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이야기


크리스 마르케의 방파제는 12 몽키즈의 원작으로도 알려져 있으며, 30분이라는 짧은 러닝타임 동안 사진과 나레이션으로만 진행되는 독특한 영화다. 여기서 마르케는 사람의 기억을 주요한 소재로 다루는데(태양 없이를 포함해서 마르케 영화의 핵심 소재는 기억이다), 기억을 통해 현재에서 과거와 미래로 시간 여행을 함으로써 과거와 현재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닌 미래로의 기억의 개념을 정립한다. 마르케의 작품들에서 기억이란 단순히 있었던 사실을 반추하는 것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기억이란 있었던 사실에 이미지를 덧입히는 것이다:태양 없이에서 마르케의 동료는 나리타 공항 설립 투쟁을 두고 언론이 방송한 영상(폭력 투쟁의 프레임에 잡혀있는)의 색상을 변조하여 초현실적인 영상을 만든다. 거기에는 어떤 의도도 프레임도 존재치 않는다. 오로지 이미지만 존재할 뿐이다. 마르케는 방파제와 태양 없이에서 기억의 섬세한 이미지들을 짚어낸다:한번도 만나본 적 없는 기억 속 과거의 여인과의 산책, 연인의 흩날리는 머리카락, 미소, 잊을 수 없는 풍경들, 축제 속에서 카메라를 응시하고 수줍게 미소짓는 여성, 나리타 공항의 투쟁, 존재하지 않는 부락민들 등등. 무심하게 담아낸 듯이 보이면서도 마르케는 인간이 기억하는 포인트와 이미지를 정확하게 이해하여 도저히 잊을 수 없는 광경들을 만들어낸다.


영상으로 기억을 재현하는 마르케의 작품들은 지극히 인간적이며 강렬한 행위라 할 수 있다. 모든 시공간에 편재하여있다는 전지전능한 존재(=신)는 절대로 우리가 보는 방식대로 세계를 바라보지 않을 것이다. 그가 바라보는 세계는 불연속적이다:신은 모든 시공간에 편재하여야 하기 때문에, 초당 24프레임으로 인지되는 풍경 속에서 각 프레임 단위의 사진일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오로지 하나의 시공간에 존재할 수 있는 필멸의 존재들만이 영상으로 세계를 인지한다. 그리고 기억이란 이미지이자 사멸하는 모든 것들의 가장 강렬하고도 아름다운 저항이라 할 수 있다:인간의 뇌 용량은 한정되어 있으며, 인간은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익히고 과거의 것을 잊어버린다. 하지만 그러한 흐름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힘이 있다. 그것은 망각의 구렁텅이도, 미래로 향하는 시간의 무정한 흐름도 아닌 지금 현재에 감정과 사건들을 잡아두고자 하는 행위다. 그리고 그러한 행위들은 박제되지 않고 이미지의 형태로 생생히 살아있다. 마르케는 방파제에서 이를 훌륭하게 표현한다:모든 것이 사진의 컷으로 표현되는 영화 속에서, 단 한 장면만이 영상으로 남아있다. 병사의 기억속에만 존재하는 여인이 침대에 누워 병사를 바라본다. 단지 눈을 깜빡이며 응시하는 단 몇초는 영화에서 가장 강렬한 장면이자 기억의 강렬함을 훌륭하게 묘사하는 장면이다.


게이머들이 마르케에 주목해야하는 점은 크리스 마르케가 비디오 게임에 관심이 많았다는 점이다:태양 없이에서는 팩맨이 인간의 삶에 대한 훌륭한 은유라고 보았던 마르케가 게임이라는 매체에 관심을 가지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처사라 할 수 있다. 기억이 경험했던 일들에 이미지를 덧붙여 번역을 하는 것이고, 영화는 그 이미지를 영상의 형태로 재현하는 것이라면 게임은 영상을 넘어서 '행위'로 재현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플레이어의 행위에 따라서 역사적 사건을 실제로 하는 것, 행위의 매체로서의 게임은 이미지를 재현하는 것을 넘어서 행위로 내재화한다면, 기억과 그 이미지는 이제 완전히 달라지지 않을까. 2차세계대전의 참극이 단지 사진과 영상에 잡히는 것이 아닌, 행위로 재현된다면 사람들이 그 고통과 충격을 망각속으로 묻어버리지 못하지 않을까. 액트 오브 킬링에서 학살자가 자신이 했던 행위를 연극의 형태로 재현했었던 것처럼, 그 과정에서 크나큰 충격을 받고 그 행위를 이해하는 것처럼 보였던 것처럼 말이다.


그리고 젤다의 전설 : 야생의 숨결은 기억과 풍경, 그리고 스토리 텔링을 독특하게 결합하여 하나로 엮어낸다. 기본적으로 젤다의 전설:야생의 숨결의 서사는 게임이 시작되는 시점에 완결이 되어 있는 상태다:모든 드라마들은 이미 100년 전 재앙 가논과 함께 끝났으며, 플레이어가 경험하는 것은 시간의 흐름 속에 빛바랜 풍광과 링크의 플래시백 속에서 언뜻언뜻 드러나는 단편적인 기억들이다. 게임 플레이가 진행될 수록 야생의 숨결은 링크의 기억을 되살려주며 어째서 이런 일이 있었고 왜 그런 일들이 일어나야 하는지에 대한 당위성을 부여한다. 하지만 게임은 게이머에게 링크의 모든 기억들을 보여주지 않으며, 오로지 파편화된 기억들만을 보여주고 플레이어가 그 사이의 여운을 즐기고 나머지를 상상하고 채워넣게끔 만들어둔다.


가장 흥미로운 부분은 야생의 숨결 핵심 서사는 전혀 '선형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야생의 숨결 서사는 링크에게 있어서 중요했던 순간들의 장소를 찍어놓은 사진을 보고, 그 사진을 근거 삼아 기억 속의 장소를 되짚어 올라가는 과정이다. 그렇기에 플레이어는 가장 나중의 기억을 먼저 찾아갈 수도 있고, 최초의 기억을 가장 마지막에 찾아갈 수도 있다. 중요한 점은 야생의 숨결 서사는 철저하게 '기억'과 '장소' 중심적이라는 것이다:서사를 진행하기 위한 핵심 트리거는 게임의 이벤트를 정해진 시간과 순서에 맞게 진행하는 것이 아닌, 모든 비밀을 간직하고 있는 기억 속의 장소를 찾고 이야기의 완결을 짓기 위해 세계 곳곳을 구석구석 탐험하는데 있다. 요컨데, 야생의 숨결의 서사는 세계와 그 세계에 남아있는 자신의 기억을 되짚는 과정으로 플레이어가 세계에 애착을 갖게 만드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본다면 젤다의 전설은 광활한 하이랄의 풍경이란 이미지 중심적인 게임이며, 기억의 장소를 탐색하고 발견하는 행위로써 기억을 재현한다. 크리스 마르케가 이야기하는 게임 매체와 완벽하게 부합하진 않지만, 야생의 숨결이외의 게임들이 영화의 이미지에 사로잡힌 것들과 비교해본다면 그의 기억에 대한 독특한 철학에 어느정도 부합하는 것으로도 볼 수 있다.


또한 야생의 숨결에는 기존 젤다의 전설에서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방식의 케릭터 빌딩이 이루어진다:게임은 시리즈 최초로 인간적인 젤다 공주를 다루는데, 이 인간적인 젤다 공주를 다루기 위해서 게임이 이야기에 끌어들이는 것은 인물간의 갈등이 아닌 세계의 분위기와 기억이다. 게임은 하이랄 역사 내내 하이랄을 위협에 빠뜨렸던 전설적인 재앙 가논에 대해서 다룬다. 그리고 그 기나긴 역사 속에서 가논을 항상 무찔렀던 것은 악을 물리칠 힘을 가진 공주와 용자였다. 게임 시리즈 전체를 아우르는 이야기의 기본 골격을 게임은 역사를 넘어선 전설과 신화로써 게임 내내 반복해서 드러내는데, 이 신화에 대한 무게가 자신의 힘을 개방하지 못해서 그 운명으로부터 도피하고 싶어하는 젤다 공주라는 케릭터를 만들어낸다. 게임은 여기에 너무 많은 이야기를 더하지도 않고, 케릭터에 대한 설명을 위해 시시콜콜한 읽을 거리를 던져주지도 않는다. 링크의 기억 속에서 젤다 공주는 필요한 만큼 말하고, 게이머는 필요한 만큼 젤다 공주를 이해하고 받아들인다. 그리고 하이랄의 거대한 풍경들과 그 속을 플레이어가 해매고 기억을 더듬는 과정을 통해서 이 기본적인 뼈대에 충분한 살을 덧붙인다. 단순하지만 거대하고 아름다운 자연과 같이 이야기도 공주의 실패와 그것을 담담히 받아들이고 미래로 향하는 엔딩까지 단순하지만 여운있고 묵직한 구조를 띄고 있다.


젤다의 전설:야생의 숨결은 게임 자체로도 훌륭하지만, 서사의 완성도도 매우 뛰어난 게임이라 할 수 있다. 오랫동안 게임의 서사가 영화와 같이 강렬한 시각적 이미지와 선형적인 서사를 보여주는데 주력하였다면, 젤다의 전설 야생의 숨결은 기억을 중심으로 풍경과 이야기를 한데 섞어 플레이어가 직접 재현하고 느끼게끔 게임을 구성하였다. 게임의 서사적은 측면에서도 젤다의 전설 야생의 숨결은 전례를 찾아보기 힘든 독특한 게임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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