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니, 만화, 영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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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마징가 Z 속의 신화 구조

일본 애니메이션이 가장 최초로 개념을 만들었고, 장르적인 공식을 확립시킨 대중문화의 장르가 있다면 그것은 소위 슈퍼 로봇물이라 할 수 있는 장르일 것이다. 작중에서 소년이나 소녀들이 일상적인 삶을 영위하다가 거대한 힘 혹은 로봇을 만나게 되고, 이러한 로봇이라는 힘을 통해서 외부에서 쳐들어오는 적들을 막고 일상의 질서를 회복하는 일련의 과정을 다룬 작품들을 통칭 슈퍼 로봇물이라 한다. 이러한 슈퍼 로봇물의 공식을 거의 대부분 정립한 작품이자 이 장르에 있어서 기념비적인 작품이 바로 1972년에 만들어진 나가이 고 원작의 ‘마징가 Z’다.

마징가 Z는 주인공인 평범한 학생이었던 카부토 코지가 할아버지가 만들어낸 마징가 Z를 타고, 헬 박사가 세계 정복을 위한 첫 단계로 광자력 연구소를 점령하기 위해 보내는 기계수를 물리치는 것이 주 내용이다. 특이한 점은 입문의 과정에 있어서 이 작품의 주인공이자 영웅인 카부토 코지는 다른 아이들과 비교해서 전혀 특별할 게 없는 평범한 청소년이라는 것이다. 보통 영웅이 원래세계에서 신화적 세계로 분리되는 분리의 단계에 있어서, 특별한 계기나 혈통적인 원인(사실은 신의 아들이었다든가, 영웅이 될 운명이었다든가 등)이 작용하는데 슈퍼 로봇물은 이러한 영웅 신화의 공식을 거부한 것이다. 이는 당시 애니메이션을 주로 보는 계층인 청소년층을 겨냥하기 위한 설정인데, 평범한 주인공이 세계를 구하는 과정에 시청자인 청소년층이 감정이입을 하게 만들기 위한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된다면 평범한 주인공이 어떤 방식으로 거대하고 사악한 적들에 맞서 싸우게 되는가의 문제가 발생한다. 이에 대해서 마징가 Z가 내세운 것은 바로 자신의 소명(카부토 코지 같은 경우, 헬 박사의 세계정복을 막아야 한다라는 소명)을 받아들인 입문의 단계에서 초자연적인 존재로 거대한 로봇이라는 개념을 도입한 것이다. 거대한 로봇은 막강한 힘과 능력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그 자신으로서는 영혼이나 자의식이 없기 때문에, 누군가 이를 조종하는 주체가 필요하다. 이것이 바로 작중의 주인공인 것이다. 그리고 주인공이 자신의 수족처럼 부리기 위해서는 주인공들과 최대한 비슷한 모습으로 만들어야 한다. 이것이 바로 거대 로봇이 보통 인간의 형태를 취하고 있는 이유이다. 또한 거대한 로봇과 주인공이 합치되는 효과는 결과적으로 보는 시청자로 하여금 자신과 동질감을 느끼게 만드는 효과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시청률을 늘리는데 높은 효과를 보여준다. 물론 기타 파생상품인 장난감을 만드는데도 많은 도움이 된다는 점도 간과 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의식이 없는 거대한 로봇은 선한 사람의 손에 들어가면 선을 위해 사용되는 도구가 되지만, 악한 사람(예를 들어 헬 박사라던가)의 손에 들어가면 세계를 파괴하는 도구가 된다. 이것이 마징가 Z가 주창한 슈퍼 로봇물의 또 다른 주요 코드 ‘신도 악마도 될 수 있는 존재’이다. 이러한 코드는 후대의 많은 슈퍼 로봇물에도 영향을 주었는데, 예를 들어서 ‘전설의 거신 이데온’(1980) 같은 경우, 이데온이라는 로봇은 세상을 창조할 힘도, 우주를 파괴할 힘도 가진 존재로 묘사되고, 주인공들의 잘못된 사용에 의해서 우주를 파괴하고 재창조하는 암울한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물론 마징가 Z 자체는 ‘인류를 지키는 정의의 로봇’이라는 성격이 강해서 정작 스스로 만들어낸 코드인 ‘신도 악마도 될 수 있는 존재’에 대해서는 깊은 장르적 고찰을 보여주지 못하고는 있지만, 마징가 Z에 의해서 만들어진 이 코드는 후대의 슈퍼 로봇물에 두고두고 영향을 끼쳤다고 할 수 있다.

입문의 구체적인 단계인 시련의 과정에 있어서 주인공들은 매 에피소드마다 자신들의 도시로 쳐들어오는 적들을 방어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는 ‘정의의 로봇은 먼저 공격하지 않는다’와 ‘적들의 본거지를 모르기 때문’이라는 작중 설정이 작용하기도 하지만, 이렇게 먼저 쳐들어오는 적들을 방어하는 이유는 애니메이션이라는 장르의 특징이 크게 작용한다고 할 수 있다. 매주 일정한 시기에 정기적으로 방영해야하는 일본 애니메이션의 성격상, 애니메이션을 그리는데 시간이 빠듯하게 들어갈 수밖에 없었고, 20분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다양한 배경을 보여주는 것은 힘든 일이기 때문에 마징가 Z가 자신이 지키는 도시를 빠져나가서 다른 곳에서 활약하는 모습은 보기 힘든 것이다. 이러한 장소적인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서 매주 도시를 침공하는 기계수들은 다양한 변화와 지속적인 강화를 보여준다. 예를 들어 마징가 Z가 날지 못하는 점을 노려서 나는 기계수가 등장해서 도시를 침공하기도 한다. 이에 발맞추어서 마징가 Z도 지속적으로 능력이나 기술, 필살기 등이 추가되고 강화가 되는데, 예를 들어 날아다니는 기계수에 대항하기 위해서 마징가 Z도 스크렌더 라는 비행용 보조 장치를 달고 싸우는 것 등이 있다. 이와 같이 적들의 다양성과 이에 대항해서 정의의 슈퍼 로봇의 지속적인 강화도 슈퍼 로봇물에 있어서 중요한 코드라고 할 수 있다.

마지막 회귀의 단계에서는 슈퍼 로봇물들은 대단히 평범한 결론을 보여준다. 악의 침략자들을 물리치고 일상생활로 돌아가는 것이다. 물론 작품에 따라서는 세계를 구하기 위해서 자신을 희생하거나, 세계를 구하는데 실패하거나 등의 다양한 결말이 존재할 수 있지만, 여기서 조셉 켐벨이 이야기한 두 세계를 조율하는 영웅의 모습은 나오지 않는다. 이는 시청자들의 나이를 의식한 결말이라 할 수 있는데, 어린 청소년들은 강한 시련의 과정을 거친 뒤의 다른 존재가 되는 것보다는 다시 평범한 일상생활로 돌아가는 것이 더 설득력이 있고 감정이입이 되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마징가 Z는 슈퍼 로봇물의 대부분의 공식을 만들어낸 작품이다. 마징가 Z는 그 자체로도 많은 부분 조셉 캠벨이 이야기한 신화의 서사 구조를 많은 부분 차용했지만, 동시에 일본 애니메이션이 가지는 특징들-매주 정기적으로 방영하는 점, 20분이라는 극도로 제한된 상영시간, 상대적으로 낮은 시청 연령층, 수익의 극대화를 위한 완구 사업과의 연동 등-로 인해서 신화의 서사 구조와 많은 부분 다르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공식은 23년 후, 1995년에 나오는 신세기 에반게리온이라는 작품이 등장하기 전까지는 무너지지 않고 유지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