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이야기


*본 리뷰는 스위치 기반으로 작성된 리뷰입니다.


인디게임의 흥행과 함께 로그라이크는 이제 어디서나 찾아볼 수 있는 흔한 장르 문법이 되었다. 로그라이크란 절차를 거쳐서 무작위의 컨텐츠를 생성해내는 게임 문법을 통칭하는 것으로, 과거 로그나 넷헥, 스톤수프 같은 게임들이 원류라 할 수 있다. 무한히 컨텐츠를 생성한다는 점에서 로그라이크는 게이머와 제작사에게 매력적으로 보이는 문법이긴 하지만, 실상 로그라이크 게임을 플레이해보았을 때 사람들이 느끼는 경험은 기대와 사뭇 다른 편이다. 불합리한 맵구조와 널 뛰는 난이도, 큰차이 없어 보이는 게임 플레이 등등 상당수 로그라이크 게임들은 플레이어의 기대를 손쉽게 저버린다. 


이는 로그라이크 장르 문법에 치명적인 결함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무작위로 생성되는 컨텐츠란 게임 디자이너의 의도대로 조밀하게 배치하거나 통제할 수 없다. 일례로 블러드본의 스테이지 구조와 무작위로 생성되는 성배던전의 스테이지 구조 차이를 보자. 블러드본은 프롬 특유의 조밀한 스테이지 구성 덕분에 게임을 플레이하는 동안 긴장감을 가지면서 게임을 플레이하게 된다. 하지만 성배던전의 스테이지는 어딘가 서로 비슷한 분위기에 원 게임 스테이지에 비교하였을 때 밋밋한 구성을 보여준다. 기본적으로 디자이너가 만들어내고 검수한 게임은 완급 조절을 통해서 플레이어가 게임에 집중하고 쉬어가거나, 게임을 꼭 파훼할 수 있는 구조를 취한다. 하지만 로그라이크는 그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로그라이크가 아닌 게임에 비교하여서 플레이 자체가 루즈해지거나 불합리한 구조를 띌 수 밖에 없는 것이다. 


하지만 로그라이크는 부족한 자원과 인력으로 허덕이는 인디 게임 제작사들에게는 매력적인 문법이다. 절차적으로 컨텐츠를 생성함으로써, 로그라이크 인디 게임들은 게이머들에게 가격 대비 재미/플레이 시간을 보장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본다면 로그라이크 인디게임의 범람은 별로 놀라운 것은 아니다. 그러나 중요한 점은 로그라이크 게임들의 성공은 로그라이크라는 문법에 기반한 것이 아니란 것이다. 이미 위에서도 언급하였듯이, 로그라이크 게임들에게는 치명적인 결함이 존재한다. 그렇기에 로그라이크 게임의 성공 핵심은 로그라이크라는 문법이 아닌, 그 문법을 뛰어넘는 자신만의 매력을 가져야 성공할 수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런 점에서 레드훅 스튜디오에서 만든 다키스트 던전은 매우 성공적인 로그라이크 게임이라 할 수 있다.


다키스트 던전은 코스믹 호러 분위기를 지향하는 턴제 로그라이크 RPG로 플레이어는 몰락한 가문의 후예로써 자신의 권리를 찾기 위해 저주받은 영지로 돌아와 영웅들을 소집하고, 무작위로 생성된 영지를 탐험하며, 고대의 악과 싸워야 한다. 다키스트 던전의 뼈대는 그렇게 새롭지 않지만 몇가지 부분에서 특기할만한 요소들을 갖고 있으며, 이로 인해 게임의 장르 자체가 RPG가 아닌 경영 시뮬레이션에 가까워지는 독특한 구조다. 그리고 다키스트 던전에서 로그라이크 요소는 전적으로 확률적인 '변수'를 제공하는 부수적인 영역일뿐, 게임의 매력과 재미는 확률과 자원의 흐름을 통제하는 경영쪽에 놓여있다.


다키스트 던전의 분위기는 코스믹 호러를 지향한다. 마이크 미뇰라의 헬보이로부터 강한 영향을 받은 일러스트와 가주의 묵직한 나레이션, 꿈도 희망도 없는 암울한 이야기 등등은 게임 서사적으로 매력적인 부분이다. 하지만 다키스트 던전이 단순히 분위기만 뛰어난 게임을 넘어서 훌륭한 이유는 이러한 코스믹 호러의 분위기를 게임 시스템을 통해 구현하고 플레이어가 체감할 수 있게 만들었다는 점이다. 


다키스트 던전에서 눈여겨 보아야할 핵심적인 시스템은 바로 스트레스와 고통 시스템이다. 게임에서 영웅들은 체력과 함께 정신적인 내구도라 할 수 있는 스트레스 게이지를 갖고 있으며, 이 스트레스 게이지는 스트레스를 올리는 공격을 받거나 크리티컬 데미지를 받거나 던전 내 이벤트 등을 통해서 누적되게 된다. 체력이 치유사 계열 영웅을 통해서 관리할 수 있다면, 스트레스 게이지를 관리할 수 있는 방법은 적기 때문에(물론 광대같은 영웅을 기용하면 그나마 관리가 가능해지긴 하지만), 상대적으로 체력에 비해서 스트레스는 점차 누적될 수 밖에 없는 구조다. 그리고 그렇게 누적된 스트레스 수치가 100 이상에 도달하게 되면 영웅은 고통 상태로 진입한다. 고통 상태는 다양한 하부 카테고리(절망, 마조히즘 등등)로 나뉘어지며, 돌입하는 순간 무작위로 결정되고 게임 전체에 악영향(다른 영웅에게 악담을 하여 스트레스를 늘리거나, 무작위로 행동하거나, 회복을 거부하거나 등등)을 미치기 때문에 최대한 스트레스 수치를 관리하여 고통상태에 진입하지 못하게끔 막아야한다.


스트레스와 고통과 더불어 다키스트 던전 플레이의 핵심은 바로 '확률'과 '결과'이다. 다키스트 던전은 로그라이크인 만큼 절차적으로 생성된 맵 위에 확률을 테스트 하는 다양한 요소들을 탑재한다. 게임은 자동세이브만 지원하기에 세이브-로드를 이용해 확률을 속이는 행위를 할 수 없고, 게임 내의 모든 요소들의 확률 판정은 돌이킬 수 없는 결과(죽으면 돌아오지 않는 영웅, 크리티컬과 함께 무너지는 전열, 판정과 함께 들어오는 대량의 스트레스와 고통 상태 등등)를 수반한다. 심지어 게임은 던전 클리어 시 플레이 결과와 무관하게 독립확률로 판정하는 부정적/긍정적 기벽 시스템을 통해 영웅들에게 개성을 부여한다. 그리고 기벽 시스템은 전적으로 확률로만 판정되는 부분이며, 스트레스와 마찬가지로 점차 긍정/부정 기벽이 누적될 수 밖에 없는 구조다. 


여기까지만 본다면 다키스트 던전은 치유하기 힘든 스트레스와 치명적인 고통 상태, 더불어서 치명적인 확률과 피할 수 없는 결과로 플레이어를 고문하는 가학적인 게임처럼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다키스트 던전의 핵심은 그러한 새디스틱한 흐름 속에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돌파구를 마련해뒀다는 것이다. 결과는 피할 수 없지만, 플레이어는 다양한 요소를 이용해서 확률을 통제할 수 있다:넉넉한 횃불 보급을 통해서 명중률과 스트레스 발생 빈도 등을 낮춘다던가, 기벽의 보정을 통해서 영웅의 강점은 극대화하고 약점을 보정하는 등 게임 내의 모든 확률과 스트레스 요소 등은 통제가능하다. 이런 부분들을 보정할 수 있는 대신, 다키스트 던전은 자원의 흐름과 관리를 철저하게 하게끔 유도한다. 영지 내의 스트레스 관리 및 기벽 보정, 질병 치료 등의 행동에는 돈과 자원이 들어가며, 던전을 공략하기 위한 보급품 구매에도 돈이 들어간다. 플레이어는 원정을 나갈 때 얼마만큼의 돈과 자원을 투자할 것인지, 얼마만큼 수익을 내야하는지, 어떤 영웅을 육성하고 어떤 영웅을 포기할 것인지를 결정해야 한다. 이러한 흐름을 통제하지 못한다면, 게임은 불가능에 가까울 정도로 어려워진다. 하지만 자원과 돈, 영웅 육성의 흐름을 타고 관리가 본궤도에 오르기 시작하면 다키스트 던전은 여타 RPG에서 경험하지 못했었던 독특한 재미를 선사한다.


흥미롭게도, 위에서 언급한 부분에서 다키스트 던전은 RPG 장르 문법이라기 보다는 경영 시뮬레이션에 가까운 특징이다. 그리고 코스믹 호러를 테마로 하는 게임들에서도 자주 찾아볼 수 있는 유사한 부분이기도 하다:일례로 판타지 플라이트 게임즈에서 만든 보드 게임 아캄호러 시리즈의 경우나 TRPG인 크툴루의 부름의 경우 등에서도 플레이어가 정신적/육체적 피해를 관리하고, 이기기 힘든 존재와 맞서 자신이 갖고 있는 자원을 쥐어짜서 철저하게 관리하게끔 만드는 게임 플레이 양태를 보이고 있다. 이러한 게임들의 일반적인 특징은 확률이 가차없다는 것과 결과는 되돌릴 수 없다는 것, 마지막으로 이러한 확률과 결과의 순환을 무너뜨리기 위해서 플레이어가 게임을 완벽하게 진행하거나 완벽함을 넘어 게임을 폭파시키기 까지 해야한다는 점이다. 그런 점에서도 다키스트 던전은 이들과 비슷한 궤를 다루는 게임이라 할 수 있다.


결론적으로 다키스트 던전은 분위기와 게임 플레이가 완벽하게 맞물려 들어간 작품이며, 적은 리소스를 사용해도 아이디어와 구조가 받쳐준다면 충분히 훌륭한 게임이 나올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한 로그라이크 인디게임이라 할 수 있다. 다만 스위치로 플레이할 당시, 조이콘 패드 조작으로는 상당히 난해하고 비직관적인 조작을 강제하는데, 이런 불편한 부분을 제외하면 비슷한 가격대의 인디게임이나 심지어 풀 프라이스로 분류되는 게임들을 능가하는 플레이타임을 보장한다. 자신이 도전적인 게임을 즐기는 사람이라면, 다키스트 던전은 좋은 선택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