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및 책 이야기




대중매체가 발달한 이후로 학자가 자신을 대중매체에 적극적으로 노출시키면서 다양한 논의를 이끄는 것이 하나의 유행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진중권이나, 리차드 도킨스, 마이클 센델, 그리고 여기서 다루고자 하는 슬라보예 지젝까지, '스타' 학자는 대중들에게 친숙한 개념이 되었다. 특히 슬라보예 지젝의 경우에는 21세기형 철학자라 극찬을 받기도 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물론 단 한권의 저서로 지젝의 모든 것을 다룰 수는 없겠지만, '멈춰라, 생각하라'를 통해서 지젝의 관점과 철학에 대해서 약간이나마 맛을 보고자 한다.


지젝이 자신의 저술에 특이점이란, 엄청나게 다양한 철학자들을 인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칸트에서 헤겔, 마르크스, 라깡 등등 철학사에 있어서 500년 정도의 다양한 철학자들을 폭넓게 인용한다. 지젝은 이러한 다양한 인용을 자유자재로 다루고 있는데, 처음에 칸트 이야기를 하다가도, 그 다음에 헤겔과 마르크스로 넘어가고, 이 다음을 라깡으로 변주하여 재해석하는 등 보통의 저자들은 보여줄 수 없는 높은 지식의 적용 범위를 보여준다. 또한 지젝은 이러한 전문적이고도 어려운 이야기를 상당히 쉽게 풀어쓰는 모습을 보여주며, 이런 그의 글쓰기 능력은 인상적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동시에 이러한 지젝의 폭넓은 인용과 짜집기로 인해서 필연적으로 문제를 야기할 수 밖에 없는 글쓰기 방식이라 할 수 있다(http://en.wikipedia.org/wiki/Zizek) 위키피디아 항목 역시 그의 글쓰기 방식에 있어서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으며, 지젝의 팬들과 다르게 지젝에 대해서 대단히 비판적인 사람들 역시 존재한다는 점을 생각하면, 지젝의 철학자에 대한 '인용'은 쓰여진 그대로 받아들이기에는 문제가 있지 않을까라고 생각한다.


지젝의 문제많은 인용방식에도 불구하고, 지젝의 현체제에 대한 비판은 상당히 날카롭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책이 다루고 있는 범위가 대단히 넓으며(이란의 이슬람 정권에서부터 월가 점령의 시위의 본질과 한계까지), 각각의 논제가 대단히 어렵고 복잡한 문제라는 것을 생각하면 이 글에서 지젝의 관점에 대해서 모두 코멘트를 다는 것은 어렵다고 할 수 있다. 대신 여기서는 지젝의 자본주의에 대한 문제제기에 초점을 맞추도록 하겠다.


지젝의 자본주의 종말론은 자본주의의 기본 전제를 부정하는 동시에, 자본주의의 가치 체제 자체가 무너지기 시작했다는 관점이다. MIT 공대생과 인도의 빈민을 대상으로 실험한 '성과급' 실험은 자본주의의 기본 전제인 '더 많은 보수를 받을 수록, 사람은 더 열심히 일한다'에 대한 부정이라 지젝은 주장하며(물론 그러한 결론 자체는 실험이 의도한 것이라 보기는 미묘하지만, 지젝은 이러한 결론을 보조하는 근거로 사용했다), 월가의 보너스 잔치에 대하여 '실패'를 칭찬하는, 그야말로 자본주의 가치체제가 스스로 붕괴하고 있는 과정 자체를 보여준다고 비판하였다.


그렇다면 자본주의 가치체제가 무너지기 시작한다면, 지금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가? 지젝이 지적하는 부분은 바로 테크노크라시, 전문기술직과 시스템에 의한 지배를 이러한 현상의 본질이라 보고 있다. 마르크스의 자본론과 다르게 '자본가'라는 계급적 분류가 아닌, 전문 경영인(CEO)의 등장과 고액 연봉 부르주아의 등장은 계급적인 갈등관계가 아니라 영원히 존속되는 '구조'의 문제로 귀결된다고 할 수 있다. 금융 자본주의의 도래와 월가의 보너스 문제 등등은 이러한 문제를 직접적으로 드러내는 부분이라 할 수 있다. 리만 브라더스와 서브 프라임 모기지론 사태를 베이스로 다루고 있는 영화 '마진 콜'은 이를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영화라 할 수 있는데, 기업이 소비자에게 독을 팔아서 시장과 소비자가 모두 절멸하는 사태가 도래하더라도 기업은 끝까지 살아남아서 이윤을 챙긴다는 이야기로 귀결되는 영화는 지젝이 지적한 자본주의 체제의 붕괴를 정확하게 다루고 있는 부분이라 할 수 있다.


여러부분에 있어서 지젝의 철학적인 부분(흔히들 라깡을 통해서 역으로 마르크스를 해석하는 역변증법적인 해석의 선구자 라고 한다....)은 논란의 여지가 많다고 할 수 있으나, 지젝의 현 자본주의에 대한 날카로운 지적과 통찰력은 그의 철학적인 부분보다 가치가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그의 자본주의 비판론은 공산주의 체제하에 있었던 그의 경험에서 비롯된 듯 하며, 자본주의 체제 바깥에서 자본주의의 문제를 신선하게 분석한다는 점에서 높게 평가할만하다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