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니, 만화, 영화 이야기/리뷰



*스포일러 있습니다


전도 유명한 과학자 커플 ‘클라이브’(애드리안 브로디)와 ‘엘사’(사라 폴리)는 난치병 치료용 단백질을 만드는 연구를 진행하던 중, 조류, 어류, 파충류, 갑각류 등의 다종(多種) DNA 결합체인 ‘프레드’ 와 ‘진저’를 탄생시켜 동물용 의약 단백질 생산을 가능케 한다.실험을 거듭하면서 유전자 재조합 기술은 발전하고, 다종 DNA 결합체와 인간 유전자의 결합이 가능한 수준에 이르자 과학계와 의학계에 놀라움을 선사하고 싶었던 두 커플은 위험한 실험을 시도한다.  제약회사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다종의 결합체와 인간 여성의 DNA를 결합시키는 금기의 실험을 강행하여 인간도, 동물도 아닌 전혀 새로운 생명체인 ‘드렌’을 탄생시킨다. 하지만 이들의 실험은 점점 통제할수 없는 방향으로 나아가는데....(네이버 영화 시놉시스)


큐브의 빈센조 나탈리 감독이 만들고 기예모르 델 토로가 제작을 맡은 스플라이스는 고전적인 SF 스릴러라고 할 수 있다.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새로운 생명체를 만들어냈을 때 과연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라는 고전적인 질문을 정석적인 방법으로 풀어내고 있는 작품이다. 문제는 이 정석적인 작품이 요즘 시대에는 맞지않을 정도로 너무나 정석적으로 기분 나쁘기 때문에(일면 데이빗 크로넨버그 영화들, 특히 플라이가 연상되는 부분이 있다) 흥행에서도 참패를 겪었으며 대중적인 평에서도 썩 좋지못한 평가를 들었다. 하지만 스플라이스는 SF적인 설정과 기괴한 창조물 드렌의 모습, 그리고 충격적인 결말까지 기분나쁜 SF 스릴러를 훌륭하게 재현해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생명의 창조라는 무거운 주제를 다루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스플라이스는 이러한 생명의 창조와 윤리적인 문제를 현학적인 이야기로 끌어가려 하지 않는다. 오히려, 아이가 없는 부부 과학자가 자신들이 만든 새로운 생명체를 기르면서 생기는 긴장과 갈등을 일종의 '대안 가족물'(?)의 형식으로 풀이하고 있다는 점에서 스플라이스는 자신의 드라마를 구체적이고 확고한 범위로 좁히는데 성공한다. 특히 완벽하게 새로운 생명을 창조했지만, 이들 부부가 드렌을 숨기면서 기르는 에피소드들은 과학적인 접근인척 하지만 본질은 아이를 한번도 기른 경험이 없는 부부의 좌충우돌에 가깝다는 인상을 주며(무엇을 먹여야 하는가 등등에 대해서), 드렌은 부모에게 있어서 자식의 '이해할 수 없는 타자성'(내가 만들었지만/잉태했지만, 도대체 누구인지 알 수 없는)의 SF식 확대 재생산이라 볼 수 있다.


하지만 스플라이스는 그런 훈훈한 가족드라마를 다루거나 서로를 이해하는 지점에 서있지 않는다. 오히려 그런 가족 '판타지'를 차가운 질감으로 도륙내는 지점에서 영화를 풀어나간다. 먼저, 어디까지나 클라이브의 시점은과학적인 관점에서 드렌을 관찰하며 어떤식으로든 드렌과의 거리를 떨어뜨리려는 시도를 한다. 그리고 새로운 생명체를 만들어내었다는 윤리적인 죄책감을 느낀다. 하지만 드렌에 대해서 애정 비슷한 감정을 보였던 엘자의 경우에는 자신의 어머니로 인해서 상처받았던 유년시절의 보상으로서 자신의 유전자를 기증한 것처럼 위장해서 드렌을 만들어내었다는 것이 밝혀지면서 클라이브-엘자-드렌의 관계가 단순한 과학적 호기심이나 애정 또는 자신의 아이를 원했던 부부의 대안이 아닌(왜냐면 유전자로 보았을 때, 드렌은 엘자의 클론? 이기 때문이다), 가족이면서 동시에 기묘한 삼각관계, 엘자는 자신이자 동시에 딸인 존재로서 드렌을 원했으며, 클라이브는 과학적인 호기심과 윤리적인 죄책감에서 드렌을 바라보며, 그리고 드렌은 자신의 유사 부모를 후술할 유사 근친상간적인 관점에서 접근한다.


그렇기에 기존 대중매체에서 자주 등장했던 '세상의 악으로부터 동떨어진 순수하고 선한 인간의 피조물'이라는 공식은 영화속에서 깨진다, 클라이브(부)-엘자(모)-드렌(자식)이라는 대안 가족의 구조에서 비추어 봤을 때, 드렌은 부모 사이에서 태어난 자식에 대한 타자로서의 모습을 확대 재생산된 모습 그 자체가 드렌이라고 볼 수 있다. 영화에서 드렌은 끝까지 이해불가능한 존재다. 포유류, 조류, 어류, 파충류 등등의 유전자를 섞어서 만들었다는 이 신종 생명체는 어느 지점에서는 아름다운 여성의 옆모습을 보여주지만 동시에 전체를 놓고 봤을 때 어딘가 부조화스러운 이미지를 지울 수 없다. 사실 이는 신종 생명체의 원형인 프레드와 진저의 이미지에서도 명확하게 드러나는데, 이 둘의 이미지는 전적으로 남성기의 그것을 연상시키는 부분이 있다. 심지어 드렌의 태아의 모습-정자-에서부터 인간과 점점 닮아가면서도 이러한 이미지의 원형에서 벗어나지 않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녀는 순진무구한 모습을 보여주면서도 동시에 언뜻언뜻 변화하는 표정속에서 인간이 이해할 수 없는 광기와 동물적인 야성을 드러내기도 하는데, 이를 극적으로 드러내는 장치가 드렌의 꼬리와 꼬리속에 숨겨진 독침이다. 영화 내내 드렌의 독침은 드렌의 순진한 존재로서의 이미지와 대비되는 지점이자 위협으로서 작용된다.(클라이브와 정사를 나누는 장면에서 독침을 드러내는 드렌의 이미지가 가장 대표적이라고 할 수 있다) 


엘자의 유전자를 이어받은 드렌이 엘자의 정신병의 가족력(특히 어머니)이 유전되었을지도 모른다고 지적하는 클라이브나 자식세대의 반항심을 정신병적이고 야수적인 파괴로 표현하는 드렌(특히 엘자가 키우도록 허락한 고양이를 엘자가 보는 앞에서 독침으로 쏴죽인다던가), 그리고 점점 자신의 어머니처럼 드렌을 편집증적으로 통제하려는 엘자의 모습까지, 영화는 이 유사 가족이 점점 파국으로 치달으며 이 절정에 있는 것이 바로 '유사 근친상간'이다. 클라이브와 엘자가 드렌이 자고 있는 동안 정사를 나누는 장면을 드렌이 훔쳐보는 듯한 뉘앙스를 보여주는 장면이나 드렌이 클라이브를 유혹하는 장면, 마지막으로 성전환해서 엘자를 겁탈하는 남성 드렌의 모습을 통해서 이들 관계가 완전한 파국을 맞이한다.(동시에 관객들의 정신도 안드로메다로 날아가버린다)


스플라이스의 미덕은 생명 창조라는 무거운 주제를 현학적인 이야기로 풀어내는 것이 아닌 유사 가족 막장드라마를 이용해서 결국은 피조물에게 지나친 집착을 드러낸 창조주가 자신을 모델로한 피조물에 의해서 파멸하는 과정을 잘 드러내었다. 하지만 스플라이스가 잘만든 것은 이런 창조의 이야기를 불쾌함 하나만을 완성하는데 훌륭한 퀄리티로 이루어냈기 때문이지, 그것이 어떤 카타르시스나 미학적인 측면에서 새로운 명제를 제시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초기 크로넨버그 영화들, 특히 브루드나 플라이 같은 크로넨버그 미학의 제시 및 일관된 주제의식을 가진 작품들에 비하면 스플라이스의 미학은 아쉬운 부분이 있다. 하지만, 오랜만에 나온, 고전적인 의미에서의 너무 잘만들어서 기분 나쁜 B급 SF라는 점에서 스플라이스는 SF 영화 팬이라면 꼭 봐야하는 작품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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