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이야기



현대사에 있어서 나치만큼 시대를 대표하는 절대악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역사에 걸쳐서 수많은 악과 악행이라 일컬을 수 있는 것들을 보아왔다:징기스칸은 가는 곳곳 사람의 머리를 잘라 탑을 쌓았고, 중세시절부터 기독교도들은 유대인들을 학살하였으며, 신대륙 탐험의 역사는 피로 얼룩진 정복사였고, 근대 미국은 아메리카 원주민들과 아프리카 인들에게 있어서 끔찍한 짓을 자행하였다. 역사적으로 악은 보편적이었지만 나치만큼 뚜렷한 악행의 아이콘이 된 경우는 드물다. 어째서일까? 단순히 역사를 기록할 수 있는 자들의 헤게모니 문제였던 것일까? 모든 악은 그저 상대적일 뿐일까? 


나치가 시대를 대표하는 악이 된 이유는 현대 국민 국가의 등장, 그리고 그 국가가 사람을 얼마나 효율적으로 파괴할 수 있는지에 사람들이 충격을 받았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징기스칸은 사람의 머리를 잘라서 탑을 쌓았지만, 효율적으로 유대인, 집시, 장애인, 동성애자 등등을 제거하기 위해서 열차를 이용한 대규모 물류 시스템, 집단 수용, 격리, 그리고 '처리'까지 이루어지는 관료제 시스템과 그것을 정당화하는 궁극적인 이상향을 만들지 않았다. 나치가 그 어떤 역사의 거악들과 비교할 수 없는 위상을 점할 수 있는 이유는 바로 '현대 시스템을 사용해 효율적으로 인간을 처리하였다'와 '현대의 과학과 정치사상 등을 빌어 그 모든 개소리들을 정당화하였다'라는 사실 덕분이다. 나치의 잔학성은 단순히 사람들을 자극적으로 죽였다는 것이 아닌 세상에서 존재와 가능성 자체를 말살하는 범죄였었다. 그리고 과거에도 개념상으로 존재하였던 범죄를 과학과 관료제와 법과 시스템 등의 이름을 빌어서 실제로 구현했었고 실제 성과를 거둔 것도 나치가 최초였다.


그런 점에서 울펜슈타인 뉴 오더는 놀라운 게임이었다. 뉴 오더는 나치를 다룬 게임, 아니 영화 등을 비롯한 대중매체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깊은 통찰을 우리에게 보여주었다. 그것은 바로 나치가 행한 범죄에 초점을 맞춘 것이 아닌 나치가 '이루어내고 싶었던' 세계를 조명한 것이었다. 뉴 오더의 악역 데스헤드 윌리엄 슈트라세가 게임 역사상 길이남을 명대사, "결국 우리는 심판받을 것이다! 우리가 파괴한 것이 아닌, 우리가 만들어낸 것으로!"를 통해서 구체화되듯이 울펜슈타인 뉴 오더는 실제 나치가 만들고 싶었던 세계를 디젤펑크와 각종 나치 관련 루머들, 더 나아가서 그 시대의 대중문화와 분위기를 한데 섞어서 '과장된 정상 세계'의 형태로 구현한다:나치 양식의 콘크리트 건물들은 페이퍼 플랜들보다 수십, 수백배 뻥튀기 되었으며, 시대를 대표하는 팝 뮤직들은 하우스 오브 라이징 선의 어레인지 버전처럼 총통에게 충성하지 못한 젊은이의 후회로 둔갑되어버린다.


하지만 소름끼치는 것은 섬세하지는 않지만 울펜슈타인 뉴 오더의 세계 속에는 '과연 이것이 우리 현실 세계와 얼마나 큰 차이가 있는가?'라는 꿰뚫어봄이 섞여있다는 것이다. 한때 좋았던 사람들은 눈감고 나치에 협력하고, 과거와 지금이 별반 차이없다고 이야기하는 아프리카 미국인, 아리아인의 표본과 저항군 사이의 경계에 놓인 블라즈코윅즈 등등 정상성이 비정상적으로 넘처흐르는 세계에서 살아남은 저항군, 여성, 장애인, 정신병자, 늙은이, 소수민족 등등의 세상에서 빗겨나간 사람들의 절망에 찬 몸부림에 관한 이야기다. 엣지 매거진은 프리뷰에서 언급하듯이, 뉴 오더의 케릭터 조형은 쿠엔틴 타란티노의 바스타즈에 가깝지만 정작 거기에는 휴머니티와 페이소스가 있다고 평가하였다. 어떤 의미에서 엣지는 의도치 않게 뉴 오더의 핵심을 꿰뚫어보았다:특공대물이라는 영화 하부 장르를 나치에 대한 도덕적 복수(바스타즈의 결말이 히틀러 시체에 갈갈갈 총질하고 악독한 나치 장교의 이마에 나치 문양 칼빵을 새겨주는 것이라는 걸 잊지말자)와 결합시킨 쿠엔틴 타란티노의 작품은 디젤펑크와 함께 나치가 지배하는 세계에서 무엇이 도덕적이고 올바른 것인지에 대한 전도를 일으키는 울펜슈타인 뉴 오더와 어울리는 한 쌍을 이룬다 할 수 있다.


나치가 지배하는 미국을 그리는 뉴 콜로서스는 그런 점에서 전작의 꿰뚫어 보는 통찰력을 강화한 것으로 보인다:가상의 적에 의해서 침공당하는 미국의 이미지는 이미 콜옵 프랜차이즈나 홈프론트 시리즈에서도 다뤄진적이 있지만, 이는 뉴 콜로서스의 지향점과는 다르다. 홈프론트나 콜옵 프랜차이즈에는 미국인에 본토 침공에 대한 뿌리깊은 트라우마와 공포가 숨어있다. 언젠가 저들이 우리 영토를 짓밟기 전에, 우리가 먼저 되갚아줘야 한다는 자극적인 공포를 게임의 형태로 풀어낸 것이 이 프랜차이즈의 핵심이다. 하지만 그 공포에는 깊이가 없다:어째서 저들이 미국을 미워하는가, 라는 대목에서 이들은 지극히 무력해진다. 콜옵 고스트의 사례처럼 미국인의 존재를 지워내는 인종청소란 끔찍한 범죄가 행해지는데도 게임은 그것이 어떤 배경에서 이루어지는지 설명하지 않고 '남미인들은 모두 미국을 증오한다'라는 편견에 기반한 스토리텔링을 한다. 이들에게는 오로지 자극만이 존재하며, 이야기에 대한 성찰이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뉴 콜로서스는 다르다:"이건 괴물의 짓이야 - 아니, 인간이 짓이지 " 라는 짧은 대화 속에서 게임은 깊은 절망을 보여준다. 절망은 공포와 다르다. 공포가 단순한 자극, 그리고 자극의 역치를 충족시키기 위한 요소들로 가득찼다면 절망의 감수성에는 그것을 이해하고 받아들여서 느끼는 무게가 있기 때문이다. 뉴 오더가 그랬듯이, 뉴 콜로서스 역시도 그런 '무게'에 초점을 맞춘다. 흥미롭게도 뉴 콜로서스의 새로운 주역들은 UFO 설을 신봉하는 음모론자와 흑표당원, 그리고 심지어 2차세계대전 전후로 전멸한 미국 공산당 계열 인물들이며, 이들은 미국의 역사에 있어서 그림자라 할 수 있는 부분이었다. 뉴 콜로서스는 1961년의 미국을 디젤펑크 풍으로 재조립하였지만, 그 속에는 전작과 동일하게 위험한 전도를 깔아두고 있다:보이 스카웃을 다룬 시트콤은 히틀러 유겐트로, 미국인들이 즐기던 퀴즈쇼는 언어 말살 정책을 위한 프로파간다로, KKK 단이 나치에게 독일어 레슨을 권유 받는 등 우리가 믿고 있었던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를 흐트려놓는다. 하지만 뉴 오더가 그랬었던 것처럼, 뉴 콜로서스에서도 그것은 단순한 전도가 아닌 현실에 대한 깊은 통찰력을 보여줄 것이라 기대된다. 이는 이미 뉴 오더를 통해서 보여준 스토리텔링의 성취 수준을 고려한다면, 이러한 기대는 과하지 않다.


어떤 의미에서 뉴 콜로서스는 암울한 시기에 훌륭한 맥락을 가지고 등장한 게임이라 할 수 있다:차별과 혐오가 최소한의 부끄러움도 없이 행해지고 이성의 이름으로 합리화되는 사회에서 뉴 콜로서스는 그것을 전도 시키고, 어두웠던 역사의 그늘에 빛을 비추며, 더 나아가서 새로운 미국, 새로운 거상을 만드는 이야기를 구축하고 있기 때문이다. 크나큰 결격 사유만 없다면, 뉴 콜로서스는 뉴 오더의 강점을 이어받아 더 훌륭하게 만드는 게임이 되리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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