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이야기




고어Gore는 쏟아진 피 또는 엉긴 피를 지칭하는 단어다:반하트 어원학 사전에 따르면, 사람들은 응고된 피, 특히 전쟁터에서 흘린 피를 가리키기 위해서 이 단어를 사용하였다고 하는데, 셰익스피어는 연극 맥베스에서 맥베스가 어떻게 던칸의 병사를 죽였는지 설명하는 장면에서 더러움과 오점을 지칭하기 위해서 고어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일반적인 피Blood라는 단어와 다르게, 고어라는 단어 자체가 갖고 있는 더러움 또는 불결함의 뉘앙스는 고어영화로 통칭되는 공포영화의 하부장르 및 표현 양식의 특성이 반영되었다. 우리가 주목해야하는 점은 고어라는 표현 양식과 장르적 시도들이 1960년대를 기점으로 영화 산업에 처음으로 등장한 양식이 아니라는 점이다. 허셀 고든 루이스가 피의 향연이라는 최초의 고어영화를 만들어내기 이전, 이미 셰익스피어는 타이투스를 통해서 자극적인 소재들(강간, 식인 등)을 다뤄내었으며 19세기 파리인들은 대중문화로서 시체 안치소 감상과 함께 그랑기뇰(살인 등의 자극적인 표현이 이루어지는 연극)의 전통을 세웠었다. 초창기 영화인 살바도르 달리의 안달루시아의 개 역시도 면도칼로 여성의 동공을 배어버리는 장면을 넣는 등, 이미 영화의 역사에서 광범위하게 찾아볼 수 있었던 표현이었다.


고어영화가 장르적 선구자들과 분명한 차이를 갖는 것은 신체 훼손을 다루는 그 '뉘앙스' 차이에 있다. 피와 고어가 똑같은 혈액을 지칭하는 단어임에도 불구하고, 더러움과 불결함이라는 생명의 사라짐 및 파괴라는 '모독'의 측면에서 좀 더 구체적이다. 그리고 고어영화의 본질 역시도, 생명을 모독하는 행위와 그 표현 양식의 발전사라고도 할 수 있는 것이다:어째서 그리피스 감독의 인톨러런스(이 영화에서는 군인의 벗은 가슴 위로 창이 꽂히면서 피범벅이 되는 장면이 나온다)와 같은 명작이 아닌, 단지 돈을 벌기 위해서 다양한 고깃덩어리들을 이용해서 자극적으로 만든 B급 영화인 피의 향연이 최초의 고어영화 타이틀을 받게 된 것일까? 여기에는 다양한 이유가 있을 수 있지만, 상업적인 이윤을 위해서 사람의 죽음을 자극적으로 활용하였다는 점, 그리고 토막나고 박살나는 육체를 카메라에 여과없이 담아내었다는 점에서 이전의 영화나 대중문화가 경험하지 못한 충격이 피의 향연이 최초의 고어영화가 되었던 이유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공포영화의 하위 장르인 고어영화의 흥망성쇠가 전적으로 고어라는 표현양식이 발전하고 그 표현양식이 메이저 영화에 합쳐지는 과정을 통해 하부 장르의 가치가 점점 쇠퇴하는 과정을 보여주었다면, 게임에서의 고어 표현 양식은 여전히 현재 진행중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1972년 최초의 상업용 게임 퐁이 등장한 이후 1980년을 거치면서 게임은 가정으로 들어서기 시작했다. 우리는 이미 1980년대에 호러영화를 베이스로 한 수많은 게임들이 등장한 것을 알고 있다:프랑켄슈타인 같은 고전적인 영화에서부터 할로윈이나 13일의 금요일이나 텍사스 전기톱 살인, 나이트메어 같은 작품들이 아타리 2600이나 닌텐도 NES 기반의 게임으로 만들어진 것을 AVGN의 리뷰를 통해서 우리는 보았다. 하지만 이 당시의 게임들은 게임 기기의 낮은 스펙으로 인해서 고어라는 표현양식을 구현했다고 할 수 없는 민망한 수준이었으며, 대부분의 게임이 고어 영화의 내용을 그대로 옮기는 게임으로써 수준미달의 게임들이었다. '고어' 표현이라 불릴 수 있을 정도로 디테일하고 자극적인 내용과 게임 플레이 양쪽을 모두 충족시키는 게임은 둠과 같은 작품들 이후에 가능해졌다.


90년대는 고어영화에 있어서 쇠퇴기였다. 엄밀하게 이야기하자면 고어영화가 표현 방법론과 신체에 대한 모독의 미학이 공포영화라는 장르를 넘어서 다양한 형태로(코엔 형제나 쿠엔틴 타란티노 같은) 보편화되는 시기가 90년대였으며, 그리고 그 속에서 고어영화는 자기 자신만의 고유의 정체성을 잃어버렸다고 하는 것이 더 타당할 것이다. 그러나 게임은 90년대 이후로부터 고어의 표현이 자세해지기 시작하였다:이는 하드웨어적인 발전으로 인해서 그래픽적인 성과를 얻어냈기 때문이며, 이러한 성과들은 영화의 좋은 점을 본받아 성장하고 있었던 게임 산업에 있어서 많은 영향을 주었다. 90년대 후반에 들어서 일본 SF 소설 및 영화였던 미토콘드리아 이브를 원작으로 한 시네마틱 RPG 파라사이트 이브는 인체 발화나 녹아내리는 고어 묘사를 보여준 적이 있으며, 좀비 영화에 모티브를 둔 바이오하자드는 이미 전설적인 오프닝 장면(시체를 뜯어먹는 좀비와의 첫 대면)으로 게임에 있어서 고어 묘사의 한 획을 그었다 평할 수 있다. 그외에도 서양 FPS 게임들에서 산산이 박살나는 신체의 묘사를 보여주는 등 고어 묘사는 그래픽의 발전과 함께 영화에 있어서 고어 묘사를 흡수하여 발전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게임의 역사에 있어 고어묘사는 영화의 묘사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데, 이는 초기 게임이 대중문화의 하위장르로써 영화산업으로부터 많은 영감을 얻고 있었기 때문이라 할 수 있다. 98년 라이언 일병 구하기에서 노르망디 상륙 작전을 현실감 있게(그리고 전쟁의 참혹함을 병사들의 신체를 무자비하게 훼손하는 고어 묘사는 덤이고) 다뤄냄으로써 영화의 한 획을 긋자, 4년 뒤 메달 오브 아너는 그와 똑같은 시퀸스를 재현하였다. 최근에는 이블 위딘이 근래의 고문 포르노 영화(피해자에게 최대한 고통을 주는 묘사가 주인 고어 영화, 쏘우 같은 작품들)와 몽환적인 싸이코 스릴러(좀 더 구체적으로 이야기하자면 타셈 싱 감독의 셀 같은 작품이 연상된다)를 섞어넣은 고어 묘사를 보여주었다:마치 뇌를 후벼파는 듯한 날카로운 연출과 뒤틀린 정신의 구현이자 끝없는 고통의 표상으로써의 적 괴물들의 신체 등등 이블 위딘은 그레픽 뿐만 아니라 설정 등에서 게임의 고어 묘사를 한단계 끌어올렸다. 또한 데드 스페이스는 SF 호러영화인 이벤트 호라이즌으로부터 직접적인 모티브를 얻고, 여기에 존 카펜터의 위대한 걸작 씽을 섞어넣었다. 


이런식으로 많은 게임들은 영화의 모범적인 사례를 자신의 표현양식에 접목시키고 있지만, 이들은 어디까지나 영화의 후배이자 하부장르(?)로서 성공사례를 자신에 이식한다고도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양태와 별개로 게임이란 매체가 갖고 있는 특성에 집중하여서 고어 연출을 기획하는 게임도 점점 늘어나고 있다. 게임은 기본적으로 수용하는 매체가 아닌 행동하는 매체이며, 고어 연출의 '모독'의 효과 역시도 이러한 행위와 밀접하게 결합되어 있다:둠 2016의 예를 들어보면, 게이머는 글로리 킬을 통해서 악마들을 오체분시하게 되는데, 이것이 마치 원래 게임이 그러했던 것처럼 묘사함으로써 자연스럽게 행위와 연출이 하나 되게 묘사한다. 


하지만 이를 역으로 뒤집어서 행위와 연출이 분리되게 함으로써, 게이머가 연출 자체에 대해서 이질감을 느끼게 만드는 경우도 존재한다. 바이오쇼크의 사례를 보자:게임 역사적으로 유명한 Would you Kindly-?의 진실이 밝혀지는 순간, 게이머는 케릭터의 통제권을 잃고 앤드류 라이언이 시키는데로 움직이게 된다. 다분 1~2분도 채 안되는 짧은 시퀸스임에도 불구하고, 게이머는 엄청난 충격(내 의지가 사실은 외부로부터 주입된 것이라는)을 받게 되는데, 이 시퀸스의 절정은 앤드류 라이언의 명령에 따라 라이언을 골프채로 때려죽이는 장면일 것이다:명령에 따라 앤드류 라이언을 때려죽이는 이 장면에서 플레이어는 최초로 자신의 행위와 고어의 모독의 불일치를 느끼며 이 어색하고도 불쾌한 순간에 침묵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다크니스 1편의 경우도 있다:이 때는 주인공의 힘이라고 믿었던 다크니스가 주인공을 배신하고 문너머에서 죽어가는 연인의 모습을 강제로 보게 만든다.(물론 이 장면이 어떤 특별한 고어 연출이나 디테일을 보여주는 것은 아니지만, 연인이 무기력하게 죽는 장면을 연출함으로써 생명에 대한 모독의 미학을 달성하였다고 평할 수 있다) 이런 식으로 게임과 연출, 그리고 행위 사이의 괴리를 통해서 영화에서는 찾아볼 수 없었던 독특한 고어 연출을 게임은 이루어나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