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니, 만화, 영화 이야기/리뷰



*대단히 강력한 스포일러 있습니다. 영화를 보실 분들은 피해주시길.


쌍둥이 남매인 잔느와 시몽은 어머니 나왈의 유언을 전해 듣고 혼란에 빠진다. 유언의 내용은 죽은 줄로만 알았던 생부와 존재조차 몰랐던 형제를 찾아 자신이 남긴 편지를 전해달라는 것. 또한 편지를 전하기 전까지는 절대 장례를 치르지 말라는 당부도 함께 담겨있다. 어머니의 흔적을 따라 중동으로 떠난 남매는 베일에 싸여 있던 그녀의 과거와 마주한다. 그리고 그 과거의 끝에는 충격적인 진실이 기다리고 있는데....(네이버 영화 시놉시스)


드니 빌뇌브 감독의 그을린 사랑은 동명의 연극을 원작으로 하고 있으며, 폭력의 악순환과 이를 극복하는 것에 대한 영화다. 어머니의 비밀과 자신들의 기원을 찾아올라가는 이야기를 다루는 영화는 끝나기 20분전까지는 상당히 평범한 전개와 살짝 느슨한 이야기 구성을 보여주지만, 마지막 반전 하나로 영화는 다른 드라마들이 보여주지 못했었던 경지에 도달한다. 영화는 이 '반전'에 대한 극의 의존도가 상당하다는 문제(그리고 어느정도는 예측 가능하다)가 있지만, 이야기를 세세하게 다듬고 이야기의 느슨했던 부분을 반전과 세세하게 엮어서 관객들에게 숙연해질 수 밖에 없는 충격과 무게감을 안겨주는데 성공한다.


그을린 사랑의 이야기는 어머니의 인생의 발자취를 더듬어 올라가면서 자신의 기원을 찾는 행위에서부터 시작한다. 하지만, 영화는 이러한 기원찾기에 대해서 '당연하다'는 식으로 접근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 부분에 있어서 영화는 객관적이다. 영화 초반부, "(이론 수학에서는)해결 불가능한 문제들이 또 다른 해결 불가능한 문제를 불러오게 되죠. 사람들은 여러분이 파고드는 일이 시간 낭비라고 하겠죠. 여러분은 그들을 설득할 수도 없어요. 그것은 엄청나게 복잡한 일이 될 거니까요." 라고 선언하는 영화는 진실을 찾아가는 과정 자체가 고통스럽고, 어찌보면 더 어려운 문제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고 진술한다. 또한 영화 내내, 주인공 남매가 목격하는 어머니의 인생역정은 중동을 배경으로(기독교 민병대가 나오는걸 봐서는 레바논 같이 보인다) 증오와 폭력이 햘퀴고 지나간 상흔들의 연속이며, 자신들의 기원이 사랑이 아닌 폭력(강간)에 기초하고 있다는 불쾌한 진실과도 마주함으로서 해묵은 상처와 진실을 들추는 일이 더 고통스럽다 라는 것을 보여준다.


영화는 남매 어머니의 인생역정을 따라올라가면서 세상을 지배하고 있는(영화는 중동-레바논이라 추측은 하고 있지만-을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동시에 정확하게 어느 나라라던가, 어느 전쟁이라던가 등의 구체적인 이야기를 거세함으로서 모호한 배경을 만들어내고 있다) 폭력과 증오의 알레고리를 형성한다. 극중 '그 당시는 엄격한 보복의 논리가 있었다'라는 표현과 함께 영화에서 다루어지는 남매 어머니의 인생은 바로 폭력의 알레고리 사이에서 희생당하는 인간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다. 과거회상 첫 등장에서부터 소수민족인 남편을 잃어버리고 명예살인(가문의 명예를 위해서 여성을 죽이는 행위)의 대상이 될뻔하며, 자식은 태어나자마자 고아원에 보내진다. 


이러한 과정 속에서 그녀가 인간답게 살기 위해 선택한 방법은 지식을 얻는 것이었다. 대학을 나가고, 삼촌과 함께 신문 기사를 써서 세상을 바꾸길 희망했던 그녀는 자신의 고향과 자식이 있었던 고아원이 내전에 휩싸였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낙향을 결심한다. 하지만, 고아원은 이미 공격을 받아 불타버리고, 그녀는 기독교 민병대가 이슬람 교도들을 학살하는 과정중에 휩싸여서 죽을뻔한 경험을 하게 된다. 그리고 그녀는 더이상 지식으로 세계를 구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는 테러활동에 가담하여 기독교 민병대의 간부를 총으로 쏴서 죽이고 정치범 수용소에서 13년 동안 감금 당한다. 지식으로 해결을 할 수 없으니, 나도 너희에게 증오와 폭력으로 대응하겠다 라는 그녀의 행동은, 그녀를 단순하게 폭력의 희생자로 설정하는 것이 아닌 폭력의 알레고리에 의해서 희생자도 되었다가 가해자도 되는 복합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그리고 그녀는 13년 간의 고문과 감금, 마지막으로 강간과 그로 인한 임신까지 겪지만, 13년 간의 감금에서도 끝까지 노래를 불렀던 그녀, 72번 방의 죄수이자 노래하는 여인은 폭력에 있어 굴하지 않고자 했었다.


여기까지만 보았을 때 영화는 이런 류의 영화치고는 다소 '평이한' 영화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영화는 이 과정을 극도로 담담한 카메라와 배우들의 명연기를 통해서 쉽게 소비되는 멜로드라마의 수준으로 전락하지는 않지만, 동시에 어딘가 부족한 느낌도 지울수가 없다. 하지만 마지막 반전과 함께 그을린 사랑은 폭력의 순환고리의 가장 끔찍한 형태를 완성하면서 동시에 이를 깨고 나오는 사랑의 위대함을 역설한다.


이 이하는 강력한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다. 진짜로 보실분은 넘겨주시길. 마지막 경고이다.









영화 그을린 사랑은 놀라운 이야기이다. 물론 반전에 이야기를 많은 부분 기대고 있기에, 모든 퍼즐 조각이 맞춰지기 전까지는 극이 느슨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그러나, 모든 진실이 밝혀지고 반전에 의해서 극이 그 전체 윤곽을 드러내었을 때, 관객은 그 충격적인 진실 앞에서 입을 다물고 침묵할 수 밖에 없다. 그을린 사랑이라는 영화는 그정도의 힘을 갖고 있는 영화며, 이야기와 극의 장치들을 세세하게 여기저기 설치해놓고 반전과 함께 재조립될 수 있게끔 만들어놓은 감독의 재능과 자칫 신파성 멜로드라마로 빠질 수 있는 이야기를 훌륭한 연기로 담담하게 그려낸 점은 높이 평가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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