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03'에 해당되는 글 8건

잡담/개인적인 이야기



쉬었으면...





'잡담 > 개인적인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170409  (0) 2017.04.09
170401  (0) 2017.04.01
170317  (0) 2017.03.17
170309  (0) 2017.03.09
170226  (0) 2017.02.25
게임 이야기



다크소울의 성공은 게임업계 많은 분야에 영향을 주었다. 비동기화된 멀티플레이나 싱글과 멀티플레이의 결합, 가혹한 게임 분위기 등등 다크소울 시리즈는 게이머와 제작자 모두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 하지만 직접적으로 다크소울 시리즈에 대한 '모방'은 그렇게까지 성공적이지 못했다:로드 오브 폴른이 나름대로 선방하기는 했지만, 소울 시리즈는 여전히 프롬 소프트와 그 변두리에 국한되었다. 하나의 게임 시리즈가 같은 장르 문법을 공유하는 계보를 만드는 것은 그 게임의 위대함을 증명하는 일을 넘어서 그 장르 문법을 토대로 새로운 게임들이 만들어질 수 있는 토양이 마련되었다는 의미다. 그렇기에 소울 시리즈를 하나의 장르적 계보로 안착시키려는(다르게 이야기하자면 소울 시리즈의 수요층을 기반으로 게임을 만드는) 시도들은 소울 시리즈를 둘러싼 일련의 실험과 게이머 문화, 산업 구조 등이 성숙과 안정기에 들어섰다는 것을 의미한다. 


인왕은 코에이 테크모의 오래된 프로젝트 중 하나였다. 플3 런칭작으로 알려졌던 게임은 플3를 넘어서 플4가 런칭되고 한참이 지나서야 팀닌자 주도로 게임이 개발되고 있다는 것이 드러났다. 하지만 그 어느 누구도 인왕이 좋은 게임이 될 것이라고 쉽게 이야기할 수 없었다:게임은 개발을 발표한지 10년이 넘었고, 심지어 개발을 주도한 팀닌자는 위대한 액션 게임 시리즈였던 닌자 가이덴 시리즈를 거하게 말아먹고 여타 게임 개발사들의 어시스트만 하던 상태였기 때문이었다. 개발 후 10년이 지나 완성된 게임과 한물 간 제작사, 이 둘의 결합은 우려를 불러일으키기 충분했다. 하지만 결론만 놓고 본다면 인왕은 정말로 망할 것 같은 징크스 조합을 훌륭하게 극복한 게임이었다.


인왕은 20%의 소울 시리즈, 40%의 닌자 가이덴 시리즈, 20%의 무쌍 시리즈로 구성되어 있다. 먼저 인왕에 깔려있는 소울 시리즈에 대해서 이야기해보자:소울 시리즈가 없었다면 인왕은 존재할 수 없었다. 소울 시리즈는 어렵지만 극복할 가치가 있는 게임의 수요를 증명하였을 뿐만 아니라, 특유의 스테미너 자원 기반의 게임 시스템을 확립하기도 하였다. 소울 시리즈는 스태미너라는 자원을 통해 게이머의 행동 하나 하나가 스테미너를 소모하고, 소모된 스테미너가 게임에 큰 영향을 끼치게 만들었다. 스테미너 기반의 게임은 게이머의 행동을 제약하지만(스테미너를 관리하지 않으면 죽음으로 이어지기에), 동시에 게이머가 계속해서 이를 관리하면서 전략적으로 행동하도록 만든다. 


또한 죽음을 다루는 방식도 인왕과 다크소울은 유사하다. 다크소울에서 죽음이란 단순히 실패가 아니라 스테이지와 적을 이해하기 위한 학습의 도구로 사용되기도 한다. 게이머는 죽고, 죽고, 또 죽어서 게임의 스테이지과 적을 학습하며, 플레이어들의 죽음은 다른 플레이어들에게 어떤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지를 경고한다. 이러한 과정이 처음에는 매우 어렵고 반복적으로 느껴저 좌절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소울 시리즈는 절묘하게 스테이지를 분할한다:처음에는 멀게만 느껴졌던 길들은 실패를 거듭하여 파훼법을 찾아내면 이 과정 자체가 매우 간명하게 느껴지도록 구성되어 있다. 인왕의 스테이지 구성 방식은 역시 다크소울의 영향을 크게 받았으며 죽음을 표지하는 칼무덤들은 사인을 분명하게 명시함으로써 플레이어에게 어떤 위험이 알려주는 역할을 한다. 이렇게만 본다면 인왕은 정진정명한 소울 시리즈의 모방작처럼 보여진다.


하지만 인왕이 독특하고 뛰어난 이유는 게임에 섞여 있는 40%의 닌자 가이덴 시리즈 유전자에 기반하고 있다:팀닌자는 이미 닌자 가이덴 시리즈라는 불세출의 액션 게임을 만든 적이 있으며, 이미 9년전에 극복할 가치가 있는 어려운 게임의 수요를 충분히 증명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닌자 가이덴 3의 실패와 방황은 이들의 존재를 잊어버리게 만들기 충분했다. 인왕은 닌자 가이덴 시리즈가 갖고 있었던 훌륭한 모습들을 갖추고 있다:기본적으로 인왕의 게임 플레이 속도는 소울 시리즈와 비교를 불허할 정도로 엄청나게 빠르며(소울 시리즈의 가장 뒤틀린 변종인 블러드본 조차도 따라잡지 못하는 속도다), 무기와 자세마다 각기 다른 체계로 작동하는 기술이나 다양한 효과에 기반하고 있다. 소울 시리즈가 스테미너의 관리라는 측면을 강조하고 액션 자체를 단순화 시켰다면, 인왕은 소울 시리즈보다 더 복잡하고 정교한데다가 빠르게 움직이는 플레이를 구축한 것이다. 


이러한 인왕의 극단적으로 빠른 전투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시스템이 바로 잔심이다:전투 중 자세 변경 키나 회피를 눌러서 소모한 스테미너의 일정량을 회복하는 잔심 시스템은 소울 시리즈에 익숙한 사람들이면 다소 이해가 안되는 시스템일 것이다. 이미 게임은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스테미너를 소비하며 회복하고 있다. 그렇다면 어째서 사용한 스테미너를 회복하기 위해서 일부러 번거롭게 키를 눌러야 하는가? 하지만 게임을 조금만 심도있게 플레이해보면, 이 잔심을 얼마나 잘 사용하느냐가 게임의 핵심이라는 것을 노련한 게이머들은 눈치 챌 것이다. 게임 내에 잔심을 이용한 스테미너 회복을 느리게 만드는 영계 정화(스테미너 회복량이 최대가 되는 시점에서 잔심을 써서 영계를 지우는 것)나 잔심을 통해 얻는 각종 부가효과들이 있지만, 사람들이 잔심을 필수적으로 사용하는 이유는 스테미너 소비량이 회복량을 넘어섰기 때문이다.. 심지어 스테미너가 떨어진 상태에서 데미지를 받은 경우, 자세가 무너지면서 큰 추가타 데미지를 받을 수 있는 위험에 처하기 때문에 소비되는 스테미너를 최대한 보전하는 것은 게임에서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잔심의 존재는 단순하게 스테미너를 보존하는 것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플레이어가 익숙해지면 공격 - 잔심 - 회복한 스테미너로 다시 공격 - 잔심 - 이하 계속 반복 으로 플레이를 이어나갈 수 있으며, 이런 게임 시스템 덕분에 인왕은 적을 폭풍과도 같이 몰아붙이는 재미가 있다. 하지만 적도 마냥 당하지만은 않는다. 플레이어가 재빠른 만큼 적도 재빠르다. 그렇기에 플레이어는 순수하게 실력으로 적을 압도해야 한다. 게임에 익숙해질수록 게임은 소울 시리즈의 묵직하고 날카로운 플레이보다는 닌자가이덴의 빠르고 치명적인 게임 플레이에 가까워 진다. 초창기 베타 때에 플레이어들이 소울 시리즈 보다 더 어려운 게임이라 평한 것도 이 때문이라 할 수 있다:인왕은 플레이어에게 실수할 여지를 많이 제공하지 않으며 약간의 컨트롤 실수도 플레이어에게 치명상을 선사한다. 하지만 게이머가 능숙해질수록 인왕은 여타 게임에서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재미를 선사한다. 그리고 이는 소울 시리즈에 영향을 받았지만 원본과는 다른 새로운 게임이 나올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는 것과 어려운 난관에 적극적으로 도전하는 게이머 수요층이 고정적으로 존재한다는 것을 인왕은 증명하였다.


흥미로운 점은 인왕에는 팀닌자의 닌자 가이덴 시리즈나 소울 시리즈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함이 숨어있다. 바로 코에이 테크모의 전매특허인 무쌍식 컨텐츠 소비 구조이다. 인왕은 소울 시리즈와 다르게 거대한 스테이지를 상정하는 것이 아닌 분절되어있는 미션 형태의 스테이지(물론 스테이지 개별 구성은 숏컷 단위로 연결된 소울 시리즈와 유사하지만)를 제공하는데, 각각의 스테이지는 공략 방법만 알면 혼자서 10분 이내에 주파 가능할 정도로 짧은 길이를 보여준다. 또한 소울 시리즈가 특정 맵에 고정된 아이템을 드랍하는 구조였다면, 인왕은 어디서 어떤 아이템이 떨어지는지 고정되어 있지 않고, 아이템이 무작위의 희귀도와 능력을 갖게끔 설계되어 있다. 즉, 인왕은 짧은 스테이지의 반복을 통해서 아이템을 파밍하고 플레이어가 더 강해지는 형태의 구조를 띄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구조는 1회차 이후 2회차에서부터 두드러진다. 최상급 명물 이상의 신기 등급의 아이템이 등장하고, 신기 등급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다른 신기를 합쳐서 강화를 해야 한다. 그리고 신기를 합치는데는 정상적인 플레이로는 충당되지 않는 많은 비용이 들어간다. 인왕은 이런식으로 반복 플레이와 강화를 통해서 게이머가 수십 수백시간을 게임에 투자해도 게임이 끝나지 않게끔 설계되었다. 그리고 이는 무쌍 시리즈 특유의 노가다 컨텐츠 구조와도 많은 유사점을 보여주는 부분이다. 무쌍 시리즈 역시 탄탄하게 잡혀 있는 기본 게임 플레이 위에 오랫동안 반복해서 플레이해도 지겹지 않은 컨텐츠 소비 구조와 목표를 제공하고 있으며, 이러한 부분은 인왕이 소울 시리즈 보다는 코에이 테크모의 영향을 더 강하게 받았다 할 수 있다.


전반적으로 인왕은 훌륭할 정도로 재밌는 게임이지만, 눈에 띄는 단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우선 적의 숫자가 너무 적어 전투 자체가 반복되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는 점이 있으며, 그리고 게임의 맵 구조가 소울 시리즈의 가장 자극적인 점만 옮기려는 나머지 깊이가 없어졌다는 점이 있다. 특히 맵 구조의 경우, 문제가 심각하다 할 수 있는 편인데 소울 시리즈가 다양한 함정과 위험 요소로 맵을 구성하였음에도 플레이어가 나아가야할 방향과 목표를 분명하게 설정한데 비해, 인왕은 소울 시리즈의 스테이지를 인스턴트 식품처럼 자극적으로 재현하려고만 했지 넓은 안목에서의 방향성을 제시하지 못해 맵 하나 하나가 미로처럼 짜증나게 꼬여있다는 인상을 준다. 물론 코옵 등을 통해 우격다짐으로 플레이할 수 있는 부분이 있지만, 맵 디자인이나 몬스터의 숫자 측면에서는 많은 아쉬움이 남는다고 할 수 있다.


결론적으로 인왕은 정말로 재밌는 게임이며, 소울 시리즈에선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하고 매력적인 재미, 닌자 가이덴 시리즈의 새로운 재해석과 팀닌자의 부활 등을 알린 성공적인 작품이라 할 수 있다. 물론, 인왕은 올해 나온 최고의 게임이라 할 수 없고 또 단점이 전혀 없다 할 수 없다. 하지만 인왕은 오랫동안 플레이할만하고 스스로 도전적인 게임을 찾는 게이머에게 추천할만한 게임의 하나로 손 꼽힐 것이다.



잡담/개인적인 이야기



쉬고 싶다...




'잡담 > 개인적인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170401  (0) 2017.04.01
170321  (0) 2017.03.19
170309  (0) 2017.03.09
170226  (0) 2017.02.25
170221  (0) 2017.02.21
게임 이야기



미들어스:쉐도우 오브 모르도르는 참으로 기이한 물건이었다. 게임이 나오기 전, 어크 시리즈의 모션을 그대로 가져다 썼다는 이야기를 듣기도 했지만, 정작 게임이 발매되었을 때는 네메시스 시스템으로 인해서 여지껏 전례를 찾아보기 힘든 독특한 게임이 되었었다. 쉐도우 오브 모르도르는 각각의 약점-강점을 조합해 게임 내에 단 하나만 존재하는 적을 만들어내는 네메시스 시스템로 세력권 다툼, 암살 등의 다양한 이벤트를 만들어냈고, 그 속에서 게이머는 마치 하늘 위에서 모든 것을 관찰하는 포식자 같이 이들이 무엇을 하는지 관찰을 하고 더 나아가 개입을 하는 등의 다양한 활동을 하였다. 다소 심심했던 2014년 한해 중에서 쉐도우 오브 모르도르는 눈부실 정도로 놀라운 게임이었다.

사실 후속작인 쉐도우 오브 워의 2년만에 개발되어 등장한 점은 놀랍지 않지만(보통 속편이 2년 내에 나오는걸 고려하면 더더욱 그러하다), 흥미로운 부분은 기존의 네메시스 시스템을 거의 몇배 규모의 스케일로 뻥튀기시켰다는 점이다:이제 레인저는 자신만의 오크 군단을 갖고 요새를 공략할 수 있게 되었으며, 기존의 작품이 암살과 은신, 관찰 등의 다소 조용한(?) 플레이에 방점을 찍었다면 이제 플레이어는 자신만의 전쟁을 일으킬 수 있게 되었다. 2편의 네메시스 시스템이 게이머와 오크 캡틴 사이의 우정, 배신, 충성에 대해서 다룬다고 한 점은 네메시스 시스템의 질적인 부분을 향상시키겠다는 개발자들의 포부가 느껴지는 부분이다. 

전작이 매우 재밌었기 때문에 2편은 매우 기대하고 있지만, 다소 걱정되는 점은 게임의 정체성을 너무 급격하게 튼 것이 아닌가 라는 부분이다. 1편이 게임 자체는 어크와 배트맨의 전투 시스템 등등 기존에 있었던 검증된 시스템을 바탕으로 하여 그 위에 네메시스 시스템을 덧댄 부분이 있었다. 하지만 2편의 스케일은 1편의 게임 플레이를 너무나 멀리 확장한 느낌이 있다. 과연 플레이어는 어디부터 어디까지 할 수 있는 것일까? 2편의 게임플레이 트레일러 만으로 게임은 많은 것을 약속하고 있지만, 1편도 네메시스 시스템이 제대로 굴러가기 위해서 플레이어가 다양한 물밑 작업을 했었다는 것을 고려한다면 2편의 게임 플레이 트레일러는 너무 '클라이맥스'만 보여준 게 아닌가 라는 걱정도 든다. 하지만 그러한 걱정을 충분히 극복할 수 있다면 미들어스:쉐도우 오브 워는 전작을 뛰어넘는 훌륭한 게임이 될 가능성이 높아보인다.

미들어스:쉐도우 오브 워는 8월 발매 예정이다.


게임 이야기




* http://leviathan.tistory.com/1893 이 칼럼을 참조해서 읽어주세요.


닌텐도 스위치가 3월 3일 발매되었다:휴대기와 거치기 모두를 지향하는 콘솔로써, 닌텐도는 영리하게도 플스와 엑박 사이에 틈새를 비집고 들어갔다. 이미 우리는 공개된 수많은 특허 등록을 통해서 스위치가 대략 어떻게 생겼는지를 알고 있었다. 하지만 스위치의 강점은 스위치의 성능이나 독특한 기믹보다도 스위치가 포용할 수 있는 스팩트럼이 이론적으로 매우 넓다는데 있다. 위는 너무나 독특한 조작방식을 지향하는 바람에 고유의 시장을 형성하는 동시에 서드파티가 진입하지 못하는 장벽을 처버렸고, 위 유는 위가 만들어낸 그 장벽을 부수지 못할 망정 세컨드 스크린과 애매한 성능, 발매 시기 덕분에 역대 부진한 닌텐도 콘솔이라는 평가를 듣기도 하였다. 그러나 스위치는 기존의 닌텐도 콘솔의 기믹(위의 모션 컨트롤, 위유의 테블릿 패드 기믹 등)을 흡수하면서도 방점을 '거치기 - 휴대기 모두를 지원하는 기기'라는 독특한 컨셉으로 나아갔고, 서드파티에게도 매력적으로 보이는 포지션(휴대기와 거치기의 중간 형태/포팅이 쉬워짐 등)을 점하였다. 


닌텐도의 친 서드파티적인 행보나 넓은 스펙트럼은 앞으로 검증과 시험을 거쳐야 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하지만 핵심은 따로 있다. 스위치의 핵심은 닌텐도의 변화를 함축한다는 것이다. 스위치에서 다양한 변화가 있었지만 필자가 스위치를 받아보고 가장 충격을 받았던 부분은 미버스의 부재와 기존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와의 연동이었다. 이미 위유나 삼다수 시절 닌텐도는 미버스라는 극히 폐쇄적으로 통제되는 게이머 커뮤니티를 운영한 적이 있었고, 좋든 싫든 그것은 여타 게임 서비스나 콘솔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기능이었다. 하지만 스위치에선 미버스가 도입되지 않은 대신, 트위터나 페이스북으로 곧바로 스크린샷을 찍어 올릴 수 있는 기능을 추가하였다. 실제 소니 PS4의 쉐어 버튼을 스위치에도 동일하게 적용하였는데, 이 쉐어 버튼의 동작 양태가 플포의 그것과 매우 유사하다는 점은 눈여겨 볼만한 점이었다. 즉, 닌텐도는 폐쇄적인 미버스라는 자사의 철학을 고수하기 보다는 외부의 성공 사례를 빠르게 자사의 시스템에 접목시킨 것이었다.


그외에 스위치 발매 전후로 닌텐도는 자사의 IP를 모바일로 낸다던가(슈퍼 마리오 런, 포켓몬 GO 같은), 기기 귀속이 아닌 다중 계정제의 도입, 지역 코드의 삭제 등의 게이머 입장에서는 편리하지만 자사의 운영방침에는 큰 변화를 일으키는 대변혁들을 추진하였다. 즉, 닌텐도는 위유 이후 점점 줄어드는 자신들의 입지를 뒤집기 위해 변화를 꾀하고 있었고, 그 중심에는 바로 스위치가 있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며칠 사용해본 후기로는 스위치가 갖고 있는 강점은 바로 포지션과 기믹을 다양하게 소화할 수 있다는 유연함이며, 이는 스위치 다이렉트에서도 강조하였듯이 자사의 모든 콘솔이 집약되어 있다는 개발 철학에서도 확인될 수 있는 부분이었다. 스위치는 거치기이자, 아마도 전례를 찾아보기 힘든 '스탠드 얼론 테이블탑 콘솔'이며, 동시에 자이로 센서를 탑재한 두개의 컨트롤러로 위의 기믹을 이어받기도 하고, 제한적이나마 거치형 콘솔의 기믹까지 흡수한 물건이다. 설명만 들어보면 위유와 많이 유사한것처럼 보이지만 실제 위유와 비교해보면 각각의 컨셉이 부자연스럽게 움직였던 위유보다는 스위치는 처음부터 기믹을 유연하게 소화할 수 있도록 설계된 점이 눈에 띈다고 할 수 있다. 


거치기와 휴대기의 속성을 모두 갖고 있는 콘솔이지만, 스위치는 거치기 보다는 휴대기에 더욱 방점을 찍고 있다. 그리고 흥미로운 점은 스위치는 이전의 그 어떤 휴대용 콘솔도 하지 못했었던 독특한 분야를 개척하고 있다는 것이다:기존의 휴대기기들이 컨트롤러와 스크린이 일체되어 1인 1기기의 한계에 잡혀있을 수 밖에 없었다면 컨트롤러의 분리를 통해서 휴대기기의 게이밍 경험이 게이머 1인 이외에도 확대하여 공유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스위치는 열어두었다. 1-2 스위치가 발매 후 위라는 콘솔의 정체성을 극대화한 위 스포츠에 비해서 허접하다라는 평가를 듣고 있긴 하지만, 큰 화면 없이 언제 어디서 모두가 즐길 수 있는 파티용 게임이자 게임 경험이 공유 가능하다는 것을 증명하였다. 


또한 분리가능한 조이콘은 하나로 합쳐서 전통적인 콘솔 조작 계통(2스틱, 4버튼, 4방향키, 좌우 각각 2개의 트리거)으로 기능하지만, 분리하면 각기 별개의 컨트롤러로도 활용할 수 있다. 즉, 스위치는 하나의 기기로 이미 '2인용 게임'을 지원하는 것이다:지금 현재 시중에 나와있는 그 어떤 콘솔도 컨트롤러를 두개 이상을 제공하지 않는다. 두명 이상이 게임을 즐기려면 여타 콘솔에서는 컨트롤러를 구매하는 추가적인 비용이 들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스위치는 하나의 조이콘이 2명의 플레이어가 언제 어디서든 플레이할 수 있는 환경을 기본 구성으로 제공하고 있는 것이다. 


혹자는 그래서? 라고 반문할지도 모른다. 실제로 닌텐도가 스위치를 통해서 보여주는 게임 경험의 공유, 조이콘을 옆 사람에게 주고 기쁨을 공유하세요Share the Joy라는 개념 자체는 80년대 북미, 유럽, 일본 중산층 가정에서 자녀들이 친구를 초대하고 게임을 같이하는 경험에 근거하고 있으며, 지금의 플레이스테이션이 쉐어 버튼과 방송을 통해 온라인으로 경험을 공유하는 것과 대칭되는 이러한 오프라인 상의 공유는 가정의 구성과 환경 변화로 인해서 찾아보기 힘든 광경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어떻게 보면 닌텐도가 스위치를 통해서 구축하려는 공유의 철학은 대단히 시대착오적일 수 있다. 하지만 주목해야 하는 점은 닌텐도가 자신의 성공 경험과 철학을 그대로 접목시키지는 않고, 시대에 맞게 재해석하고자 노력했다는 점이다. 


스위치가 파고들고자 하는 미개척 지대는 2~4인이 모여서 즐기는 커뮤니티이다:실제 스위치 공개 트레일러 영상에서 플레이어는 어디에서나 스크린을 놓고 조이콘을 나눠주며 게임을 함께 플레이하는 것을 강조했고, 그것은 콘솔/PC 게이머들이 경험하는 개인적인 게임 경험과 별개로 다양한 장소/다양한 환경/다양한 사람들과 게임을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눈여겨 보아야할 점은 우리가 트리플 A 게임에 초점을 맞출 동안 여전히 오프라인 코옵/경쟁 게임의 수요는 꾸준히 존재해왔다는 것이다. 갱 비스트나 오버쿡, 크로울 같은 게임들이 스팀에서 나름 신선한 바람을 불러일으킨 것도, 여전히 사람들은 오프라인에서 같은 스크린을 보며 게임을 한다는 것을 반증한다(그리고 오버쿡은 스위치로 이식될 예정이다) 만약 스위치가 이러한 틈새를 공략한다면, 닌텐도는 여타 콘솔들이 범접하기 힘든 독특한 지위를 점할 수 있게 된다:언제 어디서라도, 분위기를 띄우는 용도든 아니면 진지하게 플레이하는 용도든, 스위치가 콘솔로써 취할 수 있는 위치는 매우 유연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스위치는 캐주얼함만이 전부는 아니다. 젤다의 전설:야생의 숨결이 증명한 것은 언제 어디서나 계속해서 이어지는 게이밍 경험이라는 부분이었다. 며칠간의 경험을 통해 느낀 것은 야숨의 위대함과 별개로 스위치라는 기기가 휴대기로써는 비타가 나아가야했었던 방향성(하이엔드 휴대용 기기)을 충실하게 따랐고, 거치기로써는 그럭저럭 납득할만한 수준(모니터에 꽂았더니 그냥 볼만한 화면은 제공해주더라)이었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를 개별적으로 각각의 별개의 경험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유기적인 경험'으로 본다면 매우 흥미로운 부분들이 생기게 된다:기존의 RPG들은 너무나 플레이 시간이 길어서 직장을 가진 게이머들이 플레이하기 힘든 문제가 있었다. 하지만 양쪽 모두 납득할 수 있는 경험을 유기적으로 제공할 수 있다면, 스위치는 그 어떤 콘솔이 제공하지 못했었던 독특한 경험을 제공한다고 할 수 있다. 플레이 타임이 길어지는 것은 기존의 게이머들에게는 큰 제약이었지만, 스위치의 유기적인 경험의 전환(휴대용에서 거치로, 거치에서 휴대용으로)은 그러한 제약을 뛰어넘게 만든다. 스위치 다이렉트에서 스카이림의 게임 플레이가 등장한 것이 수많은 게이머들에게 반향을 불러일으킨 것도 이 때문이라 할 수 있다. 그렇기에 스위치는 케주얼과 코어라는 모든 게이머들에게 매력적으로 다가올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물론 스위치에는 장밋빛 미래만 있는 것은 아니다:일단 베터리 문제가 발목을 잡으며, 두번째로는 휴대기-거치기 사이에 놓여있는 어중간한 성능이 문제가 된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스위치의 문제점은 '움직이지 않는 서드파티'라 할 수 있다. 스위치 다이렉트에서 닌텐도가 보여준 소프트웨어 라인업은 재미는 있지만 안팔려서 사라질 위기에 처한 제작사/프랜차이즈들의 자살 특공대라 불려도 손색없는 수준이었고, 대형 서드파티들은 여전히 꿈적도 하지 않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스위치도 위유 때처럼 '닌텐도 게임 말고는 할 게 없는' 콘솔이 될 가능성이 높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자사 IP를 활용한 게임의 완성도 보다도 서드파티나 인디 게임 같이 다양한 회사들이 플랫폼을 활용하게 만들어서 지속적으로 스위치라는 플랫폼이 운용되게 만드는 것이 스위치 성공의 핵심이라 할 수 있다.



'게임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리뷰]인왕  (0) 2017.03.17
미들어스:쉐도우 오브 워 플레이 영상 및 감상  (0) 2017.03.12
170302, 짧은 이야기  (1) 2017.03.01
[리뷰]디스아너드 2  (1) 2017.02.26
[프리뷰]포 아너  (0) 2017.02.17
잡담/개인적인 이야기



인왕 리뷰 쓰고 있는 중입니다...


'잡담 > 개인적인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170321  (0) 2017.03.19
170317  (0) 2017.03.17
170226  (0) 2017.02.25
170221  (0) 2017.02.21
20170207  (0) 2017.02.07
애니, 만화, 영화 이야기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모든 것을 걸고, 지키고 싶은 소녀를 만났다! 가까운 미래, 능력을 잃어가는 ‘로건(울버린)’은  멕시코 국경 근처의 한 은신처에서 병든 ‘프로페서 X’를 돌보며 살아간다. 세상으로부터 자신을 숨기며 살아가고자 했던 ‘로건’은 정체불명의 집단에게 쫓기는 돌연변이 소녀 ‘로라’를 만나게 되고, 그녀를 지키기 위해 모든 것을 건 대결을 펼치게 되는데…(네이버 영화 시놉시스)


브라이언 싱어가 처음으로 엑스맨 영화는 참으로 시의적절한 영화였다. 2000년대를 앞두고 만화를 원작으로 한 블록버스터의 효시를 쏘았을 뿐만 아니라, 휘황찬란한 세계(동시에 그리고 어딘가 유치한)에 대한 비전, 희망, 그리고 소수자성(브라이언 싱어 자신도 성소수자다)에 대한 고찰을 담아낸 작품이었기 때문이다. 엑스맨 3편에서 주춤하였지만, 엑스맨 퍼스트 클래스와 엑스맨 데이즈 오브 퓨처패스트, 그리고 아포칼립스까지 이어지면서 엑스맨 프랜차이즈는 여전히 살아있다는 것을 스스로 증명하였다. 하지만 엑스맨 프랜차이즈가 예견하였던 휘황찬란한 세계, 소수자들의 자신의 재능을 발휘할 수 있는 시대는 점점 멀어져만 가고 있다. 트럼프가 당선되고, 이민자과 난민은 박해받으며, 여성은 열등하다고 유럽 의회 공식석상에서 발언이 나오기까지 한다. 좋은 시대는 오지 않았고, 희망찬 미래를 말하는 것은 우스워지고 냉소받는 시대가 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여기서 영화 로건은 시작한다.


로건을 만든 맨골드 감독은 3:10 유마행 열차 등의 서부극 영화에 대한 훌륭한 통찰을 보여준 적이 있고, 울버린이라는 케릭터와 서부극 장르라는 두 조합은 독특한 시너지를 일으킨다. 사실, 우리가 울버린의 케릭터를 논할 때 서부극 영화를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폭력에 능하지만 폭력에 이골이 난 마초. 더 나은 세계를 꿈꾸지만 정작 자신이 그 더 나은 세계에는 어울리지 않는 것을 잘 아는 사람. 전통적인 서부극에서 영웅은 그런 사람들이었다. 수색자나 리버티 벨런스를 쏜 사나이처럼, 능글맞은 마초 존 웨인은 자신의 가족과 사랑하는 사람들을 뒤로 한 채, 자연의 풍광 속으로 그리고 역사의 어둠으로 사라져간다. 로건이란 인물도 그러하다:그는 너무나 오래살았다. 오래 살았기에 그는 매사에 냉소적이며 자조적이다. 하지만 그의 마음속 어딘가에는 더 나은 세계를 꿈꾸지만, 그 더 나은 세계 자신의 자리가 없음을 잘 알고 있는 인물이기도 하다. 기존 엑스맨 시리즈에서 울버린이 엑스맨 가족이자 가족이 아닌 묘한 위치를 점하는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또한 많은 사람들의 악평과 달리 더 울버린은 프랭크 밀러의 첫 울버린 코믹스(와페니즈 뽕은 프랭크 밀러 작품에서부터 유명한 부분이었다)를 잘 옮긴 작품이라 할 수 있었다. 맨골드 감독은 어떻게 보면 로건이라는 영화에 가장 적합한 감독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사람들은 로건의 황량한 풍경과 뮤턴트가 모두 사라진 세계를 보고 포스트 아포칼립스를 연상하기도 한다. 포스트 아포칼립스는 종말 이후의 세계를 가정하여 우리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다시금 고찰하는 장르적 전통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로건에는 종말이란 없다. 영화에서 종말은 이미 찾아와서 모든 것을 끝내버렸다:뮤턴트란 소수자들은 이제 이 세상에서 존재하지 않는 취급을 당하며, 뮤턴트의 종말 이후 로건은 죽어가며 찰스는 치매에 걸려 비참하게 죽어가고 있다. 즉, 종말이란 사건을 통해서 로건과 찰스는 변화하지 않았다:포스트 아포칼립스의 핵심은 종말이란 사건을 통해서 우리 내부의 무언가가 변화하고/혹은 숨은 것이 드러나고, 이를 통해 새로운 삶이 시작된다는 것이지만 로건에서 새로운 삶이란 없다. 되새길 본성도, 지켜야할 가치도 없다. 오히려 그들의 삶이란 마치 바스라지기 직전의 먼지, 그 어떤 광기나 감성이 존재할 여유조차 없는 세계다. 그렇기에 이 작품을 포스트 아포칼립스의 영화 전통에 비추어보는 것은 이질적이라 할 수 있다.


우리는 여기서 맨골드 감독의 커리어와 서부극의 전통으로 돌아와야만 한다. 서부극에서 서부라는 공간은 로맨스의 공간이기도 하지만 종종 부조리의 공간이기도 하였다. 예를 들어 몬티 헬먼의 서부극들을 보자:몬티 헬먼은 복수의 총성과 바람 속을 달리다에서 법이 없는 세계인 서부라는 세계를 전제하고 그 속에서 생기는 실존적인 부조리를 고찰하기도 하였다. 몬티 헬먼의 서부극에서 사람들은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자신이 짓지도 않은 죄로 고발당하고, 이해할 수 없는 일에 이끌려 고통받기도 한다. 하지만 그들을 보호해주는 그 어떤 안전장치도 없다. 그들은 스스로를 지킬 수 밖에 없다. 그렇기에 많은 서부극에서 사람들은 서부의 무법을 낭만적으로 바라보면서도 모순적으로 법과 질서가 있는 세계를 꿈꾼다:존 포드의 리버티 벨런스를 쏜 사나이에서 사람들은 지주들에 저항하여 법의 울타리를 만들기를 꿈꾼다. 


로건이 바라보는 세계는 바로 이 서부극의 전통(무법의 세계)에 기반한다. 하지만 서부극이 광활한 황야와 탁트인 풍광 등에 기반하여 길들여지지 않은 자연을 통해 무법의 세계를 바라보았다면, 로건이 바라보는 세계는 도회적이며 삭막하다. 리무진 텍시를 끄는 로건이 바라보는 초반의 세계는 코스모폴리스나 마이클 만 감독의 영화(톰 크루즈의 콜래트럴 같은)을 떠오르게 만드는데, 로건의 세계와 사람들의 세계는 유리되어 있으며 그 속에는 어떠한 감정적 교류와 공유가 존재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 속에서 사회는 뮤턴트를 보호하지 않고, 로건을 무법의 천지로 내몬다. 그렇기에 로건은 삭막한 도회의 무법 천지 속에서 살아남은 단 한명의 늙은 무법자이다. 하지만 그는 싸우기에 너무 지쳐버렸다. 그는 너무 늙었고, 너무 많은 죽음을 목도하였으며, 그리고 마지막으로 죽어가고 있다. 가장 명민했던 자는 치매에 걸리고, 가장 용맹했던 무법자는 초라하게 늙어버렸다.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의 서부극 용서받지 못한 자처럼 인생의 황혼에서 자신의 해왔던 모든 것에 회의를 느끼고 부정하는 단계가 바로 로건이 처한 현실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과정 속에서 로건은 로라와 만나고, 찰스와 함께 유사 가족을 형성하게 된다. 하지만 로라는 보호의 대상이 아니다. 영화 속에서 그녀는 사람을 너무 쉽게 죽인다. 11살 남짓한 어린아이가 사람을 너무나 쉽게 죽이는 세계는 로건과 로라가 보호하는 주체/보호받는 대상을 나누는 것 자체를 무의미하게 만든다. 오히려 로라와 로건은 서로 겪었던 경험과 감정을 공유하는 동등한 주체들이다. 로건은 로라를 보며 과거의 자신을 본다. 그리고 로라는 로건을 보며 인생의 선배를, 자신을 이끌었던 멘토를 바라본다. 그 속에서 늙은 마지막 무법자는 새로운 세계가 올 수 있는 희망을 다시 한번 발견한다. 물론 늙은 무법자는 계속되는 자기 부정과 분노에 스스로 그 가능성으로부터 눈을 돌린다. 하지만 만화책에 나온 좌표를 향한 여정을 통해, 로건은 그 가능성을 조금씩 받아들이기 시작한다.


흥미로운 점은 이 과정에 서부극에서 자주 등장하는 전통에 대한 호감과 신문물에 대한 반감으로 가득 차 있다는 것이다. 여정 중에 만난 전통적인 가족에 대해서 애정 어린 시선을 보여주며, 그들이 전통적인 목장을 운영하고 말을 키우며 심지어는 로데오 대회에도 나가고 도움을 준 이방인들에게 따뜻한 한 끼 식사와 잠자리를 제공하는 친절함을 보여준다. 그리고 그에 대비되는 무인 트럭과 유전자 조작 식물, 로건이 초반에 마주한 황폐한 도시 세계는 그런 따스함이 존재하지 않는 세계로 묘사된다. 하지만 맨골드 감독은 더 나아가서 이를 비정형적으로 비트는데, 이 전통적인 가족이 여타 영화에서 자주 나오는 백인 가족의 표본이 아닌 '아프리카계 미국인'으로 설정되었다는 점이다. 그리고 모든 악역들은 백인 남자들로 구성되어있는 것은 덤이다. 하지만 영화는 X-24가 이 가족들을 모두 죽이고, 로건을 친절하게 맞이해준 가장이 그를 향해 총구를 돌리는 묘사를 통해서 이들이 이 곳에 머무를 수 없다는 것을 명확하게 보여준다. 즉, 로건은 서부극의 전통을 받아들이면서도 이를 뒤틀어서 여타 영화에서 쉽게 찾아볼 수 없는 독자성을 갖게 된다.


또한 서부극과 다르며, 동시에 다른 슈퍼히어로 물에서 찾아볼 수 없는 로건만의 강렬한 개성이 있다:그것은 바로 분노와 고어 묘사이다. 로건의 액션은 모두 분노로 가득차 있고(심지어 로라의 액션도 그러하다), 모든 액션은 다양한 방법의 신체 훼손이 수반된다. PG-13의 틀을 벗어던진 로건의 액션 묘사는 이전까지 울버린이란 케릭터가 갖고 있었던 클로와 힐링팩터라는 특수성을 여과없이 묘사한다. 폭력을 상대에게 수놓고, 고통을 자신의 육체 위에 아로새긴다. 그 고통과 폭력이 로건과 로라를 분노하게 만든다. 그리고 그 분노는 다시 엑스맨 프랜차이즈와 영화 로건을 구분짓게 만들며, 동시에 다시 이어지게끔 만든다:없는 사람 취급 당하는 소수자들은 세계에 대해서 분노를 느낀다. 그 분노가 로건이 거침없이 폭력을 휘두르게 만드는 동력이며, 동시에 그가 오랜 세월동안 자신이 휘두른 폭력으로 고통받는 원인이기도 하다. 로건은 그 분노와 함께 분노만으로 세계를 바꿀 수 없다는 것을 잘 안다.


그렇기에 로건은 끊임없이 로라에게 자신은 만화에 나왔던 그런 사람이 아니라고 이야기한다. 서부극에서 총잡이들이 자신을 바라보는 어린아이들에게 그러했던 것처럼 말이다. 그리고 로라는 로건과의 여정을 통해서 그것을 점점 이해하게 된다. 그의 분노, 그의 고통, 더 나아가 그의 슬픔과 회한까지도. 휴 잭맨은 로건, 울버린이 된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잘 알고 있었고, 그의 X-24 연기를 통해서 동시에 이를 분명하게 드러낸다:악역인 젠더 라이스는 X-24를 가리켜 '어린아이에게 양심을 없앨 수 있었지만, 분노를 심어주지는 못했다'라고 말하였다. X-24의 모습은 그야말로 전성기의 울버린을 연상케하는데, 그의 강렬하고 폭발적인 분노는 로건과 유사하다 할 수 있다. 하지만 로건과 다르게 X-24의 분노는 맹목적이며, 로건은 그러하지 않는다:로건의 분노에는 어딘가 지쳐있고, 그리고 어딘가 회한으로 가득차있는 것을 옆볼 수 있다. 그의 고통에는 그가 겪어온 세월의 무게가 있으며, 그 세월의 무게로부터 로건은 분노로만 휘둘리지 않는 인물이 된다. 휴 잭맨은 X-24와 로건을 모두 연기함으로써 그것이 무엇인지를 정확하게 꿰뚫어 본다.


그리고 영화의 마지막에 로건은 죽는다. 하지만 고통과 분노 속에서 어린 뮤턴트들과 로건은 가족이 되고, 더 나은 세계, 희망을 꿈꿀 수 있게 된다. 지금 같이 희망을 이야기하는 것이 우스운 시대, 거짓말이 대안적 사실이 되는 기만적인 시대에 로건이 이야기하는 테마는 시의적절하고 또한 자칫 감정의 고양으로 이어질 수 있는 신파로 몰아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의 슈퍼히어로 영화들이 시네마틱 유니버스란 한계에 갇혔다면, 로건은 독립된 영화로써 매우 훌륭하며 엑스맨 프랜차이즈 내에서도 최고로 뽑아도 손색이 없는 작품이다. 


영화의 마지막, 로라는 영화 셰인을 인용하며 로건을 추도한다. 마치 서부극 특유의 결말처럼, 영웅은 자신이 왔었던 자연속으로 다시 돌아간다. 왜냐면 영웅은 총성이 울리지 않는 사회에는 더이상 필요하지 않은, 아니 존재해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는 그를 기억할 것이다. 더이상 총성 없는 세계, 분노와 폭력으로 저항할 필요가 없는 세계를 위해 자신의 육체 위에 고통을 아로새겼던 존재, 스스로 영웅이 아니라 되새겼지만 선량했던 사람이었던 로건을.




아 우리는 친절함을 위한 발판을 마련하여 했던 우리는

스스로가 친절할 수 없었구나


인간이 인간을 도와주는

시대가 되거든, 그대여

우리를 생각해다오

관용의 눈으로


-베르톨트 브레히트, 후손들에게




게임 이야기


글쓰다가 막혀서 문단만 남긴채로 블로그에 남겨둡니다. 언젠간 더 좋은 소재와 글이 될 수 있기를.



사람들은 왜 게임을 하는것일까? 게임을 하는 이유, 놀이와 유희에 대한 이유는 오랫동안 철학의 계몽이 닿지 않았던 어두운 영역이라 할 수 있다. 예술의 위상이 드높아지면서 미학이 철학의 한 분파로 들어선지 벌써 500년이 다되어 가는 것을 고려한다면(물론 그 시기 이전에도 예술은 있었고, 미와 추에 대한 개념 자체는 존재했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놀이에 대한 철학적인 고찰은 의도적으로 도외시되었다. 하지만 이 칼럼에서 다루고자 하는 것은 게임과 놀이에 대한 철학적인 심오한 고찰이 아니다. 그냥 간단하게, 게임이란 대체 무엇인가? 이다. 우리는 이미 게임이 '하는 매체'라는 것을 안다. 하지만 행위 자체가 게임을 정의내릴 수 있을까? 우리는 일상생활에서 수많은 행동들과 과업들을 수행한다. 행위라는 관점에서 본다면 모든 것은 게임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우리 모두가 알고 있듯이 게임은 모든 것이 아니다. 우리가 눈여겨 봐야하는 것은 게임이 성립되는 것은 철저하게 현실과 분리되었을 때뿐이라는 것이다. 즉, 게임은 현실이 아니거나 현실에서 이루어질 수 없는 인간의 욕망을 실현하는데 초점을 맞춘다. 그렇기에 게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불가능한 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과 '그 가능성을 실현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대체로 비디오/컴퓨터 게임의 발전사는 게이머가 행할 수 있는 행위 저변을 기술적/문화적으로 넓혀가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자야지...

1
블로그 이미지

IT'S BUSINESS TIME!-PUG PUG PUG

Leviath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