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이야기



패스파인더는 파이조가 만들며, 던전 앤 드래곤 3.5판을 베이스로 하여 던전 앤 드래곤의 방계로 취급받고 있는 TRPG다. 한 때, 던전 앤 드래곤이 4판으로 해매고 있을 동안 파이조는 던전 앤 드래곤의 3.75 버전으로 불리는 패스파인더를 통해서 던전 앤 드래곤과는 다른 자신만의 독자적인 파이를 차지하였고, 이제는 판타지 TRPG 중에서는 던전 앤 드래곤의 다음을 차지하는 확고한 2인자 자리를 확보하였다. 흥미로운 점은 그러한 확고한 자리에도 불구하고, 패스파인더 TRPG는 패스파인더 ACG의 등장 이전까지 여타 TRPG와 다르게 장르 바깥으로의 확장에 다소 소극적(?)인 모습을 보여주었다. 여기서 다루고자 하는 패스파인더 ACG와 패드/스마트폰으로 이식된 패스파인더 ACG : 룬로드의 부활은 패스파인더 프랜차이즈의 외연적 확장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작품인 동시에, TRPG와 CRPG 사이의 회색지대로써 보드게임과 카드게임이 갖고 있는 속성을 잘 표현하는 작품이라 할 수 있다.


패스파인더 ACG를 간략하게 요약하자면, TRPG로 하는 카드게임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TRPG는 전통적으로 문장으로 이루어져있는 게임이다. 게이머들은 자신이 어떤 선택을 하고, 어떤 행동을 하는지를 플레이어의 입(또는 타이핑)을 통해 자유롭게 구술할 수 있다. 물론 이러한 TRPG의 속성은 많은 사람들이 오해에 빠지기 쉬운 자유도라는 개념과는 다소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자유도가 컴퓨터 게임에 있어 얼마나 플레이어가 자유로운가를 표현하는 애매모호한 정의와 다르게, TRPG의 핵심은 모든 행위가 문장으로 선언되기 때문에 문장에서 발생하는 뉘앙스의 차이, 케릭터의 연기 등의 기존 CRPG 등에서 발견되기 힘든 독특한 성질들이 발현되기도 한다. 그리고 이러한 성질들을 통제하기 위해서 TRPG는 규칙을 통해 플레이어 구술의 바운더리를 묶어둔다.


 하지만 카드 게임이나 보드 게임은 TRPG 같은 게임들의 갖고 있는 문장으로 발현되는 언어를 컴포넌트라는 제약된 환경에 묶어둔다. 그렇기에 카드게임/보드게임의 언어는 구술되는 문장이 아닌 준비되어있는 언어의 발현이라 할 수 있으며, 이러한 준비된 언어들은 규칙이라는 외부적이고 추상적인 요소를 통해서 문장이 어떤 식으로 배열되는지, 그리고 문장과 문장 사이의 호응을 제약하거나 이어나갈 수 있는 가능성을 만든다. 카드 게임과 보드 게임의 특징들은 분명 TRPG와 컴퓨터 게임의 중간적 위치라 할 수 있으며, 몇몇 사람들에게는 굳이 TRPG/컴퓨터 게임을 할 것이지 왜 이걸 해야하는지 알 수 없다는 푸념을 들을만한 소지도 충분히 있다. 그러나 TRPG가 자신만의 언어로 TRPG의 규칙 내에서 게임을 풀어나가는데 있어 상당한 훈련과 경험이 있어야 하는 것에 반해서 보드게임/카드게임은 준비되어있는 문장과 규칙을 이용해서 누구라도 쉽게 게임을 풀어나갈 수 있다는 강점을 갖고 있다. 또한 컴포넌트의 세겨진 일러스트와 피규어의 조형 등은 게이머에게 심미안적 만족감을 주는 동시에 스크린으로 재현되는 것과는 분명하게 다른 질감을 드러내며, 서로 대결하거나 협동하는 사람의 얼굴을 보며 게임을 한다는 것은 기존의 컴퓨터 게임에서 경험할 수 없는 깊이감을 부여하기도 한다.


패스파인더 ACG는 기본적으로 카드게임의 규칙을 가져온다:플레이어들은 자신만의 덱을 구성하고, 장소덱을 한장 한장 확인하면서 빌런과 그 하수인 카드들을 추적하여 제거해야 한다. 각각의 카드는 통과해야 하는 굴림 체크를 갖고 있으며, 플레이어들은 TRPG와 비슷하게 다양한 능력과 장비를 조합해서 주사위 풀을 늘려서 굴림체크를 통과하여야 하며, 굴림체크를 통과한 카드들을 자원으로 재활용하거나 덱빌딩을 통해서 난관을 해쳐나가야 한다. 흥미로운 점은 카드를 이용하고 주사위 굴림으로 판정을 하거나 판정을 거친 카드가 다시 자원으로 충당되는 일련의 과정을 마치 TRPG를 재현하는 것 같은 감각을 불러일으킨다는 점이다:예를 들어서 전사의 경우, 손패에 들 수 있는 카드 수가 한정되어 있지만, 그만큼 데미지를 입을 때 버리는 손패가 적고 덱에 변수는 적지만 안정적으로 굴러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하지만 마법사의 경우, 한 번에 들 수 있는 손패가 많지만 동시에 버리는 손패 수도 많을 뿐더러 손패 제한이 늘어남에 따라 덱회전이 빨라서 불안정하다는 느낌을 주기도 한다. 성직자는 범용 카드인 축복을 이용해 장소덱들을 빠르게 탐험하거나 다른 케릭터들의 주사위 풀을 늘려주는 등의 적극적인 지원이 가능하다. 이와 같이 게임은 카드라는 구문 외적으로 규칙을 활용하여 각각의 케릭터 직업이 갖는 플레이 스타일과 특성을 잘 드러내고 있다.


패스파인더 ACG는 덱빌딩 게임과 TRPG를 교묘하게 섞고 있다:장소덱들은 몬스터 외에도 장비나 아이템, 마법 등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시나리오와 덱의 넘버링이 올라갈 수록 이전에 보지 못했던 강력한 카드를 볼 가능성이 높아진다(기본적으로 장소덱은 시나리오 덱 확장에 포함되어 있는 비슷한 수준의 카드를 기반으로 구성된다) 그렇기에 장소덱을 한장 한장 뒤집어서 확인하는 것은 단순히 빌런과 하수인을 추적하는 지루한 작업이 아닌, 플레이어가 더 강해질 수 있는 가능성과 기회를 제공하는 행위라 할 수 있으며, 이 탐험의 재미와 굴림체크 및 카드 확보를 통해서 케릭터가 강해지는 과정이야말로 패스파인더 ACG의 핵심이라 할 수 있다. 그것은 CRPG에서 경험치를 통해서 레벨업을 하는 것이 아닌, 자신만의 덱을 구축함으로써 자신의 케릭터가 어떤 존재인지를 묘사하고 애착을 가지게 만든다는 점이다. TRPG가 기본적으로 케릭터가 연기 등의 내연, 외연적으로 복잡하게 확장되는 부분들을 패스파인더 ACG는 플레이어가 강해지는 부분으로 단순화 시킨다. 준비되어있는 구문과 구문을 연결시키는 점에서 패스파인더 ACG는 카드게임의 범주를 크게 벗어나지 않지만, 게임의 경험을 구현하는 베이스 장르가 TRPG라는 점은 높게 평가할만하다.


패스파인더 ACG는 최대 6명의 플레이어를 지원하며, 전체 게임 클리어를 위해서 긴 세션(적어도 몇 주 단위의)으로 진행할 것을 전제로 한다. 게임은 덱빌딩 요소 외에도 다양한 장소와 시나리오를 제공한다. 흥미로운 점은 장소 카드의 특성과 시나리오 카드의 특성의 결합으로 똑같은 장소카드의 규칙이라도 전체 시나리오에 비추어 보았을 때 동일한 플레이를 제공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하지만 게임의 개별 세션이 앞을 예측할 수 없다는 점은 좋은 평가를 받을만하지만, 게임의 스토리텔링적인 부분에 있어서 백지라 할 수 있을 정도로 이야기가 없는 것은 게임을 플레이하는 사람에 따라서는 크나큰 단점으로 작용할 여지가 있다고 보여진다.


결론적으로 패스파인더 ACG는 TRPG는 하기 힘들지만 그보다는 가볍게(?) 즐길 수 있는 게임이라 할 수 있다. 물론, 보드게임으로 살 경우 한 시즌이 20만원 상당이 들어가는 부담되는 가격이지만, 아이패드나 스마트폰 전용으로 출시된 룬로드의 부활은 30달러 전후의 가격으로 게임을 즐길 수 있다. 관심이 있는 분들은 다운로드 받아서 처음 무료 부분만 진행해보셔도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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