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이야기



대부분의 게임 프랜차이즈들은 혁신적인 첫 시도(1편), 첫 작품의 종적 확장(2편)을 거쳐서 자가 반복의 완성(3편 이후)을 거치게 된다. 이러한 게임 프랜차이즈 공식의 완성되자 게임 프랜차이즈는 시장에 안정적인 수요를 충족시키며 게임 산업이 움직이게 만드는 핵심 동력이 되었다. 사람들은 이제 개개의 작품을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프랜차이즈를 소비하는 시대에 진입하였으며, 프랜차이즈는 개별 작품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사이의 수많은 DLC와 이벤트, 축제 등의 할 거리를 채워놓았다. 하지만 프랜차이즈가 거대해질수록 프랜차이즈의 자가 반복은 신규 팬 유입을 막고 기존의 틀에 안주하게 된다. 이는 게임 프랜차이즈의 역설이다:종적인 확장을 하자니 게임이 더 산만해지고, 횡적인 확장을 시도하자니 프랜차이즈의 정체성을 뒤흔들 위험이 생긴다.


하지만 배틀필드 1은 거대 프랜차이즈 치고 파격적인 시도를 꾀했다:물론 1차 세계대전으로 돌아가겠다고 선언한 것이나 역사 참교육 운운한 점(물론 위대한 전쟁의 숨겨진 면모들에 주목했다는 PC적인 측면은 인정해야 한다)은 게임 마케팅으로써 참으로 시끄럽고 의미없는 소모전에 가깝다. 핵심은 배틀필드 1이 어째서 1의 타이틀을 달았는가 이다. 배틀필드 프랜차이즈에는 1편이 없으며, 2차세계대전을 배경으로 하는 1942가 최초의 작품이다. 그러면서 베트남전, 현대전을 거쳐서 미래로까지 게임은 이어지게 되었고 게임은 다양한 형태로 변주되고 발전되었다. 하지만 갑자기 과거 1차세계대전으로 돌아간 이유는 무엇인가. 그리고 어째서 1편이란 상징적인 타이틀을 단 것일까. 배틀필드 1라는 게임의 이해는 바로 여기서부터 출발하여야 한다.


배틀필드 1은 단순히 1차 세계대전으로의 회귀를 의미하진 않는다. 배틀필드 1이 1이란 넘버링을 체택한 이유는 바로 1이 원류를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배틀필드 1이 여타 게임 프랜차이즈의 정식 넘버링 타이틀 중에서 갖는 가장 독특한 부분은 바로 기존의 게임 시스템의 종적, 횡적 확장이 아닌 게임의 컨텐츠를 적극적으로 '가지치기'하고 배틀필드의 원류로 돌아가는데 주력했다는 점이다. 배경이 1차세계대전인 만큼 게임은 화려한 광학장비나 다양한 총기도 없으며, 심지어 많은 수의 총들이 자동 사격 조차 되지 않는 모습을 보여준다. 기존의 배틀필드 시리즈들이 시리즈가 진행될 수록 도구와 무기의 수를 압도적으로 늘려주었던 것을 생각하면 이는 매우 이례적이고 대조적인 흐름이라 할 수 있다. 플레이어가 선택할 수 있는 가능성의 폭을 축소함으로써 게이머는 총기류 세팅이나 장비 언락 같은 기나긴 반복의 과정을 떠나 배틀필드 프랜차이즈가 갖고 있는 본질인 분대 단위의 협력에 주력하게 만든다.


일찍히 배틀필드 시리즈가 여타 FPS와 비교해서 차별성을 갖고 있는 부분은 32 대 32라는 64인 멀티를 최초로 구현한 게임이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인원의 숫자가 배틀필드라는 게임의 재미를 정의내리진 않는다:MAG는 128 대 128 이라는 256인 대전 멀티를 구현하였지만, 별다른 반향을 불러일으키지 못한 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우리가 배틀필드 시리즈에서 주목해야 할 부분은 FPS 역사상 최초로 대규모 전장을 어떻게 구현하였는가다:배틀필드 시리즈들은 분대 내의 다양한 클래스들이 서로 협력하여서 하나의 목표를 향해 좌충우돌 움직이는 재미가 핵심이었다. 좀 더 거슬러 올라가면 팀포트리스 같은 게임들이 있었고, 배틀필드는 그 협력의 규모를 확장하였다. 배틀필드 1이 돌아가고 싶고 플레이어들에게 제공하고 싶은 재미는 바로 이 '협력'이다.


기존 배틀필드 시리즈들도 협력 플레이는 중요한 요소였지만, 배틀필드 1은 클래스 간의 협력이 기존보다도 더욱 긴밀해졌다. 이는 클래스간 총기 벨런스 및 역할 분담 덕분이다:기존의 배틀필드 시리즈는, 특히 3편과 4편의 경우에는, 병과 간의 역할 분담(돌격병 - 치료, 보급병 - 탄약보급, 공병 - 차량 수리, 정찰병 - 저격)이 분명하기는 했지만 카빈과 DMR 같은 공용화기의 존재와 제각기 갖고 있는 공격용 기술들 덕분에 병과 간의 역할 분담과 협력보다는 플레이에 따라 원맨쇼가 될 여지가 더 많았다. 하지만 배틀필드 1은 1차세계대전의 제한적인 총기들을 사용함으로써 병과 간의 상성을 조정하고 '협력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는 구조'를 만들어내었다. 


예를 들어 돌격병은 SMG로 근거리에서 높은 연사력과 함께 대전차 무기로 근거리 대보병전과 탱크 등의 차량을 잡는데 특화되었지만 탄약 소비가 심하고 교전거리 50미터 이상에서는 적을 맞추는건 불가능해졌기에 저격병이나 하다 못해 메딕의 도움이 절실하며, 지속적인 전투를 위해서는 보급병의 탄약 보급도 필수적이다. 반면, 메딕은 거의 모든 거리에서 무난하게 쓸 수 있는 라이플을 들지만, SMG나 정찰병의 저격 라이플과 비교하였을 때 뚜렷한 우위를 잡진 못한다. 그 대신 메딕은 다른 병과들을 되살리면서 전선을 유지하고, 다른 병과의 도움을 얻어서 상대방을 제압하는데 집중해야 한다. 이와 같이 게임은 병과가 서로를 필요하게 만듬으로써 서로가 서로를 엄호하여 전장을 지배하는 자연스러운 협력을 이끌어낸다. 이는 배틀필드 프랜차이즈의 본질을 정확하게 파악한 게임 디자인이며, 게임 프랜차이즈가 취할 수 있는 흥미로운 선택(확장이 아닌 제거를 통한 집중)이라 할 수 있다.


물론 배틀필드 1에는 제거를 통한 집중만이 있지는 않다. 이미 배틀필드 3를 통해서 검증된 지형 지물의 파괴라든가, 배틀필드 4를 통해서 입증된 큰 규모의 맵 변화(Levolution) 등도 게임 내에 포섭하고자 노력을 기울였다. 지형 파괴는 게임이 만들어진 프로스트바이트 엔진의 전매특허이긴 하지만, 배틀필드 1이 이전작들과 차별화되는 가장 큰 요인은 바로 베헤모스라는 거대 병기의 출현이다. 게임 진행 중 지고 있는 팀에게 일발 역전의 기회로 등장하는 베헤모스의 존재는 1차 세계 대전에서나 볼 수 있었던 무식한 무기들(장갑열차 같은)을 조종해서 이기고 있는 상대를 추격하거나 역전하는 방식으로 활용된다. 베헤모스의 존재는 이론적으로 판세를 뒤집을 수 있는 중요한 기회지만, 기존 FPS와 비교해보았을 때 이질적인 움직임들과 거대한 표적이 되기 쉽다는 점에서 역으로 쉽게 터지는 문제가 있다. 물론 베헤모스 자체를 지나치게 강하게 만들었다간 게임이 문자 의미 그대로 폭파당할 위험이 있기에, 게임 내에서의 베헤모스의 존재는 조금 미묘한 감이 있다.


배틀필드 1편의 싱글플레이는 이전의 엉망인 싱글플레이들과 비교하자면 매우 훌륭한 편이라 할 수 있다:문제는 비교대상이 사상 최악의 싱글플레이 타이틀을 받아 마땅한 3편의 싱글과 사상 최악의 존재감없는 싱글플레이 타이틀을 받아 마땅한 4편의 싱글과 비교하였을 때, 그렇다는 것이다. 물론 위대한 전쟁, 모든 전쟁을 끝내기 위한 전쟁인 1차 세계대전에 주목하고, 또 그 내에서 보이지 않았던 사람들의 이야기(아프리카 미국인 병사들, 베두인 족 여성 전사, 오스트레일리아 참전 용사 등등)를 다루고자 했었던 점은 높이 살만하다. 하지만 그런 시도와 별개로 게임은 다양한 이야기를 에피소드 형태의 싱글로 풀어내기 급급한 나머지 이야기가 산만하게 쪼게졌다는 인상을 지우기 힘들다. 그래도 배틀필드 최초로(배드 컴퍼니나 하드라인을 제외한) 할만한 싱글플레이가 나왔다는데 의의를 둔다면, 나쁘지 않은 결과물이다.


결론적으로 배틀필드 1은 처음 인상과 다르게 흥미로운 게임이라 할 수 있다. 이 게임은 정진정명 배틀필드 프랜차이즈의, 배틀필드 게임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그 방식은 게임에 새로운 걸 더하거나 자가 복제를 하는 방식이 아닌 빼는 방식으로 구현했다는 점은 높은 평가를 받을만 하다. 프랜차이즈 게임들에게 있어서 이런 방식이 있을 수도 있다는 것을 배틀필드 1은 잘 보여주었으며, 혁신은 본질에 집중하고 또 핵심이 무엇인지를 정확하게 이해하는데 있다는 걸 훌륭하게 증명해냈다. 이러한 배틀필드 1의 모험은 타이탄폴 2와 함께 일찍이 FPS에 있어서 새로운 시대가 들어서고 있는 것을 반증하는 훌륭한 사례라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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