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니, 만화, 영화 이야기





깊은 물을 솥의 물이 끓음 같게 하며 바다를 기름병 같이 다루는도다.

그것의 뒤에서 빛나는 물줄기가 나오니 그는 깊은 바다를 백발로 만드는구나.

세상에는 그것과 비할 것이 없으니 그것은 두려움이 없는 것으로 지음 받았구나.


-욥기 41:31 에서 33






〈리바이어던〉은 황홀하고 생생한 다큐멘터리로 당신을 상업화된 어업의 위험한 세계로 깊숙이 데려갈 것이다. 제작자들은 뉴 잉글랜드의 해안 – 허먼 멜빌의 『백경』 에 영감을 주었던 장소 – 의 예측불허의 파도 속을 항해하는 거대한 어선에 동승하여, 어부들의 거칠고 힘든 세계를 무시무시하면서 동시에 아름답게 포착했다. [제5회 DMZ국제다큐멘터리 영화제]


레비아탄은 구약성서 욥기에 나오는 거대한 바다 괴수를 의미한다. 그리고 대부분의 성서의 악마들이나 괴수가 그러하듯이, 레비아탄 역시 성서 이전의 신앙에 근거하고 있다. 레비아탄은 기원전 19세기에서 12세기 사이에 존재했었다고 알려진 우가라트 왕국의 신화에 나오는 존재로서, 바알신에 의해서 격퇴당하는 존재로서 그려진다. 유대교와 기독교가 지금까지도 존재하는 현대적인 종교의 표본으로 볼 수 있다면, 레비아탄이나 베헤모스 같은 존재들은 근대적 종교(물론 근대적이라 해도 2000년 이상 되었지만) 이전의 흔적이라고 볼 수 있다:그것은 인간이 인격신을 섬기기 전에, 인간 내부에 내재된 폭력과 동물의 형태가 서로 결합한 성스러운 존재, 자연에 매료된 인간이 만들어낸 원시적 신앙의 잔재인 '괴물'인 것이다.


(http://leviathan.tistory.com/1845 에서 괴물에 대한 본인의 생각을 간략하게 기록해두었다)


다큐멘터리 레비아탄 역시 이러한 미학에 기원을 두고 있다. 즉, 영화가 구현하고자 하는 것은 '문명 이전의 원시적 삶의 아름다움' 그 자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영화는 어떠한 설명없이 담담하게 바다 위에서 어부들이 물고기를 잡고 손질하는 과정을 약 90분 동안 그려낸다. 그러나 레비아탄은 그 90분 동안 어떠한 메세지도 전달하려 하지 않으면서도 관객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데 성공한다:출렁거리는 바다와 황홀한 어둠, 물소리와 피에 물든 물거품, 그리고 갈매기 때들까지. 레비아탄은 영상과 미학적으로 놀라운 쾌거이며, 관객들에게 원시의 황홀함을 선사하는 아름다운 다큐멘터리라 할 수 있다.


레비아탄이 어떤 쾌거를 거두었는지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먼저 '장르적'으로 그나마 유사한 작품과 비교해보아야 할 것이다. 디스커버리 채널의 유명한 프로그램인 '생명을 건 포획Deadliest Catch'은 대게잡이 어선과 그 선원들의 삶을 그려낸 프로그램으로서 디스커버리 채널의 간판 프로그램 중 하나이다. 어떻게 본다면, 바다위에서 일어나는 조업활동을 다룬다는 측면에서 레비아탄과 생명을 건 포획은 비슷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둘이 도달하고 있는 결론은 완벽하게 다르다:생명을 건 포획은 전적으로 '인간'의 문제를 다루고 있는 프로그램이다. 게나 바다의 문제가 아니라, 그 위에서 웃고 울고 하는 선원들의 이야기가 중요하게 그려진다. 그렇기에 대부분의 이야기는 바다라는 공간보다는 배 위에서 일어나는 '드라마'에 초점을 맞춘다.


하지만 레비아탄은 생명을 건 포획과는 완벽하게 다르다:레비아탄에게 있어서 인간의 '드라마'는 완벽하게 거세된다. 어부들은 침묵 또는 꼭 필요한 정도의 말만 하며, 그들이 누구인지 어떤 상황에 처해있는지 등의 시시콜콜한 이야기들은 영화 내에서 전혀 다뤄지지 않는다. 또한 영화는 배 위뿐만 아니라 배 주변의 바다에서 일어나는 현상들에도 많은 초점을 맞추며, 갑판 위에서부터 갑판 바닥, 크레인까지 다양한 각도로 바다와 조업활동을 다뤄낸다. 인간이 중심이 되었던 생명을 건 포획과는 다르게 레비아탄은 조업활동과 바다라는 거대하고 포괄적인 세계를 그려내고자 한다.


재밌는 점은 레비아탄에 대해서 사람들이 느끼는 일종의 '거북함'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는 부정할 수 없다:생선 손질을 할 때 잘려나가는 생선의 머리와 무자비함까지 느껴질 정도로 세토막 나는 홍어(라고 생각된다)의 모습들, 그리고 손질된 생선을 바다로 흘려보낼 때의 핏물과 다양한 부유물들, 죽어가는 생선의 모습들 등등 레비아탄은 사람들이 거북하게 느낄만한 장면들을 어떠한 안전장치도 없이 쏘아보내고 있다. 그러나 그것이 어떤 가학성으로는 이어지지 않는다:가학성이란 누군가를 가해하겠다는 의도가 전제되어야 한다. 하지만 레비아탄에 있어서 그런 의도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느껴진다:피비린내 나는 잔혹한 장면 다음에는 물소리와 고요함, 그리고 리드미컬한 움직임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이렇게 접근할 수도 있다. 레비아탄이 보여주는 바다는 생명력이 과잉으로 넘치고 꿈틀거리는 공간이다. 그로테스크함을 '에너지가 과잉으로 흘러넘치는 모습'이라고 누군가는 정의내리기도 하였다. 레비아탄의 바다는 리드미컬한 바다의 움직임과 함께 배 위에서 일어나는 죽음과 삶, 그것이 바다라는 공간에서 아우러질 때의 황홀한 아름다움을 한꺼번에 포착한다:이러한 것이 가장 극대화된 순간이 바로 생선을 손질한 부속물과 핏물이 바다로 버려질 때, 바다가 선홍색으로 물드는 동시에 수면 바깥으로 언뜻 무수히 많은 갈메기 때들이 잡히는 장면이다. 죽음과 생명이 바다라는 장소에서 무심하게 어우러지며, 이 압도적인 아름다움은 원시 인류가 매료되었던 원시적인 괴물과 자연의 이미지에 맥이 닿아있다고도 볼 수 있다. 레비아탄에 있어서 바다와 물은 모든 것이 한 곳에서 만나는 공간이자 매게체이며, 인간이 원시적 황홀함을 느끼는 미학적 공간이다. 그리고 영화는 이를 아름답게 구현함으로서 관객에게 충격적이고도 놀라운 감정을 제공하는데 성공한다.


또한 레비아탄이 드러내고 있는 재밌는 부분은 바로 다큐멘터리가 촬영되는 방식일 것이다. 어떤 영화든 영화를 찍는 '촬영자'의 존재는 관찰당하는 피사체의 움직임을 변화하게 만든다. 앞서 언급한 생명을 건 포획으로 돌아가 보자. 물론 이 프로그램이 레비아탄과 지향하는 바가 정반대라는 것은 앞서 밝혔지만, 여기서 우리가 인지할 수 있는 것은 촬영자와 피사체 사이의 관계이다:이 프로그램에서 선원들은 끊임없이 조업 활동에 대한 자신의 코멘트와 함께, 인간적인 감정, 희노애락을 지속적으로 드러낸다. 촬영자와 피사체 사이의 이 끈끈한 유대는 인간의 모습을 그려내기 위한 프로그램의 취지에 부합한다고 볼 수 있지만, 동시에 카메라를 의식하고 만들어진 '꾸며진 리얼리즘'이라는 측면에서 소위 '리얼리티 프로그램'이 갖고 있는 선정성과 한계를 갖고 있다고도 볼 수 있다.


하지만 레비아탄은 다르다:이 다큐멘터리에서 피사체들은 카메라를 신경쓰지 않는다. 오히려 카메라를 들고 있는(아마도 머리에 헤드셋 형태로 붙인 카메라라 추정된다) 사람마저도 조업활동에 동참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카메라가 선원들의 얼굴을 극단적으로 클로즈업 하는 순간에도 선원들은 당혹스러워하거나 카메라를 의식하는 행동을 보여주지 않는다. 레비아탄에서 카메라는 바다위에서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조업활동을 그대로 그려내고 있다는 인상을 받는다:그것은 '카메라를 의식하고 현장감을 연기하는 리얼리티 프로그램'과 정반대로 카메라 자체가 없다는 듯이 행동하기 때문이다. 이는 촬영자가 피사체의 삶에 놀라울 정도로 동화되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라 할 수 있다.


그뿐만이 아니다:레비아탄이 촬영되는 카메라의 앵글들은 어떤 의미에서는 '새로운 각도'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영화에 있어서 인간은 주제가 아니기 때문에 그만큼 주제로부터 자유로워져서 다양한 곳에서 카메라를 설치하고 세계를 바라볼 수 있게 되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단순하게 그런 주제의 제약으로부터 자유로워진 것을 넘어서, 몇몇 장면들은 정말이지 절묘한 타이밍에 촬영되었다. 이는 제작자들이 자신이 촬영하고자 하는 대상과 주제에 대해서 깊은 탐구를 하고 고민을 하였기에, 의도적으로 카메라를 새로운 각도에서 바라볼 수 있는 곳에 설치하고 기록하였기에 가능한 것이라 보아야 한다. 즉, 레비아탄의 이 원시적이고도 아름다운 세계는 의도적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재발견되었다'라는 표현이 적확할 것이다. 


결론적으로 레비아탄은 놀라운 다큐멘터리 영화이다. 바다와 어둠, 리드미컬한 바다의 움직임, 삶과 죽음이 어우러지는 황홀함 등의 이미지를 재발견하여 하나의 영상으로 묶어내었다. 어떤 의미에서 레비아탄은 훌륭한 시에 비유할 수 있을 정도로 아름다운 영화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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