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니, 만화, 영화 이야기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모든 것을 걸고, 지키고 싶은 소녀를 만났다! 가까운 미래, 능력을 잃어가는 ‘로건(울버린)’은  멕시코 국경 근처의 한 은신처에서 병든 ‘프로페서 X’를 돌보며 살아간다. 세상으로부터 자신을 숨기며 살아가고자 했던 ‘로건’은 정체불명의 집단에게 쫓기는 돌연변이 소녀 ‘로라’를 만나게 되고, 그녀를 지키기 위해 모든 것을 건 대결을 펼치게 되는데…(네이버 영화 시놉시스)


브라이언 싱어가 처음으로 엑스맨 영화는 참으로 시의적절한 영화였다. 2000년대를 앞두고 만화를 원작으로 한 블록버스터의 효시를 쏘았을 뿐만 아니라, 휘황찬란한 세계(동시에 그리고 어딘가 유치한)에 대한 비전, 희망, 그리고 소수자성(브라이언 싱어 자신도 성소수자다)에 대한 고찰을 담아낸 작품이었기 때문이다. 엑스맨 3편에서 주춤하였지만, 엑스맨 퍼스트 클래스와 엑스맨 데이즈 오브 퓨처패스트, 그리고 아포칼립스까지 이어지면서 엑스맨 프랜차이즈는 여전히 살아있다는 것을 스스로 증명하였다. 하지만 엑스맨 프랜차이즈가 예견하였던 휘황찬란한 세계, 소수자들의 자신의 재능을 발휘할 수 있는 시대는 점점 멀어져만 가고 있다. 트럼프가 당선되고, 이민자과 난민은 박해받으며, 여성은 열등하다고 유럽 의회 공식석상에서 발언이 나오기까지 한다. 좋은 시대는 오지 않았고, 희망찬 미래를 말하는 것은 우스워지고 냉소받는 시대가 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여기서 영화 로건은 시작한다.


로건을 만든 맨골드 감독은 3:10 유마행 열차 등의 서부극 영화에 대한 훌륭한 통찰을 보여준 적이 있고, 울버린이라는 케릭터와 서부극 장르라는 두 조합은 독특한 시너지를 일으킨다. 사실, 우리가 울버린의 케릭터를 논할 때 서부극 영화를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폭력에 능하지만 폭력에 이골이 난 마초. 더 나은 세계를 꿈꾸지만 정작 자신이 그 더 나은 세계에는 어울리지 않는 것을 잘 아는 사람. 전통적인 서부극에서 영웅은 그런 사람들이었다. 수색자나 리버티 벨런스를 쏜 사나이처럼, 능글맞은 마초 존 웨인은 자신의 가족과 사랑하는 사람들을 뒤로 한 채, 자연의 풍광 속으로 그리고 역사의 어둠으로 사라져간다. 로건이란 인물도 그러하다:그는 너무나 오래살았다. 오래 살았기에 그는 매사에 냉소적이며 자조적이다. 하지만 그의 마음속 어딘가에는 더 나은 세계를 꿈꾸지만, 그 더 나은 세계 자신의 자리가 없음을 잘 알고 있는 인물이기도 하다. 기존 엑스맨 시리즈에서 울버린이 엑스맨 가족이자 가족이 아닌 묘한 위치를 점하는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또한 많은 사람들의 악평과 달리 더 울버린은 프랭크 밀러의 첫 울버린 코믹스(와페니즈 뽕은 프랭크 밀러 작품에서부터 유명한 부분이었다)를 잘 옮긴 작품이라 할 수 있었다. 맨골드 감독은 어떻게 보면 로건이라는 영화에 가장 적합한 감독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사람들은 로건의 황량한 풍경과 뮤턴트가 모두 사라진 세계를 보고 포스트 아포칼립스를 연상하기도 한다. 포스트 아포칼립스는 종말 이후의 세계를 가정하여 우리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다시금 고찰하는 장르적 전통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로건에는 종말이란 없다. 영화에서 종말은 이미 찾아와서 모든 것을 끝내버렸다:뮤턴트란 소수자들은 이제 이 세상에서 존재하지 않는 취급을 당하며, 뮤턴트의 종말 이후 로건은 죽어가며 찰스는 치매에 걸려 비참하게 죽어가고 있다. 즉, 종말이란 사건을 통해서 로건과 찰스는 변화하지 않았다:포스트 아포칼립스의 핵심은 종말이란 사건을 통해서 우리 내부의 무언가가 변화하고/혹은 숨은 것이 드러나고, 이를 통해 새로운 삶이 시작된다는 것이지만 로건에서 새로운 삶이란 없다. 되새길 본성도, 지켜야할 가치도 없다. 오히려 그들의 삶이란 마치 바스라지기 직전의 먼지, 그 어떤 광기나 감성이 존재할 여유조차 없는 세계다. 그렇기에 이 작품을 포스트 아포칼립스의 영화 전통에 비추어보는 것은 이질적이라 할 수 있다.


우리는 여기서 맨골드 감독의 커리어와 서부극의 전통으로 돌아와야만 한다. 서부극에서 서부라는 공간은 로맨스의 공간이기도 하지만 종종 부조리의 공간이기도 하였다. 예를 들어 몬티 헬먼의 서부극들을 보자:몬티 헬먼은 복수의 총성과 바람 속을 달리다에서 법이 없는 세계인 서부라는 세계를 전제하고 그 속에서 생기는 실존적인 부조리를 고찰하기도 하였다. 몬티 헬먼의 서부극에서 사람들은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자신이 짓지도 않은 죄로 고발당하고, 이해할 수 없는 일에 이끌려 고통받기도 한다. 하지만 그들을 보호해주는 그 어떤 안전장치도 없다. 그들은 스스로를 지킬 수 밖에 없다. 그렇기에 많은 서부극에서 사람들은 서부의 무법을 낭만적으로 바라보면서도 모순적으로 법과 질서가 있는 세계를 꿈꾼다:존 포드의 리버티 벨런스를 쏜 사나이에서 사람들은 지주들에 저항하여 법의 울타리를 만들기를 꿈꾼다. 


로건이 바라보는 세계는 바로 이 서부극의 전통(무법의 세계)에 기반한다. 하지만 서부극이 광활한 황야와 탁트인 풍광 등에 기반하여 길들여지지 않은 자연을 통해 무법의 세계를 바라보았다면, 로건이 바라보는 세계는 도회적이며 삭막하다. 리무진 텍시를 끄는 로건이 바라보는 초반의 세계는 코스모폴리스나 마이클 만 감독의 영화(톰 크루즈의 콜래트럴 같은)을 떠오르게 만드는데, 로건의 세계와 사람들의 세계는 유리되어 있으며 그 속에는 어떠한 감정적 교류와 공유가 존재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 속에서 사회는 뮤턴트를 보호하지 않고, 로건을 무법의 천지로 내몬다. 그렇기에 로건은 삭막한 도회의 무법 천지 속에서 살아남은 단 한명의 늙은 무법자이다. 하지만 그는 싸우기에 너무 지쳐버렸다. 그는 너무 늙었고, 너무 많은 죽음을 목도하였으며, 그리고 마지막으로 죽어가고 있다. 가장 명민했던 자는 치매에 걸리고, 가장 용맹했던 무법자는 초라하게 늙어버렸다.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의 서부극 용서받지 못한 자처럼 인생의 황혼에서 자신의 해왔던 모든 것에 회의를 느끼고 부정하는 단계가 바로 로건이 처한 현실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과정 속에서 로건은 로라와 만나고, 찰스와 함께 유사 가족을 형성하게 된다. 하지만 로라는 보호의 대상이 아니다. 영화 속에서 그녀는 사람을 너무 쉽게 죽인다. 11살 남짓한 어린아이가 사람을 너무나 쉽게 죽이는 세계는 로건과 로라가 보호하는 주체/보호받는 대상을 나누는 것 자체를 무의미하게 만든다. 오히려 로라와 로건은 서로 겪었던 경험과 감정을 공유하는 동등한 주체들이다. 로건은 로라를 보며 과거의 자신을 본다. 그리고 로라는 로건을 보며 인생의 선배를, 자신을 이끌었던 멘토를 바라본다. 그 속에서 늙은 마지막 무법자는 새로운 세계가 올 수 있는 희망을 다시 한번 발견한다. 물론 늙은 무법자는 계속되는 자기 부정과 분노에 스스로 그 가능성으로부터 눈을 돌린다. 하지만 만화책에 나온 좌표를 향한 여정을 통해, 로건은 그 가능성을 조금씩 받아들이기 시작한다.


흥미로운 점은 이 과정에 서부극에서 자주 등장하는 전통에 대한 호감과 신문물에 대한 반감으로 가득 차 있다는 것이다. 여정 중에 만난 전통적인 가족에 대해서 애정 어린 시선을 보여주며, 그들이 전통적인 목장을 운영하고 말을 키우며 심지어는 로데오 대회에도 나가고 도움을 준 이방인들에게 따뜻한 한 끼 식사와 잠자리를 제공하는 친절함을 보여준다. 그리고 그에 대비되는 무인 트럭과 유전자 조작 식물, 로건이 초반에 마주한 황폐한 도시 세계는 그런 따스함이 존재하지 않는 세계로 묘사된다. 하지만 맨골드 감독은 더 나아가서 이를 비정형적으로 비트는데, 이 전통적인 가족이 여타 영화에서 자주 나오는 백인 가족의 표본이 아닌 '아프리카계 미국인'으로 설정되었다는 점이다. 그리고 모든 악역들은 백인 남자들로 구성되어있는 것은 덤이다. 하지만 영화는 X-24가 이 가족들을 모두 죽이고, 로건을 친절하게 맞이해준 가장이 그를 향해 총구를 돌리는 묘사를 통해서 이들이 이 곳에 머무를 수 없다는 것을 명확하게 보여준다. 즉, 로건은 서부극의 전통을 받아들이면서도 이를 뒤틀어서 여타 영화에서 쉽게 찾아볼 수 없는 독자성을 갖게 된다.


또한 서부극과 다르며, 동시에 다른 슈퍼히어로 물에서 찾아볼 수 없는 로건만의 강렬한 개성이 있다:그것은 바로 분노와 고어 묘사이다. 로건의 액션은 모두 분노로 가득차 있고(심지어 로라의 액션도 그러하다), 모든 액션은 다양한 방법의 신체 훼손이 수반된다. PG-13의 틀을 벗어던진 로건의 액션 묘사는 이전까지 울버린이란 케릭터가 갖고 있었던 클로와 힐링팩터라는 특수성을 여과없이 묘사한다. 폭력을 상대에게 수놓고, 고통을 자신의 육체 위에 아로새긴다. 그 고통과 폭력이 로건과 로라를 분노하게 만든다. 그리고 그 분노는 다시 엑스맨 프랜차이즈와 영화 로건을 구분짓게 만들며, 동시에 다시 이어지게끔 만든다:없는 사람 취급 당하는 소수자들은 세계에 대해서 분노를 느낀다. 그 분노가 로건이 거침없이 폭력을 휘두르게 만드는 동력이며, 동시에 그가 오랜 세월동안 자신이 휘두른 폭력으로 고통받는 원인이기도 하다. 로건은 그 분노와 함께 분노만으로 세계를 바꿀 수 없다는 것을 잘 안다.


그렇기에 로건은 끊임없이 로라에게 자신은 만화에 나왔던 그런 사람이 아니라고 이야기한다. 서부극에서 총잡이들이 자신을 바라보는 어린아이들에게 그러했던 것처럼 말이다. 그리고 로라는 로건과의 여정을 통해서 그것을 점점 이해하게 된다. 그의 분노, 그의 고통, 더 나아가 그의 슬픔과 회한까지도. 휴 잭맨은 로건, 울버린이 된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잘 알고 있었고, 그의 X-24 연기를 통해서 동시에 이를 분명하게 드러낸다:악역인 젠더 라이스는 X-24를 가리켜 '어린아이에게 양심을 없앨 수 있었지만, 분노를 심어주지는 못했다'라고 말하였다. X-24의 모습은 그야말로 전성기의 울버린을 연상케하는데, 그의 강렬하고 폭발적인 분노는 로건과 유사하다 할 수 있다. 하지만 로건과 다르게 X-24의 분노는 맹목적이며, 로건은 그러하지 않는다:로건의 분노에는 어딘가 지쳐있고, 그리고 어딘가 회한으로 가득차있는 것을 옆볼 수 있다. 그의 고통에는 그가 겪어온 세월의 무게가 있으며, 그 세월의 무게로부터 로건은 분노로만 휘둘리지 않는 인물이 된다. 휴 잭맨은 X-24와 로건을 모두 연기함으로써 그것이 무엇인지를 정확하게 꿰뚫어 본다.


그리고 영화의 마지막에 로건은 죽는다. 하지만 고통과 분노 속에서 어린 뮤턴트들과 로건은 가족이 되고, 더 나은 세계, 희망을 꿈꿀 수 있게 된다. 지금 같이 희망을 이야기하는 것이 우스운 시대, 거짓말이 대안적 사실이 되는 기만적인 시대에 로건이 이야기하는 테마는 시의적절하고 또한 자칫 감정의 고양으로 이어질 수 있는 신파로 몰아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의 슈퍼히어로 영화들이 시네마틱 유니버스란 한계에 갇혔다면, 로건은 독립된 영화로써 매우 훌륭하며 엑스맨 프랜차이즈 내에서도 최고로 뽑아도 손색이 없는 작품이다. 


영화의 마지막, 로라는 영화 셰인을 인용하며 로건을 추도한다. 마치 서부극 특유의 결말처럼, 영웅은 자신이 왔었던 자연속으로 다시 돌아간다. 왜냐면 영웅은 총성이 울리지 않는 사회에는 더이상 필요하지 않은, 아니 존재해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는 그를 기억할 것이다. 더이상 총성 없는 세계, 분노와 폭력으로 저항할 필요가 없는 세계를 위해 자신의 육체 위에 고통을 아로새겼던 존재, 스스로 영웅이 아니라 되새겼지만 선량했던 사람이었던 로건을.




아 우리는 친절함을 위한 발판을 마련하여 했던 우리는

스스로가 친절할 수 없었구나


인간이 인간을 도와주는

시대가 되거든, 그대여

우리를 생각해다오

관용의 눈으로


-베르톨트 브레히트, 후손들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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