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이야기/게임 리뷰




*스포일러 있습니다.



텔테일이 만든 게임 워킹 데드[각주:1]는 작년 GOTY(Game of the Year, 올해의 게임)을 휩쓸다시피한 게임이었다.[각주:2] 하지만 2012년 4월 25일 첫 에피소드가 공개될 당시에는 평단이나 게이머들 사이에서의 반응은 이렇게 까지 열광적이지 않았었다.[각주:3] 그리고 실제 게임 자체도 놀라울 것이 없는 어드벤처 게임의 연속이다. 플레이어는 이런저런 간단한 퍼즐을 풀고, NPC들과 대화를 하며, 때때로는 순발력을 요하는 버튼 액션을 벌이기도 한다. 심지어 워킹 데드에서 가장 호평받는 요소인 스토리와 선택이란 요소 역시 엄밀하게 이야기하자면, 기존의 게임이 보여주었던 별 다를 것이 없다.[각주:4] 게임의 구성 자체는 평이하다 못해서 진부하기까지 한 워킹 데드가 호평을 듣게 된 이유는, 지금까지의 게임이 보여주지 못한[각주:5] '선택'이라는 요소를 게이머의 감성을 극대화시키는 모습을 보여준다. 


기존의 게임들[각주:6]에 있어서 '선택'이란, 일종의 '옵션'에 불과하였다. 선택에 있어서 가장 하이엔드(?)를 달렸던 매스 이펙트 시리즈를 예로 들어보자. 매스 이펙트 시리즈는 1편에서부터 3편까지, 자신이 선택했던 요소들과 성향들이 쌓여서 다음 작품으로 넘어가는 등, 선택에 따라서 (조금 과장을 보태자면)은하계 모든 사람들의 운명이 달라지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은하계에서 가장 강력한 '행위자'임에도 불구하고 쉐퍼드 대위의 행위들과 그 결과는 게이머에게 직접 와닿는 선택이 아닌, 지나가는 풍경을 구성하는 것에 불과하다. 가령, 쉐퍼드가 한 케릭터를 구했다고 가정해보자. 쉐퍼드가 이 케릭터의 인생에 개입을 함으로서, 이 케릭터의 인생은 크게 바뀌었다. 하지만, 쉐퍼드(그리고 게이머)에게 있어서는 그는 여태까지 구했던 NPC 1, 2, 3...중에 하나에 불과할 것이다. 또한 선택을 통해서 쌓인 성향의 결과물인 레니게이드-파라곤 수치의 경우, 어디까지나 개개인의 취향이 구체적인 수치로 드러난 것에 불과하다.


즉, 워킹 데드 이전의 선택을 강조하는 게임들[각주:7][각주:8]은 '강력한 행위자로서의 플레이어와 그 행위의 결과이자 플레이어에게 직접적으로 영향을 주지 않는 풍경으로서의 선택의 결과'를 강조한다. 하지만, 이러한 '선택'의 개념이 나쁘다는 것을 지적하는 것은 아니다. 여러분은 우주를(또는 세계를, 전 시간대를, 뭐 기타등등) 구할 영웅인데, 일일이 구했던 인간들의 인생이 어떻게 변하였는가를 두고 시간을 허비할 수는 없지 않은가? 하지만, 동시에 케릭터들과 이야기들이 '거대한' 이야기 속에서 너무나 쉽게 '소모'된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는데, 이 덕분에 플레이어의 선택은 플레이어의 감정에 큰 영향을 줄 수 없다고도 볼 수 있다. 아니, 정확하게 이야기하자면 플레이어의 선택을 느끼기에는 플레이어와 선택의 결과물 사이의 거리가 너무 크다고 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워킹 데드가 만들어내는 지점은 정반대이다. 게임의 이야기는 영웅이 아니라 평범한 인간인 리 에버트라는 케릭터에 초점을 맞추고 있으며, 그의 모험은 세계를 구한다던가의 거창한 것이 아니라 클레멘타인이라는 소녀와 자기 목숨을 지키기 위한 생존의 문제이다. 물론 다른 게임과 마찬가지로 워킹 데드에서도 게이머는 가장 강력한 행위자이며, 어떤식으로 게임을 선택을 하든 게임의 엔딩은 단 하나뿐이다. 하지만, 워킹 데드가 초점을 맞추는 부분은 그 과정이며, 각각의 개별 선택이 플레이어를 어떻게 뒤흔드는지에 집중한다. 


워킹 데드에서의 '선택'은 1)리는 초인이 아니며, 2)게임이 끝날때까지 게이머를 따라다니고 3)NPC들은 이를 기억하고 끊임없이 케릭터를 갈굴 것이며, 4)그리고 뭘 선택하든 기분은 좆같을 것이다 정도로 축약할 수 있다. 워킹 데드에서의 선택은 매스 이펙트의 파라곤-레니게이드[각주:9]의 문제나, D&D에서 볼 수 있는 질서와 선악의 문제로 뚜렷하게 구분되는 것이 아니다. 워킹 데드의 선택은 에피소드 1에서 보여줬던 것처럼, 칼리를 구할건가 더그를 구할건가[각주:10]처럼 둘중에 하나밖에 할 수 없는 '딜레마'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워킹 데드는 플레이어에게 무엇이 옳고 그른지의 기준을 제시하고 이를 테스트하지 않는다. 대신에 워킹 데드는 플레이어가 했던 선택에 대해 '책임'을 질 것을 요구한다.


이러한 책임은 다른 케릭터(리가 속한 생존자 그룹)들과의 대화나 그들의 행동(선택으로 인해서 변화하는)을 통해서 드러난다. 게임은 평범한 인간인 리의 선택에 어떻게 주변 사람들의 관계가 변화하는가 혹은 그가 속한 그룹의 생존에 영향을 미치는가라는 연극적 또는 멜로 드라마적인 요소에 초점을 맞추고 있기에 주인공 이외의 케릭터의 비중이 다른 게임들[각주:11]에 비해서 대단히 높다고 할 수 있다. 텔테일 게임즈는 이 점에서 각 케릭터들에게 이야기와 감정을 불어넣는데 성공하였으며, 그 덕택에 단 한명의 케릭터도 무의미하게 소모되는 일이 없다. 


에피소드 1에서부터 에피소드 5까지 함께한 케니를 예로 들어보겠다. 케니의 경우, 플레이어는 이 남자가 가족을 위해서라면 뭐든지 할 수 있는 평범한 가장이라는 것을 에피소드 1에서부터 쉽게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평범한 케니는 가족을 위해서 생존에 집착하고 점점 극단적으로 변해간다. 물론 여기까지라면 좀비 대재앙 물에서 볼 수 있는 흔한 케릭터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워킹 데드가 다른 점은 바로 그 케니라는 인물이 자신의 옆에 있다는 것이며, 자신이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서 케니의 행동이나 성격이 바뀌며 이를 세세하게 관찰할 수 있다는 점이다. 워킹 데드의 선택은 플레이어가 선택을 하면 그 선택의 결과물을 면밀하게 관찰하고 상호작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기존의 주류 게임과는 다르다고 할 수 있다.


다른 좀비 소재의 게임들이 좀비 대재앙이 만들어내는 카오스와 스펙타클에 초점을 맞춘 경향[각주:12] 때문에 좀비 대재앙이 우리 인간을 어떤식으로 바꿔놓는가라는 부분에 대해서는 다소 미흡한 경향이 있었다. 하지만 워킹 데드는 이야기에 많은 무게를 실고 생존자들 사이의 드라마를 다루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게임은 플레이어가 선택을 하고 그 선택의 결과를 감당하게 만들며, 그 선택의 결과가 어떠한지 관찰할 수 있게 충분히 작고 정교한 이야기와 스크립트를 짜놓는데 성공한다.[각주:13] 물론 이런 점에 있어서 워킹 데드를 감정을 자극하는 신파물이라고 비판할 수도 있겠지만, 하지만 게임 내의 복잡미묘한 그 감정은 플레이어의 '선택'으로 인해서 생겨나기에 이를 신파물이라고 비판할 수는 없을 것이다. 


텔테일 게임즈의 워킹 데드는 어찌보면 그렇게까지 놀라울 것 없는 게임이라고 볼 수도 있다. 감동적인 게임 스토리나 눈물샘을 자극하는 게임 스토리는 여지껏 존재해왔으며, 워킹 데드가 보여주는 선택의 문제도 누군가 과거에 시도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점들을 재껴두더라도 워킹 데드는 훌륭한 게임이며 플레이어를 감정적으로 뒤흔드는 놀라운 게임이다. 기회가 된다면 꼭 플레이 하시길.






  1. 주의하자, 워킹 데드:서바이벌 인스팅스가 아니다. [본문으로]
  2. 총 74개의 게임 웹진들이 GOTY로 선정했다. 참고로 2위인 저니는 57개의 웹진에게서 GOTY를 받았다. [본문으로]
  3. 에피소드 1의 메타크리틱이 82점, 합본의 메타크리틱은 89~93점(기종마다 살짝 다름) [본문으로]
  4. 워킹 데드의 게임 진행 방식은 전형적인 '선형' 진행이다. [본문으로]
  5. 시도하지 못한, 시도하지 않았다 등등...좀 이상하게 들릴 수 있겠지만 과연 워킹 데드 이전에 워킹 데드 같은 선택의 문제로 집요하게 게이머를 괴롭힌 게임이 있었을까?(일단 스펙옵스는 제외하고) 다소 극단적인 결론(워킹 데드가 감성을 자극하고 플레이어에게 선택을 할때 무게감을 느끼게 만드는 선택과 스토리 개념을 처음으로 제시하였다)을 내리고 싶지는 않으나 이 부분에 있어서 이런저런 의구심(과연 워킹 데드 이전에 그런 게임이 무엇이 있었을까?)도 든다. 좀더 생각해볼 부분이기도 하다. [본문으로]
  6. 흔히 대작들, 이라 칭해지는 대자본이 들아건 게임들. [본문으로]
  7. 특히 바이오웨어 게임들. [본문으로]
  8. 물론 비겁하게 각주로 변명을 달자면, 아마도 워킹 데드 이전에도 워킹 데드 같은 시도를 한 게임들이 있었을 것이다. [본문으로]
  9. 질서를 지키면서 임무를 수행하느냐, 아니면 질서따위 생까고 가장 빠른 방법으로 임무를 수행할 것이냐. [본문으로]
  10. 하지만 대부분의 플레이어들은 흑심을 품고 칼리를 선택했을 것이라 생각한다. 에피소드 클리어마다 나오는 통계도 이를 증명한다(......) [본문으로]
  11. 소위 이야기하는 세계를 구하는 영웅이 등장하는 게임 같은. [본문으로]
  12. 라스트 오브 어스처럼, 인류가 대충 망했는데 총을 든 생존자 적들은 개때처럼 몰려나오고, 이들을 죄다 때려죽이는 그 미묘하고도 아이러니한 지점처럼 말이다. 좀비 대재앙을 다룬 게임에 있어서 얼마 남지 않은 생존자들이 극내에서 너무 쉽게 소비되는 경향이 있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다고 본인은 본다. [본문으로]
  13. 중대한 누설이기는 하지만, 에피소드 5에서 플레이어가 이 모든 것을 다시 되돌아보게 되는 계기가 생긴다. 스포일러 주의라고 써놓았지만, 이 부분의 스포일러는 어찌보면 너무나 치명적이기 때문에 따로 기재하지는 않는다. 기회가 되신다면 직접해보시길.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