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이야기






컴퓨터 게임이라 지칭될 수 있는 전자기기를 사용하는 게임들의 수는 한정되어 있으며 동시에 한계 역시 뚜렷하다:컴퓨터 또는 전자기기의 보조를 받음으로서 게임은 여지껏 존재하지 않았던 세계와 현실과 유사한 세계를 연출할 수 있게 만든다. 또한 보드 게임이 일어나는 테이블탑의 영역을 넘어서 다양한 장소와 시간대의 사람들을 연결시켜주기도 한다. 현실의 공간과 시간은 보드게임이나 TRPG로 분류되는 수많은 게임들을 구체적인 경계선으로 한정짓게 만든다. 하지만 이러한 한계가 오히려 컴퓨터 게임과는 다른 형태의 전통과 게임 방법론을 만들어내고 있으며, 동시에 게이머의 경험이라는 측면에 있어서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다. 이 칼럼에서는 TCG와 TRPG에 대해서 간략하게 논해보고자 한다.


TCG, 즉 트레이딩 카드 게임은 덱이라는 한정된 자원을 두고 정해진 규칙을 따라 상대방과 전략 및 전술을 겨루는 게임 장르이다. TCG라는 장르에서 흥미로운 점은 TCG의 전략이라는 것은 컴퓨터 게임 장르에 있어서 전략의 개념과는 본질적인 부분에서 다르다는 점이다. 어떤 유닛을 어떻게 움직이는지에 대한 '피지컬'적인 부분과 함께 어떤 조합 또는 방식으로 목표를 달성할 것인가라는 전략적인 분석이 주가 되는 전략 시뮬레이션 류의 게임과 다르게, TCG는 '문장 만들기' 게임에 가깝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기본적으로 카드 하나 하나는 독특한 효과를 지니고 있으며, 이들 하나 하나로만으로는 효과를 일으키기 어렵다. 하지만 이들 카드, 즉 단어 하나 하나가 일정한 법칙 아래서 하나의 유의미한 문장(콤보)으로 구성되게 된다면 이들은 게임 내에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효율적인 도구가 된다.

그렇기에 사람들은 자신만의 문장을 만들어내기 위해서 단어들을 구축한다. 더 나아가 TCG의 포멧들은 이 단어들이 어떤 의미를 지니는고 단어를 배열하는 순서와 움직임을 규정한다. 하지만 TCG의 또다른 매력은 플레이어가 고심하고 또 고심하여 만들어낸 단어와 문장의 패턴을 최선의 상태로 제공하지 않는다는 점이다:이렇게 모인 단어(즉, 카드들)들은 무작위의 순서로 구성된 덱이라는 자원의 묶음으로 쌓이게 된다. 셔플을 통해서 무작위로 뽑혀져 나오는 카드들은 플래이어가 원하는 최적의 전략, 최적의 순서대로 보급이 될 수도 있지만, 동시에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점에서 전략에 있어서 예측불가능성을 부여한다. 플레이어의 덱에는 자신이 생각하는 단어들의 순서와 문장, 문장과 문장이 만들어내는 논리적인 흐름이 존재한다. 하지만 언제나 셔플으로 인한 덱이라는 카드 자원의 무작위성 때문에 게이머는 그때 그때 상황에 따라서 적절하게 대응할 수 있는 임기응변을 생각해야 한다.

물론 이러한 TCG의 특성들을 컴퓨터 게임이 흡수한 경우(자원의 무작위성)도 많았으며, TCG가 메인 스트림은 아니지만 꾸준하게 나오고 있다는 점에서 TCG와 컴퓨터 게임 사이의 접점은 많은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오프라인에서 행해지는 TCG가 결정적으로 컴퓨터 TCG와 다른 점이 있다면 카드라는 물리적인 접점이 있다는 것이다. 성공적인 오프라인 TCG들의 경우에는 이 카드라는 접점을 십분 활용하여서 현실에서 하나의 양식적인 틀을 만들어낸다:예를 들어서 매직 더 개더링의 경우, 지형 카드 이외에 카드 없이 즉석에서 부스터를 뽑아서 덱을 만드는 부스터 드래프트라는 게임 규칙이 있으며 위자드 코스트의 전폭적인 지원과 함께(정기적인 이벤트 개최) 부스터 자체의 구성이 부스터 드래프트를 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주고 있다. 그리고 유희왕의 경우에는 아케이드 문화와 접목하여 오프라인 카드를 이용하여 오락실에서 게임을 할 수 있는 터미널 시스템을 구축하기도 하였다. 이와 같이 TCG에서 '카드'의 개념은 단순하게 게임 규칙 내의 자원과 수집의 요소를 넘어서 현실의 고객과 접점을 갖는 중간 매게체가 되는 것이다.

TRPG는 어떠한가? TRPG는 어떤식으로든 간에 컴퓨터 게임의 문법 내에서는 구현할 수 없는 부분을 만들어낸다. TRPG는 다양한 방법론들을 갖고 있지만(주사위 풀 형식, 6면체, 10면체, 20면체, 100면체, 마스터와 플레이어의 관계, 묘사 등등), 본질적으로 TRPG가 전제하는 게임의 방식은 '대화'이다. TRPG는 전적으로 타자와의 대화를 통해서 게임이 진행되며 갈등을 맞이하거나 해소하며 심지어는 전투를 구축하는 중요한 부분이기도 하다. TRPG의 주사위는 게임 바깥의 실제 인물들의 대화로만 해결되는 것이 아닌 우연적이거나 통제할 수 없는 부분, 예측 불가능한 부분을 드러내는 면모다. 주사위가 게임에 있어서 정말로 중요한 장면들을 연출하는 것은 사실이지만(통제 불가능한 상황의 연출, 혹은 극적인 상황의 연출), 중요한 것은 다른 사람과 대화를 통해서만 TRPG가 진행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사람과 함께하는 대화는 게임 내의 케릭터를 연기하는 플레이어와 게임 사이의 끈끈한 관계를 형성한다. 그리고 이 맥락은 하나의 맥락을 형성한다. 플레이어는 마스터 또는 다른 플레이어들과 대화를 하면서 관계를 만들고 맥락을 형성하며, 자신이 연기하는 케릭터에 감정을 이입하여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이 관계와 맥락이야말로 TRPG가 갖고 있는 특수성인 동시에 TRPG의 문법을 여타 게임에 자유롭게 접합시키기 힘든 부분이라 할 수 있다. 인간과 인간의 관계란 대면적인 동시에 상황과 맥락에 따라서 미묘하게 달라지는 부분이 생기며, TRPG의 경우 컴퓨터 게임들과 다르게 거대한 서사보다는 케릭터나 NPC 사이에서 개개인의 관계에서 나오는 분위기 맥락이 더 중요하고 컴퓨터 게임에서 찾아볼 수 없는 강점을 갖는 부분이라 할 수 있다.

물론 시간이 지나면 이러한 강점들 역시 컴퓨터 게임이 흡수할 수 있고, TCG의 경우에는 지속적으로 오프라인 TRPG의 경우에는 현재를 사라지기 직전의 화광반조로 보는 사람들도 많다. 하지만 오프라인 게임들 역시 컴퓨터 게임들처럼 함께 변화하며 그 상황에 따라서 새로운 맥락을, 혹은 그 자신만의 고유한 맥락을 만들어 낼 수 있다. 이러한 특징들은 게임이라는 문화를 풍부하게 만드는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