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니, 만화, 영화 이야기



다큐멘터리 장르는 일반적인 사람들에게 있어서 지루한 영화 장르라 할 수 있을 것이다:왜냐하면 역사적 사실에는 어떤 극적 구성이 없기 때문이다. 어떠한 반전도, 충격적인 진실도, 징벌과 포상받아 마땅한 선과 악조차 존재하지 않는다. 다큐멘터리에는 오로지 사실만이 있다. 그리고 그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바로 다큐멘터리가 갖는 이 장르적 특징이 다큐멘터리를 가장 보기 힘든 지루한 장르로 만들었다. 또한 사실의 나열이라는 측면에서 다큐멘터리는 다른 매체들(책과 같은 기록 매체)에 비해서 하등 나아보일 것도 없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다큐멘터리라는 '영화' 장르는 다른 사실의 기록 매체들과 다른 힘을 갖고 있으며, 몇몇 다큐멘터리들은 종종 '기록'이라는 다큐멘터리의 장르적 경계를 벗어나기도 한다.


밤과 안개는 유대인 학살을 다룬 다큐멘터리다:처음 공개될 당시, 영화 속에 담겨 있던 끔찍한 기록 영상들은 수많은 논란거리를 만들어내기도 하였다. 하지만 30분에 불과한 이 짧은 다큐멘터리는 유대인 학살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것이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갖는지에 대해서 묵직하고도 날카로운 통찰을 우리에게 보여주었다. 공개된지 6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밤과 안개는 다큐멘터리의 걸작이자 우리에게 무거운 울림을 가져다 주는 작품이다.


밤과 안개의 미학적 핵심은 사실의 '재현'에 있다. 하지만 그것은 극영화에서 찾아볼 수 있는 재구성이나 다큐멘터리에서 흔하게 찾아볼 수 있는 고발과는 다르다. 우선, 극적인 재구성은 일정한 흐름(플룻)에 따라서 이야기의 화소를 재배치하고, 프레임과 컷, 쇼트를 구성한다. 물론 밤과 안개 역시도 유대인이 '처리'되는 과정을 기록물 영상에 따라 배치함으로써 추방-격리-처리라는 나치 독일 유대인 '처리' 프로세스 3단계의 큰 그림을 보여준다. 하지만, 밤과 안개의 그것은 작품을 만든 창작자의 의도와는 거리가 멀다:밤과 안개에서 기록물과 나래이션은 유대인 학살에 대해서 최대한 담담하게 서술하고자 하며, 이러한 비인간적인 행태가 마치 일상적으로 있었던 일이었던 것처럼 묘사한다.


그렇다면 밤과 안개는 유대인 학살이라는 역사적 사실을 '고발'하고자 한 것일까? 물론 다큐멘터리라는 장르의 미덕 중 하나는 숨겨져있던 사실을 재조명하여 고발하는 것도 있다. 하지만 고발이란 보통 단순한 과거 사실의 폭로만을 의미하지 않으며, 대저 과거 사실의 고발이란 현재의 사실로 이어지는 연결고리가 존재한다. 우리는 나치 독일의 부역자들이 적극적인 부역자들 뿐만 아니라 소극적인 동조자들, 나치를 막지 않았던 독일의 일반 시민들, 더 나아가서 그들이 그 지경에 이르기 까지 침묵으로 동조했던 세계의 열강과 국제 정세, 사상적 흐름, 시대가 있었음을 알고 있다. 그리고 그 모든 책임들을 나치와 히틀러라는 표상에게 뒤집어씌우고 수많은 이들이 침묵했었다는 사실 역시 우리는 은연중에 나마 알고 있다. 그렇다면 밤과 안개는 이를 지목하고자 한 것일까? 어느정도는 타당하다고 볼 수 있다:밤과 안개는 우리가 눈돌리고자 했었던 비인간적인 행태를 다루었다. 하지만 그것은 과거의 사실을 고발하여 지금 현재의 구체적인 사실을 고발하고자 하기 위함은 아니었다. 대부분의 다큐멘터리적 고발이 우리에게 구체적인 과거의 사실로부터 새로운 현재의 사실을 이어서, 충격과 깨달음을 주는 일종의 계몽적인 역할을 자처하였다면, 밤과 안개에는 현재의 구체적 사실은 존재하지 않는것처럼 보인다. 


그렇다면 우리는 처음 진술하였던 '재현'으로 돌아와서 집중하여야 한다:영화는 컬러로 표현된 현대의 수용소에 도착해서, 그 위에 흑백의 영상을 덧입히는 구조로 되어 있다. 밤과 안개는 현재와 과거를 교차시킴으로써 현재와 과거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드는데 집중한다. 그것은 마치 현재와 과거는 연결되어 있고, 과거의 끔찍했었던 경험들이 여전히 우리와 함께 같이 살아숨쉬고 우리를 짓누르는듯이 느껴지게 만든다. 알렝 레네가 밤과 안개를 통해서 만들어내고자 한 것은 과거의 사실이 현재의 사실로 1대1 대응을 이끌어내는 것이었다. 그것은 과거 사실에 대한 고발도, 어떤 감정을 이끌어내기 위한 사실의 재구성도 아니었다. 과거에 있었던 일들을 현실에 입히는 것, 그것이 여전히 현실에 맞닿아있으며 이후의 우리들은 어떤 도덕적 책임을 져야하는가라는 무거운 질문이 밤과 안개가 재현하고 싶었던 것이다.


이러한 재현은 때로는 우리에게 사실의 고발보다 더욱 무거운 질문을 맞딱뜨리게 만든다:빛을 향한 그리움에서 독재정권에 납치당한 사람들의 유해를 찾기 위해서 광활한 사막을 하염없이 해매이던 실종자 가족들의 모습은 어떠한 도덕적 규탄을 주장하지 않고, 사실을 고발하지도 않는다. 하지만 그 사람들의 무거움이 프레임 바깥의 감상자들에게 전달된다. 또한 침묵의 시선에서 학살자들의 추억을 조용히 지켜보는 프레임 바깥의 희생자 가족의 모습을 보라. 그가 갇혀 있는 무거움은 단순히 학살자들에 대한 규탄과 비난과는 다른 무거움, 그들이 인고했어야 했었던 크나큰 고뇌를 전달한다. 바시르와의 왈츠를은 어떠한가? 현실에 덧입혀진 애니메이션을 벗김으로써, 나도 거기 있었다 라고 학살의 기억을 받아들이는 목격자의 증언을 현실과 이미지를 절묘하게 섞어서 그 충격을 관객들에게 전달한다. 이러한 다큐멘터리의 조류에 있어서 가장 뛰어난 부분들은 바로 도덕적 규범에 대한 훈육이 아닌, 가장 무거운 주제에 대해서 사람들을 침잠하게 만든다는 점에 있다. 그리고 그것은 과거의 역사를 현재에 덧씌우고 그것이 여전히 살아있다는 것을 입증하는 재현의 과정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다.


알렝 레네의 밤과 안개는 컬러와 흑백을 오가며 마치 이 모든 참혹한 현장들의 현재 일어나는 것과 같은 기시감을 불러일으킨다. 구체적인 사실의 고발이 아닌 불연속적인 시간을 마치 연속적인 것처럼 연결지어 시적인 슬픔을 불러일으키며, 어떤 주의나 사상, 이념을 넘어 우리가 인간으로써 지켜야 하는 최소한의 도덕에 대한 깊은 고민을 갖게 만든다. 그 어떠한 고발보다도, 그 어떠한 드라마보다도 밤과 안개가 그려내었던 유대인 학살에 대한 기억은 현재에도 그 고통스러운 기억과 질문, 고뇌를 훌륭하게 현대적으로 재현해낸 작품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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