보의 측면을 넘어서, 경쟁 게임과 자사 게임의 특장점을 비교하고 어필하는 부분들을 분명하게 가려야한다는 점에서 모바일 게임 시장은 여타 게임 시장에 비교해서 가장 치열한 경쟁이 일어나는 시장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게임 이야기

 

유물론이란 기본적으로 '만물의 근원은 물질이다'라는 개념이다. 다양한 철학자들이 유물론에 기반하여 자신의 논지를 전개하였지만, 유물론으로 세상에 영향을 끼친 것으로 유명한 것은 마르크스일 것이다:포이어바흐의 유물론을 받아들여 공산당 선언, 자본론 등을 집필하여 자본주의 비판 및 공산주의라는 사상과 체제를 만든 마르크스는 자본주의를 비판할 때, 유물론의 방법론으로 접근하여 사회 근간을 구성하는 경제체제를 분석하고 이를 통해서 자본주의가 갖고 있는 착취 구조를 비판하여 대안을 제안하고자 하였다. 공산주의의 등장 이후, 인류 현대사 100년은 격동의 100년을 보냈고, 그것이 소비에트 연방 해체로 이어지며 공산주의 혁명은 결국 실패로 이어졌지만, 마르크스의 자본주의 비판은 여전히 동일한 맥락으로 작동한다는 점에서 그의 분석과 통찰력은 날카로웠다.

마르크스의 분석의 핵심은 '하부 구조(경제 시스템)가 상부 구조를 구축한다'다:마르크스의 역사론에서는 사회는 경제 생산의 단계에 따라 총 다섯 단계(원시 공산 사회 - 노예제 사회 - 봉건제 사회 - 자본주의 사회 - 사회주의 사회)를 밟아서 변화하고, 그 각각의 단계의 사회는 인간 공동체의 생산-배분 체제에 기반하여 상부(사회 지배 구조)를 구축한다. 즉, 생산과 배분라는 경제 체제(하부 구조)를 정당화하는 방향으로 사회 구조(상부 구조)가 구축된다는 것인데, 현대적인 산업 시대로 들어오면서 자본에 기반한 공장 생산, 노동자-자본가의 이원화된 계급 구조, 자본이 자본을 재생산하는 관념과 경제 구조 등등이 현대 사업사회의 구조를 구성하는 주요한 모티브가 되었다는 것이다. 물론 마르크스의 이론에서 5단계인 사회주의 사회 실험이 소련의 해체로 일단 실패로 돌아갔다는 점, 마르크스 역시도 존재하지 않는 이상사회에 대한 막연한 추론을 할 수 밖에 없었다는 점, 무엇보다도 여러 다른 요인들을 고려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결점을 갖고 있긴 했다. 하지만 과거의 구조를 정확하게 분석하고 있다는 점에서 여전히 마르크스의 분석은 의미가 있고, 이 글에서 모티브로 다루고자 하는 '하부 구조가 상부 구조를 구축한다'라는 명제는 그 어느 곳에도 적용할 수 있는 막강한 분석 구조다.

흥미롭게도 게임에서 하부 구조가 상부 구조를 구축한다는 명제는 게임의 역사에 있어서도 상대적으로 '짧은 역사'를 가진다는 점이다. 사회에서 하부 구조가 경제 체제를 의미하고 상부 구조가 사회 레짐 체제를 의미한다면, 게임에서는 하부구조/경제 체제는 그 게임을 유지할 수 있는 수익 구조를, 상부 구조는 게임의 재미 등을 구조하는 요소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생각보다 과거의 게임(~00년대 까지)에서 상부 구조(게임 재미나 이런 부분들)는 하부 구조의 영향을 상대적으로 '덜 받는' 것처럼 보였다. 다양한 실험작들, 대중적이라 생각되지 않는 매니악한 구조, 시뮬레이션의 구조를 보여주는 게임들 등등은 지금 게임에서는 쉽게 찾아볼 수 없는 요소들이긴 했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이것이야말로 게임의 하부 구조의 큰 영향을 받은 부분이라고 할 수 있는 사실이다:00년대 전후의 게임들은 어떻게 보면 주류 문화에 끼지 못하는 하위 문화라 할 수 있었다. 최초의 아케이드 게임에서부터 콘솔 및 PC 게임의 시대로 넘어오는 00년대까지 시장은 급격하게 크고 있었지만, 산업적 특성과 하위 문화(해커, 주류에 대한 반문화 등등)가 여전히 공존하는 기이한 형태였다. 전적으로 게임 시장과 산업은 하이 리스크-하이 리턴이었고, 그 누구도 성공으로 이어지는 뚜렷한 문법을 성립시키지 못했기 때문에 그 과정에서 많은 실험들이 가능하게 되었다. 또한 이러한 하이 리스크-하이 리턴 구조에서 게임은 '노동력' 외에는 별도의 자본과 설비가 필요하지 않은 산업이었고, 그러한 과정에서 많은 돈을 벌어들일 수 있는 여지(벌어들이는 수익이 예측 불가한 점, 초창기 게임 제작자들이 돈보다도 열정으로 무장한 십자군들이었다는 점, 그리고 좋은 이야기는 아니지만 적절하지 못한 임금을 받지 못하고 노동한 케이스들도 여기에 한 몫 할 것이다)도 있었다.

문제는 이러한 구조가 00년대로 넘어오면서 점차 무너지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한 원인은 여러가지가 있다:물가는 오르지만 그만큼 드라마틱하게 오르지 않는 게임의 가격들, 점차 대규모화 산업화 되면서 대중이 원하는 것을 산업적으로 재생산하는 프로세스가 확립되는 것, 마케팅을 통한 구매 계층의 저변이 점차 넓어지는 것, 무형의 에셋들이 재활용되는 구조를 취해 점차 '생산 수단'이자 '자본화' 되는 상황, 반문화적인 개발 방법과 문화가 점차 쇠퇴하고 조직과 구조가 확립되면서 점차 게임의 개발이 '예측 가능한 영역'으로 들어서는 점 등이 게임 산업을 점차 주류 문화의 영역으로 편입시켰다. 

이러면서 점차 게임의 수익구조, 즉 하부 구조가 게임의 상부 구조에 끼치는 영향은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물론 전통적인 게임 시장(콘솔/PC 패키지 게임 시장)에서는 이러한 흐름이 두드러지진 않았는데, 지속적인 수익 확보를 위해 시즌패스와 DLC 자체가 등장하긴 했지만 이것이 패키지 게임이라는 구조 자체를 바꾸진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문법(완결된 게임으로 내야 한다는 것)을 무너뜨릴 수 없기에, 이러한 수익구조가 게임의 재미에 영향을 끼치는 일은 상당히 조심스럽고 지양되는 일이긴 했다. 반대로 여기서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모바일 게임의 경우, 게임의 수익구조를 만들어두고 거기에 상부 구조라 할 수 있는 재미와 시스템들을 쌓아올리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렇기 때문에 모바일 게임과 전통적인 게임 시장/제품과는 다른 재미 구조를 갖고 있다. 소녀전선의 예를 보자:보드게임과 진형을 바꾸어가는 실시간 전투 조작 등과 별개로 소녀전선은 칸코레로부터 이어지는 콜렉션 게임의 시스템과 가챠, 그리고 그 가챠를 뽑기 위해 투입되는 이중의 재화와 환전(실제 돈/노동력이 케릭터로 바뀌어지는 구조)을 자원 관리 및 자원을 벌어들이는 구조로 치환해서 만든 점은 새로운 재미 요소로 이어지는 부분이 있다. 하지만 이러한 재미가 과거의 재미와 1대1로 대응되는가의 부분에서는 회의적인데, 결국은 재화가 돌기 위한 구조를 우선하고 있기 때문에 '한 번 결제로 완결된 구조를 제공하는' 기존의 게임 시장과는 차이가 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게임을 비평할 때, 그 하부 구조라 할 수 있는 수익 구조를 게임의 재미와 연결지어서 비평하는 것은 모바일 게임을 비평하는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방법론이라 할 수 있다. 전통적인 게임 비평에 있어서 상부 구조만을 분석하는 방법론을 보통은 채택하지만, 모바일 게임에서 그러한 방법론을 취했다간 모바일 게임 구조를 반절밖에 설명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물론, 이것만으로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없겠지만(게임을 소비하는 방식이나, 문화적인 영역 등등), 모바일 게임을 이해하고자 할 때, 이 둘을 밀접하게 연결지어서 설명해야 기본적인 부분들을 충실하게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게임 이야기

 

여신전생 시리즈는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시리즈였으며, 수많은 파생작들을 통해서 노하우들을 쌓아올린 프랜차이즈였다. 87년 처음 나온 디지털 데빌 스토리 여신전생을 시작으로 한 여신전생 시리즈는 이후 진여신전생 시리즈(슈퍼 패미콤에서 PS, 닌텐도 3DS까지)를 거쳤고, 그 과정에서 아틀라스를 도산의 위기에서 살린 외전인 페르소나 시리즈(특히 3과 4)와 데빌 서머너 시리즈, 소울 해커즈, 파엠과의 콜라보인 환영이문록, 쿠즈노하 라이도우 시리즈 등등 여신전생 시리즈의 방계라 불릴 수 있는 작품들은 지난 25년간 수도 없이 나왔다. 그리고 이들이 쌓은 노하우들은 서로 공유되고 전승되면서, 마치 시리즈 속 악마들이 강해지는 것처럼 시리즈의 완성도를 점차 조금씩 늘려가고 있었다.

그러한 시리즈의 노하우와 완성도가 정점에 달해 판매고라는 목표와 함께 맞물린 케이스가 바로 페르소나 3일 것이다. 페르소나 자체는 여신이문록으로 분류되며, 직접적으로 여신전생 시리즈와 맞닿아있진 않지만 악마 합체나 프레스 턴 시스템과 같은 여신전생 시리즈만의 시그니처 시스템들은 공유하고 있기 때문에 이를 여신전생 세계관의 일부로 봐야할 것이다. 여기에 학창생활과 커뮤니티를 통한 관계의 발전과 전투에의 영향, 이를 뒷받침하는 자잘한 시스템들이 맞물리면서 '이상적인 학창생활'을 구현함으로 여신전생 특유의 칙칙하고 암울한 세계관을 탈피해서 대다수에게 어필할 수 있었다. 그리고 페르소나의 성공은 당연하게도 여신전생 시리즈의 메인스트림으로 부각되면서, 다른 작품들을 '방계'로 밀어버리는 상황을 만들어버렸는데, 정통의 계보라 할 수 있었던 진여신전생 시리즈는 3편 녹턴 매니악스 이후로 위자드리 스타일로 싸게 만드는 등(진여신전생 4편과 4 파이널, 스트레인지 저니 같은) 다소 찬 바람을 맞았기 때문이다. 물론 진여신전생 시리즈가 서구권까지 포함해서 50만장 이상 ~ 100만장 미만으로 팔릴 때, 페르소나 4는 플2 황혼기에 나와서 거의 단독으로 200만장을 찍었기 때문에 이러한 편향은 어쩔 수 없는 것이었지만, 진여신전생으로 여신전생 시리즈를 기억하는 사람들에게는 페르소나 일변도로 진행되는 여신전생 프랜차이즈의 상황은 딱히 좋지 않게 보였다.

진여신전생 5는 4 이후 근 10년 만에 나온 완전 신작이다. 특히나 진여신전생 4가 3에서 3D 폴리곤 형태로 악마를 묘사했던 것과 달리 위자드리와 같이 초상화 띄워놓고 효과만 그 위에 겹쳐놓는 형태로 간단하게 만들었기 때문에, 3편과 유사한 느낌으로 회귀하는 것에 대해서 사람들이 많이 환호했다. 물론 스위치 발매가 된 2017년 이후 첫 트레일러 공개가 되고 나서 아무런 소식없이 4년을 기다리긴 했지만, 2021년 11월 드디어 게임이 발매되면서 진여신전생 신작에 대한 염원은 마침내 이루어졌다. 전체 시리즈에 대한 노하우가 집약되었고, 이전  시리즈의 게임들에서 찾아볼 수 없는 규모감도 존재하는 것이 진여신전생 5다. 하지만, 동시에 4년의 기다림에도 불구하고 미완성된 느낌을 지울 수 없는 작품이기도 했다.

진여신전생 5나 여신전생 시리즈는 고전적인 JRPG의 구조를 따르고 있다. 공간은 던전과 마을로 이원화되어 있고, 던전 내에서 플레이어는  탐색을 하면서 던전을 돌파하고, 그 과정에서 만나는 역경인 몬스터들을 사냥해서 점차 강해지는 구조를 취한다. 그리고 던전을 클리어하거나 던전에서 자원을 소비하는 경우, 스토리를 진행하거나 자원을 보충하기 위해서 마을에 복귀하여 이를 보완하여야 한다. 고전적인 RPG에서는 육성이 보통 레벨업과 맞물려 있기 때문에 '몹을 잡는다 - 레벨업을 한다 - 더 많은 몹을 잡는다 - 레벨업을 한다 - ....' 라는 식의 단조로운 패턴으로 이어지기 십상이었다. 하지만 여신전생의 시리즈의 경우에는 이러한 단조로운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서 프랜차이즈 전체를 관통하는 독특한 시스템인 '악마회화'와 '악마합체' 시스템을 도입하였다

악마회화와 악마합체는 쉽게 이야기해서 플레이어의 동료가 '소모품이자 스킬을 계승하는 용도'의 악마가 되는 부분이다. 전투 시 레벨업을 통해서 더 강해지기 보다는 던전과 상황에 맞춰서 각각의 역할과 목적에 맞게 악마를 합체시키고, 악마를 합체시키기 위해서 전투중에 조우하는 적 악마들과 대화하고 교섭해서 이들을 동료로 끌어들여 합체 소재로 쓰든가, 아니면 레벨업을 시키고 스킬을 얻든가 등의 다양한 활동을 통해서 진여신전생 시리즈는 기존의 RPG 시리즈와는 차별화된 강점을 갖는다.

진여신전생 5는 위와 같은 내용을 집대성하고, 여기에 몇몇 변화점을 추가한 작품이다. 5편의 큰 변화점들은 오픈맵, 심볼 인카운트, 던전 구성, 마가츠히 시스템들이다. 이러한 시스템들이 모두가 유기적으로 묶여서 진여신전생 5편의 게임 플레이를 구성하는데, 이러한 완급이 상당히 잘 짜여져 있어서 재밌는 게임이 된다. 다만, 몇몇 치명적인 문제점들 때문에 아쉬운 부분들이 존재하는 게임이기도 하다.

진여신전생 5는 기본적으로 오픈 맵의 구성을 취한다. 기본적으로 진여신전생 시리즈는 기믹이 있는 던전과 마을이라는 공간으로 이원화된 케이스였다. 그러나 진여신전생 5는 이를 바꿔서 오픈맵 형태로 변화시킨 것은 시리즈 최초다. 진여신전생 5의 필드를 오픈월드가 아닌 맵으로 표현한 것은 최근 자주 보여지는 오픈월드의 개념과는 다르기 때문이다:일단 게임의 규모 측면에서 트리플 A 게임이라고 분류할 수 없고, 오픈월드에서 보여지는 세계와의 상호작용 같은 요소나 자유로운 탐색들은 찾아보기 힘들다. 그리고 5편은 심볼 인카운터를 도입해서 '내가 원하는 때 싸울 수 있다/전투를 피할 수 있다' 라는 관점에서 편의성과 쾌적함을 추구하였다.

흥미로운 점은 진여신전생 5가 복층구성의 거대한 던전에 가깝다는 점이다. 반대편에 있는 젤다의 전설 야생의 숨결과 비교해보자. 야생의 숨결에서 하이룰은 거대한 세계이며, 그 세계를 구성하기 위한 원칙들을 게임의 규칙으로 구현하는 시뮬레이션의 모습을 보인다. 그리고 한 장소에서 다른 장소로 가는 플랫포밍 요소가 있을 때도, 자원의 관리(스테미너)나 속력이나 위치 등의 다양한 요소들이 맞물려서 다양한 결과를 만들어내는 것이 야생의 숨결이었다. 하지만 진여신전생의 세계는 과거 던전의 형태에 가깝다. 점프하여 층을 옮길 수 있는 플랫포밍 요소가 있긴 해도, 달리면서 점프를 할 필요가 없고, 정해진 위치에서 정해진 점프를 하면 층을 바꿀 수 있다. 흥미로운 점은 진여신전생 5에서 맵은 작은 복수의 빌딩 던전이나 구역으로 나뉘어져있고, 거기까지 도달하는데는 '단 하나의 정답 루트'만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진여신전생 5는 예산이 적게 들긴 했지만 기존 시리즈에 대한 노하우와 폐허에 대한 기믹을 활용한 게임이라 할 수 있다. 하나의 오픈맵으로 보이지만, 수많은 던전맵들의 조합으로 구성되어 있고, 어떻게 갈 것인가? 라고 고민하면서 맵을 찾아 돌아다니는 재미가 있는 게임이다. 다만 최근 오픈월드 게임의 전통에 익숙해진 사람들이 보면 다소 오해가 있을만한 디자인들이라 할 수 있고, 이러한 부분에 대해서 맵에 대한 불만이 생길 수 있다. 이 부분을 이해하고 게임을 플레이해야 게임 진행이 수월해진다.

전투, 레벨업, 육성 부분에서 진여신전생 5는 생각보다 많은 변화점이 발생한 부분이다. 변경된 부분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기존 여신전생 시리즈를 들여다 봐야 한다. 3편에서 프레스턴 시스템을 도입하여 "약점을 찔리면 죽는다"(약점을 찌르면 늘어나는 데미지+상대 턴이 늘어난다)라는 개념이 있어서 적이나 플레이어나 '한 대만'이라는 독특한 긴장감이 있는 작품이었다. 3편에서 4편으로 넘어오면서 내성, 무효, 반사 스킬들을 악마에게 계승하는 것이 쉬워져서 방어적인 측면에서 상당히 쉬워진 게임이라 할 수 있는데, 중반 이후 급락하는 난이도를 후반에서 만능 속성으로 난이도를 재조정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하는 등 전반적인 난이도 측면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다. 3편의 프레스턴이나 전투에서의 숫자감각 등은 이후 많은 시리즈들에게 영향을 끼쳤는데, 스케일링 되는 수치나 악마 관리 육성 등의 감각 등은 페르소나 시리즈로 넘어와서도 공유되는 부분이다.

5편은 진여신전생 시리즈상 가장 잘 조율된 게임이다. 다양한 요소들에 세밀한 조정이 가해졌는데, 이러한 조정들이 어우러져서 기존의 여신전생 전투의 페러다임을 바꿨다고 할 수 있다. 5편에서 프레스 턴 시스템은 턴의 연장이라는 측면에서는 전작들과 동일하지만, 턴을 연장하기 위해서 3~4편과 달리 약점 이외에도 '크리티컬'이 중요하게 적용한다는 점에서 큰 차이가 있다. 기존 작품에서도 크리티컬이 프레스턴을 유발하긴 했지만 낮은 확률로 발생하기 때문에 게임에서 적극적으로 운용하기에 어려웠다면, 5편에서 크리티컬은 무조건 크리티컬이 터지는 기술이나 속성과 물리 공격이 섞인 기술들, 더 나아가 관통물리나 필중 크리가 등장하는 등 물리 기술 폭이 증가하고 크리티컬을 운에 의존하지 않고 플레이어가 원하는 곳에 이용할 수 있다는 강점이 생겼다. 

5편에서 크리티컬 요소를 강화하는 추가 요소로 "마가츠히"가 있다:마가츠히가 모이면 모든 공격이 크리티컬이 되거나, 강력한 능력을 쓸 수 있는데 중요한 점은 이 마가츠히를 모아서 모든 공격이 크리티컬 되는 요소는 아군이나 적군이나 양쪽 모두 가능하다는 점이다. 이 말인 즉슨, 상대가 마가츠히를 발동하면 무조건 프레스턴이 발동된다는 것인데, 상성의 유불리를 떠나서 가드를 따로 하지 않으면 강제적으로 프레스턴이 발동하기 때문에 5~10레벨 이상 플레이어가 들고 있어도 방심하다가 전멸당해버리는 일이 비일비재 하다. 그렇기 때문에 전작에 비해서 가드를 더 적극적으로 섞고, 마가츠히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프레스턴을 철저하게 계산하고, 더 나아가 상대의 공격 패턴(관통 능력 있는지 여부)을 정확하게 파악하는게 중요하다.

전투에서 또다른 흥미로운 점이 있다면, 아이템이나 스킬에서 일시적으로 방어를 강화하는 부분이 있고 그것이 상당히 어울린다는 점이다. 물리 공격을 방어하는 물장석, 마법공격을 반사하는 마반경 등등의 아이템들이 있고, 추가적으로 스킬로 그러한 요소들도 있다. 이러한 부분들이 플레이어의 운신을 폭을 늘려주는데, 4편의 초반 수문장이라 할 수 있는 메두사와 5편의 초반 수문장인 히드라를 비교해서 보면 더더욱 그러하다. 4편의 경우, 내성이나 무효 속성이 거의 없고 약점을 막을 수 없기 때문에 메두사가 불가능하다 싶을 정도로 어렵게 느껴졌다면, 5편의 경우 아이템인 물장석/화장석 같은 무효화 아이템만 재때 써주고 약점 찌르면서 프레스 턴만 벌어주면 어떻게든 클리어하는게 약간 어렵긴 하지만 불가능한 수준은 아니다. 이렇게 방어 상성 관점에서 유연성을 주고 있다는 점에서 진여신전생 5는 방어 전략에서 유연성을 주고, 플레이어가 계속해서 머리를 굴리고 준비하게끔 만든다.

육성 관점에서 진여신전생 5는 악마 합체와 스킬전승, 내성 맞추기 등이 4편 기반이긴 하지만, 여기에 허물 시스템과 향이라는 아이템을 새로 추가하였는데 이것이 편해지는 요소와 불편해지는 요소로 동시에 적용되었다. 허물은 악마가 레벨업 할 때 일정 확률로 드롭하는 아이템인데, 주인공에게 스킬을 옮겨주는 용도뿐만 아니라 내성도 옮길 수 있다는 점에서 내성 관리를 이전작들보다 더 수월해지게 한 부분이 있다. 하지만 동시에 허물 수급이 쉽지 않기 때문에 함부로 내성을 바꿀 수 없다는 문제가 있다. 그리고 악마 육성에 능력치 없과 레벨업을 쉽게 할 수 있게끔 하는 향과 경전을 추가하고, 탐색 등을 통해서 지속적으로 수급할 수 있게끔 하여서 악마 육성을 쉽게 해주는 부분이 생겼다.

전반적으로 진여신전생 5는 훌륭하지만, 몇몇 치명적인 문제로 완벽하지 않은 게임이 되었다. 첫번째 문제는 구조적인 문제다. 앞서 이야기했듯이 고전적인 RPG 구조는 던전과 마을의 이원화된 구조, 그리고 던전 내에서는 사냥과 탐색, 육성이 전투라는 연결 고리를 통해서 사이클을 돌면서 게임이 진행된다. 진여신전생은 던전 내에서는 완벽한 사이클을 보여준다. 문제는 내리터브 사이클을 관장하는 마을의 영역에서 발생한다. 진여신전생 5에서 플레이어는 폐허가 된 도쿄를 던전으로, 마을이라 할 수 있는 도쿄가 다른 한 축으로 구성되는데 게임의 모든 회복, 상점, 육성 등의 모든 요소들이 던전 내의 세이브 포인트인 용혈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마을로 돌아갈 일이 없어지고, 내러티브를 진행할 사이클이 구조적으로 약해진다는 문제가 있다. 덕분에 게임의 거대한 규모에 비해서 서사가 매우 짧게 느껴지는데, 5~6개의 챕터 구성으로 되어있고 도쿄를 거대한 폐허로 5분할 하는 야심찬 모습도 보여주지만 정작 게임 내에서 굵직한 사건이라고 할 수 있는게 고작 5개 정도라 맵 크기만큼 서사를 못채우는 문제가 있다.

물론 던전 내에서 일어나는 스토리라인을 집중하여 진행하면 문제가 없을지 모르겠지만, 이러한 구조 때문에 진여신전생5에서는 스토리의 중심이라 할 수 있는 NPC가 희미해진다는 문제가 있다. 진여신전생 시리즈들은 각각의 스토리라인(뉴트럴, 카오스, 로우)에 대응하는 인물들이 있고, 그 인물들의 편을 들어주면서 스토리를 전개하는 특징이 있다. 진여신전생 4편 역시 그러한 특징이 있었는데, 플레이어가 자연스럽게 선택하는 대화선택지나 내용에 따라서 스토리 라인 분기가 갈리게 되고, 그 분기에는 일부의 진실만이 담겨있어 플레이어가 전체를 보고 싶으면 여러번 게임을 클리어해야 했었다. 하지만 진여신전생 5에서는 플레이어의 플레이에 따라서 성향이 갈려도 마지막 엔딩 전의 선택지에서 엔딩 분기를 선택할 수 있고, 선택지를 돈내고 바꾸는게 가능한(!) 시리즈 사상 초유의 분기처리를 보여주었다. 결국은 플레이어의 성향이 게임에 잘 녹아들지 않고, 플레이어가 선택하는 행위와 결과가 납득가능하게 구성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이런 초유의 선택을 보였다. 

결국 이것은 게임 자체가 미완의 스토리와 구조를 지니고 있기 때문에 생긴 문제다. 게임 극후반부라 할 수 있는 지고천의 레벨 디자인이라던가, 스토리 전개, 레벨링 구조상 비어있는 부분(70~90 레벨링이 거의 불가능한) 등이 이를 뒷받침 한다.

결론을 내리자면, 진여신전생 5는 정말로 완급조절이 뛰어난 작품이고, 훌륭한 작품이 될 수도 있었지만 근 5년의 개발기간에도 불구하고 분명하게 미완성된 부분이 있는 작품이었다. 재미는 분명히 있고, 플레이할만한 가치도 있다. 제노블레이드 2와 같은 작품들과 비교해봐도 미완성이긴 하지만 분명 꿀리지 않는 최고의 작품 중 하나이긴 하다. 하지만 미완성된 부분들의 단점이 너무 크고, 장점이 너무 빛나기 때문에 그 단점이 더 눈에 부각되는 문제가 있다. JRPG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한 번 시도해볼만 하지만, 여신전생 시리즈 특성 상 완성판이 나올 수 있으니 그 완성판을 기다려보는 것도 방법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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