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이야기


※ Night of Zealot 일부 게임 진행에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판타지 플라이트 게임즈의 아캄 호러 파일 프랜차이즈를 정의내리는 중요한 키워드는 '호러'가 아닌 '부조리'와의 싸움이다. 보드게임의 특성상, 아캄 호러 파일 프랜차이즈의 보드게임들은 컴퓨터 게임과 다르게 끔찍한 그래픽과 으스스한 사운드로 게이머를 사로잡을 수 없다. 그렇기에 아캄 호러 시리즈는 그 핵심을 코스믹 호러가 갖고 있는 부조리한 속성에 초점을 맞춘다:조사자들은 유능하지만 게임은 그보다 더 가혹하고 모든 것은 쉽게 부서져 내린다. 게이머는 자신이 갖고 있는 자원들과 피해들을 최대한 관리하고(데미지 컨트롤), 관리된 자원과 피해를 통해 게임의 목적을 달성해야 한다. 아캄 호러 시리즈가 여타 보드게임에 비해서 성공한 부분이 있다면 바로 이 부분일 것이다. 


아캄 호러 카드 게임은 아캄 호러 파일 프랜차이즈에 최신 작품이다. 엄밀하게는 보드게임의 범주라기 보다는, 자사의 LCG(Living Card Game, TCG와 다르게 제한적인 풀에서만 카드 업데이트가 이루어지는 게임) 포멧으로 아캄 호러 파일 프랜차이즈를 옮긴 작품이다. 기존 아캄 호러 시리즈들이 대부분 협동에 초점을 맞추었듯이, 이번 아캄 호러 카드 게임도 본격적인 협동 게임을 표방한다. 아캄 호러 카드 게임은 개발단계에서부터 카드게임과 TRPG의 결합을 목표로 하였으며, 게임이 진행되면서 덱이 강해지는 등의 덱빌딩 요소, 게임 진행에 따라 이야기가 달라지는 시나리오 요소 등을 적극적으로 탑재하였다.


아캄 호러 카드 게임의 기본적인 골격은 반지의 제왕 카드게임이다:실제 반지의 제왕 카드 게임 제작자들이 참여한 아캄 호러 카드게임은 퀘스트 덱과 유사한 액트 덱을 사용하고 있으며, 플레이어는 엑트 덱의 진행(주로 단서토큰 수집 및 사용을 통해)을 통해서 게임을 진전시키게 된다. 하지만 아캄 호러 카드게임에는 반지의 제왕 카드게임에서는 찾아볼 수 없었던 새로운 아젠다 덱이 추가되었다. 아젠다 덱은 파멸 토큰이 쌓일수록 플레이어들에게 불리한 효과가 일어나며, 아캄 호러 프랜차이즈에서 찾아볼 수 있는 파멸 트랙의 존재와 유사하다. 하지만 단순하게 아젠다 덱과 엑트 덱의 진행은 단서/파멸 토큰이 올라감으로써 게임이 얼마나 진행되었는지를 드러내는 지표 이상을 의미하기도 한다. 각각의 덱들은 진행되기 위한 고유한 조건들을 갖고 있다. 예를 들어서 코어 시나리오 Night of Zealot의 두번째 시나리오의 경우, 게이머들은 아캄 도시를 전역을 조사하고 사교도들을 사냥해야 한다. 플레이어는 자신이 모은 단서 토큰을 사용해서 별도로 구성된 사교도 덱을 진전시키고, 이들을 사냥하는데 주력해야 한다. 


아캄 호러 카드 게임은 이전에 나왔었던 RPG 테마류의 카드게임들(패스파인더 ACG 같은) 중에서는 가장 유연한 게임 흐름을 보여준다. 패스파인더 ACG가 기본적으로 장소덱 탐색 후 빌런/핸치멘 카드 사냥이라는 원패턴 진행에 잔 규칙들을 섞어서 베리에이션을 만들었다면, 아캄 호러 카드 게임은 액트덱과 아젠다 덱이라는 상반된 큰 흐름들이 다양한 경우의 수를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모든 시나리오는 각기 다른 목표와 흐름을 갖고 있으며 각각의 시나리오들의 개성은 매우 뚜렷하다. 이전에 진행한 시나리오의 내용에 따라서 이후의 시나리오 전개가 달라지기도 하는데, 위에서 언급한 두번째 시나리오의 경우 얼마나 많은 사교도를 사냥했는지, 그리고 언제 게임을 클리어했는지 여부에 따라서 마지막 시나리오에 큰 영향을 끼친다. 하지만 이러한 개성 있는 시나리오들이 게임의 난이도를 대폭 상승시키지는 않는다:오히려 게임은 TRPG의 불명료함/추상성에 비교하면 매우 분명하고 구체적인 흐름을 띄고 있는데, 이는 카드라는 컴포넌트와 게임의 규칙/시나리오 카드들이 게임이 진행되는 경계를 분명하게 정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TRPG와 카드게임의 강점을 모두 취하고 싶었다는 제작자들의 목표는 충분하게 달성되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아캄 호러 카드게임에서 아캄 호러 프랜차이즈를 정의내리는 데미지 컨트롤 게임 플레이는 크게 3개의 영역(피해, 자원, 그리고 시간과 기회)에서 이루어진다. 게이머는 매턴이 시작될 때마다 조우 덱에서 괴물/계략 카드를 뽑아서 해결해야 하며, 게임이 진행될수록 이러한 피해의 누적은 플레이어를 쓰러뜨리거나 게임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등의 상황을 유발한다. 하지만 여타 아캄 호러 게임들이 그랬듯이, 플레이어는 '적절한 플레이 방식'으로 플레이한다면 매우 강력한 존재며, 이러한 플레이어의 능력은 때로는 누적되는 피해를 쉽사리 회복하게 만든다. 게임은 여기에 플레이어가 관리해야 하는 자원을 핸드 이외에도 자원 토큰을 추가함으로써, 플레이어가 신중하게 능력을 쓰고 게임 플레이를 진행하게끔 유도한다. 마지막으로 엑트 덱/아젠다 덱의 진행과 액션 등을 통해 시간과 기회를 제한을 게임에 부여하고 게임은 빠른 진행을 보여주되 하나 하나의 행동을 신중하게 판단하고 진행하게 만들었다. 이 세 요소가 맞물려들어감으로써 아캄 호러 카드 게임은 제한된 시간 내에 집중적으로 게임을 진행하게 만든다.


흥미로운 점은 아캄 호러 카드게임은 주사위를 쓰지 않는다는 점이다:게임은 케릭터의 기본 능력치+카드 보정 수치(카드를 버려서 카드 아이콘 만큼의 값을 능력치에 더함)를 더한 값에 카오스 토큰이라는 보정 수치를 더해서 최종적인 성공/실패 여부를 판정한다. 기존의 아캄 호러 시리즈들이 케릭터 스텟 수치만큼 주사위를 굴리고, 성공 판정 수+단서 토큰을 사용하여 단서 판정을 성공 판정으로 변환 으로 성공/실패 여부를 판정한 것과는 달리 다소 이질적인 흐름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카오스 토큰 시스템의 핵심은 '능력치에 +값을 더하지 않는다'에 있다:거의 대부분의 카오스 토큰은 능력치에 부정적인 보정을 더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어떻게 보면 지극히 아캄 호러적인 시스템이라 할 수 있는데, 그렇기에 플레이어는 '얼마만큼의 마이너스 보정을 기대하고 보정을 해야 하는가'를 고민할 수 밖에 없다. 또한 카오스 토큰은 주사위에 비해서 토큰 풀의 변환과 구성이 용이하기 때문에 아캄 호러 카드게임에 다양한 난이도(쉬움에서부터 어려움까지)를 가능케 만드는 주요 요인이라고도 할 수 있다.


아캄 호러 카드 게임에 있어서 덱빌딩 요소는 게임을 시작하는 시점에 거의 결정된다고 할 수 있다. 패스파인더가 시나리오를 진행하면 할수록 게이머가 강해지는 것이 체감적으로 느껴진다면, 아캄 호러 카드게임에서는 카드를 업그레이드 하기 위한 경험치를 얻는 과정도 힘들고, 경험치도 많이 안벌리며, 무엇보다도 기본 카드 외의 높은 레벨의 카드들의 숫자가 적기 때문이다. 물론 이러한 부분들은 판타지 플라이트 게임 특유의 무한 확장을 통해 극복(?)될 부분이긴 하지만, 패스파인더 카드게임 같이 장소덱을 까뒤집어 내려가며 어떻게 성장할까 라는 재미를 부여한 부분과 비교하면 다소 아쉽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그외의 덱빌딩 요소는 훌륭하다:플레이어의 직업에 따라서 역할은 극명하게 나뉘어지며, 케릭터와 카드의 조합에 따라서 플레이 스타일도 천차만별이 되기 때문이다. 특히, 게임이 하드코어하게 어려운 만큼 협력은 선택이 아닌 필수이기에 게이머들은 게임을 진행할 때 서로의 역할을 분담하고 플레이 스타일을 조율해나가고 협력을 통해 불가능한 과제에 도전하는 재미는 쏠쏠하다.


결론적으로 아캄 호러 카드게임은 TRPG와 카드게임의 중간 형태에 있는 게임으로, 패스파인더 ACG 보다 훨씬 더 발전한 형태라 할 수 있다. 물론 패스파인더 ACG가 갖고 있는 주사위 굴림 특유의 경파함이나 RPG적인 성장 요소는 다소 부족하더라도, 협력게임으로써 다양한 상황과 시나리오를 즐길 수 있는 게임은 아캄 호러 카드게임 정도 뿐이기 때문이다. 앞으로 확장을 통해서 좀 더 다양한 덱빌딩 요소가 도입된다면 아캄 호러 카드 게임은 전작인 반지의 제왕 카드게임보다도 더 높은 자리에 도달할 수 있으리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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