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니, 만화, 영화 이야기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알톤 메이어는 세상 어디에도 없는 특별한 능력을 가진 아이다. 알톤의 아버지 로이는 아들을 믿는 종교 극단주의자 집단으로부터 아들을 구하기 위해 한밤 중 아들을 데리고 도망길에 오른다. 같은 시간, 알톤의 능력을 알아챈 미국 정부는 국가 안전국의 폴 세비어를 내세워 조사를 벌인다. 조절되지 않는 능력으로 고통받는 아들, 종교 극단주의자 집단과 정부가 동시에 부자를 쫓는 위험한 상황, 아버지와 아들은 자신들도 모르게 세상의 모든 것을 바꿀 수 있는 운명을 향해 다가간다.(네이버 영화 시놉시스)


네이버 영화의 시놉시스만 본다면, 미드나잇 스페셜은 거대한 음모론과 추적, SF와 관련된 스릴러 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오해하지 마시라:이런 영화들의 대부분이 그렇듯이 네이버 영화 시놉시스가 사람을 낚기 위해서 제대로 사기를 치고 있는 것에 불과하니까. 제프 니콜스의 필모그래피는 다양한 장르 영화로 구성되어 있는듯 하지만, 제임스 그레이의 영화가 그러했듯이 장르 영화의 테마는 그야말로 '기믹'적인 부분에 불과하다. 영화의 겉을 긁어내보면, 제프 니콜스의 영화는 장르 영화의 공식을 뒤틀어서 가족과 관계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미국 남부의 풍광과 함께, 다양한 형태의 사랑과 가족들이 한데 어우러진다. 제프 니콜스는 논리적으로는 관계가 없는 풍광들을 한데 묶어서 그 사이에서 관객들이 어떤 '경이'에 젖어들게 만든다. 


모든 거장들이 그렇듯이, 제프 니콜스는 가족의 다양한 면모를 바라볼 줄 아는 감독이다. 그에게 있어서 가족이란 혈연으로 구성되어 있는 공동체의 개념을 뛰어넘는다. 머드의 경우를 보자:머드에는 다양한 형태의 사랑과 유사 가족 공동체가 등장하며 그 다양성의 스펙트럼 속에서 묶여있는 사람들 사이에서 소년이 성장하는 이야기를 다루었다. 그에게 있어서 가족이란 하나의 '관계'의 형태이다. 그렇다면 그 관계를 구성하는 핵심은 무엇일까? 머드에서는 그 핵심이 등장하지 않았었고, 등장할 필요도 없었다. 머드는 소년이 성장하는 이야기인 만큼, 소년은 다양한 형태의 사랑과 관계를, 그리고 자신의 세계를 회복시키고자 했었던 주술이 실패하고 세상을 받아들이는 과정을 다루는데 집중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미드나잇 스페셜은 제프 니콜스가 생각하는 가족이란 집단의 본질에 근접하였다.


미드나잇 스페셜이 묘사하는 가족의 본질은 '신뢰'이다. 하지만 이 신뢰는 우리가 가족관계에서 경험하는 무조건적인 신뢰(너는 더 위대한 존재가 될 것이다 같은)와는 다른 방식이다:아버지인 로이는 아들인 알톤이 더 위대한 계획의 무언가(농장의 사이비 교도들 처럼)라고 생각하거나, 세계에 위협이 될거라고(NSA 같은) 생각하지 않는다. 그의 유일한 동기는 죽어가는 자식을 살리는 것이다:하지만 자식을 살리는 과정은 상식적이라고 볼 수 없다:명백하게도 알톤이 죽어가는 것이 눈에 보이는데도 로이는 결코 그를 병원에 데려가려 하지 않는다. 이유는 단순하다:로이는 자식인 알톤을 '믿고 있다' 그것은 자식이 이러한 역경을 이겨낼 수 있을 것이라는 자식에 대한 신념에 근거한다. 그리고 제프 니콜스는 머드에서 그랬었던 것처럼 신념에 의한 공동체를 다각도로 풀어낸다:알톤이라는 아이를 중심으로 다양한 신념을 가진 사람들이 모인다. 마치 빛이 프리즘을 통과해서 다양한 스펙트럼으로 분리되는 것 같이, 알톤은 이 영화의 핵심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이 자신이 믿고 싶은대로 믿거나(농장), 그걸 두려워하거나(정부) 하는 것이 아닌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고 상대방을 믿는 것, 미드나잇 스페셜은 그것을 '가족'이라고 본다.


흥미로운 점은 미드나잇 스페셜은 가족의 이야기를 다루면서도 알톤이 로이와 가족의 품을 떠나는 것에 대해서 드라마틱하게 다루지 않는다는 것이다:마치 원래 있어야 헀었던 곳으로 돌아가듯이 이야기는 건조하게 이별을 다룬다. 이것은 영화가 가족이라는 공동체를 '신념'이라는 측면에서 다루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묘사이다:보통의 가족이 서로를 소유하는 유사 자아의 개념으로 바라보았기에 가족의 일원이 다른 곳으로 떠나가는 것에 대해 슬픈 눈길로 바라보았다면, 미드나잇 스페셜의 가족은 타인이라는 전제 하에서 서로 일정 정도 거리를 두고(무엇보다도 알톤은 '다른' 존재이니까) 서로를 믿는 공동체에 가깝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알톤이 어디론가 떠나는 것이 공동체의 붕괴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애시당초에 그들은 서로 다른 사람들이었으니까.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이어져있다는 것을 영화는 신비로운 분위기로 풀어낸다.


미드나잇 스페셜의 플룻에는 논리적인 개연성은 거의 존재하지 아니한다:어째서 알톤은 로이의 자식이 되었고, 농장에서는 왜 알톤을 믿는가? 알톤의 눈을 통해서 들여다보는 빛과 알톤이 온 세계 등에 대해서 영화는 일언반구의 설명을 주지 않는다. 영화가 집중하는 것은 그러한 성긴 플롯들이 신비로운 분위기에 잡혀서 마치 연결되어 있는 것 같은 확신을 주는 연출들이다:하늘과 땅이 만나는 너머로 펼쳐져 있는 드넓은 자연 풍광을 통해서 영화는 거대한 자연의 아름다움에 집중한다. 머드를 통해서 보여주었던 아칸소의 거대한 자연풍광이 미드나잇 스페셜에선 루이지애나의 모습으로 이어진다. 


우리가 주목해야하는 점은 영화의 구심점이 되는 알톤의 존재이다:알톤은 저멀리의 우주로부터 오지 않았다. 그는 우리와 함께하지만 보이지 않는 '다른 세계'로부터 왔다. 그 다른 세계는 어디란말인가? 미드나잇 스페셜이 바라보는 세계는 하늘 저 너머를 우러러 보는 수직적인 세계가 아닌 것은 분명하다. 클라이맥스에서 보여지는 세계는 마치 자연 풍광의 일부처럼 보인다. 어째서 알톤의 존재를 저너머의 미지의 세계로부터 온 것이 아닌 우리와 함께 살아있는 자연풍광의 일부처럼, 신비로운 세계처럼 보여주었던 것일까? 이는 2001 스페이스 오딧세이와 대비해서 보면 좀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다:2001 스페이스 오딧세이는 인류의 탄생과 소멸에 대한 이야기를 거대한 틀로 풀어내고자 하였다면, 미드나잇 스페셜은 우리 곁에 살아 숨쉬는 경이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 것이다. 그렇기에 목성을 향해 여정을 떠났던 2001 스페이스 오딧세이와 다르게 미드나잇 스페셜은 서로를 믿는 공동체가 루이지애나의 자연풍광을 향해 떠난다. 그렇기에 영화는 모든 인간적인 소소한 것들이 무화되는 미학(저 너머의 창백한 푸른 점처럼)이 아닌 인간의 중력에 잡혀있는 이야기를 다루고자 한다.


결론적으로 미드나잇 스페셜은 제프 니콜스의 미학의 연장선에 놓여있으면서도, 장르적인 표현 방식을 자신의 미학에 훌륭하게 접합시킨 작품이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