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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이야기


"어떻게 존 포드를 좋아하지 않을 수가 있나? 광활한 대지, 웅장한 산맥의 풍경처럼 누구나 좋아할 법한 것들이 거기에 있다. 

단순하고 전통적인 방식의 삶이 주는 아름다움. 

반동적으로 들릴 수도 있겠지만 존 포드의 영화에는 그런 단순한 것들의 가치가 담겨 있다. 

몬테이로의 말을 빌리자면 '중요한 것은 어떻게 단순해질 것인가'다." 


-페드로 코스타.


무언가가 역사에 이름을 남긴다는 것은 단순히 '잘 만들었다'라는 완성의 척도를 뛰어넘어야 한다:역사에 족적을 남기는 것들은 완성도를 너머서 자신이 속한 것을 넘어 그것을 새롭게 정의내린다. 시간의 오카리나가 추억 속의 잘 만든 작품을 넘어서 게임의 역사에 거대한 족적을 남긴 것도 잘 만든 게임이라는 평가를 넘어서 3인칭 3D 게임의 세계를 구현하는 방식을 정의하였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역사에 이름을 남기는 것은 단순히 박물관에 남겨지는 것 이상이며, 무언가를 새롭게 정의 내리고 더이상 그것이 존재하지 않는 이전의 세계를 상상할 수 없게 만드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게임 역사 속에서 이런 급격한 변화가 일어나는 '특이점'이 하나의 제작사, 하나의 프랜차이즈 내에서 두 번 생겼다는 사실은 오랫동안 게임이란 문화를 소비하고 경험한 사람의 입장에서는 정말로 오래 기억에 남을 경험이라 할 수 있다.


젤다의 전설:야생의 숨결은 스위치/위유로 나온 젤다의 전설 최신작이다. 야생의 숨결이 처음 오픈월드로 나온다고 하였을 때, 사람들은 기대 반 우려 반의 눈길로 이 작품을 지켜볼 수 밖에 없었다:젤다의 전설은 전통적으로 정교한 퍼즐과 스테이지 구조에 기초하여 플레이어가 능동적으로 사고하는 것이 매우 중요한 게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게임이 나온 뒤, 야생의 숨결이 젤다의 전설 시리즈를 훌륭하게 계승한 작품일 뿐만 아니라 오픈월드의 역사를 새로 쓴 게임이라는 것이 증명되었다. 야생의 숨결에서 보여준 변화가 사람들에 따라서는 부정적으로 보일 수 있지만(그런 점에서 버니홉의 야생의 숨결에 대한 평가는 타당하다 할 수 있다.), 야생의 숨결은 시간의 오카리나와 함께 게임 역사에 한 획을 긋는 성과를 거두었다.


젤다의 전설:야생의 숨결의 핵심은 단순함이다. 이는 게임 속 세계를 묘사하는 그래픽에서부터 확인할 수 있다:일반적인 오픈월드 게임들이 세계를 디테일 넘치게 구현하는데 초점을 맞추었다면 야생의 숨결은 세계를 단순한 형태로 구현하는데 초점을 맞춘다. 모든 것들은 파스텔톤의 원색과 돌, 나무, 강과 같은 단순한 오브젝트들로 구성되어 있다. 하지만 야생의 숨결은 개별 오브젝트의 디테일을 포기하고 여타 게임에서 찾아보기 힘든 거대한 풍경을 만들어낸다:개별 오브젝트들의 텍스처는 디테일보다는 색감의 형태로 구현하되, 게이머의 스크린에 보이는 풍경은 최대한 광활함을 느낄 수 있도록 수평의 파노라마의 형태로 구현한 것이다. 이런 점에서 야생의 숨결은 초기 서부극에서 볼 수 있었던 거대한 자연을 게임 내에 넣은 것이다. 폴아웃 3에서 플레이어가 처음 광활한 황무지를 바라보았을 때의 북받쳐 오르는 감정을 야생의 숨결은 게이머에게 30분에 한번 씩 느낄 수 있게 만들었으며, 단순한 구성이지만 거대한 자연과 풍경을 훌륭하게 표현하였다.


하지만 야생의 숨결은 그저 단순하게 반복적이고 거대한 자연을 만들고 게이머가 해매게 만드는 그런 게임이 아니다:게임은 단순하고 반복적인 자연 속에 독특한 장소들을 집어넣는다. 너무 눈에 띄지도 않지만 관찰을 통해서 찾아낼 수 있는 작지만 분명한 강조점들을 말이다. 대체로 야생의 숨결에서 주목할만한 장소들(사원이나 탑 같은)은 밝게 빛나고 있기 때문에 쉽게 찾아낼 수 있지만, 몇몇 사원들은 묘한 곳에 숨어있기도 하며, 사원에 도달하는 과정 자체가 주변 풍경과 상호작용해야하는 하나의 퍼즐로 구성되어 있기도 하다. 게임은 거대한 풍경을 만들어내는데 성공하였을 뿐만 아니라, 플레이어의 눈높이에서 모든 것을 발견할 수 있게끔 세밀하고 오밀조밀하게 세계를 구성하였고, 그렇기에 게이머는 거대한 세계의 풍경을 즐기는 동시에 그 속에 숨은 비밀을 찾아가는 재미를 즐기게 된다. 이러한 과정들이 게이머가 능동적으로 생각하고 계획을 세우도록 게임은 불친절함과 친절함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외줄타기를 시도하였고, 그 결과는 매우 성공적이었다.


야생의 숨결은 젤다 시리즈 최초로 모든 도구를 처음부터 사용할 수 있게끔 만들었다. 전통적으로 젤다의 전설 시리즈는 게임이 진행될수록 도구가 해금되어가며, 던전과 전투를 풀어가는 방법이 다채로워지는데 야생의 숨결을 게임 초반에 플레이어가 쓸 수 있는 모든 도구를 처음부터 모두 해금함으로써 플레이어가 운신할 수 있는 폭을 넓혀준다. 이는 야생의 숨결에서 각 도구들이 갖고 있는 역할이 단순히 퍼즐을 해결하기 위한 도구 이상의 의미를 지니기 때문이다:야생의 숨결에서 도구는 세계와 상호작용하기 위한 도구다. 게임은 이전 시리즈보다 어려워졌으며(제한된 체력 회복, 망가지는 장비, 불친절한 세계 등등) 익숙해지기 전까지 플레이어는 많은 실패를 경험한다. 하지만 세계를 구성하는 규칙을 이해하면서부터 게임은 어려움을 뛰어넘어 다른 게임에서 찾아볼 수 없는 재미를 선사한다:게임 내의 물리법칙, 기온, 온도, 바람의 방향, 전기, 번개 등 단순하고 자잘한 모든 요소들이 게임에 개입하고 플레이어가 이를 적극적으로 사용해서 퍼즐을 풀거나 적들과 전투를 벌일 수 있기 때문이다. 플레이어에게 게임의 처음부터 모든 도구를 준 것은 이러한 요소들을 적극적으로 통제할 수 있는 기제를 제공하는 것이라 볼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상호작용이 게임을 시뮬레이션 같은 복잡성으로 이끌지는 않는다. 시뮬레이션의 핵심은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로 묘사하고자 하는 것이고, 그 복잡한 것을 플레이어가 모두 통제할 때 쾌감을 선사하는 장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젤다의 전설에는 '복잡함'은 없다. 세계를 구성하는 법칙은 게임을 풀어나가는 기본 원칙이자 도구이기 때문이다. 이 둘의 차이는 간단하게도 플레이어가 즉석에서 임기응변으로 고안한 것이 게임에 바로 적용가능한지 여부에서 분명하게 드러난다. ARMA와 같은 시뮬레이션 게임에서는 게이머가 모든 규칙과 법칙을 이해하고 있다는 전제 하에서 플레이어의 운신의 폭은 넓어진다. 하지만 야생의 숨결에서는 복잡하게 생각할 필요도 없고 외울 필요도 없다. 모든 것은 법칙들은 상식을 준용하고 있으며, 게이머는 자신의 상식에 따라 행동하면 될 뿐이다. 가령, 야외 전투 중 풀밭에 불이 났다면 그 불이 난 것을 따라 상승기류가 발생하는 것을 캐치하여 글라이더를 이용해 날아올라 적을 공중에서 농락하는 이 일련의 과정이 특별히 무언가를 외운다던가 등의 준비 과정이 필요한 것이 아니다. 야생의 숨결의 핵심은 단순함과 직관성이자 그것들이 다른 법칙들과 맞물려서 유기적으로 돌아가는데 있다.





즉, 야생의 숨결은 게이머의 눈높이에서 다양한 도구를 통해 세계와 모든 것들이 규칙으로 연결되고, 통제가능해진다. 그리고 그 규칙은 물리법칙(기온, 바람, 물, 불, 전기 등등)이라는 직관적이고 단순함에 근거한다. 하지만 이 직관적인 단순함이야말로 야생의 숨결을 관통하는 핵심이며 혁명이라 이야기할 수 있는 부분이다. 세계는 단순하게 구성되어 있으며, 게임을 구성하는 법칙 역시 단순하다. 하지만 그 단순함들이 결합하고 복합적으로 쌓여가면서 야생의 숨결은 여타 게임에서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인상을 남겨주게 된다. 게임은 게이머가 그 법칙을 얼마나 이해했는지, 더 나아가 얼마나 그 법칙을 잘 활용하였는지에 따라서 천차만별로 달라진다. 게이머는 항상 능동적으로 생각하고, 세계를 활용하여야 한다. 젤다의 전설:야생의 숨결이 여타 오픈월드 게임처럼 화려한 능력이나 편의성이 없고 불친절함을 제공하더라도 재밌게 느껴지는 이유는 플레이어가 게임 플레이의 주도권을 잡고 있고, 스스로 생각하게끔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점들을 종합하여 본다면 야생의 숨결은 기존의 시리즈와 비교하였을 때, 대단히 이질적인 작품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더 놀라운 점은 야생의 숨결은 젤다의 전설 시리즈의 정체성에 베이스를 깔고 있는 작품이라는 것이다. 젤다의 전설은 전통적으로 플레이어가 정해져 있는 답을 풀기 위해서 생각하고 머리를 굴리는 게임이었다. 대단히 작위적이지만 어떻게 해결해야할지 감조차 안 오는 스테이지를 보며 플레이어는 계속해서 생각하고 고민하고 다양한 시도를 해야한다. 하지만 그 해답을 찾아낼 때의 성취감이 바로 젤다의 전설의 묘미라 할 수 있다. 야생의 숨결은 비슷하지만 그것을 하나의 스테이지, 던전이 아닌 세계 그 자체로 옮겼다는 것이 핵심이다. 그리고 던전과 스테이지라는 작위적인 구성이 아니라, 거대한 세계 속에 유기적으로 구성되어 있는 공간을 직조함으로써 게이머가 생각하는 규모를 크게 만들고, 게임을 다각도로 즐기게끔 만든다. 심지어 야생의 숨결 특유의 유기성은 퍼즐의 정해진 풀이과정마저도 해체시켜버리는데, 가장 유명한 것이 아래의 사례일 것이다.





그렇기에 젤다의 전설:야생의 숨결은 오픈월드의 정의를 바꾸는데 성공하였다. GTA 3에서 5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오픈월드들은 거대한 도시문명의 풍경을 배경으로 다양한 작은 할거리들을 집어넣은 게임들을 만드는데 초점을 만들었다. 하지만 젤다의 전설:야생의 숨결은 단순하지만 상호작용할 수 있는 세계, 단순한 법칙을 응용하여 자신만의 해법을 찾아가는 과정이었다. 스크립트로 짜여있는 세계가 아닌 법칙과 도구로써의 세계가 플레이어로 하여금 계속해서 생각하고 자신의 방법을 찾아내게끔 만든 것이다. 이런 점에서 보자면 젤다의 전설:야생의 숨결은 팬텀패인과 많은 유사점이 있는것처럼 보이지만, 팬텀패인이 선의 세계(도로와 체크포인트)였다면 야생의 숨결은 거대한 면의 세계라는 점에서 큰 차이가 할 수 있다. 


여기서 평단과 사람들이 열광하는 이유가 있다. 여지껏의 게임들의 대부분은 디테일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으며, 얼마나 많은 디테일과 컨텐츠를 게임에 넣을까가 게임의 완성도를 판다름 짓는 부분이었다. 하지만 규칙이 복잡해지면 복잡해질수록 게임에서 유연성은 점점 사라지며, 플레이어가 직접 생각하고 성취하는 폭은 줄어들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젤다의 전설은 세계와 게임을 하나의 도구로 만들고, 생각하는 과정과 성취 과정을 즐기게끔 만들었기 때문에 혁명이라 할 수 있다. 또한 그것이 시뮬레이션 같이 복잡계 위에 올려져있는 정교하고 섬세한 게임이 아닌, 플레이어가 생각한 만큼 움직이는 단순하지만 직관적이고, 무식하지만 동시에 섬세한 게임이란 점에서 더더욱 그러하다. 


결론적으로 젤다의 전설:야생의 숨결은 게임 역사를 뒤흔든 게임이다. 그것은 근본적으로 콘텐츠의 디테일과 분량이 아닌 얼마나 세계와 유기적으로 상호작용하는가라는 행위에 초점을 맞춘 게임이라는 점에서 더더욱 그러하다. 물론, 야생의 숨결은 갑자기 튀어나온 불연속적인 작품은 아니다:언제나 그렇듯 변화는 그 징후들을 역사 속에 내포하고 있으며, 그것이 모이고 쌓였을 때 비로소 발현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흥미로운 점은 그 변화의 핵심에는 정말로 낡아서 더이상 변하기 힘들거라 생각했던 젤다의 전설이라는 시리즈가 있었다. 그렇기에 야생의 숨결은 닌텐도가 구태의연한 집단이 아님을 증명한 동시에 무엇이 기본이고 무엇이 핵심인지에 대해서 다시끔 생각하게 만드는 작품이라 할 수 있다.



※ 스토리에 대한 글은 별도로 뺍니다.



게임 이야기




스팀에서 판매중인데, 매우 재밌습니다. 꼭 해보시길.




게임 이야기



닌텐도 스위치가 젤다의 전설:야생의 숨결과 함께 좋은 실적으로 팔리면서 위유보다는 서드파티를 더 끌어모을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게이머들에게 심어주고 있다. 특히 4월 중에 있었던 닌텐도 다이렉트는 밤이 없는 나라 2, 페이트 엑스텔라 등 플레이스테이션 및 비타쪽 서드파티 진영을 끌어오는데 성공하였으며, 페이데이 2 같은 작품도 스위치로 나올 수 있다는걸 보여주었다. 아직까지는 속단할 수 없지만, 위유 런칭과 다르게 스위치의 런칭은 예정했던것과 다른 '급격한' 반응을 일으키고 있는 것으로 보여진다.


물론 위유 당시에 서드파티 런칭작은 많은 편이긴 했다:다크사이더스 2나 어새신 크리드 같은 작품들도 위유 런칭 타이틀에 포함되어 있었으니까. 하지만 이식작들의 실적 부진과 번거롭기만 한 위유 패드의 존재, 플4와 엑원 발매 직전에 나온 이른바 끼어있는 세대의 애매한 포지션 등등은 위유 서드 파티의 부진 및 실패로 이어지게 되었다. 그렇기에 스위치의 런칭에 대해서 서드 파티의 반응은 열렬하기 보다는 눈여겨 보며 립서비스 수준이긴 하다. 


그러나 이번 스위치의 런칭 이후 다이렉트에 등장한 페이트 엑스텔라나 밤이 없는 나라 2 등은 정말로 예상 외의 물건(심지어 엑스텔라의 경우 7월 발매로 빠른 이식이 이루어진 편이다)들이라 할 수 있다:이들은 PS4와 PS VITA 멀티플랫폼을 발매로 소위 '오덕 게임' 수요층을 만족시키는 게임들이었기 때문이다. 기본적으로 고성능 휴대기기라는 점에서 스위치와 비타는 공통점을 보유하고 있지만, 이렇게나 빨리 비타의 게임들이 닌텐도 스위치로 넘어올 줄은, 그리고 더 나아가서 이렇게 빨리 이식될 줄은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즉, 스위치는 빠르게 비타의 포지션을(적어도 일본 내에서라도) 승계하고 있는 것이다.


비타의 야심(PS4의 서브 기기이자, 독립된 기기로써도 매력적인 기기, 강력한 성능, 비타/PS4 크로스 플랫폼 및 타이틀 판매, 1세대 HDMI TV OUT 기능과 취소, 비타 TV로 이어지는 삽질 등등)은 컨셉 자체로는 훌륭했지만 아주 큰 문제점을 갖고 있는 플랫폼이었다. 그리고 그 문제점은 바로 '콘텐츠'와 '플랫폼 특수성'이었다:소니는 비타를 통해서 많은 것이 나올 것을 약속했다. 하지만 그 약속은 아무것도 지켜지지 않았다. 강력한 퍼스트 파티의 지원 없는 비타는 출시 직후 바르게 이빨 빠진 호랑이가 되어버렸다. 하지만 비타의 실패에는 무엇보다 더 심각한 문제가 있었다. 게임보이로 이어지는 휴대용 콘솔의 계보는 일본을 제외하고는 모바일에 자리를 빼앗겨 그 위상을 점점 일어가는 중이다. 아니,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위상을 잃어가기 보다는 '특수한 시장'으로 좁혀지는 중이다. 그렇기에 비타의 실패는 비타의 소프트 라인업이 부실한 점과 함께 휴대용 플랫폼 자체의 입지가 좁아진 점이 복합적으로 적용하였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이렇게도 볼 수 있다:스위치가 비타와 같은 포지션(강력한 성능의 휴대용 기기, 휴대용과 거치기의 하이브리드 등)을 점하고 있다면 스위치의 실패도 불보듯 뻔한거 아닐까? 하지만 일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일단 먼지, 스위치는 거치용 콘솔을 흡수하기 위해서 디자인된 기기다. 이 부분은 비타와 뚜렷하게 구분되는 부분이라 할 수 있는데, 비타가 휴대용 기기로의 포지션을 고수한 나머지 조작이 완벽하게 별개 체제로 간 점은 치명적이었다. 특히 왜 있었는지 모르는 후면 터치의 존재나, PSP의 조작을 계승하는데 집중하여 PS4와 비타 사이의 유기적인 경험이 이어지지 못하였다(이런 부분은 비타의 설계 및 기획 자체가 통합적인 과정을 통해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원래 있던 기획에 좋은 아이디어를 덧붙이고 덧붙이고 만들어낸 프랑켄슈타인과 같은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휴대용 기기가 거치용 콘솔을 흡수하기 하는 것'과 '애시당초에 거치기와 휴대기 양 측면 모두를 겸하는 콘솔'에는 큰 차이가 있을 수 밖에 없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스위치가 비타처럼 쉽게 사라지지 않을 이유는 바로 닌텐도의 콘텐츠 때문이다:아무리 휴대용 콘솔이 점점 그 설 자리가 줄어들고 있더라도, 닌텐도의 휴대용 플랫폼인 3DS의 포켓몬스터는 몇백만 장 단위로 게임을 팔고 있으며, 3DS 슈퍼마리오 시리즈도 단일 플랫폼으로 100만 장 단위로 판매한다. 닌텐도가 모바일이라는 플렛폼에 적응하지 못한다면서 사람들은 비웃지만, 역대 모바일 게임 매출 순위권에 들어가고 사회적 현상까지 만든 포켓몬스터 고를 만든 것도 닌텐도(엄밀하겐 나이언틱이지만)였다. 플랫폼과 소비 구조가 변화한다고 해서 게임이 콘텐츠 중심의 산업인 것 자체가 변화하는 것은 아니다. 그런 점에서 닌텐도는 확실한 강점과 철학이 있는 회사고, 스플래툰과 같은 게임을 통해서 그 감각을 잃지 않았다는 것을 훌륭하게 증명하기도 하였다. 


핵심은 닌텐도 독점의 콘텐츠와 컨셉부터 분명하게 잡혀있는 기기라는 점, 이 두 개가 스위치라는 플랫폼을 매력적으로 만드는 주요한 동력이라 할 수 있다. 그렇기에 소니조차 관심을 갖지 않고 적은 제작사에 의해서 산소호흡기를 달고 있는 비타에서 닌텐도 라인업과 함께 창창한 스위치로 갈아타고, 더 나아가 트리플 A 서드파티가 아니지만 그 누구도 대체할 수 없는 독특한 게임들의 라인업을 확보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이미 닌텐도는 영 제로나 베요네타, 제노블레이드 같이 독특하고 훌륭하지만 판매량이 확보되지 않는 물건들을 위유 시절 대거 자신의 라인업으로 끌어들인 전례가 있다. 특히 인왕과 니어 오토마타의 예상치 못한 성공을 거둔 작금의 시장 상황에서 이런 라인업을 분명하게 끌고 올 수 있는 것은 닌텐도와 스위치에 있어서 호재라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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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이야기



*무려 5년전에 쓴 http://leviathan.tistory.com/1629 트라이 G 리뷰입니다. 참조해서 보시길.


몬스터 헌터 시리즈는 일본 국내에서만 200만 ~ 300만 장 단위로 팔리는 게임이다. 전세계 판매량 단위에서 보자면, 백만장 단위의 판매량은 이제 별로 놀랍지 않다. 하지만 문제는 몬스터 헌터 시리즈의 판매량은 사실상 일본에 국한되어 있다는 점은 무시해서는 안된다. 일본 콘솔 게임 시장은 전세계 시장에서도 큰 축이기도 하고 여타 시장에 비교해서 독자적인 색채를 갖고 있긴 하지만 100만 장 단위로 판매되는 게임은 극히 드물다. 심지어 서드 포터블 시기에는 일본 내 시장 300만 장이라는 경이로운 기록을 달성하면서 PSP란 플랫폼 자체를 문자 의미 그대로 끌고 간 적도 있었고, 몬헌 4에서는 이러한 기록을 400만장으로 우습게 뒤집기 까지 하였다. 하지만 몬헌이 단순히 반복적인 구조만으로 운영되는 게임은 아니다:몬스터 헌터 트라이/3G 그리고 4와 4G를 거치면서 몬헌이라는 골격을 유지하되 거기에 새로움을 더하려는 시도는 항상 있어왔기 때문이다. 특히 4와 4G는 단차라는 고저차를 도입하고 몬스터를 홀딩한다는 타기 액션을 도입하면서 게임의 흐름을 완전히 바꾸는 실험을 성공시키기도 하였다. 몬스터 헌터는 지역색이 강하기는 하지만, 액션 게임의 역사에 무시할 수 없는 한 축을 담당하는 게임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몬헌 크로스/더블 크로스는 4편의 변화보다 더 극단적인 변화를 취한 게임이다. 게임 발매전 필살기의 추가로 몬헌도 이제 필살기 게임이 되어가느냐, 라는 불만이 팬들 사이에서 나오긴 했지만, 단순히 필살기의 추가는 그저 가시적인 변화의 일부분에 불과하다. 크로스/더블 크로스의 핵심은 몬헌이라는 게임의 근본적인 구조와 플레이 방법론을 바꾸었다는 것이 핵심이다. 기존의 게임 스타일들을 포섭하되, 스타일의 추가와 스타일별로 게임 플레이 방식을 바꾼 것, 더 나아가 방어구의 스킬 배분 및 체계를 바꾸어버린다. 몬헌 크로스/더블 크로스는 그야말로 역대 최고의 몬헌이라 칭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다.


몬헌 시리즈의 기본은 독자적인 생태를 지닌 매력적인 몬스터들을 플레이어들이 일련의 준비과정(방어구/무기의 준비, 소비 아이템의 준비, 패턴의 파악 등등)을 통해 사냥하는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플레이어가 몬스터에 도전하고 성공하기의 과정까지는 불친절하며(이런 점에서 소울 시리즈를 연상케하는 부분이 있다) 플레이어는 몬스터에게 덤비고 실패하는 과정을 경험하고, 그 과정 중에 자신의 플레이 스타일과 장비를 찾아간다. 특히 방어구에 붙어있는 패시브 스킬 효과를 조합하는 것은 게임 내에서 매우 중요하다.


몬헌의 액션 조작 체계는 매우 단순하지만, 패시브 스킬의 조합을 통해서 몬스터를 공략하는 새로운 방법론을 쉽게 찾을 수 있다:예를 들어 리오레이아의 포효를 귀마개 스킬없이 들을 경우, 귀를 막는 모션을 취하지만 청각보호 스킬을 띄울 경우 리오레이아의 포효는 큰 한 방을 먹일 수 있는 빈틈이자 절호의 기회로 작용한다. 이처럼 각각의 스킬들의 유무가 게임에 있어서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주고, 플레이어가 능동적으로 운신할 수 있는 폭을 넓혀주는 것이 몬헌 시리즈의 핵심이라 할 수 있다. 그렇기에 몬스터 헌터는 기본적으로 플레이어의 능동성을 강조한 게임이고, 느린 페이스의 공방이 주가 된 수중전의 실패(트라이, 서드 포터블, 트라이 G)와 빠르게 몬스터를 추적하여 사냥하는 단차의 성공(4, 4G)은 이러한 게임 시리즈의 핵심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즉, 몬스터 헌터 시리즈의 성공은 플레이어의 능동적인 대응을 얼마나 강조하느냐, 그리고 그 능동적인 대응을 준비하기 위해서 어떤 준비를 해야하는가가 관건이다. 


하지만 크로스/더블 크로스는 이러한 몬헌의 핵심을 완전히 처음부터 재설계된다. 각각의 스타일들(길드, 부시도, 스트라이커, 에어리얼 / 브레이브, 연금 등의 총 6개의 스타일)은 기존 몬헌의 무기 조작체계에 스타일이란 새로운 기믹을 추가하고 몇몇 액션의 가지를 쳤다. 무엇보다도 크로스의 스타일의 추가는 근원적으로 게임 매커니즘에 새로운 개념을 도입하였다:예를 들어서 부시도의 경우, 몬스터의 공격이 직격하는 시점에 회피를 하면 무적회피와 함께 이동+특수기를 발동할 수 있다. 대검과 해머는 빠른 차지 공격, 쌍검은 회피공격, 보우건 류는 파워 리로드 등등 모든 무기에 회피 시 딜링에 도움이 되는 조작을 탑재한 것이다. 하지만 부시도 스타일은 기존 몬헌 표준 무기 조작에서 빠져있는 요소들이 있다:예를 들어 대검은 차지 공격 후, 강 모아베기 - 강 회전 베기로 이어지는 강력한 공격 루트가 없다. 즉, 게임은 하나의 스타일이 만능이 되지 않도록 각별한 주의를 기울이고 있고, 실제 플레이를 해봤을 시에는 몬스터를 사냥하는데 있어서 OP 능력보다는 다양한 방법론이 있다고 느껴진다. 이는 표준적인 길드 스타일과 여타 스타일들과 비교하여 보았을 때 극명하게 드러나는데, 표준적인 길드 스타일에 비교해서 부시도는 회피에서 파생되는 능력을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면 토벌 시간이 늘어나고, 스트라이커는 수기를 공격적으로 활용하지 못하면 포터블 세컨드 시절의 단순한 공격 패턴과 딜링의 부재로 뼈아픈 타임 로스가 생겨나게 된다. 


흥미로운 점은 각각의 스타일들은 이미 기존 몬헌 시리즈에서 어느정도 찾아볼 수 있었던 유형들이라는 것이다. 질풍 랜서와 같이 모든 방어를 회피에 올인한 플레이 스타일(부시도)이나, 광역화 스킬을 띄운 백업형 헌터(연금) 등은 이미 과거의 플레이어의 게임 스타일에 기반하고 있었다. 하지만 기존의 플레이 스타일들은 어디까지나 패시브 스킬에 베이스를 두고 있었고, 새로운 액션 매커니즘의 추가가 아닌 있는 액션의 활용에 기반하였다. 그렇기에 플레이어들이 만들어낸 개성들은 게임 시스템 내에서 차별점이 생기지는 않았다. 즉, 플레이어의 스킬 구성은 플레이어의 능동적인 대응을 넓히는 하나의 축을 담당하고 있었지만, 정작 플레이 스타일에 따른 조작 체제 자체가 세분화되었다고는 할 수 없었다. 또한 시리즈가 진행되면 진행될수록 게임이 무기의 조작에 새로운 액션을 추가하거나 빼거나 하는 쪽으로 무기 벨런스를 맞추다 보니, 조작 체계는 점점 복잡해지는데 게임 플레이는 플레이어 체감상 크게 안 바뀌는 문제도 한몫 하였다. 


스타일의 추가는 이러한 문제들을 한번에 해결하였다. 플레이 스타일에 따라서 다양한 조작과 보상을 부여하면서 플레이어가 더 능동적으로 사냥에 임할 수 있게 하였으며, 조충곤 이외엔 부락했던 단차 액션의 존재를 모든 무기에 통합시켰으며(에어리얼 스타일) 기존 몬헌 플레이 스타일(길드 스타일)에서부터 생존 스킬을 어느정도 대체하는 스타일(부시도, 브레이브)까지 다양한 플레이를 보장하였다. 흥미로운 점은 더블 크로스에서 추가된 브레이브 스타일은 이전까지 찾아볼 수 없었던 독특한 조작 체계와 패턴을 보여준다는 것이다:브레이브 스타일은 별도로 존재하는 브레이브 게이지를 올림으로써 데미지 딜링과 기동력이 대폭 증대되며, 핵심은 최대한 무기 납도를 하지 않고 딜을 최대화 하여 브레이브 스타일을 수렵 시간 내내 오래 유지하는 것, 더 나아가서 납도 지속 행동 중 파생되는 다양한 액션을 적재적소에 활용하는데 있다. 기존의 스타일들이 이전에는 찾아볼 수 있었던 조작 체계를 계승하였다면, 브레이브 스타일은 이전에는 찾아볼 수 없었던 새로운 스타일이라 할 수 있다. 즉, 기존의 플레이어들이 개발한 플레이 스타일에서 파생된 스타일이 아닌 크로스의 스타일 시스템에서 파생된 스타일이라는 점에서 이 스타일 시스템이 더 발전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주는 스타일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게임은 필살기라 할 수 있는 수기를 추가하여 스타일 시스템에 양념을 치는데 성공하였다. 사람들의 우려와 별개로 수기는 어디까지나 딜을 보조하거나 게임 플레이 스타일, 무기 시스템을 보조하는 보조적인 개념으로 설정되어 있다.  오히려 크게 변화한 점은 수기의 추가보다도 스타일에 따라서 스킬 시스템이 완전히 일신되었다는 점이다:스타일의 효과들이 기존 패시브 스킬들의 능력(특히 방어계열의 스킬들, 청각 무효라던가)을 대체하고 있기 때문에 게임은 벨런스를 맞추기 위해서 기존 스킬 셋들이나 방어구에 붙은 스킬들을 조정하였다. 기존에는 필수였던 청각 보호 같은 스킬들이 이제는 없어도 그만인 스킬로 내려갔고, 게임 플레이와 스타일에 따라서는 더 공격적인 스킬셋을 취하는 것도 가능해졌기 때문에 좋은 변화라 할 수 있다. 다만 이전에 비해서 커스텀 셋을 짜기가 힘들어 진 점, 그리고 그만큼 호석에 대한 부담이 증가한 점은 아쉬운 부분이라 할 수 있다.


크로스/더블 크로스는 몬헌의 집대성을 표방하는 만큼 역대 최대의 몬스터 등장을 자랑한다. 다만 여전히 '인기 있는 몬스터는 잡히고 인기 없는 몬스터는 안잡히는' 구조는 여전하다. 이는 몬스터 패턴의 리파인 등의 문제가 아닌, 재미는 있지만 그 소재로 만드는 장비가 괜찮지 않기 때문이라는 문제가 더 크다. 다만 크로스에서 새롭게 추가된 간판몹 4종(가무토, 라이젝스, 타마미츠네, 디노발드)은 나름대로 재밌는 몬스터들이며, 더블 크로스의 간판몹인 발파루크는 4의 고어마가라를 연상케하는 골때리는 매커니즘을 갖고 있다. 가장 높게 평가하고 싶은 몬스터는 타마미츠네와 디노발드로 3편에서 처음 등장한 골격들로 얼마나 다채로운 움직임을 만들어낼 수 있는지를 증명한 몬스터라 할 수 있다. 


결론적으로 몬스터 헌터 크로스/더블 크로스는 몬헌 시리즈에서 중요한 변곡점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4편과 같은 요소의 추가가 아닌 게임 시스템을 근본적으로 바꾸되, 거기서 기존 게임 시리즈가 갖고 있는 정체성은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는 점에서 매우 매력적인 게임이다. 하지만 더블 크로스의 판매량의 기대치의 반토막이 난 점을 고려하면(물론 그것만으로도 이미 밀리언이지만) 시리즈의 전통적인 판매방식인 본편 - G급의 판매 방식은 제고되어야 할지도 모른다. 물론 스위치로 나올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점쳐진 만큼, 새로운 플랫폼에서 몬헌 시리즈는 새로운 방법론과 가능성을 제시하리라 본다.



게임 이야기/게임 리뷰



게임에 있어서 새로운 시대가 도래하고 있다. 콜옵으로 대변되는 밀리터리 FPS와 콜옵을 뒤쫒는 추격자들의 쫒고 쫒기는 추격전의 구도는 무너지기 시작하였고, 새로운 게임들과 실험들의 결과물들은 제각기의 길을 개척하였다. 이볼브 같은 매력적인 컨셉과 엉망인 게임플레이가 결합된 실패작에서부터 스플래툰과 레인보우 식스 시즈 같은 지속적인 콘텐츠 관리 및 마케팅을 통해 롱런하는 성공작들까지 게임의 수요와 공급, 성공 모델들이 점점 다양해지는 것은 이러한 개척의 결과물이다. 분명한 건 이전까지는 쉽게 시도하지 못했던 게임들이 등장하고, 그것이 팔리는 시대, 더 나아가 세일즈/콘텐츠 공급 모델마저도 기존의 모델과 완벽하게 다른 흥미로운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UBI 소프트는 이런 점들에서 실험작들을 '양산'하는 회사라 할 수 있는데, 일련의 게임들에 1)실험적 요소의 투입, 2)성공한 요소들을 자사 다른 게임/후속작들에 이식, 3)이후 운영을 통해 성공적인 비즈니스 모델로 안착시킴, 이라는 확고한 패턴이 있기 때문이다. 수많은 게이머들이 입버릇처럼 이야기하는 UBI 소프트 게임들의 1편 징크스는 이러한 부분에 기인하며, 게이머들 사이에서 악명 높은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하지만 사람들이 흔히 간과하는 부분들은 1편 징크스가 심한 UBI 소프트 게임들의 '1편' 역시도 적어도 본전치기 수준으로는 게임을 팔린다는 것이다. 이는 UBI 소프트 게임들의 개발 및 발매 패턴에 숨어있는 전제 0이 존재하기 때문이다:전제 0)기본적으로 UBI 소프트가 만드는 게임들에는 확고하고 분명한 수요가 있다는 것. 디비전은 이미 데스티니 같은 MMO 슈터류의 수요층을 흡수하였기에 가능했고, 레인보우 식스 시즈는 비대칭 협력/경쟁 게임들의 수요(이볼브 같은)를 간파하였기에 가능한 게임이었다. 즉, UBI 소프트는 논란의 여지가 있겠지만 시장에 깔려있지만 분명하게 드러나지 않는 수요를 읽어내고 선점하는 능력이 충분히 있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포아너는 참으로 기묘한 게임이라 할 수 있다:우리는 이미 다크소울의 성공 및 독특한 PVP를 통해 총이 아닌 검과 검, 냉병기들이 부딪히는 게임에 대한 대체할 수 없는 매니악한 수요가 있다는 것을 확인하였다. 또한 근 20년간 액션 게임의 계보에서 플레이어와 플레이어가 검을 맞대고 대결하는 로망을 구현하고자 했던 게임들(제다이 아웃캐스트 2, 제다이 아카데미, 블레이드 앤 다크니스, 룬 같은)을 찾아볼 수 있었다. 포아너는 이들을 더 세련되게 다듬은 게임이며, 게임 자체의 완성도는 높은 편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포 아너라는 '게임 자체의 완결성'만을 놓고 보았을 때의 평가이다. 결론을 두고 본다면 포아너는 운영의 실패, 게임 자체가 인용하는 격투 게임의 문법과 이를 받아들이는 게이머들의 불협화음 등이 복합적으로 결합되어 게임 경험에 크나큰 악영향을 미쳤다. 그렇기에 어떤 점에서는 포아너는 여지껏 UBI 소프트가 만들어낸 작품 중 가장 문제작이자 실패작이라 꼽을 수 있을 정도다.


일단 분명하게 해두자:포아너가 기반하고 인용하는 게임 장르는 철저하게 대전액션이다. 대전 액션 장르는 대결이라는 진검승부의 경험, 더 나아가 짧은 순간에 이루어지는 복잡한 수싸움과 공방에서 오는 재미에 기반한다. 상단, 중단, 하단의 공방의 문법은 대전 게임 장르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는 문법이며, 화려한 콤보를 이용해 상대를 농락한다는 매력은 여타 게임에서 찾기 힘든 부분이라 할 수 있다. 포 아너는 이러한 대전 액션 게임의 문법을 3인칭 액션 게임의 형태로 옮겼다. 하지만 포아너는 기존 격투 게임들의 공방의 문법들을 직관적인 UI(공격-방어 방향의 시각화/패리 및 방어 타이밍의 구체화 등)로 재구성하고, 게임에 있어서 공격이나 콤보보다 방어에 방점을 찍고 느린 형태의 공방을 구현함으로써 게임을 좀 더 '캐주얼'하게 바꾼다. 기존의 격투 게임들의 격투게임 특유의 전통에 얽메여서 시스템을 점점 깊게 파고드는 형태로 발전하였고, 화려한 콤보에 얽메여서 조작이 점점 비직관적이고 복잡하게 변함으로써 매니아층을 위한 게임이 되었다(스트리트 파이터 5가 콤보보다 공방의 운영에 초점을 맞춘 게임이라는 점이라는 점은 눈여겨 볼만하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포아너는 대전 액션 게임 특유의 심리전과 공방을 끌고 오면서도 대전액션의 허들을 최대한 낮추려고 시도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시도는 성공적이며 게임의 방어 중심으로 돌아가는 게임의 기본 시스템은 탄탄하다 평할 수 있다.


포아너는 격투 게임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방어 중심으로 게임을 재편하고 이를 편리한 UI로 포장함으로써 대전 액션 장르의 허들을 낮추고자 하였다. 여기에 UBI는 좀 더 대담한 시도를 가한다. 기존의 격투 게임들이 1대1의 대결에 집중하여 게임을 구성하였다면, 포아너는 3인칭 액션 게임의 문법을 대전 액션 게임에 뒤섞고 게임의 확장성을 넓히는데 성공한다. 기존의 공정한 대결을 위한 스테이지는 이제 다양한 고저차와 낙사 구간, 장애물들로 가득한 위험한 공간이 된다. 플레이어들은 이러한 환경들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싸워야 한다. 오히려 이러한 경험은 다크소울 시리즈의 PVP를 연상시키는 구석이 있다:플레이어는 절대로 공정한 싸움을 하지 않는다. 암령들은 몬스터들의 공격을 받지 않는 점을 적극적으로 활용해서 침입하는 사람의 뒤통수를 치며, 다양한 속임수와 꼼수를 활용해서 허를 찌르는 플레이를 한다. 상당수의 다크소울 영상 유튜브 업로더들이 다크소울을 플레이하듯이 포아너 영상을 올린 것들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포아너는 환경과 스테이지의 다양성을 대전 액션 게임의 중요한 변수로 배치하고 플레이어가 이를 의식하면서 싸우도록 권장한 것이다. 


또한 3인칭 액션의 문법을 도입한 변화로 포 아너는 대전액션 게임의 1대1의 문법에서 1 대 多, 심지어는 多 대 多도 가능하게 만들었다:이제 플레이어는 환경과 스테이지 뿐만 아니라 적을 도우러 오는 우군과도 싸우게 된다. 그렇기에 플레이어는 항상 자신이 유리한 싸움을 하고 있는지를 재면서 게임을 해야하며, 적에게 등을 돌려 도망가는 것도 유효한 선택지 중 하나가 된다. 하지만 게임은 분노 모드(여럿의 공격을 연속적으로 받아서 쌓이는 분노 게이지를 소비하여 임시 체력과 공격력/방어력을 확보하는 것)를 도입하여 게이머가 1대2까지는 어떻게든 운영해서 역전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겨둔다. 이와 같이 포아너는 1대1의 정진정명한 대결에서 낙사시키고 여럿이서 다굴을 치는 등의 이전투구식 싸움까지, 다양한 상황에서 싸우는 변화무쌍한 게임이 되고자 한 것이다.








이러한 포아너의 변화무쌍함을 대표하는 부분이 바로 정복전이다:AOS 식의 라인전을 3인칭 액션 게임에 접목시킨 이 모드는 포아너를 대표하는 모드이자 포아너의 모든 것이 집약되었다 할 수 있다. 정복전은 3개의 거점을 정복하는 형태로 진행이 되는데, 가운데 거점의 경우 미니언들을 밀어서 라인을 밀거나 당기는 등의 AOS에서 볼 수 있는 라인 관리가 이루어진다. 미니언들은 공격 한번으로 죽는 허약한 존재지만, 상대 플레이어와의 전투에서 슈퍼 아머 판정 없는 공격을 짤짤이로 끊어버려 전투를 유리하게 만들기도 하고, 몇몇 케릭터들은 능력을 통해 미니언을 죽이고 체력을 회복하여 방심한 상대 플레이어를 반격하여 제압하기도 한다. 이 미니언들의 존재는 게임의 규모감을 느끼게 만드는 연출이기도 하지만, 플레이어가 통제해야 하는 환경의 중요한 변수로 작용하기도 한다. 포아너는 상대적으로 느린 공방에 환경 통제라는 요인을 섞어넣음으로써 격투 게임 역사에서 유래를 찾기 힘든 독특한 플레이를 구현한 것이다.


이렇게만 본다면, 포아너는 정말로 훌륭한 게임처럼 보인다. 실제로도 그러하다:포아너는 기존의 실험작들이 갖지 못했었던 컨텐츠의 풍부함과 대전 이외의 세력전 개념의 땅따먹기, 아이템 파밍 및 육성, 코옵이 지원되는 싱글플레이(스토리는 의미없는 수준이긴 하지만) 등등까지 컨텐츠를 질과 양을 모두 확보하고 있다. 하지만 포아너에는 게임 내적인 완결성이 문제가 아닌 몇몇 치명적인 문제가 있다:이중 몇몇은 게임이 발매되기전에 마케팅 등을 통해서 생겼으며, 몇몇은 운영과 관리적은 측면에서 벌어진 오판에서 비롯되었다. 먼저 마케팅 등을 통해서 발생된 포아너의 결함이다:포아너의 마케팅의 문제는 절대로 포아너 게임플레이가 결코 공정하지 않고 명예 따위는 엿바꿔 먹은 것이 핵심이라는 것을 철저하게 숨겼다는데 있다. 


하지만 그것은 결점이 아니며, 오히려 크나큰 장점이다:마케팅 포장과 게임 구성에 따라서 플레이어는 다각도로 이 게임을 즐길 수 있었을 것이다. 마치 대난투가 아이템 등을 사용해서 상대를 장외로 밀어내서 KO 시키는 졸렬한 게임처럼 보임에도 불구하고, 다양한 게임 플레이 스타일을 보장하고, 심지어는 1대1에서도 게임이 정상적으로 동작해서 폭넓은 게이머(케주얼에서 프로 게이머까지)들을 모두 흡수했었던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포아너의 마케팅은 지나치게 1대1과 명예를 중시하는 공정한 게임처럼 보이게끔 만들었다. 하지만 뚜껑을 열어보니 포아너의 실상은 다크소울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사람들을 엿먹이는데 특화된 스트리머들의 게임이었고, 이러한 마케팅과 실상의 미스매칭은 플레이를 하는 게이머들과 커뮤니티를 혼란스럽게 만들었으며 이 과정에서 발생한 소모적인 논쟁이나 플레이어의 피로감(실제 게임과 기대한 게임 사이의 괴리에서 오는)은 플레이어들이 빠르게 이탈하게 만드는 주요한 원인이 되었다.


더 심각했었던 것은 벨런스나 서버 문제에 대처하는 개발진들의 안일한 자세였다:실제 몇몇 케릭터들(워로드, 피스키퍼 같은)의 성능이 심각하게 좋고, 체감 플레이에 심각한 영향을 끼친 점이나 소위 '분노 셋'이라 불리는 장비 세팅이 정복전과 데스매치를 파괴하는 동안 개발진들이 취한 액션은 소극적이었다. 심지어 매칭의 경우, P2P 방식을 채용해서 게임을 하는 중에 한명이 튕기면 같이 2~3명 이상이 튕기는 일이 빈번하였다. 물론 개발진이 벨런스 이슈에 대해서 조심스러운 자세를 취한 것은 그들이 만든 게임이 전례를 찾아보기 힘든 게임이기 때문이라고도 볼 수 있다. 하지만 본질적으로 포아너는 격투 게임이고 격투 게임에 있어서 벨런스 문제와 서버 문제는 그 어떤 사안들보다도 더 중요한 문제고 초기에 이런 이슈에 늦게 대처한 점은 심각한 문제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부분들이 게임이 훌륭함에도 불구하고 포아너를 플레이하는 플레이어들을 게임에 더 쉽게 지치게 만든 주요한 원인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차라리 포아너는 UBI 특유의 1편 징크스를 겪고 시간을 들여 오류를 잡아가는 과정이 있었다면 더 나은 게임이 되었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포아너는 한번에 성공을 거두고자 많은 것을 한 게임에 집약하였고, 이 집약이 역으로 게임에 독이된 케이스라 할 수 있다. 또한 UBI 소프트 발매 게임 답게 엄청나게 화려한 마케팅을 하였음에도 정작 게임과는 동떨어진 마케팅을 한 점도 치명적인 실패 요인으로 꼽아야 한다. 혼자서 플레이하는 싱글플레이 게임이었다면 재발견이나 입소문을 통해서 재발굴될 여지가 있지만 수많은 사람들이 함께 플레이하는 멀티플레이 게임에서 마케팅의 실패는 유저풀에 큰 타격을 입힐 수 있는 부분이었고, 유감스럽게도 포아너의 경우에는 큰 악재로 작용하였다.


물론 이제 게임이란 매체는 장기적인 운영을 통해서 스테디셀러로 팔리는 것이 중요한 매체가 되었고, 디비전이나 시즈의 사례처럼 장기적인 붐업을 통해서 시작이 삐끗해도 장기적으로 팔리는 게임이 가능하다는 것을 이미 UBI는 증명하였다. 하지만 문제는 포아너는 나름대로 자기 완결적인 게임이긴 하지만 너무나 독특하며, 초기 마케팅의 실패로 게임에 대한 안좋은 이미지가 너무 굳어진 케이스다. 그렇기에 포아너의 장기적인 성공은 앞선 게임들과 비교하자면 매우 불투명한 상황이며, 이는 게임의 완성도에 비추어 보았을 때 대단히 안타까운 부분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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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 만화, 영화 이야기


두 사람은 남편과 아내로 동거를 함으로써 연방의 평화와 존엄을 위배했습니다. 유죄를 인정합니까? 1958년, 타 인종간의 결혼이 불법이었던 미국 버지니아 주 서로를 영원히 지켜주고, 언제든 함께하기로 맹세한 ‘러빙 부부’가 오직 사랑으로 세상을 바꾼 위대한 러브 스토리. (네이버 영화 시놉시스)


제프 니콜스의 영화의 축을 이루는 두가지 테마는 가족과 사랑이다. 테이크 쉘터에서는 경제적 아포칼립스 아래 사랑하는 가족이 종말을 목도하는 이야기를, 머드에서는 다양한 방식의 사랑과 가족의 형태를, 미드나잇 스페셜에서는 제각기 다른 사람들이 사랑으로 가족이 되고 더 나아가 같은 것을 볼 수 있다는 믿음을 보여주었다. 어떻게 본다면 제프 니콜스의 영화는 요즘 시대에 있어서 대단히 '반동적'인 영화라 할 수 있는데, 제프 니콜스가 기반하고 있는 가족과 사랑관은 다양한 스펙트럼을 지니고 있음에도 어딘가 안정적이고 보수적이다. 이는 그가 보여주는 영화적 스펙트럼이 미국의 아칸소 같은 시골의 자연풍광을 배경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며, 그의 선배격이라 할 수 있는 테렌스 멜릭이 거대한 자연 풍광을 통해 인간과 섭리가 하나로 이어짐을 이미 선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멜릭이 트리 오브 라이프로 자신의 장점을 바람 앞의 티끌마냥 흩날려버릴 동안, 제프 니콜스는 정직하게도 자신이 바라본 것, 자신이 믿는 것만을 이야기하였고 이런 점에서 자신의 스승이자 원본을 넘어섰다.


러빙은, 물론 영화 제작 당시에는 의도치 않았지만, 혐오와 차별이 들끓는 작금의 세태에 정말로 시의적절한 영화다. 금지되어 있는 인종간의 결혼, 거기 정면으로 저항한 부부, 그리고 그 모든 어려움을 극복한 사랑까지. 러빙에는 사람들이 원하는 '드라마'가 들어갈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흥미롭게도 러빙의 이야기는 인간과 체제가 맞부딪히는 정치 드라마가 아니다. 영화에서 보여주는 인종 간 결혼의 이야기라는 거대한 역사적 사건은 영화에서 중요하긴 하지만 먼 거리에서 벌어지는 이야기처럼 느껴진다. 러빙이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은 인권과 같은 거대 담론이 아닌 지근거리에서 일어나는 러빙 부부의 구체적인 이야기다. 하지만 그 구체적인 이야기로부터 영화는 거대한 담론이 자연스럽게 도출될 수 있도록 이끌어낸다.


영화가 다루는 것은 투쟁이 아니라 '인내'며, 인내의 핵심은 바로 '사랑'이다. 하지만 러빙의 사랑은 언어적이거나 서사적이지 않다:제프 니콜스는 과거 자신의 작품들에서 보여주었던 자연 풍광의 파노라마를 러빙 부부의 포옹 등의 신체적인 접촉을 통해서 드러낸다. 그렇기에 이전 작품들에 비하자면 러빙은 두 인물을 한 프레임에 담아내는 장면들이 많다. 특히 영화는 두 인물의 시선이 서로를 응시하는 장면이 많이 배치함으로써 언어적인 표현 없이 두 인물의 감정적 유대감을 표현한다. 흥미로운 점은 러빙은 인물이 중심이긴 하지만, 이 두 인물을 다뤄내는 방식은 마치 자연풍광을 다뤄내는 것과 유사하다는 것이다. 조용히 포옹한채로 서로를 응시하고 쓰다듬는 장면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평온함을 느끼게 만든다. 마치 이들의 사랑을 증명하기 위해서 세상과 투쟁할 필요가 없다는 것처럼 말이다.


흥미로운 점은 러빙의 이야기는 어떻게 보면 앞서 이야기했듯이 다소 '반동적'으로 보여지기도 한다는 것이다:러빙 부부는 자신들의 결혼이 불법이었던 버지니아를 떠나 인종간 결혼이 합법이었던 워싱턴으로 갔다가 다시 버지니아로 돌아온다. 인종간 결혼이 합법이었던 곳에 머물렀다면 자신들의 사랑에 어떠한 장벽 없이 그대로 아이들을 기르며 살아갈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어째서 러빙 부부는 다시 버지니아로 돌아간 것일까. 물론 영화가 기반하고 있는 사실에 근거했기 때문이라고도 볼 수 있지만, 영화가 러빙 부부의 이야기를 통해서 보고자 한 것은 역사를 바꾼 혁명적인 사건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원래 그러했었던 자연의 섭리대로 돌아가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역사와 사회에 급진적으로 저항한 혁명가들의 이야기가 아닌 농촌의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보는 것이다. 하지만 가장 급진적인 것들이 가장 보수적으로 보일 수 있는 것으로부터 출발한다는 점은 상당히 흥미로운 부분이라 할 수 있다.


재밌는 점은 영화에 그런 혁명을 꿈꾸는 사람들도 러빙 부부의 곁을 스쳐지나간다는 점이다:러빙 부부에게 연방 대법원까지 재판을 끌고 올라가자고 이야기하는 변호사가 처음 등장하는 시퀸스를 보자. 그의 첫등장은 우스꽝스러우며 '가식적'이다. 그는 연방 대법원까지 소송이 진행되는 것, 더 나아가 소송에 따라서 헌법 그 자체가 바뀔 수 있다는 사실에 들떠있는 모습을 보인다. 그는 나쁜 사람은 아니나, 영화는 그를 러빙 부부와 대비되는 존재로 그려낸다. 어딘가 도회적이고 순수하지 못한 번잡한 사람. 흥미롭게도 이 번잡한 사람들, 도회적인 사건들에 대해서 러빙 부부가 대하는 태도는 상반된다. 남편은 이들을 탐탁치 않게 여긴다. 그리고 자신이 가족을 지킬 수 있다고 아내에게 이야기한다. 하지만 아내는 다른 것을 본다. 자신이 겪었던 일들이 타인에게 희망과 도움을 줄 수 있다고 믿고, 당당하게 행동한다. 영화는 이 둘이 소송을 바라보는 시선이 서로 대비되게 그려내지만, 그것이 갈등으로 이어지지 않게 만든다. 부부는 사랑으로 이어져있지만, 서로 다른 관점과 방법으로 세계를 바라본다. 그것은 갈등이 아니라 공존이며, 이 공존은 서로에 대한 사랑과 믿음으로 이어져있음을 영화는 보여준다.


영화의 마지막, 연방 대법원은 러빙 부부의 손을 들어주고 미 연방의 헌법은 이로 인해 새로운 수정 조항을 추가하게 된다. 미국의 역사에 길이남을 순간, 그리고 러빙 부부이 겪어온 오랜 고난이 종지부를 찍는 순간에 영화는 어떠한 클라이맥스나 극적 감정을 고조시키지 않는다. 오히려 남편이 아이와 놀아주는 장면을 담담하게 보여주고, 부부가 처음 결혼을 약속하고 집을 짓기로 한 그 장소로 돌아와 집을 짓는 장면으로 끝을 맺는다. 마치 원래 그러했었던 것처럼 말이다.


러빙은 다소 반동적인 부분들이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놀라운 중력을 갖고 있는 영화다:그것은 연어가 고향을 찾아 회귀하듯이, 인간이 사랑이라는 감정 아래서 가족을 구성하고 서로 다른 사람이 공존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그 가장 원초적인 공존 속에서 세상을 바꾸는 힘과 인내가 생겨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영화 러빙은 제프 니콜스의 필모그래피에서 앞으로도 오랫동안 빛날 걸작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잡담/개인적인 이야기




아무것도 안하기 짱좋아!


(내일 러빙 리뷰 올라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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