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및 책 이야기




발터 벤야민(1892-1940)은 근대 대중문화 미학에 있어서 절대로 빠질 수 없는 미학자이자 철학자이다. 살아서는 크게 유명하지는 못했지만, 전후 대중매체를 통한 새로운 미학의 정립, 특히 기존의 파시즘이 '정치의 심미화'를 통해서 대중매체를 파시즘의 선전선동 도구로 활용된 파시즘의 미학을 깨부수기 위해서 발터 벤야민을 적극적으로 인용하기도 하였다. 또한 이후 조르주 아감벤, 슬라보예 지젝, 자크 데리다 등등이 발터 벤야민의 저서로부터 영감을 받았으며, 초기에는 유물론적 모더니즘 미학과 사회철학적 시각에서 많이 분석 되었다면, 이제는 언어철학, 번역이론(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 대한 발터 벤야민의 번역을 일컬어 아도르노는 독일어로 이룩된 가장 완벽한 번역이라 칭송했다), 미메시스론, 특유의 산문양식 등등에서 재해석되고 있는 미학자이다.


벤야민 저서의 특징들은 기본적으로 완성된 이론과 사유가 아닌, 끝없이 현세대에 질문을 던지고 영감을 주는 '명제'쪽에 가깝다는 것이다. 벤야민 스스로 자신의 완전한 이론을 만들기 전에 비극적 자살로 생을 마감했기 때문에(심지어 그의 최대의 역작이자 미완성 저서인 파사주 프로젝트, 흔히 아케이드 프로젝트라 불리는 저서 아닌 저서는 수천쪽의 '메모지'로 구성되어 있다.), 그의 저서들은 독자들의 머릿속에서 알기 쉽게 들어오는 것이 아니라 독자가 스스로 끊임없이 생각할 것을 요구해서 머릿속에서 그의 이론을 재조립해야 하는 그런 구조를 지니고 있다. 이것만으로도 충분히 벤야민은 어려운 철학자이나, 벤야민이 유대교 신비주의(그의 친구인 숄렘은 유대교 신비주의와 카발라 전문가였다)의 영향을 받았으며 안그래도 어려운 저서를 더 어렵게 만드는 경향이 있다. 특히 이 저서에서 중요하게 다루어지는 '아우라'의 개념은 유물론적 미학 사유의 결과물이라고 생각할 수 없는 독특한 발상이다.


벤야민의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에서 주력하고 있는 논의는, 이 한 문장으로 축약할 수 있다:기존의 학자들은 사진과 영화가 예술에 포함될 수 있느냐를 두고 논의는 틀렸으며, 우리는 사진과 영화가 '어떻게' 기존의 예술을 바꾸었는가라는 명제에 주력해야 한다. 발터 벤야민이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을 쓸 당시의 미학적 논쟁이란 '(공산주의적)리얼리즘이 문제다'라는 루카치와 그에 대한 반론들(아도르노, 브레히트, 블로흐 등등)이었지만, 벤야민은 여기서 더 나아가서 '예술은 영원히 바뀌었다'라고 선언하고 그 바뀐 예술들의 특징을 짚어내면서 '대중문화'라 일컬어지는 새로운 문화에 대한 비평의 장을 열었다.


벤야민은 예술의 가치를 크게 두가지로 나누었다. 첫번째는 그 예술을 삶에 가까이 두고 싶어하는 '전시가치', 두번째는 예술에서 우러나오는 독특한 '아우라'를 숭상하기 위한 '제의가치'이다. 대중예술과 대량생산이 등장하기 이전에는 예술에 있어서 후자의 가치(제의가치)만 존재했었는데, 이로 인해서 예술은 이를 향유할 수 있는 소수에 의해서 감춰지고 숨겨지는 경향이 있었다고 발터 벤야민은 말한다. 이는 '아우라'라는 벤야민 특유의 개념에 근거하고 있는 현상이다. '아우라'란 그 예술작품과 동일한 공간과 시간대에 있을 때만 느낄 수 있는 독특한 '무언가'로서, 벤야민은 한여름의 햇빛이 나무사이로 지나가는 그 스러질듯한 상황에서 드러난다고 묘사했다. 벤야민은 이러한 아우라를 가리켜 예술작품을 둘러싸고 있는 '껍질'이라고 표현하였는데, 이는 그 예술작품을 형성하고 있는 내용에 의해 만들어지는 아우라가 예술작품 감상에 있어서 핵심을 뚫고 들어가지 못하고 겉만 맴도는 현상을 일컫는다고 이야기할 수 있다.


하지만 기술을 통한 복제는 오리지널리티 그 자체를 거세함으로서, 아우라가 생길 가능성을 막아버린다. 무엇이 진품이고, 무엇이 복제품인지 구별자체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과거에도 복제품이 존재했었지만, 진품만이 갖는 아우라가 존재할 수 있었던 것은 진품의 복제가 힘들었고, 복제 자체가 진품을 100% 복제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기술복제가 가능한 시대에 있어서 예술작품은 발터 벤야민의 리히트바르크의 인용처럼 '우리 시대에 자기 자신과 가까운 친지와 친구들, 연인의 사진만큼 주의깊게 관찰되는 예술작품은 드물다'라는 명제로 귀결된다. 그것은, 대중이 예술은 더욱 가까이 두고 소비하는 것을 의미하며, 예술의 소비 방식에 있어서 큰 변화가 일어났음을 의미한다.


벤야민은 기술복제 시대의 예술의 소비방식에 두가지 방식이 있다고 본다. 첫째는 작품의 안으로 들어가서 작품의 내부 구조를 관찰하는 방식이며, 두번째는 작품을 내 자신에게로 끌고 들어와서 소비하는 방식이다. 이렇게 예술을 소비하는 방식이 극명하게 분리됨으로서 '비평권력'에 의한 일방적인 예술비평과 수용의 틀은 붕괴되기 시작한다. 벤야민은 이러한 기술복제시대의 예술 작품은 성숙되지 않은 분노와 대중들의 집단 감정들을 '풀어주는' 일종의 예방책으로서의 기능을 수행할 것이라 보았다. 


하지만 벤야민은 기술복제 시대의 예술을 이상적으로만 보지는 않았으며, 이 시대 예술이 두가지 문제점을 갖는다고 보았다. 첫번째는 거짓 아우라를 이용한 스타시스템의 등장이었다. 기본적으로 기술복제 시대의 예술 작품, 메스미디어를 통해서 만들어지는 예술이란 '아우라'가 존재할 수 없다. 아우라란 기본적으로 감상자와 대상의 장소와 시간이 서로 겹쳐질때 감상자가 관측할 수 있는 독특한 '무언가'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스타 시스템은 마치 '스타'라는 존재를 포장하고 미화함으로서 그것이 '특별해 보이는' 무언가를 갖는 '척'한다고 할 수 있다. 벤야민의 관점에서 배우는 카메라라는 기계 앞에서 연기의 반복(스포츠의 기록처럼)을 통해서 가장 좋은 연기를 뽑아내고, 기계에 기록된 연기를 통해서 대중에게 감명을 주는, 기계를 넘어서는 인간의 승리이자 극복의 존재였다. 하지만, 배우라는 존재가 이룩하는 '연기'가 아닌, '배우 그 자체'에 집중하는 거짓 아우라를 소비하는 행위는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에서만 드러나는 독특한 부분이라 할 수 있다. 최근의 사례를 들자면, 은밀하게 위대하게의 성공이 영화의 '객관적인' 완성도(비평)나 아니면 본 관객들의 감상에도 불구하고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흥행을 불러일으켰다는 점은 관객들이 영화를 소비하는 것이 아닌 '스타' 그 자체를 소비하고 있음이 뚜렷한 케이스라고 할 수 있다.


두번째는 예술의 정치화로 요약할 수 있는 파시즘의 대중예술이다. 벤야민이 목도한 1930년대는 나치즘과 파시즘이 유럽대륙 전역을 지배하던 시절이었고, 이들의 공통점은 바로 대중매체를 이용한 대중선동이었다. 나치의 선전장관이었던 괴벨스는 라디오의 보급을 통한 대중선동의 개념(히틀러의 연설 등등)을 적극적으로 도입하는 등 대중매체라는 개념을 대중을 하나의 생각으로 몰아넣는 개념으로 적극적으로 활용하였다. 특히 이 시기 파시즘의 미학을 상징하는 작품이 바로 레니 레펜슈탈의 작품들이다. 레니 레펜슈탈은 영화를 통해서 나치즘을 신화적이고 거대한 무언가로 묘사하는데 성공하였는데, 올림픽 기록 영화였던 올렝피아나 나치 선전 영화였던 의지의 승리 같은 것을 예로 들 수 있겠다. 벤야민은 이런 것들을 실제로 보고 그 위협을 파악하고 있었으며, 논문의 말미에 '공산주의는 정치의 예술화라는 개념으로 맞서고 있다'라고 선언한다.


하지만 우리가 유의해야할 점은 벤야민은 소비에트 공산주의자가 아니라 이상적인 공산주의자의 개념에 가깝다는 것이다. 비슷한 이상적 공산주의자인 브레히트의 영향을 받은 벤야민은 엄밀하게 이야기해서 '소비에트(러시아)'적인 예술의 정치화에 찬동하는 쪽은 아니었다. 소비에트적 예술론은 게오르그 루카치의 리얼리즘 논쟁만 보더라도 벤야민의 지향점과 확연하게 구분된다는 점을 알 수 있다. 루카치는 모든 문학은 리얼리즘에 복속되어야 하며, 혁명을 위한 수단으로서 혁명이 필요한 지점을 밝혀내는 고발문학만이 존재해야한다고 주장하였으며, 브레히트는 이에 대해서 리얼리즘의 정의가 다양해질 수 있다는 점을 들어 반론하였다(루카치는 주로 표현주의로 일컬어지는 모더니즘 전반에 대한 공격을 감행하는 중이었다) 벤야민의 발언은 이러한 공산주의의 정치의 예술화의 개념을 객관적인 선언으로 받아들여야 하며, 오히려 역사 비평과 관련된 에세이에서는 스탈린-히틀러의 밀월과 소비에트에 대해서 절망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하였다. 그런 그가 공산주의식의 정치의 예술화 라는 개념에 대안으로 생각했을리는 만무하다.


그가 지향했던 바는 오히려 '카메라는 모든 대중을 평등하게 담아낼 수 있다'라는 그의 서술에서 찾아볼 수 있다. 앤디 워홀의 발언인 '코카콜라(공산품)가 위대한 이유는, 당신이 마시는 그 코카콜라랑 대통령이 마시는 코카콜라랑 100% 동일하기 때문이다'라는 명제처럼, 기술복제 시대에는 회화에서 다루어졌던 그리스 신화 시대와 다르게 이제 대중이 '소재'로 등장하게 되었다. 또한 벤야민의 '모든 행위는 정치적이다'나 '정치적 중립성이란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독일 신문 편집자 카를 크라우스 평론을 통해 보았을 때, 그의 지향점은 대중의 생활을 토대로 대중의 이야기, 대중의 삶이 조명되는 그러한 형태의 대중예술을 지향한게 아닐까 생각한다. 그러한 대중예술이야말로 아도르노가 경고한 주입식이자 기계적인 기만이 아닌, 대중에 의해서 만들어진 진정한 예술 해방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물론 발터 벤야민의 이론적 도구가 공산주의의 유물론과 계급사상이 기반이 되었다는 점, 그리고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에 대한 낙관론으로 가득찼다는 점은 부정할 수 없다. 하지만, 1930년대 지식인이 막시즘의 영향을 받지 않을 수는 없으며(아니면 사이비 어용 지식인이었다던가...),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은 아도르노의 계몽의 변증법에서 보여주는 견해를 참조하면 된다. 사실, 아도르노와 벤야민은 서로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여지며, 아도르노 역시 자신의 대중매체 비판에 있어서 벤야민의 아우라 개념을 인용하는 모습을 보인다. 하지만 아도르노는 기존의 예술 및 미학의 관점에서 대중매체를 비판한데 반해서, 벤야민은 기술복제가 어떻게 예술에 영향을 미쳤는지에 주력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 둘은 오히려, 서로가 서로에 대한 반박이라고 볼 수 있을 정도로 상반된 시각과 상반된 결론으로 맺는데, 벤야민이 지적하지 못한 문제에 대해서는 아도르노의 대중매체 비판을 인용하는 것이 옳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발터 벤야민은 비록 완성된 이론과 사상체계를 지닌 사상가는 아니며, 상당히 난해하고 복잡하다. 심지어 이 글을 치고 있는 와중에도 내가 그를 제대로 이해했는지에 대해서 의구심이 들 정도이다. 하지만 발터 벤야민은 읽는 사람에게 '영감'을 불어넣는다. 그것은 1930년대 사람이 우리가 지금 향유하고 있는 대중매체의 기본 중의 기본을 해체하고 분석한 개념인 것이며, 바로 이 지점으로부터 현대 사회의 문화와 대중예술, 그 미학을 분석하는 영감을 얻을 수 있다는 점에서 발터 벤야민의 가치는 엄청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첨언:

지금 벤야민의 다른 저서들을 읽고 있습니다만, 곳곳에서 오류가 보이는군요...일차적으로 이 글은 그대로 냅두고 다른 저서를 읽고 이해를 하는데로 다시 글을 수정하던가 하겠습니다만...일단 오류가 있다는 점은 숙지를 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아...망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