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니, 만화, 영화 이야기/리뷰





*스포일러 있습니다.


브라이언 드 팔마의 '필사의 추적'(원제:Blow Out)은 결국은 히치콕 영화들의 총집편(또는 노골적인 배끼기)과 이탈리아 모더니즘 영화 감독 안토니오니의 Blow Up의 리메이크+개조 버전에 불과한 영화이다. 심지어 드 팔마 감독의 영화들은 히치콕 영화 덕질의 산물에 불과하고, 과장된 스타일과 이미지로 뻥튀기 된 별거 아닌 영화 밖에 안된다고 평가하는 사람들도 있을 정도다. 하지만, 그 모든 비판 포인트를 인정하더라도 드 팔마 감독의 영화는 볼만한 가치가 있는 영화이며, '필사의 추적'은 고전 영화들로부터 '진실'에 대한 담론들을 빌려오지만 이를 단순한 동어반복이 아닌 자기 색깔로 포장하는데 성공한 영화이다.


주인공인 잭 테리는 시시껄렁한 B급 영화의 음향기사이다. 어느날 밤, 영화에 사용할 음향을 찾으러 나온 잭 테리는 우연하게 한 남자와 여자가 탄 차량이 강바닥으로 추락하는 것을 목격한다. 여자인 샐리는 구하는데 성공하지만 남자는 구하는데 실패한 잭은 그 남자가 유력한 대선 주자이고, 그의 죽음이 사고가 아닌 계획된 살인임을 알게 된다.


필사의 추적은 진실을 추적하는 주인공 잭의 이야기지만, 잭의 위치는 능동적으로 사건을 해결하는 것이 아닌 수동적으로 관찰하는 쪽에 가깝다. 그의 관점은 소리를 통해 세상을 관음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영화의 초반 시퀸스에서 그가 사고를 귀로 듣는 장면은 망원경이 아닌 음향마이크를 사용했을 뿐, 전형적인 관음의 형태를 보여준다. 멀리서 전지적 작가 시점을 즐기는 듯한 잭의 모습은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의 이창 처럼 살인을 목격하게 되면서 어그러지게 된다. 병원에 당도해서 그를 입막으려는 보좌관을 만난 뒤, 잭이 진실을 숨기려는 세계에 분노하는 것이 아닌 자신의 입을 닥치게 만드려는 세계에 분노해서 진실을 파해치는 부분이나 샐리나 다른 사람들에게 소리를 들려주면서 자신이 진실을 알고 있음을 과시하는 부분 등을 볼 때 이들은 잭의 관음증 환자의 성향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고 할 수 있다.


잭의 진실을 추적하는 과정을 영화는 영화의 제작 기법을 그대로 따라간다. 잭은 자신이 가진 음성만으로는 확실하게 진실을 증명하기는 어려우니 이를 증명할 수 있는 필름들을 찾아낸 뒤, 이 필름에 편집을 가하고 음향을 덧씌워서 하나의 영상으로 만든다. 즉, 두개의 파편적인 진실이 만나서 하나의 진실이자 영화가 된 것이다. 


재밌는 점은 영화는 대선 후보 살인의 진실과 이를 주도한 흑막 사이의 서스펜스가 아닌, 흑막과 별개로 통제불능의 여성혐오 살인마와 그의 존재를 모르고 진실을 어떻게 폭로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주인공 남녀의 서스펜스가 주가 되기 때문이다. 다른 영화가 보통 흑막을 쫒아가는 이야기 였다면, 필사의 추적은 진실과 진실에 향한 자의식 과잉이 결국 파멸을 부른다는 기묘한 이야기 구조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러한 자가파멸의 끝은 진실이 싸구려 B급 호러무비속에 묻히면서(샐리의 비명을 영화 인트로에 나온 영화의 비명 음향으로 쓴다) 자기환멸적인 엔딩으로 귀결되게 된다.


드 팔마는 이러한 자가파멸적인 이야기를 특유의 과장되고 팽팽한 연출로 묘사한다. 살인마가 송곳을 집어드는 장면과 멀리서 나가는 여성을 위압적인 원근감을 조성하는 부분이나, 잭이 자신의 사무실의 모든 테잎들이 지워졌다는 사실을 깨달을 때 카메라가 패닝으로 빙글빙글 도는 장면은 스타일리쉬하다 못해 과격하다고 할 수 있을 정도다. 그리고 드 팔마 특유의 여성 혐오 역시 영화 전반에 묻어 나오는데, 특히 여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샐리나 몇몇 여성 케릭터들은 짜증나다 못해 살인마를 응원하고 싶은 마음이 들정도다. 영화에 나오는 여성들은 머리가 텅비었으며 공허한 이야기를 반복하고 심지어는 상황을 최악으로 치닫게 만든다. 영화 내의 여성 묘사는 그래야 할 필연성이라기 보다는 여성이기 때문에 짊어져야하는 숙명적인 멍청함에 대해서 논하고 있다고 볼 수 있을 정도니 말이다.


결론적으로 드 팔마 감독의 필사의 추적은 이런저런 짜집기 영화라는 비판을 들을 수 밖에 없는 한계점이 분명하면서도 보는 내내 재미를 보장하는 스릴러 영화라는 것도 사실이다. 특히 드 팔마 특유의 과장되고 남성적인 연출은 다른 감독들이 쉽게 흉내내지 못하는 포스가 있다고 할 수 있으며, 현대적인 감각에서 보더라도 놀라운 장면들(클라이맥스의 자동차 추적신이라던가)도 있다. 물론 드 팔마의 여성혐오증의 마음에 안들면 영화를 재밌게 볼 수는 없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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