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이야기


*보드 게임입니다. 킥스타트 주소는 여기입니다.


보드게임 자체에 입문한지는 얼마 되지 않았지만, 이야기에 따르면 보드게임에는 두가지 종류가 있다고 한다:하나는 수많은 컴포넌트와 카드, 미니어처, 주사위들로 게임을 압도하는 미국식 보드게임(흔히 아메리칸 트레쉬, 아메트레쉬로 불리는)이며, 나머지 하나는 철저한 전략성을 추구하는 유럽식 보드게임이다. 물론 이러한 보드게임의 성향에는 우열이 존재할 수 없다. 어떤 상황에서, 누구와 플레이하는가, 그리고 자신의 취향은 어떠한가 등을 복합적으로 고려하여 자신과 다른 플레이어들이 최대한 만족하는 게임을 구매하는 것이 게임 소비에 있어서 핵심이라 할 수 있으니까 말이다. 그러나 흥미로운 점은 많은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미니어처와 카드, 주사위 등의 다양한 컴포넌트를 쓰는 게임들은 '전략적'이지 않다고 이야기한다는 것이다. 왜 그런 것일까? 

다양한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근본적인 부분은 컴포넌트의 숫자가 늘어날 수록 게임에 경우의 수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게 되고, 이는 게임이 어떤 내적 규칙에 따라 움직인다기 보다는 그저 무작위의 숫자에 의해서 이리 저리 흔들린다는 인상을 주게 된다는데 있다. 이런 게임들의 대다수는 셔플을 통해 만들어진 카드의 덱과 주사위, 서로 다른 능력을 가진 미니어처라는 확률을 통해서 게임에 다양한 변수들을 만들어내어 마치 게임이 살아있는 것 같은 느낌을 선사하기도 한다. 하지만 잘 셔플된 덱과 주사위가 만들어내는 예측 불가능성은 게이머에게 도저히 납득불가능한 결과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그렇기에 주사위 굴림에 대한 보드게이머들의 극단적인 호오는 얼마나 내가 게임을 통제할 수 있는가라는 부분에 대한 취향 차이로도 해석할 수 있는 것이다. 

딥 매드니스는 그런 점에서 본다면 정말로 전형적인 미국식 보드게임이라 할 수 있다. 문자 의미 그대로 수백개의 잘 만들어진 미니어처와 함께(현재까지 129개의 미니어처가 기본 펀딩에 포함되어 있다), SF와 러브크래프트를 짬뽕시킨 호러 테마, 더 나아가서 몬스터를 조종하는 던전 마스터 없는 완벽한 코옵 게임이라는 점(완전히 게임 내의 로직에 의해서 움직이는 몬스터들)에서 근래 등장하는 보드게임들의 트렌드를 모두 갖고 있는 게임이라 할 수 있다. 심지어 플레이어블 케릭터들을 '조사자Investigator'라고 칭하는 부분이나 광기 시스템이나 클리어하기 어렵게 게이머를 끝까지 밀어붙인다던가 등등에서 판타지 플라이트 게임즈의 아캄 호러나 엘드리치 호러 계열의 게임으로부터 강한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여진다. 즉, 딥 매드니스에는 전혀 새로운 것이라고 할 만한 것이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위 리뷰 영상에서 볼 수 있는 딥 매드니스의 핵심은 다른 게임에서 빌려온 플레이에 있지 않다. 딥 매드니스는 단순히 재밌어 보이는 게임들의 룰을 다 합쳐서 그럭저럭하는 게임을 만드는데 집중하지 않는다. 오히려 중요한 점은 딥 매드니스는 자신이 빌려온 모든 시스템들을 합쳐서 다른 게임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특징을 갖는데 성공했다고 보여진다는 것이다. 이 이야기를 진행하기 위해서는 먼저 딥 매드니스가 강한 영향을 받은 아캄 호러 계열의 게임들을 살펴봐야 한다. 일반적으로 호러 테마의 게임으로 분류되는 아캄 호러나 엘드리치 호러, 광기의 저택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소비하는 '공포' 장르의 대중 문화와는 조금 다르다. 공포를 테마로 다루는 장르가 감상자에게 직접적으로 공포를 주는데 집중하고 있다면(VR을 통해서 호러 게임이 새로운 전성기를 맞이한 점을 보자:많은 수의 호러 콘텐츠들은 기본적으로 충격 요법에 근거하고 있다), 아캄 호러 류의 게임에 있어서 공포는 일종의 분위기에 가깝다. 무언가가 일어나고 있는 으스스한 분위기와 함께, 시시각각으로 플레이어를 옥죄여 오는 다양한 괴물과 상황들이 호러 테마 보드게임을 구성하는 주요한 기제라고 불 수 있다.

그렇기에 그 호러 테마 보드게임 플레이의 핵심은 플레이어는 유능하기는 하지만 강력하지 않다는 점, 그리고 게임을 클리어하기 위해서는 게이머가 얼마나 자신이 받는 데미지나 패널티를 잘 통제하는가라는 데미지 컨트롤 부분에 놓여 있다. 예를 들어 광기의 저택의 경우, 던전 마스터 역할을 하는 어플이 게이머에게 지속적으로 데미지와 난관을 무작위로 부여한다. 어떻게 보자면 코스믹 호러라기 보다는 뜬금포로 터지는 우주적 존재의 변덕에 맞춰서 춤추는 코스믹 슬랩스틱 코미디에 가깝게 느껴지는 광기의 저택은 그러한 난관 속에서도 게임을 이끌어서 목표에 도달해야하고 미스터리를 해결하여 살아남아야 한다는 점에 게임 플레이의 초점을 맞추었다. 그렇기에 시나리오 자체의 완결성을 갖고 있기에 이야기 전개를 모두 알고 있는 플레이어에게도 광기의 저택은 재플레이의 가치가 매우 높다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앱이 던저주는 무작위의 시련들이 플레이버 텍스트들을 통해 으스스한 분위기를 만들어줄 뿐만 아니라, 지속적으로 자신이 받는 데미지를 제공함으로써 게이머가 이것을 관리하여 이기는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딥 매드니스는 호러 테마 게임 특유의 데미지 관리 측면에서 독특한 모습을 보여준다. 딥 매드니스는 맵이 시나리오 진행에 따라서 괴물들에게 집어 삼켜진다던가(결국은 모든 맵이 삼켜지게 된다), 괴물과 근접전을 하면 정신적 피로가 광기로 변화하거나, 삼켜진 맵 위에선 여러가지 패널티를 받는 등의 시스템들을 한데 모아 게임의 기본 난이도를 두 세단계 정도 올려버린다. 또한 딥 매드니스의 몬스터들은 단순하게 플레이어의 정신과 체력에만 피해를 입히는 평범한 몬스터들이 아니다. 각자가 이전의 게임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독특한 매커니즘을 갖고 있다:예를 들어 히스테리아를 보자. 히스테리아는 플레이어 케릭터에게 직접적으로 피해를 입히지 않고, 플레이어 케릭터에게 '빙의'되어서 빙의된 상대에게 피해를 입히는 메커니즘을 갖고 있다. 또한 에픽 몬스터인 내면의 광기는 진입하는 지역을 집어 삼키는 특수효과를 갖고 있으며, 모든 몬스터들은 각자 고유의 방식으로 플레이어 케릭터를 압박한다. 이런식으로 게임은 기본적으로 클리어하기 어려운 구조를 지향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딥 매드니스는 다이스와 덱 셔플이라는 확률의 변덕에 게임 클리어 여부를 걸어두지 않는다. 우리가 흥미롭게 지켜봐야하는 점은 딥 매드니스에서 괴물들이 움직이는 방식이다:괴물들은 각자 고정되어 있는 행동패턴을 갖고 있으며, 게이머와 몬스터가 고정된 순서에 따라서 번갈아가며 게임을 진행한다. 예를 들어 히스테리아는 특수행동 후(빙의된 상대에게 피해를 입히거나 상대에게 빙의된다. 만약 빙의된 상태면 더이상 움직이지 않고 턴을 중지한다), 움직인다 라는 고정적인 패턴을 갖고 있다. 플레이어는 플레이어 카드와 몬스터 카드를 일렬로 수평하게 놓고 토큰을 플레이어-몬스터-플레이어...순으로 나란히 진행함으로써 어떤 몬스터가 언제 어떤 행동을 할지를 명확하게 확인할 수 있다. 즉, 플레이어는 어떤 몬스터가 어떻게 위협이 되는지를 우선적으로 확인한 후, 그에 따라서 전략을 짜고 움직일 수 있다는 것이다. 게임은 예측 불가능한 변수들(주사위, 스폰덱 등등)을 도입하고는 있지만, 몬스터나 직접적인 위협에 대처하는데 있어서 예측가능한 정형성을 부여함으로써 게이머들이 주사위 결과에 따라서 좌지우지되는 것이 아닌 능동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여지를 만들어낸다.

그렇기에 게임은 그저 클리어하기 어렵게 만들어놓은 것이 아닌 '완벽하게 플레이하면 클리어 가능한 게임'을 지향한다고 할 수 있다:광기 카드와 대칭되는 의식Consciousness 카드를 보자. 몬스터를 광기 영향을 받지 않고 처리하거나 등의 일정 조건을 만족하면, 게이머들은 강력한 버프를 얻을 수 있으며 이 버프를 쌓아서 게임 클리어에 방해가 되는 전역 효과를 방지할 수 있다. 즉, 게임을 클리어 하기 위해서는 철저하게 분업하고 협동하여 완벽하게 플레이를 해야 한다. 그것이 바로 게임이 의도하고 있는 흐름인 것이다.

물론, 이러한 딥 매드니스의 지향점은 동시에 모든 시스템이 얼마나 유기적으로 흘러가는가가 관건이라 할 수 있으며, 실제 게임 플레이를 해보기 전까지는 이 게임이 성공한다/실패한다를 속단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분명한 점은 딥 매드니스는 어디선가 본 것들을 잔뜩 끌어왔음에도 자신만의 독특한 색체를 갖고 있다는 점에서 상당히 흥미로운 도전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