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이야기






※보드게임입니다. 조만간 보드게임 카테고리를 하나 만들던가 해야겠네요.


보드게임에 꽂혀서 요즘 보드게임들을 주문하고 있는데, 최근에 킥스타터 사후 후원을 한 매시브 다크니스입니다. 그런데 늦은 후원을 한 이후에 글들을 찾아보니 게임에 대한 미묘한 평가들(....)이 대부분이라서 좀 많이 놀랐습니다. 레딧 쪽에선 '늘 그랬듯이 쿨한 미니어처에 평이한 게임 플레이'라던가 'B-Sieged의 실패 이후로 CMON(회사인 Cool Mini or Not의 약자) 게임들에 대해 회의적이게 되었다' 등등의 이야기가 대세를 이루고 있더군요. 비슷한 시기에 킥스타트에서 예약 구매로 전환한 던전 크롤러 보드게임 글룸헤이븐과 비교를 많이 하면서 글룸헤이븐 쪽을 더 높게 평가하는 사람들도 많았구요. 물론 게임플레이 영상이 다소 모호한 구석이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저는 게임의 기본적인 재미 자체는 어느정도 보장하리라 보고 있습니다. 물론 사람들이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부분들이 '어째서' 등장한 것인지도 대략은 감이 오구요.


매시브 다크니스는 사실상 좀비사이드에 기반을 두고 있습니다. 무지막지한 수의 적들을 빠르게 처내면서 게임을 진행한다 라는 컨셉 자체는 이미 좀비사이드를 통해서 확립된 부분이죠. 그리고 눈여겨 보아야하는 점은 좀비사이드에서의 장기적 '전략'의 부재입니다:게임은 카드를 뒤집는 방식으로 좀비를 불러내는데, 이 좀비들이 생기는 규칙 자체는 랜덤성을 띌 수 밖에 없습니다. 스폰 포인트에서 좀비가 한 마리도 안나올 수도 있는 반면, 갑자기 감당하기 힘든 뚱보 좀비나 어보미네이션이 기어나올 수도 있죠. 물론, 게임은 초반에 너무 어려운 좀비가 나오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 레벨과 함께 좀비 숫자를 스케일링하는 시스템을 탑재하기는 하였습니다만, 좀비사이드는 전적으로 문을 열고 좀비 스폰 카드를 뒤집기 전까지는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구조입니다. 그렇기에 게임에는 '전략'이 부재할 수 밖에 없습니다. 게이머는 그때 그때의 상황에 따라서 전술적인 행동을 취할 수 밖에 없으며, 몇몇 게이머들이 평하는 '좀비사이드에는 뭔가 하나 빠져있다' 라는 것은 이 부분입니다.


물론, 그렇기에 좀비사이드는 어디서나 꺼내놓고 즐기기 편하다는 강점이 있습니다. 그리고 여전히 무지막지한 양의 좀비들을 무지막지한 기세로 쓸어내는 재미도 있죠. 게임이 전략이 부재한다고 해서, 생각할 거리가 없다는 것은 아닙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좀비사이드는 자신이 기반한 테마에 충실합니다:좀비 영화의 많은 수는 '모든 것은 계획대로 진행되지 않는다'라는 플롯에 기반을 두고 있으며, 좀비사이드의 게임 플레이는 전반적으로 그런 좀비영화의 좌충우돌하는 흐름을 재현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좀비사이드는 TRPG에서 '모든걸 주사위 풀로 환원시켜서 수십개의 주사위를 굴리는 것이 아닌, 직관적이고 빠른 흐름을 추구하는' 최근 인디 RPG의 흐름과 유사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매시브 다크니스도 큰 틀에서는 이러한 흐름을 따릅니다:죽여야 할 적들은 산더미 처럼 쌓여있고, 그리고 계속 장비를 주워 쓰고, 레벨업 하고...이러한 템포 자체는 이미 좀비사이드에서도 본 흐름이긴 합니다. 물론 매시브 다크니스가 좀비사이드를 '그대로' 옮기기만 한 것은 아닙니다. 한 번의 주사위 굴림으로 공격/방어 판정이 끝나도록 게임의 전투 시스템을 재설계 하고, 적은 종류의 적들과 많은 수의 좀비가 나온 좀비사이드와 달리 다양한 능력을 가진 수많은 적들이 나오도록 게임 전체의 룰을 다시끔 손보았으니까요. 하지만, 전반적으로 매시브 다크니스가 만들어내고 싶은 것은 던전 크로울 방식의 좀비사이드입니다. 빠르고, 장비가 많이 나오고, 적들의 수도 무지막지하다는 점에서 말이죠(그리고 미니어처 디테일까지!)


하지만 좀비사이드의 게임적 성공이 매시브 다크니스에도 그대로 적용될지는 미지수입니다. 매시브 다크니스는 서양 게임 전통에서 소드 앤 소서리(검과 마법)로 분류되는 전통을 따르고 있습니다. 활든 엘프와 백발의 마법사, 그리고 도끼든 바바리안까지. 하지만 문제는 좀비사이드의 게임 페이스가 매시브 다크니스에도 어울리는가 입니다:좀비사이드는 그만큼 전략 없이 전술로만 돌아가는 게임 진행방식을 뒷받침하는 테마를 갖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매시브 다크니스는요? 많은 게이머들이 매시브 다크니스에 대해서 불만을 표하고 있는 부분은 1)우리는 이야기를 원하는데 이야기가 없다 2)뭔가 잔뜩 나와서 뭔가 잔뜩 죽는데 감흥이 없다 등등의 대부분 좀비사이드의 게임플레이 방식에 대한 불만입니다. 소드 앤 소서리에서 중요한 것이 단순히 게임 플레이(검/마법으로 적들과 싸우는 것)를 넘어서 그에 걸맞는 이야기와 세계와의 관계를 강조하는 것을 생각해보면 메시브 다크니스는 다소 아쉬운 부분이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이와 다르게 글룸헤이븐은 여러가지로 매시브 다크니스와 비교되어 호평을 듣고 있습니다:다이스롤링 없이 카드를 사용하는 전투와 던전덱에 따라서 생성되는 던전, 그리고 무엇보다도 보드게임에 있어서 케릭터와 이야기, 목표 설정 등은 수많은 게이머들을 매료시키기에 충분하였습니다. 오히려 게이머들이 던전 크롤 방식의 보드게임에 바라는 것은 글룸헤이븐과 같은 매력이 아닐까 싶습니다.


물론 매시브 다크니스 자체는 재미가 없지는 않을 겁니다. 좀비사이드보다 더 무거워지기는 했지만, 세상에는 메이지 워즈 같은 게임도 빠르게 돌리는 사람이 있으니까 말이죠. 여전히 플레이어가 몬스터를 조종하거나/던전 마스터가 없는 던전 크롤러 게임은 많은 수요가 있습니다:디센트 2판이 로드 투 레전드 어플을 통해서 오버로드를 제거하는 모습을 보여준 것은 던전 크롤링 보드게임에서 DM이란 존재가 플레이하기 껄끄러운 존재라는 것을 충분히 증명한 부분이죠. 미니어처와 검증된 시스템을 들고온 만큼 매시브 다크니스의 재미는 평균 이상은 되리라 보여집니다. 다만 우려스러운 부분은 매시브 다크니스의 성패가 좀비사이드에 비해서 얼마나 게임이 무거워졌는가에 달려있습니다:각 케릭터 별 시트와 레벨업 시스템은 이전에 비해서 복잡해진 감이 있으며, 심지어 개발자들의 플레이 중에도 에러플이 발생하는걸 보면 게임은 분명 복잡해지고 무거워졌습니다. 그것이 얼마나 복잡한가가 메시브 다크니스가 재미있을지 없을지를 판단하는 핵심 키워드가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