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이야기/게임 리뷰




Me? The Dante, you piss of shit!

(DmC 문두스 대사 패러디)





1.


데빌 메이 크라이(이하 데메크) 1편이 액션 어드벤처 게임에 남긴 족적은 실로 거대하다고 할 수 있다. 하이타임으로 적을 높게 띄워서 쌍권총으로 유린하고 콤보를 넣는다는 기믹이 2D 격투나 2D 액션 게임이 아닌 3D 엑션 게임에서 정립된 것은 사실상 데메크가 최초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붉은 롱코트에 사나이의 로망을 집약시킨 듯한 은발의 남자 단테는 그 독특한 케릭터성으로 '스타일리쉬 하다'라는 데메크 시리즈의 컨셉과 게임플래이를 완성했다. 사실, 데메크 시리즈가 남긴 공중 콤보나 스타일리쉬의 개념은 이제 액션 어드벤처들이라면 이미 '기본적'으로 채용하고 있는 기믹이기도 하며, 심지어 몇몇 게임들은 데메크가 제시한 게임의 스타일을 깨부수는 시도를 하기도 했다.(ex.베요네타) 사실상 데메크 시리즈를 데메크 시리즈라고 규정지을 수 있는 시리즈의 아이덴티티는 이제 '단테'라는 케릭터 뿐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2.





이런 이야기를 왜 하냐고? DmC를 리뷰할 때, 데메크 팬들이 2010년 TGS에서 처음으로 DmC가 공개되었을 때의 충격과 그것이 갖는 의미를 이야기 해야한다. 그래야, DmC가 시리즈 전체에 갖는 '의미'를 이야기할 수 있으니까. 2010년 어떠한 정보 없이 공개된 괴물의 얼굴에 담배빵을 놓으면서 등장한 약쟁이의 모습이 담긴 2분 남짓한 짧은 트레일러는 트레일러 마지막에 '내 이름은 단테다.'와 'DmC Devil may Cry'라는 타이틀을 함깨 보여주면서 팬들의 얼굴에 담배빵을 놓는 듯한 충격을 줘버렸다. 기존의 단테가 성숙한 이미지와 개그 센스가 겹치면서 이 세상에 없을 법한 케릭터를 만들어냈다면, 2010년 공개된 단테는 아무리 봐도 약물중독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으며 아마도 팬들이 상상할 수 있는 최악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2010년 TGS에서 공개된 DmC의 트레일러는 데메크 4편의 게임 디자인 미스보다 시리즈의 존속에 더 치명적인 위기였는데, 사실 다른 게임들에게 많은 것을 빼앗겨버린 데메크 시리즈가 DmC에서 단테의 이미지 마저도 기존의 시리즈와 공통점이 없는 무언가로 대체해버리면 도대체 시리즈의 정체성은 어떻게 되느냐 의 문제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2010년 TGS의 충격 이후로, 닌자시어리와 캡콤은 하야시발(이제는 모미지 누드를 집어넣어서 하야신으로 추앙받는) 못지 않게 되도 안되는 이빨을 까왔다. 베요네타는 쿨하지 않다, 원래 팬들을 화나게 만들 작정으로 만든 케릭터다, 사실은 디렉터의 얼굴 모델링을 본따 만든 케릭터다, 우리는 판매량 따위는 신경쓰지 않는다, 우리는 완벽한 작품을 만들것이다 등등.










3.







그래서 결론은? 참 아이러니하게도 캡콤과 닌자시어리가 기존의 팬들을 우롱하고, 허세와 거만을 떨면서 만들어낸 작품은 엄청난 완성도를 가지고 있다. DmC는 지난 데메크 시리즈 1편에서부터 4편까지의 모든 작품들의 총집대성이며, 게임 탬포를 여유롭게 해서 데메크 특유의 진입 장벽을 낮추는 동시에 단순한 버튼 조합으로 다양한 움직임과 콤보를 만들어내는 콜롬버스의 달걀같은 발상을 한 게임이기 때문이다. 물론 전작들에 비해서 혁신적인 부분은 없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이다. 하지만, DmC는 혁신 대신 안정을 선택했고, 그 결과는 인상적이다.


게임의 기본은 기존의 데메크 시리즈들과 동일하다. 칼과 총, 그리고 다양한 무기들을 사용해서 적들을 스타일리쉬하게 박멸한다는 점에서는 말이다. 하지만, DmC가 기존의 데메크 시리즈와 갖는 가장 큰 차이점은 기존의 시리즈의 복잡함과 하드코어함 때문에 갖는 진입장벽을 최대한 낮추려고 한다는 것이다. 닌자시어리는 기존의 빠르고 화려한 데메크의 템포를 살짝 '여유롭고' 화려한 템포의 형태로 바꾸어놓는다. 게임 내의 전투의 박자는 매우 여유로워서 한대 맞을거 같은 상황에서는 거의 대부분 회피로 공격을 피할 수 있으며, 상대적으로 고난이도의 기술인 패링의 경우도 프레임 단위로 칼같이 집어넣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모션이 나오는 것을 보고 여유롭게(전작들의 저스트 가드 수준으로 빡센건 아니다. 하지만 좀 어려운것도 사실.) 패링할 수 있게 되었다. DmC에서 기존의 시리즈들이 보여줬던 '칼같은 입력' 개념(예를 들어 4편의 네로의 익시드)은 거의 사라졌으며 회피나 반격 등의 기존 데메크 시리즈의 전통적인 요소들 역시 많이 너그러워졌다고 볼 수 있다.(심지어 기술 입력 박자 같은 걸 미세한 진동으로 가르켜주기까지 한다!)


1편에서 기초를 정립한 이후, 흑역사인 2편을 제외하고 3편과 4편은 '스타일'이라는 개념을 통해서 게임 플래이가 달라지는 양상을 보여주었다. 예를 들어 트릭스터는 움직임이 변화 무쌍해지며, 건슬링거는 총기류가 강화되고, 소드마스터는 검과 데빌암이 강화되는, 이런식이었다. 하지만 3편은 석상에서만 이를 바꿀수 있었고, 4편에서는 패드키를 통해서 바꿀수 있게 변화하였으나, 단테의 경우 이것이 조작을 너무 복잡하게 만든다는 단점이 있었다. DmC에서는 이러한 스타일 개념을 버리고, 데빌암/엔젤암의 개념으로 변화시킨다. PS3 패드 기준 L2 또는 R2(엑박 버전은 LT, RT)를 누른 상태에서 기본 공격, 띄우기, 총 공격 버튼으로 조합하면 데빌암/엔젤암 공격이 나간다. 


DmC 내에서 데빌암/엔젤암은 시리즈에 나왔었던 특징적인 무기들과 기술들, 스타일들의 집대성이라 할 수 있다. 특히 4편이 십자패드로 무기나 스타일을 바꾸는 것(특히 4편의 단테)에 대해서 너무 많은 비중을 할애했다면, DmC는 L2와 R2를 적극적으로 사용함으로서 따로 일일이 장비를 바꿀 필요 없이 쉽게 버튼 조합으로 다양한 무기를 빠르고 화려하게 사용할 수 있다. 또한 4편 네로의 데빌 브링거 개념을 발전 시킨 엔젤 리프트(접근)/데빌 풀(끌어오기) 시스템을 집어넣어서 공중 콤보 및 콤보를 이어가는 것을 더욱 편하게 만들었다. 한가지 아쉬운 점은 타겟팅을 삭제했다는 것인데, 타겟팅을 삭제한 것 치고는 공격 자체가 헛손 치는 일 없이 시원시원스럽게 잘 들어가는 편이다. 물론, 그것과 별개로 시리즈 전통의 스팅거는 괴랄한 커멘드(스틱 두번+공격)으로 거의 묻혀버렸지만.(게다가 엔젤 리프트 성능이 너무 좋아서 스팅거의 역할을 완벽하게 대체했다)


게임의 템포가 느긋해지고, 조작도 편해졌으며, 엔젤 리프트/데빌 풀 추가로 시리즈 사상 가장 굴리기 쉬운 단테라고 평가할 수도 있지만 게임 난이도 자체는 그렇게 녹록하지는 않다. 물론 쉬워진 것은 사실이나 네필림 기준으로 모든 무기를 모으고 난 뒤에 후반부에 들어가면서부터 적들 조합이 괴랄해지기 때문이다. 베요네타 하드와는 다른 느낌인데, 베요네타 하드는 맞으면 개같이 아프다...! 너무 빠르다...! 위치타임 안 먹히는 적들이 넘쳐난다! 이런 느낌으로 힘들었다면, DmC는 그냥 뭔가 적들의 조합에서부터 이상하게 힘들다는 느낌이 강하다. 상대적으로 전작들에 비해 난이도가 낮다 라고는 할 수 있지만, 일반적인 게임 기준에서 보았을 때는 절대 쉽다 라고는 말 못할 난이도라 할 수 있다. 











4. 





그리고 문제의 케릭터와 스토리, 그리고 분위기 등등. 사실 아무리 DmC가 본 시리즈와 다른 노선을 걷는다고 하더라도, 결국은 데메크라는 기존의 시리즈를 구성하는 하나의 작품에 불과할 뿐이다. 그렇다면 DmC가 기존 시리즈를 완전하게 부정하는 신작일까, 아니면 기존 시리즈를 계승하는 후속작일까? 


일단 게임을 클리어하고 난 뒤의 대답은 정말로 기묘하다:기존 데메크 시리즈와 DmC는 완벽한 평행노선을 걷고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DmC가 데메크 시리즈와 연관관계가 없다고 하기는 힘들다. DmC는 기존의 데메크 시리즈로부터 스토리적인 모티브들(단테-버질, 단테-문두스)을 차용하지만, 데메크 시리즈의 주된 테마라고 할 수 있는 '쿨함'에 대한 전반적인 재해석이 가해졌다고 보는 것이 옳다. 마치, 생새우를 가지고 새우의 맛을 살리는 새우 초밥을 만들었는데, 그걸 먹어본 다른 요리사가 감명을 받아서 새우의 맛을 살리는 새우 튀김을 만들었다(.....)라는 그런 느낌에 가깝다. 양자는 공통점(재료와 맛있다)을 갖지만, 결과물은 완벽하게 상이하다. 기존 데메크 시리즈와 DmC도 마찬가지다. 물론, 닌자시어리의 경우, 기존 시리즈에 대해서 냉소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는 부분이 있지만 말이다.


기존의 데메크 시리즈들은 국적불명의 네오고딕풍의 세계를 국적불명, 연령불명의 은발 남자 단테가 돌아다니면서 국적불명의 악마들을 잡는 이야기였다. 이 단테라는 남자는 남자의 판타지(마초...하고는 좀 다르다)의 결정체로, 더럽게 강한데다 쿨하며 간지에 개그 센스까지 쩌는, 그야말로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그런 분위기의 남자였다. 하지만 DmC는 다르다. DmC의 주된 배경인 림보는 MTV나 뮤직비디오의 감각적인 이미지와 파편화되고 일그러진 이미지를 가진 인상적인 곳이며, 단테란 케릭터는 일찍 대성해서 섹스와 술에 중독되었지만 천부적인 감각을 지닌 반항적 10대 뮤지션의 이미지가 강하다. 구 단테와 신 단테가 서로 공유하는 공통점은 바로 '쿨함', 이거 하나 밖에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전자의 쿨함은 신사적인 느낌과 유쾌함에서 나왔다면, 후자의 쿨함은 거칠고 반항적인 느낌에서 나온다. 


스토리와 배경 역시, 이러한 반항의 쿨함에 대한 이미지를 적극적으로 이용한다. 세계는 사실 악마들이 지배하고 있었고, 뉴스는 거짓을 전파하고, 음식에는 독을 타고 있는데, 이런 막장 상황에서 10대 초반부터 섹스와 술에 찌든 구제불능의 반항아가 분연히 떨쳐 일어나서 세계를 구한다. 이 클리셰에 찌든 반항의 이야기에 생명을 불어넣는 것은 바로 배경이다. 마치 살아있는 듯이 꿈틀거리는 림보의 림보 시티는 단테와 더불어서 이 게임의 주인공이라 할 수 있다. 도시는 의지를 갖고 단테를 찌그려트리려 하거나, 적극적으로 자신의 모습을 변형시켜서 단테를 방해하며, 단테에게 도시의 진실된 모습(깨끗한 음료수 공장이 사실은 역겨운 내장으로 가득찬 곳이었다던가 등등)을 보여주는 공간으로 등장한다. 사실 DmC의 스토리텔링이 클리셰 떡칠임에도 불구하고 나름대로 설득력있게 다가올 수 있었던 것은 이 림보라는 공간 덕분이다. 게다가 전작들과 비교해서 플랫포밍이라던가 탐색의 재미는 본작이 월등하게 뛰어나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림보는 매력적인 장소이다.


다만, 스토리는 단테와 림보를 제외하면 상당히 애매하며, 켓의 경우 히로인이라고도 하기 힘들고 사이드킥이라고도 하기 힘든 참으로 기묘한 포지션이며, 버질의 경우는 그냥 케릭터 붕괴에 기존의 버질의 매력에 빠졌던 분이라면 거의 온몸으로 피를 토하면서 쓰러질정도로 망한 케릭터가 되었다. 간지나는 레지스탕스의 수장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입만 살아있고 필요하면 동료도 갖다 버리고 태아도 쏘는(물론 문두스의 자식이었지만. 연출상 단테가 버질을 바라보는 모습이나 플레이어의 느낌 모두 WTF 스러운 부분이 있다) 선동가+정치가 기믹이 강하기 때문이다. 심지어 설정으로 단테한테 힘으로 밀린다(.....) 라는 이야기가 있는걸 보면 이번 버질은 닌자시어리가 완전히 박살내버린 케릭터가 되버렸다. 









5.


데메크 4편에서 보여준 캡콤의 신뢰와 전통(....)의 MT 프레임워크가 아닌 언리얼 엔진을 사용한 그래픽은 좋다고 할 수 있으나, 기묘하다고 할 수 있다. 닌자시어리의 희대의 개드립중에 '게임은 고정 30프레임이지만, 60프레임 처럼 보일것이다'(......)라는 도저히 밑도 끝도 알 수 없는 개드립이 있었는데, 진짜 기묘하게도 실제 게임 움직임은 닌자시어리가 이야기한 것과 유사(!)하다. 분명히 고정 30프레임이라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지만, 게임 하는 내내 그러한 30프레임이 보여주는 끊기는 느낌은 거의 받을 수 없다. 게임은 부드러우며, 림보는 화려하고 광기로 뒤틀렸으며, 색감 역시 언리얼 엔진 답게 화려하다. 하지만, 이상하게 게임 플래이와 다르게 인게임 컷씬은 퀄이 '?' 스러운 부분도 있으며 무엇보다 프레임이 들쭉날쭉하다. 그런 점을 제외하면 그래픽은 크게 문제삼을 부분은 없다.


이번 DmC은 데메크 시리즈의 메탈 BGM을 그대로 계승하고는 있으나, 배경의 변화와 컨셉의 변화 때문인지는 몰라도 음악과 게임의 싱크로율이 120%에 가깝다는 느낌을 준다. 성우들의 연기도 괜찮은 편이며, DmC의 단테는 게임 내의 컨셉에 훌륭하게 부합하는 반항아로 자리잡았다고 볼 수 있다.









6.


닌자시어리와 캡콤의 황당한 언플에도 불구하고, DmC는 객관적으로 잘만든 게임이다. 데메크 시리즈의 총집대성이며, 결국은 데메크 시리즈에 기생해서 만들어진 아류작 밖에 안된다고 비판할 수도 있지만, DmC는 그렇게 비판받기에는 훌륭하게 잘 조율된 게임이다. 물론 그렇기에 베요네타 같이 혁신적이지는 않다. 


재밌는 점은 이번작을 통해서, 본가의 데메크와 닌자시어리의 DmC가 서로 각각의 데빌 메이 크라이를 만들 수 있는 가능성을 발견하였다. 둘은 세계도 서로 다르고, 컨셉도 서로 다르지만, 단테라는 케릭터와 쿨함을 공통분모로 보유하고 있기는 하다. 일본쪽 캡콤 본사도 데메크 5편을 만들고 있다는 루머가 들리는 것을 보면, 앞으로 닌자시어리-캡콤의 양가 체제로 데메크를 찍어내는 데메크 공장이 설립될 수도 있다는(.....) 기대감과 걱정이 동시에 들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