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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이야기



하아 브레히트 글써야 하는데(딴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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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이야기





일상적인 삶에서 여러분들의 하루는 어떠한가? 상상해보자:아침 7시에 일어나서 아침을 먹고 커피 한잔을 마신 뒤에 자동차나 대중교통을 타고 출근한다. 그리고는 직장이나 학교에서 하루 일과를 시작한다. 하루 일과가 끝나는 저녁 6시 쯤에는 퇴근해서 저녁을 먹고 약간의 여가를 즐긴 뒤에 밤 12시 쯤에는 잠자리에 들 것이다. 금요일 저녁에는 진창나게 퍼마시고 주말을 편하게 즐길 것이다. 이렇게 적어놓고 보면 삶이란 대단히 단순한 것들의 연속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우리가 느끼는 삶이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어느날에는 아침에 일어났는데 기분이 우울할 수도 있고, 일이 잘 풀려서 기분이 좋아질수도, 갑자기 엉뚱한 일이 일어나서 당혹스러움을 느끼는 날도 있을 것이다. 우리가 정해진 규칙에 따라 삶을 살더라도, 삶은 꼭 동일하게 반복되는 것이 아니다:물론 가장 중요한 부분은 우리가 스스로 그 규칙 자체를 부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비록 그것이 대단히 힘들기는 하지만 말이다.


왜 게임 이야기를 하는데 삶의 이야기를 하는가? 게임을 하다보면 어떤 때는 게임이 쉽고 재밌게 풀릴 때도 있고, 어떤 때는 게임이 안풀려서 게임 자체가 재미없고 지루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혹은 처음에는 지루하게 느껴졌던 게임이 끝으로 갈수록 재밌게 느껴질 때도, 반대로 처음에 재밌던 게임이 진행하면 할수록 지루하게 느껴지는 경우도 있다. 게임이 게이머에게 제공하는 경험이란 게임을 플래이하는 동안 전적으로 '동일'하고 '균질'하게 제공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게임 플래이에는 분명한 온도차가 있다. 어떻게 보면 게임이라는 장르의 특질인 '경험'이라는 부분이 게임을 플래이하고 느끼는 감상의 스펙트럼을 다른 매체보다도 더 다양하고 선명하게 만드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물론 오해해서는 안된다:그렇다고 해서 이를 철저하게 상대주의적으로 접근하자는 것은 아니다. 게임이라는 텍스트가 존재하는한, 그 텍스트라는 중력에서 완전하게 벗어나는 경험을 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기서 다루고자 하는 것은 게임 플래이의 온도차라는 것이 있고, 그것이 어떻게 게임마다 다양한 형태로 드러나는가에 대한 짧고도 미진한 고찰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어떤 게임들은, 분명하게도, 대단히 적은 온도차를 보여주기도 한다:아케이드 류의 스마트폰 게임이나 콜옵 멀티류의 게임이 여기에 대표적으로 포함된다고 할 수 있다. 이들 게임들은 언제 어느 순간에 해도 비슷하고도 안정된 경험을 제공한다:하지만 이 뜻이 게임 자체가 '조용하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콜옵류의 멀티 플래이의 경우에는 게임 경험 자체가 대단히 자극적이며, 본인이 몇번 플래이해본 스마트폰 게임 더 펌(펀드매니저가 되서 주식을 사고 파는 일종의 아케이드 퍼즐 게임) 같은 경우에는 밀려오는 주식을 처리하는데 머리를 빠릿빠릿하게 굴려야 한다. 


게임의 온도차가 적다는 것, 게임이 일관된 경험을 제공한다는 것은 게임 자체가 느린 템포로 진행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본인은 이렇게 생각한다:이러한 일관되고 적은 온도차를 보여주는 게임들은 게임의 사이클 자체가 대단히 '짧게' 돌아가기 때문에 게임이 적은 온도차를 보여주는 것이 아닌가 라는 것이다. 게이머는 급변하는 상황에 빠르게 적응해야 하며, 그 적응 과정 자체는 격렬하며 자극적이며 한번 게임 하는 시간이나 리스폰 후의 플래이어의 생존 시간은 스탈린그라드에 떨어진 독일군/소련군 병사와 비교할 수 있을 정도로 드라마틱하게 짧다. 하지만 그 짧은 시간 동안 수많은 정보를 처리하는(콜옵의 경우에는 색적-사격-이동의 반복, 더 펌의 같은 경우 주식 가격 정보의 분석) 재미가 있으며, 무엇보다도 이 평균적이고도 일관적인 온도차를 깨부수는 '격렬한 순간'이 가끔씩 존재한다는 것을 우리는 간과해서는 안된다. 콜옵 같은 경우에는 그것이 킬스트릭의 형태라는 보상으로 이어지는데, 많은 게이머들이 콜옵 자체의 온도차가 적은 게임 플래이를 인지함에도 불구하고 이 '한방의 쾌감'을 잊지 못해서 게임을 지속적으로 즐기는 것이 아닐까 생각을 해본다.


온도차가 적은 경험을 제공하는 콜옵 같은 게임들은 어떻게 본다면 인스턴트 식품 같은 게임이라 할 수 있다:간단하게 즉석에서 편하게 즐길수 있으며 모두의 입맛에 맞게 자극적이라는 점에서 말이다. 그러나 그것이 나쁜 것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그런 게임들이 인기가 있다는 것과 그것이 게임의 플래이 경험에 있어서 한 축을 차지하고 있다는 점이다. 동시에 그와 정반대로 게임의 온도차가 극명한 게임들도 존재한다. 이런 경우에는 게임 플래이의 페이스가 느리고 빠르고를 떠나서 '게이머가 게임에 많은 것을 채워넣을 수 있을 때' 가장 극명하다고 본인은 생각한다:격투게임 처럼, 프레임 단위의 공방이 일어나며 게이머가 순간순간 모든 판단을 하고, 그 판단 모두가 게임 전체에 영향을 미칠 때, 그렇기에 매 순간순간의 라운드와 게임이 동일하지 않고 각기 다른 느낌이 들 때처럼 말이다. 


이런 게임들의 특징은 잘되는 게임들은 정말로 재밌고 독특한 경험을 선사하지만, 동시에 안되는 게임은 정말로 지루하기 짝이없는 경험을 선사한다는 것이다. 일례로 이볼브를 들어보겠다. 기본적으로 숨바꼭질의 룰을 따르는 이볼브는 술래 역을 맡은 헌터들이 몬스터를 쫒아서 수백미터 넓이가 되는 맵을 뺑뺑이 도는 플래이를 보여준다. 헌터가 몬스터 플래이어를 제대로 쫒아갈 때, 게임은 더할 나위 없이 재밌다. 몬스터 플래이어는 끊임없이 몸을 비틀며 헌터의 포위망을 빠져나가려 하고, 헌터는 초반 화력의 어드벤티지를 이용해서 몬스터 플래이어에게 타격을 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헌터의 팀웍이 조금이라도 삐걱거리기 시작한다면 게임은 이 세상에서 가장 재미없는 게임이 된다:헌터들은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는 몬스터를 쫒아서 수백미터가 되는 맵을 뺑뺑이를 돌며, 20분 내내 몬스터 얼굴 한번 보지 못한채 애꿎은 야생동물에게 총질만 하다가 끝날지도 모른다. 심지어 이는 게임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헌터나 몬스터 플래이어에게도 찾아볼 수 있는 현상이기도 하다.


엄밀하게 본다면, 이볼브의 문제는 게임 디자인 자체가 잘못되었다기 보다는 게임 디자인이 내포하고 있는 몇몇 전제들에 대해서 게이머들이 아직 낯설어 하는 인프라, 보이스채팅의 문제라고 본인은 생각한다:추적에 있어서 시각이나 청각적 정보는 중요하며, 포위망, 작전 등의 개념은 단순하게 커모로즈 같은 편의적 시스템만으로는 성취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볼브에 있어서 의사교환, 보이스채팅의 개념은 '백지를 채워넣는 행위'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다만 이 백지를 채워넣는 행위가 여타 다른 게임들과 다르게 인간과 인간 사이의 커뮤니케이션이라는 점에서 생소한 부분이 있었던 게 아닐까 생각해본다.


물론 크게 두가지 부류로 온도차가 크냐 작냐를 나누기는 했지만 사실 게임 텍스트가 갖고 있는 다양한 가능성과 매체적인 한계가 게임 경험을 온도차를 넘어서 다양한 형태의 게임 경험을 가능하게 할지 않을까 생각을 해본다. 위에서 논의한 것들은 어디까지나 시작하기 위해서 남겨놓은 일종의 메모라고 생각하시고 접근해주시면 편하겠다.




애니, 만화, 영화 이야기




유능한 프로그래머 ‘칼렙’(돔놀 글리슨)은 치열한 경쟁 끝에 인공지능 분야의 천재 개발자 ‘네이든’(오스카 아이삭)의 새로운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된다. 외부엔 알려지지 않은 그의 비밀 연구소로 초대받은 ‘칼렙’은 그 곳에서 네이든이 창조한 매혹적인 A.I. ‘에이바’(알리시아 비칸데르)를 만나게 된다. 그녀의 인격과 감정이 진짜인지 아니면 프로그래밍 된 것인 지를 밝히는 테스트를 진행하지만. 점점 에이바도 그녀의 창조자 네이든도 그리고 자신의 존재조차 믿을 수 없게 되고 모든 것을 의심하게 되는데…(네이버 영화 시놉시스)


창세기에 따르면 신은 여섯번째 날에 자신의 모습을 본따서 인간을 창조하였다고 한다. 이러한 자신의 모습을 본따서 인간을 창조하거나 인간의 모습을 하고 인간과 밀접하게 관계를 맺는 전지전능한 신이라는 모티브는 자주 찾아볼 수 있다. 특히 창세기에는 동물과 식물, 하늘과 땅 모두 각자 자기의 모습대로 만들었지만 오로지 인간만은 신의 모습을 본땄다고 한다. 그리고 이 신의 모습을 본따서 만들어진 피조물은 신과 특별한 관계를 맺는다. 신은 이들을 이끌고 벌하며, 인간은 신에게 이끌림을 받거나 거부하거나 혹은 비참한 최후를 맞이한다. 왜 창세기나 여타 신화에서 신은 자신의 모습을 본따서 만들어진 이 피조물들에 대해서 어떤 권력을 행사하려 하는가? 그리고 왜 이러한 모티브들이 여타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종교 경전들에서 지속적으로 등장하는가?


여기서 아감벤의 예외상태에 나온 비슷한 구절을 가져와서 비교분석해보겠다:로마 가족법에 있어서 아버지라는 가장의 권위는 법적인 권리가 아닌 아버지라는 지위에서 오는 '사실적인 지위'가 법적인 권리의 형태로 굳혀진 것이라고 보았다. 즉, 창조한 자의 '권위'란 창조당한 피조물과 어떠한 형식으로든 권력 관계를 맺고 있으며, 그것이 가족애든 가장의 권위이든 가정폭력이든 간에 기저에 깔려있다(나는 너를 창조했으니, 너에 대해 권리를 갖는다. 사실과 법의 혼재)고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신은 인간에게 마음대로 할 수 있다:그것이 폭압적인 강요든, 무조건적인 사랑이든 간에 말이다.


엑스 마키나는 어찌보면 이러한 연장선상에 있는 SF 영화다:인간은 자신의 모습을 본따 창조물을 창조하지만, 그것이 새로운 가능성인지 아니면 피조물과 창조주 모두의 파국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이러한 SF 장르의 이야기들은 다양한 형태로 논지를 발전시켜나갔다. 일례로 이 블로그에서 다룬 스플라이스를 보자(리뷰는 여기):스플라이스는 창조주와 피조물 사이의 이야기를 철학적이고도 심오한 이야기로 다룬 것이 아니라 창조주와 피조물의 관계를 근친상간과 비뚤어진 가족의 형태로 표현한 작품이다. 하지만 이 뒤틀린 막장드라마와도 같은 관계를 통해 영화는 창조주와 피조물 사이의 갖고 있는 위험하고도 아슬아슬한 관계와 파국을 훌륭하게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엑스 마키나의 경우에는 그것이 '성정치'적인 관계로 발현된다:왜 극중의 에이바는 '여성'이라는 뚜렷한 성 정체성을 갖고 있는가? 칼렙의 표현처럼, 굳이 인공지능이라면 여성이든 남성이든 가릴 필요 없이 어떤 형태라도 괜찮을 것이다. 하지만 네이든은 창조주를 닮은 인간 여성이라는 형태를 통해서 인간과 관계를 맺고 상호작용해야만 인공지능이 인간의 수준에 올랐음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고 주장한다. 일견 맞는 말일 수 있다:인간이 그것이 하나의 어엿한 지성을 가졌는지 여부를 판단하기 위해서는 인간의 관점에서 되돌아볼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우리가 개 모습을 하고 개의 사고 방식을 완벽하게 재현하는 인공지능을 만들었다 하더라도, 그것이 진짜 지성을 갖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일 수 밖에 없는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본다면 에이바의 탄생에는 전적으로 네이든의 뒤틀린 욕망이 숨어있다고 할 수 있다:에이바에게 섹스를 할 수 있는 기능을 부여한 점, 그리고 이전에 자신이 여성의 모습을 한 인공지능과 로봇을 만들었고 쿄코라는 메이드 겸 창부 가이노이드(여성형 안드로이드, 참고로 안드로이드는 남성형을 지칭한다)를 만들고 숨기고 있었다는 사실을 통해서 드러난다. 이는 폭압적이고 가부장적인 남성 네이든이라는 이미지를 보여주거나 그가 자신의 이상형인 여성형 가이노이드를 만들기 위해서 실험하고 있었다고 직접적으로 설명하지 않는다:오히려 영화는 이들을 배경으로 옮기고 관객에게 자연스럽게 의문을 갖도록 만들고 네이든의 의도에 대해서 추리를 하게 만든다.


영화는 이러한 과정을 자극적이진 않지만 담담하게, 그리고 무기질적인 톤으로 구축한다. 영화는 하나의 장소에서 벗어나지 않은 채 인공적이고 강박적이며 무균적인 환경에서 이야기를 진행한다. 실제 에이바의 CG 이외에는 돈이 들었을 것 같지 않은 저예산의 영화는 깔끔하고 강박적으로 컷을 배치하는데 집중한다. 그리고 이러한 컷 구성들은 쿄코와 에이바라는 존재들을 배경으로 밀어내고 탈색시킨다. 네이든이 쿄코와 에이바를 향해서 갖는 뒤틀린 성적 욕망은 인공지능과 튜링 테스트, 인공지능을 정의내리는 것이 무엇인가라는 두꺼운 껍질 아래로 숨어버린다. 하지만 영화는 이 무기질적이고도 두꺼운 껍질 아래에 깔려있는 음험한 욕망을 언뜻 언뜻 내비침으로서 관객이 창조주와 피조물 사이의 관계가 논리적이고 이성적이며 철학적인 문제가 아님을 깨닫게 만든다.


인공지능과 튜링 테스트라는 껍질을 뒤집어쓰고 영화는 자아를 가진 인공지능이 탈출하고자 하는 클리셰를 풀어낸다:칼렙은 에이바에게 동정심을 느끼며 심지어는 성적인 이끌림을 느끼기도 한다. 그렇기에 칼렙은 에이바를 사랑한다고 이야기하며 에이바를 네이든이라는 폭압적인 마초로부터 구해내고자 노력한다:하지만 여기에 거대한 반전이 숨어있다. 사실 네이든이 에이바를 디자인 할 때, 칼렙이 성적인 이끌림을 느낄 수 있도록 디자인(칼렙의 야동 취향을 토대로 만들어졌다고 한다)을 한 것이었다. 네이든의 테스트는 엄밀하게 튜링 테스트 그 자체가 아닌 에이바가 자신이 갖고 있는 모든 것을 이용하고 여성성을 자각하여 인공지능을 넘어서 개인으로서 자유를 추구할 것인지를 테스트하는 과정이었던 것이다. 즉, 칼렙이 에이바를 향해서 느끼는 애정 역시도 조작되고 통제되어있는 실험의 변수였던 것이다.


그렇기에 여기서부터 영화는 기존의 클리셰를 비트는 제 3의 대안으로 나아간다:칼렙 역시도 네이든과 마찬가지로 에이바와의 성정치적 관계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도 자신의 이상형인 에이바를 사랑하고 구한다는 기존의 성역할과 판타지에 사로잡혀있는 것이다. 그리고 에이바가 네이든을 살해하고 자유가 된 순간, 에이바는 칼렙을 네이든의 저택에 가두어버리고 홀로 저택을 떠난다. 마치 모든 사건이 해결된 이후 재결합이 아닌 떠남을 택함으로서 인간으로써 자기 자신을 되찾는 입센의 인형의 집처럼, 에이바 역시도 갇혀있는 여성과 구출된 여성이라는 클리셰 및 성적 대상에서 벗어나 우리가 예측할 수 없는 존재이자 독립된 개인으로서 자립하는 것이다. 이는 창조주를 증오한 피조물이라는 클리셰도, 자신의 관념이 투영된 피조물을 사랑한 창조주라는 클리셰 모두를 벗어난 제 3의 대안이며 훌륭한 반칙이다.


결론적으로 엑스 마키나는 훌륭한 SF 영화이다:영화는 창조주가 피조물을 만들어낼 때의 욕망과 에고를 여성과 남성이라는 관계를 통해 풀어내었고, 그것을 부숴버리는 엔딩을 제시함으로서 관객에게 독특한 경험을 제공하였다. 사실상 엑스 마키나가 소설가였던 감독의 첫 데뷔작이었다는 것을 감안한다면, 엑스 마키나 이후의 영화 역시도 기대된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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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이야기


땜빵~ 땜빵~

슬슬 바빠지는 시기가 오는데, 일단 쓰던 글은 마무리 짓고 잠수타도록 하겠습니다.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소재는 쌓여가는데 글을 쓸 수 있는 것은 점점 줄어들어가네요.

사실 이것도 심적인 부담 때문에 글고자가 되어가는 쪽에 가까운거겠지만.


게임 이야기




이볼브는 터틀락 스튜디오에서 만든 4 vs 1 경쟁 협동 FPS이다:게이머들은 몬스터 한 명과 헌터 4명으로 편을 가르고, 몬스터는 도망을 치고 헌터는 그를 쫒는 형식으로 게임이 진행이 된다. 게임의 분량이나 DLC 정책, 벨런스를 놓고 말이 많기는 하지만 이볼브의 기본 골격은 탄탄하고 재밌기 때문에 장기적으로는 후속작이나 보완책 등을 통해서 더 나아질 가능성이 충분하다고 본인은 본다. 호불호는 갈리겠지만, 취향만 맞으면 충분히 재밌게 즐길 수 있는 게임이란 의미다. 하지만 이볼브의 등장은 단순하게 새로운 게임이 나왔다는 것을 넘어서 새로운 형태의 멀티플래이 장르가 등장하는 가능성을 드러낸다고도 볼 수 있다.


기억하시는 분들도 계시겠지만, 레인보우 식스:시즈는 게임 리빌 트레일러에서 게이머들의 보이스챗 음성을 집어넣은 모습을 보여주었다. 아주 사소한 부분이지만 이는 매우 중요하다:게임 내에 있어서 채팅이라는 개념이 게임 콘텐츠를 직접적으로 보조하는 개념이 된것이다. 다만 채팅이란 시스템은 새로운 개념이 아니다. 게다가 보이스 챗 장비의 염가화 덕분에 보급된지 몇년이 지난 상태이다. 전략을 짜고 움직이는 AOS 장르나 RTS 장르, MMORPG에서는 채팅이나 보이스 챗이 필수적이라 이야기할 수 있다. 많은 MMORPG 제작자들이 채팅 등의 의사소통에 수단을 중요한 시스템으로서 정하고 세심하게 다듬는 것 역시 이러한 특징의 연장선상이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콘솔 중심의 FPS 장르는 어떠한가? FPS 장르, 특히 콘솔을 중심으로 흥한 콜옵식의 데스매치 중심의 멀티플래이 같은 경우는 그야말로 대화 한마디 일절 필요없는 단순함을 보여준다:게이머는 달리고, 쏘고, 죽이고, 죽는다. 이 과정이 짧게는 10여초에서 길게는 수십초를 한 싸이클로 삼아 돌고 돌 뿐이다. 물론 이러한 단순성이 수많은 사람들이 멀티플래이를 하게 만들었지만, 동시에 게임을 단순한 규칙에 가두어버리는 문제를 갖는다. 모던 워페어의 성공 이후, FPS 장르 또는 TPS 장르에서 멀티플래이는 큰 변화가 없었다. 게임은 빠르고 단순하며 반복적인 사이클에 갇혀있을 뿐이었다.


물론 조금 조금씩 이러한 문제에서 변주를 주기 시작한 장르적 흐름이 있었다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된다:코옵으로 불리는 협동모드 게임들은 플래이어와의 유기적인 협동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을 강조하였다. 친구와의 보이스 채팅 역시 이러한 코옵 게임들을 플래이하게 만드는 유입요소이기도 하였다. 하지만, 동시에 상대가 AI라는 점에서 코옵 게임은 복잡한 전략을 필요로 하지 않았으며, 커모로즈(단축키 등을 통해서 간단한 의사소통을 할 수 있는) 등을 통해서 간단한 의사소통은 빠르게 하는 등의 시스템적 보완으로 채팅이라는 기능을 보완하였다. 레프트 4 데드에서처럼 코옵 모드 매칭에서는 게이머가 특별한 채팅없이도 커모로즈와 인 게임 케릭터의 대사에서 얻는 정보만으로 전혀 모르는 게이머와 함께 협동하면서 게임을 풀어나가는 것이 전혀 어렵지 않았던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레프트 4 데드를 플래이 해봤던 사람들이라면 대전 모드를 떠올리시는 분들도 많으리라 믿는다:특수 좀비 4명과 생존자 4명으로 구성되는 레프트 4 데드의 대전 모드는 독특한 게임 시스템과 경험으로 많은 게이머들을 매료했다. 그러나 여기서 좀비측 역할을 맡는 게이머들은 다소 혼란스러운 상황에 자주 봉착한다:상대에게 최대의 피해를 입히기 위해서 모든 특수 좀비 4명이 그야말로 동시에 호흡을 맞춰서 생존자를 덮쳐야 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좀비측 게이머들은 필수적으로 '전략'을 세워야 한다. 하지만 FPS라는 게임 특성상, 키보드 채팅은 적합하지 않다:사실 이때부터 보이스 채팅을 이용한 전략-전술의 수립이 등장한 것이었다. 그외에도 난이도가 올라가고 각종 HUD가 꺼지는 리얼리즘 모드에서도 보이스 채팅을 통해 서로가 인지하지 못하는 정보들을 보완해야 한다.


레프트 4 데드 시리즈의 대전과 리얼리즘 모드에서의 실험과 그것이 가져다준 독특한 경험은 수많은 사람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겨주었지만, 대중화되지는 못했다고 할 수 있다. 레포데라는 게임 자체가 PC 기반이었기에 상대적으로 더 많은 수의 게이머가 플래이하는 콘솔쪽에서는 큰 파장을 일으키지 못한 점, 무엇보다도 콘솔 인프라가 이러한 파티플래이에 부적합했기 떄문이다:PS4의 파티 챗 기능(게임 중이라도 인게임 채팅이 아닌 파티채팅으로 분리시키는 기능) 등의 편리한 기능들은 과거 콘솔에는 부재하였으며, 또한 헤드셋이나 마이크 같은 부가적인 장비들이 기본적으로 지급되지 않았었기에 플래이어들이 이를 경험해볼 기회가 거의 없었다. 하지만 PS4와 엑원의 경우 이러한 기능들을 기본적으로 탑재함으로서 보이스 채팅을 할 수 있는 자연스러운 환경을 조성하였다.


그 결과, 눈에 띄지는 않지만 재밌는 결과물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데스티니를 보자. 데스티니는 세미(?) MMOFPS를 지향하는 작품이며, 레이드 모드 같은 경우에는 나름대로 복잡한 텍틱을 요구하기도 한다. 데스티니는 보이스 채팅 기능을 적극적으로 사용하라고 권유하며, 동시에 파티를 맺은 사람들끼리만 보이스 채팅을 공유하고 그 외의 타인과는 보이스 채팅을 하지 않게 만들어두는 등 보이스 채팅 시스템을 세밀하게 손보았다. 그 결과, 여타 MMORPG에서 볼 수 있는 복잡한 레이드 모드도 충분히 소화할 수 있는 게임이 되었다.


이볼브 역시도 이러한 환경과 흐름의 연장선상에 있는 게임이다. 팀웍은 필수적이며 게이머는 포인팅으로 다양한 사물을 가리켜서 정보를 공유할 수도 있지만 그러한 정보 공유를 넘어서 보이스 채팅을 통한 빠른 정보의 공유(아레나를 깔았는데 몬스터가 잡혔는가? - 몬스터가 어디로 이동하고 있는가? 등등)가 절실하게 필요하며, 때에 따라서는 단순한 전략 전술 계획을 세우는 등의 소통도 필요하다. 보이스 채팅이라는 요소가 이볼브라는 게임에 있어서 거의 필수적이라 할 수 있을 정도로 위상이 올라간 것이다. 


이렇게 게임 내에서 의사소통이 편리해지고 필수적인 요소로 자리매김한다면, 게임은 단순한 규칙을 벗어나서 좀더 복잡하고 게이머가 능동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할 수 있게 된다. 물론, 이러한 의사소통이 만사형통이라 할 수는 없다:이미 이전에도 데몬즈 소울-다크 소울 시리즈처럼 채팅 없이 제스처만으로 소통을 할 수 있게 만든다던가, 저니처럼 채팅 없이 오로지 이끔만으로 다른 게이머와 소통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는 게임 디자인의 승리이며, 아이디어의 승리이기도 하다. 하지만 보이스 채팅을 통해 이룩된 새로운 패러다임은 이러한 시스템 상의 보완을 뛰어넘어서 직설적이고 단순한 형태로 소통을 하는 것, 더 나아가서 보이스 채팅을 이용한 새로운 가능성을 가진 게임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여는데 의의가 있다.



게임 이야기




신나는 땜빵 포스팅~ 땜빵~ 땜빵~






게임 이야기



흥미로운 경향이 있다:3인칭 액션 게임이든 1인칭 액션 게임이든 간에 '파쿠르' 또는 '프리러닝' 요소를 도입한 게임들이 늘고 있으며, 그리고 그것이 마케팅의 주요한 키워드로 떠오르고 있다. 사실 이는 그렇게 놀라운 현상은 아니다. 도시의 복잡한 건물, 인공물, 지형들을 발판으로 삼아서 달리는 익스트림 스포츠인 파쿠르 또는 프리러닝은 대중문화 깊숙하게 자리를 잡고 있다. 심지어는 13구역 같이 그것이 '메인 키워드'가 되는 영화가 등장함으로서 과거 힙합과 랩이, 그라피티가, 플래시몹이 차지했었던 힙한 대중문화의 이미지를 이어받는 모습을 보여주고도 있다. 하지만 게임과 파쿠르의 결합에 앞서서 우리는 먼저 이런 질문을 던져봐야 한다:과연 파쿠르와 프리러닝이 게임에 있어서 '새로운' 요소일까?


여기 미묘하고도 섬세한 함정이 숨어있다. 파쿠르와 프리러닝, 그리고 게임과의 결합은 분명하게도 현재진행형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러한 흐름과 경향 자체가 게임 역사에 존재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고전 게임 페르시아의 왕자를 보라:이 게임에서 게이머는 모서리 난간을 잡고 오르며, 장애물과 계곡을 뛰어넘고, 함정들을 피하거나 살금살금 움직이는 등의 다양한 동작을 이용해 게임을 클리어하게 된다. 물론 현대적이면서 세련되고 쉽고 화려한 파쿠르에 비하면 페르시아의 왕자는 대단히 투박한 모습을 보여준다. 하지만 흥미로운 점은 현대적인 파쿠르/프리러닝 게임의 시조라 할 수 있는 작품이 페르시아의 왕자:시간의 모래라는 점, 그리고 시간의 모래가 페르시아의 왕자라는 게임의 전통을 이어받고 있다는 점에서 파쿠르와 프리러닝은 새롭게 도입된 개념이 아닌 '재발견된' 개념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이를 통해서 우리는 파쿠르라 인지하는 것이 과거의 게임에서도 찾아볼 수 있었고, 파쿠르나 프리러닝이 게임의 역사에 갑자기 등장한 존재가 아닌 예전부터 존재하던 개념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과거의 우리는 이러한 개념을 선반에서 선반으로 건너뛰어 움직이는 개념, 이동의 게임화라는 의미에서 플랫포밍이라 불렀다. 사실, 이는 어찌보면 말장난에 가까운 개념이다:파쿠르든 플랫포밍이든 사실 본질적으로는 게임 내의 이동과 이를 게임의 시스템의 일부로 끌어들이는 개념으로 사실상 동일한 개념에 가깝기 떄문이다. 하지만 여기서 지적하고자 하는 중요한 것은 플랫포밍이라는 개념이 파쿠르와 프리러닝을 포괄하는 더 넓은 개념이라는 것이다.


이는 무엇을 의미할까? 이렇게 보도록 하자:최근에 나온 다잉 라이트는 1인칭 프리러닝 액션 좀비 오픈월드 게임이다. 그리고 게임은 게임내의 플랫포밍 요소들을 프리러닝 게임 답게 구성을 해놓는다. 게이머는 난간을 오를 수 있고, 벽에 메달릴 수 있으며, 지붕에서 지붕으로 건너뛸 수 있다. 하지만 이 게임에는 장르적인 문제가 존재한다. 문제는 여기서부터 시작된다:왜 1인칭 프리러닝 액션 게임을 찾아보기 극히 드물까? 미러스 엣지 이후로 1인칭 프리러닝 게임은 사실상 전멸이라 봐도 무방할 정도로 그 수가 적었다. 이유는 간단하다. 게임에서 1인칭이라는 시점 자체는 프리러닝을 구성하기 힘든 시점이다. 언차티드같은 3인칭 액션 게임처럼 발판에서 발판의 이동루트를 확인할 수 있고 그리고 케릭터의 모션을 통해서 여기가 건너가도 되는 구역인지를 확인할 수 있었다면, 1인칭의 제한된 시점은 3인칭의 전지적인 관점은 제공해주지 못한다는 것이다.


다잉 라이트의 프리러닝은 엄밀히 이야기해서 절반의 성공을 거두었다. 게이머가 일직선으로, 수평으로 달려나갈때는 게임은 정상적으로 작동한다. 담장을 넘거나, 슬라이딩으로 바리케이드를 피하거나...조금만 익숙해진다면 이러한 장애물들은 즐길 수 있는 상쾌한 도전이 된다. 하지만 게임이 수직적인 이동을 요구하는 순간, 갑자기 게임은 답답하고 짜증나는 막장 게임으로 돌변한다. 어디에 난간이 있고, 어디로 나아가야 하는가? 사실 게임은 3인칭 액션 게임에서 많이 보여지는 '색칠된 난간'이라는 기제를 끌어들인다. 하지만 문제는 그 색칠된 난간이라는 기제조차도 1인칭의 제한된 시점 때문에 확인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라디오 타워나 빌딩 같은 곳을 오르는 대부분의 시간 동안 게이머는 추락사에 추락사를 거듭할 뿐이며, 짜증과 인내심의 한계를 시험하게 된다.


그렇다면 무엇이 문제일까? 여기에 아주 미묘하고도 중요한 개념이 숨어있다. 파쿠르와 프리러닝이라는 개념은 전적으로 케릭터의 '육체'를 사용하는 개념이다:하지만 과연 프리러너들이, 파쿠르를 하는 사람들이 자신의 시각만으로 프리러닝을 할 수 있을까? 다잉 라이트에서 경험했던 문제처럼 시각이라는 감각은 의외로 제한되어있는 감각이다. 어디까지나 가설에 불가하지만, 프리러너들은 달릴 때 시각 뿐만 아니라 촉각 등의 다양한 감각을 사용해서 자신의 균형감각을 찾고 장애물들을 건너 뛸 것이라 본인은 생각해본다. 그렇기에 단지 시각에 의존해서 달릴 수 밖에 없는 게임에서의 프리러닝 요소는 3인칭 카메라라는 보완물이 존재하지 않으면 성립하기 힘든 개념일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여기서 시각을 틀어보자:프리러닝이나 파쿠르 자체가 게임에 구현하는데 있어서 한계가 있었다면, 다른 게임들은 어떻게 이 문제를 해결했을까? 답은 명확하다:현실을 게임으로 들고 오는 것이 아니라, 지극히 게임적인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하면 된다. 예를 들어보자. 디스아너드의 경우, 순간이동이라는 개념을 들고와서 복잡 다단한 레벨 디자인을 플랫포밍의 형태로 구현하였다. FEZ의 경우, 시점의 변화를 통해서 발판에 매달리는 것이 아닌 '발상의 전환'을 하도록 요구하였다. 슈퍼마리오 갤럭시 2의 경우에는 중력을 통해서 세계가 뒤집히고 변화하는 모습을 플래이어가 보고 생각하고 판단하게 만들었다. 저스트 코즈 시리즈는 만능 그래플을 게임에 투입하였다. 어드밴스드 워페어는 엑소 수츠를 사용한 점프라는 개념을 도입하였다. 육체가 직접적으로 움직여야 하는 프리러닝의 개념을 넘어서, 이 발판에서 저 발판으로 건너가는데 어떻게 할 것인가? 라는 더 포괄적인 질문으로 이행하면 오히려 답은 명쾌하고 재밌게 풀리게 된다.


재밌는 점은 다잉 라이트 역시도 그러한 문제를 인지하고 있었다는 것이다:게임은 저스트 코즈의 그래플링 훅 개념을 도입하여 프리러닝과 결합시킨다. 그 결과, 그래플링 훅이 등장하는 시점부터 게임은 매우 부드럽고 명쾌하게 작동하기 시작한다. 물론 오작동과 판정의 이상함은 있지만, 그러한 문제 정도는 사소하게 느껴질 정도로 말이다. 하지만 문제는 그래플링 훅이라는 개념 자체가 게임에 있어서 부자연스럽게 등장한다는 점에서 전반적인 게임의 마무리의 난점이 있다라고 할 수 있다:그래플링 훅은 다잉 라이트 게임에 있어서 프리러닝의 결점을 보완하는 핵심적인 요소인데, 그래플링 훅을 얻는 과정 자체가 게임의 진행에 따라서 자연스럽게 해금하고 채득하는 것이 아닌 별개로 레벨을 올려서 해금을 해야하는 번거로운 과정을 거쳐야 한다는 것이다. 게임의 문제를 훌륭하게 보완할 정답을 찾아내고서는 그 정답을 알아보지 못할 악필로 휘갈겨 쓴 듯한 모습은 다잉 라이트라는 게임의 전반적인 완성도를 그대로 보여주는 부분이라 할 수 있다.






게임 이야기









일반적인 게이머들이 기억하는 고전 RPG들은 인플래이나 블랙 아일의 발더스 게이트나 플래인스케이프 토먼트, 뉴 월드 컴퓨팅의 마이트 앤 매직 시리즈, 오리진의 울티마 시리즈, 크론도의 배신자, 폴아웃, 시스템 쇼크 같은 게임일 것이다. 고전적인 PC RPG들은 90년대 중후반에서 2000년대 초반까지 PC 게임을 주름 잡았었다. 그러나 PC RPG가 흥하던 시대와 지금의 시대는 완벽하게 다르다:고성능 콘솔의 보급과 대규모 자본이 투자되는 트리플 A급 게임들의 등장, 헐리웃 영화의 연출문법 도입 등등 게임 업계는 매년 환골탈태하고 있으며 RPG 역시 그러한 흐름에 발맞추어 나가는 것처럼 보이고 있다. 하지만 그 속에 '과거'가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고는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지금의 RPG들은 과거의 경험들에서 얻은 교훈과 현재의 트렌드의 반영, 그리고 미래를 향한 '비전'을 갖고 있는, 그야말로 과거-현재-미래가 집약되어 있는 결정체라 볼 수 있는 것이다:마치 기나긴 RPG의 역사라는 바늘 끝 위에서 춤추는 천사처럼 말이다.

드래곤 에이지:인퀴지션이 만들어지기까지의 노정은 RPG를 둘러싼 과거와 현재, 미래 모두가 반영되었다고 할 수 있다. 고전적인 PC RPG를 재현하고자 하였던 드래곤 에이지:오리진은 RPG에 목말랐던 RPG 팬들에게 좋은 반향을 불러일으켰지만, 동시에 고전적 PC RPG와 콘솔 RPG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여기서 바이오웨어는 새로운 시도를 한다:최신 트랜드인 TPS와 SF 슈터를 잘 배합한 매스 이펙트 시리즈의 장점과 세계적인 흥행을 이끌고 있는 콜옵의 매력을 드래곤 에이지에 접목시켜 드래곤 에이지 2편을 만들어낸 것이었다. 하지만 짧은 개발 기간과 그에 걸맞는 짧은 게임 분량, 오리진의 정체성을 부정하는 듯한 과격한 변화로 인해서 드래곤 에이지 2는 호불호가 심하게 갈리는 작품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그 다음해 바이오웨어의 매스이펙트 3가 작렬하면서, 바이오웨어라는 브랜드 가치는 수직하락을 경험하게 된다.

이 와중에 나온 드래곤 에이지:인퀴지션은 그야말로 '아무도 기대하지 않은' 작품이었다. 하지만 인퀴지션이 거둔 성공은 단순하게 대중의 낮은 기대치 덕분이 아니라 과거의 실패에서 배우고 그 너머를 지향하고자 했던 바이오웨어의 노력이 거둔 결실이다. 드래곤 에이지:인퀴지션은 그렇기에 재밌는 작품이고, RPG에 목마른 누구에게든 간에 추천해줄 수 있는 작품이기도 하다. 그러나 인퀴지션은 근원적으로 한계를 갖고 있는 작품이기도 하다.

인퀴지션이 오리진이나 2편과 다른 자기만의 특징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거대한 세계일 것이다. 게이머는 다양하고 거대한 장소를 탐험하며 이야기를 진행하게 되며, 그 규모는 오리진이나 2편의 몇배에 달한다고 볼 수 있을 정도로 거대하다. 하지만 인퀴지션은 여타 오픈월드 RPG와는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이는 '거대한 세계를 탐험한다'라는 감각을 같이 보유하고 있는 스카이림과 비교하였을 때, 더욱 명확해진다. 스카이림이 게이머와 함께 호흡하고 움직이는, 게이머의 행동에 따라 변화하는 세계라면, 인퀴지션은 그러한 스카이림의 역동성은 갖추지 못하기 때문이다. 인퀴지션의 세계는 전적으로 정적이다:게이머가 퀘스트 이외에 게임 내의 세계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조금 저차원적인 예시이긴 하지만, 스카이림처럼 NPC를 죽이거나 강도질 하는 것이 인퀴지션에서는 전적으로 금지되어 있으며 게이머는 오로지 '세계를 구원할 영웅 인퀴지터'의 입장에서만 게임을 진행할 수 있다.

이렇게 변하지 않는 정적인 세계(엄밀하게는 변화와 상호작용 방식이 '정형화'된)를 만들어서 인퀴지션은 어떤 매력을 가질 수 있을까? 가장 눈여겨 보아야 할 점은 바로 '스토리텔링'이다. 인퀴지션은 오리진이나 2편이 그랬었던 것처럼 깊이있는 세계묘사를 하고 있으며, 동시에 방대한 양의 코덱스와 독특한 화풍의 일러스트(타로카드를 연상케 하는)들을 통해서 자신만의 색체를 공고하게 한다. 이렇게 매력적인 세계는 상호작용 자체가 줄이고, 대신에 게임의 양적인 부분을 늘림으로서 게이머에게 압도적인 스케일이라는 감각을 심어준다. 스카이림의 역동적인 세계와 비교하여 보았을 때, 인퀴지션의 세계는 정적이긴 하지만 경쟁작의 역동성에 대항할만한 스케일을 갖추었다.

재밌는 점은 이미 이러한 컨셉을 기반으로 킹덤 오브 아말러:레코닝이라는 게임이 만들어졌다는 것이다:실제 MMORPG 개발을 목표로 만들어진 프랜차이즈인 킹덤 오브 아말러는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를 벤치마킹하며 매력적인 세계와 거대한 스케일 등을 끌어들였다. MMORPG를 플래이하는 경험을 재현한다는 측면에서 보면 아말러와 인퀴지션은 많은 부분 유사점을 보여주지만, 재밌는 점은 아말러는 흥행 참패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것에 비해 인퀴지션은 2014년 GOTY를 휩쓰는 등 흥행가도를 달리고 있다는 두 게임의 상반된 결말이다. 이는 드래곤 에이지라는 프랜차이즈 전반을 통해 형성된 경험이 인퀴지션에 응축되었기에 성공하였기 때문에 가능한 결과였다:인퀴지션은 게임의 세계관에서부터 전투, 퀘스트 구성, 이야기 등등까지 드래곤 에이지의 모든 것을 담기 위해 고심한 흔적이 보여진다.


퀘스트 측면에서 인퀴지션은 전투-대화-전투 같은 원패턴을 탈피하기 위한 노력을 보여준다. 특히 드래곤 에이지 시리즈가 갖고 있는 최대 장점은 세계관과 설정을 살리기 위한 노력을 많이 기울이는데, 이는 일찍이 와우나 다른 MMORPG가 선취했었던 다양한 형태의 이벤트 기반의 퀘스트 시스템을 도입한다. 게이머는 공성병기를 조작하거나 간단한 형태의 퍼즐을 풀거나 등의 다양한 퀘스트와 할 거리를 접하게 된다.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겨울 궁정에서 벌어지는 올레이 제국의 궁정 암투를 게임의 메커니즘으로 옮겨놓은 것이다. 게이머는 여제의 암살을 막기 위해서 분투하는 동시에, 올레이 궁정의 복잡한 규칙에 맞춰서 움직여야 한다. 물론 스크립트에 의해 짜여졌으며, 답은 분명하게 정해져 있지만 이 경험 자체는 대단히 흥미롭고 신선하다. 물론 전투 중심의 퀘스트들도 많지만, 게임의 퀘스트는 다채로운 경험을 보장한다.

인퀴지션의 전투에 있어서 제작진들은 오리진과 2편의 좋은 점들을 합치고자 노력했다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본인이 보았을 때는 본질적으로 오리진이나 2편과는 다른 무언가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기본적으로 게임의 시점은 오리진 같은 쿼터뷰가 아닌 2편 같은 등뒤에 카메라가 있는 3인칭 시점이다. 하지만 인퀴지션은 오리진이나 2편의 탱딜힐 구분을 탱딜의 형태로 간소화시키고, 전사와 마법사에게 보호막 및 가드 포인트 스킬들을 줘서 체력 소모 자체가 일어나지 않게 만들었다. 그러나 동시에 체력 회복 수단을 물약으로 제한함으로써 게임은 게이머가 전투중에 피해를 최소한으로 받도록 운영해야 하는 압박을 느낀다. 낮은 난이도에서는 이러한 압박이 덜하기에 무난하게 액션 게임 하듯이 게임을 진행할 수 있지만, 난이도가 높아지면 높아질수록 체력 소모와 회복의 압박은 점차 심해진다.

그렇기에 게이머는 전투에 전략적으로 대처해야한다:게임은 전작들에도 있었던 일시정지 이외에도 오리진에서 볼 수 있었던 쿼터뷰 방식을 제한적으로 도입한다. 또한 다양한 스킬들을 조합해서 부가효과를 내는 것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가 된다. 이러한 과정에서 인퀴지션은 각 직업군마다 다양한 액티브 스킬을 부여하고, 케릭터와 케릭터가 정확하게 두 엑티브 스킬을 동시에 맞춤으로서 부가효과를 낼 수 있다. 데미지를 크게 입히거나, 적을 약하게 만드는 등의 부가효과는 플래이어게 케릭터를 육성할 때 어떻게 육성을 할 것인지를 고민하게 만들며, 다양한 직업 및 기술 조합을 시도하도록 유도한다. 스킬 리셋 목걸이를 상점에서 팔거나 동료가 주인공 케릭터 레벨에 맞춰서 레벨업을 하는 것은 플래이어가 다양한 기술조합을 할 수 있도록 배려해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전투와 퀘스트 이외에 게임은 전략 테이블에서 돈이나 자원, 명성 등을 얻거나 장소를 해금할 수 있게 만들어놓았다. 마치 스마트폰 게임을 연상케 하듯이 게임은 실제 시간이 흐르면 전략 테이블에서의 자원획득이 이루어지도록 구성해놓았다. 게이머는 레벨 이외에도 명성 수치를 얻어 인퀴지션 레벨을 올릴 수 있으며 이를 이용해서 게임에 도움이 되는 다양한 퍼크를 구입할 수 있다. 이렇게 레벨 시스템을 이원화한 것은 게이머가 게임을 하면서 명성을 얻는 것을 시스템의 일부로서 굳힌 것이라 평가할 수 있지만, 전투나 퀘스트로 얻는 경험치에 비해서 명성이 올라가는 속도는 상대적으로 느리게 느껴진다.


또한 게임은 자원이나 수집 요소를 너무나 강조하는 경향이 있다:일례로 게임에서 대부분의 장비와 소모성 포션류는 채집을 통해서 만들어지는데, 이 장비들의 대부분은 게임 필드 상에서 채집을 통해서 소재를 구해야 한다. 문제는 소재를 모으는 과정 자체가 지루하고 단조롭다는 것이다:맵은 더럽게 넓은데, 게이머는 그 넓은 맵을 돌아다니면서 무엇인지도 모르는 광물이나 약초를 하나 하나 채집해야 한다. 이러한 과정은 좀 더 간략하게 풀어낼 수도 있었을 것이다. 또한 퀘스트 이외에도 아이템 수집 퀘스트 같은 것들이 인퀴지션의 플래이 타임을 무의미하게 늘리는데 일조한다. 수집요소들이 이상한데 박혀 있지는 않지만, 게임의 무식하게 넓은 맵이 이러한 수집 과정을 단조롭고 지루하게 만드는데 일조한다.


인퀴지션의 이야기는 어떻게 본다면 기존의 드래곤 에이지 설정에 대한 '훌륭한 비틀기'라 할 수 있다:자세하게 스포일러가 될 부분은 언급하지는 않겠지만, 기존의 오리진과 2편의 상식을 부정함으로서 게임은 상상조차 하지도 못했던 방향으로 전체 프랜차이즈에 여파를 남긴다. 다만 초중반까지 인퀴지션을 둘러싼 다양한 인물들의 이합집산을 매력적으로 보여줬던 게임이 후반에 들어서는 너무 급하게, 그리고 아쉬운 형태로 이야기를 마무리 짓는다는 점은 감점 요소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인퀴지션의 그래픽은 훌륭하다:이것이 차세대라는 것을 온몸으로 드러내는 인게임 그래픽은 게이머를 매료시키기에 충분하다. 또한 뛰어난 그래픽과 광활한 맵이 결합되면서 다른 게임에서는 쉽게 접할 수 없는 독특한 경험을 제공한다. 그리고 게임 내의 음악은 훌륭하게 작곡되었으며, 게임의 테마곡에서 주점에서의 노래까지 모두 세세하게 작곡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또한 성우들의 연기 역시 오랜 시간 공을 들인 작품답게 방대한 분량과 훌륭한 연기를 동시에 잡고 있다.

그러나 인퀴지션에는 아쉬운 점도 있다:게임의 규모는 거대하지만, 게임에서 플래이어가 경험하는 모험의 내용은 그와 묘하게 겉돈다.(어떻게 보면 매스 이펙트 2와 3에서 느낄 수 있는 문제라고도 생각한다) 왜 인퀴지션의 지휘관이라 할 수 있는 주인공이 직접 필드에서 굴러야 하는 것일까? 위에서 지적한 채집이나 수집 요소 역시도 어떻게 보면 게임의 분위기와 겉도는 부분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부분은 게임 시스템이나 연출적인 부분을 통해서 보완할 수 있는 아쉬운 부분이었다.


또한 두번째 문제는 게임 외적인 문제이다:인퀴지션은 부정할 수 없는 훌륭한 게임이나, 이 게임이 만들어지기까지 약 4년의 세월과 그에 걸맞는 수많은 비용과 인력이 들어갔음을 간과할 수 없을 것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천문학적인 시간과 돈, 그리고 인력이 투입이 되면 그에 걸맞는 결과가 나오는 것은 놀라운 것이 아니라 '당연한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기에 인퀴지션은 재밌고 훌륭한 게임이다, 하지만 동시에 당연하게 그렇게 나왔어야 하는 게임이기도 하다. 물론, 그것이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새로운 부대에 새로운 술이 담기기를 희망하듯이, 새로운 콘솔에 새로운 철학과 플래이를 가진 게임을 기대하는 본인으로서는 다소간의 아쉬움을 느낄 수 밖에 없었다.


결론은 인퀴지션은 추천할만한 작품이다:게임은 돈값 이상은 넉넉하게 해내는 작품이며 재미 역시도 전작들의 장점을 들고 오면서 프랜차이즈의 방향성을 확립하고자 노력하였다. 물론 몇몇 간과할 수 없는 문제점을 갖고 있긴 하지만 말이다.







게임 이야기






오늘도 보람찬 땜빵~ 다음주 화요일, 2/10에 나오는데 그때 삽니다.


방송해야할듯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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