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09'에 해당되는 글 6건

게임 이야기




마리오 카트 8은 단순하면서 심오한 게임이다:레이싱 장르 특성상, 모든 주행에는 답(고스트)이 있다. 하지만 그 답에 가장 근접하기 위한 고스트와의 싸움은 게이머에게 결과적으로 기계와도 같은 주행을 요구할 수 밖에 없다는 문제가 있으며, 이는 트랙이라는 환경이 현실에 가까워질수록 게임은 게이머에게 더욱 완벽한 주행을 요구하게 된다. 물론, 수많은 게임들은 이러한 레이싱 장르가 갖고 있는 태생적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니드 포 스피드 라이벌에서는 다양한 추적 테크/도주 테크를 통해서 게임을 대결의 구도에 집중하도록 만들었다. 스플릿 세컨드는 레이싱 트랙을 폭파시켰다. 릿지 레이싱에서는 니트로를 도입하기도 하였으며, 번아웃에서는 충돌을 장려하기도 하였다. 시뮬레이션 레이싱이 아닌 레이싱 장르 게임들은 나름대로 이러한 레이싱 장르의 딜레마를 깰 수 있는 파훼법을 탐구해왔었다.


사실, 어떻게 보면 마리오카트 시리즈는 이 문제의식에 대한 근원적인 해결방법을 제시하는 게임이라 할 수 있다:트랙위에 떨어져 있는 아이템을 먹고 상대에게 써서 상대를 방해하고, 나는 앞으로 치고나간다. 마리오 카트의 이 단순한 논리와 게임시스템은 지금까지 수많은 레이싱 장르가 골머리를 썩히고 있는 문제에 명쾌한 답을 제시한 사례이며, 심지어 이는 20년전의 게임인데도 여전히 통용된다는 점에서 놀랍다고 할 수 있다. 물론, 마리오 카트 시리즈가 레이싱 게임이 가질 수 밖에 없었던 근원적인 문제에 대해서 미래를 내다본 심오한 통찰을 하였기에 그러한 게임을 만들었다고는 절대 말 할 수 없을 것이다. 오히려 마리오 카트의 해결책이 20년이 지난 지금에도 통용될 수 있었던 것은 처음부터 레이싱이 갖고 있는 또다른 속성인 타인과의 '경쟁'에 초점을 맞추었기 때문이라고 본인은 생각해본다.


마리오 카트 8은 그렇기에 단순하면서 심오하다. 하지만 마리오 카트 시리즈는 아이템을 사용한 경쟁이라는 측면에서 완벽한 주행의 개념을 깨뜨리고 있다고 해도 주행 자체를 무시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마리오카트 8의 경우 반중력 기믹을 게임에 적극적으로 도입하여 게임의 트랙을 복잡하고 화려하게 꾸미는데 성공한다. 게이머는 주행 도중에 벽면을 타고 달리거나 거꾸로 메달려서 달리는 등의 상황을 종종 경험하며, 상당히 재밌는 경험이다. 하지만 일반적인 중력에서의 시점과 다른 시점들, 즉 벽을 타고 달리거나 혹은 거꾸로 매달려서 달리거나 하는 등의 시점들을 경험할 때 사람들은 공간지각능력의 한계를 느끼기 십상이다. 특히 그것이 레이싱 같이 코스를 보고 어떻게 주행을 할 것인가 라는 판단과 경쟁자의 움직임에 대한 시뮬레이션이 머릿속에서 동시에 이루어져야 한다면 말이다. 이렇게 놓고 본다면 마리오 카트 8은 대단히 어려운 게임이 될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중요한 점은 마리오 카트 8은 그러한 함정에 빠지지 않았다는 것이다:마리오 카트 8은 트랙이 뒤집히든 말든 간에 자신이 가야할 길을 빠르게 예측하고 달릴 수 있도록 트랙을 디자인 했기에 게이머의 공간지각능력을 테스트하기 보다는 '중력을 거스르며 달린다'. '오 이거 신기하네/재밌네'라는 감각을 게이머에게 심어준다. 또한, 재밌는 점은 이러한 기믹들이 단순한 연출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트랙에 변화하는 기믹을 집어넣거나 다양한 루트를 선택하게 만들어 놓음으로서 게이머가 트렉에 대해 전략적인 사고를 할 여지를 제공한다. 


예를 들어서, 화산 맵의 경우에는 트렉이 계속 무너지며 변화하기에 게이머는 무너지는 패턴을 보고 숙지하면서 자신의 진로를 결정해야 한다. 또한 이 트렉의 경우 곳곳에 대안 경로가 존재하기 때문에, 최대한 후발주자들의 아이템을 피하면서도 선발주자를 재빠르게 따라잡을 수 있는 루트를 찾아내거나 혹은 선발 주자에게 아이템을 한 세트 먹여줄 수 있는 탁트인 트렉을 선택하여 기회를 엿봐야한다. 대부분의 트렉들은 이러한 전략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포인트들이 있으며, 심지어는 트렉 자체가 하나의 플랫포밍 스테이지적인 성격을 띄는 지점도 있다:악명높은 레인보우 로드의 경우 가드레일이 없기에 주행을 조심스럽게 진행해야 하며, 헤이호 광산(이름이 기억이 잘 안나서 죄송...) 같은 경우에는 강물을 따라 내려오는 땟목 발판에 가속 부스터가 달려있어서 이를 밟고 강물을 거슬러 올라와야 한다. 이렇게 트랙들의 다양한 기믹들을 통해 마리오 카트 8의 트렉은 완벽한 주행을 위한 공간이 아니며 상대방을 고려할 수 밖에 없는 전략적 주행의 공간이 된다. 


그리고 마리오 카트 8의 트렉의 구조는 아이템으로 상대방을 방해하며 나는 앞으로 나아간다 라는 게임 시스템과 결합하면서 치열한 각축의 장으로 변한다. 하지만 그것이 격투 게임이나 다른 게임들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프레임 단위의 조작이나 정교한 스킬을 요구하는 경쟁이 아니다. 마리오 카트 8의 아이템들은 강력하지만 단순하며, 대안 루트들은 다채롭지만 복잡하지 않다(따라가다 보면 자연스럽게 진행할 수 있다) 그렇기에 마리오 카트 8은 진입장벽도 낮으며, 즐기기도 편하지만, 밑바닥이 일천하여 금방 끝나버리는 것이 아닌 오래 즐길 수 있는 경쟁 시스템을 갖추었다고 할 수 있다.


그 외에도 마리오 카트 8에서 다룰만한 재밌는 지점들은 바로 게임 리플래이의 공유가 일어나는 마리오 카트 TV일 것이다. 게이머가 싱글이든 멀티든 플래이를 진행하면 그 플래이는 리플래이의 형태로 기록이 되며, 게이머는 전체 플래이를 보거나 마리오카트 TV에서 골라준 하이라이트를 볼 수 있다. 그런데 이 하이라이트를 선정하는 마리오카트 TV의 성능이 너무나 대단해서, 그냥 평범한 게임에서조차도 훌륭한 리플래이를 뽑아내기도 한다는 것이다. 이를 마리오카트 TV 통해서 전세계인들과 공유하거나 유튜브로 곧바로 전송할 수도 있다는 점에서(물론 유튜브 전송은 상당히 느려터진 기능이긴 하다) 마리오카트 TV는 간단하고 편하게 게임 플래이를 다른 사람과 공유할 수 있는 게임 내의 커뮤니케이션 및 문화 공유 수단이라 할 수 있다. 그것이 별다른 SNS를 거치지 않고 마리오 카트 TV라는 시스템 내에서 통용된다는 것을 생각하면 폐쇄적이지만, 이는 어찌보면 닌텐도가 노리는 노림수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결론적으로 마리오 카트 8은 닌텐도가 Wii U로 보여줄 수 있는 명작이며, 여전히 닌텐도가 퍼스트 파티 게임에 있어서는 타의추종을 불허한다는 것을 보여준 작품이다. 물론, 혹자는 마리오 카트 8 조차 Wii U라는 하드를 견인하지 못했다고 평가한다. 닌텐도는 망했으며, PS4의 세대가 왔다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닌텐도가 마리오 카트 8처럼 자신이 무엇을 해야하는지 분명하게 알고 있다면, 끝까지 이 치열한 경쟁의 장에서 붙어서 살아남고 다시 되돌아 올 수 있는 기회를 움켜질 수 있을 것이다. 누군가 이야기했듯이 '오래된 친구' 같은 게임을 만드는 것이 닌텐도이며, 버니홉의 표현대로 '객관적으로 끌릴만한 요인은 없지만 이상하게도 관심이 가는 콘솔'이 바로 닌텐도 콘솔이기 때문이다. 


물론 닌텐도가 마리오 카트 8에서조차 위유 패드를 강제하겠답시고 순위표를 패드 액정에 박아넣는 짓을 하기도 했으며, 타블렛 패드라는 것을 놓고 자신들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는 난항을 겪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것 역시 사실이다. 또한 2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슬슬 달릴 준비를 하고 있으며, 경쟁자인 PS4와 엑원이 자신을 제치고 추월하는 이 시점에서조차 버벅거리거나 변화에 뒤떨어진 모습을 보여주는 것은 아슬아슬하다고 평가할 수 있겠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닌텐도가 보기보다는 그렇게 멍청하지는 않다는 것이다:발매 1년이 다되어 가는 PS4와 엑원이 그 하드로 할 수 있는 독점 게임에 있어서 난항을 겪고 있다는 것은 이미 익히 알려진 이야기며, 닌텐도는 여전히 그 독점 소프트에 있어서는 타의추종을 불허하는 강점을 가진 회사이기 때문이다. 이는 기술집단의 성격으로서 닌텐도라기 보다는, 게임에 대한 '철학'을 공유하는 집단으로서의 닌텐도가 갖는 강점이다. 마리오 카트 8은 닌텐도의 감각이 아직 녹슬지 않았다는 것을 훌륭하게 입증한 게임이며, 앞으로의 닌텐도의 행보에 주목할만한 가치가 있다는 것을 충분히 입증해낸 게임이다. Wii U를 사시는 분이라면, 첫 타이틀로 꼭 추천하고 싶은 게임이라 할 수 있다.




게임 이야기




미카미 신지가 제작하고 있는 이블 위딘은 데드 스페이스 이후 오랫동안 게이머들이 잊어왔던 '악의'의 날카로운 감각을 일깨워준 물건이라 할 수 있다. 악의란 호러 게임을 이루는 가장 근본 요소이다:하지만, 데드 스페이스가 1편에서 2편, 3편을 거쳐온 과정을 통해 볼 수 있듯이, 호러 게임 프랜차이즈에서 악의는 본질적인 요소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손쉽게 무뎌져버리는 감각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블 위딘의 강점은 악몽과 쏘우의 어느 중간 지점에서 탈출구 없는 세계를 만들어내고 있다는 것이다:적들은 당신을 죽이려고 발악하며, 끔찍한 연출의 컷씬과 고어 장면들, 쉴세 없이 몰아붙이는 스토리의 형태(내가 너한테 무슨짓을 할 지를 알고도 살아있을 수 있을까?)로 살아남는 순간의 안도는 무화된다.

이러한 악의는 호러 게임이기에 가능한 특권이며, 오래 유통된 악의는 쉽게 무뎌진다는 점에서 호러 게임 장르는 다른 게임 장르와는 비교 불가능할 정도로 경량화되고 기민하며 재빠른 움직임을 보여준다. 데드 스페이스가 이벤트 호라이즌의 고딕 SF 호러를 끌고 들어오고 대략 3편이 나올때까지 5년 동안 승승장구했었지만, 데슾 3의 재빠른 몰락과 동시에 PT나 이블 위딘 같은 새로운 형태의 호러가 고딕 SF 호러를 쳐내고 새로운 트랜드를 주도하기 시작했다. 이와 비교해서 모던 워페어류의 밀리터리 슈터류는 모던 워페어 이후 여태까지 약 7년 동안 그 본질적인 감각은 변화하지 않고 있으며 오히려 더욱 더 공고해지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MTV적이고 빠르고 화려한 편집의 모던 워페어와 끈적거리고 불쾌한 연출의 트라이아크 콜옵의 사이에서, 밀리터리 게임은 마치 진자처럼 이리갔다 저리갔다를 반복할 뿐이다.

이블 위딘에서 특기할만한 지점은 바로 마치 뇌를 후벼파는 듯한 게임 연출이다:혹자는 악몽을 연상시킨다고 하지만, 본인은 지각 마취 상태에서 뇌수술을 하는 것과 유사하다고 생각한다. 이블 위딘의 연출들은 끈적거리고 들러붙는 기분을 유발하는 것들이 아니라 마치 눈과 뇌를 후벼파듯이 순간적으로 큰 자극을 가하고 충격을 가하는 쪽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이는 '이해할 수 있는' 악몽이라는 측면에서 사람을 기분나쁘게 만들고 악의적이라 할 수 있는데, 먼저 탈출할 수 없다는 감각(내가 이 세계를 만들었다, 너는 나를 가둘 수 없어)을 전제하고 이를 기분 나쁜 암시와 불길한 이미지들(왜 루빅은 세바스찬을 알까? 이 모든 것들이 세바스찬이 불운하게 휘말려 들어서 생긴 문제일까, 아니면 본질적으로 세바스찬이 우리가 모르는 '무언가'이기에 생긴 문제일까?)로 구체화함으로서 게이머의 전두엽을 뚫고 가장 깊숙한 곳에 적과 세계, 그리고 더 나아가서 주인공에 대한 불신과 기분나쁨을 심어버린다. 

이러한 악의는, 어떤 의미에서는 굉장한 모험이라 할 수 있다:소위 트리플 A급 게임들은 절대다수의 대중이 구매하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 인디 게임처럼 소수타겟을 노리거나 자신들이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는 재량은 트리플 A급 게임 제작자들에게는 거의 없다. 절대다수의 대중이 게임을 구매해야 트리플 A 게임이 존속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운이 좋은 소수의 제작자나, 혹은 더욱 능력이 좋은 극소수의 제작자 만이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만들면서 대중을 만족시킬 수 있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미카미 신지는 천재적인 개발자거나 아니면 극단적으로 운이 좋은 개발자라 할 수 있을 것이다:그는 이미 바이오하자드로 호러 게임 장르에 한번 새로운 시대를 열었으며, 운이 좋다면 이블 위딘과 함께 새로운 시대를 열 수 있을 것이다. 어찌되었든 악의의 재정의가 이루어지고 있는 지금 이 시대에 이블 위딘의 성패는 단순하게 한 게임의 성패를 가르는 것이 아닌 호러 게임 전체의 방향성의 변화와 성패를 놓고 벌이는 거대한 도박판이며, 이러한 변화의 흐름은 주의깊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본인은 생각한다. 


이블 위딘은 한글화가 확정되었으며, 10/29 발매 예정이다.




게임 이야기





PS2를 갖고 계신 분들이었다면 령 제로 시리즈를 기억하시는 분들이 많을거라 생각한다:한글화 되었으며, 독특한 게임시스템과 호러 게임으로서의 감수성을 지닌 작품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기억함에도 불구하고 령 제로 시리즈는 그렇게 항상 재미를 보는 게임은 아니었다. 령 제로 누레가라스의 무녀가 나오기 전인 현 시점에서 시리즈 전체 누적 판매량이 130만장이라는 것은(http://www.cinematoday.jp/page/N0062343) 한 작품당 대략 30만장 전후를 팔았다는 계산으로 나오기 때문이다.(전세계 통계인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일본외 시장에서 령 제로가 성공했다는 이야기는 본인으로서는 금시초문이다.) 심지어는 월식의 가면의 경우에는 닌텐도 자본이 들어간 작품이었으며, 누레가라스의 무녀가 나오기 전까지는 팬덤 사이에서 시리즈 전체가 이미 고사했다고 잠정적인 결론까지 난 상태였다. 하지만 령 제로에 본인이 주목하는 것은 메인스트림 호러 게임들과는 다른 감성으로 호러라는 테마에 접근하는 대규모 자본이 들어간 게임 프랜차이즈라 볼 수 있기 때문이며, 이는 메인스트림 호러 게임과는 다른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하는 미싱링크로서 기능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령 제로가 다른 호러 게임들과 어떻게 차이가 나는지를 알아보기 위해서는 예가 필요하다:데드 스페이스 시리즈의 경우에는 기본적인 게임의 베이스가 서구권의 B급 호러 SF영화이다. 뒤틀린 신체와 피칠갑, 죽일듯이 달려드는 괴생명체들과 살아남기 위해서 발버둥치는 주인공 등등의 요소로 구성된 데드 스페이스가 취하고 있는 공포의 전략은 지극히 '육체적'이다. 게이머는 죽음의 이미지를 한 괴물들이 증식하고 감염하는 과정을 바라보며 나 또한 저렇게 될 수 있다 라든가 어떻게 저렇게 뒤틀린 육체를 가질 수 있는가 등의 시각적인 충격 혹은 고통에 공감할 수 밖에 없다. 그렇기에 호러 게임에서 게이머는 주인공에 이입하며 절박함을 느낀다:데드 스페이스의 경우에는 디바이더에게 사로잡힌 아이작의 데드신을 예로 들 수 있겠는데, 디바이더의 부속지가 아이작의 목을 뜯어내고는 아이작의 몸을 차지하고 돌아다니는 장면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소름 끼치는 감정을 경험했으리라 본다. 나의 분신이 감염되어 그들이 된다, 그렇기에 이를 피해야 한다, 라는 단순한 논리가 게이머의 원초적인 감성을 건드리는 것이다. 그리고 데드 스페이스와 마찬가지로 대부분의 호러 게임에서는 주인공과 그 주변인물, 괴물들에게 가해지는 신체적 변이라는 측면에서 게이머를 공포로 몰아넣고 공감하게 만드는 전법을 취한다.


하지만, 령 제로는 조금 다르다:령 제로의 공포는 통칭 J호러의 그것으로부터 출발한다고 할 수 있다. 육체를 갖지 못한 원령들은 산 자를 아무 이유 없이 습격한다. 죽음은 감염되나, 그것은 육체적인 것이 아니라 정신적인 무언가(원령)이다:그리고 중요한 것은 이 감염이 확산되는 과정은 육체적인 서양의 호러와는 다르게 개인적이고 내밀한 공간을 파고듬으로서 성립된다. 주온이나 링처럼, J호러의 공포의 공간은 이질적인 공간들(거대한 고딕 호러풍의 우주선, 양옥 등등)이 아닌 TV가 있는 마루나 뒤집어 쓴 이불 속의 어둠, 심지어는 자신의 옷속 안의 어둠까지로 확대된다. 령 제로 역시 들여다 본 침대 밑에서 튀어나오거나 쥐도새도 모르게 어깨에 올라탄 원혼이나 아이템을 잡으려고 뻗은 자신의 손목을 낚아채는 원혼 등등의 형태로 이를 차용한다.


하지만 유념해야 하는 점은 통칭 J호러는 일정 시기 이후로 쇠퇴하였다는 것이다:J호러는 정신적이기는 하지만 본질적으로 바이러스 처럼 상대를 파괴하고 자신을 복제한다는 점에서 죽음의 감염이란 테마를 서양 호러와 공유하고 있으며, 여러가지 복합적인 이유들이 원인이 되어서 한때의 반짝 유행으로 지나가버리고 말았다.(특히 구로사와 기요시가 절규로 취하고 있는 J호러의 안티테제를 생각해보면, 일반적인 J호러의 공포는 자극만 올라갈 뿐 본질적으로 왜 무서운가에 대한 고민이 부재하였기 때문이 아닌가라고 생각해볼 수 있다) 하지만, 령 제로는 J호러로부터 모티브를 차용하면서도 거기로부터 빗겨나가있는 모습을 보여준다:많은 팬들이 언급하는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령 제로는 공포와 함께 어딘가 병적인 '아름다움'을 내포하고 있으며 이는 시리즈 전체를 관통하는 핵심 테마이자 미학이라 할 수 있다.


본인은 다른 령 제로 시리즈를 해보지 않았기에, 전작들에 대해서 구체적인 예를 들 수는 없다:하지만, 현재 플래이중인 누레가라스의 무녀를 통해서 과거 시리즈들을 어느정도 유추해볼 수는 있을 것이다. 본작의 제목인 '누레가라스'란 '여성의 흑발이 물에 젖어 여러가지 색으로 빛나는 색'을 지칭하는 단어이며 게임이 지향하는 공포란 물과 어둠의 결합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이 제목은 서장에서 미우가 웅덩이에서 깨어나는 장면을 통해 단순하게 소재를 공포의 대상으로 삼는 것이 아닌 미학적인 구현의 대상으로 삼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젖어있는 여성의 신체를 표현하는 게임 내의 그래픽 묘사와 아름다운 흑발을 늘어뜨린체 흐느적 거리는 여성 유령의 묘사 등등에서 령 제로는 기술적인 묘사를 넘어서서 장인의 혼이 느껴질정도로 세밀한 묘사에 집중한다. 즉, 령 제로 누레가라스의 무녀는 자신이 공포로 다루고 있는 테마들을 '아름다움'의 형태로 구현화하고 있으며, 단순하게 자극의 강도를 올리는데 집중했던 J호러와는 차별화된 모습을 구축하고 있는 것이다.

 

죽음과 공포가 갖는 아름다움에 대해 사람들이 난색이나 의문을 표할지는 모르겠지만, 죽음의 병적인 매력은 이미 역사적으로 항시 존재했었던 것이었다:현대 중학생들이 죽음과 병적인 이미지를 탐미하는 것을 소재로 다룬 오즈이치의 연작 소설 'GOTH'뿐만 아니라, 바타유나 사드의 저작들, 고야의 자식을 먹는 사르티누스, 맥시코의 죽음의 무도회, 죽음의 성인, 참회하는 막달라 마리아, 근대문학의 폐결핵 걸린 미소녀/미소년 등등의 다양한 문화들이 이를 반증하고 있다. 재밌는 점은 령 제로가 죽음의 '아름다움'을 구현하는 형태는 마지막 근대문학의 '폐병 걸린 소녀'의 이미지와 유사하다는 것이다:아름다운 소녀는 아름다움과 함께 짙게 드리운 죽음의 그림자(월식의 가면에서는 그것이 질병의 형태였으며, 령 제로와 붉은 나비에서는 형제와 자매를 향한 근친상간 또는 비뚤어진 애정의 형태였다. 또한 문신의 소리에서는 죄의식의 형태로 드러났다. 누레가라스의 무녀는 아직 독단을 할 수 없지만, 그것이 자살-살아남음의 형태로 구현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를 지니고 있으며, 이는 쉽게 범접할 수 없는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그리고, 이 범접할 수 없음이라는 거리감과 죽음이 갖는 그로테스크한 아름다움은 게이머로 하여금 령 제로라는 호러 게임을 잊을 수 없게 만드는 주요 요인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오해해서는 안된다:령 제로는 특별한 호러 게임이긴 하지만 유일하게 특별한 호러 게임은 아니기 때문이다. 일찍이 수많은 호러 게임들이 각기 다른 방식으로 새로운 호러 게임의 장르를 개척하였고, 사라져갔다. 콜 오브 크툴루와 이터널 다크니스는 코스믹 호러와 광기를 게임에 이식시키려 노력하였다. 프롬 소프트의 알려지지 않은 괴작 구원은 헤이안 시대를 배경으로 탐미적이며 그로테스크한 호러를 만들고자 노력 하였다. 령 제로 이전에도 분명 령 제로에 영향을 끼친 작품들과 게임들이 있었을 것이다. 모든 것들은 먼저 온 자들에 의해서 선취되었으며, 현재의 것은 선취된 것으로부터 변화하여 후대로 나아간다. 령 제로도 호러 게임의 큰 흐름에서 본다면 그저 거처지나가는 하나의 작품과 코드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령 제로 누레가라스의 무녀는 어떤 의미의 작품인가? 그것은 과거로부터 이어져 내려온 참신함과 새로움의 가능성이 고사하지 않고 살아남았다는 것이다:월식의 가면 이후, 새로운 신작에 대한 기대는 0에 수렴하였다. 하지만, 닌텐도의 서드파티 정책으로 령 제로는 사라지지 않고 다시 부활하였으며 Wii U라는 새로운 하드와 새로운 인터페이스에 적응한 모습으로 새로운 게임의 가능성을 내포하게 되었다. 물론, 클리어를 하기 전까지 성급한 단정을 내리는 것은 무리겠지만, 초반의 인터페이스와 전투 시스템은 나름대로 기대가 되는 부분이라 할 수 있다. 


령 제로 누레가라스의 무녀가 흥행에 성공할 가능성도, 서양 게임의 메인스트림을 탈 가능성도 나는 매우 적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프랜차이즈의 명맥이 이어질 정도로 성공하고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다면, 이는 절대 헛된 것이 아니다:꿈의 디아스포라, 꿈은 덧없이 흩날리지만 동시에 새로운 가능성을 갖고 파종된다. 그리고 이 씨앗들은 언젠간 과거의 유지를 잇고 새로운 가능성으로 자라나게 될 것이다. 령 제로 누레가라스의 무녀는 바로 그러한 새로운 세계의 새로운 게임의 가능성을 향한 빠진 고리, 즉 미싱링크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게임 이야기




본인의 닌텐도 팬심을 제외하고 객관적으로 보자면, 현세대 게임기(PS4, Xbox One) 중에서 가장 밀리는 포지션을 보여주는 것이 Wii U라고 할 수 있다:이질적인 컨셉과 뒤떨어지는 성능, 스마트 기기와의 융합 노선을 걷는 타콘솔에 비해서 불친절한 접근 환경 등등. 하지만 그렇다고 위유가 완벽하게 뒤쳐진 것은 아니다. 슈퍼 버니홉의 표현을 빌리자면 '그렇게 뛰어난 콘솔은 아니고 좋은 콘솔도 아니지만, 이상하게도 끌리는 콘솔'이 바로 위유다. 어찌보면 이것이 바로 닌텐도의 저력이라 할 수 있는데, 20-30년 동안 게이머와 함께한 역사와 그 역사를 통해서 구축된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는 닌텐도만의 독특한 철학이 이 객관적으로 후달린다고 할 수 밖에 없는 콘솔로 게이머를 끌어들이고 있다.


사실, Wii U라는 콘솔은 독약이 든 성배를 마실 수 밖에 없었던 콘솔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Wii U가 끊임없이 비교당하고 있는 Wii는 PS2의 성공 이래로 기록적인 성공을 거둔 게임 콘솔이었다. 하지만, Wii의 성공은 닌텐도에 있어서는 놀라운 성공과 함께 치명적인 상흔을 남기고 말았다. 그것은 바로 기존의 게이밍 콘솔과의 '단절'이자 서드파티와의 단절이었다. Wii가 혁신적이었던 부분은 게이머의 동작을 메인으로 삼아서 이를 게임의 주된 조작 방식으로 삼았던 것이었고, 이는 게임을 깊게 파지 않는 일반적인 대중에게 있어서는 신기한 장난감으로써는 훌륭한 세일즈 포인트라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역으로는 Wii라는 모션 인식 기반의 인터페이스는 기존 패드 기반의 게임 인터페이스의 개발 환경과 유리를 불러일으켰다. 또한 넓은 대중에게 다가갈 수 있었지만 정작 수요층 자체는 '폭이 좁게 된 점'(코어, 캐주얼, 미디코어 등등의 다양한 계층을 Wii는 모두 포섭하지 못했었다)과  'Wii 게임만을 개발하던가, 아니면 포기하던가'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서드파티에게 암묵적으로 강요한 닌텐도의 정책 등등과 맞물리면서 Wii는 점점 주류 콘솔로부터 이질적으로 고립되기 시작했었다.


Wii U는 결국 이러한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콘솔이다. Wii보다 성능을 강화하면서도 닌텐도 특유 하위호환 정책으로 Wii의 수요를 흡수하고 게이밍 테블릿이라는 새로운 수요를 창출하고자 했었던 Wii U는 엄밀하게 이야기하자면 시작부터 뭘해도 '망했다는 소리를 들을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비교대상은 위에서도 언급했었지만 전무후무한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동시에 기존의 시장으로부터 단절될 수 밖에 없었던 Wii였고, Wii에서 Wii U로 넘어오면서 닌텐도가 서드파티들을 강력하게 끌어들일 수 있었던 유인이 Wii U에는 없었다. 닌텐도 하드에서는 닌텐도만 잘 나간다는 암묵적인 공식이 있었기도 했지만, 무엇보다도 Wii U가 나오는 시기 자체가 갖는 문제가 컸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PS3와 PS4의 세대교체가 일어나기 바로 직전에 Wii U는 나왔었다. 어떻게보면 엑원과 플4와의 정면충돌을 피하면서 1년 정도 차세대기 시장을 선점하겠다는 각오였으나, 문Wii U가 게이밍 테블릿이라는 기믹에만 충실한 나머지 사양을 낮게 잡았다는 비판이 게이머들 사이에서 강하게 일어났었다. 그리고 결과적으로도 Wii U 역시도 닌텐도 콘솔 특유의 닌텐도만의 잔치가 된 것처럼 보였다. 


(성능에 대해서 몇마디 첨언을 하자면, 본인의 견해로는 Wii U의 성능은 전혀 말도 안되는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지극히 이성적인 판단이 있었기에 가능한 성능이었다. 게임 그래픽과 관련된 막대한 개발비는 게임 회사로 하여금 엄청난 위험부담과 기회를 동시에 안겨주었다. GTA5가 몇억 달러 규모의 예산과 노력을 필요로 했었지만, 동시에 GTA5는 그 예산과 노력, 마케팅 비용을 불과 며칠만에 회수할 수 있었다. 문제는 모든 게임들이 GTA5 같은 완성도와 행운을 갖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게이머들이 학을 때는 DLC나 한국 MMO 식의 라이브 업데이트 등등은 그러한 예산을 벌충하기 위한 위험 분산이자 '보험'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과연 그래픽이나 규모는 게임의 재미는 정비례하는가? 사실 본인은 게임 산업이 현재 트리플 A 급 게임 개발에 있어서 대단히 아슬아슬한 길을 걷고 있다고 생각한다. 더 나은 그래픽으로 게이머를 유인하는 것이 언제까지 효과가 있을 것인가? 라는 질문은 아무도 쉽게 대답할 수 없는 문제다. 하지만 그래픽과 마케팅 비용의 비약적인 상승에 비교하자면 산업화된 게임의 재미란 결과적으로 지나치게 평준화되어있다는 문제가 있다. 그러므로 이는 일종의 시한폭탄이라 할 수 있다:만약 대중이 겉만 번지르르하고 마케팅만 요란한 게임에 싫증을 낸다면 재미가 평준화된 트리플 A 게임들의 대부분은 어떻게 되는 것일까? 물론, 그래픽과 재미를 둘다 잡으면서 어떻게든 살아남는 극소수의 트리플 A 게임들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거의 대부분의 트리플 A 게임들은 추풍낙엽과도 같이 쓸려나갈 위험이 있다. 예를 들어, 배틀필드 하드라인 처럼 근본적으로 게임 플래이 자체가 바뀌지 않았음에도 그래픽과 스킨만 바꿔서 프랜차이즈를 확장하려 했었던 EA의 시도는 베타 오픈과 함께 발매연기로 무참하게 짓밟혔다. 그리고 트리플 A 게임 프랜차이즈의 태반정도는 배틀필드 하드라인과도 같은 문제를 내포하고 있다.


Wii U가 제시하는 성능이란 게임 산업에 있어서 일종의 브레이크 역할을 하고 있다:우리가 돌아봐야하는 것은 있는 기술을 최대한 최적화 시켜서 구현하는 것이며, 그 최적화로 비용을 줄이고 남은 여유를 게임의 재미 등의 아주 '기초적인' 부분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Wii U는 '합리적인' 성능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문제는 여전히 수많은 트리플 A 게임 제작에는 적용되지 않은 문제며, 닌텐도의 폐쇄적인 성격으로 인해서 Wii U의 브레이크 역할이 제대로 수행되고 있지 않고 유효한 흐름이 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렇기에 앞으로도 당분간은 트리플 A 게임들의 치킨 레이스는 계속 될 것으로 보여진다.)


하지만, 본인이 Wii U를 잡고 플래이해본 느낌은 살짝 달랐다:Wii U는 단순히 Wii의 간극을 때우기 위해서 만들어진 저주받은 성배가 아니었다. 오히려 닌텐도는 Wii U라는 시행착오를 통해서 스마트폰의 환경이나 소위 거실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콘솔들의 '거실 전쟁'에서 끝까지 살아남을 방법을 모색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것이 다만 최근 스마트 기기들의 특성인 '열려있는 네트워크'와는 반대방향으로 나아가는 '폐쇄적인 네트워크'의 구축이라는 점이지만 말이다. Wii U가 최근의 스마트 기기들과 비교하여 보았을 때는 도저히 납득불가능할 정도의 불편함을 갖고 있지만, 동시에 그 납득불가능한 불편함과 성능 차이만 개선이 된다면 앞으로 닌텐도가 만들고자 하는 콘솔의 비전이 기대가 되는 물건이라고 할 수 있었다.


Wii U는 Wii U 패드라 불리는 테블릿과 게임 본체로 구성이 되어 있으며, Wii에서는 지원하지 않았던 HDMI를 지원하여 더욱 선명한 화상을 보여주고는 있다. 하지만, 뭔가 화려해보이는 Wii U 패드는 실제로는 오프 스크린 용도 이외에는 크게 쓸만하다는 느낌은 주지 않는데(물론 가벼워서 손목에는 부담이 거의 없다), 이는 듀얼 스크린이라는 기믹을 지향했던 DS 시리즈와 비교해보았을 때 더욱 더 명확해진다. DS는 두개의 스크린이 이루는 각도가 180도에 가깝기에 게이머의 눈에 한눈에 들어오는 모습을 보여준다. 하지만, Wii U 패드와 TV 스크린이 이루는 각도는 보통 90도에 가깝다. 게이머는 Wii U 패드를 직각으로 세워서 게임을 플래이하는 것이 아닌 무릎이나 책상 등에 올려놓고 게임을 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한눈에 두 스크린의 정보를 받아들이는 DS와 다르게 위유의 두 스크린은 사실상 완전하게 '분절'되어 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Wii U 패드의 듀얼 스크린 기믹이 완전하게 무의미한 것은 아니다. 젤다의 전설 바람의 택트 HD 같은 경우에는 Wii U 패드를 이용해서 지도를 보거나 인벤토리를 정리하는 등의 간단한 잡무는 쉽게 처리할 수 있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러나, 과연 그러한 간단한 잡무를 처리하기 위해서 Wii U 패드가 절대적으로 필요했었냐고 물어본다면 본인은 아니라고 대답할 것이다. 편한 것은 편한 것이지만, 그것이 게이머에게 어필할 수 있는 정도는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프스크린을 지원하는 게임의 경우에는 사정이 조금 달라지는데, TV 스크린을 키지 않더라도 패드만으로 게임을 할 수 있다는 점은 크게 매력적으로 다가올 수 있는 부분이기 때문이다. 마리오카트 8이나 젤다무쌍을 기준으로 플래이 해본 결과, TV와 패드 스크린 사이의 차이가 거의 없다고 느껴질 정도로 부드러운 모습을 보여주었으며 게이머가 처한 환경에 따라서(보통은 가족이 TV를 같이 쓰는 경우 같은) 충분하게 활용될 수 있는 부분이라고 본인은 생각한다. 


그러나 본인이 Wii U에 대해서 매력적으로 느낀 부분은 Wii U 패드가 아니라 NNID를 기반으로 만들어진 Miiverse라는 게이밍 커뮤니티와 콘솔 내에 구현해놓은 풍경이었다. Miiverse는 단적으로 이야기하자면 게이머 소셜 네트워크 이며, 게이머는 Wii U로 게임을 플래이하는 도중 언제라도 Miiverse에 접속해서 자신의 게임 스크린샷과 간단한 코멘트, 혹은 '그림'을 그려서 올리고 공유할 수 있다. Miiverse는 각각 게임 별로 소규모 커뮤니티로 나뉘어지며, 각 지역별로 게이머들을 구분하고 게임을 하는 사람들끼리 의사소통할 수 있도록 편리한 환경을 구축하고 있다. 특히 게임 내에서 모을 수 있는 게임의 '도장'을 이용해서 쉽게 그림을 찍어내고 Miiverse에 올릴 수 있는 기능은 Wii U만의 참신한 게이밍 커뮤니티 구축법이자 간편하고 인상적이며 재밌는 의사소통 방식이라 할 수 있다. 또한 콘솔을 처음 켰을 때의 모습을 일종의 '광장'과 'Mii로 대변되는 사람들'의 형태로 묘사를 하여, Wii U를 같이 즐기고 있는 사람들과의 유대를 형성할 수 있는 '풍경'을 조성하는데 일조하기도 한다.


재밌는 점은 이러한 Wii U의 풍경이란 다른 소셜 네트워크와의 연결을 전적으로 차단하는 '폐쇄적인' 공간이라는 것이다:본인의 경우 NNID를 만들고 Miiverse에 자기 소개를 작성할 때 트위터와 블로그 주소를 적었다는 이유로 계정이 '일시정지' 당한 적이 있었다. 물론 이런 경우가 흔했었던지 자기소개 부분에서 그 부분을 지워내자 곧바로 정지를 풀어주기는 했었지만, 다른 게이밍 소셜 네트워크나 SNS와 비교해보면 도저히 납득이 안되는 부분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SNS의 강점이란, 바로 다른 서비스와 쉽게 유기적으로 연결될 수 있다는 점에서 온다. 하지만, 왜 닌텐도는 Miiverse를 고립시키려 하는 것일까?


본인은 이렇게 생각해본다:모든 것이 연결된 세계에서는 연결은 더이상 강점이 아니라 '필요충분조건'이 된다. 하지만, 모든 것이 연결된 세계에서 폐쇄되고 통제되는 세계는 역으로 하나의 '매력'으로 다가올 수도 있다. Miiverse는 본인이 느끼기에는 강력한 관리자들에 의해서 검열되고 통제되는 공간으로 느껴졌으며, 그렇기에 SNS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악의적이거나 스크린 뒤에 앉아있는 현실의 인간을 향한 적의가 배제되고 거세된 '안전한 공간'으로 느껴졌다. 이렇게 본다면 'Mii라는 아이콘들이 모여서 옹기종기 모여서 노는 평화로운 게이밍 커뮤니티'를 Miiverse가 구현하고자 했고, 그것을 여타 SNS의 개방성과는 다른 폐쇄적이고 통제적인 커뮤니티에 근거해서 실현하고자 한 것이다. 


어찌보면 Wii U가 다른 콘솔들과 비교하였을 때 포지셔닝을 하려는 지점도 바로 여기라고 볼 수 있다:즉, Wii U만이 할 수 있는, 닌텐도만이 할 수 있는 무언가를 통해서 거실 전쟁의 승자는 아니지만 끝까지 살아남는 '생존자'의 위치를 점하려는 것이다. 실제로 닌텐도는 소니와 마소와는 다르게 오로지 순수하게 게임으로만 승부를 보는 기업이라 할 수 있다. 소니는 TV, 영화, 엔터테인먼트 산업 등을 PS4라는 하나의 기기에 통합시키려 하고, 마소는 막강한 자본력과 윈도우라는 운영체제 등을 이용해서 엑원을 거실의 중심으로 만들고자 노력한다. 하지만 닌텐도는 이들 마소, 소니와 다르게 갖고 있는 콘텐츠나 솔루션은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만약 닌텐도가 마소와 소니 같은 길을 걷는다면, 닌텐도가 망하는 것은 명약관화라 할 수 있다. 따라서, 닌텐도가 취하는 전략은 그들이 약한 분야에서는 싸우지 않되 그들의 전장을 그들이 강점을 갖고 있는 곳에서 구축하고 싸우려는 준비를 하는 것이라 볼 수 있다. 그렇게 본다면 Wii U는 Wii라는 독약이 든 성배를 마시되 동시에 자신만의 홈그라운드 이점을 최대한 살리려고 하는 모색의 장이라 볼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Wii U가 갖고 있는 한계는 역으로 닌텐도가 갖고 있는 한계이기도 하다:닌텐도는 그들이라는 폐쇄적인 집단 내에서 아이디어를 공유하는 일종의 철학 집단이라 볼 수 있다. 그렇기에 생각을 공유하지 않는 사람들 끼리의 의사소통의 문제, 더 나아가서는 '배척당하는 듯한' 이미지를 심어주는 문제가 존재한다. 소프트웨어의 경우에는 그것이 닌텐도의 강점으로 다가올 수 있지만, 하드웨어의 경우에는 이는 매우 치명적인 문제를 야기한다:도대체 요즘 시대 어떤 콘솔이 랜선 포트도 없고 하드 디스크도  없을 수 있단 말인가? 결국 이 문제는 서드파티를 자신쪽으로 끌어들이지 못하며 심지어 인디조차 끌어들이는 것도 미적지근해지는 것으로 귀결되고 있다. 과거와 다르게 서드파티의 역량이 강화되고 있기에, 닌텐도가 자사의 타이틀 뿐만 아니라 서드파티라는 중간 계층을 공고히 하지 않는다면 닌텐도의 이상은 이루어지지 어렵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다른 글에서도 다루겠지만, 닌텐도가 Wii U 들어서 취하고 있는 서드파티 전략들, 예를 들어 베요네타 2나 젤다무쌍, 데빌즈 서드, 령 제로 신작 등등은 참으로 '기묘'하기 그지없다:분명히 그것이 나쁜 것은 아니고,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하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이것은 일본이라는 자국의 바운더리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점에서 명백한 한계를 갖고 있다.)



게임 이야기





자소서 쓰고 글을 쓰려니 글이 잘 안써지네요...일단 내일부터 다시 글을 쓰는걸로...


큼지막한것들은 거의 다 썼으니까요...



잡담




더럽게 바쁩니다. 아실분들은 다 아시겠지만요.


하지만 블로그를 포기할 생각은 없습니다...


그래도 좀 당분간은(~10월까지?) 블로그 운영이 띄엄띄엄 이루어질 거 같다는건


여기서 미리 밝혀둬야겠군요.


글은 몇개 쓰고 있습니다만...역시 마무리 짓기까지는 힘들군요;



'잡담' 카테고리의 다른 글

151031  (0) 2015.10.31
2015년 새해가 밝았습니다.  (0) 2015.01.01
당분간 바쁠듯 합니다.  (1) 2014.07.15
2014년을 맞이하며...  (0) 2013.12.31
121003, 앞으로 글 예고.  (0) 2012.10.03
1
블로그 이미지

IT'S BUSINESS TIME!-PUG PUG PUG

Leviath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