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이야기




게임스컴 2014 소니 컨퍼런스에서 공개된 P.T.에 대해 사람들은 처음 그 의미를 모르고 지나쳤었다:깜짝 놀라는 사람들의 영상을 편집한 것에 불과했었던 P.T.의 소개 영상과 '지금 당장 PSN을 통해서 풀립니다'라고 이야기한 뒤, 그게 끝이었다. 물론 코지마 히데오가 나와서 팬텀패인에서 박스로 장난치는 영상을 소개해서 좌중을 포복절도하게 만든 뒤에 씨익 웃으면서 사라졌을 때, 사람들은 뭔가 위화감을 느꼈을지도 모르겠다. 단지 코지마가 사람들을 웃기게 하려고 컨퍼런스에 등장한 건 아니었을텐데 라고 말이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P.T.가 사실 사일런트 힐의 '플래이 가능한 티저'(Playable Teaser)의 약자였으며, 메탈기어의 코지마 히데오와 퍼시픽 림을 만든 기예모르 델 토로, 그리고 쟁쟁한 게임 디자이너들이 게임 제작에 참여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네트를 발칵 뒤집어넣는데 성공한다.


(재밌는 점은 코지마 히데오는 사일런트 힐 신작이 오픈월드가 될 가능성이 높다는 식으로 이야기하고 있으며, 기예모로 델 토로는 게임을 좋아하기도 하지만 과거 THQ와 함께 만들려 했었던 인세인을 오픈월드 호러 게임을 만들려고 했었다고 한다. THQ가 인세인을 엎은 이후, 인세인과 관련된 자료는 델 토로의 소유로 넘어갔는데, 인세인의 컨셉들이 사일런트 힐 신작의 컨셉에 접목되어서 오픈월드 호러 게임이 될 가능성이 높지 않을까...라고 점쳐볼 수 있다.)


하지만 오랜만의 사일런트 힐 신작이라는 기쁨을 제쳐두고, 우리는 중대한 질문을 P.T.에 던져야 할 것이다:어째서 플래이 가능한 '데모'가 아니라 플래이 가능한 '티져'인 것일까? 우리가 익히 접하는 게임이나 영화의 '티저' 마케팅이란, 작품이나 서비스 정보의 극히 일부분만을 내놓고는 사람들이 그것에 대해서 추측하거나 생각하게 만드는 마케팅이라고 지칭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마케팅들의 대부분은 다소 생뚱맞은 사진과 영상, 정보들로 구성되어 있으며, 각각의 정보들은 부분으로서 전체를 추측할 수 있는 퍼즐 조각으로서 작용된다. 이 퍼즐 조각은, 티저 광고를 접하는 사람들로 하여금 능동적으로 사유하고 대처하게 만드는데, 티저 마케팅의 강력한 힘은 수용자로 하여금 그것을 '생각하게 만든다'라는 능동성에 기반하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티저 마케팅은 사진, 단문, 영상 등으로 구성되어 있고 그것이 통념이기도 하다. P.T.가 깨부수고 있는 지점은, 바로 이 통념 그 자체이다:게임이 플래이되고 경험되는 것이라면, 왜 그것을 하나의 '티저'로 만들지 못하겠는가? 이는 데모와는 확연하게 다르다. 데모는 재현Demonstration의 축약으로서, 게임의 축약이자 핵심을 구현하고 게이머로 하여금 '데모는 이러했으니 게임도 이러할거야/이거 이상으로 재밌을거야'라고 믿을 수 있게 만든다. 하지만 P.T.는 다르다. P.T.가 축약해서 구현하고 있는 것은 엄밀하게 이야기하자면, 게임 그 자체가 아니다:사람들이 P.T.를 하고 가장 혼돈스럽게 느끼고 있었던 지점은 P.T.가 전통적인 사일런트 힐 시리즈의 3인칭이 아닌 1인칭으로 구현되었고, 이것 때문에 사일런트 힐 신작은 1인칭 게임이 되는게 아니냐 라는 의문이었다. 하지만, 이미 많은 매체들에 의해서, 사일런트 힐의 신작은 전통적인 3인칭 호러 액션 게임이 될 것이라고 확정되었다.


(덧붙여서 요즘 시대에 데모는 더이상 '데모'라는 한계에 얽메여있지 않기도 하다:데모를 풀어놓고 거기서 유저들의 피드백을 받아 게임 조정을 가하는 광경은 이제 흔한 것이 되었다. 예를 들어 브레이버리 디폴트나 프리덤 워즈, 토귀전 등의 게임들은 게임을 내놓기 전에 데모를 내놓고 게이머들의 피드백을 받아서 이를 최종판에 수정을 가하는 형식을 취하기도 했다. 전통적인 의미에서 데모와 베타 등의 개념은 퇴색하고 그 경계는 점점 모호해지고 있다. 이는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다룰 수 있을 것이다.)


(최초의 티저 게임 광고는 P.T.가 아니다:기억하실지도 모르겠지만, 포탈 2에서 슈퍼 에이트의 티저 광고를 게임의 형태로 삽입하기도 했었고, 그 이전에도 티저형태의 게임들은 분명하게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슈퍼 에이트의 경우, 그것이 게임의 형식과 시너지를 일으킨다고 보기 힘들다는 것이며, P.T.의 경우 게임 내적인 특징과 외적인 특징이 맞물려서 역사상 전례가 없는 독특한 시너지를 발휘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왜 P.T.는 1인칭으로 제작되었는가? 일단, 왜 1인칭으로 만들어졌는가에 관하여 밑에서 다루기도 하겠지만, 이에 대한 가장 기본적인 대답은 P.T.는 티저 게임이 아니라 데모 게임이라는 것이다:데모는 게임플래이의 핵심을 데모를 통해서 구현을 했어야 했었다면, 티저 게임은 엄밀하게 이야기하자면 게임플래이를 재현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다. 오히려, P.T.는 앞서 이야기했던 티저 마케팅의 일부로써, 사람들에게 이것이 어떤 물건인지에 대한 관심을 증폭시키고 사일런트 힐 신작이 어떤 게임인지에 대한 컨셉을 언뜻 내비치는 것이 본질적인 목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P.T.는 훌륭하다:기존의 사일런트 힐 시리즈가 죄를 저지른 사람들의 내면이 반영된 그로테스크한 공간(사일런트 힐 2와 그 정신적 계승작들)을 강조했었고, 이는 P.T.에서 핵심을 관통하여 구현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게임은 어두침침한 복도와 방을 루프하는 구조로 구성되어 있다:게이머는 끔찍한 사건과 그에 관련된 죄를 직시 전까지는 이 루프를 깨뜨릴 수 없다. 그리고 죄의 증거들은 게임 처음 문을 열고 나왔을 때 일가족 살인 사건를 다루는 라디오의 뉴스와, 그 살인의 증거들(만지면 총맞은 것처럼 자국이 나는 사진이라던가, 유령의 독백, 벽의 낙서들 등등), 배회하는 여자 유령과 새면대 속의 태아처럼 보여지는 핏덩이, 아슬아슬하게 매달려서 플래이어로 하여금 긴장하게 만드는 피묻은 냉장고 등등의 다양한 형태로 구현되며 게이머를 압박한다. 하지만 이는 일직선의 진행이 아니다. 오히려 P.T.는 영원히 반복될 것 같은 루프를 깨뜨리기 위해서는, 끔찍한 공포와 마주할 것을 강요한다. 이러한 진행 방식은 기존의 트리플 A 게임으로 불리는 대규모-전문화된 게임 문법과는 많은 차이가 난다. 


예를 들어 콜옵의 경우, 게이머는 일직선의 복도형 스테이지를 따라 전진하는 것만으로 게임을 클리어가능하다. 하지만 이렇게 단순한 스테이지의 구조 대신에, 게임은 다양하고 화려한 볼거리를 집어넣음으로써, 이 단순한 구조를 숨기려고 노력한다. P.T.는 바로 이 문법을 정면으로 반박한다. 스테이지 구조는 매우 단순하며, 그것을 복잡하게 하려는 시도 자체를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의 단순성을 극대화해서, 게이머로 하여금 문을 열고 다음 복도로 나가는 것이 뭔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닫게 만든다. 이를 통해 게이머는 단순한 스테이지 구조 속에 숨겨진 디테일에 주목해야한다는 것을 학습한다. 그리고 복도에 머물면서 다양한 죄와 살인, 비극의 증거들을 보고 문제를 풀어나가는 것이다. 물론 그것이 이상현상들을 통해서 공포를 불러일으키긴 하지만, 동시에 한 가족이 맞이했어야 했었던 비극에 대한 묵직한 여운을 준다. 이는 최근 악의 넘치는 게임이라 할 수 있는 이블 위딘과는 다른 지점이라 할 수 있다. 이블 위딘은 과거 호러 게임들의 악의들, 예를 들어 그로테스크하게 변형된 신체와 뇌를 후벼파는 듯한 컷씬의 구도들을 통해서 F.E.A.R.나 데드 스페이스 시리즈들의 악의를 계승한다. 하지만, P.T.는 그런 뇌를 후벼파는 악의가 아닌(물론 놀라게 만드는 것도 있다), 무겁게 짓누르는 죄책감과 같은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게이머는 폐소공포증이 느껴지는 복도를 뱅뱅 돌면서 나가려고 시도하지만 나갈 수 없다. 그리고 게이머가 뭔가 변화를 불러일으키기 위해서는 그 무겁게 짓누르는 분위기의 근원, 공포의 핵심을 들여다봐야 한다. 이러한 구조는 이미 사일런트 힐 2에서 구현된 게임 서사에 기초하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동시에 이런 점들에서 P.T.가 1인칭으로 만들어지고, 기존의 트리플 A게임의 공식을 부정하는 이유가 드러난다:P.T.가 근거하고 있는 지점들은 최근 각광을 받고 있는 인디 호러 게임들이다. P.T.를 통해서 드러내는 사일런트 힐 신작의 컨셉은 일직선의 진행과 맞서싸울 수 있는 공포 등이 아닌, 피하고 싶지만 마주할 수 밖에 없는 끔찍한 진실과 공포, 그리고 더 나아가서 그와 마주하고 살아남는 것이 핵심이며, 이는 최근 인디 호러게임들의 흥행과도 맞닿아있다. 재밌는 점은, 10년 전에 사일런트 힐 2가 뿌렸던 호러의 씨앗이 트리플 A 게임 등에서는 점점 사그라들고 인디 호러게임들로 계승되더니, 이제는 그것이 역으로 다시 트리플 A 게임으로 이식되어 가는 과정 그 자체이다. 코지마가 인디 게임의 조작감을 떠올리며 P.T.를 만들려 했었다고 이야기한 것은, 사일런트 힐 2라는 게임의 적통을 이었던 게임들이 사일런트 힐 시리즈가 아니라 역으로 인디 호러게임들 쪽이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암네시아, 페넘브라, 디어 에스더, 좀 더 하드한 쪽이긴 하지만 아웃라스트 같은 게임들까지. 그리고 이러한 게임들의 코드들을 받아들이는 것을 넘어서 1인칭이라는 시점까지 계승함으로써, 더욱 발전된 방향으로 게임을 만들고자하는 노력을 P.T.를 통해서 강력하게 드러냈다.


마지막으로 P.T.가 홍보에 성공적이었던 이유는, PS4라는 플랫폼의 강점 덕분이었다:PS4는 트위치에 기반한 방송 기능을 모두 탑재하고 있다. P.T.를 플래이하는 게이머는 단 한명 뿐이지만, 방송을 통해서 게임 플래이를 보고 공유할 수 있는 것은 그 수의 제한이 없으며, 이를 통해서 플래이 가능한 티저는 플래이어를 넘어서 수많은 대중들을 향해 효과적으로 전달될 수 있었다.


사일런트 힐 신작은 발매일정이 아직 공개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