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이야기




새로운 것은 어디에서부터 오는가? 우리는 새로운 아이디어들이 우리가 알지 못했던 어느 영역에서부터 등장한다고 생각한다:하지만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다. 새로운 것들은 전적으로 과거의 것들이나 우리가 익숙했던 무언가에 기반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새롭다 라는 것의 정의는 어떻게 본다면 현재적인 것이 아니라 '역사적'으로 봐야한다. 이것이 왜 새롭고 왜 이제서야 다시 재조명을 받았는지, 왜 과거에는 이런 것들이 성공하지 못했었고, 왜 현재에는 이런 것들이 성공할 수 있었는지를 생각해봐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스플래툰은 정말로 새로운 게임이며, 동시에 닌텐도가 만들어내는 '새로움'의 역사성에 대해서 고찰해볼 수 있는 좋은 게임이다.


스플래툰은 물총으로 벽면과 바닥을 칠하여 얼마나 바닥과 벽면을 칠했느냐에 따라서 승패를 결정하는 일종의 땅따먹기형 게임이다. 물론 벽면과 바닥을 칠하는 와중에 플레이어는 서로를 쏴서 제거할 수 있다. 하지만 엄밀하게 보자면 스플래툰에 있어서 이러한 상대방의 제거는 '부차적'으로 설정되어있다. 이러한 게임의 특성은 콜옵과 스플래툰을 비교해보면 명확하게 구분된다:콜옵의 경우에는 다양한 게임의 룰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대부분 게임의 전세를 역전시킬 수 있는 와일드 카드가 킬스트릭이라는 상대를 쓰러뜨리는 부분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포인트 스트릭도 있지만 이 부분은 자세하게 건들지 않겠다. 하지만 개괄적으로 본다면 둘은 비슷하다:킬을 따내야만 스트릭이 이어진다는 점에서 말이다) 하지만 스플래툰의 시스템은 전체적으로 벽과 바닥을 색칠하고, 이를 통해 이동하며, 그리고 확보된 면적을 통해 상대를 압박하여 제압하고 승리하는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즉, 색칠이란 스플래툰에 있어서 기본 대전제라 할 수 있다. 게임은 천편일률적이었던 슈터 장르에 있어서 새로운 방법론을 제시하였고 이를 통해서 게이머들이 새로운 재미를 부여하였다.


하지만 스플래툰이 색을 칠한다는 새로운 목표를 제시함으로서 단순한 기믹적인 새로움을 추구하거나 이볼브와 같이 기존 게임 장르 문법과 다른 무언가를 잔뜩 추가하여 절반의 실패와 성공 이룩한 것도 아니다. 오히려 스플레툰이 놀라운 부분은 이러한 게임의 목표와 시스템을 보여준 게임의 전례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시행착오 없이 완성형에 가까운 게임 시스템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게임의 요소들은 상식적이고 직관적이며, 게임의 템포는 마치 처음부터 그러했었던 것 같이 자연스럽다. 마치 원래 게임이 그러 했었던 것처럼 말이다. 게임의 목적은 상대방보다 많은 면적을 확보하는 것이고, 그렇기에 상대와 적극적으로 싸우기 보다는 맵의 영역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많은 사람들이 생각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게임의 전투 흐름과 게임의 목적은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으며 너무나 자연스럽게 연결되었기에 경이롭다.


게이머가 조종하는 케릭터인 잉클링은 인간형과 오징어형으로 자유롭게 변형할 수 있다. 인간형인 경우에는 이동하면서 사격을 하거나 등의 행동을 취할 수 있으며, 오징어 형인 경우에는 총을 못 쏘는 대신 물총의 잉크를 재장전하며, 인간형에 비해서 빠르게 움직일 수 있고 또한 낮은 자세로 움직이기에 엄폐의 역할을 수행한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우리팀의 색깔로 면적이 확보된 영역에서만 가능한 일이다:상대방의 색으로 칠해진 영역을 들어간 경우, 화면에 잉크가 튀는 것 같은 연출과 함께 케릭터의 이동속도가 느려지고 오징어형태가 되더라도 잉크 속으로 숨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한다. 이런 경우 상대에게 공격을 받기 딱 좋은 상황이므로 게이머는 항상 자신의 영역을 확보하려 하여 상대를 압박하고 우리가 움직이기 수월하게 만들려 하고 상대도 똑같이 받아치려 한다. 그렇기에 게임은 '목표가 있기에 억지로 이를 달성하려 하며, 그와중에 상대와 싸우는' 형태의 겉도는 모습이 아닌, '자연스럽게 목표를 달성하면서 상대와 교전하는' 조화로운 모습을 보여준다.


그리고 이 오징어-인간형의 자연스러운 전환은 게임의 전투 페이스를 전례를 찾아보기 힘든 형태로 바꾸어 놓는다. 오징어 상태에서 케릭터는 맞추기 힘들 정도로 바닥에 납작하게 엄폐하기 때문에 게이머는 자신의 영역을 확보하면서 고속으로 치고 빠지는 카이팅(거리를 재면서 상대를 견제하는 것을 지칭하는 게임 용어) 중심의 전투를 벌이게 된다. 물론 게임은 단순한 물총 이외에도 다양한 색칠 도구를 게이머에게 제공한다:한번에 넓은 면적을 칠하면서 상대를 근거리 중심으로 압박할 수 있는 롤러나, 먼거리를 노릴 수 있는 스나이퍼 라이플 개념의 차저, 롤러의 변형으로 빠른 속도로 빠르게 파고드는 붓 형태의 파블로, 그리고 개틀링 형태의 지원화기 스피너와 잉크를 끼얹는 양동이 슬로셔까지. 게임은 '이런것도 무기로 다룰 수 있나?' 싶을 정도로 다양하고 폭넓은 형태의 도구를 만들어두었고, 이를 통해서 게이머는 다양한 방식으로 게임을 풀어나갈 수 있게 된다.


스플래툰은 새롭고 놀라우며 또한 거의 완성된 형태라 할 수 있을 정도로 맵 벨런스나 게임 모드의 흐름, 경기 시간 배분 등이 잘 잡혀 있다. 여기까지 새로운 게임의 형태를 완성할 수 있었던 것은 닌텐도라는 게임 철학집단이 있었기에 가능하다고 할 수 있다. 우리는 스플래툰 이전에 무언가를 색칠하거나 하는 행위를 게임에 접합시킨 케이스를 쉽게 찾아볼 수 없었다. 물론, 그것이 아예 없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다:색으로 마을을 칠하는 더 블랍이나 물펌프를 이용해서 낙서를 지우는 슈퍼 마리오 선샤인 같은 게임들이 있었고, 그 이전이나 이후에도 색을 칠하는 것이 중요한 게임은 항상 있어왔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이 다만 대중이 인지할 수 있을 정도로 그 숫자가 많지 않았을 뿐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플래툰 같이 시스템의 기본기가 탄탄하게 잡혀있는 게임이 등장하려면 적어도 이러한 트렌드의 흐름을 주도하는 게임이 먼저 나오고, 수년에 걸쳐서 시행착오를 거듭하는 모습울 보인다. 엘더스크롤 스카이림의 완성도는 엘더스크롤 아레나부터 폴아웃 3, 엘더스크롤 오블리비언 등의 몇십년의 시행착오와 역사를 거쳤기에 가능한 것이었고, 그렇기에 새로운 것을 시도하더라도 안정감있게 게임을 제작할 수 있었던 것이다. 즉, 무언가 새로운 것, 혁신적인 것을 만드는데 있어서 역사성은 필요하다고 할 수 있다:역사성을 통해서 제작사들은 오랜 기간동안의 실험을 통해서 적어도 무엇이 '실패'인지,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하는지, 더 나아가서 무엇을 성취하고 싶은지에 대한 확고한 목표의식을 세울 수 있기 때문이다.


스플래툰은 완전히 제로부터 시작했다:적어도 처음에는 오징어 인간 잉클링이 아닌 사슴이나 두부가 서로에게 물총을 쏘는 그런 게임이 초창기 컨셉이었으니까. 그러나 스플래툰이 그러한 시행착오들을 회사 내의 다른 사람들과 아이디어를 공유함으로써 극복하였다:잉클링이라는 인간 변형 오징어란 아이디어 같은 핵심 아이디어도 사내의 게임 평가를 통해서 얻었다는 인터뷰 기록이 있다. 또한 무엇보다도 스플래툰은 새롭기는 하지만 전적으로 '닌텐도 게임이다' 라고 평가받을 수 있는 요소들이 다분히 있다. 간단하고,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지만, 게임의 깊이가 있기에 파고들면 파고들수록 더 빠져드는 형태의 게임, 그러면서도 최근 닌텐도가 Wii U나 3DS로 실험하고 있는 게임 내 소셜 네트워크 플랫폼 미버스가 중요한 형태로 결합되어 있다는 점 등은 스플래툰이 단순하게 게임 내의 제작자나 한 팀의 아이디어에 의해서 만들어진 것이 아닌 전사적인 피드백과 개발에 의해서 만들어졌다는 점을 유추할 수 있는 부분이다. 그렇기에 어떤 의미에서 본다면 스플래툰은 닌텐도 게임이자, 닌텐도의 철학이 반영되어 있는 역사성을 가진 게임이라 할 수 있다. 새로운 것이 항상 오래된 것들의 성공과 실패에 기반하고 있다는 것을 생각한다면 스플래툰 역시도 그러한 영향력 안에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게임에 단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온라인 게임 플래이에 초점을 맞추었기에 싱글플래이 콘텐츠가 빈약했다는 문제가 있었고, 초기에는 콘텐츠 자체가 대단히 부족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스플래툰은 지속적인 업데이트를 통해서 게이머들이 계속 게임을 즐기게 만들 수 있는 거리를 제공하고, 더 나아가서 페스티벌이라는 축제 개념의 이벤트를 도입하여 게이머들이 지속적으로 Wii U를 구동하게끔 하는 정책을 피고 있다. 그리고 위에서 언급한 미버스와 그림 창작 커뮤니티의 결합 등등으로 스플래툰은 게임 자체도 재밌으면서 오랫동안 게임 내외적으로 플래이할 수 있게 만든다는 목표를 실현하고자 노력중이다. 이는 닌텐도가 상대적으로 콘솔 게이밍 시장에서 열세인 자사의 플랫폼 Wii U의 가동률을 늘리기 위해서 온라인 게임의 형식과 비슷하게 스플래툰을 운영하고 있기에 가능한 것이다. 그렇기에 스플래툰은 앞으로도 게임 콘텐츠가 늘어날 것은 물론, 더 나아가서 닌텐도가 자사의 플랫폼과 온라인 게임 환경에 대해서 어떤 전략을 펼칠 것인지를 볼 수 있는 좋은 선례가 될 것이다.


결론적으로 스플래툰은 정말로 재밌고, 어떤 의미에선 닌텐도가 이빨빠진 호랑이가 아니란 것을 멋지게 증명한 게임이라 할 수 있다. 독점의 의미가 퇴색하고, 이 게임 때문에 이 콘솔을 산다는 흐름 자체가 사라지는 지금의 콘솔 게이밍 시장에서 스플래툰은 그러한 흐름에 정면으로 반하는 작품이다. 이 게임이 하고 싶으면 Wii U를 구매해서 즐겨도 된다. 이 게임은 그럴만한 가치가 있는 게임이고, 이 게임 이외에도 이제 Wii U에는 할만한 게임들이 충분히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