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이야기





(문제의 그 장면, 물론 승급 연출은 삽입된 것이다)




Quick Time Event, 통칭 QTE는 근 몇년 동안 게임에 있어서 약방의 감초 같은 역할을 해왔었다. 최근의 게임들은 지향점을 영화에 맞추고 화려하고 다양한 동작과 사건들을 게임의 구조에 삽입하고자 하였고, 그리고 QTE는 '미니 게임의 형태로써 게임의 형태를 갖추되 동시에 영화적 연출을 만족시키는 시스템'으로써 활약하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QTE는 그 문법과 시스템이 게임에 이질적일 수 밖에 없었다:QTE는 기본적으로 대본이 정해져있는 영화적 연출에 가까운 기법이고, 기본적으로는 그 어떤 게임에 삽입을 하더라도 게임에 유리될 수 밖에 없는 구조를 띄기 때문이다. 아마도 이 분야에 있어서 가장 끔찍한 사례는 아수라의 분노일 것이다:게이머들은 대본에 따라서 버튼을 누르는 게임을 즐기지 않는다. 그것은 게임이 아니라 인터렉티브 무비에 가까우며, 게이머가 개입할 여지가 거의 없어지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본다면 위 영상에서 나오는 콜옵:어드벤스드 워페어에 대한 사람들의 불만은 그렇게 이상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버튼을 눌러서 XX를 하세요' 같은 QTE가 판을 치는 이 시대에, 콜옵:어드벤스드 워페어의 QTE 연출은 그렇게 새롭지도, 더 엉망이지도 않았다. 그런데 왜 사람들은 이 QTE에 대해서 더 냉소적인 반응을 보이는 것일까? 이렇게 접근해보자:우리의 행동들은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간에 표면상에 등장하는 정보 이외에도 다양한 정보를 내포하고 있다. 그것이 타인에게 정보를 전달하기 위해 몸짓을 하는 제스처이든, 혹은 숨기고 싶지만 자신의 눈빛 등을 통해 드러나는 비언어적 정보들이 존재한다. 인간의 언어와 의사 전달 과정은 그야말로 복잡 미묘한 문제이며, 동시에 그러한 과정 중에 느끼는 인간의 감정이란 쉽게 표현할 수 있는 물건이 아니다. 


하지만, 게임에서 케릭터를 조작하는 것, '버튼을 눌러서' 게이머의 의사를 표지하는 것은 이러한 복잡미묘한 감정과 의미들을 거세시킬 수 밖에 없다:일전에도 본인이 글에 풀어놨듯이, 게임 속의 케릭터와 게임 바깥의 플래이어는 서로 유리되어 있으며, 그 가운데에 중간 매게자로써 컨트롤러가 플래이어의 의사를 게임의 문법으로 번역하여 게임 내의 케릭터에게 전달하는 형식을 취한다. 그리고 이 컨트롤러는 어떤 복잡한 행동이나 뉘앙스를 표시하는 것이 아닌, 동사 단위의 '행동'을 게임 내에서 구현한다:어떤 버튼을 누르면 케릭터가 '뛰어오른다', 어떤 버튼을 누르면 케릭터가 '총을 쏜다' 등등...즉, 인간의 복잡미묘한 감정과 드라마를 재현하기에는 게임을 조작하는 컨트롤러와 케릭터 사이의 문법은 너무나 '투박하다'는 것이다.


다시 콜옵으로 돌아와보자. 주인공 케릭터 미첼은 첫번째 미션에서 동료를 잃었다. 설정으로 보자면, 평생을 함께한 친우가 자신을 위해서 목숨을 내걸었고 그리고 주인공은 상실감과 박탈감, 무력감을 경험하고 있는 중이다. 이런 와중에 케릭터가 동료의 장례식에서 마지막으로 동료에게 경의를 표할 때 어떤 생각을 할까? 어떤 감정을 가질까? 그것은 쉽게 표현하기 힘든 복잡한 감정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바로 그 감정에 플래이어가 이입하려는 순간, 게임 스크린은 다음과 같은 문구를 띄운다:X버튼을 눌러서 죽은 동료에게 경의를 표하세요. 이는 여태까지 몰입을 방해할 뿐더러(마치 영화 클라이맥스 부분에서 나레이터가 아아 님은 갔습니다, 라고 변죽을 울리는 것과 같다) 그 복잡미묘한 감정이 발산되는 방법이 너무나 단순하고 정형적인 형태로 구현됨으로써 플래이어의 감정을 차게 식히는 문제를 만들어낸다.


하지만 문제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게이머는 X버튼을 누르기를 거부함으로써 더이상의 게임의 진행을 거부할 수 있는데 이 경우 게임의 모든 드라마가 허위와 가식이 된다. 위에서도 언급하였듯이 이는 QTE가 대본이 정해진 상태에서 대본을 읽는 것과 유사하다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즉, 버튼을 누르지 않고 주변을 무의미하게 뛰어다니면서 자신이 맡은 대본 속의 역할을 거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었을 때, 게임이 갖고 있는 드라마는 순식간에 허구가 된다. 


사실, 콜옵의 이 QTE 장면 같은 경우 그냥 자동진행으로 QTE를 삽입하지 않았다면 크게 문제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QTE를 삽입함으로써 QTE가 갖고 있는 고질적인 문제들을 그대로 까발리는 어처구니 없는 실수를 저질러 버린 것이다. 그렇다면 왜 제작자들은 게임에 이런 문제가 많은 QTE들을 삽입하는 것일까? 조금은 별개의 이야기지만 본인은 QTE의 출현이 게임이 영화적 연출을 지향하는 것과 함께 콘솔 게이밍이 대중화되면서 공통된 컨트롤러 문법으로서의 '패드의 출현'도 큰 한 몫을 했다고 생각을 한다. 과거의 게임들은 콘솔에서 다뤄질 수 있을만큼 단순한 조작 형태를 취하거나(슈퍼 마리오처럼 점프 버튼만으로 클리어 가능하듯이) 혹은 좀더 복잡한 게임의 경우에는(이 경우 대부분 PC라고 할 수 있다) 키보드를 이용해서 다양한 형태로 상호작용 할 수 있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시스템 쇼크 1편이나 2편 리뷰 영상들(http://youtu.be/Vnh0l_Ecpx4)을 예로 들어 보자. 여기서 우리는 현재의 게임에서는 쉽게 찾아볼 수 없는 다양한 형태의 움직임들이나 인터페이스 구조, 그리고 이를 통제하는 복잡한 조작 체계는 조작 문법이 통일되기 이전에 다양한 형태로 세계와 소통하는 게임의 모습을 엿볼 수 있다.


하지만 게임에 영화라는 지향점이 잡히고, 이를 실현할 플랫폼으로써 고성능 콘솔이 등장하면서 현세대 콘솔에 있어서 대중적 게임(소위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밀리터리 FPS 같은)이 등장하자 다양한 형태의 상호작용의 문법은 하나의 문법의 형태로 통일되게 되었고, 그와 함께 모든 형태의 다양한 상호작용(그것이 설령 동사 단위의 단순한 상호작용이라 하더라도)들은 콘솔의 패드라는 컨트롤러에서 구현될 수 있을 정도로 축약되었다. 그 결과, 다양한 버튼과 함께 다양한 형태로 상호작용하는 방식은 주류에서 밀려나 변두리로 쫒겨나게 되었다. 우리가 마주하는 다양한 게임의 다양한 QTE들이 형식적인 것 뿐만 아니라 실제 게임을 플래이할 때의 감각적인 측면에서도 동일하게 느껴지는 것은 패드라는 컨트롤러의 문법이 통일되었기 때문이라고도 볼 수 있는 것이다.


물론 모든 게임들이 QTE를 적극적으로 도입하고 문법을 통일한 것은 아니다:PC 게임들은 이러한 흐름에서부터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모습을 보여주며(여전히 키보드에는 키가 넘쳐난다), 닌텐도는 호불호가 갈리기는 하지만 '몸의 움직임'이라는 요소를 게임에 적극적으로 도입하였다. 또한 스마트폰 및 타블렛이 게이밍의 수단으로 등장하게 되면서 새로운 가능성이 열리게 되었다:스마트폰과 타블렛은 유저 인터페이스나 조작방식에 있어서 '폭넓은 수용'이 가능하지만, 그것이 제한적이라는 점에서 한계를 뚜렷하게 갖고 있다. 그러나 언제 어디서나 게임에 접근하고, '들고 다니면서' 플래이하거나 혹은 컨트롤러를 잡고 다양한 자세를 편하게 취할 수 있는 등 활용의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고 할 수 있다. 물론 현재의 콘솔 패드 컨트롤러의 문법이라는 패러다임이 쉽게 바뀌리라고는 상상하기는 힘들지만, 이러한 다양한 외부적인 문법들에서 새로운 문법이 도출될 수 있는 가능성이 등장할 수 있으며 이를 유추해볼 수 있지 않을까 상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