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11/07'에 해당되는 글 2건

애니, 만화, 영화 이야기



*이 감상 역시 모대학 과제 레포트로 제출된 것입니다.


사막의 라이온은 20세기 초기에 벌어졌던 이탈리아와 리비아 사이의 20년 전쟁을 다루고 있다. 이 영화는 실화이며 등장인물도 역사적 실존 인물의 실명을 그대로 활용하고 있다. 20세기 초, 당시 끊임없이 벌어졌던 강대국의 제국주의 전쟁은 아프리카에서도 예외가 아니었다. 영국은 이집트를, 프랑스는 튀니지아를, 스페인은 모로코를 점령했다. 그런데 이탈리아는 1910년부터 리비아를 침공하였으나 29년까지 교착상태에 빠진다. 그러자 무솔리니는 새 지후관 그라치아니를 파견한다.


한편 그의 상관 베드윈족의 지도자 오마르 무크타르로서 전직은 교사이며 적을 물리치는 것만이 평화로 가는 유일한 방법이라는 코란의 정신을 이어받아총을 들고 나선 탁원한 전술가이다. 이탈리아군에 의한 무자비한 양민학살이 지속되지만 무크타르는 사막전과 산악전에서 뛰어난 전술로 현대병기로 무장한 이탈리아군을 계속 패퇴시킨다. 평화라는 미명하에 작전상의 협상이 벌어지고 전쟁은 계속된다. 결국 이탈리아군은 리비아 사막 수백 마일에 4천 명의 인부를 동원해 수천 톤의 철조망 작업을 행하영 베드윈족 5천명을 강제 수용소에 수용하고 무크타르를 생포해 공개리에 교수형에 처함으로서 1931 9 16일 전쟁을 종결한다.


 사막의 라이온은 제국주의 열강 시기에 있었던 식민지 지역민들의 저항들을 다룬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사실, 20년간 리비아에서 이탈리아를 상대로 싸운 오마르 무크타르의 이야기는 어떤 의미에서 전세계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는 반 제국주의 비정규군, 파르티잔의 사례이자 표본으로도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무크타르와 그의 반제국주의 파르티잔이 이슬람이라는 종교를 중요한 구심점으로 내세운 점은 눈여겨 볼만하다. 이는 이슬람이 그들의 역사를 통해 입증된 무력과 확장에 특화되어 있는 종교이기에 무장 파르티잔들의 전술적 교리로써 기능한 것이 아니라, 기계적이고 효율적이며 제국주의적 폭력에 맞서 싸우는 평화적이고 전통적인 가치를 위한 지역민들이 내세울 수 있는 가치라는 점에서 더욱 주목할 만하다. 종교는 지역민들의 문화 공동체를 구성하는 중요한 부분이며, 이는 이슬람이라는 문화가 이러한 파르티잔의 문화를 부추기기 때문이 아니라 종교라는 구심점이 지역민들을 뭉치고 조직적으로 행동할 수 있게 만드는 기제로 작동한다:레바논 같은 이슬람-기독교 갈등 지역에서는 기독교 민병대가, 미얀마에서는 이슬람에 대항하기 위해서 불교도들이 무기를 들고 민병대를 조직한다. 이슬람이 폭력적인 종교라기 보다는 종교가 인간과 지역, 그리고 국가와 국가를 넘어서 세계에 끼치는 영향력이 사람을 조직적으로 행동하게 만든다고 보아야할 것이다.


우리는 이슬람 부흥의 역사가 정복전쟁의 역사, ‘한 손에는 칼, 다른 한 손에는 코란을이라는 화전양면 정책의 결과물로 보고, 이슬람이라는 종교를 폭력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종교라고 쉽게 판단한다. 하지만 문제는 이슬람이라는 종교가 만약 무력적이고 호전적인 확장만으로 이루어진 종교라면 수많은 사람들이 매료될 리가 없다는 점이다. 물론 이슬람이라는 종교가 발원했던 역사적인 특성상 코란과 교리에 많은 군사적이고 호전적인 부분들이 들어있을 수 밖에 없었고, 이는 당시의 맥락을 감안하여서 재해석하여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이슬람 파르티잔들에게 있어서 아주 극명한 대립을 발견할 수 있는 사례가 있다:소련-아프가니스탄 전쟁을 주도하였으며 판지시르의 사자라 불렸던 아흐마드 샤 마수드와 소련-아프간 전쟁 이후 그에 대립하였던 극단적 이슬람주의자 탈레반이다. 마수드는 아프간 전쟁 중에 이슬람 원리주의자로서 압도적인 물량과 기술력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아프간 무자헤딘들을 이끌어서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다. ‘진정한 이슬람 원리주의자답게 그는 저항하지 않는 자, 아이, 여자에게는 손을 대지 않았으며, 심지어는 아프간 전후 이후를 생각하며 여성의 교육과 권리에 많은 관심을 가졌고 수피즘 책을 들고다니며 읽는 등 다른 사상에 관용적인 태도를 보였다. 하지만 그에 반해 같은이슬람 원리주의자 탈레반들은 익히 알려진대로 수많은 인권 탄압과 유적 파괴, 학살, 테러 등의 행위를 자행하거나 방조하였다.


어떻게 이슬람 원리주의자라는 두 집단이 서로 정반대의 길을 걸었던 것일까? 그것은 아주 세밀하지만 중요한 차이에서부터 시작된다. 이슬람은(엄밀하게 이야기해서 모든 종교가 그러하겠지만) 시대와 장소를 뛰어넘는 메시지를 갖고 있기도 하지만, 동시에 그것을 전달하는 전통과 경전은 만들어진 그 시대에 사로잡혀 있다. 그리고 전통과 경전이 만들어진 시대가 갖는 권위는 결과적으로 새로운 해석의 가능성을 막는 닫혀있는 폐쇄적인 해석을 불러일으킨다. 하지만 문제는 종교의 본질은 장소와 시대를 뛰어넘는 보편적인 매세지 그 자체이며, 그것을 둘러싸고 있는 경전과 전통은 그저 눈에 보이는 무언가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따라서, 종교의 경전이나 그 어떤 텍스트, 이야기, 전통 등은 현재 시대의 맥락에 따라서 재해석되고 다시 이해되어야 한다. 경전에서 메시지 그 자체를 재해석해서 발굴해내지 않는 한, 경전에 적혀있는 가르침은 책 사이에 끼워져서 향기와 아름다움을 잃어버린 꽃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재해석의 문제는 필연적으로 곡해의 가능성을 수반한다. 멀리까지 가지 않더라도 이슬람-레반트 국가, 통칭 IS가 코란의 말씀대로 어린이 십자가형, 성노예, 대량 학살 등을 자행하고 있으며 분명 코란에 조항 자체로도 어긋나는 행위도 포함되는데도 이를 행하는 것은 이러한 곡해의 문제가 갖고 있는 위험성을 드러내는 것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이 어떤 균형을 이룰 수만 있다면, 오마르가 이야기했었던 것처럼 중요한 것은 균형을 맞추는 것이라 했듯이, 과거와 현재, 전통과 현실, 율법과 가르침 등의 사이에서 능동적인 균형을 맞추는 게 가능하다면 종교는 우리가 알고 있는 일반적인 이미지와는 다른 무언가가 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 더 이상 사람의 삶을 구속하는 기제가 아닌 삶의 구심점이자 새로운 영감을 불어넣는 역할을 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아흐마드 샤 마수드들의 말을 인용하며 끝마치고자 한다.

 

 

어떻게 아이와 여자를 죽이는 것이 지하드란 말인가?

-아흐마드 샤 마수드.

애니, 만화, 영화 이야기




*이 감상문은 모대학 과제 레포트로 제출된 것입니다.


영화 쉰들러 리스트는 실화에 바탕을 둔 영화이다. 영화는 먼저 독일군 점령지인 폴란드의 크라코우에 기회주의자인 오스카 쉰들러가 폴란드계 유대인이 경영하는 그릇 공장을 인수하러 도착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그 공장을 인수하기 위해 나치 당원이 되어 SS요원들에게 여자, , 담배등을 뇌물로 바치며 갖은 수단을 동원하여 공장을 인수하고, 인건비 한푼 안들이고 유대인을 이용하면서 한편으로는 유대인 회계사인 스턴의 도움을 받아 공장을 운영하여 큰 돈을 벌게 된다. 쉰들러는 성공가도를 달리며 큰 돈을 벌게 되나 나치의 유대인 학살 행위를 목격하게 되면서 그는 바뀌게 된다.


그러한 쉰들러의 현실 직시는 마침내 그의 양심을 움직이고 유대인을 강제 노동 수용소로부터 구해내기로 결심하게 된다. 문제는 이들 일명쉰들러의 유대인들을 어떻게 구해낼 것인가였는데 노동수용소 장교에게 뇌물을 주고 구해내기로 계획을 잡는다. 그리고는 그들을 독일군 점령지인 크라코우로부터 탈출시켜 쉰들러의 고향으로 옮길 계획을 하고, 스턴과 함께 유대인 명단을 만들게 된다. 그러한 모든 계획은 완벽하게 이루어지고 마침내 1,100명의 유대인을 폴란드로부터 구해내게 된다.


쉰들러 리스트는 훌륭한 휴먼드라마이다. 자극없이 절제된 이야기와 카메라 워크, 그리고 흑백의 모노톤을 통해서 빛바랜 이야기를 구성하려는 스티븐 스필버그의 시도는 훌륭하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스필버그의 라이언 일병 구하기가 갖고 있었던 껄끄러움이 쉰들러 리스트에도 그대로 드러난다:라이언 일병 구하기에서 살아남은 평범한 미국인 라이언 일병이 살았던 다사다난한 미국을 어떻게 보았을 것이며, 특히 베트남전이라는 불의를 그가 어떻게 보았을까? 이를 쉰들러 리스트에 역으로 적용하여 본다면, 학살의 아픔을 갖고 있는 유대인들은 레바논 전의 샤브라-샤틸라 수용소 학살 사건이나 중동전쟁의 역사를 어떻게 보았을까?로 바꾸어 볼 수 있을 것이다이렇게 반인륜적인 범죄행위에도 불구하고 살아남은 유대인들은 어떤 의미에서는 나치가 자행한 반인륜적 범죄를 팔레스타인을 위시한 주변국가에게 그대로 되돌려주고 있다. 팔레스타인과의 연이은 충돌, 혹은 레바논전 당시의 샤브라 샤틸라 수용소 학살 사건 등등 되찾은 시온의 역사는 그들이 발 붙일 땅을 찾는 과정에 겪었던 고난의 역사를 주변국에게 투영하여 돌려주려 하는 것 마냥 잔혹하며 무자비함으로 점철되어 있다.


혹자는 유대인들의 이러한 성향을 자신의 땅을 떠나 2000년간 전세계를 떠돌아다녔던 유대인들의 디아스포라의 역사에 비추어 볼 것이다. 유대인들은 2000년 동안 전세계를 떠돌아다니며 수많은 곳에 뿌리를 내렸음에도 유대인이란 정체성을 잃지 않았다. 수많은 민족들과 부족들이 세상이 바뀌고 시대가 바뀌어감에 따라 사라져갔지만, 유대인은 그들의 정체성을 끝까지 지켜내는데 성공했다. 이는 그들의 종교와 가르침에 기반한 것으로도 볼 수 있다.(가라타니 고진은 유대교는 최초로 국가와 사회가 멸망해도 살아남는 신의 개념을 만들어내었다고 평가한다) 혹은 유대인이 유럽이라는 세계에서 타자로서 살아남기 위해서 결국은 그런 강력한 정체성을 갖게 되었다고도 볼 수 있다. 그렇기에 유대인들은 기독교인들이라면 아무도 하지 않는 고리대업을 하면서 유대자본을 형성하고 강력한 경영정신으로 무장한 상인 집단이 될 수 있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어느쪽이든 간에, 유대인이란 유럽을 넘어서 오랫동안 전세계의 타자였었다. 그들은 동화되지 않으면서, 그들이 누구인지를 잊지 않았던 민족이었다.


하지만 역으로 그러한 타자로서의 유대인이 갖고 있는 특수성은 우리 아닌 것에 대한 적개심을 내포하고 있다고도 볼 수 있다. 일례로 수업시간 중 일부 감상한 지붕위의 바이올린처럼, 자신이 자신으로 유지할 수 있는 전통과 전통바깥의 존재들, 예를 들어 황제라든가 외부 마을 사람들에 대한 인식은 외부자에 대한 폐쇄적인 불신으로 점철되어 있었다. 어떤 사회이든 경직되면 경직될수록 외부에 대한 불신과 증오가 강할 수 밖에 없다. 그들의 믿음처럼, 자신들은 하나님에게서 선택받았으며 언젠가 그들의 땅을 수복할 수 있다는 믿음은 결국 외부의 사회에 대해서 나 이외에 상관없는 것들이라는 사고를 심어주기에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어찌되었든, 그들은 그들이 2000년 동안 돌아가기 원했던 가나안의 땅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그들이 진정으로 돌아온 것이라고 물으면 본인은 그에 대해서 회의적으로 생각한다. 유대민족은 다시 돌아왔지만 돌아온 이후로 지금까지 주변국과 수많은 민족의 피와 눈물을 흩뿌리며 그 땅을 지켜내고 있다. 엄밀하게 이야기하자면 그들은 그들의 고향으로 돌아왔지만 그들의 고향에서 그들은 완벽한 타자이다. 그들이 떠난 뒤 2000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그들의 고향에서 살고 있었던 이방인들’(상식적으로 본다면 이들이 원주민이겠지만)을 몰아내고자 하고 있기에 그들 자신이 바로 그들의 고향에 있어서 환영받지 못하는 손님이자 이방인이 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들이 이를 인식하지 못한다면 비극은 영원히 반복될 것이다.


하지만 그러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실마리가 바로 유대교의 내부에 존재한다. 그것은 바로 유대인이 왜 하나님에게 선택받았는가?’라는 것이다. 엄밀하게 이야기하자면 유대인이 하나님에게 선택을 받을 특별한 이유또는 서사적 당위성은 존재하지 않는다:그저 그들은 선택받았기에 선택받은 자이다 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유대인이 스스로 선택받았다고 믿음으로서 유대인은 유럽 역사와 사회에 있어서 타자로 자리매김 하게 되었다. 하지만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점은 유대인만이 유럽 사회에 있어서 단 하나뿐인 타자는 아니었다는 것이다. 유럽 사회에는 집시가 있었다, 현명한 여자(Witch)가 있었다, 장애인, 고아, 과부, 정신병자 등등의 다양한 타자가 있었다. 타자들은 사회에서 무력하게 우리 집단 또는 다수 집단으로 포섭되고 배제되어 왔었다. 하지만 유대인들은 포섭되기를 거부하고 끝까지 그들 자신으로 남아있었으며 이는 사회 윤리에 있어서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준다 할 수 있다.


그것은 바로 타자를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라는 문제이다. 사회나 집단은 항상 나 아닌 다른 누군가를 자신과 똑같은 색으로 물들이고자 한다. 다름이야말로 인간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이며 배격하고자 하는 것이다. 하지만 유대인은 그 다름을 스스로의 정체성으로 삼고, 감내하며 인고하여 끝까지 살아남았다. 그리고 그들의 고난의 역사는 확장하여 본다면 전세계의 소수자들과 타자들의 역사. 발터 벤야민이 역사에 있어서 비상상황이란 없었다. 역사는 언제나 비상상황이었다라는 명제를 통해서 주장하였던 것은 2차세계대전이 갖고 있었던 유일한 잔혹성이 아니라 전세계 역사에 내포되어있었던잔혹성 자체였었다. , 유대인의 역사는 유대인만의 역사가 아닌 전세계가 타자를 향해서 얼마나 잔혹해질 수 있는가?’라는 것으로 비추어볼 수 있다. 어떻게 본다면, 유대인이야말로 타자의 운명을 그대로 드러내기 위해서 사명을 띄고 신에게 선택받았다고 할 수 있다. 그렇기에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을 쓴 한나 아렌트는 아이히만 재판을 전세계 인류에 대한 범죄로 규정하고 재판을 했어야 했다고 주장하였다. 예루살렘과 유대 민족의 법정이 아이히만을 유대민족만을 위한 광대와 괴물로 만들고 있는 동안, 유대인 학살이 갖는 가장 근원적인 문제, ‘사회에 소속되지 않은 타자를 향해서 기계적이고 효율적인 배제를 도외시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재밌는 점은 쉰들러 리스트가 보여주는 이야기는 타자와 함께 살기의 단초를 제공하고 있다는 것이다. 오스카 쉰들러는 성인도, 지식인도, 위대한 사람도 아니었다. 그는 그저 전쟁으로 한탕 벌어보려고 했었던 부패한 상인이었으며 여자와 돈을 밝히는 속물적인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런 그가 그가 벌었던 전재산을 쏟아부어가면서 1100여명의 유대인을 구하고, 패전 후 도망치기 전에 자신들이 구했던 사람들 앞에서 이 금뱃지로 두명을 더 구할 수 있었는데이 차로 열명을 더 구할 수 있었는데…!’라고 울부짖는다. 3시간의 러닝타임 동안 그는 확연하게 변하였다:그것은 바로 그가 유대인 학살의 아픔에 공감하였다는 지극히 단순하며 인간적인 능력에 기초하였기 때문이었다.


오스카 쉰들러가 보여주는 것은 선의 평범성의 개념이다. 생각하지 않는 평범한 악의 개념과 다르게, 오스카 쉰들러는 인간을 구하기 위해서는 종교적 믿음이나 엄격한 도덕적 잣대, 혹은 지식이 필요하지 않다는 것을 입증하였다. 어떤 의미에서 그는 유대인들이 겪었던 수천년의 고난에 대해서, 더 나아가서 유대인과 유대교가 걸었던 수난의 역사를 마무리 지을 수 있는 중요한 단초를 제공하였다. 그것은 바로 타자를 배제하지 않고 함께 산다는 것이 그리고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문제과 세계 곳곳에서 마주하고 있는 수많은 비극들을 해결할 수 있는 아주 단순하면서도 중요한 실마리로 작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끝으로 이스라엘에 묻힌 오스카 쉰들러의 묘비에 적힌 어구를 인용하며 마무리를 짓도록 하겠다.

 

 

 

오스카 쉰들러는 흔해빠진 기회주의자요 부패한 사업가였다. 그러나 거대한 악이 세상을 점령하는 것처럼 보일 때 그 악에 대항해서 사람의 생명을 구한 것은 귀족도 지식인도 종교인도 아닌 부패한 기회주의자 오스카 쉰들러였다.

 

그의 영혼에 안식과 축복이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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