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이야기


최근 모종의 목적 때문에 두번째 스위치를 구매했고, 동생 한 대, 본인 한 대 이렇게 운영 중에 있다. 그리고 저번주 금요일 오프라인에서 사람들을 만날 일이 있었고, 혹시나 싶어서 스위치 두대 모두(양쪽 다 마리오카트 8과 암즈, 마인크래프트가 깔려있었다)를 들고갔다. 오프라인 모임에 참석한 사람은 총 6명이었는데, 마리오카트 8을 함께 해본 결과 반응은 상당히 괜찮았다. 조이콘으로 플레이하는 마카 8은 생각외로 매우 부드럽게 움직였으며, 4명이서 머리를 맞대고 돌아가며 게임을 즐긴 것은 생각외로 유쾌한 경험이었다. 그리고 여기서 한가지 의문이 시작되었다:스위치와 기존 휴대기와 가장 다른 부분은 로컬 멀티플레이에 대한 강력한 지원이다. 스위치는 한 대로도 두명까지 충분히 즐길 수 있지만, 기기가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그 강력함은 배가 된다. 하지만 휴대용 와이파이나 인터넷 연결이 자유로운 요즘 사회에서 어째서 스위치는 로컬 멀티플레이라는 거추장스러운 기능에 집착하는가?


흥미로운 점은 스위치는 그 어떤 휴대기기보다 '로컬 멀티플레이'와 'LAN 파티'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기존의 휴대기기들은 '움직이면서 혼자 할 수 있는 콘텐츠'에 방점을 찍었기에 오래도록 하면서 반복가능한 콘텐츠를 만들어내는데 집중한다. 예를 들어 PSP로 나왔던 피스워커 원판을 보자:각각의 작전은 3~5분 내외로 짧지만 반복가능한 형태로 되어있다. PSP와 삼다수 휴대기기를 견인하였던 몬헌은 아무리 길어도 10분 내외로 게임이 진행되게끔 구성되었다. 휴대기 게임의 플랫폼 핵심은 이동중에 틈틈히 할 수 있거나 페르소나 4 골든이나 제노블 크로니클 같이 긴 시간을 틈틈이 쪼개서 플레이 할 수 있는데 방점을 찍는다. 반면, 암즈나 마리오 카트 8은 분명 기존의 게임에 비해서 한 판 한 판 즐기는 텀이 짧지만, '혼자서 즐길 수 있는 콘텐츠' 측면에서는 매우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 즉, 스위치 발매 후 닌텐도가 주력하고 있는 타이틀들, 그리고 마케팅에 집중하고 있는 포인트들은 '움직이면서 틈틈이 하는 게임'이 아닌 '여러 사람이 함께 즐길 수 있는 게임' 이자 '시스템이 여럿이 모여서 같이 게임을 즐기는 랜파티'에 가깝다는 점이다.


또한 눈여겨 볼 점은 스위치 런칭 후, 광고에 자주 노출되었던 게임들 대부분이 여러명의 인원이 여러개의 시스템을 들고와서 플레이하는 컨셉을 강조하였고, 런칭 이후 '격투 게임' 또는 '대결형 멀티 게임'에 초점을 맞춘 게임들이 많다는 점이다. 특히 스플래툰과 별개로 스위치 발매 후 암즈와 폭권이 매인 광고에 계속 뜨는 부분은 매우 특이하다:PS4나 엑스박스 원이 런칭한 이후에 '대전 격투 게임'이 게임 광고 전면에 등장한 적이 있었던가? 대전격투 게임 장르는(철권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게임 장르의 팬층이 정체되어있기 때문에 이러한 흐름은 상당히 이질적이라 할 수 있다. 오히려 대전격투라는 장르를 바라보고 게임과 기기를 어필하기 보다는 '하나의 기기로 두명이 충분히 즐길 수 있는 게임이 무엇인가?'라는 물음에 대답하기 위해서 대전격투를 메인에 내놓았다고 보는 것이 합당하다.


이러한 이질적인 스위치 마케팅 포인트는 어느 분의 말처럼 닌텐도의 시대착오적인 부분에 근거하고 있다:패미컴이나 슈퍼 패미컴 같이 하나의 시스템에 두 개의 컨트롤러가 맞물려 있고, 아직 사람들이 게임을 같이하러 다른 사람의 집에 방문하는 그런 추억 가득한 시절에는 사람들은 게임을 같은 공간에서 하나의 기기로 공유할 수 있었다. 하지만 경제와 사회 구조가 변화함에 따라 가족이 해체되고, 거실이란 공간이 해체되고, 함께 게임을 즐기는 이웃사촌과 친구 개념도 함께 해체되었다. 그런데도 닌텐도는 그러한 추억에 가능성이 있다고 굳게 믿고 컨트롤러가 분리가능한 게임기란 무리수를 두면서까지 자사의 모든 것을 집약하여 스위치를 만들었다.


하지만 이것은 단순한 추억팔이 만은 아니다. 닌텐도는 스위치를 거치기와 휴대기를 묘하게 뒤섞고 '랜파티'와 '온라인 사람들이 오프라인에서 모여서 떠들석 하게 즐기는 축제' 기믹을 게임 마케팅과 기기에 접합시킨 것은 그러한 전통이 현재에도 살아남을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또한 시대의 변화도 눈여겨볼만하다:가족과 집의 해체는 게임의 공간을 거대한 스크린과 TV에 국한 시킬 필요를 없애버렸다. 소니는 플래이스테이션 나우로 마소는 원 플랫폼 정책(엑스박스원 - 윈도우 10)을 밀어붙이면서 TV를 넘어서 다양한 플랫폼에 자사 컨텐츠가 확장될 수 있는 여지를 만들었다. 닌텐도의 경우는 이들과 같은 자본과 기술이 없기 때문에(라기 보다는 오히려 철학쪽에 가깝겠지만) 플랫폼을 최신 기술에 맞추기 보다는 자신이 잘 했었고, 고객이 기억해주고 있고, 잘 할 수 있는 분야로 싸움의 패러다임을 바꾸었다. 


물론, 스위치의 컨셉과 포지션은 여전히 검증이 필요한 부분이다. 하지만 가능성 자체는 충분히 있다. 몬헌 월드의 존재와 함께 2017 E3의 가장 충격적인 소식이 바로 피파 2018이 닌텐도 스위치로 '멀쩡하게' 나온다는 점이었다는 걸 생각하면 말이다. 휴대기인 비타 이식도 미적지근하게 했었던 EA가 자사의 가장 큰 IP를 스위치로 이식하는데 구액박이나 플삼 수준의 레거시가 아닌 스위치에 딱 맞게 커스터마이즈 한 수준으로 냈다는 점, 그리고 로컬 멀티플레이와 조이콘 하나로 충분히 플레이할 수 있게끔 포팅한 점은 가히 충격적이라 할 수 있다. EA는 절대로 돈이 안되는 물건에 돈을 쏟아넣는 짓을 하지 않으며, 고객이나 팬, IP 관리 측면에서 이미 엉망이라 평할 수 있는(물론 딥실버 수준은 아니지만) 회사기 때문이다. 그런 회사가 스위치 포팅에 힘을 실어준다는 것은 스위치의 가능성이 실제 우리가 보고 있는 것보다 더 대단할 수 있다는 부분을 보여준다. 이는 상당히 미적지근한 E3 2017 중에서도 눈여겨볼만한 점이었고, 스위치가 2017년에 있어서 가장 큰 변수를 만들어내고 있다는 어느 누구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앞으로도 넘어야할 산이 많기에 걱정도 많이 되지만, 또 그만큼 기대도 많이된다 할 수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