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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은 인간을 통해 그 분의 뜻과 의지를 드러내신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은 악한 인간들이 있으며, 부조리와 모순이 넘쳐나는 공간이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선하면서 완벽한 신의 존재를 증명하면서 어떻게 인간의 악이라는 존재를 이 체계 안에 집어넣을 수 있을까? 영화 '사냥꾼의 밤'은 이에 대한 기묘한 대답을 제시한다. 연쇄 살인마 '해리 파월'은 미망인과 결혼한 뒤, 이들을 죽이는 연쇄살인마다. 그런 그가 자신의 감방 동료가 숨긴 만달러의 존재를 알게 되고, 출소 후 감방동료의 미망인과 결혼해서 그 돈을 가로채고자 한다.


해리 파월은 이제는 흔하디 흔한 연쇄살인마 케릭터라고 할 수 있다. 물론 당시 나왔을 때는 충격적이었겠지만 말이다. 하지만 이 해리 파월이라는 케릭터가 영화사상 가장 인상적인 연쇄살인마 케릭터가 될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그의 '하나님에 대한 헌신'(?)이다. 해리 파월의 가면은 바로 전도사다. 하나님의 사랑을 전파하는 사람이 연쇄살인마라니! 그러나 해리 파월은 전도사라는 역할을 단순히 연기하는 것이 아닌, 그 안에서 가치와 의미를 부여한다. 그는 시도때도 없이 하나님에게 신앙 간증아닌 간증을 하고, 찬송가를 부르며, 심지어 설교까지 한다! 


설교라는 말이 나와서 말인데, 해리는 양손에 사랑(L.O.V.E)과 증오(H.A.T.E)를 세겨놓았다. 그런데 이 문신은 오로지 주먹을 쥐었을 때만 그 형체를 드러낸다. 그리고 해리는 이 주먹의 문신을 두고, 기묘한 설교를 한다. 아벨의 사랑과 카인의 증오의 알레고리에 대해서 말이다. 카인과 아벨의 싸움을 깍지낀 형상으로 표현하는 해리는 어떻게 주님의 사랑이 승리하는가를 설교한다. 하지만, 여자에 대한 증오를 불태우는 해리야 말로 아담을 타락시킨 이브와 여자에 대한 기독교적인 증오와 스스로 묘사했던 카인의 증오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해리는 자신의 증오를 숨긴다. 성실한 전도사 같지만 능글맞은데다 보는 사람 속을 느글거리게 만드는 로버트 미첨의 연기는 해리 파월이라는 악역을 복합적인 이미지로 만든다. 그는 매력적인데다가 사람을 어떻게 속이는지 않다. 마치 창세기 선악과 이야기에서나 나올법한 뱀처럼 말이다. 하지만 아무도 그의 본모습을 알아차리지 못한다. 그에게 쫒기는 어린 아이들만이 그의 괴물같은 본모습을 볼 뿐이다.


영화는 이 모든 이야기를 동화나 성경에서 볼 수 있는 알레고리로 풀어낸다. 자매인 벤과 펄의 아버지는 죽고, 어머니는 어머니로서의 구실을 제대로 제대로 못하고 있다. 그녀는 만난지 며칠 안되는 전도사 해리와 결혼하면서, 자식을 지키지 못하고 허무하게 해리의 손에 죽음을 맞이한다. 부모 없이 세계에 내던져진 아이들은 살아남기 위해 계부인 해리에게서 탈출한다. 마치 출애굽기의 모세의 에피소드와 예수가 예루살렘을 떠난 이야기를 반반씩 섞은 듯한 이 이야기를 영화는 동화나 성경의 삽화처럼 정교한 구도가 아닌 거대하고 정적인 풍경속의 작은 인물들의 형태로 많이 묘사한다. 해리가 그의 아내를 살인할 때의 장면, 지하실에서 해리의 손길을 피해 도망치는 아이들, 마굿간에서 잠을 자는 아이들을 쫒아오는 지평선 너머 해리의 실루엣 등등에서 이를 찾아볼 수 있다.


그리고 강을 따라 내려간 아이들은 그들의 어머니의 대체자라 할 수 있는 쿠퍼 부인을 만난다. 그녀는 해리의 완벽한 대척점에 서있다고 할 수 있는 인물인데, 기독교적인 사랑과 자비를 대표하듯이 부모가 없는(혹은 부모가 맞벌이를 해서 부재한) 아이들에게 부모 역할을 대신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영화는 쿠퍼 부인과 해리, 한쪽 편만을 드는 것이 아닌 양측 모두 신을 대변한다고 설파한다. 영화의 절정 부에서 해리와 쿠퍼 부인이 대치 상태를 이룰 때, 그 기묘한 긴장 속에서 해리가 부르는 찬송가에 쿠퍼 부인이 화답한다. 카인의 증오와 아벨의 사랑이 서로 만나 하나의 완벽한 알레고리를 형성한다.


결론적으로 영화 사냥꾼의 밤은 기묘한 영화다. 성경과 동화의 구조 속에 아이들의 세계를 침범하는 어른들의 음험한 이야기를 다룸으로서 기묘한 느와르 영화를 만들어냈다. 영화 개봉 당시에는 실패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시대를 뛰어넘어 살아남은 영화다. 기회가 된다면 꼭 보시길.