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및 책 이야기



샌프란시스코의 '스페이드 & 아처' 탐정 사무실에 원덜리라는 미모의 아가씨가 나타나 사건을 의뢰한다. 그녀는 새스비라는 사내와 사랑에 빠진 여동생을 찾아달라고 부탁한다. 샘 스페이드는 동료 탐정 아처를 보내 사건을 풀어보려 하지만 해결의 실마리는 커녕 아처의 죽음이 그에게 전해지고, 곧이어 새스비가 살해된다.  한편, 경찰은 아처의 처를 사랑했던 스페이드를 의심한다. 스페이드는 우선 원덜리를 방문, 자초지종을 다시묻는다. 그러자 그녀는 그제서야 본명을 브리지드 오쇼네시라고 밝히면서 여동생 운운한 건 가짜였고, 새스비와 아처를 죽인 건 누군지 모르겠다고 고백한다. 그리고 둘 사이에 사랑이 시작된다. 어느날 여비서 에피가 퇴근한 후 스페이드는 마치 여자같은 조엘 카이로의 방문을 받는다. 그의 등장은 사건에 접근하는 전기를 마련해 주는데 그는 샘에게 검은 새의 조각상을 찾아달라고 나선 것이다. 그것도 거액의 사례비를 주겠다는 조건으로, 조각상의 가치에 의문이 생긴 샘 앞에 이번에는 거트맨이라는 인물이 나타나는데.(네이버 영화, 말타의 매 시놉시스 인용)


대실 해밋의 대표작인 몰타의 매는 하드보일드 탐정 소설을 대표하는 소설 중 하나이다. 하지만 이 시기를 같이 대표하는 레이먼드 챈들러와 필립 말로와 다르게, 대실 해밋의 소설들의 지향점은 정반대라고 할 수 있다. 레이먼드 챈들러의 소설들이 도시인들이 느끼는 고독과 소외, 그리고 선과 악의 구분이 모호해지고 각자의 이익 추구를 위해서 과거 구세대적인 가치관들을 버리는 행태에 대한 염증을 기반으로 써진 소설이라면, 대실 해밋의 소설들은 전적으로 그 진흙탕 속에서 한몫 잡아보고자 하는 속물적 인간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이 소설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은 바로 주인공인 샘 스패이드라는 인물과 그가 처하는 상황, 그리고 그가 그 상황을 풀어나가는 과정이다. 샘 스페이드는 일련의 사건에 있어서 주도권을 가진 인물이며 동시에 상황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 인물이다. 한술 더떠서 그는 이 지저분한 게임을 더욱 지저분하게 만드는 인물인데, 극후반에 가서는 경찰에게 넘겨줄 희생양을 만들기 위해서 인물들을 선동하는 모습을 보여주기까지 한다. 누군가는 당시 나왔던 탐정 또는 주인공 중에서 가장 비도덕적인 인물의 전형으로 샘 스패이드를 꼽기도 한다는 것인데, 하지만 재밌는 점은 이렇게 비열한 인간이 주인공이면서도 절대로 그는 자신의 손에 피를 묻히거나 더러운 짓을 직접하는 등의 모습은 보여주지 않는다는 점이다.


대실 해밋의 소설은 전반적으로 '시궁창 속에서 사는 인간들이 벌이는 이전투구의 현장'을 가감없이 보여주는데 있다. 기본적으로 순문학을 꿈꾸었다는 레이먼드 챈들러와 달리, 대실 해밋의 글은 기본적으로 그의 탐정업 경험에 기반하고 있다. 그렇기에 대실 해밋의 소설은 챈들러의 시적인 표현과 다소 비현실적인 케릭터 조형과 정반대의 위치에 서있다. 그의 글은 투박하기 그지 없지만(대부분의 서술은 단순한 묘사나 선언의 연속이다), 소설이 만들어내는 상황이나 인물상들은 대단히 매력적이다. 물론 이는 챈들러와 필립 말로의 시니컬하지만 고귀한 탐정과 반대되는 대척점이다.


붉은 수확에서 드러나는 시궁창 속에서 자멸하는 더러운 인간형과 다르게 몰타의 매의 샘 스패이드는 아주 능동적이고 교활하고 치밀한 모습을 보여준다. 같이 시궁창에 빠져있긴 하지만 자기 손은 직접 더럽히지 않으면서 같이 빠져서 허우적거리는 옆사람에게 깔데기 꽂고 시원한 시궁창 물이나 드쇼! 라고 외치는 샘 스패이드의 기묘하고도 매력적인 케릭터는 순진한척하면서 자기 잇속을 챙기는 브리짓 오쇼네시라는 팜므 파탈과 갱단들 모두를 엿먹이고 자기만 살아남는데 성공함으로써 독자들에게 기묘한 카타르시스를 제공한다. 이는 도덕이나 고귀함 등의 기존의 가치관의 갖는 위선에 대한 도시인들의 염증이라고 볼 수도 있으며, 챈들러가 만든 필립 말로의 케릭터를 어떤 의미에서는 위선적인 나르시스트라고 비꼬을 수 있다는 걸 생각해보면, 시궁창 속에서 자기 이익을 챙기고 자신의 손을 더럽히지 않는 대실 해밋의 샘 스패이드는 현대인이 꿈꾸는 가장 현실적인 이상향, 현대인들의 무의식에 자리잡은 롤모델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독서토론 중에 나온 이야기에 따르면, 이러한 탐정소설들은 전형적인 유행따라 만들어지는 통속소설이자 그 당시의 대중들에게만 영향을 줬을 뿐이지 과연 고전으로 두고 오랫동안 읽을만한 가치가 있느냐 라는 의문이 제기되었다. 이런 탐정소설의 가치와 장르문학의 등장이 갖는 고전으로서의 가치는 보들레르 등으로 대표될 수 있는 도회적 감수성과 신문과 펄프픽션 등의 대량생산에 근거하고 있는 대중문화의 등장 등의 여러가지 요인을 복합적으로 이해해야 할 것이다. 19세기 파리와 보들레르의 감수성(혹자-시집 악의 꽃 번역자-에 의하면 보들레르의 군중에 대한 감수성은 빅터 위고르의 레미제라블에서 보여준 부성애적 감수성이 아닌 군중 속의 일원으로서의 감수성에 가깝다고 하였다)들은 전적으로 '산업화에 의한 도시공간'의 탄생에 기반을 두고 있다. 도시는 과거와 다르게 엄청나게 많은 수의 인간을 수용할 수 있었고, 이는 군중의 탄생으로 이어졌다. 또한 군중을 감상하는 것은 그 자체로 관음의 대상이자 하나의 유희가 되었다.(바네사 R 슈와르츠의 저서 '구경꾼의 탄생'에 따르면 만인에 의한 '평등한' 판옵티콘 개념의 출현이라고 보고 있다.) 하지만 동시에 시인 보들레르가 보여준 감수성처럼 도시의 퇴폐적인 분위기와 함께 군중을 관음하면서 동시에 군중속에 끼지 못하는 '군중 속의 고독'이라는 감수성의 출현은 이전까지 갖지 못했었던 도시 문화의 가장 독특한 부분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대실 해밋이나 레이먼드 챈들러의 소설이 '고전'으로 자리매김 할 수 있는 것은 이러한 독특한 도시문화적 감수성에 기반하고 있다. 만나는 사람은 무수히 많지만 깊은 관계나 진정한 이해로는 이어지지 않으며, 진정한 사랑이나 구시대적인 가치관이나 미덕들, 그리고 진실은 도시의 퇴폐적인 도시의 야경 속으로 사라져간다. 이런 상황 속에서 '탐정'이 등장한다. 기존의 추리소설(아가사 크리스티 같은)의 탐정들이 연극 무대를 연상케 하는 한정된 장소에서 진실을 추구했다면, 하드보일드 탐정소설의 '탐정'들은 도시적 퇴폐이자 시궁창 한가운데로 걸어들어가서 진실을 목격하고 독자들과 함께 공유한다. 탐정소설의 도시는 매력적이지만 위험한 여자도 있고, 음모도 있으며, 일확천금의 기회와 깡패와 갱단이 공존하는 위협과 기회의 땅이다. 여기서 챈들러와 대실 해밋은 서로 다른 것을 본다:챈들러의 필립 말로는 구시대적인 가치관과 도시적 퇴폐 또는 기회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외줄타기를 하는 기사의 이미지를, 대실 해밋의 샘 스페이드는 시궁창속으로 들어가서 진실을 이용해 자신의 이익을 챙기지만 동시에 자신의 손을 더럽히지 않는 도시적 야수의 이미지를 구축한다. 하지만 이 둘은 하나의 광경이자 장소, '도시'라는 근원에서 갈라져 나온 두개의 그림자이다.


'탐정 소설'의 의미는, 위에서 설명하였듯이 도시적 감수성의 출현과 도시를 파해치고 그 장소로부터 승리하고자 하고 싶었던 대중의 욕망이 반영된 결정체라고 할 수 있다. 19세기 파리에서 대중매체로서의 신문 탄생 경위(100만부 단위로 팔리는 신문들은 기본적으로 '연재소설'이라는 최첨단 유흥을 탑재하면서부터 시작되었다)와 살인사건 등의 자극적인 소재를 다룬 잡보기사의 유행, 온가족이 시체를 관람했었던 파리 시체공시소, 밀랍인형 전시로 유명한 그레벵 박물관의 범죄의 현장 연작 등등 미스터리와 범죄, 그리고 진실에 대한 관심은 대중의 가장 보편적인 '유흥'이었다. 그리고 동시에 현재진행적인 여흥이기도 하다. 영화 살인의 추억 흥행 이후, 화성연쇄살인 사건의 전말을 찾아서 수많은 사람들이 개별적으로 그 자취를 따라간 사실들을 보면, 미스터리와 진실찾기란 아직도 흥행하는 유흥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탐정소설, 특히 고전으로 일컬어지는 레이먼드 챈들러와 대실 해밋은 그러한 대중의 미스터리와 진실을 찾고자 하는 욕망을 서로 상반된 형태로 표현한 대가들이었으며, 도시라는 공간 자체가 사라지지 않는한 계속해서 읽힐 것이며 하나의 '고전'으로 추앙받을 것이다.


대실 해밋의 몰타의 매는 이제는 하나의 클리셰라고도 볼 수 있는 책이기도 하며, 시대적인 한계(특히 여성에 대한 마초적인 시선)도 뚜렷한 소설이기도 하다.(하지만 이점에서는 챈들러의 소설도 똑같은 비난을 피하기 어렵다, 아니 그 시대 소설중에 이런 비난을 피할 수 있는 소설이 몇있단 말인가?) 하지만, 몰타의 매는 그런 단점들을 제외하더라도 대단한 매력을 지니고 있는 소설이며, 비열하고 냉혹한 탐정인 샘 스패이드를 통해 현대인이 무의식 중에 꿈꾸는 하나의 롤모델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가치 있는 소설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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