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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 만화, 영화 이야기



흑백 영화는 천연색을 다룰 수 없었던 구세대의 기술적 한계로 인한 결과물이었다. 하지만 그 기술적 한계로부터 우리는 여지껏 보지못했었던 새로운 미학적 세계를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천연색으로 다양한 디테일을 보여주는 세계와 달리, 흑백영화의 모노톤으로 인해 세계는 단순화된다. 마치 만화가 데포르메를 통해서 현실을 왜곡하는 것처럼, 흑백영화도 현실을 왜곡한다. 하지만 그러한 왜곡 속에서도 위대한 흑백영화들에서는 다른 대중문화에서 찾아볼 수 없는 기품을 느낄 수 있다. 이는 빛과 어둠이라는 이원화된 색을 통해 다른 매체에선 찾아볼 수 없는 단순한 아름다움을 묘사하기 떄문이다:페드로 코스타가 존 포드의 영화를 두고, 중요한 것은 어떻게 단순해질 것인가? 라고 평한 적이 있듯이, 흑백영화의 핵심은 흑백이란 이원화된 표현으로 얼마나 단순하게 세계를 묘사할까에 있다. 그리고 그런 점에서 본다면 신도 카네토의 영화는 흑백영화의 정수를 정확히 꿰뚫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신도 카네토의 벌거벗은 섬은 아름다움의 백미라 일컬을 수 있는 작품이다. 영화는 단순하다:외딴 섬에 사는 일가족의 일상이 4계절을 따라서 진행된다. 어떠한 극적 사건도(물론 극의 마지막에 큰아들의 죽음이 나오기는 하지만), 대사도 영화속에선 드러나지 않는다. 불연속적인 컷들의 삽입을 통해서 영화 내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은 마치 단조롭게 반복되는 것처럼 묘사되며, 하나의 사이클을 이루는 것처럼 묘사한다:초반에 물을 길어서 섬으로 나르는 오프닝 시퀸스의 경우, 이를 단적으로 드러내는데, 카메라를 향해서 걸어오는 부부를 묘사하는 장면을 '겹쳐지게 배치'함으로써 시간적으로 반복되는(요즘 유튜브나 스트리밍 영상에서 발생하는 일종의 타임랙이라 봐도 무방하다) 듯한 느낌을 부여하게 만든다. 이는 영화 곳곳에서 사용되는 표현 방식인데, 이러한 표현을 통해서 영화는 생과 죽음, 사계절, 슬픔과 기쁨이 평범한 일상 속에서 반복되는 모습을 만들어낸다. 하지만 그것은 단순히 반복되는 것이 아니다. 신도 카네토는 그러한 반복되는 일상의 고됨속에서도 묵묵히 버텨내는 활력을 아름답게 표현해내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바로 '땀'에 대한 묘사이다. 신도 카네토의 영화는 땀의 번들거리는 질감을 정확하게 표현할줄 아는데, 이는 흑백영화라는 매체의 특성도 크게 한몫한다고 할 수 있다. 햇볕에 반사되어 번들거리는 땀의 질감은 명암이 뚜렷한 흑백영화에 있어서 인상적인 시퀸스를 만들어낸다. 그리고 영화에서 땀의 번들거리는 질감은 영화에 일종의 '긴장감'을 불어넣는다:가령 덤불속의 검은 고양이의 오프닝 시퀸스를 예로 들어보겠다. 탈주무사들이 민가에 들어가서 여인들을 강간하기 직전의 긴장을 깔아두는 이 시퀸스에서 땀은 동물적인 불쾌함과 육체적인 긴장감을 드러내는 표현 수단으로 활용된다. 영화 내내 시종일관 땀에 절은 듯한 육체를 묘사하는 오니바바에서는 전쟁으로 피폐해져버린 세상과 그 속에서 동물적인 본능만 남은체로 살아남는 사람들의 정신세계를 묘사하는 중요한 표현수단이기도 하다.


벌거벗은 섬에서 땀은 힘든 일상과 인물 사이의 긴장감을 불어넣는 표현수단으로 활용된다. 주인공 부부는 물도 흐르지 않는 황폐한 섬에 나룻배로 물을 길어날라서 작물을 기른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영화는 단 한마디의 대사를 사용하지도 않지만, 육체노동의 고됨을 땀이라는 질감(부모세대의 표현을 빌리자면 건강한 노동을 통해 흘린 건강한 땀)과 묵묵히 일하는 주인공 부부를 통해 묘사함으로써 노동과 육체 사이의 긴장감을 불어넣는다. 만약 이러한 땀의 질감이 컬러 영화였다면 가능했을까? 아니다. 땀이 흐르는 육체로 위로 빛이 내리고, 빛이 부서져서 반사되어 단조로운 세계에 약간이지만 명확한 디테일을 추가하는것 만으로도 영화는 관객들에게 충분히 강한 인상을 남긴다. 컬러 영화였다면, 이 작지만 섬세한 디테일은 다른 디테일과 정보들에 압살되어 사라졌을 것이다(물론 그만큼 선택할 수 있는 가능성도 늘어나겠지만) 이런 점에서 본다면 신도 카네토는 무엇이 흑백영화의 정수인지를 정확하게 꿰뚫어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벌거벗은 섬이나 오니바바, 덤불 속의 검은 고양이를 통해서 신도 카네토가 주목하는 부분은 바로 주목받지 못하는 서민의 삶, 그중에서도 특히 여성의 삶이다. 벌거벗은 섬에서 섬에서의 삶은 단조로운 형태로 반복되지만, 그 주변을 통통배가 지나가며 물고기를 팔러 육지에 왔을 때 보여지는 화려한 도시의 문물 역시 프레임 내로 들어온다. 하지만 영화는 그러한 것들에 시선을 돌리지 아니하며, 묵묵히 단조롭고 반복적인 삶에 초점을 맞춘다. 흥미로운 점은 영화가 단순한 삶에 대한 예찬을 문명이란 삶의 양식을 깎아내림으로써 이루어내지 않는다는 것이다. 오히려 영화는 주인공 부부가 처한 현실을 관조하며, 주변에 편의에도 불구하고 힘든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조용히 지켜볼 뿐이다. 


영화에서 가장 눈여겨 봐야할 인물은 주인공 부부의 아내이다:영화는 부인의 모습을 많이 다루기도 하지만, 영화 내에서 가장 희노애락이 분명하게 들어나는 인물이 바로 아내이기 때문이다. 남편은 자기 자신의 감정을 억누르는 묘사가 많은 반면, 부인은 자신의 감정을 대사없이 다양한 표정을 풀어낸다. 흥미로운 점은 오니바바나 덤불 속의 검은 고양이에서도 여성이 주인공으로 나온다는 점인데, 남성적인 세계(또는 부조리한 세계)에 피해자(덤불 속의 검은 고양이) 또는 주변인(오니바바)으로 등장하여서 가부장적인 세계나 시선이 갖지 못하는 인물(여성)들의 삶의 편린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문명과 문명 너머의 대비(벌거벗은 섬)와 무사와 평민의 대비(오니바바와 덤불 속의 검은 고양이), 그리고 더 나아가 여성의 삶과 남성의 삶의 대비는 신도 카네토 영화에 있어서 중요한 모티브로 보여지며 흑백영화라는 흑백의 세계에 걸맞는 세계의 접근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게임 이야기



요괴워치 시리즈를 관통하는 핵심적인 키워드이자 주목해야하는 요소는 가챠로 대변되는 확률이라 할 수 있다:여타 일본 게임들이 새로운 시스템, 자신만의 독창적인 시스템을 만들어내는데 주력하였다면 요괴워치 시리즈는 이미 검증되었던 시스템이나 게임의 룰을 사용하거나 게임 자체를 단순하게 만드는데 주력한다. 요괴워치의 본가라 할 수 있는 넘버링 타이틀들(1편, 본가, 원조, 진타, 스시, 덴푸라)의 경우는 커멘드 액션식의 전투를 탈피해서 누구나 편하게 즐길 수 있는 자동전투 기믹을 탑재하였으며 . 요괴워치 버스터즈는 본편의 미니게임을 확장하며 탱커, 힐러, 딜러, 레인저 식의 역할 구분에 기반한 MMORPG 식의 전투를 가볍게 체험할 수 있게 만들었다. 요괴 삼국지는 삼국지 식의 땅따먹기를 간략화하여 간단하게 즐길 수 있는 SRPG를 만들었다. 요괴워치 시리즈들 각 작품의 장르는 모두 다르지만 공통적으로 '누구나 즐기기에는 어렵지 않고 단순하다'라는 점은 꼽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요괴워치 시리즈에서 눈여겨 봐야하는 점은 서로 다른 장르적인 특색을 띄고 있더라도 모든 작품이 공유하는 한가지 특성이 있다는 점이다. 그것은 바로 일일 컨텐츠 및 가챠 시스템이라 할 수 있다. 모든 요괴워치 시리즈들은 일단위로 회수가 리셋되는 가챠로 좋은 요괴나 장비 등을 구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매커니즘은 이미 모바일 게임이나 온라인 게임 등에서 흔하게 찾아볼 수 있는 시스템이자, 게임의 도박화 문제 등을 야기하는 요소로 비판받아왔던 문제적인 시스템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흥미로운 점은 요괴워치 시리즈가 '가챠'를 도입했다는 이유만으로 여타 모바일이나 온라인 게임들과 같이 동일하게 비판받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물론 요괴워치 자체가 게임 내 과금 요소나 유료 DLC가 없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중요한 점은 이 가챠 시스템이 요괴워치를 계속 플레이하게 만드는 동력이 된다는 점이다.

가챠 시스템을 간단하게 정의하자면 확률에 기반한 보상 체제라 할 수 있다. 게이머는 어떤 보상이 나올지 전혀 모른다. 하지만 노력과 별개로 그러한 확률이 게이머를 유혹한다. 많은 게이머들이 가챠 시스템이 노력에 기반하지 않기 때문에 불공정함과 과도한 지출을 유도한다고 비판하지만, 역으로 뒤집어서 본다면 게이머가 게임에 큰 인풋을 투입하지 않더라도 결과를 기대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이 일확천금의 꿈이(허황되었든 허황되지 않았든 간에) 게이머를 계속해서 가챠를 돌리게 만드는 원동력이 되며, 요괴워치 시리즈는 가챠는 게이머에게 계속 희귀한 재화를 공급하여 게이머가 계속 게임을 하게 만드는 유인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요괴워치에서 주목할만한 부분은 게임의 전반에 가챠와 같은 확률의 유인을 곳곳에 심어두었다는 점이다.


요괴워치 시리즈에는 스토리 진행 이후는 하루에 한 번만 소비할 수 있는 엔드 컨텐츠가 메인이 된다. 그리고 이 콘텐츠들은 게이머에게 숙련된 기술을 요구하지 않는다:이러한 이벤트들의 대부분은 일일 한정으로 요괴와 전투하거나 일정 스테이지에 들어갈 수 있는 단순한 형태에 불과하다. 하지만 이러한 일일 소비 컨텐츠에서 게이머가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는 확률은 극히 드물다(물론 일일  반복하면 할수록 그 확률은 올라간다고 한다) 하지만 요괴워치 시리즈는 이렇게 '일단위로 반복할 수 있지만 단순하고 보상을 얻을 확률은 극히 드문' 컨텐츠를 대량으로 도입함으로써 게임을 일단위로 반복해서 플레이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한다. 즉, 요괴워치 시리즈의 핵심은 게임 자체의 단순함과 함께 보상을 얻을 확률의 절묘한 조정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요괴워치 시리즈의 이러한 특성은 어떤 의미에선 게임의 반복적인 플레이를 통해서 자원과 장비를 획득하고 이를 통해 더 어려운 도전을 할 수 있는 부분은 확실히 MMORPG를 연상케한다. 하지만 MMORPG와 다른 점은 바로 요괴워치의 직관성과 단순성이다:게임 자체가 저연령층도 즐길 수 있을 정도로 단순하게 구성되어 있는 요괴워치는 반복되는 게임을 통해 게이머의 기술을 테스트하는 것에 방점을 찍기보다는 확률에 근거한 새로움을 주어 게이머를 자극한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요괴워치 시리즈는 여타 게임에서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포지션을 갖고 있는 게임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게임 이야기



아 글쓰기 힘들다...


게임 이야기




자연과 평화를 사랑하는 바스티온이 그래서 인 게임에서 하는게 무엇인가요?

당연히 가장 잘하는 일이죠:

사람을 옴닉의 전기톱으로 갈아버리는 거요.




잡담/개인적인 이야기



컴터 키면 체감 온도가 4도 정도 올라가는데


그거 때문에 게임을 못해!


글을 못써!


영화는 보는데 당장 글은 못써!


그래서 땜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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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이야기



이볼브에 대해서 할 이야기는 정말로 많다:우리는 이볼브가 게임 자체의 완성도 측면에서 실패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실패했음에도 이볼브가 사람들 사이에서 계속해서 회자되는 것은 이볼브라는 게임이 갖고 있는 독특한 특성 때문일 것이다. 4명이 힘을 합쳐서 한명의 몬스터를 사냥하고, 거대한 맵을 쉴새 없이 쫒는 추격 페이즈와 거대한 스케일의 전투가 이볼브에는 모두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나온지 1년 반이 지난 지금까지도 이볼브는 수많은 사람들이 인상적으로 기억하는 게임이다. 물론 게임 자체가 갖고 있는 문제가 엄청나게 많기 때문에 하는 사람만 하는 게임이 된지 오래지만, 한번이라도 이볼브에 빠진 사람은 게임을 하지 않더라도 이볼브에 대해서 호의적인 평가를 주고 있다. 그만큼 이볼브라는 게임이 최근 게임들에서 찾아보기 힘든 독특한 매력을 갖고 있다는 것은 부정하기 힘들다. 


이볼브 스테이지 2는 이볼브의 F2P 버전이다.. 원래 패키지 게임으로 발매된 게임이 F2P로 전환한 사례는 자주 있는 일은 아니지만, 눈여겨 봐야할 점은 이볼브 스테이지 2는 게임 자체의 벨런스와 진행 방식을 근본적으로 뜯어고쳤다는 것이다. 이제 게임은 20분 내외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10분 내외에서 종료되며, 아레나는 누구나 칠 수 있고, 리스폰 주기는 더욱 빨라졌으며, 추격은 더욱 쉬워졌다. 기존의 게임이 심리전에 기반한 장기전에 가까웠다면 이제는 헌터들은 끊임없이 몬스터를 쪼고, 몬스터는 끊임없이 도망다니는 단기전의 승부 양상으로 변화한 것이다.


실제 이볼브 스테이지 2는  기존의 이볼브 게임 플레이에서 가장 재밌는 부분만 압축해서 넣었다는 인상이 강하다:헌터측에선 거대한 몬스터가 내뿜는 불길이나 전기를 피하면서 싸우고, 몬스터는 온갖 최첨단 기기로 무장한 헌터 4명을 상대로 소모전을 벌이는 양측 모두에게 필사의 전투다. 스테이지 2는 전투의 주기를 짧게 하기 위해서 추격을 쉽게 하고(트래퍼는 추적기술과 별개로 이제 나침반으로 상대 몬스터의 위치를 확인할 수 있게 되었다), 누구나 돔을 칠 수 있게 만들었는데, 과거 전투 한번 하지 못한 채 3단계가 된 몬스터에게 전멸 당하는 일이 많았던 과거의 게임을 생각하면 많은 부분 발전하였다고 평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더 흥미로운 점은 스테이지 2에 와서 비로소 명확해진 것은 바로 터틀락이 스스로 무언가를 만들었는지 전혀 모르고 있다는 사실이다. 창작자가 자신이 무엇을 만들었는가에 대해서 전혀 파악하지 못하는 일은 그렇게까지 희귀한 일은 아니다. 창작물은 창작자의 손을 떠난 시점, 아니 창작되는 그 순간에도 주변환경과 교류하며 새로운 맥락들을 만들어낸다. 중요한 것은 창작자가 이 맥락에 대해서 취하는 태도이다:가장 뛰어난 창작자들은 그 맥락들이 들어와서 자리잡을 수 있는 여백을 마련해준다. 또는 블리자드나 닌텐도처럼 자신의 창작물에 대한 철저한 통제(의도된 방향으로만 즐길 수 있는)를 깔아둘수도 있다. 창작자는 창작물의 모든 것을 만들지 않지만, 많은 것에 영향을 줄 수 있다. 그런 점에서 보았을 때, 터틀락은 참으로 기묘한 회사이다. 터틀락이 이볼브라는 게임을 만들었을 때는 어떤 자신감이 있었다:게임 길이를 20분으로 늘리고, 몬스터와 헌터가 20분 내내 전투 한번 없이 숨바꼭질을 벌이는 게임을 기획-개발-QA-심지어 베타테스트까지 거쳤음에도 불구하고 우직하게(?) 밀어붙인 점은 터틀락의 이볼브에 대한 자신감을 드러내는 부분이다. 


하지만 모든 게임의 프로토타입들이 그러한 것처럼 이볼브는 당연히 역사속으로 사라졌어야 했었던 실패작이었다. 게임이 시대를 앞섰던 혹은 4대 1(경쟁-코옵의 혼재)이라는 게임 발상 자체가 근본적으로 결함을 갖고 있었던 것일지도 모른다.(물론, 이볼브가 재시한 이러한 발상의 매력은 여전하여, 데드 바이 데이라이트라는 작품 등으로 이어지기도 하였다) 모든 위대한 실패작들이 그랬듯이 그들은 역사의 어느 곳에 발자취를 남기고 사라지거나 더 나은 후속작을 만들었어야 했었다. 그러나 터틀락이 선택한 것은 기존 작품에 생명유지장치와 심폐소생기를 부착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볼브의 문제는 게임이 재미가 없다는 것이 아니라 게임이 직관적이지 않다는 것이기에 게임의 근원부터 뜯어고치지 않으면 이 문제는 계속해서 반복될 것이었다:어째서 몬스터는 처음에 헌터를 피해서 도망다니고, 헌터는 왜 몬스터를 쫒는가? 몬스터는 어째서 최종진화를 하면 발전기를 때려부숴야 하는가? 이를 설명하는 게임 내의 서사적 장치는 희박하며(흥미롭게도 케릭터나 게임 내의 이야깃거리는 짜임새 있게 갖춰져 있다-잡담 같은), 게임의 진행은 직관적이지 못한 복잡한 룰들에 기반하고 있다.


이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은 패치와 베타 패치로 이어지는 터틀락의 장대한 삽질의 내역이다:게임은 거의 조선시대 환국정치 수준에 가까운 벨런싱을 보여주고 있어서, 어떤 케릭터가 강케가 되면 지속적인 너프로 쓰레기가 되었다가 다시 지속적인 버프로 강케가 되는 일들이 비일비재 하며 헌터와 몬스터의 승률은 집단과 플레이 양태에 따라서 극단적으로 움직이는 등 게임 경험 전체를 아우르는 통일된 경향성이 없다고 할 수 있다. 즉, 이볼브의 가장 큰 문제는 각각 맡은 역할(헌터에서 몬스터까지)을 모두 다 잘 수행해야 하는데, 5명이 모두 잘하는 게임을 만나기란 하늘에 별따기에 가깝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터틀락의 벨런싱은 기준되는 집단이 없이 그 변동폭이 매우 크다고 할 수 있으며, 터틀락이 자신들이 무슨 게임을 만들었는지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갈팡질팡하고 있다는 것을 반증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물론 스테이지 2의 전반적인 게임 템포는 훌륭해졌다:기존의 게임 시간을 20분에서 10여분 남짓으로 줄인 점 등은 게임에 대한 고심의 흔적이 드러나는 부분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근원적으로 이볼브는 죽었어야 하는 작품이었다. 죽어서 그 시체를 토양으로 삼아 새로운 작품을 만들어냈어야 했었다. 터틀락이 스테이지 2를 만든 것은 어찌보면 자신들이 만들어낸 작품에 대한 애정과 헌신, 자신감이 묻어나오는 부분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그것을 차마 죽이지 못하는 두려움을 느낄 수 있다. 스테이지 2 역시도 이볼브 원판과 유사하게, 아니 조금 더 낫지만 다를바 없게 흘러갈 것이다:사람들은 흥미에 게임을 잡아보겠지만, 오래 붙잡을 수는 없을 것이다. 게임은 직관적이지 못하고, 재밌는 경험을 위해서 갖춰져야 하는 허들이 너무 높으니까. 그리고 결국은 하는 사람들만이 남게 될 것이다. 차라리 이볼브 2를 위해서 이볼브를 빠르게 죽였어야 했었다. 그것이 스테이지 2에 대한 가장 합당한 평가일 것이다.



게임 이야기


하 주말을 또 이렇게 땜빵으로 보내다니...


게임 이야기


*요괴워치 시리즈의 전반적인 흐름에 대해선 요괴워치 2 진타 리뷰를 참조해주시길 바랍니다(http://leviathan.tistory.com/1923)



요괴워치라는 프랜차이즈의 강점은 주소비계층의 눈높이와 일상에 맞춰서 콘텐츠를 구성했다는 점에 있다:포켓몬스터가 모두가 꿈꾸는 비일상(위대한 모험)을 토대로 프랜차이즈를 구성하였다면, 요괴워치는 일상 속에 숨어있는 비일상에 초점을 맞춘다. 여름방학이나 자동차 밑, 쓰레기 더미 등의 일상에 요괴를 숨어있고 온갖 비일상들의 원인인 요괴와 소년이 서로 친구가 된다는 콘텐츠들은 주 소비계층인 어린이 뿐만 아니라 다양한 사람들을 매료시키기에 충분하였다. 또한 요괴워치 게임은 포켓몬스터의 대척점에서 인상적으로 세계를 창조한다:도로를 따라 내가 모르는 세계를 탐험하는 비일상으로써의 여행을 강조하는 포켓몬스터의 이야기와 다르게, 요괴워치는 사쿠라 시티라는 하나의 공간에서 다양한 놀거리를 제공함으로써 일상과 비일상이 혼재된 공간을 즐기게 만든다. 그렇기에 혹자는 요괴워치의 게임 플레이 스타일을 오픈월드에 비교하기도 한다. 물론 오픈월드의 모호한 정의와 요괴워치의 게임 콘텐츠는 요괴워치가 오픈월드 게임처럼 보이게 만든다. 하지만, 하나 하나의 심도 있는 콘텐츠보다는 다양한 할거리를 반복적으로 하게 만들어서 게임을 계속적으로 플레이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요괴워치는 MMORPG에 가깝다. 같은 제작사의 판타지 라이프나 버스터즈 같은 게임에서 MMORPG의 기믹을 들고 온 점이나 판타지 라이프를 만들며넛 히노 에이지가 울티마 온라인을 언급한 점들에 비추어 본다면 이는 기정사실이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요괴워치 3 스시/덴푸라는 요괴워치 프랜차이즈의 최신 넘버링 타이틀이다:요괴워치 2 진타 이후 요괴 삼국지나 버스터즈 같은 작품들을 내면서 프랜차이즈의 곁가지를 늘리는데 초점을 맞추었다면, 요괴워치 3는 일본이라는 지역 시장을 넘어서 미국과 세계로 뻗어나가기 위한 포석을 둔다. 무대를 미국과 일본으로 나누어서 확장하고, 요괴워치 진타와 비교했을 때 그 몇배에 달하는(문자 의미 그대로!) 콘텐츠를 게임에 추가하였으며, 이야기의 흐름이나 구도도 대대적으로 손을 보았다. 하지만 결론만 놓고 본다면 요괴워치 3는 너무나 많은걸 추가하고 변화를 시도해서 문제인 작품이 되버리고 말았다.


요괴워치 3는 이건희 삼성 회장의 마누라 자식 빼고 다 바꾸라는 말을 충실하게 실현한 게임처럼 느껴진다:게임은 사쿠라 시티라는 게임의 중요한 배경과 요괴들을 제외하고 거의 모든 것을 바꿔버렸다. 가장 큰 변화점은 '전투' 시스템일 것이다. 기존의 요괴워치가 룰렛 위에 6마리의 요괴를 배치하고 룰렛을 좌우로 돌려서 교체하는 시스템이었다면, 3편은 3X3의 바둑판 위에서 요괴들을 자유롭게 배치하고 싸우는 형태로 바꾸었다. 너무 갑작스레 생긴 변화이라 비교대상을 찾기 힘들어서 당혹스러운 변화지만, 요괴워치 3의 전투 시스템은 이전 시스템보다 더욱 전술적인 부분을 강화한 쪽으로 나아갔다. 한 명이 공격적인 행동을 하면 좌우의 요괴들이 추격을 해서 공격을 하거나, 요괴를 다른 요고의 전열에 배치해서 방어하는 등의 시스템은 배치나 조합면에서 전작들에 비해 더 숙고하고 움직일 것을 요구한다. 하지만 흥미로운 점은 이러한 큰 변화에도 불구하고 게임플레이의 본질은 여전히 '요괴워치 스럽다'라는 것이다:게임이 전에 비해서 복잡해지긴 했지만, 게임은 여전히 자동 전투로 진행되며, 불리한 효과를 주는 바닥을 피하거나 위치를 바꾸거나 유리한 아이템을 집어먹는 등의 행위들은 터치팬 하나로 진행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또한 전작에 비해서 요괴의 스킬셋이 다양해졌다는 점 역시 눈여겨 볼만한 사항이다. 전작들에서 요괴의 스킬셋은 단조로운 부분이 많았지만, 이번작에서는 위치와 이동에 대한 시스템의 변화로 인해서 이와 관련된 스킬들이 대거 생겨났다. 눈여겨 볼만한 것은 장판기(지속적으로 데미지를 주는 장판을 설치)나 적을 강제로 이동시키는 공격, 추격과 방어에 영향을 주는 스킬셋들이다. 이러한 스킬들은 화력으로 상대를 녹이는 것이 아닌 다양한 운영을 가능케 하는데, 예를 들어 현재 본인의 파티셋의 경우 장판을 깔고 상대를 강제로 움직이게 만드는 요괴를 투입해서 지속적으로 장판을 밟게 만들어 말려죽이는 전략(닥터 카게마루, 슈텐도우지, 도지라)을 구사하고 있으며, 요괴의 조합에 따라서 더욱 다양한 전략을 구사할 수도 있으리라 본다. 전작이 단순한 기본 전투 시스템 떄문에 전략 자체가 단순하게 흘러갔었다면, 요괴워치 3는 기본 시스템을 뜯어 고치고 그 내부의 디테일을 새롭게 개선하고 발전하였다.


요괴워치 시리즈의 핵심 콘텐츠는 전투와 요괴 친구 수집이다. 그리고 요괴워치 시리즈는 많은 부분을 단순하지만 압도적인 숫자의 미니 게임 콘텐츠로 이를 커버한다:낚시나 벌레 채집, 국기봉 오르기, 황금알 닦기, 1일 요괴 전투, 1일 이벤트 등등 게임은 게이머에게 단순하지만 지속적으로 반복해서 시도할 수 있는 콘텐츠를 제공한다. 그렇기에 요괴워치 시리즈는 '엔딩 이후에 시작되는 게임'의 전형이라 할 수 있으며, 요괴워치 3는 전작의 콘텐츠를 양과 질에서 곱절 수준으로 늘려버린다:게임 내에서 게이머가 갈 수 있는 공간은 전작의 2배 수준이며(미국과 일본), 각각의 맵에서 즐길 수 있는 콘텐츠의 분화, 랜덤 이벤트의 강화 등 전작의 게임 콘텐츠들 상당수를 계승하면서 추가적인 콘텐츠를 보강한다. 요괴워치 3는 요괴워치 시리즈 내에서도 최대의 분량을 보여줄뿐만 아니라, JRPG의 역사상 손에 꼽을 정도로 끔찍하게 많은데다가 질적으로 우수한 콘텐츠를 보유하고 있다. 심지어 엔딩 이후 무료 업데이트 내역을 공개하는 사상초유의 짓거리를 벌이는 등 게임은 콘텐츠의 확장과 놀거리에 대해서 질릴 정도의 집착을 보인다. 물론 하드코어한 게이머의 입장에서 이러한 변화점은 반길만한 사항이긴 하다.


이렇게 본다면 요괴워치 3는 정말로 역사에 길이 남을 JRPG 처럼 보이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가장 큰 문제는 스토리와 게임 내의 동선 문제이다:요괴워치 3의 스토리는 전작의 단순하지만 흡입력 있는 이야기를 너무 성의없게 늘려놓았다. 전작이 요괴와 관련된 유쾌한 이야기들을 전연령이 공감할 수 있게 일상 속에서 풀어내었다면 본작은 UFO와 미스테리에 대한 소재를 이야기의 중추로 잡는다. 하지만 이 미스테리와 UFO에 대한 이야기는 요괴워치 시리즈에서 찾아볼 수 있는 일상 속의 비일상이란 느낌보다는 비일상 그 자체에 가깝기 때문에 어딘가 붕떠있다는 느낌이 강하다. 이는 요괴워치 3가 게임의 배경을 미국과 일본, 그리고 이나호와 케이타로 이야기를 양분한 점에서 문제가 심화된다:이야기의 배경과 소재는 다양해졌지만, 이나호는 일본 서브컬처(아니메, 오타쿠, 아이돌 문화 같은)에 이야기가 편중되고 케이타와 맥은 이야기에 전개와 케릭터 배분에 실패한 느낌을 지우기 힘들다. 요괴워치 시리즈 특유의 유쾌하지만 공감이 가는 이야기(서브컬처 네타는 덤)는 요괴워치 3에서 많은 부분 희석되며, 네타적으로 재밌는 개그만이 게임을 가득 채우게 된다.


그리고 공간이 넓어지면서 레벨 5의 고질적인 엉망 진창인 동선이 다시 문제로 대두된다:이전 요괴워치 시리즈가 사쿠라 시티라는 공간 내에서 오가면서 이런 저런 일들을 해결해나가는 과정이었다면, 이번작에서는 미국과 일본을 오가면서 필수적인 이야기를 전개하다 보니 이야기 진행은 루즈해지고 몰입감이 떨어진다. 흥미로운 점은 요괴워치 내의 세계는 레벨 5만의 독특한 색체가 입혀져서 매력적으로 느껴지지만, 정작 그 세계 내에서 어떻게 움직일 것인가를 설정하는 부분에서는 자신이 만들어낸 공간을 십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오히려 메인 스토리가 끝난 이후 게임은 자신의 진면목을 드러내는데(매력적인 공간의 구성), RPG에서의 스토리가 차지하는 비중을 생각한다면 요괴워치 3의 지루하고도 산만한 스토리와 게임 내 스토리 동선은 치명적인 단점으로 꼽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요괴워치 3의 가장 큰 문제는 게임의 완성도 보다 게임의 정체성의 변화이다:이전까지의 요괴워치 시리즈들은 '어느정도 하드코어 게임의 네타를 갖고 있음에도 모두가 즐길 수 있는 게임'이란 정체성을 갖고 있었고, 프랜차이즈의 모토도 '어린아이의 눈높이에서 바라본 일상 속의 비일상'을 잘 살리고 있었다. 하지만 요괴워치 3는 게임으로서 콘텐츠의 양적 질적 확장에 치중하다 보니 기존의 자신이 갖고 있었던 장점들을 이상하게 뒤섞어 버리게 된다. 어째서 엑소시스트나 X파일, 스티븐 잡스나 마크 주커버그 같은 '어른들이나 이해할법한' 네타들이 게임 내에서 등장하는가? 이나호 파트에서 생기는 과도한 서브컬처에 대한 비중은 또 어떠한가? 요괴워치 3는 게임으로서는 어떨지 몰라도 프랜차이즈 전체의 정체성에 비추어 본다면 제작자들의 사심이 너무나 들어가버린 작품이라 할 수 있다. 물론, 이전의 요괴워치에서도 그런 어른들의 '사심'이 있었고, 그것이 애니나 게임에서 긍정적인 요소로 영향을 준 점은 부정할 수 없다. 하지만 요괴워치 3는 너무 과도하게 나아갔다. 어린이들이 스토리에 몰입하여 엔딩까지를 즐긴다는 게임은 이 과정을 이전의 작품들처럼 단순하고 직선적으로 진행하게 만들었어야 했었다. 어른들이나 이해할 수 있는 네타는 스토리 바깥으로 빼냈어야 했었다. 하지만 레벨 5는 자신들의 성공에 너무나 도취된 나머지 소비자에게 자신의 취향을 강요한 꼴이 되어버리고 말았으며, 이는 부진한 소비자 평가와 출고 소화율이란 결과로 나타내게 되었다.


물론 요괴워치 3는 전혀 재미없는 작품이 아니다:게임으로서 요괴워치는 훌륭하다. 하지만 유념해야하는 점은 요괴워치 3는 요괴워치 프랜차이즈의 일부분이지 단독 게임이 아니라는 점이다. 레벨 5는 요괴워치 3 이후로 요괴워치 시리즈에 대한 새로운 변화나 시도 보다는 기존 작품을 스마트폰으로 이식하거나 등의 기존의 프랜차이즈를 점검하는 쪽으로 나아가는 점이 요괴워치 3에서의 폭주를 가라앉히고 프랜차이즈 정체성을 되돌아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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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은 무덥고 야근은 계속하고 글은 안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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