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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이야기



글인줄 아셨습니까?! 하하 쟌넹 땜빵이었습니다!


게임 이야기




새로운 것은 어디에서부터 오는가? 우리는 새로운 아이디어들이 우리가 알지 못했던 어느 영역에서부터 등장한다고 생각한다:하지만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다. 새로운 것들은 전적으로 과거의 것들이나 우리가 익숙했던 무언가에 기반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새롭다 라는 것의 정의는 어떻게 본다면 현재적인 것이 아니라 '역사적'으로 봐야한다. 이것이 왜 새롭고 왜 이제서야 다시 재조명을 받았는지, 왜 과거에는 이런 것들이 성공하지 못했었고, 왜 현재에는 이런 것들이 성공할 수 있었는지를 생각해봐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스플래툰은 정말로 새로운 게임이며, 동시에 닌텐도가 만들어내는 '새로움'의 역사성에 대해서 고찰해볼 수 있는 좋은 게임이다.


스플래툰은 물총으로 벽면과 바닥을 칠하여 얼마나 바닥과 벽면을 칠했느냐에 따라서 승패를 결정하는 일종의 땅따먹기형 게임이다. 물론 벽면과 바닥을 칠하는 와중에 플레이어는 서로를 쏴서 제거할 수 있다. 하지만 엄밀하게 보자면 스플래툰에 있어서 이러한 상대방의 제거는 '부차적'으로 설정되어있다. 이러한 게임의 특성은 콜옵과 스플래툰을 비교해보면 명확하게 구분된다:콜옵의 경우에는 다양한 게임의 룰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대부분 게임의 전세를 역전시킬 수 있는 와일드 카드가 킬스트릭이라는 상대를 쓰러뜨리는 부분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포인트 스트릭도 있지만 이 부분은 자세하게 건들지 않겠다. 하지만 개괄적으로 본다면 둘은 비슷하다:킬을 따내야만 스트릭이 이어진다는 점에서 말이다) 하지만 스플래툰의 시스템은 전체적으로 벽과 바닥을 색칠하고, 이를 통해 이동하며, 그리고 확보된 면적을 통해 상대를 압박하여 제압하고 승리하는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즉, 색칠이란 스플래툰에 있어서 기본 대전제라 할 수 있다. 게임은 천편일률적이었던 슈터 장르에 있어서 새로운 방법론을 제시하였고 이를 통해서 게이머들이 새로운 재미를 부여하였다.


하지만 스플래툰이 색을 칠한다는 새로운 목표를 제시함으로서 단순한 기믹적인 새로움을 추구하거나 이볼브와 같이 기존 게임 장르 문법과 다른 무언가를 잔뜩 추가하여 절반의 실패와 성공 이룩한 것도 아니다. 오히려 스플레툰이 놀라운 부분은 이러한 게임의 목표와 시스템을 보여준 게임의 전례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시행착오 없이 완성형에 가까운 게임 시스템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게임의 요소들은 상식적이고 직관적이며, 게임의 템포는 마치 처음부터 그러했었던 것 같이 자연스럽다. 마치 원래 게임이 그러 했었던 것처럼 말이다. 게임의 목적은 상대방보다 많은 면적을 확보하는 것이고, 그렇기에 상대와 적극적으로 싸우기 보다는 맵의 영역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많은 사람들이 생각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게임의 전투 흐름과 게임의 목적은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으며 너무나 자연스럽게 연결되었기에 경이롭다.


게이머가 조종하는 케릭터인 잉클링은 인간형과 오징어형으로 자유롭게 변형할 수 있다. 인간형인 경우에는 이동하면서 사격을 하거나 등의 행동을 취할 수 있으며, 오징어 형인 경우에는 총을 못 쏘는 대신 물총의 잉크를 재장전하며, 인간형에 비해서 빠르게 움직일 수 있고 또한 낮은 자세로 움직이기에 엄폐의 역할을 수행한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우리팀의 색깔로 면적이 확보된 영역에서만 가능한 일이다:상대방의 색으로 칠해진 영역을 들어간 경우, 화면에 잉크가 튀는 것 같은 연출과 함께 케릭터의 이동속도가 느려지고 오징어형태가 되더라도 잉크 속으로 숨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한다. 이런 경우 상대에게 공격을 받기 딱 좋은 상황이므로 게이머는 항상 자신의 영역을 확보하려 하여 상대를 압박하고 우리가 움직이기 수월하게 만들려 하고 상대도 똑같이 받아치려 한다. 그렇기에 게임은 '목표가 있기에 억지로 이를 달성하려 하며, 그와중에 상대와 싸우는' 형태의 겉도는 모습이 아닌, '자연스럽게 목표를 달성하면서 상대와 교전하는' 조화로운 모습을 보여준다.


그리고 이 오징어-인간형의 자연스러운 전환은 게임의 전투 페이스를 전례를 찾아보기 힘든 형태로 바꾸어 놓는다. 오징어 상태에서 케릭터는 맞추기 힘들 정도로 바닥에 납작하게 엄폐하기 때문에 게이머는 자신의 영역을 확보하면서 고속으로 치고 빠지는 카이팅(거리를 재면서 상대를 견제하는 것을 지칭하는 게임 용어) 중심의 전투를 벌이게 된다. 물론 게임은 단순한 물총 이외에도 다양한 색칠 도구를 게이머에게 제공한다:한번에 넓은 면적을 칠하면서 상대를 근거리 중심으로 압박할 수 있는 롤러나, 먼거리를 노릴 수 있는 스나이퍼 라이플 개념의 차저, 롤러의 변형으로 빠른 속도로 빠르게 파고드는 붓 형태의 파블로, 그리고 개틀링 형태의 지원화기 스피너와 잉크를 끼얹는 양동이 슬로셔까지. 게임은 '이런것도 무기로 다룰 수 있나?' 싶을 정도로 다양하고 폭넓은 형태의 도구를 만들어두었고, 이를 통해서 게이머는 다양한 방식으로 게임을 풀어나갈 수 있게 된다.


스플래툰은 새롭고 놀라우며 또한 거의 완성된 형태라 할 수 있을 정도로 맵 벨런스나 게임 모드의 흐름, 경기 시간 배분 등이 잘 잡혀 있다. 여기까지 새로운 게임의 형태를 완성할 수 있었던 것은 닌텐도라는 게임 철학집단이 있었기에 가능하다고 할 수 있다. 우리는 스플래툰 이전에 무언가를 색칠하거나 하는 행위를 게임에 접합시킨 케이스를 쉽게 찾아볼 수 없었다. 물론, 그것이 아예 없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다:색으로 마을을 칠하는 더 블랍이나 물펌프를 이용해서 낙서를 지우는 슈퍼 마리오 선샤인 같은 게임들이 있었고, 그 이전이나 이후에도 색을 칠하는 것이 중요한 게임은 항상 있어왔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이 다만 대중이 인지할 수 있을 정도로 그 숫자가 많지 않았을 뿐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플래툰 같이 시스템의 기본기가 탄탄하게 잡혀있는 게임이 등장하려면 적어도 이러한 트렌드의 흐름을 주도하는 게임이 먼저 나오고, 수년에 걸쳐서 시행착오를 거듭하는 모습울 보인다. 엘더스크롤 스카이림의 완성도는 엘더스크롤 아레나부터 폴아웃 3, 엘더스크롤 오블리비언 등의 몇십년의 시행착오와 역사를 거쳤기에 가능한 것이었고, 그렇기에 새로운 것을 시도하더라도 안정감있게 게임을 제작할 수 있었던 것이다. 즉, 무언가 새로운 것, 혁신적인 것을 만드는데 있어서 역사성은 필요하다고 할 수 있다:역사성을 통해서 제작사들은 오랜 기간동안의 실험을 통해서 적어도 무엇이 '실패'인지,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하는지, 더 나아가서 무엇을 성취하고 싶은지에 대한 확고한 목표의식을 세울 수 있기 때문이다.


스플래툰은 완전히 제로부터 시작했다:적어도 처음에는 오징어 인간 잉클링이 아닌 사슴이나 두부가 서로에게 물총을 쏘는 그런 게임이 초창기 컨셉이었으니까. 그러나 스플래툰이 그러한 시행착오들을 회사 내의 다른 사람들과 아이디어를 공유함으로써 극복하였다:잉클링이라는 인간 변형 오징어란 아이디어 같은 핵심 아이디어도 사내의 게임 평가를 통해서 얻었다는 인터뷰 기록이 있다. 또한 무엇보다도 스플래툰은 새롭기는 하지만 전적으로 '닌텐도 게임이다' 라고 평가받을 수 있는 요소들이 다분히 있다. 간단하고,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지만, 게임의 깊이가 있기에 파고들면 파고들수록 더 빠져드는 형태의 게임, 그러면서도 최근 닌텐도가 Wii U나 3DS로 실험하고 있는 게임 내 소셜 네트워크 플랫폼 미버스가 중요한 형태로 결합되어 있다는 점 등은 스플래툰이 단순하게 게임 내의 제작자나 한 팀의 아이디어에 의해서 만들어진 것이 아닌 전사적인 피드백과 개발에 의해서 만들어졌다는 점을 유추할 수 있는 부분이다. 그렇기에 어떤 의미에서 본다면 스플래툰은 닌텐도 게임이자, 닌텐도의 철학이 반영되어 있는 역사성을 가진 게임이라 할 수 있다. 새로운 것이 항상 오래된 것들의 성공과 실패에 기반하고 있다는 것을 생각한다면 스플래툰 역시도 그러한 영향력 안에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게임에 단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온라인 게임 플래이에 초점을 맞추었기에 싱글플래이 콘텐츠가 빈약했다는 문제가 있었고, 초기에는 콘텐츠 자체가 대단히 부족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스플래툰은 지속적인 업데이트를 통해서 게이머들이 계속 게임을 즐기게 만들 수 있는 거리를 제공하고, 더 나아가서 페스티벌이라는 축제 개념의 이벤트를 도입하여 게이머들이 지속적으로 Wii U를 구동하게끔 하는 정책을 피고 있다. 그리고 위에서 언급한 미버스와 그림 창작 커뮤니티의 결합 등등으로 스플래툰은 게임 자체도 재밌으면서 오랫동안 게임 내외적으로 플래이할 수 있게 만든다는 목표를 실현하고자 노력중이다. 이는 닌텐도가 상대적으로 콘솔 게이밍 시장에서 열세인 자사의 플랫폼 Wii U의 가동률을 늘리기 위해서 온라인 게임의 형식과 비슷하게 스플래툰을 운영하고 있기에 가능한 것이다. 그렇기에 스플래툰은 앞으로도 게임 콘텐츠가 늘어날 것은 물론, 더 나아가서 닌텐도가 자사의 플랫폼과 온라인 게임 환경에 대해서 어떤 전략을 펼칠 것인지를 볼 수 있는 좋은 선례가 될 것이다.


결론적으로 스플래툰은 정말로 재밌고, 어떤 의미에선 닌텐도가 이빨빠진 호랑이가 아니란 것을 멋지게 증명한 게임이라 할 수 있다. 독점의 의미가 퇴색하고, 이 게임 때문에 이 콘솔을 산다는 흐름 자체가 사라지는 지금의 콘솔 게이밍 시장에서 스플래툰은 그러한 흐름에 정면으로 반하는 작품이다. 이 게임이 하고 싶으면 Wii U를 구매해서 즐겨도 된다. 이 게임은 그럴만한 가치가 있는 게임이고, 이 게임 이외에도 이제 Wii U에는 할만한 게임들이 충분히 있다.




게임 이야기



메탈기어 팬텀패인에 등장하는 메탈기어 사헬란트로푸스에서 사헬란트로푸스는 인간과 침팬지 사이의 미싱링크로서의 종을 의미한다고 한다. 차드에서 발견된 이 종은 진화론을 증명하는 중요한 사례로 거론되기도 한다. 하지만 여기서 우리가 눈여겨 봐야하는 점은 이 사헬란트로푸스라는 종이 과연 '인간'인지, 아니면 '원숭이'인지 도통 알수가 없다는 것이다. 과연 사헬란트로푸스는 원숭이인가, 인간인가, 아니면 그 누구도 아닌 무엇인가. 사실, 팬텀패인이 시작하는 지점은 여기라고 할 수 있다:얼굴 없는 망령들, 국가가 부인하였기에 그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는 자들의 이야기는 뚜렷한 정체성을 갖지 못한 체 망령의 형태로, 환상통의 형태로 떠돌 수 밖에 없다.

피스워커에서 더 보스는 인류를 믿었고, 모든 병사가 총을 내려놓는 세계를 믿었다. 그렇기에 그녀는 배신자의 오명을 쓰고도 국가에 충성하였고, 죽어서 프로그램의 형태로 남았어도 인간에 대한 희망을 잃지 않았다. 하지만 보스의 이 초인적인 모습에는 결국 크나큰 결점이 숨어있다. 인간을 뛰어넘었다는 점에서, 평범한 인간들에게 보스의 유지는 결국 복종할 것이냐(사이퍼) 거부할 것인가(빅 보스)로 나뉘어져서 해석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렇기에 빅보스는 총을 내려놓은 더 보스를 거부하고 스스로 총이 되기를 선택한다. 그와 함께 아슬아슬한 평화를 유지하고 있었던 피스워커의 군인들의 피난처, 국경없는 군대는 이제 무너지게 된다. 팬텀패인에서 빅보스가 보는 세상은 더 보스가 꿈꿨던 선의가 일말조차도 존재하지 않는 세상, 그 어디에도 소속될 수 없고 무엇도 될 수 없는 비참한 자들의 세계이다. 인간도 유인원도 되지 못한 사헬란트로푸스 같은 인간들이 해매는 지옥이야말로 팬텀패인의 세계인 것이다.  그렇기에 그들은 그들의 낙원을 이곳도 저곳도 아닌 바로 지옥 위에 세워야 한다. 국가와 제도 바깥의 천국, 아우터 헤븐Outer Heaven이 바로 그들이 도달하는 목적지며, 동시에 그들이 파멸을 마주하는(메탈기어 1편) 종착지인 것이다.

이제 다음주 9/2이면 팬텀패인은 출시한다. 웹진들의 띄워주기가 과연 진실인지, 아닌지는 직접 두 눈으로 판단하면 될 것이다.




게임 이야기




게임 개발자이자 프로그래머, 그리고 닌텐도 CEO였던 이와타 사토루가 7월 11일 별세하였다. 그의 나이 향년 55세. 작년에 발견된 담관암을 수술한지 불과 1년밖에 안된 일이다. 그당시 많은 사람들이 걱정하였지만 수술 이후에도 여러 닌텐도 다이렉트에 등장하여서 게임과 닌텐도에 대한 그의 사랑을 여지없이 보여주었다. 닌텐도가 DS와 Wii로 성공에 성공을 거듭하던 시기에는 조용히 경영자로써 본분을 다했다면, 상대적으로 열악했던 Wii U와 3DS 시기에는 스스로 전면에 나서서 마케팅 일선에서 놀라운 존재감을 보여주었던 이와타 사토루. 우리가 그를 상실했다는 것은 단순하게 한 게임 회사의 CEO의 죽음이 아닌 전 세계 게임업계와 게이머들이 슬퍼하고 추모한, 게임계에 있어 거대한 사건이라 할 수 있다.


물론 고인의 별세는 닌텐도의 경영체계에 큰 변화를 불러일으킬 것이다. 하지만, 닌텐도라는 집단이 본질적으로 변화하는 일을 없을 것이다:본인이 이 블로그를 통해서 반복적으로 주장한게 있다면, 닌텐도라는 집단은 독특한 게임 개발자 몇이 모여있는 집단이 아니라 '닌텐도'라는 하나의 철학을 바탕으로 모여있는 철학집단에 가깝다라는 것이다. 그렇기에 그들은 오랜 시간이 지남에도 불구하고 우직하게 자기들의 철학을 관철하는 모습을 보여왔으며, 그리고 답답한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었다. 하지만 그러한 닌텐도의 게임 제작 철학과 답답할 만큼의 고집이 있어왔기에 그들은 여기까지 올 수 있었으며, 이는 단순하게 CEO가 바뀐다고 해서 바뀌는 성격의 영역은 아니라고 할 수 있다. 


그렇지만 이와타 사토루의 별세는 게임 역사에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고 본인은 본다. 닌텐도는 현재 Wii U와 3DS의 다음 세대 플랫폼인 NX를 준비하고 있다. NX가 어떤 플랫폼인지, 어떤 사업모델을 지니고 있는지에 대해서 우리가 정확하게 알 수 없지만 분명한 것은 크로스 플랫폼이 매우 중요해질 것이라는 것, 그리고 더 나아가 어떤 식으로든 간에 스마트폰 플랫폼과의 연계가 매우 중요하게 이루어질 것이라는 것이다. 또한 닌텐도는 작년부터 아미보라는 스마트 토이 프랜차이즈를 런칭하고 다가올 새로운 시장에 대비하고 있다.(이에 대해 본인이 쓴 글은 http://leviathan.tistory.com/1996 이다) 2015년 E3의 닌텐도 컨퍼런스는 매우 조용하였지만, 분명한 것은 2015년 닌텐도의 행보가 잠잠한 것은 고인의 건강악화 문제만이 이유가 아니었다. 2015년은 닌텐도가 차세대 플랫폼이라는 영역에서 엄청난 변화를 준비하는, 거대한 도약을 위해 웅크리고 있는 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흐름은 단순하게 닌텐도만 겪는 것이 아니다. PS4와 엑스박스 원의 런칭 이후로 콘솔 플랫폼은 급격한 변화를 맞이하고 있다. PS4의 쉐어버튼이나 엑스박스 원의 클라우드 컴퓨팅, 리메이크 열풍, 게임과 연동되는 스마트폰 어플의 출현과 보급, DL 시장의 성장 및 확대, 이볼브 같은 인포그래픽 마케팅의 보급, F2P 모델의 성장 등등 콘솔 게임이 변화하는 속도는 역사상 전례를 찾아보기 힘들정도로 급격해지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변화의 흐름은 단순하게 기술의 발전이라는 흐름만으로 설명할 수 없다. 콘솔 게이밍 시장은 이전과 비교해서 급격하게 성장하고 있으며(PS4의 1000만대 돌파 속도와, 그 경쟁자들이 무섭게 추격하는 속도를 보라), E스포츠의 출현과 보급, 게이밍 방송의 유행, 게임을 홍보하는 마케팅의 변화 등에서 우리는 이러한 변화를 읽어낼 수 있다:게임은 본질적으로 변화하고 있다. 그것이 우리가 원하든, 원하지 않는 방식이든 간에 앞으로 5년에서 10년 사이에 우리가 이해하고 알았었던 게임 플랫폼과 시장은 완벽하게 변화할 가능성이 높다.


이와타 사토루의 별세는 단순한 사실 그 자체의 의미를 넘어서, 게임 역사에 있어서 하나의 이정표가 될 가능성이 높다. NX 이후로 우리는 게이밍 콘솔이라는 개념 자체를 새롭게 정의해야할지도 모른다. 더이상 게임이 하나의 독점 플랫폼에 얽혀있는 것이 아니라 PC와 콘솔, 스마트폰 등의 다양한 매체를 통해서 게임의 소비구조와 문화 자체가 느슨하고 넓게 퍼지게 될지도 모른다. 이 이후론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지는 아무도 모르는 시대가 오게 될 것이다. 그렇기에 고인의 별세는 단순한 사건이 아니라 게임 자체가 변화할지도 모르는 역사의 기준점, 이 이후 어떻게 될지 전혀 알 수 없는 사상의 지평Event Horizon이 될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시대가 바뀜에도 우리가 잊어서는 안되는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게임이 어떤 형태를 띄더라도, 어떤 수익구조를 지녀야 하더라도, 누가 플래이하더라도 재밌고 즐거워야 한다는 것이다. 이 명제는 닌텐도가 여지껏 살아남을 수 있게 만든 명제였을 뿐만 아니라, 지구상에 사랑받는 그 모든 게임과 게임 제작자들, 게이머들이 게임을 만들고 플래이하고 방송하고 즐기고 울고 웃고 떠들 수 있게 만드는 근원적인 이유다. 우리가 고인을 통해서 진정으로 기억해야 하는 것은 이 시점을 전후로 시대가 변화한다는 역사적인 사실이 아니라 우리가 게임을 어떻게 만들고 즐길 것이며, 더 나아가 무엇을 해야할 것인지 고민해야 하는 삶의 문제다. 고인이 우리에게 게임을 만드는 재미와 기쁨을 넘겨주었듯이, 우리 역시도 그에게서 받았던 것을 후대의 게이머들과 제작자들에게 고인에게서 받은 재미와 기쁨을 약간의 이자를 쳐서 물려주도록 하자.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그를 추모하는 가장 완벽한 방법이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와타 사토루가 2005년 GDC에서 했었던 말을 인용하며 이 짧은 글을 마무리 짓도록 하겠다. 고인이 편히 쉬기를.





"On my business card, I am a corporate president. In my mind, 

I am a game developer. But in my heart, I am a gamer."

(私の名刺には社長と書いてありますが、頭の中はゲーム開発者です。

心はゲーマーです。)

"명함 속에서 저는 회사 사장입니다. 제 머리 속은 게임 개발자입니다. 

하지만 제 마음 속에서는 게이머입니다."

— 2005 GDC에서


RIP, 岩田 聡, Iwata Satoru

1959년 12월 6일 ~ 2015년 7월 1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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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른 땜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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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차티드 시리즈는 플래이스테이션 진영을 대표하는 게임으로써, 사실상 엑박의 해일로와 견줄만한 인기를 갖고 있다. 하지만 문제는 언차티드 시리즈는 헤일로 특유의 SF 감성에 비교하자면 그 개성이 옅다는 문제를 갖고 있다. 언차티드 시리즈는 인디아나 존스로 대표되는 헐리웃 액션 블록버스터의 공식을 차용하였고 게임 내에 아주 훌륭하게 구현하였지만, 헤일로 같이 게임으로써는 '이게 바로 언차티드다'라고 할 수 있을만한 특장점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러한 헤일로 같은 특징이 역으로 게임을 매니악하게 만드는 문제점이 있기에(북미 특유의 스페이스 오페라에 환장하는 분위기가 역으로 해외에선 독이 되곤 한다) 언차티드 시리즈 특유의 옅은 개성이 다양한 계층의 사람에게 어필할 수 있었지만, 언차티드가 갖고 있는 2%의 아쉬움이라는 것도 무시할 수 없었다.

이런 몰개성함에 비추어 보았을 때 재밌는 점은 트레일러가 기반하고 있는 스토리 텔링이 3편에 기반하고 있다는 점이다:네이선 드레이크의 탄생과 그의 집착, 그리고 집착을 내려놓기까지의 이야기는 가벼운 스토리를 지향했었던 전편들에 비해서 자신만의 정체성과 개성을 찾아가려는 노력을 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그렇기에 어린 네이트가 설리와 만나면서 시작되는 이야기 다음에 1편과 2편의 영상을 넣으면서 언차티드 시리즈의 정체성을 부여하려는 시도를 한다. 언차티드 3 자체가 2편에 의해 높아진 기대감을 모두 충족시키지 못한 작품이긴 했지만, 언차티드 시리즈와 함께 너티독의 스토리텔링 방향성(더 나아간다면 라오어도 이 흐름에 놓을 수 있을 것이다)을 단편적이나마 엿볼 수 있는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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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사는 곳은 국가가 아니라 언어다. 모국어야 말로 우리의 진정한 조국이다. -에밀 시오랑





메탈기어 솔리드 V:팬텀패인 2015년 트레일러는 이전의 복수라는 키워드 이외에 '언어'라는 소재를 들고 나왔다. 하지만 엄밀하게 본다면 이러한 팬텀패인의 경향성과 키워드 선정이 '이상한' 것은 아니다. 똑같은 시나리오를 통해서 똑같은 인간을 만들어낼 수 있는가(메탈기어 솔리드 2), 국가와 충성에 대한 이야기나(메탈기어 솔리드 3), 전쟁 경제에 의해서 세상이 어떻게 바뀌는가(메탈기어 솔리드 4), 핵억지력과 평화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메탈기어 솔리드:피스워커) 등등을 통해서 코지마 히데오는 자기 자신의 명제인 '게임이 성인지향적인 내용을 다룰 수 있는가'라는 부분에 대해서 끊임없이 도전하는 모습을 보여왔다. 물론 영화감독을 꿈꾼 자의 자기 만족적인 실험적 성격도 강하지만, 메탈기어 솔리드 시리즈는 모두 게임사에 독특한 족적을 남긴 작품들이라 할 수 있다. 그렇기에 팬텀패인의 시도가 뜬금없는 것은 아니다. 다만 궁금증이 생기긴 한다:국가와 군대의 이야기를 주요하게 다루는 시리즈에서 어째서 '언어'라는 소재를 들고 나온 것일까?


니콜라스 에반스의 아무도 모르는 사이에 죽다 라는 책이 있다. 이 책은 아주 극소수의 사용자만이 사용하는 언어를 다루는데, 팬텀패인과 연결시켜서 볼 수 있는 상당히 흥미로운 부분들이 존재한다. 책은 현생 인류가 처음으로 지구상에 등장하고 농경을 시작하였을 때, 1500만명 가량이 지구상에 존재했었고 1만명 단위의 집단이 하나의 언어를 썼다고 한다. 그렇기에 그 당시에는 넉넉잡아 1~1.5만개 정도의 언어가 있다고 보았다. 하지만 현재는 60억 인구가 지구상에 존재하는데도 17개 국가가 사용하는 언어가 전체 언어의 60%를 차지하고 있다. 적어도 50만년 정도 되는 인류의 역사 중에서 기원전 2000년 전이라는 비교적 가까운 과거에 겨우 100만명 단위의 집단이 사용하는 언어가 등장했다는 걸 고려하면 흥미로운 수치다. 


그렇기에 니콜라스 에반스는 다소 흥미로운 주장을 펼친다:우리가 현재 바라보고 있는 언어의 세계는 자연적이지 않은 세계가 아닐까, 라는 것이다. 언어는 끊임없이 분화하고 변화하며, 인간은 지금보다 훨씬 더 많은 언어를 접하고 더 많은 언어로 생각하는 능력을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일례로 카메룬의 특정 지역에는 8가지 언어로 이야기할 수 있는 멀티링귀얼이 일반적이다. 소수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은 3~4개의 언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한다) 지금 이 시간에도 한국어라는 언어 자체는 분화되고 있으며, 우리는 그 현장을 인터넷이라는 공간을 통해서 도처에서 확인할 수 있다. 스스로 타인과 구별짓기 위해, 환경적 지리적 요인에 의해, 언어는 계속해서 분화된다. 그리고 언어가 자연스럽게 분화되고자한다면, 역으로 그것을 하나의 언어로 '통일' 시키려는 인공적인 흐름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국가가 공용언어를 정하고 이것으로 소통하려는 것은 그것이 국가라는 시스템을 유지하는데 있어서 가장 기본적인 전제조건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하나의 언어로 소통하는 것은 인간의 사유를 통제하는데 있어서 가장 효율적이고도 효과적인 수단이라는 것이다. 인간의 사유는 언어라는 수단과 항상 함께한다. 그렇기에 언어를 통제하는 것은 인간의 생각을 통제하는 것과 같다고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조지 오웰의 대표적인 디스토피아 소설 1984에서는 단어들을 단순화시키고 삭제함으로서 인간의 생각을 통제하고자 하였다. 또 멀리갈 필요도 없이 북한이 내부의 정치 권력 관계가 변화하면서 언어가 그에 맞춰서 따라가는 모습을 찾아볼 수도 있다. 언어의 통일과 통제는 근대국가의 성립과 밀접한 관련을 맺는 부분이라 할 수 있다.


그렇기에 이 지점에서 언어와 팬텀패인의 접점이 생긴다. 국가와 인간, 그리고 언어라는 관계 속에서 코지마는 국가의 성립에 있어서 가장 근원적이지만 무시당하기 쉬운 전제를 건드림으로써, 미국이라는 국가의 특수성, 그리고 팬텀 패인 이후 이어지는 아우터 헤븐의 명제를 위한 초석을 다지고자 하는 것처럼 보인다. 언어로 세상을 통제하려는 제로와 국가의 전장의 혼탁한 상황속에서 말을 하지 못하는 저격수(콰이어트), 국가를 스스로 져버린 현자(코드토커), 국가와 체제로부터 버림 받은 자들(다아몬드 독스, 빅 보스, 밀러 등등)이 국가와 체제 바깥에서 언어를 통해 국가에 대해서 생각하고자 한다면, 팬텀패인이 언어를 중요한 키워드로 들고나온 것은 그렇게까지 이상한 부분은 아니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여기서 상당히 흥미로운 은유를 접합시킬 수 있다:성경 창세기에 나오는 바벨탑의 이야기는 모든 인류가 하나의 언어로 소통하며 신의 권위에 저항하기에 하늘에 닿는 바벨탑을 쌓으려 하다가 신이 언어를 흩뿌림으로써 실패하는 내용을 다루고 있다. 하지만 앞서 이야기하였듯이, 하나의 언어로 인간이 공통된 사유를 하는 것이 '인공적'인 행위라면 역으로 하나의 언어와 하나의 사고, 하나의 체계를 무너뜨려 원래 그 각자의 인간들에게 신이 오롯이 돌려준 것이 아닐까? 그렇다면 역으로 빅 보스 역시도 신이 바벨탑을 무너뜨려 언어를 인류 개개인에게 돌려주었던 것처럼 국가라는 바벨탑을 무너뜨리려는 것이 아닐까? 국가의 붕괴를 통해서 인류는 오롯이 자신의 의지로 생각하고 행동할 수 있는 인간이 될 수 있을까? 그 결과가 어찌되든 간에, 바벨탑을 붕괴시킴으로써 인류는 말을 서로 이해할 수 없어서 갈등하게 되었고 흩어지게 되었다는 창세기의 이야기를 되새겨볼 필요가 있다. 국가의 붕괴를 통해서 만들어지는 혼돈과 파괴는 현대 인류 사회를 완전히 뿌리채부터 박살내버리는 행위가 될 수 있다. 하지만 빅보스에게는 그러한 혼돈과 파괴에 전혀 개의치않는다. 그는 총이다. 그는 그가 생각하는 목표를 위해서는 직선으로 나아가 무엇이든 파괴할 수 있는 준비가 되어 있다. 그렇기에 팬텀패인은 위대했던 한 영웅이 악마가 되는 중요한 지점을 다루게 될 것이다.


팬텀패인은 메탈기어 원년으로 흘러가는 가장 중요한 위치에 있는 작품이다. 팬텀패인을 통해서 메탈기어 시리즈는 거대한 원환을 구축하게 될 것이고, 이를 통해서 메탈기어 사가는 완결될 것이다. 물론 코나미는 팬텀패인 이후에 메탈기어 시리즈를 만들 것이라고 입을 털고는 있지만, 코지마가 없는 메탈기어 사가는 더이상 의미가 없을 것이고 또한 팬텀패인을 통해서 메탈기어 사가의 원환이 완성된다면 더이상 여기서 다루어야 할 이야기도 없을 것이다. 그렇기에 팬텀패인은 기대가 되는 작품이다. 그것이 엉망으로 끝나든 훌륭하게 끝나든, 우리는 여기서 게임 역사에 길이 남을 마무리를 보고 있기 때문이다.










게임 이야기





카미야 히데키, 미카미 신지, 이가라시 코지, 이나후네 케이지, 빌 로퍼, 리차드 게리엇 등등. 이들은 한 때 게임 업계를 대표했었고 황금기를 이끌었던 기라성 같은 제작자들이었고, 그리고 동시에 거대 퍼블리셔나 제작사를 떠나서 자신만의 제작사를 만들었던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흥미로운 점은 이들이 회사를 나가서 만든 작품들의 대부분은 사람들을 실망시켰다는 것이다:게임을 만들만큼 만들었고, 한때 게임업계의 패러다임을 만들었던 사람들이었다. 그런 그들이 어째서 거대한 제작사 밖으로 나왔을 때 그런 실수(?)를 만들어낸 것일까? 이유는 명백하다:자본과 인력, 그리고 시간. 거대한 제작사들은 언제나 인력이나 조직적, 그리고 자본적인 차원에서 풍족하다. 큰 회사가 조직적인 측면이나 회사의 분위기적인 측면에서 불합리적으로 보인다 하더라도 더욱 효율적이고 큰 단위에서 일을 벌일 수 있는 것도 이 덕분이라 할 수 있다. 그렇기에 위대한 거장들의 독립과 실패는 더이상 소수의 영웅이나 천재에 의해서 게임 역사가 좌지우지 되는 시대가 끝나고 자본과 인력에 의해서 세계가 움직임을 반증하는 부분이다.


그리고 아쉽게도 이타가키 토모노부의 데빌즈 서드 역시 그러한 작품이라 할 수 있다:THQ와 함께 만들던 이타가키의 데빌즈 서드는 2010년 처음 트레일러 데뷔, 2011년 마지막 트레일러 및 THQ 도산 이후 2014년까지 소식이 없었다. 하지만 뜬금없이 2014년 E3에 등장하고는 올 8월에 위유 독점으로 발매되었다. 하지만 2010년에 공개된 첫 트레일러와 위유 독점으로 발표된 데빌즈 서드와의 괴리는 엄청났고 이는 논란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심지어는 북미 닌텐도가 데빌즈 서드의 퀄리티를 보고 유통을 포기했다는 루머가 돌 정도로(물론 정상적으로 발매될 예정이다) 데빌즈 서드와 이타가키를 둘러싼 상황은 심각해보였다.


일단 결론만 놓고 보자면, 데빌즈 서드는 여타 다른 '독립한 거장들의 게임'과 많은 부분 공통점을 공유하는 게임이다:명성에 비해서 초라해진 스케일이나 엉망진창인 모션, 끔찍한 프레임, 어딘가 모두 모자라보이는 게임 요소들은 게이머를 실망시키기에 충분하다. 하지만 그런 실망스러운 부분들 사이 사이로 데빌즈 서드는 괜찮은 부분들을 갖고 있으며, 큰 틀에서 보자면 만들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뚜렷하게 보인다. 데빌즈 서드가 지향한 컨셉은 게이머들이 기존의 FPS나 슈터류에서 갖고 있었던 '가려운 부분'을 긁어주는 쪽이었었다. 하지만 정말 아쉬운 것은 이 컨셉들이 인력과 자본과 시간 때문에 제대로 빛을 보지 못했다는 점이다.


몇몇 게임 웹진들은 데빌즈 서드의 컨셉을 '구세대(360, PS3 정도) 일본 게임이 어설프게 서양 슈터 게임들을 따라하는 흐름의 현현'이라고도 표현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표현은 반정도만 맞아떨어진다고 할 수 있다:데빌즈 서드의 스토리라인이나 싱글 게임 흐름은 엉망진창으로 짜집기한 콜 오브 듀티라고 할 수 있다. 데빌즈 서드가 콜옵을 엉망으로 밴치마킹 한 점은 생물병기에 핵폭탄에 러시아도 아니고 소련의 잔당들이 세상을 불질러서 구원하겠다고 이야기하하는 점이나 몇몇 레일로드 액션들은 게임의 특장점과 별개로 콜옵을 밴치마킹한 점 등에서 너무 뻔히 보이며 이러한 점에서 기존의 트리플 A 게임들을 즐기는 사람들은 실망을 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중요한 점은 데빌즈 서드의 본질은 콜옵을 일본식으로 밴치마킹했다는 점이 아니라는 것이다.


데빌즈 서드가 지향하는 컨셉은 총격전과 근접전의 유기적인 결합이며, 이는 일본식 액션 게임을 FPS에 억지로 접합시킨 것과 분명하게 다르다. 그러나 잘 생각해보면 이러한 두 상반된 요소의 유기적인 결합은 이전에도 있었던 중요한 관계라고 할 수 있다. TPS나 FPS 게임들의 대부분은 총격전만 일어나지 않는다. 배틀필드 처럼 무식하게 넓은 맵이 주어지지 않는 한, 게임의 대부분은 복도와 방들, 색적 시야를 차단하는 장애물들이 넘쳐나는 곳에서 게임이 진행된다. 플래이어가 아무리 상대와 거리를 벌리고 총기 사용을 효율적으로 하려고 해도, 게이머들은 모퉁이를 돌다가 적과 조우하거나 전혀 예상치도 못한 곳에서 적과 조우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그렇기에 슈터류 게임에 있어서도 서로 코닿을 거리에서 싸우는 전투는 비일비재하며, 슈터류 게임에 있어서 근접전의 수요와 중요도는 대부분 여기서 나온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기존의 FPS나 TPS들은 전투에 있어서 근접전투를 등한시 하거나 둘을 유기적으로 결합시키는 과정 중에서 대참사가 일으켰다. 일단 대참사가 일어난 경우인 콜옵 모던 워페어 2의 경우를 보자:콜옵은 근접 나이프 공격이 상대를 한번에 제압하는 특징을 갖고 있으며, 모던 워페어 2에서는 몇몇 특정한 퍽의 조합(근접 공격 사거리를 늘리는 코만도와 무한히 달릴 수 있는 마라톤, 발소리 없이 움직일 수 있는 스텔스, 근접 공격 속도를 빠르게 만드는 권총 나이프 조합)을 통한 소위 닌자 플래이가 유행을 하기도 하였다. 물론 벨런스가 전반적으로 개판이었던 모던 워페어 2에서 닌자 플래이는 사람들을 짜증나게 만들 뿐 오버 파워라고 할 수 있을 정도는 아니었지만, 중요한 점은 이 닌자 플래이의 흐름이 기본적으로 총기가 중요한 게임 흐름과는 완전히 다른 형태였기 때문에 게임을 하는 사람들이 게임의 흐름을 예측하지 못하게 만들기 십상이었다는 것이다. 아무 소리도 없이 코너에서 튀어나와 옆구리에 칼빵을 놓고 도망가는 닌자들의 존재는 수많은 게이머의 짜증을 유발하였다. 


기본적으로 총기를 사용하는 슈터류 장르 게임에서 근접전은 상대적으로 덜 중요하지만 동시에 중요하지 않다고 할 수 없고 그렇다고 강조점을 주자니 게임의 템포를 두개로 쪼개서 게임을 망칠 가능성이 높다는 문제가 있다. 그렇기에 근접전과 총격전의 공방이 유기적으로 연결시키는 것은 생각외로 어려운 부분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것들을 능숙하게 결합한 성공 사례들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호러 FPS인 피어 시리즈의 전투 같은 경우, 멀티에서 점프+근접공격=날아차기 나 슬라이딩+근접공격=태클 이라는 공식을 2005년을 이미 정립하였었고 스페이스 마린 같은 게임은 워해머 40k 특유의 근접전과 원거리 전투 모두를 잡으려는 실험을 하였었다. 이타가키의 데빌즈 서드도 엄밀하게 보자면 일본 게임의 어설픈 TPS의 모방이라기 보다는 근원적으로 이러한 실험과 유기적인 결합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데빌즈 서드는 이러한 유기적인 결합을 위해서 총을 쓰는 것과 근접전투의 영역을 명확하게 구분하면서도 전환이 쉽게 구성하였다. 트리거 버튼들은 원거리 공격이나 총기류를 사용하는 전투에 쓴다는 공식을 설정하고, 패드 버튼들은 근접전에 사용된다. 게이머는 근접무기와 총기류 무기를 마우스 클릭하듯이 짧게 한번 누름으로써 자연스럽게 전환할 수 있는데, 아주 급박한 상황에서조차도 게이머는 자연스럽게 총이나 근접무기를 선택해서 싸울 수 있다. 그리고 근접전의 경우 일종의 오토타겟팅 시스템이 있어서 무기를 휘둘러도 적이 있는 방향으로 자연스럽게 휘두르게 만들었다. 또한 근접전투 중에도 원거리의 상대를 처치할 수 있는 히든 카드 두개(무기 던지기와 점프 공격하기)를 배치함으로써 단순히 거리를 벌려서 총기를 쓰는 것이 정답만은 아니도록 설정하였다. 


어찌보면 당연하고 세밀한 시스템들이지만, 이 모든 것이 다 결합되었을 때 데빌즈 서드의 게임 흐름은 다른 게임과 차별화된 포인트를 갖게 만든다. 게이머는 넓은 맵을 뛰어다니면서 상대방을 찾아다닌다. 하지만 상대방을 찾은 이후로, 게이머는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이 많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게이머는 상대를 찾은 순간 총을 쏴서 원거리에서 싸울 수 있고, 총을 쏘면서 근접하여 상대를 압박하는 동시에 근접전투로 상대를 몰아붙일 수도 있고, 아예 상대가 나를 못봤다는 전제 하에서 근접전이나 무기 던지기로 기습을 할 수도 있다. 심지어는 기습을 당한 상대가 근접 공격 중의 텀을 이용, 회피로 거리를 벌린 후에 SMG나 샷건 같은 무기로 플레이어를 역으로 조질 수도 있으며 1대1로 싸우는 중에 끼어들어 난장판을 만들어버리는 것도 가능하다. 이 모든 것이 자연스럽고 부드럽게 이어지며, 캠핑 같은 짜증을 유발하는 요소는 일체 배제하였기에 게임은 유쾌하다고 할 수있으며 쏘고 찌르고 달리는 재미가 있다.


하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게임의 전체 흐름을 놓고 보았을 때이다. 데빌즈 서드의 문제는 정말로 괜찮고 재밌는 게임이 엉망진창인 디테일 밑에 파묻혀있다는 것이다. 싱글에서 적들은 멍청하게 서있는 경우가 다반사고, 프레임은 30프레임 미만인 것이 확실하게 보이며, 스테이지의 디테일이나 흐름은 심각할 정도로 엉망진창이다. 총기음이나 그래픽, 피격 판정, 모션 등은 마치 서든 어택을 보는 듯한 어설픔의 연속이다. 하지만 이 모든 것들은 인력과 시간의 문제라고 할 수 있다:그래픽이나 모션 같은 부분은 어찌보면 중요하지만 사소한 '디테일'의 문제라고 할 수 있으며,시간과 예산만 충분하다면 그 어느 게임이라도 분명하게 고칠 수 있는 부분이다. 데빌즈 서드는 바로 그 '분명하게 고칠 수 있는 부분' 때문에 게임이 엉망으로 보인다는 점에서 문제라 할 수 있다.


물론 데빌즈 서드가 나오는 과정에서의 우여곡절을 생각하면 데빌즈 서드의 발매 자체가 오히려 '행운'이라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THQ의 도산과 2년간의 공백, 예산의 부족으로 인해서 자연스러운 파쿠르 요소를 최대한 축소시킨 점(2011년에 처음으로 공개된 트레일러와 2014년의 게임 플래이 트레일러 사이의 간극을 보면 명백하다:벽을 타고 달리거나 고저차가 있는 건물을 오르내리는 점 등에서 말이다) 등이 뚜렷하게 보인다는 점에서 데빌즈 서드는 그야말로 피눈물을 삼키며 만든 것이 뚜렷하게 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실은 냉혹하기 그지없다. 그러한 우여곡절 끝에 나온 게임이라도 그래픽이나 디테일 적인 측면에서 부족하면 사람들은 이에 호응하지 않기 때문이다. 


결론을 놓고 보자면 데빌즈 서드는 나름대로의 고민과 철학이 깔려있는 게임이긴 하나, 디테일의 부족 등의 문제로 인해서 이 게임을 긍정적으로 보고 싶어하는 본인조차도 이 게임을 다른 사람에게 선뜻 추천하기 어렵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데빌즈 서드는 단순히 유명한 디렉터가 만들었기에 괜찮은 게임이 아니라 나름대로의 고민과 생각이 있었고 그에 대한 어느정도의 결과물이 있었기에 나름대로의 의미가 있는 게임이라고 평가하고 싶다. 참고로 싱글플래이+멀티플래이가 함께 있는 버전은 위유 독점이지만, 멀티플래이는 PC로 부분유료화되어 출시 될 예정이기에 이 게임이 어떤지 궁금하신 분들은 부분유료 버전으로 구해서 즐기길 추천한다.






 

게임 이야기






기존의 게임들은 상품으로서 하나의 완결된 구조를 갖고 있었다:온라인 환경이 미비한 관계로 많은 게임들은 혼자서 즐길 수 있는 탄탄한 컨텐츠들을 싱글플래이의 형태로 구현하였었고, 이제는 찾아보기 힘든 턴제 특유의 핫시트(한 컴퓨터와 게임기를 두명 이상의 플래이어가 공유하여 턴을 돌아가면서 게임을 진행하는 것) 플래이나 2인용 플래이 같은 비 온라인 멀티플래이 환경 등을 통해서 게임은 상품이자 하나의 닫힌 세계로 자가 완결되었다. 그렇기에 게임을 산다는 행위는 하나의 완결성을 갖고 있었다:모든 것은 그 가격 내에서 끝나야 하기에 '제 값을 한다'라는 명제는 매우 중요하였다.

하지만 네트워크 인프라의 발달과 함께 온라인 환경이 게임 내로 도입되면서 게임은 게임 콘텐츠뿐만 아니라 게임 비즈니스 모델에도 많은 영향을 받고 변화하게 되었다:온라인으로 배급되는 패치는 고전 게임 특유의 만성적인 버그를 안정적으로 잡아주었을 뿐만 아니라,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게임 회사들은 고객에 대한 즉응성을 향상시키게 되었고, 더 나아가 지속적인 콘텐츠의 추가를 통해서 게임의 회전율 높이고 프로젝트와 프로젝트 사이에 발생하던 리스크(공백기 사이의 팀이나 프로젝트 해체 문제)를 덜어주는 역할을 맡았다. 즉, 온라인 환경의 등장은 DLC(Downloadable Contents, 다운 가능한 콘텐츠)라는 개념을 등장시키면서 게임을 제 값을 하는 완결된 상품이 아닌 지속적으로 확장되고 지출을 유도하는 일종의 서비스적 성격을 지니게 만든 것이다.

물론 상품으로서의 게임이 온라인 인프라와 접합하는 과정과 별도로 온라인 게임 같은 서비스로서의 게임의 개념이나 F2P(Free to Play, 부분 유료화), P2W(Pay to Win, 부분유료화 전략중 돈을 쓰지 않으면 이기지 못하게 만드는 게임 디자인을 지칭하는 용어) 같은 개념들이 함께 병렬적으로 진화하는 모습을 보여주었고, 그것이 역으로 전통적인 게임(패키지 게임 같은)에 영향을 끼쳤다고도 볼 수 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게임이라는 문화 자체가 상품과 서비스로서의 경계와 개념이 점점 모호해지고 있다는 점이고, 이것이 게임을 즐기는 게이머에서부터 게임을 만드는 게임제작자들에게까지 광범위하게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이슈가 되었다는 것은 아무도 부정할 수 할 수 없다. 그리고 여기서 더 나아가서 새로운 형태의 '지형'을 만들어내는 시도를 하는 게임들이 디즈니의 인피니티나 액티비전의 스카이랜더스, 닌텐도의 아미보 같은 소위 '스마트 토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상품으로서의 게임을 1.0, 상품과 서비스의 중간으로서의 게임을 2.0이라 본다면 스마트 토이 같은 게임 3.0 들은 DLC라는 게임의 확장 장치를 물리적인 형태, 장난감의 형태로 구현을 하고 있다. 물론 이러한 발상 자체는 아주 새로운 것은 아니다:오락실 터미널을 이용해서 TCG를 한다던가 등의 시도는 예전부터 있어왔고, 현실과 게임 사이를 다양한 방식으로 연결하는 가교를 만드는 시도는 그보다도 더 오래전에 있어왔기 때문이다.(여기를 읽어보면 좀더 흥미로운 예제들을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닌텐도 위나 3DS가 그렇듯이, 닌텐도의 아미보의 경우도 이미 90년대에 '원형'이 존재하고 있다.) 스마트 토이 자체가 갖고 있는 가능성과 잠재력은 그리 새로운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이 가능성과 잠재력이 새롭지 않은데도 어째서 지금 이 시점에서 다시 부각받고 있는지에 대한 분석이다. 물론 기술의 발달도 중요한 요인중 하나이다:NFC 기술이나 사물과 사물 사이를 이어주는 기술의 발전은 스마트 토이 같이 물리적인 플랫폼과 소프트웨어를 쉽게 연결시키는데 많은 도움을 주고 있다. 

하지만 엄밀하게 이야기한다면 기술이나 인프라의 발전은 오히려 부차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스마트 토이 이전에도 QR 코드나 바코드를 읽어서 랜덤한 케릭터를 만들어내는 게임이나 어플이 한 때 유행을 탔었다. 하지만 이러한 어플은 작은 조류에 불과했었고 큰 흐름을 만들어내지 못했다. 하지만 스마트 토이 시장은 급속도로 성장하고 있으며, 아미보의 경우 2014년 말에 발매되어 발매 4개월인 2015년 3월에 1050만 개, 7월 31일 기준으로 1470만개가 팔렸다. 아미보 하나를 10불로 놓고 계산을 해봐도 무려 1억 4000만불, 한화로 1400억에 육박하는 매출이 불과 7개월만에 발생한 것이다.(관련기사) 액티비전의 스카이랜더스 프랜차이즈는 2011년 발매된 이후로 약 4년 동안 30억불, 무려 한화로 3조(1년에 약 7500억원 정도)에 달하는 매출을 기록하였으며 2억 5천만개 이상의 장난감을 팔아치우는 기염을 토했다.(관련기사) 디즈니 인피니티 역시 스카이랜더스나 아미보에 육박하는 시장 점유율을 보유하고 있으며, 전통적인 완구 산업 강자인 레고도 스마트 토이의 형태인 레고 디멘션즈를 발매할 계획을 가질 정도로 스마트 토이 시장은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이것이 어떻게 가능한 것일까? 이러한 변화에는 너무나 뻔해서 보이지 않는 거대한 흐름이 존재하고 있다:스마트 토이는 단순하게 게임이나 다양한 기기들의 연결로 인해서 성공한 개념이 아니라, 거대한 프랜차이즈를 전제로 깔고 프랜차이즈와 게임이라는 매체, 경험, 더 나아가 완구화된 상품을 통해 물리적 실재를 소비한다는 느낌을 만들어내는 브랜드 마케팅의 결과물이라는 것이다. 디즈니 인피니티는 북미 대중문화의 1/3 정도를 혼자서 커버할 수 있는 방대한 프랜차이즈(디즈니 애니메이션과 픽사 애니메이션, 마블 코믹스의 케릭터들, 심지어는 현대 대중문화의 아이콘이라 할 수 있는 스타워즈까지)를 갖고 있다. 닌텐도의 아미보는 30년 동안 쌓아온 닌텐도 게임의 브랜드 이미지의 집약인 동시에, 아미보를 가교로 삼아 Wii U에서 3DS로 이어지는 가교이기도 하다. 디멘션즈도 닥터후나 DC 같은 쟁쟁한 대중문화 콘텐츠를 자신들의 스마트 토이에 접합시켰다. 그렇기에 스마트 토이의 성공은 기술력의 성공이 아닌 프랜차이즈화 된 대중문화의 관리, 상품화의 결정체이다. 스마트 토이는 대중문화의 역사와 브랜드에 소비하기 쉬운 형태의 소품적이고 대중에게 먹힐만한 신선한 기술을 접합시켰기에 가능한 것이다. 즉, 대중이 소비하는 스마트 토이는 단일한 상품이 아닌 거대한 브랜드의 일부이자 물리적으로 구현된 현현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흐름은 어떻게 보면 필연적인 결과물이다:대중문화 콘텐츠들이 점점 나이를 먹고 역사성을 갖기 시작하면서, 새로운 형태의 비즈니스 모델이 생겨나는 것이다. 그것은 단순하게 완결된 상품을 넘고, 지속적으로 업데이트 되는 넘어서, 더 나아가 서비스나 상품을 뛰어넘어서 브랜드를 소비한다는 개념이 등장하였다. 궁극적으로 본다면 게임도 더이상 서비스나 상품이라는 형태에 얽메이지 않을지도 모른다. 비즈니스 모델의 변화가 게임이라는 콘텐츠를 변화시킬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것이 게임이라는 문화를 긍정적으로 바꿀지 부정적으로 바꿀지는 더더욱이나 모른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미래는 지금 이 시간에도 계속해서 바뀌도 있다는 것이다. 본인은 그러한 변하는 게임을 보고 싶기에, 디즈니 인피니티 3.0을 구매해서 플래이하고, 리뷰를 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




디즈니 인피니티 8월 30일 미국지역 발매이다.





게임 이야기




좀 여유롭게 앉아서 데빌즈 서드 리뷰도 치고

스플래툰 리뷰도 쓰고

그러고 싶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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